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출연: 크레이그 셰퍼(노만), 톰 스커릿(아버지), 브레드 피트(폴).
강물의 무수한 파문
강물이 반짝이는 것은 파문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바람이 없다면 강물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흘러가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움직임이 없다면 그것은 죽어 있기 때문이다. 강물은 그래서 빛난다. 살아 있기에 빛나는 것이다. 그 안에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기에.
흐르는 강물처럼은 강물처럼 조용한 영화다. 그 안에 무수한 파문과 움직임을 안고 있으면서 못내 고요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조용한 영화다. 하긴 조용하지 않은 강물이 어디 있으랴.
각기 다른 길을 가는 두 아들, 체제에 순응하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큰아들 노만과 권위에 반항하는 둘째 아들 폴, 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 줄기를 이룬다. 큰 아들 노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어렵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내고 작은 아들 폴은 싫어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그 성격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한다.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리버런드 맥클레인)는 신앙을 중요시하지만 그 시절 프로테스탄트들은 다 그랬다. 그들은 엄격하게 자신을 다스렸고 생활을 다스렸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혹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했고 다른 방법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기독교의 근본 원리는 기존 체제에 대한 철저한 순응이 아니겠는가. 깊이 들어가지 말기로 하자. 우리에게 들어온 개신교의 교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 교리는 아니다. 그들이 섬겼던 교리, 영화에 나오는 시절 프로테스탄트의 교리가 그랬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른 노만은 집을 떠나 고생한 끝에 작가가 되고 교수가 된다. 폴은 여전히 집에 살지만 자유분방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산다. 신문기자가 되고 인생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면서 어쭙잖은 권력의 맛을 보며 도박을 즐긴다. 도박, 그는 스릴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일면을 가지고 있다. 생을 최고로 긴장하게 하는 때, 자신을 무언가 하나에 골몰하게 하는 때,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잊고 빨려든다.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때야말로 살아 있음을 누리는 최고의 한때인 것이다. 폴이 찾았던 것은 바로 그 모험이었다. 아니 도박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플라이 낚시를 즐겼던 것이다.
세 부자가.
낚시꾼들이 플라이 낚시를 무어라고 부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낚시하는 그 느낌을 손맛이라고 표현했고 자신이 느끼는 감동과 물고기의 힘찬 저항, 줄이 팽팽해지는 순간들, 미묘한 힘 겨루기를 묘사했고 그 느낌 때문에 낚시를 한다고 고백했으며 나는 그 순간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 지 알아 차렸다. 생명이 생명에 맞서는 일, 또 다른 생명을 느끼는 일. 우리는 다른 생명과 맞설 때 희열을 느낀다. 최고도의 집중을 통해 내 생명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낀다. 그건 밤 새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그건 미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건 중독이었다.
세 부자는 그 플라이 낚시를 즐겼다. 폴의 도박은 그 연장선상이 아니었을까. 그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극대화하는 순간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 지나친 모험은 파멸을 부른다. 그는 죽는다. 도박하다가 시비에 휘말려 어이없을 정도로 허망하게 목숨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나는 잠깐 그가 생에 피곤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는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도박세계에 깊이 빨려들었던 것이다. 군인이었으며 목사였던 아버지가 그랬듯이 그도 어쩌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줄 몰랐던 것이다. 그늘은 집요했고 컸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그 아들은 깊은 아픔을 남기고 갔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모든 것은 인생에 섞인다. 강물에 섞인다.
생은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다. 강물처럼. 고요하지만 무수한 파문이 있기에 반짝이는 것이다.
죽음과 도박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지극히 잔잔하다. 생처럼. 강물처럼.
영화는 지극히 잔잔하다. 그럼에도 끝없는 파문을 던지고 조용히 빛난다. 오래도록.
우리는 강물에 낚싯줄을 던진다. 우리는, 그대는 무엇을 낚으려는가.
덧글: 번역하는 사람인 나는 영화 제목에 비상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원제는 A river runs through it. 이었고 포스터에 나온 제목은 Et au milieu coule une riviere 였다. 영어 제목은 '강은 그것을 통과해 흐른다' 였고 불어 제목은 '흘러가는 강물 가운데서' 였다. 그 제목을 '흐르는 강물처럼'이라고 옮겼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이처럼 적절하고 아름다운 번역이라니!
첫댓글 와~! 멋있다. 포스터가...^^ 이 영화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어요. '소리 나지 않는다고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뭐 이런 말도 있지요. 저도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언가에 미쳐 살도록 가르칠 겁니다. 또 보고 싶네요./ 헉 올리는 순간에 꽃순이님도 올리셨네. 1초 사이...^^ 안녕하세요!
포스터만 멋지다 이거지요? 흥! 논네!
어, 이제 희야님까지 자꾸만 논네, 논네 하시네. 그저 죽으면 늙어야 해. U~~~C.
브레드피트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영화속에서나 꿈꿔보죠. 월급 타서 도박으로 하룻밤에 날려보는ㅋㅋㅋ.플라이낚시!!! 은식이와 도전해보려구요. 저 포스터가 좋아 제 방에 걸어 놓았던 추억이있죠.고요하지만 무수한 파문이 있는 강물처럼,반짝이는 삶.참 좋습니다.
전 그 아들의 삶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그처럼 잔잔하게 표현했지만 격랑이 일고 있음이 환히 들여다보였으니까요. 모두 실제 인물임을 알고 있으니 더 가슴아팠지요.
오래 전 두 아들과 같이 본 영화입니다. 브레드 피트의 신인시절 로버트 레드포드와 너무 닮았었죠. 아들과 아버지가 같이 보면 좋을 영화..... 우리의 인생도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흘러오고 ..... 감명깊었던 영화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계속 파문을 일으키겠지요.
와~! 멋있다. 포스터가...^^ / 희야님이 뭐라고 하실라나.........ㅋㅋㅋ
진랑님도 논네!^^* ㅋㅋ.
흥! 코피 안 줘요~~~~
고기 잡으며 강가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히~
저두 두번 봤었는데 참 감동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