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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arinaSchool 원문보기 글쓴이: 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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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똑바로 운전가히 대 길로 뛰어드는 소, 달구지, 인력거 등을 피해 운전하기> - Thing3
인도 뉴델리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 람은 시간당 18루피를 받는다.스톡홀름의 버스 기사 시벤의 시급은 130크로나로 2009년 여름 환율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870루피 정도 된다.스웨덴의 버스 운전사는 같은 일을 하는 인도 기사에 비해 50배를 더 받는 셈이다.
자유시장 경제학에서는 어떤 상품이 그와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상품에 비해 값이 비싼 것은 그것이 더 다은 상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이 말은 자유 시장에서는 노동을 포함해서 모든 상품이 제값을 받는다는 의미이다.그러므로 스웨덴 운전기사 스벤이 인도 운전기사 람보다 50배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스벤의 생산성이 람에 비해 50배가 더 높다는 뜻이 된다.
일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물론 다는 아닐 거이고) 사람들이 유행 같은 것 때문에 상품의 가치에 맞지 않는 지나친 값을 지불하는 현상이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한다.최근 금융 시장이 일대 호황을 맞이했을 때 투기 열풍에 휩쓸린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가격으로 악성 부실 자산을 사들인 것이 그 한 예이다.물론 이 호황이 결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을 가져왔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일이다.그러나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이 자산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오래 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노동자가 학력을 위조한다든가, 면접 때 거짓말을 한다든가 하는 속임수를 써서 자기 자격에 넘치는 좋은 임금의 직장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임금 수준에 합당한 생산성을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해고당할 게 분명하다.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스벤이 람보다 50배 높은 임금을 받는다면 같은 시간에 그가 생산하는 재화나 용역이 람보다 50배 많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 그럴까? 먼저, 한 운전기사가 다른 운전기사보다 50배 운전을 잘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어찌어찌해서 운전의 질을 수치로 평가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생산성 차이를 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미하엘 슈마허나 루이스 해밀턴과 같은 세계적인 카레이서들과 운전면허를 갓 단 운동신경 제로의 열여덟 살짜리 초보 운전자를 비교하면 그런 차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하지만 평범한 버스 운전기사가 다른 기사보다 50배나 운전을 잘한다는 건 나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람이 스벤보다 운전 솜씨가 훨씬 좋을 가능성이 크다.물론 스웨덴 사람치고 스벤은 운전 솜씨가 좋은 쪽에 속할 것이다.그러나 스벤은 평생 한 번이라도 갑자기 코앞에 뛰어드는 소를 피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일이 람에게는 거의 날마다 벌어진다.어쩌다가 토요일 밤 난폭 운전을 하는 음주 운전자들을 피하는 것 말고 스벤은 대체로 앞으로 곧장 가기만 하면 된다.반면 람은 거의 쉴틈 없이 튀어나오는 소, 달구지, 인력거, 하늘 높이 쌓아올린 짐을 싣고 비틀거리고 가는 자전거 등을 피하며 운전을 해야 한다.따라서 자유 시장 논리에 충실하자면 임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 것은 스벤이 아니라 람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스벤이 '인적 자본', 즉 교육과 훈련을 통해 축적한 기술과 지식이 더 많기 때문에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물론 스벤은 적어도 고등학교는 마쳤을 것이다.학교 교육을 12년은 받았을 스벤에 비해 람은 아마도 라자스탄에 있는 고향 마을에서 간신히 4~5년 정도 학교에 다닌 것이 전부여서 제대로 글을 읽고 쓸 줄 알면 다행인 학력일 것이다.
그러나 스벤이 7년이나 더 학교를 다미녀서 추가로 축적한 인적 자본은 버스를 운전하는 일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인간 염색체 구조나 1809년 스웨덴-러시아 전쟁의 의미 따위를 아는 것이 버스 운전을 더 잘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스벤이 인적 자본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로는 람보다 돈을 50배 더 받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스벤이 람보다 50배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보호주의 덕택이다.자국 정부의 이민 통제 정책 덕에 스웨덴의 노동자들은 인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생각해 보면 스웨덴의 버스 운전기사들을 비롯해서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 나아가서는 부자 나라의 노동 인력 대다수를 인도나 중국, 또는 가나 출신의 노동 인력으로 대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이들 외국인 노동자의 대다수는 스웨덴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몇 분의 일 정도만 받아도 만족할 것이고, 일은 자국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잘 해낼 것이다.이는 청소부나 환경 미화원 같은 단순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하이, 나이로비, 키토 등에는 스톡홀름,린쉐핑,말뫼의 엔지니어, 은행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대체할 만한 사람들로 넘쳐 난다. 그러나 이들은 스웨덴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다.이민 통제 정책으로 인해 자유롭게 스웨덴으로 이민 올 수 없기 때문이다.그 결과 스웨덴의 노동 인력은 같은 일을 하는 인도 사람에 비해 생산성이 높지 않은데도 50배나 높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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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 - 미국 기업, 독일 기업, 다시 미국 기업.... 이제 곧 이탈리아 기업?> - thing8
1998년 독일 자동차 회사인 다임러-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합병을 선언했다.실질적으로는 다임러-벤츠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것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등한 두 기업의 동등한 결합이라는 형식을 취했다.다임러-크라이슬러라고 개명을 한 새 회사의 임원진에도 똑같은 숫자의 미국인과 독일인이 포진했다.하지만 이 외양은 채 몇 년도 지속되지 않았다.얼마 가지 않아 독일인 이사 수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해마다 약간씩은 달라졌지만 보통 독일인 10~12명에 미국인 1~2명 정도의 비율이었다.
