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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장현종론 제5권
1)
근의 원어 indriya는 ‘Indra에 상응하는’ 혹은 ‘~속한’이라고 하는 뜻의 형용사로서, 명사로 쓰일 경우 인드라의 힘, 인드라의 영역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이하 논설처럼 근은 뛰어난 힘 즉 증상력(增上力,ādhipatya)의 뜻으로 해석된다.
2)
『구사론』에서는 제1구에 ‘전설’을 덧붙여[傳說五於四] 본송의 내용 전체에 대해 불신을 나타내고 있지만, 중현은 이를 삭제하였다.
3)
앞의 이유는 안근과 이근이 소의신을 이끄는 작용을, 뒤의 이유는 비ㆍ설ㆍ신근이 소의신을 기르는 작용을 설명한 것이다.
4)
여기서 생신(生身)을 수호함이란 험난한 곳을 피하여 몸을 보호하는 것을 말하며, 법신(法身)을 수호함이란 많이 들어 열반을 얻는 것을 말한다.
5)
반택가(구역은 故作黃門)는 남ㆍ여근을 갖지만 그 작용이 불완전한 성불구자. 이와 유사한 이로서는 남근이나 여근을 갖지 않은 선체(扇搋,ṣunḍha,혹은 無形人, 구역은 黃門), 남ㆍ여근을 동시에 갖은 이형인(二形人)이 있다. 즉 일반인들은 여ㆍ남근으로 말미암아 불율의 즉 악계(惡戒)를 수지(受持)하기도 하고, 선근을 끊고 무간업을 짓기도 하며, 또한 이와 반대로 율의를 수지하고, 성도에 들어 성자가 되기도 하며 이욕(離欲)하기도 하지만, 선체 등에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여ㆍ남근은 염오법과 청정법에 대해 증상력이 있다는 뜻.
6)
중동분(衆同分)이란 불상응행법의 하나로서, 예컨대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보편성을 말한다. 곧 명근은 중유(中有)의 중동분이 사유(死有)의 중동분을 상속하게 하고, 또한 능히 이후의 중동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7)
본권 ‘3계 초생(初生)시 처음으로 획득하는 이숙근의 수(數)’ 참조.
8)
『중아함경』 제24권 「대인경(大因經)」(대정장1,p.579하). 갈라람(kalalam)은 중유(中有)가 입태한 후 첫 7일간의 상태.
9)
낙 등의 5수근이란 낙(樂)ㆍ고(苦)ㆍ사(捨)ㆍ우(憂)ㆍ희(喜)의 5가지 감각적 기능을 말하며, 신(信) 등의 8근이란 일체의 청정법을 낳는 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5근과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구지근(俱知根)의 3무루근을 말한다.
10)
희근과 낙근은 탐수면(貪隨眠)의 소의가 되고, 우근과 고근은 진(瞋)수면, 사근은 치(癡)수면의 소의가 된다. 다시 말해 ‘탐’은 희근과 낙근에 따라 증장하고, ‘진’은 우근과 고근에 따라, ‘치’는 사근에 따라 증장한다.
11)
『중아함경』 제10권 『하의경(何義經)』(대정장1,p.485중)에 나온다. 즉 심신이 안락하면 마음도 삼매와 상응하여 정(定)을 획득하게 된다는 뜻.
12)
『증일아함경』제23권(대정장2,p.668중)에 나온다. ‘낙으로써 낙을 구할 수는 없고, 괴로움 이후에 도를 성취하게 된다’ 즉 생사의 괴로움을 혐오하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 열반의 대락(大樂)을 욕구하고 그것으로의 신(信)을 일으키기 때문에, 고(苦)는 신(信)의 소의가 된다.
13)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중아함경』 제42권 『분별육처경(分別六處經)』(대정장1,p.692하 이하)에서 언급되는 ‘여섯 가지 출리(出離)의 소의가 희(喜)와 우(憂)와 사(捨)이다’를 말한다.(『구사론』 제3권, 앞의 책,p.114) 여기서 여섯 가지 출리란 색 등 6경을 반연하여 일어나는 희ㆍ우ㆍ사를 말하는 것으로, 소연의 경계에 근거하여 여섯이라고 하였다. 즉 선심상응의 희ㆍ우ㆍ사가 색 등의 6경을 반연하여 애착을 낳지 않을 때 그것은 바로 생사 출리(出離)의 소의가 되는 것이다.
14)
세친은 이상의 내용을 다만 전하는 설[傳說]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이하 계속하여 근 작용에 대한 식견가(識見家)의 설로서 다음의 세 게송과 장행의 해석을 진술하고 있으며(『구사론』 제3권), 『순정리론』(제9권)에서는 그 내용과 이에 대한 세친의 해석을 비판하고 있지만, 본론에서는 모두 삭제하였다. 즉 이들은 식(識)이 경계대상을 요별하여야 비로소 험난한 곳을 피할 수 있고, 단식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능히 소의신을 이끌고 기르는 것[導養身]은 안근 등의 작용이 아니라 바로 식(識)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16)
여기서 견번뇌란 다섯 가지 염오견으로, 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계금취(戒禁取)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를 말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론 제25권 ‘5견’ 참조.
17)
열반은 무위법으로 근도 아니지만 비근도 아니라는 뜻.
18)
손은 집취(執取)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발은 보행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각기 ‘근’으로 설정한 것이지만, 손이 없는 자는 발로 잡기도 하며, 발이 없는 자는 손으로 기어가기도 한다는 뜻.
19)
『구사론』이나 『순정리론』에서는 이하 계속하여 22근을 유전(流轉,번뇌와 업의 전변)과 환멸(還滅,번뇌와 업의 소멸)의 근거로 해석한 다음과 같은 식견가의 이설을 전하고 있으나 본론에서는 이를 삭제해 버렸다.
20)
본론 제2권 ‘5근’참조.
21)
초정려에서는 심(尋)ㆍ사(伺)ㆍ희(喜)ㆍ낙(樂)ㆍ등지(等持)가 수반되는데, 이 때 낙은 안ㆍ이ㆍ신식과 구기한다. 왜냐하면 색계에는 비ㆍ설근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소의로 하는 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2)
즉 제3정려 중에는 신수가 존재하지 않으며 5식신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즐거움[心悅]’을 바로 낙근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23)
여기서 마음의 희탐(喜貪,pritī-rāga)이란 ‘희’에 미착(味著)하는 것. 즉 하 3지에서의 마음의 즐거움은 이러한 미착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정되지 못하고 거칠다.(후술)
24)
다시 말하면 제3정려지에서의 마음의 즐거움을 낙근이라 하고, 그 아래 세 지에서의 마음의 즐거움을 희근이라 한다.
25)
마음에 존재하는 괴로움이란 바로 우근을 말하며, 즐거움이란 희근을 말한다. 즉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은 선정이나 이숙에 의해 비롯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분별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대개’라고 하였다.
26)
몸에 존재하는 5식상응의 고락(苦樂)은 마음의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색 등의 대상의 힘에 의해서만 생겨나기 때문에 무분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학의 성자에게도 이러한 5식상응의 고락은 존재하는 것이다.
27)
여기서 무분별이란 계탁분별(計度分別)이 없는 것, 즉 무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28)
여기서 ‘처중’이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양자 부정[俱非]의 뜻으로, 여기서는 분별이나 경계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저절로 생겨난다는 뜻이다.
29)
앞의 아홉 가지 근 중 사근(捨根)은 무기성이므로 제외된다.
30)
이하 22근의 유ㆍ무루, 이숙ㆍ비이숙, 3성(性), 3계계(界繫), 3단(斷) 등에 대해 분별한다.
31)
구(垢,amala)는 번뇌의 뜻. 즉 무구란 더 이상 번뇌를 갖지 않는 상태.
32)
여기서 유색근이란 안ㆍ이ㆍ비ㆍ설ㆍ신근과 여ㆍ남근을 말한다.
33)
이는 『잡아함경』 26권(제651경)의 경설로, 신(信) 등의 5근은 원래 깨달음에 이르는 뛰어난 법이지만, 그것이 반대로 미혹의 원인임을 알지 못하였다면 무상각(無上覺,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어 천(天)과 인간의 세간을 능히 뛰어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뜻. 여기서 ‘집(samudaya)’은 생사를 초래하는 원인의 뜻이며, ‘몰(yavana)’은 침몰의 결과, ‘미(āsvāda)’는 미착(味著), 과환(ādīnava)은 번뇌 업을 낳는 것, 출리(niḥsaraṇa)는 미와 과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34)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33권(대정장3,p.806하). 즉 부처님께서 아직 법륜을 굴리지 않았을 때 이미 세간에 예리한 근(무루근)을 가진 자가 있었다면, 여래의 출세는 중복되어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만다.
35)
이는 22근의 이숙ㆍ비이숙 관계를 분별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방론으로, 명근의 이숙성과 유다수행(留多壽行,bahv-āyuḥ-saṃskārān-sthāpayati)에 관한 내용이다. 유다수행이란 자재를 획득한 아라한이 현재세에 목숨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즉 명근이 오로지 과거의 업에 의해 인기되는 이숙과라고 한다면 현재의 아라한들이 연장시키는 수명, 즉 유다수행의 명근은 누구의 목숨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부에서는 이하에서 논술하는 바와 같이 『발지론』에서의 논증에 따라 아라한의 유다수행도 역시 과거업의 이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친이나 경량부는, 아라한의 연장된 목숨은 뛰어난 선정의 힘에 의해, 일찍이 획득한 일이 없었던 제근(諸根) 대종(大種)의 지속력[住時勢分]을 인취(引取)하여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숙이 아니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논의가 제기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9권을 참고할 것)
36)
여기서 성언은 근본 아비달마인 『발지론』 제12권(한글대장경176,p.275). 완전한 인용은 이러하다. “아라한으로서 신통을 성취하고, 마음의 자재를 획득한 자가 만약 승중(僧衆)이나 혹은 각각의 사람들에 대해 옷이나 그릇, 혹은 각기 사문들의 목숨의 근거[命緣]가 되는 여러 도구를 보시하고, 보시하고 나서 발원하고, 바로 변제(邊際)의 제4정려에 들고, 선정으로부터 일어나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기를 ‘부의 이숙을 초래하는 나의 모든 업, 이것이 전이하여 수명의 이숙과가 초래되기를 원한다’고 하면, 그 때 부의 이숙을 초래하는 그의 업은 바로 전이하여 수명의 이숙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것을 유다수행이라고 한다. 즉 유다수행은 일곱 가지 조건[勝因]을 갖출 때 비로소 가능하다. 첫째는 인승(人勝)으로, 성문의 극과(極果)인 아라한을 성취한 자. 둘째는 해탈승(勝)으로, 신통 즉 해탈을 성취할 때. 해탈에는 지력(智力)에 의해 번뇌장을 끊는 혜해탈(慧解脫)과 정력(定力)에 의해 정장(定障)을 끊는 구해탈(俱解脫)이 있는데, 여기서의 해탈은 구해탈. 셋째는 수습승(修習勝)으로,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입정할 수 있을 때. 넷째는 복전승(福田勝)으로, 4인 이상의 승중(즉 교단)이나 자(慈)ㆍ무쟁(無諍)ㆍ멸진(滅盡)등의 선정이나 견ㆍ수도를 일으킨 개인에게 보시할 때. 다섯째는 시물승(施物勝)으로, 일상의 물건이 아닌 수명과 관계된 의복이나 발우와 같은 것을 보시할 때. 여섯째는 의지승(依止勝)으로, 소의지가 되는 수승한 정려, 즉 변제정(제4정려)에 들 때. 일곱째 전업승(轉業勝)으로, 정력(定力)과 원력에 의해 부의 이숙과를 낳는 업을 목숨의 이숙과로 바꿀 때이다.
37)
전생에 반만 받고 남겨진 나머지 목숨의 이숙과를 변제정에 의해 지금 받는다는 뜻.
38)
유기성(有記性)이란 무기성의 반대로, 우근은 선 또는 불선의 성질이며, 신 등의 5근과 3무루근은 오로지 선한 성질이다. 이에 반해 이숙은 무기성이다.
39)
이는, 경에서 설하고 있는 ‘순우수업(順憂受業)’ 즉 ‘우수에 따르는 업’이란 바로 우수로서 이숙과를 초래하는 업이므로 우근이 반드시 이숙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난문을 예상한 유부의 답이다. 즉 난문자는 ‘순(順)’을 ‘이숙과의 초래’로 해석한데 반해 유부에서는 ‘상응’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말하자면 업이 우수와 상응하기 때문에 ‘순우수업’이라고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40)
‘우근은 강한 의지[强思]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무기가 아니며, [선정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욕계] 산지(散地)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역시 또한 무루가 아니다.’(『구사론』 제3권, 앞의 책,p.137) 여기서 강한 의지 즉 강사(强思,vikalpa-viśeṣa)란 강한 분별 혹은 특수한 분별을 말하는 것으로, 근심은 바로 이러한 강한 분별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선 혹은 악에 국한되고, 무기와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41)
앞의 여덟 가지 근이란 22근 중 안 등의 5근과 여ㆍ남근과 명근을 말하고, 최후의 세 가지 근은 미지당지근 등의 무루근을 말한다.
42)
안 등의 8가지 근이란 안 등의 5근과 여ㆍ남근과 명근을 말한다.
43)
이는 『구사론』 상에서의 주장이다.(제3권, 앞의 책, p.139)
44)
『중아함경』 제28권 『구담미경(瞿曇彌經)』(대정장1,p.607중). “여인은 5사(事)를 행할 수 없으니, 만약 여인으로서 여래ㆍ무소착(無所著)ㆍ정등각이나 전륜왕ㆍ천제석(天帝釋)ㆍ마왕(魔王)ㆍ대범왕이 되고자 한다면 이러한 것은 끝내 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남자로서…”
45)
즉 색계에는 남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계 중에서 남자의 몸이 갖는 특성, 이를테면 이욕의 위세나 맹렬함이 존재할 따름이다.
46)
이는 『구사론』 상에서의 주장이다(제3권, 앞의 책,p.140). 즉 색계에는 유정의 신체가 정묘하여 촉뇌(觸惱)를 낳는 고의 근거[苦依]가 없기 때문에, 불선법이 없어 고의 대상[苦境]이 없기 때문에 고근이 제외된다는 것이다.
47)
이러한 의(意) 등의 4근은 88가지 견혹(見惑)과 상응할 때는 견소단이고, 81품의 수혹(修惑)과 상응할 때는 수소단이며, 무루의 법과 상응할 때는 비소단이다.
48)
색법과 불염오법과 6처가 아닌 것에서 생겨난 법이 수소단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본론 제4권 ‘18계의 3단(斷) 분별’을 참조할 것.
49)
신 등의 5근으로서 유루인 것은 수소단이고 무루인 것은 비소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 염오법이 아니기 때문에 견소단이 아니다.
50)
즉 계경에서 ‘법도 버려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성도(聖道) 역시 끊어지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난문.
51)
여기서 태생은 태(胎)로 태어나는 것, 난생은 알로 태어나는 것, 습생은 습기로부터 태어나는 것, 화생은 의지하는 바 없이 홀연히 생겨나는 것을 말함.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12권 ‘4생’을 참조할 것.
52)
중유(中有)로부터 생유(生有)에 이르게 되는 순간, 그 밖의 다른 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명근과 신근만이 획득될 뿐이다. 그 밖의 다른 근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53)
유부에 의하는 한 수생(受生)과 명종(命終)의 단계에서는 사근이 반드시 상응하고, 의근 또한 수생의 단계에서 반드시 일어나지만, 부모에 대해 품은 애(愛) 또는 에(恚)와 상응하는 염오성이기 때문에(남성의 중유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애욕을, 아버지에 대해서는 진에를 일으켜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순간 미워하는 이의 그것을 자신의 존재로 여기고 기뻐한다. 이 때가 바로 중유가 멸하고 생유가 일어나는 속생의 순간이다. 본론 제13권 ‘중유의 여러 특징’ 참조) 무기의 이숙근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ㆍ락ㆍ우ㆍ희ㆍ신 등의 5근도 역시 생겨나지만 이숙생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설하지 않은 것이다.
54)
무형자가 초생위에서 획득하는 6근에, 일형자는 여ㆍ남의 성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더한 일곱 가지를, 이형자는 이 둘을 더한 여덟 가지를 획득한다.
55)
이는, 화생은 4생 중 가장 수승한 생인데, 여기에 어찌 악업에 의해 초래되는 이형자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변명이다. 화생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그 모두가 수승한 것은 아니다. 지옥의 유정은 모두 화생이고 아귀 중에도 화생이 있으므로 그러한 악취 중에는 악업에 의해 초래된 이형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56)
즉 무색계에는 형색이 존재하지 않아 방처(方處)가 없으므로 공간적 규정인 ‘위(上)’이라는 말도 사용할 수 없지만, 다만 선정과 그 생이 수승하다는 점에서 ‘위’라고 하였다는 뜻.
57)
이상은 본 항의 방론으로, 무색계에서의 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의 명근의 실재성을 논의하였다. 참고로 경량부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58)
색계에 태어나는 유정은 오로지 화생이기 때문에 이 같이 말한 것이다.
59)
일형자(한 性만을 지닌 자)는 앞에서 설한 여덟 가지에 여근과 남근 중 어느 한 가지를 더한 아홉 가지를, 무형자는 다만 색계에서 죽을 때 멸하는 여덟 가지 근만이 멸할 따름이다.
60)
사문과에는 예류과(預流果)ㆍ일래과(一來果)ㆍ불환과(不還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 네 가지(4果)가 있으며, 이러한 단계로 향하는 이를 예류향(向) 내지 아라한향(4向)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64~65권에 걸쳐 상론한다.
61)
예류향은 견도 15찰나이며, 제16찰나에 이르러 견도를 성취한 성자를 예류과라고 한다. 이는 수도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색계 선정을 수습(修習)하지 않는 단계이다.
62)
즉 사문과(果)는 무간도와 해탈도에 의존할 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사론』(제3권, 앞의 책, p.146)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지근은 무간도(無間道)에 존재하고, 이지근은 해탈도(解脫道)에 존재하니, 이 두 가지가 서로 도와 최초의 사문과(예류과)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근은 그 순서대로 이계(離繫)의 득(得)에 대해 능히 인인(引因)과 의인(依因)이 되기 때문이다.” 즉 미지당지근은 무간도인 제15심 도류지인(道類智忍)에 동류인이 되어 무위택멸 즉 이계득을 낳는 것[引因]이 되고, 이지근은 해탈도인 제16심 도류지에서 이계득과 함께 생겨 이계득을 지지하는 것[依因]이 되어, 서로를 도와 예류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63)
곧 아라한과와 아라한향은 9지(미지정ㆍ중간ㆍ4근본정ㆍ무색계의 아래 세 선정) 중 어떠한 지로도 획득할 수 있는데, 초정려와 제2정려에 의한 자는 희애(喜愛)와 상응하고, 제3정려에 의한 자는 낙애(樂愛)와, 미지정을 비롯한 그 밖의 정에 의한 자는 사수(捨受)와 상응하기 때문에 세 가지 수근 중 하나를 취하는 것이다.
64)
무루의 출세간도가 증진됨에 따라 예류향 예류과 나아가 아라한과를 순서대로 획득하는 것을 차제증(次第證)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부에 의하면, 수소단의 번뇌는 반드시 무루도에 의해서만 끊어지는 것은 아니며 유루 세속도에 의해서도 끊어지기 때문에, 일찍이 이생위에서 수소단의 번뇌를 끊은 이가 견도 제16 찰나에 이르게 되면 예류과를 초월하여 바로 일래과나 불환과를 획득하기도 하는데, 이를 초월증(超越證)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유루 세속도로써는 비상비비상처의 번뇌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아라한과는 초월증의 성자가 아니다. 초월증에 대해서는 본론 제31권 ‘견도위와 초월증의 성자’를, 유루 세간도에 대해서는 본론 제32권을 참조할 것.
65)
여기서 ‘배리욕탐의 초월증자’란 유루 세간도로써 욕계 9품의 수혹 중 일부분(6ㆍ7ㆍ8품)을 끊고 견도 제16찰나인 도류지에 이른 성자(즉 일래과)를 말한다. 참고로 후술하는 ‘전리욕탐의 초월증자’란 세간도로써 9품의 수혹을 모두 끊고서 도류지에 이른 성자(즉 불환과)를 말한다.
66)
즉 초월증의 불환과는 그 소의지가 미지(未至)ㆍ중간ㆍ4근본정의 6지(地)이므로 수근(受根)에 있어서도 낙ㆍ희ㆍ사 중 어느 한 가지와 상응한다.
67)
『발지론』 제15권(한글대장경176, p.339).
68)
유부에서는 견도에 의한 예류과는 유신견 등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이지적 번뇌[迷理惑]의 단멸이기 때문에 물러남이 없지만, 수도에 의해 정의적 번뇌[迷事惑]의 단멸을 증득한 일래ㆍ불환ㆍ아라한 등의 과위(果位)에는 물러남이 있다.
69)
이는 ‘아라한과와 마찬가지로 불환과에 대해서는 어째서 열한 가지 근에 의해서 획득된다고 설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구사론』(제3권, 앞의 책, p.148)에서의 진술은 이러하다. “만약 낙근으로 불환과를 증득하면 그 이후 물러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역시 또한 거기서 물러나고서 낙근에 의해 다시 획득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저 이욕하고서 초월하여 세 번째 사문과를 증득한 이(초월증의 불환과)는 다시는 물러나는 일이 없으니, 이러한 이욕의 사문과는 두 가지 도(유루ㆍ무루도)에 의해 획득되어 지극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즉 유루도로써 색계 제2선의 번뇌를 끊고, 제3선의 낙근을 얻어 견도에 든 초월증의 불환과는 그 힘이 강력 견고하여 물러나는 일이 없지만, 차제증의 불환으로서 하지로 물러난 이는 욕계번뇌를 일으키기 때문에, 미지정의 무간도에 의지하여 사수로써만 본래의 과위(果位)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낙근에 의해 다시 획득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70)
이하 22근의 상호 성취ㆍ불성취의 관계를 밝히고 있는데, 그 관계가 매우 복잡 번쇄하다. 먼저 명근과 의근과 사근은 일체의 지(地)와 소의에 편재하기 때문에 그 중의 하나를 성취하면 반드시 자근(自根)과 더불어 다른 두 근도 함께 성취하며, 하나라도 결여되면 세 근을 모두 성취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信) 등의 5근은 비록 일체의 지에 두루 존재하는 것일지라도 일체의 소의에는 두루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후술)
71)
안 등의 네 근은, 무색계에 태어난 자는 결코 성취하지 않으며, 만약 욕계에 태어난 자로서 아직 획득하지 않았거나[未得] 이미 상실한[已失] 자 또한 역시 성취하지 않는다.
72)
신근은 결정적으로 오로지 무색계에 태어난 자만이 성취하지 않는다.
73)
여근과 남근은 색ㆍ무색계에 태어난 자는 결정코 성취하지 않으며, 욕계에 태어난 자로서 아직 획득하지 않았거나 이미 상실한 자 또한 성취하지 않는다.
74)
환언하면 이생(異生)으로서 제4정려나 무색계에 태어난 자는 결코 성취하지 않는다. 즉 성자는 설혹 제4정려나 무색계에 태어날지라도 제3정려의 무루의 낙근을 성취하니, 이러한 무루법은 계계(界繫)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계지(繫地)를 초월하더라도 버리지 않는 것이다.
75)
환언하면 이생으로서 제3ㆍ제4정려나 무색계에 태어난 자는 결코 성취하지 않는다.
76)
환언하면 신(信) 등의 5근은 선근이 끊어진 자에게 결코 성취되지 않으며, 미지당지근은 일체의 이생과 이미 견도 16심에 머무는 자에게, 이지근은 일체의 이생과 견도와 무학위에 이른 자에게, 구지근은 일체의 이생과 유학위에 든 자에게는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즉 이지근과 구지근은 각기 수도위와 무학위에 든 자만이 성취하기 때문이다.
77)
여기에 신근(身根)을 제외하는 것은 성자가 무색계에 태어날 때는 제3정려의 무루낙근을 성취하더라도 신근은 성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78)
여기에 낙근을 제외하는 것은 범부가 제4정려에 태어날 경우, 신근은 성취하지만 거기서는 낙근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부터 범부였던 자라면 제3선의 무루낙근은 성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79)
여기서의 희근은 욕계와 초선과 제2선의 열수(悅受)이다.
80)
희근을 성취하면 결정코 낙근을 성취하게 된다고 할 경우, 제2정려지에 태어난 범부는 제2선의 희근은 성취하지만 초선(下地)에서의 5식상응의 낙근은 유루법으로서 이미 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성취할 수도 없으며, 제3선(上地)은 아직 닦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낙근도 성취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만약 성취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낙근인가 하는 난문의 답이다. 즉 제2정려지에 태어난 범부는 아직 제3정려의 번뇌를 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과 상응하는 염오한 낙근을 성취하게 된다.
81)
고근을 성취하는 것은 반드시 욕계로서, 거기에 태어난 자로서 이욕(離欲)할 경우 우근을 버리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우근을 성취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82)
22근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선근(善根)을 논할 경우 당연히 3무루근도 포함되겠지만, 여기서의 선근은 어리석은 이(이생)가 성취하는 ‘여덟 가지 근 중의 선근’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
83)
여기서 두 가지 계박이란 상응박(相應縛)과 소연박(所緣縛). 상응박이란 마음이 그것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번뇌에 계박되는 것이고, 소연박이란 마음이 번뇌의 소연이 되어 계박되는 것을 말한다.
84)
즉 견도에 머무는 유학의 성자라면 이지근과 구지근이 제외되고, 만약 수도에 머무는 성자라면 미지근과 구지근이 제외된다.
85)
성자로서 성불구자는 없기 때문에 여근과 남근 중 어느 한 가지는 제외해야 하는 것이다.
86)
공간적 부피를 지닌 색(즉 有對色)을 세분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을 극미(極微,paramāṇu)라고 하는데, 이러한 다수의 극미가 화합한 것을 미취(微聚)라고 한다. 전자가 무방분(공간적 부피를 지니지 않는 것)이라면 후자는 유방분으로, 『순정리론』 제32권에서는 전자를 관념적으로 더욱 분할되어 추리에 의해 알려지는 가설적[假] 극미, 후자를 5식에 의해 알려지는 실제적[實] 극미라고 하였다. 참고로 『잡아비담심론』 제2권(대정장28,p.882중)에서는 전자를 사(事)극미라 하고, 후자를 취(聚)극미라고 하였다. 즉 다수의 가설적 극미가 화합(微聚)할 때 비로소 색법의 자상(즉 礙性)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세친은 무방분의 극미를 부정하고 오로지 복합극미 즉 미취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구사론』에서는 “색취(色聚)로서 지극히 세밀한 것을 ‘미취(微聚)’라고 이름하니, 더 이상 이보다 미세한 것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본 절의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제4권,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p.156)
87)
즉 안ㆍ이ㆍ비ㆍ설근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신근(몸)과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기 때문에 안근을 갖는 미취는 최소한 10사(事)가 동시 생기해야 한다.(次註참조) 여기서 ‘사(dravya)’는 실체의 뜻이다.
