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최용현(수필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각색하여 거장 신상옥 감독이 1961년에 35mm 필름으로 만든 흑백영화이다. 60년대 초의 시골을 배경으로 청상과부와 미술교사의 애틋한 사랑을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의 일기식 독백을 통해 수채화처럼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1961년에 시작된 제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본상, 특별장려상(아역상)을 받았고, 제5회 부일영화상에서는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또 제9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했으나 노미네이트에 이르지는 못했다.
여섯 살 옥희(전영선 扮)네 집은 큰집에서 사는 할머니를 포함하여 어머니와 식모가 모두 과부라서 ‘과부집’으로 불린다. 어느 날 외삼촌이 이 동네 중학교의 미술선생님(김진규 扮)을 데려와 옥희네 사랑방에 하숙을 하도록 하는데, 그 선생님은 옥희 아버지의 친구였다고 한다. 사랑방 손님과 옥희는 금방 친해진다.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되어 혼자가 된 어머니(최은희 扮)와 사랑방 손님은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을 느끼지만, 서로 말 한마디 못하고 옥희를 통해서 대화를 하고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중, 사랑방 손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러 뒷동산에 올라간 옥희는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유치원 친구로부터 ‘너희 아빠니?’ 하는 말을 듣는다. 아빠를 본 적이 없는 옥희는 ‘아저씨가 우리 아빠라면 참 좋겠다.’고 말한다.
옥희로부터 사랑방 손님이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의 밥상에 매일 삶은 달걀을 올린다. 그 때문에 홀아비 계란장수(김희갑 扮)가 옥희네 집에 자주 들르게 되는데, 그러다가 식모 성환댁(도금봉 扮)과 계란장수가 정분(情分)이 나서 식구들이 모두 교회에 간 사이에….
옥희는 유치원에서 꺾어온 꽃가지들을 어머니에게 주면서 사랑방 손님이 엄마 갖다 주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는 설레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피아노 위에 있던 아버지의 사진을 치우고, 그 자리에 그 꽃을 꽂은 꽃병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를 친다.
그 무렵 식모 성환댁이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사랑방 손님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퍼진다. 그 소문을 들은 할머니는 노발대발하여 성환댁과 사랑방 손님을 내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가 계란장수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성환댁은 옥희네를 떠나 계란장수와 혼인하게 된다.
어느 날, 옥희의 외삼촌이 찾아와 어머니에게 재가(再嫁)를 권하고, 할머니에게도 그 뜻을 전하는데 할머니는 매우 섭섭해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재가를 허락한다. 그러던 중 사랑방 손님의 여동생이 찾아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사랑방 손님은 서울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날 저녁, 사랑방 손님은 옥희를 통해서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내는데, 어머니는 고심하다가 예쁘게 차려 입힌 옥희 편에 거절의 답신을 보낸다. 어머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치며 아픈 마음을 다잡는데, 밤늦게 술에 취해서 들어온 사랑방 손님은 물그릇을 들고 서있는 어머니를 뜨겁게 포옹한다.
다음날, 옥희와 어머니가 뒷동산에 올라 사랑방 손님이 탄 기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한 울타리 안에 사는 젊은 남녀가 서로 말 한 마디 못하고 옥희를 통해서 소통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 사랑방 손님으로부터 사랑고백을 받은 28살의 어머니가 방바닥에 엎드려서 ‘선생님, 메마른 나무에 불을 지르지 마세요. 제게는 옥희가 있을 뿐입니다.’ 하고 답장을 쓰는 모습은 참으로 애처롭다.
인습(因習)의 굴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분인 성환댁과 계란장수는 수월하게 재혼을 하는데, 옥희의 적극적인 동의와 할머니의 허락까지 받은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은 결국 이별을 한다. 물론 사랑방 손님이 떠나면서 옥희에게 다시 올 거라고 했으니 재회의 여지는 남겨둔 셈이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가치는 60년대의 풍광이 화면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아낙네들이 우물가에서 뒷담화를 하는 모습, 계란장수가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약병아리와 계란을 파는 모습, 사주쟁이가 길가에 앉아서 사주를 봐주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또 어머니에게서 숄을 빌려서 걸치고 온 성환댁과 손목시계를 빌려서 차고 온 계란장수의 데이트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미소를 머금게 한다.
최은희(1926~2018)는 ‘지옥화’(1958) ‘성춘향’(1961) ‘청일전쟁과 여걸민비’(1965) 등에서 주연을 한 50~60년대의 독보적인 여배우였다. 1966년 안양예고를 설립했으며,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어 남편 신상옥(1926~2006) 감독과 함께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1986년 오스트리아에 망명했다가 미국을 거쳐 1999년 귀국하는 등 파란만장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김진규를 비롯한 허장강 김희갑 한은진 도금봉 등은 오래 전에 고인이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최대 스타는 옥희 역을 맡은 전영선이다. 요즘에도 개그맨 김태균을 비롯한 여러 연예인들이 옥희의 성대모사를 하고 있지 않는가. 전영선은 1980년대 초까지 배우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했다. 2005년 모친의 팔순 때 서울에 왔었는데 그때까지도 미혼이었다고 한다. 1950년생이니 이제 일흔이 넘었다.
전영선의 아버지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 ‘이별의 인천항’ ‘전우가 남긴 한마디’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유명작곡가 전오승이다. 또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부른 가수 나애심은 전오승의 여동생이고, ‘디디디’를 부른 가수 김혜림은 나애심의 딸이니 전영선의 고종사촌이다. 한 마디로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다.
1978년, 조문진 감독이 하명중과 방희를 주연으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리메이크했다. 아역배우는 이효정으로 바뀌었지만, 더빙된 옥희의 목소리는 그대로 썼다. 식모이던 도금봉이 할머니로 승진(?)을 했고, 계란장수는 김상순, 식모는 박정자가 맡았는데, 기대이상으로 잘 만든 리메이크 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첫댓글 한국의 미인 상을 보여주던 여배우 최은희와 중후한 연기를 나타낸 김진규의 멋진 모습이
생생한 추억의 영화. 섬세한 심리묘사가 돗 보인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네, 최은희와 김진규, 60년 전쯤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선남선녀들이었죠.
도금봉과 김희갑의 러브 스토리도 아주 재미 있고 정감이 넘칩니다.
흑백영화지만, 스토리도 탄탄하고, 오래도록 기억될 불후의 고전입니다.
ㅎㅎㅎ!
과거로의 여행.
흑백영화 시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