불행히도 이 인수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해서 2007년 다임러-벤츠는 크라이슬러를 미국의 사모펀드 서버러스에 팔아넘겼다.여전히 19.9%의 지분을 유지하고 있는 다임러 대표들이 몇 명 남아 있기는 했지만 크라이슬러의 임원진은 곧 미국인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서버러스는 회사를 되살리는 데 실패했고, 결국 크라이슬러는 2009년 파산하고 말았다.이후 미국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과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의 대규모 주식 매수에 힘입어 크라이슬러는 구조 개편을 거쳤다.대주주 자리를 확보한 피아트는 자사의 CEO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를 크라이슬러의 CEO자리에 앉히고, 아홉 명으로 된 크라이슬러의 이사회에도 또 다른 피아트 임원 한 명을 더 투입했다.현재 지분은 20%이지만 앞으로 35%, 최종적으로는 51%까지 늘릴 수 있는 권리를 피아트가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에 따라 차차 이탈리아 인 이사 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한때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의 하나였던 크라이슬러는 지난 10년 사이에 독일 사람의 손에 운영되다가, 다시 미국인들 손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이제는 점점 더 이탈리아 회사가 되어 가고 있다. '국적 없는'자본은 없다.내로라하는 미국의 거대 기업도 외국인이 인수하면 꼼짝없이 외국인 손에 운영될 수밖에 없다.하긴 생각해 보면 바로 그렇게 하기 위해 인수합병을 하는 것 아닌가.대부분의 기업은 회사 경영을 아무리 초국적으로 한다 해도 최고 의사 결정권자들은 여전히 본국인들, 즉 소유권이 있는 나라 출신들을 고용한다.인수 기업이 고위 간부들을 인수된 기업이 있는 곳에 직접 파견하지 않는 원거리 경영을 할 경우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고, 고위 간부들을 외국에 파견할 경우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특히 양국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가 클 경우 가시적, 비가시적 비용이 더 든다.카를로스 곤은 이런 관례에서 그야말로 예외적인 존재인 것이다.
기업들의 자국 편향은 단지 최고 경영진을 임명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대다수 첨단 산업에서 기업 경쟁력의 햄식이라 할 수 있는 연구개발 부문도 자국 편향이 대단히 심하다.기업들의 연구개발 활동은 대부분 본국에서 행해진다.혹 연구개발의 일부를 해외로 옮기는 경우에도 극도로 '지역'편향을 보인다.이 말은 북아메리카 기업은 북아메리카 내에서, 유럽 기업은 유럽 내에서, 그리고 일본은 일본(일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지역'처럼 기능을 한다.)내에서만 움직이는 경향이 심하다는 의미이다.최근 들어 중국,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세우는 연구개발 센터의 수가 많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센터들에서는 주로 낮은 수준의 연구개발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하는 활동 중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해외로 이전하기 제일 좋은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생산 부문마저 대부분의 초국적 기업들은 아직도 본국에 확고한 생산 기반을 가지고 있다.제품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생산하는 네슬레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예는 아주 드물다.미국에 기반을 둔 초국적 기업들 중 제조 업체들의 해외 생산량은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고, 일본 기업들의 해외 생산량 비율은 10%도 되지 않는다.유럽에서는 이 비율이 최근 들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유럽 기업들의 해외 생산은 대부분 유럽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현상은 유럽 기업들이 진정으로 국적을 초월했다기보다는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걸맞은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간단히 말해 진정으로 초국적인 기업은 거의 없다.대다수의 기업들이 여전히 대부분의 생산을 본국에서 한다.특히 전략적 의사 결정이나 고급 연구개발 활동은 본국에서 이루어진다.국경 없는 세계라는 표현은 엄청나게 과장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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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들 잘사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 thing 10
사실 이 말은 옳지 않다.미국은 더 이상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미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유럽에 몇 나라나 있기 때문이다.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7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6040달러이다.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할 때 노르웨이(7만 6450달러)를 필두로 룩셈부르크,스웨으,덴마크,아이슬란드,아일랜드,스웨덴(4만 6060달러) 순으로 7개 나라가 미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난다.인구 규모가 작은 아이슬란드(31만명)나 룩셈부르크(48만명)를 제외하더라도 미국은 세게에서 여섯 번째로 부유한 나라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그럴 리가 없다.미국에 실제로 가 보면 스위스나 노르웨이보다 훨씬 잘 살던데 무슨 소리냐 하고 생각할 듯도 하다.
이런 인상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더 불평등하다는 데에 있다.어느 나라나 관광을 할 때에는 빈민가를 볼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는 유럽 여러 나라보다 미국에 빈민가가 훨씬 더 많은데도 그곳을 뺀 나머지 부분만 보고 미국이 더 잘산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불평등이라는 요인 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럽 사람보다 미국 사람들이 더 잘산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또 있다.