88)
색취(色聚) 즉 객관의 물질 일반은 반드시 지ㆍ수ㆍ화ㆍ풍의 4대종과 그 결합물인 색ㆍ향ㆍ미ㆍ촉의 4조색(造色) 등 8사구생[八事俱生 隨一不減]하지만, 유정물로서 신근(身根)을 가질 경우 8사에 신근을 더한 9사구생이고, 여기에 안ㆍ이ㆍ비ㆍ설의 4근 중 하나를 가질 때에는 10사구생이며, 여기에 다시 소리가 존재하는 경우, 각기 증가하여 8사구생은 9사로, 9사는 10사로, 10사는 11사구생이 된다. 예컨대 안근의 경우, 이것은 반드시 신근에 근거해야 하며, 이것은 다시 8사와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안 등이 근이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체[事]는 열 가지이며, 여기에 소리가 더해질 경우 열한 가지이다. 이를테면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경우, 이 때 소리는 유집수대종(감각이 있는 대종)에 근거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무집수대종에 근거한 소리일 경우 객관의 물질 자체는 다만 9사구생이 될 것이다.(전술)
89)
이 논설은 “여기서 설한 ‘사(事)’라고 하는 말이 [색법] 자체[體,dravya]에 근거한 것이라거나 처(處,āyatana)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경우,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과실을 성취하게 된다”는 힐난에 대한 해명이다. 즉 ‘사’를 색법 자체, 이를테면 색경의 경우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 등의 8형색과 청ㆍ황ㆍ적ㆍ백 등의 12현색, 촉경의 경우 4대종과 미끄러움ㆍ껄끄러움ㆍ무거움 등 11가지 소조촉 각각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면 8사 등은 너무 적은 것이 되고, 처(處)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는 경우 4대종은 모두 촉처(觸處)에 포섭되기 때문에(그럴 경우 4事가 되어야 함) 너무 많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현은 “소의(즉 대종)로서의 ‘사’는 색법 자체에 근거하여 설한 것이며, 능의(즉 소조색)로서의 ‘사’는 처에 근거하여 설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과실도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순정리론』 제10권)
90)
이러한 비방은 대다수 소조색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경량부, 비유사나 경량부, 혹은 경부사 스리라타에 의해 제기되었다.
91)
비록 색ㆍ향ㆍ미ㆍ촉의 소조색 각각이 4대종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하여 ‘20사구생’이 된다 할지라도 그 소의가 모두 4대종으로서 동일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 존재유형이 동일하기 때문에 ‘8사구생’이라 할 수 있다는 뜻.
92)
유색법은 앞서 논설한 유대(有對)의 색법(色法)을 말하며, 무색법은 심법(心法)과 심소법(心所法)과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을 말한다.
93)
즉 마음은 이러저러한 작용의 심소법이 일어나는 소의처가 되는 것으로, 이러한 마음을 ‘지’라고 한다는 뜻.
94)
여기서 대법이란 수(受)ㆍ상(想) 등의 심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일체의 마음과 두루 통하며, 반드시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대법’이라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이러한 대법(大法)을 소유하며 그것의 소의처가 되고 통솔자로서 구기(俱起)하기 때문에 ‘대법의 지’ 즉 ‘대지’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95)
수(vedana)란 영납(領納)의 뜻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고(苦, 不快의 減損)ㆍ낙(樂, 快의 增益)ㆍ불고불락을 감수하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96)
상(saṃjñā)이란 취상(取像)의 뜻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사물의 형상이나 언어적 개념의 차별상을 취(표상)하여 설정하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97)
사(cetanā)란 마음으로 하여금 선ㆍ불선ㆍ무기를 조작(造作)하게 하는 의사 혹은 의지의 의식작용으로, 유부에 의하면 이는 의업(意業)의 본질이다. 주31) 참조.
98)
촉(sparśa)이란 근ㆍ경ㆍ식의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좋거나 좋지 않은 등의 느낌 즉 ‘수’가 일어나게 된다. 이는 말하자면 순수감각과 같은 의미의 의식작용이다.
99)
욕(chanda)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뭔가를 희구(希求)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100)
혜(prajñā)란 소연이 되는 대상에 대해 능히 판단ㆍ간택(簡擇)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101)
염(smṛti)이란 기억의 의식작용으로, 이것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대상을 명기(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
102)
작의(manaskāra)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거나 경각(警覺)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103)
승해(adhimukti)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인가(忍可,認可) 결정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104)
삼마지(samādhi)란 마음을 평등(平等)하게 유지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전념하게 하는 의식작용[心一境性]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마치 뱀이 죽통(竹筒)에 들어가면 바로 펴지듯이 마음이 삼마지에 들면 산란되지 않고 바로 곧게 전이하게 되는 것이다.’
105)
신(śraddhā)이란 마치 청수주(淸水珠)를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澄淨]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입아비달마론』 상권, 대정장28,p.982중: 『구사론』 제4권, 앞의 책,p.164) 『구사론』에서 ‘전도됨이 없는 인과에 대한 즉각적인 인가 허락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어떤 이의 설로 전하고 있다. 곧 청정한 의식작용으로 말미암아 4제(諦)와 3보(寶) 그리고 인과의 이치를 바로 믿게 되는 것이다.
106)
『구사론』에서는 불방일(apramāda)을 마음으로 하여금 온갖 선법을 닦는 것으로 정의하며, 마음을 수호하게 하는 것은 어떤 부파의 설로 전하고 있다.
107)
경안(praśrabdhi)이란 몸과 마음을 경쾌 안적[輕利安適,편안]하게 하여 능히 선법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의식작용[心堪任性]을 말한다.
108)
사(upekṣā)란 혼침(惛沈,무기력)과 도거(掉擧,들뜸)를 떠난 마음의 평등성(平等性,평정)을 말한다. 『구사론』에서는 이와 함께 작의(경각성)의 반대인 마음의 무경각성(無警覺性)이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경각성의 작의와 무경각성의 사가 구기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유부 비바사사의 답은 양자 모두 실체인 이상 구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109)
일반적으로 ‘참’은 계ㆍ정ㆍ혜의 공덕이 있는 자를 공경하는 것, 혹은 스스로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의식작용이며, ‘괴’는 공덕 있는 자의 꾸짖음이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것, 혹은 남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의식작용이다. 양자는 대불선지법인 무참과 무괴의 반대이기 때문에 거기서 상론한다.
110)
무탐과 무진은 선근(善根)의 하나로, 대상에 대해 애착하지 않고, 유정에 대해 미워하지 않는 의식작용이다. 참고로 여기서 선근의 나머지 하나인 무치(無癡)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것은 ‘혜’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대지법 즉 일체의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작용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111)
다시 말해 다른 이를 손상시키고 괴롭히지 않는 것이 불해이다.
112)
근(勤)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모질게 노력하게 하는 것[勇悍]을 본질로 한다.(『구사론』,앞의 책,p.168)
113)
이하 대선지법에는 사실상 흔(欣)과 염(厭)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어서 일 찰나 마음에 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배제하였다는 내용으로, 『구사론』에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곧 ‘염’이란 유전(流轉)의 생사를 염오(厭惡)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며, ‘흔’은 환멸(還滅)의 열반을 흔락(欣樂)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아비달마장현종론 제6권
1)
즉 방일은 불방일에 의해, 해태(懈怠)는 근(勤)에 의해, 불신은 신(信)에 의해, 혼침은 경안에 의해, 도거는 사(捨)에 의해 대치된다.
2)
무지는 밝게 결택(決擇)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현이란 일체 사리(事理)의 경계가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3)
방일이란 온갖 선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제4권,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 p.168)
4)
해태란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앞의 책,p.169)
5)
『구사론』(앞의 책,p.169)에서는 “무엇을 혼침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몸의 무거운 성질과 마음의 무거운 성질, 몸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不堪任性]과 마음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昏沈性]과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 이것을 혼침이라 이름한다”고 설한 『발지론』 제2권(한글대장경176,p.39)에 따라 혼침을 설명하고 있는데, 본 논설은 이에 대한 해석이다.
6)
여기서 본론이란 『품류족론』(제2권,대정장26,p.698하). 『계신족론』 제1권(대정장26,p.614중)과 『대비바사론』 제42권(대정장27,p.220상)을 참조할 것. 즉 『품류족론』에서는 대번뇌지법으로 불신ㆍ해태ㆍ실념(失念)ㆍ심란(心亂)ㆍ무명(無明)ㆍ부정지(不正知)ㆍ비리작의(非理作意)ㆍ사승해(邪勝解)ㆍ도거ㆍ방일의 열 가지를 들고 있다.(『계신족론』과 『대비바사론』에서는 실념이 망념(忘念)으로 되어있다.)
7)
『품류족론』에서 대번뇌지법으로 설한 열 가지 법 중 비리작의 등 다섯 가지는 대지법에서 이미 논설하였다는 뜻. 여기서 비리작의는 염오한 작의이며, 실념은 거짓된 기억이나 기억의 상실, 심란은 염오의 등지 즉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부정지는 염오혜(慧), 사승해는 염오한 승해를 말한다. 대번뇌지법과 대지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구사론』(앞의 책,p.170)을 참조할 것.
8)
무치는 대선지법이지만, 혜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지법에 포섭시켜 논설하였다.(본론 제5권 주110 참조)
9)
어떠한 이유에서 무참과 무괴만이 불선인가? 그것은 바로 수번뇌(隨煩惱)의 하나인 무참과 무괴에 의해 인과부정의 사견(邪見)과 인과 도리에 미혹하는 무명(無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즉 계ㆍ정ㆍ혜의 공덕이 있는 자를 공경하지 않거나 자신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혹은 두렵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악행이 괴로움의 과보를 낳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에 따라 온갖 불선의 악행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혹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10)
본권 7-1) ‘무참과 무괴의 분별’ 참조.
11)
열 가지 소번뇌지법은 일체의 염오한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명과 상응할 뿐이며, 오로지 제6식과 상응하여 각기 개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소’번뇌지법이다. 즉 대번뇌지법(염오한 마음과 두루 함께 나타나는 의식작용)은 그 밖의 탐 등의 번뇌에 따라 항상 동시에 함께 일어나지만[竝頭起], 소번뇌지법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각기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번뇌로서 무명과 상응할 뿐 다른 번뇌와 함께 일어나는 일이 없다[別頭起].
12)
이러한 소번뇌지법은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수번뇌(隨煩惱)의 하나이기 때문에 본론 제27권 ‘수번뇌’에서 자세하게 분별한다. 여기서 수번뇌(upakleśa)라고 함은 탐(貪)ㆍ진(瞋)ㆍ만(慢)ㆍ무명ㆍ견(見)ㆍ의(疑)의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번뇌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보통 무참ㆍ무괴ㆍ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혼침ㆍ분(忿)ㆍ부(覆)ㆍ질(嫉)ㆍ간(慳)의 10전(纏)과 뇌(惱)ㆍ회(悔)ㆍ한(恨)ㆍ첨(諂)ㆍ광(誑)ㆍ교(憍)의 6번뇌구(垢)가 포함된다. 여기서 우선 열 가지 소번뇌지법을 간단히 분별해 보면 ‘분’은 유정이나 비유정을 미워하여 분노하는 것, ‘부’는 자신의 죄과를 감추려고 하는 심리작용, ‘간’은 재물이나 진리에 인색하여 다른 이에게 베풀어주지 않으려는 것, ‘질’은 타인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기뻐하지 않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뇌’는 온갖 나쁜 일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의식작용, ‘해’는 타인을 핍박하는 의식작용, ‘한’은 앞의 ‘분’의 대상에 대해 자주 생각하여 원한을 맺는 것, ‘첨’은 마음의 왜곡으로, 이에 따라 자신의 뜻을 진실되게 드러내지 않고 남의 허물을 말하여 그를 미워하는 이를 기쁘게 한다. ‘광’은 타인을 속여 미혹되게 하는 것, ‘교’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ㆍ지위ㆍ미모ㆍ지식 등에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해져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성질의 의식작용이다.
13)
예컨대 어떤 순간에 안근과 항아리를 근거로 하여 항아리의 형상(行相,行解相貌의 준말)을 띤 하나의 마음이 생겨났다면, 동일한 순간 동일한 감관과 대상을 근거로 하여 동일한 형상을 띤 하나의 지각[受], 하나의 표상[想], 하나의 판단[慧] 등이 반드시 함께 생겨난다. 따라서 온갖 마음의 작용은 결코 단독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함께 일어나며, 마음 역시 자신의 고유한 작용(인식 즉 요별)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의 작용을 수반해야만 한다. 이러한 심ㆍ심소의 관계를 오의평등(五義平等)이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제8권. ‘심ㆍ심소법의 이명(異名)과 오의평등’에서 상론한다.
14)
등불의 밝음과 어두움과 소리와 운동 등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조건[法]들이 동시에 구기한 결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한 찰나의 마음 역시 수많은 심소법과 동시에 구기한다.(후술)
15)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ㆍ대선지법ㆍ대번뇌지법ㆍ소번뇌지법의 네 품류 이외 선ㆍ염오ㆍ무기심 중 어떤 것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ㆍ진(瞋)ㆍ만(慢)ㆍ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46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ㆍ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제27권 ‘수번뇌’에서 설명되고 있다.
16)
제2구의 ‘인정한다[許]’는, 외방(外方)의 여러 논사(圓暉의 『俱舍論頌疏』에 의하면 經部)들은 악작도 무기와 통하기 때문에 무부무기의 마음에는 열세 가지의 심소가 있다고 주장한데 반해 카슈미르 비바사사들은 악작을 제외한 열두 가지만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로서(주28 참조), 구사논주 세친은 이를 불신하여 ‘인정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17)
카슈미르 비바사사가 이사(異師) 특히 경량부로부터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 바로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심ㆍ심소의 상응구기설(俱起說)이다. 여기서 제기된 문제는 근(勤)과 사(捨)를 비롯하여 주의 경각의 작용인 작의(作意)와 무경각성인 사(捨), 대상에 대향하게 하는 거친 의식작용인 심(尋)과 세밀한 의식작용인 사(伺), 이해 분별의 작용인 혜(慧)와 무지의 작용인 치(癡) 등은 서로 모순되는 의식작용인데, 어떻게 동시에 함께 생기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18)
악작이란 이를테면 후회로서, 이전에 착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선한 악작이지만, 모든 선심에는 반드시 이러한 작용이 있지 않기 때문에 선심과의 상응 유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19)
무상정(無相定)은 3해탈문(空ㆍ無相ㆍ無願)의 하나로, 그 자체의 본질은 무루정이지만, 무상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무상정이라 하였다. 마찬가지로 악작은 후회[追悔]이지만 후회의 소연이 악작(잘못 저질러진 일)이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하였다는 뜻.
20)
신념주란 몸은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억념하는 관법(4념주의 하나)으로, 부정의 본질은 무탐(無貪)이지만 소연이 되는 처소에 따라 신념주라고 이름하였다는 뜻.
21)
이미 지어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악작이라 할 수 있어도, 짓지 않은 업에 대해 설사 ‘그것을 하였더라면’ 하고 후회하였을지라도, 거기에는 소연의 경계가 될만한 지어진 일이 없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힐난.
22)
일찍이 착한 일을 하지 않았거나 악한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선의 악작이라면, 일찍이 악한 일을 하지 않았거나 선한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악(불선)의 악작이다. 따라서 선심에 악작이 존재하는 경우라면 악작을 포함하여 23가지 심소가 동시 구기해야 한다.
23)
여기서 탐수면 등이란, 탐(貪)ㆍ진(瞋)ㆍ만(慢)ㆍ의(疑)의 네 가지 근본번뇌와, 10전(纏,무참ㆍ무괴ㆍ慳ㆍ悔ㆍ眠ㆍ도거ㆍ혼침ㆍ忿ㆍ覆)과 6구(垢,惱ㆍ害ㆍ恨ㆍ諂ㆍ誑ㆍ憍)로서, 이러한 제 번뇌와 상응구기하지 않는 무명을 불공(不共)무명이라고 한다.
24)
5견 중 불선으로서의 견은 사견(邪見)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의 세 가지이며, 나머지 유신견(有身見)과 변집견(邊執見)은 유부무기(有覆無記)이다. 즉 ‘견’은 결국이 ‘혜’의 차별이기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 ‘견’이 생겨날 때에는 앞서 언급한 불공(不共)의 불선심의 경우와 동일하여 스무 가지의 심소가 구생할 뿐이다.
25)
사견이란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도 업의 과보도 없으며, 해탈도 해탈에 이르는 실천도 없다고 하는 그릇된 판단작용을 말하는데, 다른 4견이 자아가 아닌 것을 자아라 하고(유신견),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이라고 하고(변집견의 常見), 저열한 견해를 뛰어난 견해라 하고(견취), 참된 도나 원인이 아닌 것을 해탈도와 원인이라고 하는(계금취) 등의 적극적인 견해[歡行轉]라면, 오로지 부정적인 견해[戚行轉]이기 때문에 사견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변집견의 단견(斷見)과 견취의 원인이 된다.
26)
즉 유부무기심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 가지 대지법과 여섯 가지 대번뇌지법, 그리고 심(尋)과 사(伺)의 부정지법이 반드시 함께 일어나야 한다.
27)
즉 ‘견’은 열 가지 심대지법 중의 하나인 ‘혜’의 차별로서 그 본질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것을 별도로 더하지 않은 것이다.
28)
여기서 어떤 이는 『구사론』 제4권(앞의 책,p.178)에 의하면, 외방제사(外方諸師), 카슈미르 이외 나라의 논사인 외국사(外國師)이다. 즉 그들은 무부무기인 공교처ㆍ이숙ㆍ통과심(通果心) 등에서도 짓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이미 지은 것을 후회하며, 짓고도 완전히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등의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에 악작은 무기와 통한다고 주장하였다.
29)
즉 수면(졸음)이 존재하는 경우, 스물두 가지 심소가 구기하는 선심은 이를 더하여 스물세 가지가 될 것이고, 악작이 존재하는 선심은 스물네 가지, 불공의 불선심은 스물한 가지, 그 밖의 불선심은 스물두 가지, 유부무기심은 열아홉 가지, 무부무기심은 열세 가지의 심소가 함께 생겨나야 한다.
30)
공교처란 기예(技藝) 기술에 관한 마음으로, 전생의 업에 의해 인기된 이숙생(異熟生)의 마음, 행주좌와의 행동거지를 일으키는 위의로(威儀路)의 마음, 천안통 등의 통과심(通果心)과 더불어 대표적인 무기심으로 언급된다.
31)
색ㆍ무색계에는 불선과 우근(憂根)과 단식(段食) 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불선인 소번뇌지법 일곱 가지(첨ㆍ광ㆍ교를 제외한 것)와 무참ㆍ무괴와 진(瞋) 등 열 가지 번뇌와, 우근과 상응하는 악작과, 단식성인 수면을 제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수면품(隨眠品)」에서 상론함.
32)
중간정려란 유심유사(有尋有伺)의 초정려와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제2정려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따로 규정한 것은 이러한 경지가 무심유사(無尋唯伺)이기 때문이다.
33)
『구사론』(앞의 책, p.179)에서는 경증(『正法念經』 제33권, 대정장17,p.193, 諂曲一法遍於欲界及於梵天)을 들어 초정려까지만 첨(諂,아첨)과 광(誑,속임수)이 존재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즉 초정려의 범중천(梵衆天)ㆍ범보천(梵輔天)ㆍ대범천(大梵天)을 대범왕을 중심으로 하는 범천(梵天)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왕과 신하 민중의 상하존비의 차별이 있고, 이러한 계급적 차별에 의해 질서를 유지하여 서로 의지하는 바로 삼기 때문에 ‘첨’과 ‘광’이 존재하지만, 제2정려 이상에는 왕과 신하의 차별이 없기 때문에 ‘첨’과 ‘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4)
계(戒)ㆍ정(定)ㆍ혜(慧)의 3학을 말한다.
35)
즉 ‘어렵게 여기는 일이 없다’는 것은 공덕을 어렵게 여기는 일이 없다는 말이며, ‘따라 속하는 일이 없다’는 말은 공덕 있는 자에 따라 속하는 일이 없다는 뜻.
36)
즉 전자는 두려워할 만한 과보를 초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명(무지)이고, 후자는 악과인 줄 알면서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견(판단의 慧를 본질로 함)이 되는 것이다.
37)
왜냐하면 법성(法性)이나 공덕 있는 자를 믿고 존경하여야 비로소 그것을 애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38)
염오함이 있는 ‘애’란 예컨대 처자식 등을 애락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염오함이 없는 ‘애’란 스승[師長] 등을 애락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구사론』,앞의 책,p.182)
39)
‘애(愛)’와 ‘경(敬)’에는 각기 법(法)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보특가라(인격)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있어 전자의 경우 3계에 모두 존재하지만, 후자의 경우 욕계와 색계에는 존재하지만 무색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욕ㆍ색계에는 색신이 존재하고 거기에는 존비(尊卑) 내지 모양새 등 현색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애’와 ‘경’이 있는 것이다. 물론 무색계에도 무색의 유정이 있기 때문에 보특가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색신이 없고 모양새 등의 현색이 없기 때문에 보특가라를 소연으로 한 애경심(愛敬心)을 일으키는 일은 없는 것이다.
40)
『순정리론』 제11권에 따르면, 여기에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거친 성질과 미세한 성질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마땅히 ‘심’과 ‘사’는 일 찰나의 마음에 함께 생겨나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경부의 힐난이 진술되고 있다.
41)
‘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덕을 차별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즉 가문ㆍ재산ㆍ지위ㆍ용모ㆍ힘ㆍ지식ㆍ기예ㆍ지계(持戒) 등에 있어 자신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하는 만(慢). 자신과 동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하는 과만(過慢).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하는 만과만(慢過慢). 5취온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아만(我慢). 예류과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면서 증득하였다고 여기는 증상만(增上慢). 가문 등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여기는 비만(卑慢). 덕이 없으면서도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하는 사만(邪慢)이 그것이다.
42)
심(心,citta)의 어원 cit는 생각하다, 이해하다의 뜻이지만, 그것은 다시 √ci(쌓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집기’라고 번역한 것이다. 곧 마음은 신(身)ㆍ구(口)ㆍ의(意) 3업을 불러일으킨다. 의(意,manas)는 어근 √man(생각하다)에 근거하여 ‘사량’으로 번역한 것이고, 식(識,vijñāna)은 vi-jñā(다르게 알다)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요별’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43)
이 인용은 『구사론』이나 『순정리론』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아마도 요별을 논의할 경우, 그 주체로서 요별자(vijñātṛ)를 먼저 떠올릴 것이므로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요별자(즉 자아)에 대한 논의는 주로 승론이나 수론학파에 의해 제기되는데, 『구사론』(제30권) 「파아품(破我品)」(앞의 책, p.1379)에서는 다음과 같은 외도설을 언급하고 있다. “결정코 자아는 존재하니, 사용(事用,bhāva,현상의 작용)은 반드시 사용자(事用者,bhāvitaṛ,즉 작자)를 근거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천수(天授)의 보행’은 반드시 천수를 근거로 해야 하는 것처럼 온갖 ‘사용’은 ‘사용자’에 근거해야 하는데, 보행이 바로 ‘사용’이며, 천수가 ‘자’(사용의 작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식(識,vijñāna) 등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용은 반드시 그 소의(所依)가 되는 ‘능히 요별하는 자(vijñātaṛ)’ 등을 근거로 해야 한다.”
44)
여기서 ‘여러 가지[種種]’란, 『구사론』 제4권(앞의 책, p.189)에 의하면 정계(淨界)와 부정계(不淨界)의 여러 차별을 말한다. 곧 마음에는 닦고 닦지 않음에 의해 선ㆍ불선ㆍ무기 등 여러 단계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citta로 이름한 것으로, 이는 citra(種種)에 근거한 경부(經部) 혹은 유가사(瑜伽師)의 해석이다.
45)
소의지가 된다고 함은 현행식의 근거가 되는 전 찰나의 의근(意根)을 말하며, 능의지가 된다고 함은 의근에 근거하는 현행의 의식(意識)을 말한다. 즉 본론 제1권에서 의근을 분별하면서 과거로 낙사한 무간멸(無間滅)의 의(意)가 다음 찰나 의식의 소의지가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이를 근거로 해석한 것이다.
46)
18계를 시설할 때는 ‘심’이라 하였고, 12처를 시설할 때에는 ‘의’라고 하였으며, 5온을 시설할 때에는 ‘식’이라 하였다는 뜻.
47)
증장은 ‘심’으로, 상속은 ‘의’로, 업을 낳는 종자는 ‘식’으로 차별되어 시설되기도 한다는 뜻.
48)
여기서 ‘행상(ākāla)’이란 심ㆍ심소 상에 나타난 형상으로서, ‘행’은 행해(行解) 즉 능연이 심(心)을 뜻하고, ‘상’은 상모(相貌) 즉 마음 위에 나타난 이미지를 뜻한다.
49)
즉 평등하게 동시[俱時]에 다른 심ㆍ심소와 화합하여 소연이 되는 대상을 행해(行解)하기 때문이다.
50)
유부에서는 심과 심소는 각기 개별적 실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의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들이 상응 구기(俱起)해야만 하는데, 양자는 이 때 다섯 가지의 관점에서 상응한다. 이를테면 동일한 시간[時,kāla]에, 동일한 감관[所依,āśraya]에 의해, 동일한 대상[所緣,ālambhana]에 대한 동일한 형상 즉 이미지[行相,ākāra]를 갖는데, 이 때 심과 온갖 심소 자체[事,dravya,실체의 뜻]는 각기 하나이다. 예를 들어 어떤 순간에 눈과 푸른 항아리에 의해 푸른색의 형상을 띤 1법의 시의식이 생겨났다면, 동일한 순간에 동일한 소의ㆍ소연을 근거로 하여 동일한 형상을 띤 1법의 수ㆍ상 등의 심소가 마음과 동등한 관계[평등,samatā]로서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다.
51)
『중아함경』 제24권 「대인경(大因經)」(대정장1,p.579하). “아난다여, 만약 식이 모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명색이 이 몸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식이 모태에 들어간 뒤 바로 거기서 나오게 되면 명색이 정(精)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어린 사내거나 계집이거나 식이 끊어지고 허물어져 존재하지 않으면 명색이 점차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자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난다여,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식은 바로 명색의 원인이며 명색의 근본이니라” 즉 마음과 절대적으로 관계(상응)하는 심소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식(識)만을 설하고 심소에 대해서는 설하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뜻의 경증.
52)
6계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ㆍ식계(識界)로서, 만약 심소법이 마음과는 별도로 존재한다면 어째서 6계에 식만을 설한 것인가? 하는 뜻의 경증.
53)
이렇듯 심소에 관한 이설(異說)이 많으니, 누구의 설을 진실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뜻의 힐난.
54)
사탕수수나 기녀의 본질은 단일하지만 그것이 변화한 상태, 혹은 작용하는 상태에 따라 즙이나 창기 등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뜻. 마찬가지로 심ㆍ심소는 그 본질이 단일하지만 마음이 변화하는 상태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일컬어진다.
55)
앞서 5의평등에서 보았듯이 심과 심소는 동일한 대상(所緣)에 근거하여 동일한 행상(行相)을 갖고 동일한 시간(時)에 생겨나고 소멸할뿐더러 심이 선이면 심소 역시 선으로 양자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갖는다.
56)
‘왕이 온다’고만 말하면 왕에 수반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오는 것을 의미하듯이 마음만 말하면 이와 상응하는 모든 심소법이 포섭되기 때문에 경에서는 마음에 치우쳐 설하게 된 것이라는 뜻. “식은 모든 곳에서 뛰어난 공능을 갖지만 온갖 심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경에서는] 한쪽으로 치우쳐 설하게 된 것이며, 또한 온갖 심소로서 마음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 다만 소의만 설하면 능의(즉 심소)는 이미 나타낸 것이 되기 때문이다.”(『순정리론』 제11권)
57)
식의 본질(자성)은 요별(了別)이고, 마음 즉 심은 집기(集起)인데, 그것을 어떻게 바로 영납(領納,수)이나 취상(取像,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뜻의 힐난.
58)
그러나 실제 비유사는 소조색의 개별적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다만 불교일반의 상식으로서 언급한 것으로 생각된다.
