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를 배신한 두 무장 ‘미방과 부사인’
최용현(수필가)
유비가 도겸의 뒤를 이어 서주자사가 되자, 서주의 호족이며 대부호인 미축은 여동생을 유비에게 출가시키고(미부인), 자신의 재물을 모두 털어 유비의 군자금 마련을 돕는 등 유비에게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건다. 미방(糜芳)은 미축의 남동생으로, 두 사람은 겉으로만 형제일 뿐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유비가 서주를 떠날 때 미축과 미방은 조조가 준 벼슬을 버리고 유비를 따라나선다. 후일 서촉을 평정한 유비는 20여 년 동안 자신을 보필해온 큰처남 미축을 명예직인 장군으로 위촉하여 예우하고, 작은처남 미방을 형주의 남군태수로 위촉한다. 부사인(傅士仁 혹은 士仁)은 형주를 지키는 관우의 수하 장수이다.
한중왕에 오른 유비는 문관 비시를 관우에게 보내 오호대장군의 인수(印綬)를 주면서 위의 번성을 공략하라는 명을 내린다. 관우는 미방과 부사인을 선봉으로 삼고 출전준비를 하는데, 출전 전날 밤 미방과 부사인이 술을 마시면서 실수로 불을 내는 바람에 군막에 있던 군량과 마초, 병장기가 대부분 타버린다.
급히 군사를 풀어 불을 끈 관우는 두 장수에게 곤장 40대씩을 때리게 하고, 선봉의 인수를 회수한다. 관우는 미방과 부사인에게 각각 남군과 공안의 수비 및 군수물자 조달을 맡기고 요화를 선봉으로 삼아 번성으로 출정한다. 그런데 미방과 부사인은 군수물자 보급에 전력을 다하지 않다가 관우로부터 ‘돌아가면 죄를 물을 것이다.’라는 경고를 받는다.
한편, 형주의 대안(對岸)인 오의 육구 책임자 여몽은 형주를 지키고 있는 관우에게 빈틈이 보이지 않자, 자신은 병을 핑계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육손을 오주 손권에게 천거한다. 백면서생 육손이 육구 책임자로 오자, 관우는 오나라 쪽에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형주 군사들을 대부분 번성 공략에 동원한다.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한 여몽은 육손과 함께 병선 80척에 실은 군사를 풀어 순식간에 형주성을 점령한다. 여몽은 공안을 지키는 부사인과 어릴 적부터 교분이 있던 우번을 보내 항복을 권하는데, 형주성이 함락된 것을 안 부사인은 관우에게 문책 당할까봐 두려워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 손권의 환영을 받은 부사인은 남군을 지키는 미방에게도 항복을 권한다. 여몽의 대군이 남군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미방도 성을 나와 항복한다.
한편, 번성의 조인으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은 조조는 맹장 서황을 보내 관우와 일전을 벌이게 한다. 관우는 지난번에 방덕이 쏜 독화살에 맞은 팔 때문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일시 후퇴하던 중에 형주성이 이미 오군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관우는 군사를 이끌고 공안으로 향했으나 공안의 부사인과 남군의 미방도 오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한다. 미방의 항복소식을 들은 미축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얼마 안 있어 죽고 만다.
관우의 군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탈영병이 속출한다. 결국 관우는 수백 명의 군사만 이끌고 조그만 맥성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까운 상용을 지키고 있는 유비의 양아들 유봉과 맹달에게 요화를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지만, 두 사람은 이런저런 핑계로 구원병을 보내지 않는다. 결국 관우는 맥성에서 빠져나오다가 여몽의 부하장수인 반장과 그의 부장 마충에게 사로잡혀 아들 관평과 함께 참수되고 만다.
얼마 후, 유봉은 유비의 지시로 맹달을 치려다가 위의 맹장 서황에게 쫓겨 성도에 있는 유비에게 달려오지만, 관우에게 구원병을 보내지 않은 책임을 물어 유비에게 참수 당한다. 그 후 맹달은 위와 촉을 오가며 세 번이나 주인을 바꾸고, 네 번째 주인을 바꾸려다가 위의 사마의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다.
관우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비마저 부하장수들인 범강과 장달의 손에 살해당하여 그 수급이 오나라로 보내지자, 유비는 제갈량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국적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오로 쳐들어간다. 촉군은 파죽지세로 오군을 격파하는데, 이때 관우의 아들 관평은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가지고 있던 반장의 목을 베어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 촉의 대군이 계속 밀고 들어가자, 참패를 거듭하던 오군의 사기는 무참히 꺾인다.
어느 날 밤, 미방은 오군에 합류한 공안과 남군의 군사들이 ‘유황숙이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위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왔으니 오래잖아 동오는 결딴이 나고 우리도 죽을 것이야. 미방과 부사인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차라리 두 놈을 죽여서 수급을 들고 촉에 항복하자.’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깜짝 놀란 미방이 부사인을 찾아가서 방금 들은 말을 전하면서 ‘우리가 먼저 마충의 목을 바치면 유비가 우리를 용서해 줄 것이오.’ 하고 말한다. 부사인은 ‘그렇게 해도 유비가 우리를 죽일 것’이라며 불안해하는데, 미방은 ‘유비는 내 매부이고, 아두는 내 조카이니 틀림없이 용서해줄 것이오.’ 하고 말한다. 그때서야 부사인도 마음을 돌린다.
그날 밤, 미방과 부사인은 마충의 군막으로 들어가 곤히 자고 있는 마충을 찔러죽이고 그의 목을 자른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효정에 있는 유비에게 달려가 이렇게 고한다.
“저희들은 폐하를 저버릴 마음이 없었으나 여몽의 속임수에 빠져 항복한 것입니다. 늦게나마 폐하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씻어드리고자 관공의 원수인 마충의 수급을 가지고 왔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유비는 곧바로 관우의 영위(靈位)를 차리게 하고 마충의 수급을 영전에 바치고, 미방과 부사인도 유비의 지시를 받은 관흥에 의해 참수되어 관우의 영전에 바쳐져 제물(祭物)이 된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 ‘오주전(吳主傳)’에는 미방은 유비에게 죽지 않고 줄곧 오에 남아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어쨌거나, 직속상관인 관우의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적에게 항복한 미방과 부사인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고 참수당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삼국지 최고의 무사인 관우가 부하장수인 미방과 부사인에게 배신당하고, 아군 관리들인 유봉과 맹달의 외면을 받은 것은 왜일까? 혹시 관우의 인간관계 혹은 리더십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첫댓글 월산처사님 안녕하세요. 금일도 좋은 글을 구독하고 갑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읽고 느낌이 오네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