제네바레엇는 5마일 정도 되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면 35달러(약 35스위스프랑)를 내야 했지만 보스턴에서는 같은 거리를 가는 데 15달러밖에 들지 않는다.오슬로에서 100달러(550크로네) 정도 내고 먹은 저녁 식사는 세인트루이스에 가면 50달러 정도면 충분하다.반대의 경우도 있다. 태국이나 멕시코에 휴가를 갔다고 생각해 보자.이번 주에만 등 마사지를 여섯 번이나 받았고, 저녁 식사 전인데도 벌써 마르가리타를 석 잔째 마시고 있다면(술에 취해서인지는 몰라도) 100달러짜리 지폐가 200달러, 아니 300달러처럼 느껴질 것이다.시장 환율이 국가 간 생활수준의 차이를 정확하게 반영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다른 화폐를 쓴다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양의 돈인데 나라마다 살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의 양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이런 차이는 단기적으로 환투기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장 환율이라는 것이 주로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 공급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반면 어느 나라에서 정해진 금액으로 얼마만큼의 제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가 하는 문제는 국제 시장에서 교역되는 것들뿐 아니라 그 나라에서 거래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교역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택시운전이나 레스토랑의 서빙처럼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노동 서비스이다.이런 서비스를 국제적으로 거래하려면 이민을 해야 하지만, 그건 각 나라의 이민 제한 정책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므로 나라에 따라 노동 서비스의 가격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게 된다.다시 말하면 스위스 택시나 노르웨이 식당이 비싼 것은 그 나라의 노동자 임금이 높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노동자 임금이 싼 멕시코나 태국 같은 곳에 가면 이런 서비스 또한 싸진다.반면 국제적으로 교역되는 TV나 휴대전화 같은 상품들은 부자 나라든 나간한 나라든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비슷한 가격을 지불해야 살 수 있다.
나라마다 다른 비교역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반영하기 위해 경제 학잦들은 국제 달러(international dollar)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특정 통화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일련의 공통적인 소비품을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인 구매력 평가지수(PPP)라는 개념에 근거를 둔 이 가상 통화를 이용하면 서로 다른 나라의 소득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서 생활수준을 직접 비교한는 것이 가능하다.
각 나라의 소득을 국제 달러로 환산해 보면 잘사는 나라의 소득은 시장 환율로 계산한 소득보다 더 낮아지는 반면에 가난한 나라의 소득은 더 높아진다.우리가 소비하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서비스이고, 잘사는 나라에서는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한편 시장 환율로 계산한 소득과 구매력 평가지수 기준 소득에 별 차이가 없는 나라도 있었다.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7년에 시장 환율로 표시한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6040달러이지만 구매력 평가지수로 표시한 소득은 4만 5850달러 내외였다.
독일은 시장 환율 소득은 3만 8860달러이지만 구매력 평가지수 소득은 3만 3820달러여서 15% 차이를 보였다.사실 두 수치는 이렇게 맞대어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긴 하다.덴마크의 경우는 5만 4910달러 대 3만 6740달러로 거의 50%나 차이가 났다.반면 2007년 중국의 소득은 2360달러에서 5370달러로 두 배 이상, 인도는 950달러에서 2740달러로 세 배 이상 뛰는 양상을 보였다.
각 나라의 환율 기준 소득을 가상의 국제 달러로 계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우선 이 계산법을 사용하려면 나라맏 똑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는 가정이 따르는데,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이런 이유 때문에 구매력 평가지수에 따른 소득 기준을 계산하는 방법과 데이터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진다.세계은행에서 2007년에 구매력 평가지수 소득을 측정하는 방법을 변경하자 중국의 1인당 구매력 평가지수 소득은 하룻밤 사이에 7740달러에서 5370달러로 44% 떨어졌으며, 싱가포르는 3만 1710달러에서 4만 8520달러로 53% 올라갔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제 달러로 표시된 소득은 시장 환율 소득보다 한 나라의 생활수준을 짐작하는 데 더 나은 지표가 된다.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의 소득을 국제 달러로 계산하면 미국은 다시 거의 정상 자리를 탈환한다.계산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모든 측정에서 미국보다 늘 더 높은 소득 수준을 보이는 나라는 룩셈부르크밖에 없다.따라서 인구가 50만도 채 되지 않는 도시국가 룩셈부르크를 제외하고 나면, 미국인이야말로 자신의 평균 소득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정도면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결론지어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몇 가지 더 고려해 봐야 할 점들이 있다.