59)
득(得)ㆍ비득(非得)ㆍ동분(同分)ㆍ무상과(無想果)와, 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의 두 선정과, 명(命)ㆍ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의 4상(相)과 명(名)ㆍ구(句)ㆍ문(文)의 3신(身)의 열네 가지 불상응행법은 이를테면 존재양태에 관한 관념을 추상화시켜 얻은 개념으로, 유부에서는 ‘식유필경(識有必境)’에 근거하여 이를 각기 개별적 실체[別法]로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마음에 분노가 생겨났다’고 할 경우, 분노를 생겨나게 하는 힘, 분노를 마음의 상속상에 획득되게 하는 힘,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범부로 불려지게 하는 힘과 같은 추상적인 힘을 존재범주의 하나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이에 반해 경량부에서는, 이는 다만 소의신의 상속상에 나타나는 여러 상태를 개념적으로 가설한 것(prajñapti)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세친도 대체로 이에 동조하였기 때문에 본론에서는 그에 대한 비판이 전편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60)
즉 어떤 이는 ‘득’ 등에 대해 온득(蘊得)ㆍ처득(處得)ㆍ계득(界得)을 별도로 분별하고 있지만, 이는 ‘득’과 본질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종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
61)
득(prāpti)과 비득(aprāpti)은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득’이 유정으로 하여금 자신이 상속한 유위제법이나 택멸 비택멸의 무위법과 적극적으로 관계[合ㆍ持]시키는 힘이라면, 비득은 그러한 제법과 소극적으로 관계[離ㆍ失]시키는 힘을 말한다. 다시 말해 유부에서는 유정들로 하여금 지옥 등의 악과(惡果)를 얻게 하고 천상의 선과(善果)를 얻게 하는 등 3계ㆍ9지ㆍ5취ㆍ4생ㆍ범성(凡聖)ㆍ유루 무루의 차별을 있게 하는 힘[所得諸法의 生因]을 개별적인 실체(別法,pṛthag dharma)로 설정하여 그 실재성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득의 실재성을 부정하게 되면 범성(凡聖)의 차별은 물론 번뇌의 이단(已斷)ㆍ미단(未斷)을 구별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번뇌단멸의 획득은 그것을 획득하게 하는 힘(불상응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2)
『구사론』 제4권(앞의 책,p.192))에서는 아직 얻지 못하였거나 이미 상실한 것을 지금 획득하는 것을 ‘획(獲)’이라 하고, 획득하여 상실하지 않는 것을 ‘성취’라고 하였다.
63)
이생(pṛthagjana, 혹은 범부)이란 아직 성법(聖法)을 획득하지 못한 자, 다시 말해 성법의 비득(非得)을 자성으로 삼는 자를 말한다.(후술)
64)
예컨대 나에게는 나의 번뇌와 나의 업 등에 대한 득과 비득이 존재하지만, 타인의 번뇌와 업 등은 결코 나와 관계(득)되거나 이미 관계되었다가 상실되는 일(비득)은 없으며, 또한 돌의 견고함 등에 대해서도 성취ㆍ불성취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65)
『장아함경』 제3권 『유행경(遊行經)』(대정장1,p.21중): 『중아함경』 제11권 『칠보경(七寶經)』(대정장1,p.493상): 『잡아함경』 제27권 제721경과 제722경(대정장2,p.194상) 등에서 전륜왕에 대해 설하고 있는데, 이 왕은 정법으로 통치하는 이상적 군주로서,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32상을 갖추고서 윤보(輪寶)ㆍ상보(象寶)ㆍ마보(馬寶)ㆍ신주보(神珠寶)ㆍ옥녀보(玉女寶)ㆍ장신보(藏臣寶,혹은 居士寶)ㆍ병신보(兵臣寶) 등의 7보를 성취한다. 그렇다고 할 때 윤보와 같은 비유정물이나 옥녀 같은 타인의 상속에 속한 제법에 대해서도 획득 성취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자상속(自相續)에 속한 법에 대해서만 득과 비득이 존재한다고 한 앞의 논의는 이와 같은 경설에 어긋나지 않는가? 이에 대해 중현은, 여기서 ‘성취’라고 하는 말은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66)
“모든 이생도 최후의 존재[最後有]에서 결정적으로 무루를 낳을 것이라면 마땅히 성자라고 해야 할 것이며, 모든 아라한도 최후의 마음에서 결정적으로 무루를 다시 낳을 수 없게 된다면 마땅히 아라한이 아니라 바로 물러나 이생을 성취하여 세속에 머문다고 해야 할 것이다.”(『순정리론』 제12권). 즉 만약 현재법이 아니라 미래법을 능히 낳을 수 있는 힘을 ‘성취’라고 한다면, 범부도 미래 언젠가 무루를 낳을 것이므로 성자라도 불러야 할 것이며, 아라한도 최후심에서 무루를 낳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범부라 불러야 할 것이라는 뜻.
67)
이는 『발지론』 제19권(대정장26,p.1022 상: 한글대장경176,p.466)의 “등각지(等覺支)를 성취하는 모든 이, 그들은 무루법도 성취하는가? 답: 등각지를 성취하는 모든 이, 그들은 무루법도 성취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무루법을 성취하더라도 등각지를 성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제 이생이다”에서 뜻을 빌려온 것으로, 무루법에 대해서는 성취(득)와 불성취(비득) 모두가 존재할 수 있다는 논증이다.
68)
초 찰나에 든 구박의 성자란 일찍이 이생위에서 유루 세속도로써 욕계의 어떠한 번뇌도 끊지 못하고서 견도(見道) 제1찰나인 고법지인(苦法智忍)에 든 성자를 말한다. 즉 견도에 들어 성자이기는 하지만 번뇌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구박의 성자’라고 한 것이다. 즉 이와 같은 구박의 성자와 번뇌에 속박된 이생을 제외한 이는 각각의 택멸을 획득한 성자이다
69)
『대비바사론』 제158권(대정장27,p.801중: 한글대장경124,p.183). 유부 득론(得論)에 따르면 어떤 법이 획득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이 구기해야 하는데, 본법(本法)과 득과 다시 이러한 득을 획득하게 하는 득(즉 得得, 이를 小得이라 함, 본론 제7권 주18 참조)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색온은 득득(행온)과 함께 하나의 ‘득’에 의해 획득되며, 무위나 무루도 득득(유위이며, 유루)과 함께 하나의 득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다.
70)
이는, 득은 탐(貪)ㆍ진(瞋) 따위처럼 실체(體,svabhava,그 자체 자성을 지닌 존재)로서 알려지지 않으며, 안(眼)ㆍ이(耳) 따위처럼 그 작용이 알려지는 일도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개별적인 실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라는 세친의 비판에 대한 해명이다.
71)
종자(種子,bīja)설은 경량부가 유부 득론(得論)의 대안으로 제출한 이론으로, 경량부교학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즉 세친은 경량부 설을 쫓아 선법 등의 성취와 불성취, 혹은 번뇌의 이단(已斷)과 미단(未斷)을 ‘득’이라고 하는 실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의신의 종자 차별로써 해명하고 있다. 즉 소의신 중에 상속된 종자의 다양한 차별의 상태를 그렇게 가설(假說)한 것일 뿐 개별적인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구사론』 제4권(앞의 책,p.196-8), 『순정리론』 제12권을 참조할 것.
72)
종자와 선ㆍ불선심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선심도 불선심의 종자가 되어야 하고 불선심도 선심의 종자가 되어야 하며, 선업도 악취의 과보를 낳아야 하고 악업도 인간의 과보를 낳아야 한다는 뜻. 보다 자세한 비판은 『순정리론』 제12권을 참조 바람.
73)
경량부(세친)에서는 ‘득(성취)’의 개별적인 실체성을 부정하고, 소의신 중에 어떤 법의 종자가 미발(未拔)ㆍ미손(未損)의 상태를 가설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를테면 소의신 중의 선법종자가 아직 손상되지 않은 상태를 ‘성취(혹은 未斷)’라고 하고, 손상된 상태를 ‘불성취(혹은 已斷)’라고 하였다. 그러나 완전히 손상될 경우 다시는 선법이 상속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 때의 손상은 ‘완전한 손상[畢竟害]’이 아니라고 하였다.(『구사론』 제4권, 앞의 책,p.197) 본 논설은 이에 대한 비판이다.(자세한 비판은 『순정리론』 제12권을 참조 바람)
74)
종자가 제법생인(生因)인 것과는 달리 ‘득’은 이미 생겨난 법을 어떤 한 유정의 상속에 획득하게 하는 힘이다.
75)
여기서 ‘수계’ 등은 모두 종자의 다른 이름으로, 이는 대중부의 수면(隨眠)이나 섭식(攝識), 상좌부의 유분식(有分識) 등과 함께 모두 제법의 생인(生因)으로 설정된 개념이다.
76)
‘득’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3세법에 따라 아홉 가지가 있다. 즉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의 법에는 각기 과거득ㆍ현재득ㆍ미래득이 있는데, 이를 획득되는 법[所得法]과의 선후관계로서 분별하면 법전득(法前得)ㆍ법구득(法俱得)ㆍ법후득(法後得)의 세 가지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3세법이 아닌 무위2법의 득은 非前後俱得임) 3세의 득의 3세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차항(次項) 및 주35) 참조.
77)
획득되는 법이 선이면 그것을 획득하게 하는 득도 선이며, 불선ㆍ무기이면 그것 또한 불선ㆍ무기이다.
78)
3계에 계속(繫屬)되지 않는 무루법의 경우, 비택멸의 득은 유계법과 마찬가지로 3계계로서, 욕계의 연(緣)이 결여되어 비택멸을 획득하면(비택멸이란 緣缺不生法임) 그 때의 득은 욕계계이며, 색ㆍ무색계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택멸의 경우 색ㆍ무색계에서 유루도(6行觀)로써 증득하였으면 그 때의 득은 각기 색ㆍ무색계의 계이지만, 성도인 무루도(즉 도제)로써 증득하였다면 무루로서 불계(不繫)이다. 그리고 도제는 유위이나 유위법의 득은 획득되는 법[所得法]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도제의 득은 오로지 무루이다. 그래서 무계법의 득에는 전체적으로 네 종류가 있다고 한 것이다.
79)
득(得)에는 소득법(所得法) 즉 생겨나는 법에 선행하는 법전득(法前得)과 동시에 구기(俱起)하는 법구득(法俱得)과 과거로 낙사(落謝)한 후에 존재하는 법후득(法後得) 세 가지가 있는데, 무부무기의 득은 소득법과 함께 생기하는 법구득이다(따라서 本法이 만약 과거이면 득도 역시 과거이며, 本法이 만약 미래이면 득도 역시 미래이며, 本法이 만약 현재이면 득도 역시 현재이다). 본 문에서 앞뒤란 법전득 법후득을 말한다. 즉 법전득이란 소득법이 현재 생겨나기 전에 이미 득의 세력이 나타나서 소득법을 유정에 획득되게 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극(極)선심이나 극악심과 같은 것은 그 성질이 치성(熾盛)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현재 생겨나기 전에 미리 득의 세력이 유정상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어미소(득)가 송아지(所得法)를 이끌고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 태양이 떠오려고 할 때 그 서광이 동녘에 비치는 것과 같다. 법후득은 소득의 법이 이미 과거로 낙사(落謝)한 후에도 여전히 그 세력이 남아 낙사한 법을 유정에게 계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송아지(득)가 어미소(낙사한 과거법)를 따르는 것과 같고, 해가 진 후에도 그 빛이 서쪽 하늘에 비치는 것과 같다. 이 밖에도 비전후구득(非前後俱得)이 있는데, 이는 위의 세 가지 득이 아닌 것으로, 말하자면 상주하여 전ㆍ후ㆍ구(俱)의 차별이 없는 택멸과 비택멸의 무위법의 득을 말한다.
80)
천안과 천이통은, 선정력에 의해 인기된 색계의 수승한 안ㆍ이근에 의지하여 일어난 안ㆍ이식과 상응하는 혜로서, 수득(修得) 무기인 천안ㆍ천이식과 상응하는 혜(慧)이기 때문에 이 역시 무기이다.(본론 제76권 ‘6통’ 참조) 또한 능변화심은 몸을 변화시키고 애기나 궁전 따위를 화작(化作)하기 때문에 능히 변화하는 마음으로, 이는 신경통(神境通)에 의해 인기된 것으로서 신통의 결과이기에 역시 무기이다. 즉 앞의 두 신통은 먼 곳의 색과 소리를 보고 들으며, 능변화심은 변화 화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세력이 강성하다고 한 것이다.
81)
공교처란 기술과 공예를 말하는 것으로, 신(身)공교는 색ㆍ향ㆍ미ㆍ촉을 본질로 하고, 어(語)공교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본질로 한다. 그리고 위의로란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와 같은 일상의 행동거지로, 일반인의 경우 이 두 가지의 득은 삼세단(斷)이고 찰나단이기 때문에 법구득이지만, 부처와 비습박갈마천신(毘濕縛羯磨天神,Viśvakarman deva,제석천의 신하로 工作의 신), 혹은 부처와 마승필추(馬勝苾芻, 초전법륜 시 다섯 비구의 한사람)와 같이 공교처 혹은 위의로를 지극히 잘 수습한 자의 경우, 이 두 가지의 득은 법전ㆍ법후ㆍ법구득이다.
82)
유부무기색이란 수소단의 번뇌에 의해 일어난 유부무기의 신ㆍ어표업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오로지 색계 초정려에 국한된 법이다.
83)
욕계의 계속(繫屬)되는 선의 색이란 별해탈계 등의 표ㆍ무표업을 말하며, 불선의 색은 살생 등의 표ㆍ무표업을 말한다. 즉 이러한 것들은 소위 불수심전(不隨心轉)의 계(戒)로서 세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법전득이 아니며, 다만 법구득이고 법후득일 뿐이다.
아비달마장현종론 제7권
1)
본송의 제2구와 제3구는 이생성의 정의로서, 세친은 ‘다만 성법이 생겨나지 않은 상속의 분위차별(分位差別)을 일컬어 이생성이라고 한다’는 경부사(經部師)의 설을 선설(善說)로 받아들이고, 실체로서의 성법의 ‘비득’을 주장하는 유부의 이생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본송 중에서 ‘인정한다[許]’고 말한 것이지만, 중현은 이를 삭제하지 않고 있다.
2)
비득의 성(性)은 소의 즉 본법(本法)에 의거하여 판별하지 않는다. 즉 만약 번뇌의 비득이 불선이라고 한다면 이미 번뇌를 끊은 자도 불선을 갖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며, 만약 번뇌의 비득이 선이라고 한다면 이생에게도 연결불생(緣缺不生)인 번뇌의 비득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선근을 끊은 자도 선을 갖추고 있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루법의 비득이 무루라고 한다면 이생도 역시 성법을 성취하였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이생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득은 오로지 무부 즉 정(淨)의 무기이다.
3)
현재법은 이미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현재의 비득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과거ㆍ미래의 비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과거ㆍ미래법에는 각기 3세의 비득이 존재하지만, 이를 획득되지 않는 법[所不得法]과의 선후관계로서 분별하면 법전비득(法前非得)과 법후비득(法後非得)의 두 가지로 고려될 수 있다.
4)
즉 욕계의 유정이 욕계법을 획득하지 않았을 때의 비득은 욕계에서의 비득이고, 색계의 유정이 욕계법을 획득하지 않았을 때의 비득은 색계에서의 비득이며, 무색계의 유정이 욕계법을 획득하지 않았을 때 비득은 무색계에서의 비득이다.
5)
이하 ‘득’의 제법분별에 준하여 비득에 대해서도 3학(學)ㆍ3단(斷)을 분별해야 하지만, 다음에서 논의하듯이 비득은 결정코 유루이기 때문에 비학비무학이고 수소단임이 자명하므로 이에 대해 분별하지 않은 것이다.
6)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제2권(대정장26,p.926 중, 한글대장경176,p.56).
7)
여기서 일체의 성법이란 고법지인(苦法智忍)에서 고류지(苦類智)를 비롯한 진(盡)ㆍ무생지(無生智) 등 유ㆍ무학의 일체의 성법을 말한다.
8)
즉 일체의 성법을 획득하지 않은 자를 이생이라 한다면, 세존마저도 성문ㆍ독각의 성법을 획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생이라고 해야 한다는 뜻.
9)
성법(聖法)의 비득만이 이생일 뿐 성법을 조금이라도 획득한 이라면 (예컨대 견도 제1찰나인 고법지인이라도 획득한 이라면) 그는 이생이 아니라는 뜻.
10)
일부의 성법만 획득하여도 이생이 아니라고 한다면, 앞서 인용한 본론(『발지론』)에서는 ‘획득하지 않은 것’에 ‘순전히’라는 말을 덧붙여 ‘순전히 획득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었어야 한다는 뜻.
11)
즉 ‘모기는 물을 먹고 매미는 바람을 먹는다’고 설하는 경우, 여기에 비록 ‘순전히’라는 말이 없을지라도 그것들은 순전히 물과 바람만을 먹을 뿐 거기에 다른 어떤 것도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원문에서는 ‘섞여있다’의 ‘잡(雜)’이 ‘이(離)’로 되어 있지만, 『순정리론』(제12권)에 따라 고쳐 번역하였다.
12)
『구사론』 제4권(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 p.207). 『구사론』에서는 이를 경부사(經部師)가 설한 이생성에 관한 선설(善說)로 전하고 있다.
13)
예류향 즉 견도위의 성자에는 근기의 차별에 따라 수신행(隨信行)과 수법행(隨法行)의 성자로 나누어지는데, 일찍이 이생위에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믿고 공경함으로써 가행을 닦은 둔근(鈍根)의 성자를 수신행이라고 한다면, 경전 등을 통해 스스로 증득한 법에 따라 가행을 닦은 이근(利根)의 성자를 수법행이라고 한다. 즉 이들은 일 찰나의 세제일법을 거쳐 무간에 정성이생의 견도위(즉 고법지인)에 든 자이다. 그런데 만약 ‘성법을 낳지 않은 안(眼) 등 6법이 상속하는 상태를 차별하여 이생성이라 한다’면, 견도위의 성자도 안 등의 6법을 갖고 있으므로 이는 ‘이생의 경지를 초월하였다’는 경설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14)
견도위에서는 안근 등의 6법을 버리지 않으므로, 만약 [‘성법의 비득’이라는] 이생성이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초월할 만한 (혹은 버릴 만한) 별도의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계경의 뜻에 어긋나게 된다는 뜻.
15)
비득이란 어떤 법을 획득하지 않는 것이므로 그와 같은 법을 획득하게 될 때 그것의 비득을 버리게 되며, 또한 욕계ㆍ4정려ㆍ4무색정의 9지 중에서 생을 바꾸게 될 때 바꾸어진 생의 비득을 버리게 된다.
16)
금강유삼마지란 무색계 유정지(有頂地, 즉 비상비비상처)의 제9 하하품의 번뇌를 끊는 무간도를 말하는 것으로, 비록 그 이하의 번뇌는 이미 끊어져 이것에 의해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는 사실상 일체의 번뇌를 끊는 작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금강석에 비유하여 금강유정(金剛喩定)이라고 한다. 즉 유정지 제9품의 번뇌를 끊는 무간도의 선정은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예리하여 어떠한 번뇌도 능히 깨트릴 수 있기 때문에 금강유정이라고 한 것으로, 여기까지가 아라한향(向)이며, 다음 순간 제9 하하품의 해탈도인 진지(盡智)가 생겨나는데, 이 때 바야흐로 아라한과를 성취하므로 아라한과의 비득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17)
유부에 의하면 아라한에는 퇴법(退法) 내지 부동법(不動法) 등의 6종성이 있는데, 이러한 6종성 가운데 앞의 5가지는 좋은 의복이나 음식 침구 처소 혹은 설법과 인물을 만나는 때를 기다려 비로소 선정에 들어 해탈할 수 있기 때문에 시해탈(時解脫)이라고 하며, 부동법은 좋은 인연이 도래하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삼매에 들어 해탈을 획득하기 때문에 불시해탈(不時解脫)이라고 한다. 곧 시해탈아라한이 불시해탈을 획득할 때 그것의 비득을 버리게 된다.
18)
어떤 법을 획득하게 하고 획득하지 않게 하는 것이 득과 비득이라면, 그것을 다시 획득하게 하고 획득하지 않게 하는 득과 비득이 있어야 하고, 마침내 무한소급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유부에서는 본법을 획득하게 하는 득을 대득(大得, 비득은 大非得)이라 하고, 대득을 획득하게 하는 득을 소득(小得, 비득은 小非得)이라고 하여, 대득은 본법과 소득을 획득하고, 소득은 대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형태는 유위 4상(相)의 본상(本相,이를테면 生相)과 수상(隨相,이를테면 生生相)의 경우와 동일하다.(후술)
19)
여기서 동분(sabhāgatā)이란 온갖 유정을 유정이게끔 하는 동류상사성(causes of resemblance between living beings, similarity), 혹은 보편성(common characteristic of sentient beings), 내지는 비유정과 차별시키는 고유성ㆍ특수성을 말하는 것으로, 유부에서는 이를 자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別實物]로 간주하고 있다.
20)
여기서 ‘본론’이란 『발지론』 제2권(대정장26,p.926중). 『품류족론』 제1권(대정장26,p.692하)에도 나온다. 즉 송문에서는 제한된 자수(字數)로 인해 동분이라 하였으나, 완전한 명칭은 중동분(衆同分,nikāya-sabhāgatā)이다.
21)
인간과 축생은 업에 의해 초래된 것이지만, 제근(諸根)의 작용이나 먹고 마시는 것이 같고 다른 것은 그러한 업에 유사성과 차별성(즉 중동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뜻.
22)
유부 제법분별에 따르면 유정은 유정으로서의 보편성 즉 동분을 갖기 때문에 유정이라 불리는 것으로, 그러한 동분을 획득할 때 비로소 유정의 생이 낳아지게 된다. 따라서 한 유정의 생을 현상시키는 보편적 동분(무차별동분)은 하나의 업에 의해 초래되는데, 이러한 업을 인업(구역은 總報業)이라 하며, 남녀ㆍ빈부ㆍ귀천 등 어떤 한 생의 내용을 구성하는 개별적 동분(유차별동분)은 다수의 업에 의해 초래되는데, 이러한 업을 만업(구역은 別報業)이라 한다. 여기서의 논의는 인간이나 축생 등의 신체적 형태는 보편적 동분에 근거한 인업에 의해 초래된다는 것이다.
23)
유정, 이를테면 인간의 신체적 형태가 오로지 업의 소산이라면, 업은 욕락(欲樂)하는 바에 따라 행할 수도 있고 행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서로 동류상사성이 없어야 한다는 뜻.
24)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10-211)에 따르면, 유정의 보편성에 근거한 동분을 ‘무차별(abhinna) 동분’이라 하였고, 유정의 차별적 형색에 근거한 동분을 ‘유차별(bhinna) 동분’이라 하였다. 즉 전자가 보다 높은 보편이라면, 후자는 각각의 유정의 차별에 따라 욕계, 인간, 크샤트리야, 샤캬(族姓), 남자, 필추(출가자), 무학(아라한)으로서의 보편성 즉 낮은 보편이라 할 수 있다. 본론에서는 이러한 술어를 사용할 경우 후술하는 바이세시카(Vaiśeṣika,勝論) 학파와의 변별성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에 고의로 삭제한 것으로 생각된다.
25)
동분은 오로지 유정에만 존재하지만, 유정의 소의가 되는(다시 말해 중동분의 근거가 되는) 5온ㆍ12처ㆍ18계와 같은 법은 일체 유정에 공통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동분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26)
이에 대해서는 주29) 이하를 참조할 것.
27)
이하 동분 실유론에 대한 경량부의 일곱 가지 논란(『구사론』 제5권, 앞의 책,p.212~213)과 이에 대한 해명이 진술된다. 즉 경량부에서는 동분을 유위제법의 존재방식 상의 유사성 즉 그것의 동류상사(同類相似)를 개념적으로 언표한 것(假立,prajnapti)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여, 유부와는 달리 유정과 비유정법상에 모두 통용된다고 주장하였다. 본론설은 경량부의 첫 번째 논란으로, 만약 이생동분이라고 하는 법이 별도로 실재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생성을 따로 주장하는가? 하는 뜻이다. 즉 유부에서는 성법(聖法)의 비득(非得)을 자성으로 삼는 이생성을 실체로서 논의하고 있는데(전술), 그렇다면 이생을 이생이게끔 하는 실유로서의 이생동분은 또 무엇인가? 적어도 인동분(人同分)을 배제하고 인성(人性)을 생각할 수 없듯이 이생동분과 이생성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28)
경량부의 두 번째에서 네 번째 논란. 즉 동분은 색법과 같은 구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지각[現見]되지 않으며, 수(受)ㆍ상(想)과 같은 별도의 구체적 작용도 없기 때문에 추리[覺慧了別]될 수도 없으며, 나아가 세간에서는 비록 유정의 동분을 알지 못할지라도 유정에 대해 어떠한 차별도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설혹 동분이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에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하는 힐난.
29)
경량부의 다섯 번째 논란. 즉 보리나 콩 등의 비유정물도 각기 그것들 자체로서는 서로 유사성이 있는데, 어떠한 이유에서 유정의 동분만을 인정하는 것인가? 이는 다음의 논란처럼 유부의 동분설은 바이세시카학파의 ‘보편[總同,samanya]’의 개념과 매우 유사한데, 유부에서도 존재[法]에 대한 최고의 보편을 주장하려면 마땅히 그 학파처럼 비유정의 보편성[無情同分]도 주장해야 한다는 뜻.
30)
경량부의 여섯 번째 논란. 동분이 개별적이고도 다수의 존재라면 그러한 동분을 동분이게 하는 보편성, 즉 동분의 동분을 설정해야 하며, 마침내 무한소급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만약 동분의 동분을 설정하지 않을 경우 개별적인 동분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동분이라고 이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뜻의 난문.
31)
경량부의 일곱 번째 논란. 승론(勝論) 즉 바이세시카 학파에서는 실체[實]ㆍ속성[德]ㆍ운동[業]ㆍ보편[同]ㆍ특수[異]ㆍ내속[和合]의 여섯 가지 범주[句義]로서 세계를 해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총동구의(總同句義)와 동이구의(同異句義)는 제4, 제5 범주로서, 사물을 공통되게 하고 차별되게 하는 원리이다. 즉 그들에 의하면 인식되어진 것[覺]은 이 같은 원리에 의해 보편과 특수로 개념 지어질 수 있다는 것으로, 유부의 무차별동분과 유차별동분은 바로 이러한 승론학파의 두 구의와 다르지 않다는 뜻의 힐난.
32)
“비바사사(毘婆沙師)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과 이러한 동분은 그 뜻이 동일하지 않으니, [그들은 보편이라고 하는] 단일한 존재[一物]가 다수의 법에서 일어난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구사론』 제5권, 앞의 책, p.214) 즉 바이세시카학파의 ‘보편’은 일체 만유에 편재(遍在)하는 단일한 원리로서 실재(vastu)이지만, 유부의 동분은 완전히 개별적인 것으로서 각각의 법에 해당하는 만큼 다수로 존재할뿐더러 찰나에 생멸하는 유위법이다.
33)
이는 ‘무상유정천 즉 광과천은 항상 무상(無想)이라 해야 할 것인가, 역시 유상(有想)이라 해야 할 것인가?’(『구사론』 제5권, 앞의 책,p.215)에 대한 해명이다.
34)
광과천(bṛhat-phala-deva)이란 색계 제4선의 8천 중 제3천으로, 여기에는 대범천이 거주하는 초정려의 범보천(梵輔天)처럼 고대누각이 있다. 참고로 카슈미르 대 논사들은 초정려의 범보천과 대범천을 하나로 간주하듯이 무상천과 광과천을 하나로 간주하지만, 외국사는 제4정려에 9천을 세워 무상천을 광과천과는 다른 곳으로 생각한다.(『대비바사론』 제154권, 한글대장경124,p.91)
35)
순후수업(順後受業)이란 현세에 업을 짓고 미래 제3생, 혹은 그 이후에 과보를 초래하는 업으로서, 무상과인 광과천(미래생)의 세력이 다하고 나면 반드시 욕계에서의 생(제3생)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북구로주는 인취(人趣) 4주(洲) 중의 1주로서 여기에 태어난 이는 다음 생(제3생)은 반드시 욕계천에 태어나게 된다.
