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월12~21일, 뉴한산 데블스타워 원정 일기(4)

[산san]

8월 17일, 여섯째 날. 어렵다 쉽다 하는 것은 상대적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박승찬 대원 가족과 프레즈노 이문석 권오석 등 총 5명이 Grand Teton 답사를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느라 부산했다. 캠프에 남은 6명은 며칠을 함께한 Grand Teton 답사 팀들과

석별의정을 나누고 막 타워로 출발하려는데 환주가 오늘 손가락이 아파 등반 불가를 말한다. 모두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손가락 밑이 많이 까여 있었다. 크랙 클라이밍이 처음이라 손발 쨈밍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하는 곳에서  Face Climbing을 하듯 손가락을 많이 사용하였던 것이다. 열 손가락 모두를  테이핑을 하고

일단은 스타트 지점까지는 함께 가기로 했다. 9시경이 되어서야 타워 파킹장에 도착했다. 그저께 두란스

루트에서 일몰에 쫓겨 정상을 못가고 내려 와야만 했던 등반대는 오늘은 무조건 정상 등정을 하려 타워에서

그 중 낮은 등급의 Tad Route (5.7)를 선택했다. 타드 루트는 두란스 스타트 지점에서 우측으로 100여

미터 이어지는 Meadow 릿지가 끝나는 테라스에 좌측으로 부터 Soler(5.9), Tad(5.7), ElCrako Diablo(5.8)

등의 3개의 코스가 나란히 있는 정 가운데에 있다. 타드는 이 세 개의 루트 중에 가장 등급이 낮아 두란스를

올랐던 우리는 오늘은 큰 부담 없이 정상에 오를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를 갖고

10시 20분경 조 대장이 타드 암등을 스타트 했다. 그때 홀연히 정복 차림의 한 레인저가 찾아 왔다.

이 초면의 레인저는 자신을 데블스타워의 클라이밍 레인저 총 3명 중의 한 명이며 안전 순찰 중 이라며

자신을 ‘아이크’라 소개했다. 그러며 자신은 대학시절 한국인과 룸메이트를 하였고, 그런 인연으로 동양에

대하여 많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단다. 그리곤 제2의 전공으로 중국어를 공부하였다며 우리에게 많은

친근감을 나타냈다. 이후부터는 환주와는 유창한 중국어로 회화를 나누었다. 아이크는 이틀 전에는

두란스에 한 그룹의 일본 팀이 등반을 했었다 하여 우리가 바로 그 팀이라 얘기해 주었다. 두런두런 덕담을

나누다 아이크는 현지 레인저 겸 같은 클라이머로써 오늘 우리가 등반 할 타드 루트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할 결정적인 정보를 말하여 주었다. 우리가 등반 할 타드 루트는 작년에 중간 빌레이 지점에 끼어 있던

받침돌이 떨어져 나가 헹잉 빌레이를 해야 하며, 또한 고정 볼트가 없어 등반자가 빌레이 스테이션을

스스로 가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 할 것이라 했다. 또한 타드는 상단 끝 부분이 넓게 벌어져 밸런스

잡기가 까칠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바로 옆의 디아블로 루트는 두 곳에 확실한 빌레이 포인트가

있고 고정 볼트도 있어 오히려 타드 보다 훨씬 등반하기가 편고 안전 할 뿐더러 실질적으로 등급의 차이도

별로 없다하였다. 그리고는 우측의 ElCrako Diablo(5.8) 코스를 간접적으로 강력히 권했다.

잠시 고민에 빠진 우리는 그래 봤자 5.7 등급이고 겅스에서 중간 빌레이 스테이션을 충분히 많이 가설 해

왔던 경험이 있어 아이크의 조언을 간과하고는 타드 루트로 계속 등반을 결정 했다. 아이크는 웃으며

잠시 후 Good Luck! 하고는 자리를 떴다.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 30 여 분 후 조 대장은 장비가 부족

할 것 같다며 장비 회수를 부탁하여 한 회장이 장비를 일부 회수해 건네주고는 내려왔다.

11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조 대장은 순조롭게 등반을 계속 하여 12시30분 경에는 우리가 추측하는

40여 미터 위 중간 빌레이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슬며시 두 가지 면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첫째 이렇게 중간 빌레이 지점을 건너뛰면 장비가 모자랄 수도 있고, 둘째 지금 사용 중인 70미터 자일로

직등을 하면 끝 부분에서 모자라지 않을까? 염려 되었다. 그러나 등반은 계속 되었다. 오후 1시20분,

2^nd 피치를 끝내려면 아직10~15 여 미터를 더 올라야 했다. 이때 우리의 기우가 현실이 됐다.

조 대장은 레인저 아이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넓게 벌어진 상단 크랙에 더 이상 확보 할 장비를 이미

다 써 버렸다. 조 대장은 하산을 하겠다며 특별 주의와 텐션을 부탁한다. 이제는 안전 하강이 급선무다.

조 대장은 Climbing down을 선택했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안전 등반을 우선하여 장비를

버리더라도 현수 하강을 권했다. 결국 20 여 미터 Climbing down을 하던 조 대장은 우리가 추측했던

빌레이 포인트에서 두개의 캠을 박아 놓고 현수 하강을 하였다. 오후 2시가 지났다.

조 대장의 손과 발은70도 경사 암장에서 왕복 120 여 미터를 4시간 동안 쨈밍으로 매 달려 버티면서

엉망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암벽 등반 역사에 처음으로 Back을 하였다며 큰 아쉬움을 토로 한다.

겅스에서 5.10을 선등하는 본인으로서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이다. 겅스의 침전층 Face Climbing과

서부의 화강암 Crack Climbing의 구분은 엄연했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우리를 찾아 왔던 데블스타워

토박이 레인저 아이크는 우리가 등반 신고한 코스를 보고 혹시나 짐짓 이러한 결과를 예측하여 에들러

얘기하여 주었던 것 아닌가 싶었다.

그나저나 믿었던 1 톱마저 기진맥진 손발이 터지고 쬬여 거의 마비 상태에 빠져 버렸으니, 어쩔 것인가?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8월 18일, 일곱째 날.  배수의 진(背水之陣)을 쳤다.

                                                                                                   – 계속 –  

[풍산]

자세한 등반일지 감사합니다. 예전에 등반 갔다오면, 등반일지 써내라고 선배들이 닥달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을 수 없었어요. 바쁘신 와중에서 등반일지 디텔일 하게 써주시니, 역시 모범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