<.....정말 그럴까?>
우선 다른 나라보다 평균 소득이 높다는 것이 모든 미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잘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이것은 소득 분배가 얼마나 균등한가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문제이다.어느 나라에서도 평균 소득을 가지고 그 나라 국민이 어떻게 사는지를 정확하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소득 분배가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평균 소득으로 그 나라 국민의 삶을 짐작하기가 더 어려워진다.선진국 중 소득 분배 불평등이 월등히 심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으로 짐작한 평균 생활수준 이하로 사는 미국 사람들의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다른 지표들도 간접적으로 이 추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균 소득을 기록한 나라임에도 평균 수명과 유아 사망률 같은 보건 지수는 세계 30ㅜ이에 불과하다.(물론 미국의 비효율적인 의료 시스템 때문에 이 문제가 더심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거기까지 들어가지는 말자.) 1인당 평균으로 보았을 때 미국의 교도소 재소자 수는 유럽의 8배,일본의 12배나 될 정도로 범죄율이 높아 최빈곤층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구매력 평가지수 소득이 시장 환율 소득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나라의 높은 생활수준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방증이다.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앞에서도 살펴봤지만 잘사는 나라일수록 구매력 평가지수 소득이 시장 환율 소득보다 낮거나, 나라에 따라서 엄청나게 낮게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선진국일수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기 때문이다.그러나 미국은 이 두 지표 간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서비스 임금이 싸기 때문이다.이 나라에서는 값싼 노동력이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민이라는 형태로 계속 유입된다.이들 중 많은 수가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임금은 한층 더 싸진다.미국인 노동자라 하더라도 직업 안정성이 낮고 복지 수당 등 사회적 지원이 약하기 때문에 비슷한 소득 수준의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기댈 데가 별로 없다.따라서 미국노동자들, 특히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지 않은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미국 노동자들은 유럽에 비해 낮은 임금과 열약한 근무 조건을 참아 내야 한다.바로 이 때문에 미국에서 택시를 타거나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것이 다른 부자 나라에 비해 훨씬 싼 것이다.고객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택시 기사나 웨이트리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정리하자면 미국 평균 소득의 구매력이 높은 것은 많은 수의 미국 시민들이 낮은 임금과 열약한 근무 조건을 견뎌 내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나라 사이의 생활수준을 비교할 때 노동 시간의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누군가 나보다 50% 돈을 더 많이 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일하는 시간이 내 두 배라면 생활수준이 나보다 더 높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미국의 경우가 그렇다.미국인들은 일벌레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장 환율 기준으로 2007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 되는 나라(3만 달러에 약간 못 미쳐 이 그룹 종 가장 소득이 적은 그리스까지 포함하여)의 국민들 중 가장 일을 많이 했다.미국인들은 대부분의 유럽인들보다 10% 더 오래 일을 하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인들에 비하면 일하며 보내는 시간이 무려 30%나 더 길다.아이슬란드의 경제학자 토르발뒤르 길파손(Thorvaldur Gylfason)이 2005년 기준 노동 시간당 구매력 평가지수 소득을 산출한 결과를 보면 미국은 겨우 8위에 불과했다.1위를 한 룩셈부르크의 뒤를 이어 노르웨이, 프랑스(맞다,만날 빈둥거리는 인상을 주는 프랑스가 3위다.), 아일랜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가 미국보다 앞선 나라들이고, 독일이 근소한 차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다시 말해서 같은 시간을 일했을 경우 미국인들은 경쟁국 국민들과 같은 생활수준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그들은 떨어지는 생산성을 긴 노동 시간으로 보충하고 있는 셈이다.
돈을 더 벌고 싶어서 일을 더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일주일 더 휴가를 가는 대신 그 시간에 일해서 번 돈으로 TV 한 대 더 사고 싶으면 일을 더 할 수도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 아니다.누구도 남에게 자기의 가치관을 강요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긴 시간을 일하는 것이 옳은지는 짚고 넘어갈 만하다.소득 수준이 낮을 때에는 좀 더 길게 일을 해서라도 돈을 더 벌면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아주 가난할 때에는 공장에서 일을 더 오래 하더라도 돈을 좀 더 벌면 전반적인 삶의 질이 개선된다.더 질 좋은 음식을 먹고, 난방이나 위생, 의료비 등에 돈을 더 쓸 수 있어서 건강 상태가 좋아지며, 가전제품들을 사고, 수도나 가스, 전기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어서 가사 노동에 들어가는 수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소득 수준이 일정액을 넘어서고 나면 여가 시잔에 대한 물질적 소비의 상대적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여가 시간을 줄여 가며 돈을 더 벌기 위해 긴 시간 일하는 것은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긴 시간 일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그들이 원해서 하는 일인가 하는 점이다.사실은 휴가를 더 길게 보내고 싶은데도 어쩔 수 없이 긴 시간을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앞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사람이 얼마나 긴 시간 일하느냐는 각자 노동과 여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보장 제도라든지 노동자 권리 보호, 노동조합의 영향력 등으로 결정되기도 한다.개인은 이런 조건들을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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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성장의 비극?> - thing11
아프리카 성장의 비극에 대해 설명하고 그 비극을 헤쳐 나갈 방법을 모색하기 전에 먼저 묻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다.아프리카의 성장비극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이 지역이 보이고 있는 저조한 성장률은 결코 만성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의 1인당 소득 성장률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1.6% 정도였으니 같은 기간 5~6%를 기록한 동아시아의 기적에는 훨씬 못 미치고, 3%를 올린 라틴 아메리카보다도 못한 성장률이지만 그렇다고 코웃음이나 치고 무시해 버릴 정도의 수치는 아니다.오늘날 부자가 된 나라들이 산업 혁명기를 거칠 때 기록했던 성장률 1~1.5%보다는 나은 수치이기 때문이다.(대략 1820년에서 1913년 사이)
아프리카가 1980년대 이전에는 괜찮은 성장률을 보였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겪고 있는 비교적 최근의 정체가 '구조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는 방증이다.아프리카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성장을 못하는 것이라면 역사적으로 한 번도 성장한 적이 없어야 한다.아프리카가 최근 들어 갑자기 적도 근처로 옮겨 갔다든지, 돌연한 지진 활동으로 몇 나라가 내륙 국가로 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구조적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속화되어야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구조적 장애 요인의 일부는 영향력이 약해지거나 아예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식민통치국이 남긴 열약한 제도는 없애거나 수정할 수 있고, 다양한 민족구성의 악영향도 1976년 미국 역사학자 유진 베버의 고전[농민을 프랑스 시민으로(Peasants into Frechmem)]에서 나온 예처럼 의무 교육, 징집, 대중 매체 등을 통한 교육과 계몽으로 많이 약화시킬 수 있다.그러나 일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 아프리카는 1980년 이후 갑자기 성장을 멈추었다.