36)
이에 반해 앞의 무상과는 무상정에 의해 초래되는 이숙과이기 때문에 다만 ‘무상’이라 하였다.
37)
전자는 한정복합어[依主釋]에 의한 해석이고, 후자는 동격복합어[持業釋]에 의한 해석이다.
38)
즉 제4정려 이하의 지(下地)에는 희수ㆍ낙수ㆍ고수ㆍ우수 등 다양한 수(受)의 행상이 거칠게 작용하여 심(心)ㆍ상(想)을 소멸하기 어렵지만, 제4정려에는 오로지 그 행상이 미세한 사수(捨受)만이 존재하여 단멸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색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에는 소의신이 존재하지 않아 심ㆍ심소마저 소멸할 경우 존재 멸무(滅無)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39)
무상천의 유정은 무상(無想)인 동안은 5온을 취하지 않지만, 처음 태어날 때와 죽으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심ㆍ심소를 일으키기 때문에 5온을 갖추게 된다. 즉 무상정은 다음 생에 무상유정천의 5온을 초래하므로 굳이 본송에서 ‘선’임을 밝히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는 뜻의 힐난.
40)
만약 본송 중에서 무상정을 ‘선’이라고 설하지 않았다면 염오무기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뜻.
41)
본권 주10), 11) 참조.
42)
순생수(順生受, 혹은 順次生受)는 미래 즉 다음 생에 과보를 받는 것, 순현수(順現受, 혹은 順現法受)는 현생에 받는 것, 순후수(順後受, 혹은 順後次受)는 다음 생 이후에 받는 것, 순부정수(順不定受)는 받는 시기와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과보를 초래하는 시기에 따른 이 같은 이숙업의 분류에 대해서 본론 제21권 ‘삼시업(三時業)’을 참조 바람.
43)
이에 반해 세친은 “만약 이러한 무상정을 일으켰다가 그 후 비록 물러남이 있을지라도, 전(傳)하여 설(說)하는 바에 따르면 현신(現身)에 반드시 다시 그것을 능히 일으켜 당래(當來) 무상유정천 중에 태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무상정을 획득하면 반드시 능히 정성이생(正性離生,즉 견도위)에 들 수 없다”고 하였다.(『구사론』 제5권, 앞의 책, p.218) 즉 무상정은 이생만이 닦는 선정으로, 이 선정에 들게 되면 다음 생에는 반드시 500대겁 동안 무상천에 태어나기 때문에 그 사이 무루지를 수득(修得)할 수 없다는 것이다.
44)
“만약 제 성자가 제4정려의 선정을 수득(修得)할 때, 정려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미래의 무상정도 역시 획득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획득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인가?”(『구사론』, 앞의 책,p.218) 즉 선정의 획득에는 가행득(加行得)과 이염득(離染得)이 있는데, 만약 제3정려지의 염오를 떠나 제4정려를 수득한다고 할 때, 과거ㆍ미래의 온갖 정려 즉 유심정(有心定)이 획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상정의 경우도 역시 그러한가 하는 물음.
45)
무상정은 지금 현재의 무심의 상태이기 때문에, 또한 오로지 가행득(加行得)일 뿐 이염득(離染得)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의 것은 성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무상정을 처음으로 획득할 때에는 오로지 현재의 그것만을 획득할 뿐이며, 제2찰나 이후 출정할 때까지는 과거의 그것도 성취할 수 있지만, 미래의 그것은 획득 성취되는 일이 없다.
46)
멸진정은 무심정이기 때문에 무심의 상태에서는 선ㆍ악 어느 것으로도 기표(記票)할 수 없을지라도 선의 가행력에 의해 인기된 것이기 때문에 등기선(等起善)이다.
47)
멸진정은 이숙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과보를 향수(享受)하는 것이나 시기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
48)
예컨대 아라한이 멸진정을 얻어 욕계에서 반열반하는 경우, 이러한 멸진정에는 그 과보가 없는 것이다.
49)
멸진정은 유정(有頂) 즉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에 포섭되기 때문에 그 과보도 역시 그곳의 유정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색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4온의 이숙이라 하였다.
50)
이염득이 아니라 가행득이라는 점은 앞의 무상정의 경우와 동일하며, 따라서 3세의 획득 성취에 있어서도 무상정의 경우와 동일하다.
51)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22).
52)
금강유삼마지(또는 金剛喩定)는 유정지 제9 하하품의 번뇌를 끊는 단계(무간도)로서, 이로부터 ‘나는 이미 고를 알았고, 집을 끊었고, 멸을 작증하였고, 도를 닦았다’고 아는 진지(盡智,해탈도)가 일어난다. 이는 보살에게 있어서는 깨달음의 단계[等覺位]이며, 아라한에게 있어서는 아라한향의 최후 단계이다.
53)
구분해탈(또는 俱解脫)이란 번뇌와 해탈의 장애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아라한에는 무루혜에 의해 일체의 번뇌의 장애[煩惱障]을 끊은 혜해탈(慧解脫)과, 이와 아울러 멸진정을 획득하여 선정의 힘으로써 해탈의 장애[解脫障]를 끊은 구해탈 두 종류가 있는데(해탈의 장애란 無覆無記性인 불염오무지 즉 비번뇌성의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올바른 지혜가 생겨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해탈이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의 문제는 부처는 진지를 획득하기 전에 멸진정을 일으킨 적이 없는데 어떻게 구분해탈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54)
이를테면 부처는 3아승지겁 동안 불염오무지를 끊어 해탈장(혹은 定障)은 끊었기 때문에 멸진정을 일으키는데 자재하다. 따라서 언제라도 일으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이 멸진정을 일으킨 자와 마찬가지로 ‘구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는 뜻.
55)
서방사(pāscatyāḥ)는 『광기(光記)』나 『보소(寶疏)』에 의하면 건타라(健馱羅)의 유부논사. 즉 이들에 따르면, 보살은 먼저 이생의 단계에서 하(下) 8지(地)까지의 수혹을 끊고, 그로부터 보리수 아래서 34찰나[心]에 걸쳐 번뇌[結]를 끊고 성도하는데, 처음에 견도 16찰나를 닦은 다음 멸진정을 닦고, 다시 유정지(有頂地) 9품의 번뇌를 끊음에 있어 9무간도와 9해탈도의 18찰나를 닦아서 불과(佛果)를 성취한다.
56)
보살은 이미 유루 6행관으로써 무소유처까지의 수혹을 끊었기 때문에 견도 16찰나(8忍ㆍ8智)에 의해 3계의 견소단의 번뇌를 끊고, 18찰나에 걸친 무간도와 해탈도로써 비상비비상처의 제9품의 수혹을 끊고 그것을 작증함으로써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바야흐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하였다. 그리고 이 때 금강유정(金剛喩定,비상비비상처 제9품의 수혹을 끊는 무간도)에 머물면서 진지와 무생지를 낳음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선정과 지혜바라밀다를 성취하게 된 것이다.
57)
여기서 ‘동류가 아닌 마음’이란 이를테면 유정지(有頂地)의 유루심으로, 멸진정에 들어가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즉 이러한 마음은 무루의 34심과 다르기 때문에 ‘동류가 아닌 마음’이라 하였다.
58)
기심(期心)이란 기약하는 마음. 즉 보살이 보리수 아래 앉아 ‘나는 34념에 성도하리라’고 결심하여 기약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런데 만약 중간에 무루와 동류가 아닌 멸진정에 들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면, 이러한 기심을 어기게 되는 허물이 있게 되는 것이다.
59)
『발지론』 제19권(한글대장경176,p.476 참조). 다만 여기서는 무상천에 태어나 무상에 든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60)
즉 색계의 유정은 원칙적으로 색계의 5온으로 이루어지지만, 필시 5온 전부를 갖추지 않은 경우도 있다. 첫째 무상천 이외의 색계에 태어났으면서 그것과 동류가 아닌 마음, 이를테면 무색계심이나 무루심을 낳을 경우, 이러한 상태에서는 색과 행만이 색계이며 다른 것은 색계의 계(繫)가 아니기 때문에 5온을 갖추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 유상천에 태어나 거기서 무상천에 들 경우, 이 역시 색과 행만이 색계이다. 셋째는 유상정에서 멸진정에 드는 경우이며, 넷째는 무상천에 태어나 무상이숙에 드는 경우이다.
61)
무상정은 범부나 외도가 드는 선정이기 때문에 욕계나 색계 어디에서도 그것의 초기(初起)가 가능하지만, 멸진정은 오로지 성자에게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무시(無始)이래 일찍이 일어난 적이 없는 선정이다. 따라서 그 초기는 욕계 인취 중에 한정된다. 즉 욕계의 인간세상 중에서는 불설(佛說)의 힘이 있으며, 또한 강성한 가행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계에는 이러한 힘이 없다.
62)
멸진정은 처음에는 오로지 욕계 인취에서만 생기하며, 그 후 그이가 먼저 일단 그 선정에서 물러나고서 색계에 태어날 때 그이의 색계 소의신에 의지하여 비로소 색계에서 생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대로 색계에는 강력한 가행력이 없기 때문이다.
63)
여기서 단식천은 단식을 수용하는 욕계6천을 말하며, 의성천이란 부모의 정혈(精血) 등의 연을 빌리지 않고 마음대로 몸을 성립시킬 수 있는 색계천을 말한다.
64)
경문(經文)의 뜻은, 계ㆍ정ㆍ혜의 3학을 갖춘 불환과의 비구는 욕계에서 자유로이 멸진정에 들고 나지만 병이나 그 밖의 퇴연(退緣)을 만날 경우 무학의 승해를 일으켜 무학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즉 사후 바로 유정(有頂)으로 가지 않고 색계로 가 거기서도 역시 멸진정에 들고 나는 것으로, 만약 생전의 욕계에서 물러남이 없었다면 색계에 태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니, 이에 따라 멸진정에 물러남이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65)
즉 무상정과 멸진정 사이에는 각기 4정려와 유정지(有頂地)에 존재한다는 지(地)의 차별, 해탈의 출리상(出離想)과 정주(靜住)의 지식상(止息想)을 우선으로 한다는 가행의 차별, 이생과 성자의 상속에서 일어난다는 상속의 차별, 무상(無想)과 유정(有頂)의 이숙과라는 이숙의 차별, 순생수와 순생ㆍ순후ㆍ부정ㆍ불수의 과보를 받는 시기[順受]의 차별, 욕ㆍ색계와 인취 중에서 최초로 일어난다는 초기(初起)의 차별이 있었다.
66)
본론 제2권 ‘심소법 중 수ㆍ상만을 별도의 온으로 설정한 이유’ 참조.
67)
이에 반해 비유논자(譬喩論者,『구사론』상에서는 『婆沙』의 世友와 동명이인의 세우)는 “만약 멸진정이 일체의 심ㆍ심소가 모두 소멸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죽음의 상태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오로지 ‘수’와 ‘상’만이 소멸한 것”이라는 멸정유심설(滅定有心說)을 주장하였다. 멸정유심설과 무심설의 문제는 이후 논의하는 입정(入定) 전의 마음과 출정(出定) 후의 마음의 상속문제(마음이 완전히 끊어진 무심의 상태라면 출정 시 어떻게 그것이 다시 상속할 수 있을 것인가?)와 결부된 것으로, 경부본사 쿠마라라타와 그의 문도들인 비유논자들이 멸정유심설(細心說)을 주장하는 반면, 유부는 무심설(前定心等無間緣說)을 주장한다. 참고로 말경부(末經部)로 일컬어지는 경량부에서는 멸정무심설을 주장하지만 색심호훈설(色心互熏說)로써 상속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권오민,『유부 아비달마와 경량부철학의 연구』,경서원,1994, p.454~460 참조)
68)
이에 반해 비유논자는 이 때 ‘함께[俱]’라는 말을 무간의 생으로 해석한다.(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13권 참조)
69)
즉 식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 그것은 소의(根)와 소연(境)에 근거된 것이고, 따라서 삼사화합에 의해 촉(觸)ㆍ수ㆍ상ㆍ사의 심소가 일어나게 되므로 멸진정은 온갖 마음이 완전히 멸한 상태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같은 논의는 『구사론』(앞의 책, p.229) 상에서 존자 묘음(妙音,Ghoṣa)의 설로 인용되고 있다.“만약 이러한 멸진정 중에 여전히 식(識)이 존재한다면 3사(事)가 화합하기 때문에 반드시 마땅히 촉이 있어야 할 것이며, 촉을 연(緣)으로 삼아 응당 ‘수’와 ‘상’이 존재해야 할 것이니, 이는 바로 ‘의(意)와 법(法)을 연으로 삼아 의식을 낳고, 3사화합의 촉과 함께 수ㆍ상ㆍ사를 낳는다’고 세존께서 설하신 바와 같다. 그런즉 멸진정 중에 [식이 존재한다면] 수ㆍ상 등의 법도 역시 마땅히 멸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70)
이는 멸진정이 완전한 무심의 상태라면 어떻게 그 후 마음이 다시 생겨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해명으로, 과거 입정전의 마음[定前心]이 등무간연(等無間緣, 또는 次第緣, 前念이 後念의 緣이 되는 것. 본론 제10권을 참조할 것)이 되어 출정 시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참고로 무상ㆍ멸진 2정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경량부에서는 결국 간단없는 ‘상속의 이론’으로써 밖에 설명할 수 없으며, 그것이 이른바 색심호훈설(色心互熏說)이다. 즉 출정심은 과거 입정전의 마음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소의신 상에 훈습된 심종자(心種子)로부터 상속한다는 것이다.(후술) 나아가 비유논자는 완전히 무심의 상태에서는 출정후의 유심의 상태로 전지상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중유세심설(定中有細心說)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71)
유부에서는 제방이라는 객관적 실재물에 의해 강물의 흐름이 차단되듯이 무상정과 멸진정이라고 하는 객관적이고도 개별적인 힘에 의해 대종이 평등하게 되고, 심ㆍ심소가 차단 장애되어 생겨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즉 마음이 차단 장애되는 것은 삼마지(samādhi,대지법의 하나)와 같은 또 다른 의식작용으로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마음과는 다른 불상응행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72)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30). 경량부에서는 전정심(前定心)이 소멸하고서 후기심(後起心)이 아직 일어나고 있지 않는 상태, 혹은 마음이 전생(轉生)하지 않는 소의신의 상태를 일시 가설하여 무상ㆍ멸진정이라 이름할 뿐, 마음을 소멸시키는 개별적 실체로서의 두 선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색계의 중생이 색계로 전생할 때 그때의 색법은 오랫동안 단멸되었던 과거색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심법 중에 훈습되어 있던 색법의 종자로부터 생겨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전정심은 다음찰나 즉 입정 시 과거로 낙사하여 그 작용이 없어지지만 그것에 훈습되어 있던 색법의 종자에서 소의신이 인기 상속되며, 그것이 또 다른 마음, 즉 후기심의 생기를 차단 장애하여 일어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를 색심호훈설(色心互熏說)이라 한다.
73)
다시 말해 선정에 들기 전의 마음은 출정심의 등무간연이 되는 것이지 출정심을 차단 장애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 곧 경량부에서는 이 같이 전정심이 출정심을 차단 장애하는 것을 일시 ‘멸진정’이라 가설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유부에서는 전정심은 출정심의 등무간연이 되기 때문에 ‘멸진정’을 개별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74)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제14권(대정장26,p.993 중: 한글대장경176,p.331). “명근은 욕계계(繫) 내지 무색계계이다. 무엇이 욕계계의 명근인가? 하면 욕계계의 목숨을 말한다. 내지 무엇이 무색계계의 명근인가? 하면 무색계계의 목숨을 말한다.”
75)
『구사론』(제5권, 앞의 책, p.232) 상에서는, 목숨은 일차적으로 체온과 의식에 의해 유지된다고 설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이 세 가지는 마치 세 발의 솥이 넘어지지 않듯이 서로가 서로를 유지시켜 상속 전생(轉生)하게 하므로 마땅히 항상하여 소멸함이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중 무엇이 먼저 소멸해야 나머지가 따라 소멸하겠는가? 그래서 중현은 『구사론』에서의 논설을 삭제하고 ‘목숨[壽]은 업에 의해 낳아지고 전생한다’는 사실을 바로 설하고 있는 것이다.
76)
식(識)은 창조적인 것으로 업의 이숙과가 아니며, 또한 무상정과 멸진정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생동안 수전하지 않는다. 식이 이숙과로서 과거의 업력에 의해 유지되고 지배되는 것이라면 이는 완전히 숙명론으로, 정진도, 정명(正命)도, 열반에 대한 염원도, 영원한 출리도 불가능하게 된다.
77)
그렇기 때문에 명근은 한결같이 업의 이숙과라고 말한 것이다.
78)
중동분 역시 전세에 낳아진 업과 현세의 명근에 근거하여 일어난다.
79)
이는 유위를 유위이게 하는 네 가지 특징적 근거[相,lakṣaṇa]로서, 유위 제법을 생성ㆍ지속ㆍ변이ㆍ소멸하게 하는 원리를 추상화시켜 얻은 개념이다. 따라서 이러한 네 가지 상을 갖지 않은 것이 무위이다.
80)
예컨대 종자로부터 싹이 생겨난다고 할 때, 종자는 싹의 동류의 전생인(前生因)이고, 습도나 온도 등은 이류(異類)의 구생연(俱生緣)인데, 비록 종자가 존재할지라도 습도 등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싹을 틔우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구생연은 전생인에 비해 그 힘이 보다 뛰어나다.(『순정리론』 제13권 ‘4상 俱有에 관한 經主의 논란 비판’ 참조) 곧 유부에서는 결과의 산출을 돕는 이러한 구생연 중 가장 그 힘이 두드러진 것을 ‘생상’이라 하였다.
81)
유부에 의하는 한 유위제법 자체는 3세에 걸쳐 존재하며, 여기서 ‘머문다[住]’는 것은 작용을 획득하여 자신의 결과를 인기하는 현재 일 찰나 동안의 지속을 말한다.(후술)
82)
『순정리론』 제14권에 따르면, “『무장유경(撫掌喩經)』에 ‘필추들이여, 제행은 환상과 같고 불꽃과 같아 잠시 머물다가 바로 다시 [과거로] 낙사(落謝)하여 소멸한다’고 설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83)
경량부는 “제행의 상속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것을 ‘생(生)’이라 이름하고, 끝내 다한 상태를 설하여 ‘멸(滅)’이라 이름하며, 중간의 상속으로 따라 일어나는 것[隨轉]을 ‘주(住)’라고 이름하며, 이러한 [머무는 때의] 전후 차별을 일컬어 ‘주(住)의 이(異)’라고 한다.”(『구사론』 제5권, 앞의 책,p.246)고 하여 ‘생’ 등의 유위 4상을 제법의 상속상에 나타나는 양태로 이해하였다. 이에 반해 유부에서는 찰나에 구유(俱有)하는 개별적 실체로 이해하였다.
84)
유정의 한 생(이를 一期相續이라 함)이 괴로운 것이라고 함은 바로 생을 구성하는 찰나찰나가 괴로운 것이라는 말이듯이, 유위제행이 무상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한 찰나의 생멸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며, 따라서 유위제법의 일 찰나에 생ㆍ주ㆍ이ㆍ멸의 4상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
85)
무색계에는 변이를 초래할 만한 외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잘 관찰된다는 것인가? 변이를 초래할 만한 외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변이가 일어나는 경우, 그것이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만약 저절로 일어난 것이라면 ‘생’ 또한 저절로 나는 것이라고 해야 함) 변이의 내적 조건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상이라는 것이다.
86)
이는 『대비바사론』(제38권, 한글대장경119,p.308)에서 법밀부(法密部)의 주장이다. 즉 그들에 의하면, 멸상의 본질이 유위일 경우 그것은 약하고 이열(羸劣)하기 때문에 제법을 능히 소멸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87)
여기서 계경은 『증일아함경』 제12권(대정장2,p.607하). “세 가지 유위의 유위상[三有爲之有爲相]이 존재한다.” 참고로 여기에서는 종기(從起)ㆍ천변(遷變)ㆍ멸진(滅盡)이라는 말로 언급하고 있다.
88)
모든 무위법 역시 스스로 머무는 것[自住]이기 때문에 주상(住相)은 오로지 유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비달마에서는 유위의 공덕과 과실을 모두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네 종류의 유위상을 설하였던 것이지만, 계경에서는 오로지 유위의 과실만을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다만 세 가지만을 설하였다.(『순정리론』 제13권) 즉 유위법의 과실은 생기ㆍ변이ㆍ소멸이고 공덕은 지속이지만, 무위법의 주(住,sthiti)는 본법(本法)과는 개별적인 존재인 주상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자성[自相]이기 때문에 이것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계경에서는 단지 세 가지 유위상만을 설하였다는 것이다.
89)
즉 유위의 주상(住相)을 설할 경우, 일체의 유정이 이에 집착하여 사리(捨離)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3상만을 유위상으로 설하였다는 뜻.
90)
즉 유위상에 세 가지만 존재한다면, “오로지 세 가지 유위의 유위상이 있다”고 말했어야 하였다는 뜻.
91)
유위제행은 생ㆍ주ㆍ이ㆍ멸의 4상에 의해 생겨나고 내지는 소멸하며, 생상 등의 본상은 4수상에 의해 생겨나고 내지는 소멸한다. 다시 말해 수상은 본상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또 다른 수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후술)
92)
즉 계경에서는 “세 가지 유위의 유위상이 존재한다”고 하여 세 가지 유위상 또한 유위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생생 등의 상이 전제되어야 하며, 따라서 계경에서 말한 ‘생기’ 등에는 생생의 수상 등도 포함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뜻.
93)
즉 계경에서 ‘오히려’라는 말은 생생상을 전제로 한 부사어라는 뜻. 다시 말해 ‘무위법은 오히려 생상도 갖지 않았거늘 하물며 생생상을 가질 것인가’하는 뜻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세존 역시 수상을 설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94)
여기서 소상법이란 유위상에 의해 생ㆍ주ㆍ이ㆍ멸하는 본법(本法)을 말한다. 즉 ‘생’ 등의 네 가지 본상도 불상응행법으로서 결국 유위법의 일종이기 때문에 다시 이를 생기하게 하거나 소멸하게 하는 또 다른 종류의 4상이 요구되며, 나아가 마침내 무한소급에 빠지게 되지 않는가? 하는 난문.
95)
이를테면 어떤 색법이 생기할 때, 거기에는 이미 본법인 색법 자체와 함께 생ㆍ주ㆍ이ㆍ멸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4상을 가능하게 하는 네 가지 수상이 포함되어 있다(9法俱生). 그리고 여기서 생상을 제외한 8법은 생상의 작용(공능)에 의해 생겨나며(즉 네 가지 본상은 각기 8법에 대해 작용한다), 생상은 생생상의 작용에 의해 생겨난다(네 가지 수상은 오직 그것의 본상인 1법에 대해서만 작용한다). 말하자면 본상과 수상은 상호 성립세력 된다는 것이다.(후술)
96)
“마치 암탉이 많은 새끼를 까는 경우도 있고, 오로지 한 마리를 까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생상과 생생상이 여덟 가지 법을 낳고 한 가지 법을 낳게 되는 힘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구사론』 제5권, 앞의 책,p.244)
97)
즉 낙수(樂受)와 고수(苦受)는 대상을 받아들인 것 즉 영납(領納,‘수’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차이도 없지만, 작용의 측면에서는 손해를 낳고 이익을 낳는 차별이 있듯이, 생상과 생생상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는 뜻.
아비달마장현종론 제8권
1)
유부에 따르면 생 등의 4상은 유위법을 유위이게 하는 특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 찰나의 일법 상에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유부에서는 작용 상에 차별이 있기 때문에 비록 4상이 구유할지라도 서로 모순되지는 않다고 하였다. 즉 생상은 미래 정생위(正生位)에서의 작용을 말하며, 주상은 이미 생겨난 본법이 결과를 낳는 작용을, 이상은 그러한 작용이 쇠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본법 자체가 동일한 시간에 생겨나고 머물고 변이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2)
이는 세친의 힐난이다.(『구사론』 제5권,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p.251)
3)
법은 그 작용이 쇠퇴 감손될 때 비로소 자신의 결과를 인기한다.
4)
싹을 낳은 것은 생상이지만, 그러나 생상(생기의 내적 조건)은 반드시 씨앗(전 찰나의 자기존재로서의 원인)과 땅이나 온도 광선과 같은 외적 조건을 근거로 해야 한다.
5)
대론자는 앞서 “인연의 힘만 갖추어지면 제법은 마땅히 생겨나야 한다”고만 하였지 구체적으로 두드러진 인연에 대해 상론하지 않았다.
6)
인연의 힘만 갖추어지면 제법이 생겨나는 것이라면, 선행된 업에 의해 안근이 생겨날 때 대종의 공력에 의해서도 역시 생겨나야 한다.
7)
이하 경부사(經部師)가 주장한 업의 종자설을 취하여, 업의 종자와 중연(衆緣)의 관계를 그들이 비판한 생상(生相)과 중연의 관계에 빗대어 반박하고 있다.
8)
유위4상은 일 찰나의 법과 구기(俱起)하기 때문에, ‘생’ 자체를 제외한 그 밖의 동일한 결과를 낳는 법이 ‘생’의 구생인이라면, 이상(異相)이나 멸상(滅相)도 구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9)
본송에서는 말의 의미를 드러나게 하는 힘으로서의 불상응행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는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 세 가지가 있다. ‘명(nāma)’이란 물질ㆍ소리ㆍ향기 등과 같은 명사적 개념[想,saṃjñā]을, ‘구(pada)’란 ‘제행은 무상하다’와 같은 문장[章,vākya]을, ‘문(vyañjana)’이란 aㆍiㆍkaㆍkha와 같은 글자[字,akṣara] 즉 음소를 말하며, 이러한 존재의 집합[總說,samukta]을 각기 명신 등이라고 한다. 즉 유부에서는 이러한 존재가 개별적으로 실재함으로 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경부에서는 예외 없이 이를 가설로서만 인정하고 있다.
10)
『발지론』 제1권(한글대장경176, p.13~14).
11)
즉 총설의 원어 samukti는 ‘집합하다’는 뜻의 동사어근√uc의 파생어(sam+ uc+ti)이므로 여기에는 이미 집합의 뜻이 담겨있다는 말이다.
12)
『발지론』 제1권(대정장26,p.920중), 云何多名身? 答謂名ㆍ名號ㆍ異語ㆍ增語ㆍ想ㆍ等想ㆍ仮施設, 是謂多名身.
13)
앞의 『발지론』의 문구를 해석한 『대비바사론』(제14권, 대정장27,p.70상)에 의하면, 이는 ‘명’ 등의 존재를 실유의 법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비유자(譬喩者)나 소리[聲]를 본질로 하는 것이라는 성론자(聲論者)의 주장을 비판하고 실유의 법체로서 불상응행법에 속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이 같은 말을 하였다.
