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철석같이...시안에 있던 조선 황실이... 일제에 의해 현 무안(한양)으로 강제 이주당해 대한제국을 연 것이다 생각했었는데...아닐뜻 싶습니다.
어짜피 정식 학설도 아닌 잡설였으니...과감하게 좀 수정해야 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세계의 땅덩어리들 중...가장 알짜배기 땅이 이 하북성과 산동성과...대련반도 같습니다.
황해의 풍보한 수산물과 소금...천진의 천해의 항만위치... 황하의 엄청난 수량과 이에따른 수로...이에따른 엄총난 경작지... 서북쪽 접경의 내몽골+몽골 전지역은...풍부한 방목지...
제가 세계의 천자라도...이 지역을 나라의 본거지로 만들려 할 겁니다.
문젠 은나라 시대 전후 빼고는...이 곳이 황도였단 정황이 없단 겁니다. 그저 역사서에만 이곳으로 넘겨 집으나...금나라나 고려 침입기 잠깐....몽골말기 잠깐(소문으로만)...후금인 청나라 말기 잠깐외엔... 이곳을 수도로 했던것 같질 않습니다.
아니...
엄청 중요한 장소였으나... 각 제국의 중심부가 아닌...흉로와 남중국의 경합 경계지역이라...주인이 수시로 바뀌던 지역이기에 황도가 되기 어려웠던 겁니다.
청나라(후금)가 조선의 후국였던 뭐였던...현 북경은 최후 잠간 동안은 청나라가 차지함이 분명하며... 서안(시안)은...상징적인 서쪽 황도의 역활만 한 걸 로 보입니다.
남경과 무한(한양)이 오히려 금과 몽골의 침입이훈...고려(송)의 황도역활을 하는 듯 하며...
이후 명(조선)대에 이르러도...그 역할은 여전했다가...남쪽 왜들과 양이들의 위협으로...무한(한양)과 난징(만경)위주의 활동이... 북으로이동한다 봅니다.
원래 북경(텐진)지역이 천부의 땅이나...북의 말갈과...동의 퉁구스 ...서북에서 진출한 청나라의등의 위협이 있어... 서한이나 북경이나 모두 위험하니...
기마대의 작전이 가장 어려운...산동반도나 하북성 남단의 황하 지류들이 실핏줄같이 엉킨... 거대한 평야 늪지대(논농사 지대)에 황도를 옮겼을 확률이 많아 보입니다.
북쪽의 금나라와 몽골,후금(청)의 위협때문에...고려부터 남징과 무한(한양)으로 남천한 건데... 남쪽의 왜와 그를 지원하는 양이들의 협공이 더 두려워...다시 북천하고... 역시 청과 토번의 위협이 끈이질 않는 서쪽 시안도 안전치 못해...그 중간인 한단에 자리를 잡았다 예상됩니다.
이 하북성 한단은...은나라 전후의 동이 유적지만 있고...그 성터만 남았다 너스레들을 떠나... 제 생각엔...이곳이 구한말의 한성같습니다...흔적는 언제고 없앨수 있었던 것이고여...
위성사진으로 한단을... 몇 일 자세히보니 보니...
이 한단이든...시안이든 양이들의 배로 침략하려면...산동성의 해협을 필히 통과해야 합니다. 구한말에 강화도의 진지들이란...이 산동반도와 대련반도가 만나는...해협일대 섬들일까 합니다...강화는 산동반도 겠지여... 혹,대련반도던지...
여기서 간과치 말아야 할 점이...인천의 위치인데... 천상... 인천의 역할을 했던게...현 천진이요...그 개항시의 여러 사건도 일치하니...천진을 구한말 때의 인천으로 보면...
시안성을 가기 위해 인천(천진)을 꼭 경유할 필요 없게 됩니다.
바로 산동반도 북단의 황하를 타면 됩니다.
그런데..구한말의 양이들은...반듣이 강화도를 거쳐...인천을 경유해...한성으로 들어 옵니다.
현 텐진에서...시안으로 가려면...엄청 낭비인 코스지여... 현 텐진에서여...조금 남쪽 해안으로만 내려오면...한단을 거쳐...황하와 만나게 됩니다... 지금이야 무안에서 북경으로 가는 철로가 잘 발달되어...이 수로의 중요성은...농업용으로만 격하되었기에... 각종 땜과 농업수로의 분산으로...대 수로는 없어진듯 하지만...
분명 텐진(원조 인천?)남쪽 연안에서 한단으로 들어가는 대 수로길이 있었을 것이며... 양이들이 한성을 치기 위해...천진(인천)을 들락거려야 했던 이유 같습니다.
강화도를 거쳐 황하를 거슬로 올라..시안으로 가는 중간에...정주에서 북으로 수로를 타는 코스가 전통적인 한단 공격코스였을 것이고여...
이 "한단"을 중심으로 하면...
서쪽이 정확히 ...시안(西安)인 이유가 증명되고... 정확히 남쪽의 남징이 ...남경(南京)인 이유가 증명되고... 베이찡이...정확히 북경(北京)인 이유가 증명됩니다.
동경은여..?...마땅히 황해바다에 만들수도 없었으니...상징적인 동궁(東宮)만 있었을 겁니다. 한단의 동쪽에...슬며시 동궁이란 지명도 있긴 있더군여...
아..북쪽엔.."".빈주"" 라는 지명도 있고요..
이 황하에서 한단을 거쳐...텐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로여... 제 생각엔...이게 "한탄강" 같습니다.
한단"이... 왜 "한탄"이 되냐 하실 필요들은 없습니다...이 "한단"지역의 또다른 표기가...한탄"이더군여... 한탄지역 강이니...당연히 "한탄강"이라 했겠지여...?
홍경래의 반란군이... 한주를 치려다 실패하고...정주성에서 몰살당하는 이윤... 이 정주성이...황하의 중간에...시안과 한단으로 가는 분기점을 지키는 요지이기 때문에... 이 "정주"를 승패를 분명케 하기위한 결전의 장소로 고수했던 거로 보입니다.
이 하북성 남단 한단이 구한말의 대한제국 황도였기에... 청의 황도인 북경과 긴밀하게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며...양이들도 천진에서 조선에 관한 회담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시대에...서울을 경성이라 했다지여...?
저는...북경이 원조 경성으로 봅니다... 천진 거치지 않곤 절대 못 가는 곳이니...이 천진이 역사에 나오는 인천항일까 합니다.
조선황실과...청왕실은...병자란 이훈 조선황실이 눌려... 두 조정은...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조선황실은...여차 싶으면 무한(한양)으로 남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구한말의 양키 연합군들의 공세와...왜인들의 약탈 때문에... 동병상련인 두 조선의 황실과 왕실이...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두 지역 조정이...하북성으로 집결한듯 합니다.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발버둥였다 봅니다.
이 두 몰락황조가...한반도로 이식되곤... 경성(북경)과 한성(한단성)...한양(무한)...을 한 자리로 몰은게.. 서울이 ..일제땐 경성이니...전엔 한성였느니...또 전엔 한양였느니 하는 말잔난질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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