따라서 구조적 문제는 늘 있는 것이었고, 그나마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영향력이 줄어들면 들었지 더 심화되지는 않았을 터이므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잘 성장하고 있던 아프리카 경제가 1980년대에와서 갑자기 성장을 멈춘 현상은 이 구조적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이와 관련하여 가장 혐의가 짙은 것은 당시 진행되었던 정책 방향의 극적인 변화였다.
1979년 세네갈을 필두로 해서 1970년대 말무터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은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그 기관들을 조정하는 배후의 부자 나라들이 제시한 구조 조정 프로그램(SAPs,Structural Adjustment Programs)의 조건으로 따라 온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이 정책들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 정책들로 인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제품들이 국제 경쟁 무대에 갑자기 노출되었고, 그나마 60년대와 70년대에 가까스로 성장시켜 놓은 일부 제조업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다시 코코아, 커피, 동과 같은 1차 산품의 수출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아프리카 나라들은 이런 산품들을 특징짓는 극심한 국제 가격 변동과 정체된 생산 기술에 계속 고통을 겪어야 했다.여기에 더해 구조 조정 프로그램에서 수출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자 아프리카 각국은 모두 비슷한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보유한 기술로 생산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그것이 코코아, 커피 같은 전통 생산물이 되었든 화훼류 수출이 되었든 갑자기 많은 나라가 동시에 같은 제품을 공급하면서, 늘어나는 공급량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잦아졌다.심지어 수출량은 늘어도 총수입은 주는 사태까지 생겼다.예산 적자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아 줄어든 정부 지출의 영향은 금방 나타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취약한 사회 간접 자본 등으로 그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의 '지리적 약점'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구조 조정 프로그램과 그 뒤를 이은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같은 빈곤 감축 전략 계획(PRSPs, Proverty Reduction Stategy Papers)과 같은 다른 프로그램들을 시행한 결과 아프리카 경제는 30년 동안 성장을 하지 않는(1인당 국민소득 기준) 정체기를 맞았다.1980년대와 1990년대에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해마다 0.7% 정도씩 떨어졌다.2000년대가 되면서 비로소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지난 20년 동안의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1980년과 2009년 사이 1인당 국민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0.2%에 불과하다.결국 '더 좋다'는 정책, 즉 자유 시장 정책을 30년 동안 시행한 후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른바 구조적 요인들이라는 말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자기들이 선호하는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자 아프리카의 정체, 혹은 후퇴(이제는 끝이 났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1차 산품에 대한 수요 증대에 힘입어 성장률이 올라간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후퇴한 것이나 다름없다)에 대한 다른 설명을 찾아야만 했다.자신들이 내놓은 그토록 '올바른' 정책 자체가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1980년대 초 성장이 자취를 감춘 이후에야 아프리카의 미미한 경제 성적이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지리적 요건과 역사적 배경을 바꿀 수 있을까?>
이 구조적 문제들이 자유 시장 경제 정책이 망신당하는 것을 면하기 위해 지적된 문제라는 점을 설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점들이 완전히 상관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특정한 구조적 변수가 경제 실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밝힌 이론들 중에는 일리 있는 것들이 많다.기후가 좋지 않으면 경제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가난하고 분쟁이 심한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수출 기회도 줄어들고 이웃 나라의 분쟁이 국경을 넘어 자국에까지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아진다.민족적 다양성이나 풍부한 천연자원도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다.그러나 이런 결과들은 피할 수 없는 것들이 결코 아니다.
우선 이 구조적인 요인들은 다양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예를 들어 풍부한 지하자원은 정치를 왜곡시킬 수도 있지만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그렇지 않다면 애초부터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의 경제적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을 이상한 일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천연자원은 가난한 나라들이 발달된 기술을 살 수 있는 외환을 얻게 해준다.천연자원을 가진 것이 저주라고 말하는 것은 부잣집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버릇이 나빠져서 인생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어떤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되겠지만, 또 다른 많은 아이들은 물려받은 재산을 이용해 부모보다 더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어떤 요인이 구조적이라는 것, 즉 그것이 자연이나 역사에 의해 주어진 요인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미리 정채진 것은 아니다.