14)
이를테면 메아리로 들린 소리는 원래 소리가 아니라 그것이 반사된 것이듯이, 말[名] 즉 개념이란 대상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반영된 것이라는 뜻. 다시 말해 말이란 소리를 통해 의미대상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주17 참조)
15)
이는 명(nāma)의 어원적 해석이다. 참고로 『대비바사론』(제14권,p.70하)에서는 ‘명’을 ‘수(隨)’와 ‘소(召)’와 ‘합(合)’의 뜻을 갖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何故名名? 答: 名者, 名爲隨, 名爲召, 名爲合).(주32 참조) 그러나 보광(普光)은 그의 『구사론기』(대정장41,p.108상)에서 ‘수(隨)’와 ‘귀부(歸赴)’와 ‘소(召)’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명’은 음성에 따라 경계대상으로 돌아가 색 등의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것(謂隨音聲歸赴於境, 呼召色等)으로, ‘명’은 능히 의미대상을 드러낼 수 있지만 의미 자체와 부합(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16)
원문은 ‘以色相顯當體立名, 非色相隱, 從詮立目’. 즉 여러 경론에서 설하고 있는 명색(名色)이라는 말은 비색(非色)과 색의 일체법을 총칭하는 말로서, 이는 ‘색’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된 개념이다. 따라서 비색의 ‘명’에는 여기서 논의하는 불상응행법으로서의 ‘명’ 뿐만 아니라 심ㆍ심소법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능히 드러내는 것이 ‘명’이기 때문에 ‘명’으로 이름하게 되었다는 뜻. 이에 대해 『순정리론』(제14권)에서는 “색이 아닌 것의 취집 중에 ‘명’이 포섭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즉 비색)은 개별적인 것(명)에 따르기 때문에 ‘명’이라 설한 것으로, 지금 여기서의 ‘명’은 오로지 능히 드러날 의미대상[所詮義]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설한 것일 뿐이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대비바사론』(제15권, 대정장27,p.73중)에서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까닭에서 불타께서는 4무색온을 설하여 ‘명’이라 이름한 것인가? 답: 불타께서는 유위를 전체적으로 둘로 나누었으니, 색과 비색(非色)이 바로 그것이다. 색은 바로 색온이며, 비색은 수(受) 등의 4온이니, 비색의 취집 중에 능히 일체법을 분명하게 아는 ‘명’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색의 취집을 전체적으로 설하여 ‘명’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17)
이는 ‘명’ 등과 그것에 의해 지시되는 의미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이른바 명현론(名顯論)으로 알려지는 유부의 논의에 따르면, 말소리[語言,vac]에 의해 ‘명(名,nāma)’ 등이 생겨나며, 명 등에 의해 의미[義,artha]가 드러난다. 예컨대 불이라고 하는 말소리에 의해 불이라는 명사적 개념이 생겨나며, 불이라는 명사적 개념에 의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그런데 여기서 ‘드러난다’고 하는 말은 드러내어야 할 의미대상[所顯義,jñeya]에 대해 그것과는 별도의 관념이나 지식[覺慧,buddhi]를 말하며, 청자는 그 같은 지식을 통해 대상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곧 어떤 대상의 의미는 ‘명’ 등을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마치 지식이 그 의미의 형상을 띠고 나타나듯이 말소리의 의미(대상 자체의 의미가 아님)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바로 명ㆍ구ㆍ문이라는 것이다.
18)
“과거법의 경우, 과거의 제불(諸佛)은 과거의 명칭으로 그것들을 이미 나타내었고, 미래의 제불은 미래의 명칭으로 당래 나타내게 될 것이며, 현재의 제불은 현재의 명칭으로 지금 바로 나타내었다. 미래와 현재법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순정리론』 제14권)
19)
여기서 경주(sūtrakāra)는 『구사론』의 작자 세친(世親)을 말함. 본론에서는 대개 『순정리론』에서의 번잡한 대론을 삭제하고 요지만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 경우 상좌(上座) 스리라타(Śrīlāta)와의 대론만 제외한 채 경주와의 대론을 그대로 전재(全載)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당시 이 문제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20)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58). 칭우에 따르면 이는 경량부의 주장이다. 즉 경량부에서는 명ㆍ구ㆍ문 3신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다만 현현된 말의 차별로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假法]으로 이해하였다.
21)
무애해(無礙解)란 온갖 경계대상을 지각하고 깨닫는데 어떠한 장애도 없는 것, 혹은 온갖 경계대상을 결정적으로 판단함에 있어 어떠한 장애도 없는 것으로, 여기에는 법(法)ㆍ의(義)ㆍ사(詞)ㆍ변(辯)의 네 가지가 있다. 여기서 법무애해는 능히 뜻을 드러내는 존재인 단어[名]ㆍ문장[句]ㆍ음소[文]에 막힘이 없는 것이라면 모든 지방의 언사에 대해 막힘이 없는 것이 4무애해이다. 곧 4무애해는 일체지(一切智)에 의해 성취되는 공덕으로, ‘법’과 ‘사’를 구분한 것은 바로 양자가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뜻.
22)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59~260). 이는, 모든 음성이 바로 말은 아니며, 그 뜻을 드러내는 음성만이 말이다. 따라서 말은 이처(耳處)에 포섭되는 색이다. 그럴 경우 물리적인 음성이 어떻게 자신의 의미를 이해시킬 수 있는가? 혹은 물리적인 모든 소리 가운데 어떠한 소리만이 자신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가 하면, 겁초의 현성(賢聖)에 의해 이미 그 의미체계가 약속되어진 소리만이 자신의 의미를 이해시킬 수 있다. 나아가 발설자가 언어행위를 함에 있어 자신의 말이 제 의미체계 가운데 어떤 하나의 의미로서만 작용한다고 이미 그 한계를 정하여 언표한 말[能詮定量]만이 자신의 의미를 이해시킬 수 있다. 예컨대 범어 go라고 하는 말에는 소[牛]ㆍ말[言]ㆍ방위ㆍ빛[光]ㆍ금강ㆍ감관[眼]ㆍ하늘ㆍ물[水] 등의 의미가 있어,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는 발설자에 의해 한정되어 지시되어야 하며, 그럴 경우 go라고 하는 물리적 소리가 바로 아홉 가지의 의미를 현현시키는 작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로서의 ‘명’ 등의 개념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는 경량부의 논란이다.
23)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60). 즉 유부가 주장하듯이 말 이외 개별적인 실체로서의 ‘명’ 따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결국 말에 의해 낳아지든지 혹은 말에 의해 드러나든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만약 말에 의해 명(즉 作想,단어의 의미)이 생겨난다고 하면 말은 소리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모든 소리는 당연히 의미를 낳아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혹은 모든 소리가 의미를 낳는 것은 아니며 특별한 소리만이 의미를 낳는다고 한다면,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의 차별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실체로서 ‘명’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의 힐난.
24)
『구사론』 제5권(앞의 책,p.263). 즉 a, ā 등과 같은 음소[文]의 개별적인 실재성을 일시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취집(聚集)이 단어[名]ㆍ문장[句]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의 개별적 실재성은 승인될 수 없다는 논란.
25)
그림자는 안처에 포섭되는 색[眼處所攝色]인 열두 가지 현색(顯色) 중의 하나이다.(본론 제2권 ‘5경’ 참조)
26)
다시 말해 한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도 존재하기 때문에, 만약 앞서 경주가 말한 대로 음소(즉 글자)가 개별적 실체라면 단어 역시 개별적 실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27)
예컨대 ‘이[蝨]’처럼 하나의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名]의 경우, 글자를 배제하고서 어떻게 그것의 개별적 실재성을 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힐난.
28)
앞서 언급하였듯이 요컨대 경량부에 있어 단어란 겁초의 현성들에 의해 어떠한 의미체계가 약속되어진 음성으로, 그것은 음소[文]의 집합일 따름이며, 그러한 음성의 특수한 배열이 단어[名]이고 문장[句]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다.
29)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61). 예컨대 ‘소나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소’ ‘나’ ‘무’라고 하는 세 찰나에 걸쳐 발성된 소리이다. 따라서 ‘소’라고 할 때 ‘나’와 ‘무’는 아직 미래에 있어 현재에 존재하지 않으며, ‘무’라고 할 때 역시 ‘소’와 ‘나’는 이미 과거로 낙사(落謝)하여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소리가 어떻게 의미를 낳을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소나무’라고 하는 1법의 존재가 세 찰나에 걸쳐 생겨날 수도 없지만, 설혹 그렇다고 하면 1법의 존재가 세 찰나로 나누어지고 만다는 경량부의 난문.
30)
같은 논. 유부에 의하는 한, 다 찰나에 걸친 행위 즉 표업은 집적되어 그 최후 찰나에 무표업을 낳게 된다.(본론 제18권 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세 찰나의 최후 찰나인 ‘무’라고 하는 말에 의해 ‘소나무’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생겨난다고 하는 뜻.
31)
『구사론』 제5권(앞의 책, p.261).
32)
『대비바사론』 제14권(대정장27, p.71상). 여기서 ‘명’이란 수(隨)ㆍ소(召)ㆍ합(合)의 세 가지 뜻을 갖춘 것으로, 그것이 지시하는 의미대상으로 상응하고(隨者, 如其所作卽往相應), 그 의미를 성립시키기 위하여 추구하는 바대로 불러일으키며(召者, 爲此義立如求便應), 어떤 게송을 짓는 중에 그 의미와 만나게 하는 것(合者, 隨造頌轉令與義會)이다. 그리고 명신이란 두 가지 ‘명’의 취집을, 다명신이란 다수의 명신이 취집한 것을 말한다.
33)
실로가(śloka)란 원래 4ㆍ4조로 이루어진 베다의 운율 형식으로, 논설대로 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구(句)의 4구를 말한다. 이른바 4구게(句偈)가 바로 그것이다.
34)
명신 등의 계계(界繫) 분별은 두 가지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즉 ‘명’ 등은 말에 의해 생겨나고 혹은 소의신에 따라 판별되기 때문에, 말에 따라 계를 분별하는 수어계(隨語繫)와 소의신에 따라 분별하는 수신계(隨身繫)가 그것이다.
35)
‘명’ 등은 그것에 의해 드러나는 대상인 산하대지 등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을 설하는 유정수에게만 성취되는 것이다.
36)
명신 등은 오로지 전 찰나의 동류인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37)
즉 동분은 등류성ㆍ이숙생ㆍ소장양ㆍ유실사(有實事)ㆍ일 찰나의 다섯 가지 존재 유형(본론 제3권 참조 바람) 중 등류성과 이숙생 두 가지에 해당한다는 뜻.
38)
다시 정리하면 동분은 명ㆍ구ㆍ문과 마찬가지로 욕계ㆍ색계이고, 아울러 무색계의 계(繫)이며, 등류성임과 동시에 이숙생이며, 무부무기이다. 그리고 득과 유위4상은 찰나(이를테면 見道 苦法智忍과 俱起하는 得과 4相)ㆍ등류ㆍ이숙과 통하며, 비득과 무상정ㆍ멸진정은 등류성인데, 그 밖의 계계(界繫), 유정ㆍ비유정, 3성의 분별은 명ㆍ구ㆍ문의 경우와 동일하다. 그리고 무상과와 명근의 경우, 그것을 논설하면서 이미 분별하였으므로 본송에서는 생략하였지만 전자는 색계계이고, 유정수ㆍ이숙생ㆍ무기성이며, 명근은 3계계이고, 유정수ㆍ이숙생ㆍ무기성이다.
39)
본권 ‘4)생 등의 상(相)과 인연의 관계’ 참조.
40)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제1권(한글대장경176,p.15~16)과 『대비바사론』 제16권(한글대장경118,p.358~359). 능작인 등 6인(因)은 유부에서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경주 세친은 『구사론본송』 중에서 ‘인정한다[許]’고 설한 것이다. 6인론은 4연(緣)이나 5과(果)와는 달리 유부 특유의 이론으로 『발지론』에서 처음으로 설해지고 있는데, 『증일아함』의 「증육경(增六經)」에서 설해지고 있던 것이 은몰(隱沒)되었기 때문에 존자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등이 명감(冥感) 혹은 원지(願智)에 의해 관찰 찬집(撰集)하여 부활시킨 것이라고 한다.(후술)
41)
앞서 언급한 6인의 순서는 적용되는 범위가 넓은 것에서부터 좁은 것에 따른 것이라는 말로서, 예컨대 능작인은 일체법에 적용되고, 구유인과 동류인은 각기 결과와 동시생기하고 시간을 달리하는 일체법에 적용된다. 그리고 상응인과 변행인은 각기 구유인과 동류인의 협의로 마음과 번뇌에 한정된 것이며, 이숙인은 결과와 시간을 달리하는 법으로서 현실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낳는 구체적인 법(즉 선악업)에 적용된다.
42)
가다연니자(Kātyāyanīputra)는 불멸(佛滅) 300년 무렵 서북인도에서 출세한 대 논사로서, 『발지론』 20권을 지어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교학을 확립함으로써 이 부파의 비조가 되었다.
43)
4연은 인연(因緣)ㆍ등무간연(等無間緣)ㆍ소연연(所緣緣)ㆍ증상연(增上緣)으로(본론 제18~20권에 걸쳐 상론함), 이에 대해서도 다른 부파가 외워 전승한 경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6인 역시 전승되는 도중 망실되었다가 가다연니자에 의해 복원되었다는 뜻.
44)
유부에서는 탐(貪)ㆍ진(瞋)ㆍ견(見,有身見ㆍ邊執見ㆍ邪見ㆍ戒禁取ㆍ見取)ㆍ의(疑)ㆍ만(慢)ㆍ무명의 6수면 내지 10수면을 그것이 작용하는 세계 즉 욕ㆍ색ㆍ무색의 3계(界)와, 끊어지는 유형[部] 즉 4제 각각에 대한 네 가지 관찰[見, 見苦ㆍ見集ㆍ見滅ㆍ見道所斷]과 선정을 통한 반복된 관찰 수습[修所斷] 등 다섯 가지 유형에 따라 98가지로 분류하는데, 이러한 98수면 중에서 견고소단의 유신견 등의 5견과 의(疑), 견집소단의 사견ㆍ견취와 ‘의’, 그리고 견고ㆍ견집소단의 무명은 그 힘이 특히 강력하여 만약 욕계의 그것이면 욕계(自界) 5부의 염오법을 두루 낳는 원인 즉 변행인(遍行因)이 되기 때문에 이를 변행혹(遍行惑, 줄여서 遍惑)이라고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권 ‘변행인’과 제48권의 ‘변행혹’을 참조 바람.
45)
구유인과 그 협의인 상응인이 결과(士用果)와 동시에 존재하는 원인(즉 俱生因)이라면, 동류인과 그 협의인 변행인은 결과(등류과)와 동시이거나 무간(無間)이며, 이숙인은 결과(이숙과)에 앞서 존재하는 원인(즉 前生因)이다.
46)
종자(種子)상속의 인과설은 경량부와 세친의 설로, 그들에 의하면 심과 심소는 각기 개별적 실체로서 동시 상응(相應)ㆍ구유(俱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상속 계기하는 마음의 특수한 변화 차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다만 전생인의 존재만을 인정할 뿐이다.
47)
『순정리론』(제15권)에 따르면, 경부사(經部師)인 상좌(上座) 스리라타는, 등불과 밝음은 기름과 심지 등 동일한 원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면서 양자 사이의 동시인과를 부정하고 있다. 즉 밝음은 전 찰나의 등불을 연(緣)으로 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현에 의하면, 등불과 밝음은 동시인과이다.
48)
능작인(karāṇa-hetu)이란 능히 결과를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라는 뜻으로, 여기에는 결과를 낳는 힘을 갖는 유력(有力,혹은 與力)능작인과 결과를 낳는데 장애함이 없는 무력(無力,혹은 不障)능작인이 있다. 바로 이 같은 점에서 어떤 법이 생겨날 때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법은 능작인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능작인은 6인 중 외연이 가장 크다. 다만 ‘능히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다른 다섯 가지 원인도 역시 능작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각기 별도의 명칭이 있기 때문에 능작인이라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후술)
49)
능작인을 제외한 구유인 등의 5인 역시 능히 결과를 산출하는 공능을 갖기 때문에 ‘능작인’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러한 원인에는 별도의 명칭이 있는데 반해 능작인에는 별도의 명칭이 없기 때문에, 안근의 대상을 ‘색’이라는 총명으로 말하듯이(이근의 대상도 역시 ‘색’이지만, 소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능작인이라는 총명으로 이름하였다는 뜻.
50)
“만약 자체를 제외한 그 밖의 일체의 법이 이 같은 1법에 대해 능작인이 된다고 한다면, 무간업(無間業) 역시 성도(聖道)에 대해 능작인이 되어야 할 것인데, 어찌 이치에 맞는다고 하겠는가?”(『순정리론』 제15권) 즉 생겨나는 법 자체를 제외한 그 밖의 모든 법이 능작인이 된다고 한다면, 무루성도와 무간업의 경우처럼 서로 모순되는 법 또한 서로를 장애하지 않는 능작인이 되어야 한다는 힐난. 그러나 만약 능작인이 된다면 ‘장애하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와 상응하지 않게 되며, 만약 능작인이 되지 않는다면 ‘자체를 제외한 나머지 일체법이 능작인’이라고 하는 정의는 틀린 것이 되고 만다. 참고로 『구사론』에서는 이에 대해 ‘이것이 일어날 때 그것은 모두 장애함이 없이 머무르기 때문에, 그것은 이것에 대해 바로 능작인이 된다’고 해명하고 있다.(앞의 책, p.268) 즉 무루지는 번뇌의 생기를 장애하고, 햇볕은 별빛의 인식을 방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쨌든 번뇌가 일어나고 별빛을 인식하는 것은 그것이 장애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능작인이라는 것이다.
51)
유부에서는 원래 장애하는 작용이 없는 것도 원인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택멸무위 역시 능작인의 일종(다만 증상과를 낳지 않는 능작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52)
원문은 ‘작자와 마찬가지로’이나 『순정리론』에 따라 ‘살생자’로 고쳐 번역하였다. 이는 ‘만약 일체의 법은 장애함이 없이 머무르기 때문에 모두 능작인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제법은 모두 단박에 일어나지 않으며, 나아가 어떠한 이유에서 어떤 이가 살생을 할 때 다른 모든 이도 살인자와 같은 살생의 업을 성취하지 않는 것인가’하는 난문(『구사론』 제6권, 앞의 책,p.269)에 대한 해명이다. 즉 어떤 사람이 살생의 업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가 그것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다른 모든 이 역시 간접적으로라도 살생의 업을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아비달마장현종론 제9권
1)
『구사론』에는 ‘俱有互爲果 如大相所相 心於心隨轉’으로 되어 있다. 구유인(sahabhū-hetu)이란 결과와 동시 병존하는 원인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원인이 되고 결과(즉 士用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4대종은 각각의 ‘대’ 자체로서는 현현하지 않으며 반드시 다른 3대와 구기(俱起)하여 서로가 서로에 대해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며, 능상의 4상과 소상의 유위제법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 즉 능상은 소상에 의해, 소상은 능상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구생(俱生)의 관계에 있는 심왕과 심수전법도 서로가 서로에게 구유인이 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수상(隨相)은 본상에 대해서만 구유인이 될 뿐, 본법에 대해서는 구유인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수상은 본법에 의해서만 전전하므로 본법은 수상에 구유인이 된다. 따라서 이것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지는 않지만, 동일한 결과를 산출한다는 점에 있어서 구유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구유인에는 두 가지 이상의 법이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호위과구유인(互爲果俱有因)과 두 가지 이상의 법이 서로를 도와 동일한 결과를 낳는 동일과구유인(同一果俱有因)이라고 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세친은 『구사론』에서 구유인을 전자로 이해하고 있는데 반해 중현(衆賢)은 그럴 경우 ‘구유인의 상은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순정리론』 제15권) 이 같이 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3구에서 ‘등’을 덧붙인 것은 대종 등의 세 가지 유형의 법뿐만 아니라 제 심수전법이나 제 능상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인이 된다(互爲果가 아니라 互爲因), 다시 말해 구유인이 된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이 역시 동일한 결과를 획득하게 하는 공동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2)
이는 즉『발지론』 제1권(한글대장경176, p.15)에서 “마음은 심수전(心隨轉)의 신업이나 어업에 대해 구유인이 된다”고는 설하였어도, 반대로 심수전의 신ㆍ어업이 마음에 구유인이 된다고는 설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완전한 인용은 다음과 같다. “마음은 심소법에 대해 구유인이 되며, 심소법은 마음에 대해 구유인이 된다. 마음은 심수전의 어업과 신업에 대해 구유인이 된다. 마음은 심수전의 불상응행에 대해 구유인이 되며, 심수전의 불상응행은 마음에 대해 구유인이 된다. 또한 동시에 생기하는 4대종은 전전 상속하며 [서로에 대해] 구유인이 되니, 이를 일컬어 구유인이라 한다.”
3)
욕계에서의 계(戒) 즉 방비지악(防非止惡)의 힘을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라 하는데 반해, 색계 정려와 무루도를 닦을 때 생겨나는 그 같은 힘을 정려율의(또는 定共戒)와 무루율의(혹은 道共戒)라고 한다. 그러나 별해탈율의의 경우 행위할 때와는 다른 마음에 있거나 무심의 상태에 있을 때에도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심수전법이 아니다.(『구사론』 제14권, 앞의 책,p.642, 본론 제36권 참조)
4)
즉 ‘생생’ 등의 수상은 오로지 생상 등 1법에 대해서만 공능을 갖기 때문에 마음이 생상에 의해 생겨날 때, 생상의 조건으로서 마음과 동시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생생상은 생상에 대한 원인이지 마음에 대한 원인이 아니다.
5)
원문은 應知大種生等—으로 되어 있지만, 문맥상 應如大種生等—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6)
소조색은 대종의 결과이지 대종의 ‘생’ 등의 결과가 아니지만, 생상은 대종에 대해 구유인이 되므로 소조색에 대해서도 역시 구유인이 된다고 해야 하듯이, 마음 또한 생상 등의 결과이지 생생상 등의 결과가 아니지만, 생생상은 생상에 대해 구유인이 되므로 마음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뜻의 힐난.
7)
제법의 인연화합에 의해 하나의 결과를 낳을 뿐 다수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 예컨대 대종의 ‘생’ 등을 원인으로 하여 대종과 소조색이라는 결과가 동시에 낳아지는 일은 없듯이 생생상을 원인으로 하여 생상과 마음이 동시에 생겨나는 일은 없다.
8)
여기서 열 가지 이유는 시간의 네 가지(동일한 시간의 生ㆍ住ㆍ滅과 동일한 墮世)와 결과의 세 가지(동일한 果와 等流와 異熟)와 성(性)의 세 가지(동일한 선ㆍ불선ㆍ무기)이다.
9)
마음이 과거의 존재이면 그것과 상응 구기하는 심소 등도 역시 그러한 것으로, 심소 등은 마음과 동일한 시간에 생겨나고 소멸할 뿐만 아니라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世)에 걸쳐 마음과 함께 하기 때문에 심수전이라 이름한다는 뜻. 시간과는 별도로 세(世)를 설한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함.
10)
즉 3세와는 별도로 생기 등의 시간을 설한 이유는 그것을 배제하고서는 3세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래법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이며, 과거법은 이미 소멸한 것이기 때문이다.
11)
사용과(士用果)란, 유위와 무위의 일체법은 능히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능작인이라 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士夫,pūruṣa)의 행위(士用)에 의해 낳아진 일체의 결과를 말하지만, 그 밖의 결과는 별도의 명칭을 갖기 때문에 다만 협의로서 동시적 인과관계인 구유인과 상응인의 결과를 사용과라고 한다. 따라서 광의로 본다면 인간행위와 관계된 인과의 유형에는 구유ㆍ상응인과 사용과의 동시적 관계(俱生), 동류ㆍ변행인과 등류과의 무간(無間) 혹은 계시적 관계[隔越], 이숙인과 이숙과의 계시적 관계, 그리고 무루택멸의 이계과인 불생(不生, 이계과는 생겨난 결과가 아니라 증득된 결과이다) 등 네 가지가 있다. 참고로 적용범위가 가장 넓은 능작인과 증상과의 관계는 앞의 세 가지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12)
이를테면 마음과 제 심소 및 생 등 제상(諸相)의 화합취는 원인(구유ㆍ상응인)과 구생(俱生)하는 사용과일 뿐더러 전 찰나의 동류인과 전생의 이숙인의 결과인 등류과[無間]와 이숙과[隔越]도 되기 때문에 이를 별도로 설하게 된 것이라는 뜻. 즉 화합취 자체는 사용과가 아니다.
13)
『품류족론』 제13권(대정장26, p.745상ㆍ중).
14)
여기서 고제는 일체의 유루법, 일체의 염오법을 말한다. 그리고 유신견(혹은 薩迦耶見,satkāya-dṛṣṭi)은 고제의 이치(무상ㆍ고ㆍ무아ㆍ공)에 미혹하여 일어난 아견(我見)으로, 견고소단(見苦所斷)의 염오법을 낳는 원인이 된다.
15)
동류인(sabhāga-hetu)이란 결과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원인으로, 이를테면 전 찰나의 선한 5온은 후 찰나의 선한 5온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동류인은 5부(部) 9지(地)의 모든 법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자지ㆍ자부의 법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된다. 예컨대 견소단법은 견소단법에 대해서만, 욕계법은 욕계법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된다. 또한 자지ㆍ자부의 법이라 하더라도 선행된 법만이 후법(後法)에 대해 동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래법은 동류인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루도는 불계(不繫)이기 때문에 9지의 모든 유사한 법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 또한 무루도는 가행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원인과 동등하거나 뛰어난 유사법에 대해 동류인이 될 뿐이다. 이를테면 견도는 견ㆍ수ㆍ무학도에 대해, 수도는 수도와 무학도에 대해, 무학도는 무학도 한 가지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된다. 그리고 유루도로서 가행생인 문(聞)ㆍ사(思)ㆍ수소성법(修所成法)도 역시 동등하거나 뛰어난 법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문ㆍ사ㆍ수소성법에도 각기 하하품에서 상상품에 이르는 9품이 있는데, 하하품의 법은 9품에 대해 동류인이 되며, 하중품은 8품에 대해, 상상품은 자신의 1품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
16)
동류인은 결과(등류과)와 시간을 달리하는 것으로, 멀리 떨어져[隔越] 있거나 전후 찰나[無間]로 동류 상속하는 인과관계이다.
17)
이하 세 명의 유여사의 설은 앞서 ‘무기의 5온은 무기의 5온에 동류인이 된다’고 한데 대한 이설(異說)이다. 이 경우, 무기라 할지라도 심ㆍ심소법(4온)은 승법(勝法)이기 때문에 열법(劣法)인 색온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뜻.
18)
무기라 할지라도 심ㆍ심소법은 승법(勝法)으로 그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5온 모두에 대해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색은 열법(劣法)으로 그 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심ㆍ심소법(뒤의 4온)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뜻.
19)
무기는 그 세력이 저열하기 때문에, 종류가 서로 다른 색법과 심법(4온) 사이에는 동류인ㆍ등류과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무부무기의 색온과 그 밖의 4온은 서로에 대해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뜻. 참고로 보광은 이상 네 설 가운데 이를 정의(正義)로 평석하고 있다.
20)
여기서 10위란 탁태(托胎)에서부터 이후 죽을 때까지를 열 단계로 나눈 것으로, 태내(胎內) 5위와 태외(胎外) 5위가 있다. 태내 5위란 갈랄람(羯剌藍,kalalam,凝滑)ㆍ알부담(頞部曇,arbudam,胞)ㆍ폐시(閉尸,peśī,血肉)ㆍ건남(鍵南,ghanam,堅肉, 이상 탁태 후 5주일 동안의 상태)ㆍ발라사가(鉢羅奢佉,praśākha,支節, 5주 이후부터 출산 때까지의 상태). 태외 5위란 영해(嬰孩)ㆍ동자ㆍ소년ㆍ성년ㆍ노년의 다섯 단계를 말한다. 즉 이러한 열 가지 단계 중 갈랄람은 열 단계 모두에 대해, 알부담은 갈랄람을 제외한 아홉 단계에 대해, 나아가 성년은 성년과 노년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된다는 뜻.
21)
즉 전생의 열 단계(예컨대 갈랄람)는 각기 현생의 열 단계(갈랄람)에 대해 동류인이 되고, 현생의 열 단계는 내생의 열 단계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는 뜻.
22)
이를테면 보리는 보리의 동류인이 되고 벼는 벼의 동류인이 된다는 뜻. 이상의 두 설은 『구사론』 제6권(앞의 책,p.278) 상에서 색법의 동류인의 예로서 언급되고 있다.
23)
‘부(prakāra)’란 번뇌가 끊어지는 유형으로, 여기에는 4제(諦) 각각에 대한 네 가지 관찰(darśana,見苦諦所斷 내지 見道諦所斷)과 선정올 통한 반복된 관찰 실수(bhāvanā,修所斷)에 의해 끊어지는 다섯 유형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수면품」 제25권 이하를 참조할 것.
24)
다시 말해 그 밖의 법에 대해서는 동류인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욕계 고제 하에 소속된 사견(邪見)은 역시 고제 하에 소속된 후 찰나 사견의 동류인이 되지만, 집제 하의 사견에 대해서는 동류인이 되지 않는다.
25)
즉 미래법에도 역시 정생위(正生位)의 법과 미생위(未生位,즉 雜亂位)의 법의 차별이 존재하므로 전후 차제의 뜻이 있다고 해야 한다는 힐난.
26)
이는 즉 이숙인 이숙과도 동류인 등류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전후관계 상에 설정된 것인데, 어째서 이숙인은 미래에 있다고 하면서 동류인은 없다고 하는 것인가? 하는 난문이다.
27)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동류인은 그 결과(등류과)와 서로 유사한 성질을 지닌 원인으로, 원인이 선이면 결과도 선이다.
28)
『발지론』 제1권(대정장26p.920 하: 한글대장경176,p.15). “문: 무엇을 동류인이라고 하는가? 답: 먼저 생겨난 선근은 이후에 생겨나는 자계(自界)의 선근과 상응법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 과거의 선근은 현재ㆍ미래의 자계의 선근과 상응법에 대해 동류인이 되며, 현재의 선근은 미래의 자계의 선근과 상응법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 선근과 마찬가지로 불선과 무기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29)
이숙인과 이숙과는 체상(體相)을 달리하는 것으로, 원인이 선 혹은 악일지라도 결과는 무기이다. 즉 선과 무기는 각기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숙인과 이숙과는 다 같이 미래에 잡란(雜亂)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30)
즉 무루도는 비록 9지(地)에 근거하여 일어나지만, 그 ‘지’를 자기의 것이라 여기지 않기 때문에 ‘지’에 계속(繫屬)되지 않으며, ‘지’에 제한받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온갖 ‘지’의 무루성도 자체는 비록 ‘지’의 차별은 있을지라도 그 자체로서는 동일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동류인이 되는 것이다.
31)
이 같은 고법지인으로부터 무생지에 이르는 견도ㆍ수도ㆍ무학도의 무루성도에 대해서는 본론 제30권의 ‘견도 16심(心)’에서부터 제32권의 ‘진지(盡智) 이후에 생겨나는 지(智,즉 무생지)’에 걸쳐 상론된다.
32)
즉 견도는 견ㆍ수ㆍ무학의 3도에 대해, 수도는 수ㆍ무학 2도에 대해, 무학도는 오로지 무학도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된다.
33)
여기서 여섯 종류의 종성이란 둔근의 도인 수신행(隨信行)ㆍ신해(信解)ㆍ시해탈(時解脫)과 이근의 도인 수법행(隨法行)ㆍ견지(見至)ㆍ비시해탈(非時解脫)을 말한다. 여기서 수신행과 수법행은 견도에 이르는 가행의 차별에 따른 것으로, 일찍이 이생위에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믿고서 가행을 닦아 견도에 이른 둔근의 성자를 수신행이라고 하며, 경전 등을 통해 스스로 증득한 법에 따라 가행을 닦아 견도에 이른 이근의 성자를 수법행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성자가 수도에 이르면 각기 믿음의 힘[信根]과 지혜의 힘[慧根]이 증가하여 승해(勝解)와 정견(正見)이 나타나기 때문에 신해와 견지라고 하며, 해탈의 차별에 따라 무학위의 아라한을 시해탈(혹은 慧解脫)과 비시해탈(혹은 俱解脫)로 나누게 된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33권 ‘7성자의 차별의 근거’를 참조 바람) 그리고 무학위의 경우, 거기서 물러나는가, 물러나지 않는가에 따라 퇴법(退法)ㆍ사법(思法)ㆍ호법(護法)ㆍ안주법(安住法)ㆍ감달법(堪達法)ㆍ부동법(不動法)의 6종성으로 분별하기도 하는데, 앞의 다섯 가지는 둔근의 성자인 신해(信解)로부터 낳아지는 것으로, 이미 획득한 과위에서 물러나지 않기 위해 항시 애호(愛護)하며 마음으로써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였기 때문에 시애심해탈(時愛心解脫), 혹은 둔근이기 때문에 뛰어난 인연, 이를테면 좋은 의복이나 음식 침구 처소 혹은 설법과 인물을 만나는 때를 기다려 비로소 선정에 들어 해탈할 수 있기 때문에 시해탈(時解脫)이라고 하며, 부동법의 경우 이근의 성자인 견지(見至)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더 이상 번뇌에 의해 동요되거나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 혹은 좋은 인연이 도래하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삼매에 들어 해탈을 획득하기 때문에 불시해탈(不時解脫)이라고도 한다. 본단의 문제는 바로 ‘아라한의 물러남’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고로 경량부에 의하면, 6종성의 아라한은 다만 현법낙주(現法樂住)에 기초한 차별일 뿐 일체의 아라한은 물러남이 없는 부동법이다.
34)
여기서 「근온」은 『발지론』 제6품을 말한다. 즉 동론(同論) 제14권(대정장26,p.994상: 한글대장경176,p.336)에서는 “이지근(已知根)은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에 대해 소연연과 증상연이 되어도 인연이 되지 않고 등무간연이 되지 않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구지근(俱知根)도 앞의 두 근에 대해 역시 그러하다(已知根--與憂根未知當知根, 爲所緣增上, 與餘根, 爲因等無間所緣增上.(중략) 俱知根--與憂根未知當知根已知根, 爲所緣增上, 與餘根, 爲因等無間所緣增上)”고 설하고 있는데, 이는 곧 후자는 전자에 대해 인식대상으로서의 조건(소연연)과 그 생기를 장애하지 않는 조건(증상연)이 될 뿐 직접적인 원인(인연, 여기에는 구유ㆍ상응ㆍ동류ㆍ변행인이 포함됨)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수도(이지근)가 견도(미지당지근)의 동류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발지론』에 위배되지 않는가? 하는 난문을 예상하여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35)
같은 품류의 근기, 이를테면 이근(利根)의 미지근과 이근의 이지근을 배대(配對)시킬 경우, 당연히 후자는 전자에 대해 인연(동류인)이 되지 않지만, 근기의 품류가 다를 경우, 다시 말해 둔근성의 이지근은 이근성의 미지근에 대해 인연이 될 수 있다는 뜻.
36)
선후에 근거하여 양자를 배대(配對)시킬 경우, 작용을 갖고 지금 바로 일어난 것은 앞서 일어난 것에 대해 인연이 되지 않는다(다시 말해 뒤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만 인연이 된다)는 뜻.
37)
다시 앞의 문제로 되돌아 와 ‘무루도는 동등하거나 뛰어난 결과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된다’고 한다면, 성문승의 도 역시 독각승이나 불승(혹은 보살승)의 도에 동류인이 되어야 하지만, 이는 근기가 아닌 자성의 차별이기 때문에 성문승(정확히는 4선근의 忍位이후)은 불승의 도에 대해 동류인이 되지 않는다. 즉 보살은 유정의 이익을 본회(本懷)로 삼았기 때문에 유정을 교화하기 위해 반드시 악취로 나아가야 하지만 인위에 이르면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세제일법의 단계는 견도와 일 찰나의 간격도 없는 무간(無間)이기 때문에 인위부터는 반드시 다른 종성으로 전향하는 일 없이 성문의 4과(果)를 획득하게 된다.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대승의 유가행파에서는 성문을 무상정등각을 성취할 수 없는 종성으로 규정하게 된 것이다.
38)
견도에서 출관하는 일은 결코 없다. 이는 곧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결코 무너지는 일은 없지만)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신행에서 수법행으로의 전근(轉根)이 절대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이다.
39)
수신행은 수신ㆍ수법ㆍ신승해ㆍ견지ㆍ시해탈ㆍ비시해탈의 여섯 가지에 대해, 신승해는 신승해ㆍ견지ㆍ시ㆍ비시해탈의 네 가지에 대해, 시해탈은 시ㆍ비시해탈의 두 가지에 대해 동류인이 된다. 수법행은 수법ㆍ견지ㆍ비시해탈의 세 가지에 대해, 견지는 견지와 비시해탈 두 가지에 대해, 비시해탈은 비시해탈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된다. 여기서 수신행ㆍ신승해ㆍ시해탈이란 각기 견ㆍ수ㆍ무학위를 닦는 둔근의 종성을 말하며, 수법행ㆍ견지ㆍ비시해탈은 각기 견ㆍ수ㆍ무학도를 닦는 이근의 종성을 말한다.
40)
앞서 무루도의 경우, 9지에 관계없이 동류인이 될 수 있지만, 반드시 동등하거나 뛰어난 지의 무루도에 대해서만 동류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41)
여기서 ‘원인’이란 견ㆍ수ㆍ무학도로서, 이러한 원인은 지(地)의 상하에 의해 승열(勝劣)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근기의 이둔(利鈍)에 의해, 9품(品)의 차별에 의해 결정된다. 예컨대 상지일지라도 둔근의 도는 열등하고, 하지일지라도 이근의 도는 뛰어나며(견도의 경우), 상지의 하하품의 지(智)보다는 하지 하중품의 지가 뛰어나며, 또한 상지의 하중품의 지보다는 하지 하상품의 지가 뛰어나다. 이를테면 제2정려지의 하하품의 무루지보다도 초정려지의 하중품의 무루지가 뛰어난 것과 같다.
42)
즉 무색계에서는 듣는 일이 없으며, 또한 문소성의 지(智)는 수소성의 그것보다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43)
이는 이설(異說)로, 『순정리론』(제16권)에 의하면 유여사(有餘師)의 설이다.
44)
이숙생이란 전생의 업력에 의해 낳아진 마음. 위의로란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 등의 행동거지를 일으키는 마음. 공교처란 조각이나 노래 등의 기예에 능숙한 마음. 변화심이란 천안ㆍ천이통(天耳通)과 같은 선정에 의해 낳아진 통과심(通果心)을 말한다.
45)
네 가지란 이숙생의 마음이 자신과 다른 세 가지에 대해 동류인이 되는 것, 세 가지란 위의로의 마음이 자신과 다른 두 가지에 대해 동류인이 되는 것, 두 가지란 공교처가 자신과 다른 한 가지에 대해 동류인이 되는 것, 한 가지란 변화심이 자신에 대해 동류인이 되는 것. 즉 이숙생의 마음은 과거 업력에 의해 낳아진 것으로 네 가지 무기심 중 그 세력이 가장 열등하며, 위의로는 현재 작의(作意)에 의해 일어나므로 이숙무기보다는 뛰어난 법이기 때문이다.
46)
‘난 등’이란 난(煖)ㆍ정(頂)ㆍ인(忍)ㆍ세제일법(世第一法)의 4선근을 말한다. 이는 확정적, 또는 결정적 진리인식[決擇]인 견도(見道)에 이르게 되는 근거이자 첩경이기 때문에 순결택분(順決擇分)이라고 한다.(본론 제30권에서 상론함) 이는 점진적 단계로서, 난법은 인법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47)
상응인(saṃprayuktaka hetu)이란 구유인의 일부를 독립시킨 것이다. 즉 구유인이 서로에 대해 결과가 되는 일체의 유위법이라면, 상응인은 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행상(行相)ㆍ시(時)ㆍ사(事)의 다섯 가지 관점에서 평등하게 관계[五義平等](본론 제11권 참조)하는 심ㆍ심소뿐으로, 따라서 양자는 서로에 대해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며, 항상 구기(俱起) 상응(相應)한다.
48)
즉 본송에서는 오로지 소의가 동일한 심ㆍ심소만이 상응인이 된다고 설하였으므로, 그 밖에 상응의 조건인 일어나는 시간[時]과 소연과 행상이 동일하지 않은 것도 상응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힐난.
49)
『구사론』(제6권, 앞의 책, p.290)의 예를 빌리자면, 여러 사람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초승달을 보는 경우, 그 때 모든 이의 심ㆍ심소는 소연ㆍ행상ㆍ시간이 동일하지만, 그것을 상응인이라고는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세 가지의 동일함을 설하더라도 힐난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일단 ‘소의가 동일한 것’이라고만 말하면 상응인임을 바로 나타낼 수 있다는 뜻.
50)
즉 ‘소의가 동일하다’고 함은 다만 시간을 달리하는(다시 말해 전 찰나와 후 찰나의) 동일한 소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ㆍ심소가 함께 일어나는 동일 찰나의 소의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하는 물음.
51)
즉 전 찰나의 마음과 후 찰나 마음이 동일한 소의에 근거한 것을 ‘소의가 동일하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찰나찰나 상속하는 온갖 식을 분별한 말이지 상응인을 분별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
52)
이는 『구사론』 (제6권, 앞의 책,p.290)에서의 정설이지만, 『순정리론』 (제16권)에 의하는 한 유여사의 설이다. 즉 상응인은 구유인처럼 서로에 대해 결과가 될 뿐 아니라 동일한 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행상(行相)을 갖고 동일한 시간[時]에 각기 하나의 실체[事]로서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53)
변행인(sarvatraga-hetu)이란 동류인의 협의로서, 선행된 변행의 수면[遍行惑]과 이와 상응 구유하는 법[隨行法]은 그 후에 생겨나는 자지(地)의 자부(自部)ㆍ타부(他部)의 온갖 염오법에 대해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견고소단의 5견(見,有身見ㆍ邊執見ㆍ邪見ㆍ見取ㆍ戒禁取)과 의(疑)와 아울러 이와 상응하는 무명과 불공(不共)무명, 그리고 견집소단의 사견ㆍ견취와 의(疑)와 아울러 상응하는 무명과 불공무명 등 11가지 수면(보통 7見ㆍ2疑ㆍ2無明으로 일컬어짐)과 이와 상응 구기하는 법은 일체의 번뇌에 대해 원인이 되는데, 동류인이 오로지 자부에 대해서만 원인이 되는데 반해 변행인은 5부의 모든 염오법에 대한 원인이 되기 때문에 동류인과는 별도로 ‘변행’이라는 명칭의 원인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54)
전주(前註) 참조. 변행수면(혹은 변행혹, 변혹)에 대해서는 본론 제25권에서 상론함.
55)
즉 변행인은 동류인처럼 결과와 서로 유사한 법이지만 오로지 염오법에 대한 원인으로, 동류인이 오로지 자지(自地) 자부(自部)에 국한되는 원인이라면 변행인은 5부에 통하기 때문에 별도로 건립하게 되었다.
56)
득(得)에는 소득법(所得法) 즉 생겨나는 법과 동시에 구기(俱起)하는 법구득(法俱得) 뿐만 아니라 본법에 선행하는 법전득(法前得)과 본법이 과거로 낙사(落謝)한 후에 존재하는 법후득(法後得)이 있기 때문에 변행인이 되지 않는다는 뜻.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12권 주35) 참조.
57)
이숙인(vipaka-hetu)이란 온갖 불선과 선의 유루로서 고ㆍ락 등의 이숙의 과보를 초래하는 원인을 말한다. 즉 무기는 그 힘이 열등하기 때문에, 또한 무루는 애(愛)에 의해 윤택되지 않고 3계 9지(地)에 계속(繫屬)되지 않기 때문에 이숙인이 아니지만, 불선이나 선의 유루는 애를 윤택하게 하고 9지에 계속되기 때문에 이숙인이 되며, 따라서 이숙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58)
즉 이숙인이란 선ㆍ불선의 업이 고락의 과보(이것의 性은 무기임)를 초래하는 작용이기 때문에, 그 성상은 다르지만 선이든 불선이든 한결같이 ‘이숙’의 과보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59)
즉 이숙인이 유루임을 ‘오로지’라는 말로 강조함으로써 무루법에도 적용되는 구유인이나 동류인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였다는 뜻. ‘일체의 결과를 다 이숙이라 이름한다’고 주장한 이는 경부사(經部師)인 상좌(上座) 스리라타(Śrīlāta)이다. 이 같은 주장의 논거는 『순정리론』 제16권에 언급되고 있지만, ‘일체법은 이숙생’이라는 그의 주장은 『순정리론』 제5권에서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
60)
이를테면 견실한 종자[因]일지라도 이를 적셔 윤택하게 하는 물[助緣]이 없으면 싹[果]을 낳지 못하는 것처럼, 무루업은 무기와는 달리 과보를 낳을 힘이 있어도 자타 번뇌의 애수(愛水)에 윤택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과보를 낳지 않는다. 이에 반해 무기는 부패한 종자처럼 그 힘이 열등하기 때문에 과보를 낳지 않지만, 그 밖의 유루업은 종자가 견실하고 애수의 윤택함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숙의 과보를 초래하는 것이다.(후술)
61)
『품류족론』 제15권(대정장26,p.755 상: 한글대장경117,p.329).
62)
즉 4대종은 각기 서로에 대해 구유인이 되지만, 소조색의 극미는 다른 소조색과 관계하지 않더라도, 다시 말해 서로에 대한 힘[轉轉力]을 배제하더라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구유인이 되지 않는다.
63)
유부에 의하면, 마치 그림을 그릴 때 한 가지 색으로 윤곽을 잡은 후 다수의 색을 칠하여 그림을 완성하는 것처럼, 일생 즉 하나의 중동분과 명근은 한 찰나의 업에 의해 인기(引起)되며, 그 밖의 다수의 업은 일생을 남녀ㆍ빈부ㆍ귀천 등 여러 내용의 성질로 원만하게 장엄하는 작용을 갖는데, 전자를 인업(引業,구역에서는 總報業)이라고 하며, 후자를 만업(滿業,구역에서는 別報業)이라 한다.(본론 제23권 참조) 즉 여기서는 심수전의 업은 명근과 중동분을 이숙으로 삼는 인업(생을 능히 견인하는 업)이 되고, 그 밖의 어ㆍ표업은 만업(생을 원만하게 장엄하는 업)이 된다고 하여 이숙인(업)을 이러한 두 종류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64)
이는 욕계계(繫)인 신ㆍ어업이 중동분과 명근을 견인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다.
65)
지옥에서의 생은 살생과 망어를 일으키게 한 사업(思業)에 의한 것이지만, 그 상이 미세하여 알기 어렵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거친 표색(즉 악행)으로 설하게 되었다는 뜻.
66)
이하 여러 종류의 이숙인이 함께 동일한 이숙과를 낳는 것에 대해 3계에 걸쳐 밝히고 있다. 즉 이숙인에는 욕계에 세 가지, 색계에 네 가지, 무색계에 두 가지 등 아홉 가지 품류의 차별이 있다. 이는 사실상 이숙과를 낳는 선ㆍ악업의 조건을 분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욕계의 가장 단순한 형태의 이숙인은 1온 중에 포섭되는 것으로, 선 또는 불선의 득(得)과 그것을 낳게 하는 생(生) 등의 4상이 공통의 원인이 되어 하나의 결과를 낳는 경우이다.
67)
즉 제2정려 이상에서는 심(尋)ㆍ사(伺)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표업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색계 중에서 2온을 이숙인으로 삼는 경우는 다만 초정려에 국한되는 것이다.
68)
수전색(즉 정려율의와 무루율의)을 갖지 않는 선한 심ㆍ심소란 욕계 산심(散心)을 말한다. 『구사론』(앞의 책,p.296)에서는 ‘비등인(非等引)의 선한 심ㆍ심소’라고 논설되고 있다. ‘비등인’이란 바로 등인(samāhita, 혹은 等至samāpatti) 즉 정심(定心)이 아닌 산심(散心)을 말한다. 즉 욕계 산심 중에는 심수전색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색온을 제외한 것이다.
69)
이하 이숙업이 초감(招感)하는 처(處)의 다소에 대해 밝힌다.
70)
어떤 이숙업이 색처를 초래하는 경우, 색처 이외 능조(能造)의 4대를 포섭하는 촉처와 생(生) 등의 상을 포섭하는 법처를 반드시 초래한다.
71)
이러한 해석은 세친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 즉 세친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처(舌處)를 초래하는 경우라면 다 같이 각각의 1처와 신ㆍ촉ㆍ법처를 초래하게 된다고 설하여 색처를 별도의 업에 의해 초래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구사론』 권제6, 앞의 책,p.297) 이를테면 인간의 안처는 선업에 의해 초래되지만, 색처는 불선업에 의해서도 초래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1처 내지 4처(예컨대 眼ㆍ身ㆍ觸ㆍ法)는 동성(同性)의 업에 의해 초감되고 반드시 구유(俱有)하기 때문에 결정감(決定感)이라 하며, 5처부터 11처는 별도의 업에 의해 낳아지는 경우도 있고 구유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부정감(不定感)이라 한다.
72)
성처(즉 소리)가 이숙과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본론 제5권 주55)의 본문 이하를 참조할 것.
73)
즉 1세(혹은 일 찰나)에 지어진 업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다 찰나)에 걸쳐 이숙과를 초래하는 일은 있어도 3세(다 찰나)에 걸쳐 지어진 업이 1세(일 찰나)에 이숙과를 초래하는 일은 없다는 뜻. 이는 이숙업과 그것이 이숙과를 낳는 시간상의 차별을 분별한 내용이다.
74)
원인과 결과가 동시인 것은 구유인과 상응인이다.
75)
업에는 그 과보를 낳는 시기가 결정적인 정업(定業)과 그렇지 않은 부정업(不定業)이 있으며, 정업에는 다시 그 과보가 현생에 바로 나타나는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또는 順現業)과 다음 생에 나타나는 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또는 順生業)과 다음 생 이후에 나타나는 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또는 順後業)의 세 가지가 있다.(본론 제21권 참조)
76)
여기서 본론은 『품류족론』 제6권(대정장26,p.715상).
77)
택멸은 세 가지 무위 중의 하나로, 이계(離繫)의 열반을 말한다. 즉 아비달마 본론(本論)에서 택멸을 결과라고 한 이상 그것은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원인을 가져야 하지만, 그럴 경우 무위는 인과에 제약되지 않는다고 하는 유부 정의에 어긋나게 된다는 힐난.
78)
본론 제8권 ‘6인론 총설’ 참조. “[유위]법이 생겨나는데 의지가 되는 것[所賴]이기 때문에 ‘인(因)’이라고 설하였다.”
79)
도에는 무간도와 해탈도가 있는데, 전자가 번뇌의 득(得)을 끊는 도라면 후자는 택멸의 ‘득’과 동시에 생겨나는 도로서, 예컨대 전자가 도둑을 잡아 문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아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무간도가 택멸의 직접적인 생인(生因)은 아니지만, 어쨌든 택멸의 이계과는 도의 힘(공용)에 의해 증득되었다는 점에서 도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후술)
80)
택멸은 무간도의 힘(공용)에 의해 번뇌가 끊어짐으로써 증득되기 때문에 도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결과는 생겨난 결과가 아니라 증득된 결과이다. 즉 택멸무위는 생성 소멸하지 않으며 인과적 제약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택멸의 이계과는 원인을 갖지 않는 결과로서, 6인에 의해 생겨난 결과가 아니다. 말하자면 무간도는 택멸의 ‘득’에 대해서는 능생(能生)의 공능을 갖지만 택멸에 대해서는 능증(能證)의 공능을 가질 뿐이다.(후술)
81)
능작인이란 자신을 제외한 그 밖의 법으로(본론 제8권), 택멸 역시 그 밖의 다른 유위제법의 생기를 장애하지 않기 때문에 능작인이 되는 것이라면(혹은 인식의 대상 즉 所緣緣이 되는 것이라면), 마땅히 증상과를 갖는다고 해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택멸무위 역시 인과에 제약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힐난.
82)
본론 제8권 ‘6인론 총설’의 본송 참조.
83)
결과와는 시간을 달리하지만 그 성질이 유사하지 않은 원인을 이숙인(異熟因)이라고 하며, 그 결과를 이숙과(異熟果)라고 한다. 여기서 ‘이숙’이란 원인과 결과가 그 성질을 달리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선업을 행하여 즐거움의 과보를 받고 악업을 행하여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할 때, 즐거움과 괴로움을 감수하는 지각[受]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무기이기 때문에 ‘이숙’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동류인ㆍ등류과와는 달리 이숙과가 다시 이숙인이 되어 결과를 낳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이숙인ㆍ이숙과의 관계는 1회에 한정될 뿐 계속하여 인과의 연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어떤 이의 주장은 이류(異類)로 성숙하는 등류과처럼 이숙과 역시 유이숙(이숙과를 갖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부에 의하면, 이숙과는 등류과와 존재유형이 다를 뿐더러 무기로서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또 다른 결과를 낳지 않는다.
84)
즉 업의 결과(이숙과)는 익은 음식처럼 다만 수용되고 소비될 뿐이지 새로운 업을 짓는 일이 없다. 만약 업의 결과가 원인이 되어 다시 결과를 낳는 것이라면, 한 번의 악업에 의해 괴로움을 받은 이상 거기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85)
전자가 무력(無力,혹은 無障)능작인이라면, 후자는 유력(有力) 능작인의 경우이다.
86)
이는 곧, 사용과(士用果)가 인간(士夫,pūruṣa)의 행위(士用)에 의해 낳아진 일체의 결과라면, 인간행위와 관계된 인과의 유형에는 구유ㆍ상응인과 사용과의 동시적 관계(俱生), 동류ㆍ변행인과 등류과의 무간(無間) 혹은 계시적 관계(隔越), 이숙인과 이숙과의 계시적 관계, 그리고 무루택멸의 이계과인 불생(不生, 이계과는 생겨난 결과가 아니라 증득된 결과이다) 등 네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본론 제9권 주11 참조), 어떠한 이유에서 구유인과 상응인의 결과만을 사용과라고 하는 것인가? 에 대한 논설이다.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0권
1)
이숙과(vipāka-phala)란 무부무기법으로서 유정(有情)에게만 존재할 뿐 비유정물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유정수 중의 장양(長養)이나 등류(等流)는 이숙과 통하지 않으며, 오로지 선ㆍ불선의 유기(有記)의 유루업으로부터 구시(俱時)나 무간(無間)이 아닌 후시(後時)에 일어나는 것이다.
2)
이숙과가 무부무기로서 오로지 유정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전 찰나와 동류로 상속하여 생겨난 것[等流生]이나 음식 등에 의해 장양된 것[所長養]도 마땅히 이숙과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난문.
3)
즉 동류인과 변행인의 결과인 등류과의 경우, 원인과 성(性,선ㆍ불선 등의 3성)과 지(地,9지)가 동류이지만(그러나 部의 경우는 다르다;후술), 이숙과의 경우 원인과 성(性)이 다르기 때문에 ‘이숙과를 동류인으로 삼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불선의 유정은 영원히 불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야 한다.
4)
비유정수 즉 무생물의 기세간(器世間)은 공업(共業)에 의해 초래된다. 즉 그것은 여러 중생의 각각의 업이 함께 지은 것으로, 그 결과가 모든 유정에 공통되기 때문에 이숙이라 할 수 없다. 이숙과는 오로지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초래되는 과보이다.
5)
이는, ‘개별적인 업[別業]의 결과만을 이숙과라고 한다면, 대범천이 머무는 주처(비유정수)도 역시 그러한 것이므로 이 역시 업의 이숙과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6)
이에 반해 『순정리론』(제18권)에서는 ‘예컨대 싹은 씨앗ㆍ 땅ㆍ수분ㆍ시기[時分], 사람의 공력, 거름[糞] 등의 힘에 의해 생기할지라도 그것들을 자류(自類)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하나의 사물을 성취한다고 하지 다수의 사물을 성취한다고는 하지 않는 것처럼, 비유정물의 경우도 자류의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많은 유정들의 업은 하나의 비유정물을 성취한다고 하지 그러한 수많은 유정들의 업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그 자체 다수의 사물을 성취한다고는 하지 않는다’고 논설하고 있다.
7)
등류과(niṣyanda-phala)란 자신의 원인(즉 동류인이나 변행인)과 유사하게 생겨난 법을 말한다.
8)
이를테면 유신견 등의 변행혹이 자부 타부의 염오법에 대해 원인이 되는 경우, 이 때 결과는 등류과이지만, 선 등 그 밖의 다른 제 심소와 상응할 때는 그 성질이 서로 유사하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 때는 변행인ㆍ등류과의 관계가 아니라 상응인ㆍ사용과의 관계이다.