이런 구조적 장애 요인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선진국들 대부분이 비슷한 조건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먼저 기후 조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열대성 기후는 말라리아와 같은 열대병 때문에 의료 부담을 늘려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이는 큰 문제이지만 극복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오늘날의 부자 나라들 중 많은 수가 말라리아를 비롯한 열대병을 가지고 있었다.적어도 여름만이라도 말이다.적도 한가운데에 있는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 미국 남부, 한국, 일본 등이 그 예이다.이 지역에서는 이제 열대병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경제가 발전한 덕에 위생 상태를 개선해서 발병률 자체를 낮췄을 뿐 아니라 의료 시설도 좋아졌기 때문이다.이에 더해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는 북극 극지 기후권에 있는 선진국들을 보면 이 기후 이론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더 절감하게 된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미국 일부 등은 기계가 얼어서 멈추고, 연료비가 폭등을 하고, 눈과 얼음으로 교통이 마비되는 등 열대 기후만큼이나 경제적 부담을 주는 극지 기후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추운 기후가 더운 기후보다 경제 발전에 더 좋다고 믿을 만한 선험적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추운 기후는 더 이상 이 나라들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추운 기후로 인한 장애를 극복할 돈과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같은 논리를 싱가포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의 저성장이 기후 탓이라고 하는 것은 저성장의 원인과 증상을 혼동하는 것이다.나쁜 기후가 저성장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저성장의 결과로 나쁜 기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리적 조건을 지적하면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내륙 국가라는 점을 거론한다.그렇다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발전했다는 말인가? 두 나라 모두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임과 동시에 내륙국가이다.혹자는 이 나라들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을 통한 운송 조건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잠재적으로 비슷한 조건을 가진 나라는 아프리카에도 많다.브르키나파소에는 볼타 강이 있으며 말리나 니제르에는 니제르 강이 있다.짐바브웨에는 림포포 강이 있고 잠비아에는 잠베지 강이 있다.문제는 강을 이용한 내륙 수운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의 부족이지 지리적 조건이 아니다.
사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19세기 말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겨울철만 되면 바다가 얼어붙어 1년의 절반은 내륙 국가나 다름없는 조건을 견뎌야 했다.이웃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도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그러나 이 또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최근 인도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라.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남아시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주변 국가들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보다 더 가난하고, 파키스탄과의 군사적 충돌, 인도 내 모택동주의를 추종하는 낙살라이트 게릴라단의 무장 투쟁, 스리랑카의 타밀 족과 싱할라 족 간의 내전 등 이 지역에는 긴 역사를 가진 분쟁도 많다.
많은 사람이 자원의 저주를 이야기한다.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을 제외하면 나머지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나라들이 경제 발전을 한 건은 풍부한 천연자원이 축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사실 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은 천연자원이 대단히 풍부한 편도 아니다.지금가지 주목할 정도의 광물 매장량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진 나라는 십여 개도 채 되지 않는다.많은 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상대적인 의미에서 천연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계, 사회 간접 자본, 숙련 노동자 등의 인공적 자원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실제로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한 곳은 북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 스칸디나비아 등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어서, 결국 자원의 저주라는 개념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민족적 구성이 너무 다양한 것도 여러 면에서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그러나 그 영향을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민족적 다양성은 다른 지역에도 흔히 존재한다.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차치하고라도, 현재 선진국이 된 유럽의 여러 나라도 언어, 종교, 이데올로기적 분열, 그것도 무력 충돌로 이어지기 가장 쉽다는 엇비슷한 중간 정도 크기의 그룹들로 나뉘어 갈등해서 골머리를 앓았다.벨기에도 두 개(아주 작은 독일어권까지 포함하면 세 개)의 인종 그룹이 있고, 스위스는 네 개의 언어와 두 개의 종교로 나뉘어 있으며, 특히 종교 문제로 인한 내전을 몇 번이나 겪었다.스페인은 심지어 카탈로니아 족과 바스크 족(이들은 독립 운동을 하면서 테러까지 자행한다.)이라는 소수 인종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다.스웨덴은 1249 ~ 1809년까지 560년에 걸쳐 핀란드를 점령한 결과(1809년 핀란드는 러시아로 넘어갔다.) 전체 인구의 5% 정도에 해당하는 핀란드 인들이 자국에 살고 있고, 핀란드에도 비슷한 규모의 스웨덴 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비슷한 예는 수없이 많다.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큰 혜택을 봤다는 동아시아 국가들도 심각한 내부 갈등을 안고 있다.타이완은 모든 국민이 '중국인'이라 인종 문제 같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본토인들과 타이완 원주민이라는 두 개의 그룹, 더 자세히 나누면 네 개의 언어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상당히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도 한국인, 오키나와 인, 아이누 인, 브라쿠민 등 소수 민족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 내 모국인 한국은 민족적, 언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동질적인 나라 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서로 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남서 지역과 남동 지역 사람들은 반목이 너무 심해서 '타지역'출신과는 자녀의 결혼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이다.재미있는 것은 한국만큼이나 인종적, 언어적으로 동질성이 높은 나라가 르완다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후투 족이 이전에 르완다를 지배했던 투치 족을 말살하기 위해 인종 청소를 한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민족'이라는 것이 자연 발생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예이다.정리하자면 부자 나라들이 다민족 문제로 고통받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단일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국민 통합에 성공했기 때문이다.사실 이 과정이 그렇게 순탄하지도 않았고 때로는 폭력까지 수반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들은 또 낙후된 제도가 아프리카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현재 아프리카 수준의 물질적 발전단계를 거칠 당시에는 지금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제도보다 훨씬 더 열약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선진국들은 꾸준히 성장해서 결국 높은 수준의 발달 단계에 도달했다. 이 제도들은 대부분 경제 성장이 일어난 후, 아니면 적어도 경제 성장 과정과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다.이 말은 양질의 제도는 경제성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성장의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따라서 낙후된 제도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성장 실패 요인으로 거론될 수가 없다.