9)
이계과(visaṃyoga-phala)란 무루 간택력(즉 慧)에 의한 번뇌의 소멸, 즉 택멸을 말한다.
10)
사용과(puruṣakāra-phala)란 어떤 법의 세력에 의해 생겨난 결과를 말한다. 그럴 때 구유인과 상응인은 구생(俱生)으로, 동류인과 변행인은 무간(無間)으로, 능작인은 혹은 구생으로, 혹은 무간으로, 이숙인은 시간적인 간격[隔越]을 두고서 사용과를 획득하기 때문에, 나아가 무간도는 택멸의 생인(生因)은 아니지만[不生] 그것을 증득하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서 사용과를 낳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간도를 불생사용과(不生士用果)라고도 한다.
11)
사용과의 네 가지 종류란 구생(俱生)과 무간(無間)과 격월(隔越)과 불생(不生)이 바로 그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9권 주11)에서 언급하였다.
12)
증상과(adhipati-phala). 결과는 원인에 앞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원인에 앞서 생겨난 법을 제외한 그 밖의 법과 동시이거나 후에 생겨나는 유위법을 모두 증상과라고 한다. 즉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법에 원인이 되는 능작인의 증상력(與力과 無障)에 의해 획득된 결과이므로 증상과이다.
13)
이를테면 곡식은 농부의 힘에 의해 생겨나고 그가 수용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사용과와 증상과가 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오로지 수용할 뿐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는 증상과가 된다.(『순정리론』 제18권)
14)
여기서 취과란 직접적으로 결과를 초래할 능력이 있는 것(예컨대 종자)으로 질료인에 상당하는 것이고, 여과란 제법의 생기에 간접적인 조력(助力)을 부여하여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 것으로 동력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취과는 현재에 능히 원인이 되어 후과(後果)를 취하는 것이며, 여과는 제법이 장차 생기하려고 할 때 그것에 힘을 부여하여 현재로 출현하게 하는 것이다. (후술)
15)
능작인이란 자신을 제외한 일체법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역시 오로지 현재 증상과를 인기하지만, 무위법이나 미래법과 같은 것은 결과를 인기하지 않기 때문에 본송에서 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6)
『발지론』 제6권(대정장26,p.945 하: 한글대장경176,p.127).
17)
주15) 참조.
18)
즉 등류과가 무간에 낳아지는 경우, 원인이 현재할 때 결과는 바로 미래 생상위(生相位,곧 正生位)에 오게 되기 때문이다.
19)
이처럼 능작인의 여과는 구생ㆍ무간ㆍ격월로서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앞서 과거ㆍ현재와 통한다고 말한 것이다.
20)
가행과(prayoga-phala)는 가행도인 부정관(不淨觀) 등을 닦고 나아가 마침내 무생지 등이 생겨나기 때문에 부정관 등을 가행과라고 한 것이다. 안립과(pratiṣṭhā-phala,구역에서는 依止果)란 어떤 토대 위에 안립된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가옥이나 초목 사람 등은 대지를 토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의 안립과라고 하는 것이다. 화합과(samāgrī-phala,구역은 集果)는 여러 가지 인연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결과를 말하며, 수습과(bhāvanā-phala)는 선정의 수행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를 말한다.
21)
두 번째 안립과는 증상과에, 나머지 세 가지는 사용과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다.
22)
이숙생을 제외한 그 밖의 무기법이란 위의로(威儀路)ㆍ공교처(工巧處)ㆍ변화심(變化心)를 말하며, 첫 번째 무루를 제외한 그 밖의 다른 선법이란 고법지인(苦法智忍)과 그것과 상응ㆍ구유하는 법을 제외한 무루법과 일체의 유루선법을 말한다.
23)
이숙인에 의해 생겨나는 법은 무기이다. 즉 염오법은 심ㆍ심소이기 때문에 상응인에 의해, 염오법이기 때문에 변행인에 의해 생겨나며, 동류ㆍ구유ㆍ능작인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24)
변행인에 의해 생겨나는 제법은 오로지 염오법이기 때문이다.
25)
즉 염오법과 이숙생법과 첫번째의 무루법을 제외한 그 밖의 법은 이숙생이 아니기 때문에 이숙인을 제외하는 것이며, 염오법이 아니기 때문에 변행인을 제외하는 것이다.
26)
첫 번째 무루법 즉 고법지인(苦法智忍)은 선법이며, 앞서 생겨난 동류의 법을 갖지 않기 때문에 이숙ㆍ변행인과 동류인을 제외하는 것이다.
27)
불상응행의 네 가지 법이란 심ㆍ심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염오법(염오법과 구생하는 득과 4상), 이숙생법(중동분ㆍ무상과ㆍ명근과, 이생성과 구생하는 득과 4상), 첫 번째 무루법(고법지인과 구생하는 득과 4상), 그 밖의 법(비득ㆍ무상정ㆍ멸진정ㆍ名ㆍ句ㆍ文과, 심 심소의 그 밖의 법과 구기하는 득과 4상)을 말하며, 색법의 경우는 염오색(이를테면 불선율의)ㆍ이숙색(5根)ㆍ첫 번째 무루색(고법지인 상의 道共戒)ㆍ앞의 세 가지를 제외한 그 밖의 색(이를테면 도공계와 定共戒)을 말한다.
28)
상응인을 제외하는 것은, 그것은 오로지 심ㆍ심소법에만 한정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29)
일체의 존재는 적어도 능작ㆍ구유의 두 가지 원인 이상을 갖기 때문으로, 이러한 논의는 외도의 일인론(一因論), 이를테면 대자재천(大自在天,maheśvara)이나 생주신(生主神,prajapāti)과 같은 단일한 원인에 의해 일체 만유가 생겨났다고 하는 외도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11권 ‘제법의 연생(緣生)관계’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30)
유부에서는 앞에서 설한 6인(因) 이외에 다시 인연(因緣)ㆍ등무간연(等無間緣)ㆍ소연연(所緣緣)ㆍ증상연(增上緣)의 4연(緣,pratyaya)을 설하고 있는데, 양자는 사실상 본질적으로 어떠한 차이도 없으며, 다만 4연의 외연이 보다 넓을 뿐이다. 즉 능작인을 제외한 5인은 바로 인연이고, 능작인은 증상연이지만, 등무간연과 소연연은 6인 중 어떠한 원인에도 포섭되지 않는다.
31)
4연설은 현존하는 4아함 상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수(隋)의 달마급다(達磨笈多)가 번역한 『연생초승분본경(緣生初勝分本經)』 상권(대정장16,p.833중)과 당(唐) 현장이 번역한 『분별연기초승법문경(分別緣起初勝法門經)』 하권(동p.840중)에 나오지만, 거기서 ‘그 밖에 다른 곳에서 설하고 있는 바와 같다’는 언급으로 볼 때 이 경 이외에 다른 경에서도 설해졌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32)
인연(hetu-pratyaya)이란 결과에 대해 직접적인 원인[親因]이 되는 연으로, 능작인을 제외한 다섯 가지 원인을 본질로 한다.
33)
등무간연(samantara-prtyaya). 더 이상 후과(後果)를 낳지 않는 아라한의 최후심을 제외한 그 밖의 심ㆍ심소법은 동등한 종류의 후 찰나의 마음을 무간에 인기한다는 점에서 등무간의 연이 된다. 즉 전 찰나의 연에 의해 생겨난 후 찰나의 심ㆍ심소법은 전법(前法)과 마찬가지로 각기 하나의 법체로서 상속하고 그 상이 서로 동등[等]하며, 전후 양자 사이에는 어떤 1법도 생기할 틈도 없이[無間] 바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 같은 연을 ‘등무간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34)
‘무간연’이란 전후 사이가 간단(間斷)없는 연을 말하지만, 다만 시간적으로 원인 직후에 결과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전 찰나의 마음과 후 찰나의 마음 사이에 다른 어떤 마음도 생겨나는 일이 없는 것을 말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다만 원인과 결과 사이가 일 찰나의 간격도 없는 상태를 ‘무간’이라고 한다면, 예컨대 무상정이나 멸진정으로부터 나올 때 전 찰나를 연으로 한다면 전 찰나는 무심의 상태이기 때문에 끝내 출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곧 출정심의 등무간연은 전 찰나의 멸진정의 법이 아니라 입정할 때의 마음이라는 뜻.(후술)
35)
즉 오로지 동류(同類)로서 상속하는 것만을 ‘등무간’이라고 주장한다면, 유심유사(有尋有伺) 삼마지(三摩地,초정려)와 무간에 무심무사(無尋無伺) 삼마지(제2정려)가 현전하는 경우, 전 찰나의 심ㆍ사는 마땅히 등무간연이 아니어야 할 것이며, 무심무사 삼마지와 무간에 유심유사 삼마지가 현전하는 경우, 후 찰나의 심ㆍ사는 마땅히 등무간연이 없이 일어난 것이라고 해야 한다. 혹은 탐 등의 등무간연은 오로지 무간에 탐 등의 번뇌만을 낳아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탐심 등으로부터 선심 등은 결코 생겨날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36)
무상천에 태어나거나 무상정과 멸진정에 입정할 때의 마음은, 그것이 ‘바로 멸하려고 하는 상태’에서 능히 무상천에서 몰하거나 두 선정에서 출정할 때의 마음에 대해 등무간연이 될 수 있다는 뜻.(주34 참조)
37)
무상과 등의 불상응행법은 마치 제방이 강물의 흐름을 막듯이 전 찰나의 마음이 멸하고서 후 찰나의 마음이 생겨나는 중간을 차단하였기 때문에 마음의 상속이 일시 끊어졌던 것이지만, 불상응행법이 멸하는 순간 전정심(前定心)을 등무간연으로 삼아 출정심(出定心)이 일어나게 된다.
38)
만약 미래세에 등무간연이 있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일체법에 전후가 결정되어 있다면 극단적인 운명론에 떨어지게 되어 어떠한 가행도 닦을 필요가 없게 된다.
39)
이는, 미래는 전후가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등무간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숙인 역시 그 결과(이숙과)와 전후로 존재하기 때문에 미래세에 설정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힐난에 대한 해명이다. 중현에 의하면, 업의 상(相)은 미래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미래에 이숙인을 설정한 것 뿐, 시간적인 전후에 근거하여 이숙인을 설정한 것이 아니다. 즉 원인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실로 전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미래세에 존재하는 원인은 시간적 전후관계에 근거하지 않는 구유인과 상응인 뿐이다.(『순정리론』 제19권)
40)
이는, ‘미래세는 전후가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등무간연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논의의 방론(傍論)으로, 만약 전후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 덕용(德用)이 불가사의한 세존 또한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힐난.
41)
『구사론』 제7권(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p.330)에 의하면, 세존께서는 과거ㆍ현재의 인과관계를 관찰하시고 나서 바로 미래 잡란되어 머무는 온갖 법의 인과관계를 능히 바로 요달(了達)하신다. 그러나 이는 비량지(比量智,추리)가 아니라 유비(類比)를 통한 직관으로, 원지(願智)에 포섭되는 것인데, 세친은 이러한 사실을 불신하여 ‘전설(傳說)’로 전하고 있다. 참고로 세친은 경량부의 주장에 동조한다.(주44 참조)
42)
이는 ‘만약 현재의 신체 등의 상을 통해 미래를 바로 직관한다면, 점을 쳐 아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는가?’하는 힐난에 대한 해명이다. 즉 점의 경우 현재의 상을 통해 미래를 아는 간접지이지만, 불타의 경우 바로 깨달아 관찰(직관 통찰)한 직접지라는 것이다.
43)
‘이염(爾焰)’이란 jñeyaṃ의 음역(音譯)으로 ‘알려지는 것[所知]’ 즉 경계대상의 뜻이고, ‘조림(稠林)’이란 밀림의 뜻이다.
44)
“[불타는] 색 등 현재의 경계대상에 대해 안식 등으로 먼저 영수(領受)하였던 것이지, 오로지 의식(意識)만으로 바로 요지(了知)하였던 것은 아니다. 또한 안식 등이 소리 등의 경계대상이나 이치에 대해 방편으로 서로 작용하게 한 일도 없었던 것이다.”(『순정리론』 제19권) 즉 불타는 무엇이든 알고자 하면 바로 아는 일체지자(一切智者)가 아니라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알며, 또한 안식으로는 다만 색을 알았을 뿐이지 소리를 알지는 못하였으며, 미래상 역시 오로지 의식을 통한 신통만으로 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불타관이라 할 수 있는데, 『구사론』 제7권(앞의 책, p.331)에서 전하고 있는 경량부의 불타관—“세존께서는 알고자 하시기만 한다면[擧意] 제법을 두루 아시니, 이것은 [직접적이고도 완전한 지식으로] 비량지도 아니고 점상(占相)에 근거한 지식(즉 간접지)도 아니다.”—과 대비되는 견해이다.
45)
심ㆍ심소법의 경우, 동류의 법은 일 찰나에 구기하지 않으며 무간으로 생겨나기 때문에(전술) 등무간연으로 설정하였던 것이지만, 색법은 한 찰나의 마음에 욕계계(欲界繫)와 색계계(色界繫)의 두 색이 함께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욕계계와 불계(不繫,무루)의 색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별해탈계를 받고 유루정에 들 경우 욕계의 별해탈계의 무표와 색계 정려율의(定俱戒)의 무표가 동시에 일어나며, 무루정에 들 경우 욕계와 무루율의(道俱戒)의 무표가 동시에 일어난다), 불상응행법의 경우, 예컨대 욕계에서 아라한과를 획득하면, 욕계법의 ‘득’과 색ㆍ무색계의 선법의 ‘득’과 불계법(不繫法)의 ‘득’을 획득하며, 득과(得果) 시 유루를 버리고 무루를 획득하기 때문에 ‘생’ 등의 4상 역시 3계계(유루)와 불계(무루)와 더불어 구기하는 등 동일한 소의신 중에 선ㆍ악ㆍ무기와 3계계(繫)ㆍ불계(不繫)가 구생하기 때문에 등무간연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46)
이는, 만약 전 찰나의 법이 멸하여 과거로 낙사(落謝)함으로써 후 찰나의 법에 처소를 부여하는 것(이를 開避라고 함)이 등무간연이라면, 극미 등의 색법도 역시 그러함으로 등무간연이 된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47)
예컨대 세제일법의 마음과 무간에 고법지인의 마음은 결정적으로 생겨나지만, 염오의 마음과 무간에 온갖 무루의 마음은 결정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48)
다시 말해 근(根)과 경(境)이 비록 화합하였을지라도 반드시 전법이 소멸하였어야 후법은 생겨날 수 있는 것으로, 동류의 두 식이 함께 생겨나는 일은 없다.
49)
이하 등무간연[前法]과, 그것에 의해 동등한 종류로서 무간에 생겨나는 등무간법[後法]의 관계에 대해 분별한다.
50)
즉 입정할 때의 마음과 무간의 법은 제1찰나의 선정이며, 제2찰나의 선정 내지 출정심은 시간적으로 떨어져있기 때문에 등무간법이라 할 수 없다는 힐난.
51)
“동등한 법[等法]이 그 중간에 일어나는 일이 없는 것을 ‘등무간’이라 이름하니, 이는 바로 두 법 중간에 동등한 법이 생겨날 수 없다는 뜻이다.”(전술)
52)
여기서 「견온(見蘊)」은 『발지론』 제8품을 말한다(제20권, 대정장26,p.1026중: 한글대장경176, p.488).
53)
만약 세제일법이 이생위(已生位)에 이르지 않았을 때는 고법지인에 대해 등무간이 되지 않지만, 이생위에 이르렀을 경우 고법지인에 대해 등무간이 된다고 한다면, 입정심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여야 한다는 힐난. 즉 입정심이 만약 이생위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온갖 선정의 찰나와 출정심에 대해 등무간이 되어 그것들이 무간에 단박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제법에 대해 등무간이 되지 않는다면 입정심은 출정심에 대해 등무간연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허물을 초래하게 된다.
54)
즉 『발지론』 제8 「견온」에서 ‘아직 이생위(已生位)에 이르지 않았을 때에는 등무간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유심의 상태에 근거하여 전법(이를테면 세제일법)에 대해 설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논거로 삼아 ‘입정심이 아직 이생위에 이르지 않았을 때는 등무간이 되지 않는다’고 논란할 수 없다는 뜻. 왜냐하면 무심위의 경우, 설혹 입정심이 이생위에 이르렀을지라도 제2찰나의 선정 내지 출정심에 대해서는 등무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55)
어떤 법이 아직 작용하지 않는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미래’라 하고, 지금 작용하고 있는 상태를 ‘현재’라고 하며, 이미 작용을 마친 상태를 ‘과거’라고 한다. 이는 바로 작용하는 상태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3세의 차별이 있다는 위부동설(位不同說,avasthā pariṇāma)로, 유부의 정설이다.(본론 제26권 참조)
56)
제 유위법으로서 능히 원인이 되어 자신의 결과를 인기하는 것을 ‘작용’이라고 하며, 만약 능히 연(緣)이 되어 다른 존재를 섭조(攝助)할 경우 이를 ‘공능’이라고 한다.
57)
즉 『발지론』의 논설이 후법(예컨대 고법지인)에 근거한 것이라면, 후법이 등무간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생위에 이르러야 하지만, 앞서 ‘정생위에 이른 법도 전법에 대해 등무간이 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
58)
소연연(ālambana-pratyaya)이란 심ㆍ심소의 소연이 되는 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존재는 마음 등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소연연은 일체법을 본질로 한다.
59)
심ㆍ심소의 구기 상응설을 주장하는 유부와 달리 차제(次第) 계기설(繼起說)을 주장하는 비유자(譬喩者) 즉 경량부에 의하면, 근(根)ㆍ경(境)ㆍ식(識)이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제1찰나에 근ㆍ경이 일어나고, 그것을 연으로 하여 제2찰나에 식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인식이 일어나고 있을 때에는 그 원인이 된 감관과 외계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식 등이 색 등과 직접 관계하는 것이 아니다. 곧 그들은 인식을 유부에서처럼 동일 순간에 공존하는 감관(즉 근)과 대상(경), 그리고 의식(식)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즉 식에 부과된 형상[行相]이 원인이 되고, 다음 순간 상속의 결과로서 인식이 생겨난다고 하는 인과의 관계로서 설명하기 때문에, 현재 대상만을 반연하는 안식 등 5식의 소연은 외계 대상이 아니라 식에 부과된 형상(법)이다. 나아가 그들은 과거ㆍ미래법의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은 소연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실유의 존재만을 반연하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과 중현의 비판에 대해서는 『순정리론』(제19권)을 참조할 것.
60)
예컨대 안식의 소연이 색법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할 때, 이 때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다만 색처[處]로서 결정되어 있다는 말인가, 푸른색ㆍ붉은색 등의 개별적인 종류[類,즉 體dravya의 뜻]로서, 혹은 찰나의 색으로서 결정되어 있다는 말인가? 하는 물음.
61)
안식은 어떠한 종류의 색, 어떠한 찰나의 색을 반연하여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안식의 결정적인 소연의 경계는 색처라는 뜻.
62)
전5식은 자성분별로서, 오로지 현전하는 대상만을 취할 뿐이다.(본론 제3권 ‘5식신(識身)의 무분별의 문제’ 참조)
63)
증상연(adhipati-pratyaya)은 바로 능작인이기 때문에 일체법은 모두 증상연이다. 앞의 소연연의 본질도 일체법이라고 하였지만, 동일 찰나에 구유하는 심ㆍ심소, 4상(相), 득(得) 등은 예외로 한다.(만약 그것이 소연이 될 경우 동일 찰나에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마음이 생겨나야 함) 그러나 이러한 법도 증상연이 되기 때문에, 혹은 일체법은 각기 그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일체의 유위법에 대해 증상연이 되기 때문에 작용하는 바의 외연이 소연연보다 넓다(adhika). 그래서 ‘증상(adhipati)’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후술)
64)
소연연은 모두 증상연이 될 수 있지만, 증상연이 모두 소연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일체법이 다 소연연이 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어떤 법이 생겨날 때 그것과 구기(俱起)하는 법(이를테면 심ㆍ심소나 4相)은 소연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증상연은 능작인으로서, 어떤 법이 생기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 것(무력능작인)이든 생겨나게 하는 것(유력능작인)이든 그것은 모두 증상연이 된다. 다시 말해 어떤 법이 생겨날 때, 그것을 제외한 다른 일체의 법은 증상연이 되기 때문에, 소연연보다 적용범위가 광대하다.
65)
원문에서는 ‘자법(自法)’으로 되어 있지만, 『순정리론』(제19권)에 따라 ‘백법(白法)’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1권
1)
즉 첫 번째 연(緣)인 인연은 능작인을 제외한 다섯 가지의 원인을, 네 번째 연인 증상연은 능작인을 포섭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연인 등무간연과 소연연은 6인 중 어떠한 원인에도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연이 인에 비해 그 범위가 넓다. 이는 유부의 정설이다.
2)
눈(안근)은 오로지 자신의 안식에 대해서만 원인이 되지만, 색은 자타의 모든 안식에 대해 원인이 된다. 이 경우 전자(共因)를 ‘인’이라고 한다면, 후자(不共因)를 ‘연’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3)
“그릇을 뚫는 일은 사람의 공력으로 능히 이룰 수 있지만, 그릇을 뚫는 일 따위가 물로 하여금 소를 낳게 하는 것은 아니니, 물 가운데에는 소의 원인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순정리론』 제20권) 이는 발효한 우유[酪]를 걸러 생소(生,일종의 요구르트)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말하자면 우유가 생소의 ‘인’이라면, 그것을 그릇에 구멍을 내어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며 거르는 것은 ‘연’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릇에 구멍을 뚫는 일이 바로 생소의 ‘인’이라면, 물도 그것을 통해 걸러지면 생소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은 다만 소의 ‘연’이 될 뿐이라는 뜻.
4)
자계(字界,즉 어근)는 자연(字緣,즉 어미)의 도움에 의해 문장 속에서 격변화 되어 구체적인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는 뜻.
5)
이 두 가지 원인은 결과(사용과)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원인이 작용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현재하는 법, 즉 이미 생겨난 법에 대해서이다.
6)
즉 이 세 원인은 다 같이 후시(後時)에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원인의 여과(與果)작용은 결과가 되는 법이 바야흐로 미래에서 막 생겨나려고 하는 순간(正生位 혹은 生相位)에 나타난다. 곧 정생위란 바로 미래를 말한다.
7)
제 유위법으로서 능히 원인[因]이 되어 자신의 결과를 인기하는 것을 ‘작용’이라고 하며, 만약 능히 연(緣)이 되어 다른 존재의 생기를 섭조(攝助)할 경우, 이를 ‘공능’이라고 한다.
8)
등무간연은 후 찰나의 심ㆍ심소가 막 생겨나려고 할 때, 즉 미래법에 대해 여과의 작용을 일으키며, 소연연은 능연인 심ㆍ심소가 바로 소멸하려고 할 때, 즉 현재법에 대해 여과의 작용을 일으킨다.
9)
증상연은 바로 자신 이외 모든 법의 생기를 장애하지 않는 능작인이기 때문에 어느 때라도 여과(與果)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10)
현재 작용을 갖는 법(현재법)만이 소연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일체법은 소연연이 될 수 있다.
11)
비존재에 대해서는 어떠한 인식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인식은 반드시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일어난다.
12)
색 등의 5경(境)은 전5식의 소연연이 되며, 일체법 즉 3세의 유위법과 비세(非世)의 무위법은 제6의식의 소연연이 된다.
13)
즉 염오심은 이숙인을 제외한 나머지 4인에 의해 생겨나며, 첫 번째 무루인 고법지인은 이숙ㆍ동류ㆍ변행인을 제외한 나머지 2인에 의해 생겨나며, 그 밖의 유루의 선과 무루와 무기의 심ㆍ심소법은 이숙인과 변행인을 제외한 나머지 3인에 의해 생겨난다.
14)
즉 앞서 ‘4연의 작용’을 설한 본송에서 인연의 다섯 가지 원인 중 구유인ㆍ상응인과 소연연은 법이 ‘바로 멸하려고 할 때[正滅時]’에 여과의 작용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15)
즉 각기 상응하는 바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제외한 그 밖의 일체의 법이 두 무심정의 증상연이다.
16)
‘무상(無想)’이란 색계 제4선 제3천인 무상천(無想天,혹은 廣果天) 중에서 심ㆍ심소가 소멸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무상정(無想定)에 의해 초래되는 이숙과이다.(본론 제7권 참조)
17)
두 선정은 입정할 때의 마음에 의해 인기(引起)되기 때문에 마음의 등무간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심ㆍ심소를 장애하여 생기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출정할 때의 마음에는 등무간연이 되지 않는 것이다.
18)
본론 제10권 주51) 본문 참조.
19)
이를테면 무심정에서 출정하는 마음과 제2찰나 이후의 무심정의 찰나는 입정할 때의 마음과는 등무간이지만, 두 찰나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입정할 때의 마음과 무간이 아니다.
20)
첫 찰나에 일어난 온갖 선정과 유심(有心)의 상태에서의 온갖 심ㆍ심소는 전 찰나의 마음과 무간이면서 등무간이지만, 그것의 생 등의 4상은, ‘무간’일지라도 동등하게 일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등무간’이 아니다.
21)
제1구는 마음에 등무간이 되는 것이면서 무심정과 무간에 생겨나는 법이 아닌 경우로서, 이는 앞에서 분별한 제3구 ‘첫 찰나에 일어난 온갖 선정과 아울러 유심의 상태에서의 온갖 심ㆍ심소가 그러하다.’ 즉 무심정 첫 찰나와 유심위에서의 온갖 마음 등은 전 찰나의 마음과 등무간이지만, 무심정에 의해 무간에 속기(續起)한 것은 아니다. 제2구는 무심정과 무간이면서 마음에 등무간이 되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에 앞서 분별한 제4구에 해당하고, 제3구는 마음에 등무간이 되는 것이면서 무심정과 무간에 생겨나는 경우이기 때문에 앞서 분별한 제1구에, 제4구는 마음에 등무간이 되지 않으면서 무심정과 무간에 생겨나지도 않는 경우이기 때문에 앞서 분별한 제2구에 해당한다.
22)
자재천(自在天,Īśvara)이라는 인격적 힘을 지닌 신이 일체제법을 낳았다고 하는 설은 도회외도(塗灰外道), 혹은 자재천외도의 설이며, 자아(自我,ātman 혹은 puruṣa)가 일체생성의 근원이라고 하는 설은 우파니샤드의 베단타의 주장(『俱舍論疏』나 『俱舍論記』에 의하면 數論 즉 상캬학파)이다. 승성(勝性,pradhāna)이란 상캬학파의 자성(自性,prakṛti)을 말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 상캬에서는 물질적 자성 이외 정신적 원리로서 자아(puruṣa)를 상정하지만 이는 사실상 세계전개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승성 일원론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리고 ‘등’이라고 함은 이 밖에도 시간(時,kāla)ㆍ자성(svabhāva)ㆍ극미(paramāṇu) 따위를 세계생성의 유일한 원인으로 보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23)
자재천이 의욕(kama) 즉 의지의 차별에 따라 그 순서대로 일체의 세간을 낳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의 단일한 원인에 의해 세간이 낳아진 것이라는 본래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는 뜻. 곧 세간을 낳은 직접적인 원인은 다양한 의지의 차별이기 때문이다.
24)
“만약 그러한 의욕의 차별은 다시 그 밖의 또 다른 원인에 근거하기 때문에 [일체의 세간이] 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일체의 세간은 오로지 자재천이라는 하나의 존재[一法]를 원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구사론』 제7권)
25)
일체의 세간이 자재천이 갖은 의욕의 차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자재천은 유일하며 무차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여러 의욕들은 일시에 일어나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세계는 혼돈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뜻.