아프리카의 '나쁜' 문화 또한 늘 입방아에 오른다.그러나 이전에 펴낸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9장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에서 밝혔듯이 오늘날의 선진국들도 과거에는 아프리카 못지않은 '나쁜'문화가 있었다.20세기 초반까지도 일본을 방문한 미국인들과 호주인들은 일본인들이 게으르다고 말했다.19세기 중반까지도 영국인들은 독일인을 가리켜 너무 바보 같고 개인주의적이며 감정적이어서 독일계 나라들은(독일은 그 당시 수십 개의 작은 나라로 나누어져 있었다.) 경제 발전을 하기는 그렀다고 말했다.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독일인들에 대한 이미지와는 정반대이고, 요즘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하는 말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일본과 독일의 문화는 경제 발전과 함께 크게 변했다.더 규범을 잘 따르고, 계산이 더 치밀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 잘 협력하지 않으면 고도로 조직적인 산업 사회에서 살아 남기 힘들기 때문이다.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화라는 것은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그게 아프리카가 되었던 유럽이 되었든 문화를 경제 저성장의 원인으로 거론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까지 아프리카를 비롯해 저개발 지역의 경제 개발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던 넘을 수 없는 장애 요인들이 사실은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고, 이미 극복된 적이 있는 것들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더 나은 기술과 뛰어난 조직력, 그리고 향상된 정치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 뛰어넘을 수 있는 문제들인 것이다.현재 부자가 된 나라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들로 고통을 겪었고, 어떤 경우에는 아직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들이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간접적 증거들이다.게다가 여전히 이 문제들이 존재했고, 때로 더 심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성장을 하고 있었다.아프리카가 최근 들어 성장 실패를 경험한 주된 이유는 정책, 즉 구조 조정프로그램이 강요한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에 있다.특정 자연 조건이나 역사적 배경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어느 나라가 겪는 문제가 정책 때문이라면 문제는 더욱 쉽게 해결할 수 있다.아프리카의 진정한 비극은 만성적 성장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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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 THING14
<경영자 보수와 계층 갈등의 정치학>
급여, 보너스, 연금, 스톡옵션을 포함해 미국 CEO들이 받는 평균 보수는 급여, 복리후생비를 합친 노동자들의 평균 보수보다 300 ~ 400배 정도 많다.이 점에 대해 크게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경영진들의 보수가 지나치게 높다고 자주 비판한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보수의 격차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CEO가 일반 직원보다 보수를 300배 더 받는 것은 그가 일반 직원에 비해 회사에 300배 보탬이 되기 때문이라는 논리에서이다.받는 보수만큼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시장의 힘에 밀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다.오바마 대통령처럼 경영자들의 보수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계층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포퓰리스트일 뿐이다.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이 생산성에 따른 보수 지급을 용납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논리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사소한 문제 하나만 무시하면 되고, 그 사소한 문제라는 게 바로 '사실에 근거한 자료'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효율적이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생산성에 걸맞은 높은 보수,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높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자기가 잘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지만 말이다.문제는 그들의 능력이 현재와 같은 보수 차이를 정당화할 만큼 뛰어난가 하는 것이다.
사실 경영자의 보수를 정확히 계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우선 경영자의 보수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 놓은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그리고 보수에 급여뿐 아니라 회사에서 받는 모든 혜택을 포함하려면 스톡옵션까지도 넣어야 하는데, 미래에 일정한 양의 기업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이 스톡옵션의 가치는 지금은 정확히 산정할 수 없으므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문제는 추정 방법에 따라 수치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난점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미국 CEO들과 노동자들의 평균 보수를 비교해 보면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30~40 대 1 정도였다. 이 비율은 1980년대 초반부터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해 1990년대 초반에는 100 대 1, 2000년대에는 300 ~ 400 대 1 수준에 달했다.
이것과 미국 노도앚들의 보수 변화를 비교해 보자. 워싱턴에 본부를 둔 중도 좌파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2007년 달러화 가치를 기준으로 한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973년 18.90달러에서 2006년 21.34달러로 상승했다. 33년 사이에 13% 올랐으니 1년에 약 0.4% 늘어난 셈이다.임극과 복리후생비를 합한 전체 보수를 기준으로 하면 상황은 더 좋지 않다.경기침체기에는 노동자들의 보수가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해서 경제 회복기만을 살펴보았는데도 1983 ~ 1989년 사이 노동자 보수의 중년값은 매년 0.2%의 비율로 증가했고, 1992 ~ 2000년 사이에는 0.1%, 2002 ~ 2007년 기간에는 그나마 거의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미국 노동자들의 보수는 1970년 대 이후 실질적으로 거의 오르지 않았다.물론 그 기간 동안 미국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개별 보수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가구당 수입은 높아졌다.그러나 이거슨 점점 더 많은 가정이 맞벌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논리, 즉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생산성에 따라 응당의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충실하자면 CEO 대 노동자의 보수가 30 ~ 40배에서 300 ~ 400배가 되었다는 말은 미국의 CEO들이 1960 ~ 1970년대에 비해 10배나 더 효율적이 되었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좋은 교육과 훈련 덕분에 미국 경영자들의 자질이 전반적으로 좋아졌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과연 한 세대 전 경영자들에 비해 자질이 10배나 좋아졌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내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난 20년만 돌아봐도 그렇다.지금 미국에서 오는 학생들이 1990년대 초에 내가 처음 가르쳤던 미국 학생들에 비해 3~4배 더 뛰어난가? 자질이 더 나아졌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CEO들의 보수가 올랐다면 미래의 CEO감인 이 학생들의 자질은 저거도 3~4배는 좋아졌어야 말이 된다.1990년대 초 노동자 평균 보수의 100배였던 미국 CEO의 보수가 이 기간 사이에 300 내지 400배로 뛰었기 때문이다.
이 보수 차이의 변화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는 최근 들어 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CEO의 역활도 더 커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코넬 대학의 로버트 H.프랭크 교수는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100억 달러의 이익을 남기는 기업이라면 유능한 CEO의 좋은 판단으로 3000만 달러 정도 더 남기는 건 쉬운 일이라고 설명을 했고, 이 칼럼은 CEO의 급여 문제에 논란이 있을 때 많이 인용되는 글이 되었다. 까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3000만 달러를 더 벌어 준 CEO에게 500만 달러를 더 주는 게 문제가 되겠냐는 암시가 깔려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그러나 기업 규모가 커진 것이 CEO의 보수가 오른 주된 이유라면 미국 기업들의 규모는 꾸준히 커지고 있었는데 왜 CEO의 급여는 1980년대에 와서아 갑자기 인상되기 시작했을까?
게다가 같은 논리를 노동자에게도 어느 정도는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현대 기업은 분업과 협력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때문에 돌아간다.따라서 CEO만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대한히 잘못된 것이다.기업 규모가 커짐에 따라 노동자가 기업에 이익을 주거나 손해를 끼칠 여지도 커지는데, 우수한 직원을 채용하는 일이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그렇지 않다면 왜 기업마다 인사관리부서를 두고 많은 투자를 하겠는가?
또 최고 경영진의 결정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CEO의 보수가 올라야 했다면 이들보다 훨씬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 비슷한 규모의 기업을 경영하는 일본이나 유럽의 CEO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경제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다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스위스와 독일의 CEO들은 미국 CEO에 비해 각각 64%, 55% 수준의 보수를 받았다. 스웨덴은 44%, 네덜란드는 40%에 만족했고, 일본 CEO들은 미국 CEO들이 받는 보수의 25%밖에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미국을 제외한 13개 선진국 기업의 CEO들이 받는 보수평균은 미국 기업 CEO 보수 평균의 4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숫자들도 국가별 CEO의 보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미국 CEO들이 다른 나라 CEO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톱옵션을 훨씬 많이 받는데 그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경제정책연구소의 다른 데이터에 따르면 정확히 계산하기는 힘들지만 미국 CEO의 보수에 스톱옵션을 포함시키면 보수 총액은 보통 3~4배, 많게는 5~6배로 뛴다고 한다.결국 미국 CEO의 보수에 스톡옵션을 포함하면, 스톡옵션을 받더라도 많이 받지 않는 일본 CEO의 보수는 미국 CEO의 보수에 25%가 아니라 5%가 된다.
그런데 미국 CEO들이 해외 CEO들보다 두 배(스위스 CEO와 비교, 스톡옵션 제외)에서 스무 배(일본 CEO와 비교,스톡옵션 포함)까지 더 가치가 높은 사람들이라면 왜 많은 산업 부문에서 미국 기업들이 일본이나 유럽의 경쟁사들에 뒤지는 것일까?
일본과 유럽 CEO보수의 절대액이 낮은 것은 그 나라의 일반적인 급여 수준이 미국보다 낮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그러나 일본과 유럽 국가들의 급여 수준은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경제정책연구소가 조사한 2005년 13개국의 노동자 급여 평균은 미국의 85%였다. 그중 일본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91%를 받는 받면에 일본 CEO들은 스톡옵션을 제외하고도 미국 CEO 보수의 25%밖에 받지 않는다.스위스와 독일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보다 보수가 오히려 더 높아서 각각 미국 노동자 평균 보수의 130%와 106%를 받는 반면에 CEO보수는 미국이 55%DHK 64%에 지나지 않았다.더욱이 이 수치는 미국 CEO들이 훨씬 많이 받는 스톡옵션을 제외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 경영자들은 너무 비싸다.미국 노동자들은 경쟁국에 비해 15%밖에 더 받지 않는 반면에 CEO들은 적제는 두 배(스위스와 비교,스톡옵션 제외)에서 많게는 스무 배(일본과 비교, 스톡옵션 포함)를 받는다.그럼에도 미국 기업들의 실적은 일본과 유럽 경쟁사드로가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