26)
일체 세간이 구기(俱起)하지 않고 순서대로 낳아지는 것은 자채천의 의욕의 차별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의욕 또한 단박에 일어나지 않고 순서대로 낳아지기 위해 또 다른 원인이 설정되어야 하며, 결국 무한소급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그 시작을 알 수 없게 된다는 뜻.
27)
앞에서는 세간의 단일한 원인으로서의 자재천을 비판하였지만, 여기서는 세계의 원인으로서 자재천이 존재한다면 어떠한 목적에 의해 세계를 조작하였는가 하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즉 자재천에는 그러한 목적이 없기 때문에 그 같은 단일한 원인을 설정하는 것은 무용(無用)하다는 것이다.
28)
베단타학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자재천으로 불리는 브라흐마는 유일의 실재(sat)인 동시에 지(cit)이며 또한 환희(ānanda)이기 때문에, 환희는 그 자신 이외 또 다른 방편을 필요치 않는 것이다.
29)
이를테면 ‘자재천은 중생이 행한 업에 근거하여 차별의 세간을 낳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베단타학파 일반의 주장.
30)
하나의 대종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다른 세 가지 대종과 반드시 함께[俱起]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구유인이 되며, 동류의 대종일 경우 전 찰나[前生]의 대종에 의해 후 찰나의 대종이 낳아지기 때문에 동류인이 된다. 그러나 대종은 심소법이 아니기 때문에, 무기성이기 때문에, 염오법이 아니기 때문에 상응ㆍ이숙ㆍ변행인이 제외되는 것이다.
31)
『발지론』 제13권(대정장26,p.984,상: 한글대장경176,p.289). “문: 대종은 조색에 몇 가지 연이 되는 것인가? 답: 인연과 증상연이 된다.”
32)
대종은 소조색을 낳기 때문에 생인(生因,janana-hetu)이 되며, 소조색은 이에 따라 전전상속하기 때문에 의인(依因,niśraya-hetu)이 되며, 대지가 사물을 지탱하듯이 소조색을 능히 임지(任持)하기 때문에 입인(立因,pratiṣṭha-hetu)이 되며, 소조색을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지인(持因,upastambha-hetu)이 되며, 소조색을 능히 장양시키기 때문에 양인(養因,upabriṃhaṇa-hetu)이 된다.
33)
물론 능작인도 될 수 있지만 “능작인은 [결과에 대해] 어떠한 차별도 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서] 항상 헤아려 꼽지 않은 것이다.”(『구사론』 제7권, 앞의 책,p.344)
34)
욕계의 선심이 등무간연이 될 경우, 아홉 가지 마음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즉 욕계의 선ㆍ불선ㆍ유부무기ㆍ무부무기의 네 가지 마음을, 색계의 선심과 염오한 유부무기심을, 무색계의 경우는 다만 염오한 유부무기 한 가지를, 그리고 학ㆍ무학심을 낳을 수 있다.
35)
예컨대 초정려와 무간에 제2정려를 건너뛰어 제3정려를 일으키는 것을 ‘초정(혹은 超等持)’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39권 참조.
36)
욕계의 가행선에 의해 유학과 무학의 두 가지 무루관에 들어갈 때, 욕계 선심을 등무간연으로 하여 무간에 유학심과 무학심이 낳아진다.
37)
즉 무색계의 선정에 들어가고 나오는 상태에서는 색계의 마음을 소의로 삼을 뿐 욕계의 마음을 등무간연으로 삼는 일이 없으며[所依遠], 하지를 싫어하고 상지를 흠모하는 추(麤)ㆍ고(苦)ㆍ장(障)과 정(靜)ㆍ묘(妙)ㆍ출(出)의 6행관(行觀)을 닦을 때 제4정려를 하지로 관찰하지 직접적으로 욕계의 5온을 관찰하여 이러한 행상을 일으키지 않으며[行相遠], 욕계법을 소연으로 삼는 일도 없다[所緣遠], 이것의 행상을 취하는 일도 없다]. 또한 아직 욕계의 탐을 떠나지 않은 자는 무색계의 선정에 들더라도 욕계의 악계(惡戒)와 번뇌 등을 대치할 수 없기[對治遠] 때문에, 욕계의 선법은 바로 무간에 무색계의 선법을 낳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4원(遠)에 대해서는 본론 제18권 ‘무색계에 무표업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에서 다시 설해지고 있다.
38)
색계정에 들었으나 여기에 미착(味著)하여 보다 상지(上地)의 선정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이것을 味定이라 함)에는 이러한 선정에서 물러나는 것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지 즉 욕계의 선심을 일으켜 이를 방호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때 욕계 선심은 색계 염심으로부터 등류(等流)된 것이다.
39)
욕계의 변화심을 제외한 그 밖의 무부무기심은 다른 지[異地]의 마음을 등무간연으로 삼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40)
즉 욕계의 염오심은 불선과 유부무기를 말하며, 무색계의 염오심은 속생위(續生位)에서의 유부무기를 말한다.
41)
등무간연이 되는 12심은 다시 20심으로 나누어진다. 즉 3계의 선심은 각각 가행득(加行得)과 생득(生得)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3계에는 여섯 가지 선심이 있게 된다. 또한 욕계의 무부무기심은 이숙생ㆍ위의로ㆍ공교처ㆍ통과심의 네 가지로 나누어지며, 색계의 무부무기심은 공교처를 제외한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상계에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조작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12심은 욕계의 8심, 색계의 6심, 무색계의 4심에 유학ㆍ무학심을 더하여 총 20심이 되는 것이다.
42)
가행득의 선이란 수행을 통해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선을 말하며, 생득의 선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획득된 선을 말한다.
43)
이숙생의 마음이란 전생의 업력에 의해 인기되어 12처를 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마음. 위의로의 마음이란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 등의 행동거지를 일으키는 마음. 공교처의 마음이란 조각이나 노래 등에 능숙한 기교의 마음. 통과심이란 변화심이나 천안ㆍ천이통(天耳通) 등 신통의 마음으로, 이는 모두 무기이다.
44)
즉 욕계에는 두 가지 선심(가행과 생득)과 두 가지 염오심(불선과 유부무기)과 네 가지 무기심, 색계에는 두 가지 선심과 한 가지 염오심과 공교처를 제외한 세 가지 무기심, 무색계에는 두 가지 선심과 한 가지 염오심과 이숙의 무기심이 있는 것이다.
45)
원문은 정정(靜定)이나 이는 정정(淨定)의 오사(誤寫)이다. 선정 즉 근본등지(4정려와 4무색정)에는 미(味)ㆍ정(淨)ㆍ무루(無漏)의 세 가지가 있는데, 정정(혹은 淨等至)이란 미착(味着)의 대상이 되는 세간의 선한 유루의 선정을 말한다.(본론 제38권 참조)
46)
즉 생득의 선심과 위의로와 이숙생의 마음.
47)
출심(出心) 즉 가행의 선심에서 나오는 마음은 특별한 노력 없이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세력이 이열(羸劣)한 세 가지 무기심은 그런 가행의 선심과 무간에 생겨날 수 있다.
48)
즉 이숙생 등의 무부무기심이 가행의 선심을 낳을 수 없다고 한다면, 그 성질이 크게 다른 염심(즉 유부무기심)도 역시 가행의 선심을 낳을 수 없어야 한다는 힐난.
49)
이는, 욕계 생득의 선심이 유학ㆍ무학 등의 마음으로부터 낳아질 수 있어도, 그것에 의해 유학ㆍ무학 등의 마음을 낳을 수 없는 이유이다.
50)
이상에서 논설한 등무간연이 되는 12심, 또는 20심의 상생(相生)은 작의(作意)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하 작의와 성도(聖道)의 상생관계에 대해 논설한다. 여기서 작의(manaskāra)란 심대지법의 하나로 주의ㆍ경각(警覺)의 작용이다.(본론 제5권 참조)
51)
16행상이란 4제(諦)의 진리성을 말하는 것으로, 5취온 등의 현행의 결과[苦諦]는 인연소생이기 때문에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이며, 5취온 등의 현행의 원인[集諦]은 인연생이기 때문에 인(因)ㆍ집(集)ㆍ생(生)ㆍ연(緣)이며, 5취온 등의 소멸[滅諦]은 온갖 온의 상속이 다한 것이기 때문에 멸(滅)ㆍ정(靜)ㆍ묘(妙)ㆍ리(離)이며, 5취온 등의 소멸을 획득하는 대치도는 열반으로 가는 길이므로 도(道)ㆍ여(如)ㆍ행(行)ㆍ출(出)이다.(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35권 참조) 즉 이러한 ‘비상’등은 색법과도 통하고 심법과도 통하는 보편상(相)이기 때문에 공상(共相)이라고 한 것으로, 이러한 공상의 관지(觀智)와 상응하는 작의를 공상작의라고 한다.
52)
4무량ㆍ8해탈(유색해탈은 8해탈의 앞의 세 가지임)ㆍ8승처ㆍ10변처 등에 대해서는 본론 제40권을 참조할 것. 부정관은 5정심위(停心位)의 하나로, 몸의 부정한 모습을 관하는 것. 본론 제29권에서 상론한다.
53)
부정관은 유루도로서 승해작의의 일종이며, 염(念) 등의 7각분(혹은 覺支)은 무루성도이다. 곧 ‘부정관과 염각분이 구행한다’고 함은, 바로 양자가 무간에 상호 상생의 관계에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54)
즉 계경에서 ‘부정관과 7각분이 구행(俱行)한다’고 함은 부정관에서 공상작의(즉 16행상)로 나아가고, 공상작의로부터 견도로 나아간다고 하는 전전상생(展轉相生)을 말한 것으로, 양자는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상생(相生)한다는 뜻.
55)
미지정(未至定)과 초정려(初靜慮)와 정려중간(靜慮中間)에 의해 정성이생 즉 견도에 드는 경우, 그러한 경지와 욕계 사이의 간격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무간에 공상작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
56)
다시 말해 순결택분을 제외하고서 제2정려 이상의 경지에 속하는 공상작의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여기서 순결택분이란 견도에 들기 전의 난(煖)ㆍ정(頂)ㆍ인(忍)ㆍ세제일법(世第一法)의 가행위(4선근이라 함)로서, 여기서는 비록 언어 개념적인 이해(5온성의 세속지)이기는 하지만 역시 4제 16행상을 닦는데, 이는 결정적인 진리인식[決擇]인 견도 열반에 이르는 근거이자 첩경이기 때문에 ‘순결택분’이다.(본론 제30권 참조)
57)
즉 오로지 공상작의에서만 무간에 성도가 현전하며, 성도 역시 무간에 오로지 공상작의만을 능히 일으킬 수 있다고 할 경우, 성자는 일찍이 획득하였던 가행도인 순결택분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58)
즉 순결택분과 같은 내용의 별도의 공상작의가 있어, 그것이 견도에서 출관(出觀)할 때 견도심을 등무간연으로 삼아 무간에 일어난다는 뜻.
59)
그 같은 별도의 공상작의라는 것도, 순결택분에 계속(繫屬)되는 것으로서 16행상의 부분관(觀)일 뿐 총관(總觀)이 아니라고 한다면, 결국 가행도일 뿐이기 때문에 성도와 무간에 현전할 수 없다는 뜻.
60)
불환과의 성자가 처음으로 무학과를 획득하고서 무루정에서 물러날 때를 말함. 무학과는 미지정과 중간정려와 4근본정려와 아래 3무색정에 의해 획득되는데, 여기서는 몸은 욕계에 있으면서 미지정에 의해 무학과를 획득한 경우이다.
61)
무색계는 소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소성의 작의가, 정려지이기 때문에 사소성의 작의가 없는 것이다.
62)
앞서 논설한 ‘12심의 상생관계’가 등무간연에 근거한 상생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것이라면, 여기서의 논의는 ‘12심 각각은 어떠한 마음을 획득할 수 있는가’하는 획득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63)
이는 『구사론』(7)의 본송을 완전히 고쳐 지은 것으로, 동론에서의 본송은 이러하다. “3계의 염심(染心) 중에서는 여섯 가지와 두 가지를 획득하고, 색계의 선심은 세 가지를, 유학의 마음은 네 가지를, 그 밖의 마음은 모두 자류(自類)만을 획득할 수 있다.(三界染心中 得六六二種 色善三學四 餘皆自可得)”
64)
욕계의 선ㆍ불선ㆍ유부무기ㆍ무부무기와, 색ㆍ무색계의 유부무기, 그리고 유학의 마음이다. 『구사론』에서는 이 중 욕계의 무부무기심을 제외하고 있지만, 본론에서는 아마도 『식신족론』(제13권. 대정장26,p.594하: 한글대장경116,p.301)에서 “불선심을 성취한다면 반드시 욕계의 무부무기를 성취하지만, 욕계의 무부무기를 성취하더라도 불선심을 성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설하였기 때문에 무부무기심을 포함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보광(普光)에 의하면, 세친은 아비달마 본론을 지식으로 기준[量]삼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였다.(『구사론기』 제7권, 대정장41,p.146하 참조)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식신족론』의 경우, 위의로와 공교처는 비록 무기일지라도 그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3세의 득을 성취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설한 것이라면, 『구사론』의 경우, 부처나 마승(馬勝)비구처럼 위의로가 능숙한 이와 비스마카르만(工匠의 신)처럼 공교처가 능숙한 이는 (무부무기심을) 성취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성취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설한 것이다. 혹은 다수의 유정 중에는 위의로와 공교처에 익숙한 이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혹은 여러 종류의 위의로와 공교처에 익숙한 자도 있지만 익숙하지 못한 자도 있는데, 『식신족론』은 전자에 근거하여 설하였기 때문에 욕계 무부무기를 성취한다고 설한 반면, 『구사론』은 후자에 근거하여 설하였기 때문에 성취하지 못한다고 설하였다. 따라서 양론은 결코 상위하는 것이 아니며, 『식신족론』도 후자에 의거하였다면 욕계 무부무기를 성취하지 못한다고 하였을 것이고, 『구사론』도 전자에 의거하였다면 욕계 무부무기를 성취한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할 경우 『현종론』의 개송(改頌)도 불필요하다.”
65)
욕계의 무부무기와, 색계의 선ㆍ무부ㆍ유부무기와, 무색계의 유부무기, 그리고 유학의 마음이다.
66)
무색계의 유부무기심과 유학의 마음.
67)
원문은 ‘於此三位, 隨容有數.’ 즉 ‘욕계의 염오심이 현전하는 상태에서는 여섯 가지 마음을 획득한다’고 할 때, 여섯 가지의 마음은 일시에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계퇴환 등의 온갖 상태에 따라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라는 뜻. 여기서 계퇴환(界退還,어떤 계로부터 물러나는 것)이란 색ㆍ무색계에서 명종하여 욕계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상계로부터 물러나 하계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계퇴환’이라고 일컬은 것으로, 이 때 중유(中有)의 첫 찰나는 염심이지만 법전득(法前得)에 의해 선심을 획득한다. 속선본(續善本, 『구사론』 제7권에서는 疑續善,의심에 의해 선근을 상속하는 것)이란 인과부정의 사견(邪見)을 일으켜 선근이 끊어진 자가 그 후 이를 반성하여 앞서 끊어진 욕계의 생득선을 회복하여 상속하는 것으로, 이 때 인과의 의심[疑]은 염심이지만 그것은 욕계의 선심을 낳는 의심이다. 퇴승덕(退勝德,『구사론』에서는 起惑退,다시 번뇌를 일으켜 물러나는 것)이란 일찍이 유루ㆍ무루도로써 상계ㆍ상지의 번뇌를 끊은 자가 그 후 하계ㆍ하지의 번뇌를 일으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68)
참고로 『구사론』(제7권)과 『순정리론』(제20권)에서는 ‘자계의 선심과, 욕계와 색계의 무부무기심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69)
다시 말해 색계 선심은, 욕계에서 미지정으로, 미지정에서 근본정으로 승진함에 따라 생겨나기 때문이다.
70)
참고로 『구사론』과 『순정리론』에서는 ‘유학의 마음과, 아울러 욕ㆍ색계의 무부무기심과 무색계의 선심을 획득한다’고 설하고 있다.
71)
처음으로 견도에 증입(證入)하는 고법지인에서 유학심을 획득하고, 성도로써 욕계의 염오심을 떠나 색계 근본지에 들어갈 때 욕ㆍ색계의 통과심을 획득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성도에 의해 색계염오심을 떠날 때 무색계의 선심을 획득한다.
주석_아비달마장현종론_4. 변연기품, 12-17권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2권
72)
이는 『구사론본송』(제8권, 고려장27,p.511상; 대정장29,p.41상)을 고쳐지은 것으로, 거기서는 대범천(大梵天)을 범보천(梵輔天)으로부터 독립시켜 색계17천설(說)을 주장하지만, 유부 비바사사는 한 명만이 존재하는 대범천은 동분을 설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 색계16천설을 주장하였다.
『구사론본송』은 이러하다. “이러한 욕계 위의 17처를 색계라 이름하니, 그 중 세 정려 각각에 3처가 있고, 제4 정려에는 8처가 있다(此上十六處 名色界於中 三靜慮各三 第四靜慮八).
73)
사대왕중천은 증상(增上)ㆍ광목(廣目)ㆍ지국(持國)ㆍ비사문(毘沙門)의 사천왕이 머무는 하늘이다.
74)
삼십삼천(혹은 忉利天,Trayastriṃśa)은 수미산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제석천을 중심으로 사방에 각기 8천이 있어 삼십삼천이다.
75)
지옥ㆍ방생(傍生,즉 축생)ㆍ아귀ㆍ인간과 6욕천(欲天)의 10처.
76)
이상의 6욕천과 8대지옥ㆍ4대주 등의 유정세간과 기세간(器世間)에 대해서는 본론 제16권에서 다시 상론되고 있다.
77)
이상 16천의 명의(名義)에 대해서는 『순정리론』 제21권에서 상론하고 있다.
78)
원문에서는 ‘수명의 길이 등에 수승함이 없는데[無壽量等殊]’로 되어 있지만, 다른 판본과 내용상 의미로 볼 때 ‘무(無)’자가 없어야 한다.
79)
비유자(譬喩者)를 비롯한 경량부에서는 초정려에 대범천을 더하고, 외국사(外國師)는 제4정려에 무상천을 더하여 각기 17천설을 주장하였는데, 이하 이에 대해 간략히 변명한다.(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21권을 참조할 것)
80)
이상은 무색계에 방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근거. 즉 욕계나 색계에서 무색정을 획득하고서 명종하면 별도의 무색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색정을 획득한 그곳을 무색계로 삼아 태어나고, 또한 반대로 무색계에서 몰하면 욕계나 색계에서 중유(中有)를 일으키는데, 이는 곧 무색계에 방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약 무색계에 방처가 있다고 한다면 욕계ㆍ색계에서 무색정을 획득하고서 명종한 이는 무색계로 가 그곳에서 태어날 것이고, 몰한 경우에도 그곳에서 중유를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유(antarabhāva)란 사유(死有)에서 생유(生有)로 이어지는 중간적 존재로, 본론 제13권에서 상론한다.
81)
이에 반해 동분이나 명근 등 불상응행법의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부사(經部師)는, 유색계의 심ㆍ심소의 경우 색의 애탐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하여 상속하지만, 색에 대한 애탐을 떠난 무색계의 경우 그 자체로서 상속할 뿐 별도의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구사론』 제8권, 고려장27,p.511중; 대정장29,p.41중;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p.368)
82)
온갖 마음 등이 모두 소의에 따라 전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소의(所依,의근)의 상은 마땅히 두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마음 등은 결정코 무간에 멸한 의근에 따라 전변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소의로 삼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힐난.
83)
원문은 ‘四蘊俱生滅爲依性’이지만, 『순정리론』 제21권에 따라 ‘四蘊俱生 咸爲依性’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84)
이는 “의식 역시 마땅히 [3온과] 아울러 색온을 소의로 삼아야 할 것이니, 색에 따라 전변하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관찰하건대, 대종이 술[酒]등에 의해 어지럽혀질 때 마음도 바로 바뀌는 것이다.”(『순정리론』 제21권)는 대론자의 힐난에 대한 해명이다.
85)
즉 심ㆍ심소는 서로에 대해 근거가 될지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근거가 되지 않기 때문에 양자 모두의 동일한 근거가 아니지만, 동분과 명근은 양자 모두에 동일한 근거가 된다는 뜻.
86)
업에는 일생 즉 하나의 동분(무차별동분)을 인기하는 인업(引業)과, 일생을 남녀ㆍ빈부ㆍ귀천 등의 개별적인 동분(유차별동분)을 인기하여 생의 내용을 다양하게 차별 짓는 만업(滿業)이 있다.(본론 제23권 참조)
87)
즉 욕계와 색계 중에서는 동분과 명근과 색신이 각기 개별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다만 색신을 별도로 설한 것이지만, 무색계에는 색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
88)
이에 반해 세친은 『구사론』 제8권(고려장27,p.511중; 대정장29,p.41중; 권오민 역,p.367)에서, 무색계의 동분과 명근은 뛰어난 선정[勝定,즉 無色定]으로써 색상(色想)을 조복시킨 결과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뛰어난 작용을 갖지만, 유색계의 그것은 저열하기 때문에 유정의 심ㆍ심소를 상속시킬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이는 다만 색신에 의해 상속된다고 하였다.
89)
이는, 유색계에서의 동분과 명근은 색에 근거하여 일어나지만, 색이 존재하지 않는 무색계에서 이 두 가지는 무엇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인가? 에 대한 해명이다. 참고로 세친은 무색계의 동분과 명근은 무색정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강성하여 서로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유색계의 그것은 저열하기 때문에 오로지 색신에 근거하여 일어난다고 하였다.
90)
『품류족론』 제6권(대정장26,p.717중; 한글대장경117,p.140), “欲界云何? 謂欲貪隨增法. 色界云何? 謂色貪隨增法. 無色界云何? 謂無色貪隨增法.”
91)
욕계에 현행하는 제법은 모두 욕계계(繫)가 아니며, 오로지 욕탐에 의해 수증되는 법만이 욕계계라는 뜻. 그럴 경우 번뇌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어떻게 탐수면(貪隨眠)만으로 3계를 차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후술)
92)
유부에 의하면 유정은 무시(無始)이래 존재하지만, 화지부에서는 새로이 태어나는[始起] 유정의 존재를 인정한다. 곧 그러한 처음으로 태어나는 유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일찍이 어딘가에서 무시이래 생존 윤회하여 왔을 것인데, 무량(無量)의 부처가 무수한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하였을 것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중생이 존재하므로 그 전부의 양을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93)
세계가 안주하고 있는 형태에 대해 『대비바사론』 제193권(한글대장경125,p.409)에서는 상하로 포갠 형태[上下重累]와 옆으로 퍼져있는 형태[隣次傍布] 두 가지를 들고 양자 모두의 난점을 설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그곳의 염오를 두루 떠나는 것을 어떻게 설할 수 있고 어떻게 신통이 거기까지 두루 이를 수 있는가,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상하의 세계가 끝이 없다’고 한 타라달다(陀羅達多)의 설을 어떻게 회통할 수 있을 것인가?” 본론에서의 ‘어떤 이의 설’(보광이나 법보에 의하면 법밀부 즉 법장부)은 양자 절충설로서, 옆으로 퍼져있으면서 또한 상하 무한하다. 즉 풍륜 아래로는 허공을 사이에 두고서 다시 색구경천 내지 풍륜이 있고 그 아래로도 끝없이 그러하며, 또한 색구경천 위로도 허공을 사이에 두고 풍륜 내지 색구경천이 있고 그 위로도 끝없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94)
즉 무수한 세계가 있을지라도 그 성질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3계에서 해탈하면 동시에 모든 3계를 해탈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학교가 많이 있을지라도 그 중 하나 만을 졸업하면 다른 학교의 교과목도 졸업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95)
여기에 아수라(阿修羅)를 더한 6취설이 일반에 알려져 있지만, 이는 독자부(犢子部)의 주장이고, 유부나 상좌부의 정설은 5취설이다. 그리고 대승경전에서도 대개 5취설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96)
즉 5취의 본질은 오로지 과거의 업에 의해 초래된 이숙생의 과(果)이기 때문으로, 이에 따라 5취는 오로지 유정에 해당될 뿐, 이숙생이 아닌 무정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중유란 사유(死有)와 생유(生有)의 중간존재로서, 이것이 5취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함.
97)
이에 반해 세친은 5취는 무부무기 즉 이숙생을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ㆍ염오ㆍ무기의 3성을 본질로 한다고 주장한다.(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21권 참조)
98)
『장아함경』제10권 『법보경(法報經)』(대정장1,p.236중)에서 이러한 7유를 설하고 있다. “當知七有. 一爲不可有, 二爲畜生有, 三爲餓鬼有, 四爲人有, 五爲天有, 六爲行有, 七爲中有.” 여기서 첫 번째 불가(不可)는 불가락(不可樂,혹은 意)의 뜻으로 지옥을 말한다.
99)
즉 계경에서 5취를 업유의 결과로서 설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이숙생으로 무부무기임이 명백하다는 뜻.
100)
만약 선악의 업이 바로 ‘취’라고 한다면, 예컨대 어떤 사람이 지옥을 초래할 만한 악업을 지었을 경우, 그러한 악업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취와 지옥취가 동시에 나타났다고 해야 한다는 뜻.
101)
세친은 『구사론』 제8권(고려장27,p.512하; 대정장29,p.42중; 권오민 역,p.375)에서, “앞의 『칠유경』중에서 5취와 업유를 구별하여 설하였을지라도 양자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다. 마치 5탁[劫濁ㆍ命濁ㆍ有情濁ㆍ煩惱濁ㆍ見濁] 중에 ‘번뇌’와 ‘견’을 별도로 설하였을지라도 결국 ‘견’은 번뇌에 포섭되는 것처럼, 업유도 5취 중에 포섭되지만 취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별도로 설하였으며, 따라서 ‘취’에 업유도 포함된다고 한 이상 그것의 성(性)은 선ㆍ불선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는 어떤 이(보광에 의하면 대중부)의 설을 언급하고 있는데, 본 논설은 이에 대한 반론이다.
102)
이 계경은 『대비바사론』 제172권(한글대장경124,p.497)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구사론』 (제8권, 고려장27,p.512하; 대정장29,p.42중; 권오민 역,p.374)에서는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에서 외워 전하는 경’이라고 설하고 있다. 경은 미상. 지옥의 과보를 받을 만한 번뇌가 현행함에 따라 그 과보를 받을 업을 조작하게 되고, 그것에 의해 지옥의 이숙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뜻. 따라서 지옥을 포함한 5취는 다만 이숙생의 무부무기라는 것이다.
103)
『품류족론』 제9권(대정장26,p.730상;한글대장경117,p.207), “地獄趣十八界十二處五蘊攝--三界一切隨眠隨增. 傍生趣餓鬼趣人趣亦如是.” 즉 이 같은 논의에 따른다면 일체의 수면인 5부(部)의 법이 ‘취’의 자성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만약 무부무기만이 ‘취’의 자성이라고 한다면, 논에서는 다만 ‘수소단과 변행수면에 의해서만 수증된다’고 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104)
『순정리론』 제21권에서의 해명은 이러하다. “거기서는 5부(部)의 수면(즉 일체의 수면)이 능히 마음을 결생(結生)시킨다는 사실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그같이 설한 것이다. 즉 ‘취’와 아울러 그것으로 드는 마음[入心]을 모두 ‘취’라고 설한 것이므로 [5취가 무부무기라는 사실과] 서로 모순되는 과실이 없으니, 비유하자면 촌락과 촌락 변두리를 모두 ‘촌락’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르면, 『품류족론』에서의 논의는 5취로 태어날 때의 마음 중에 5부의 번뇌가 모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취’와 더불어 설한 것으로서, 그것은 오로지 ‘취’ 자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기 때문에 ‘취’가 무부무기라는 주장은 『품류족론』의 설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5)
4생(生)이란 태생(胎生)ㆍ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으로, 중유는 화생에 포섭된다.(본론 제22권 참조)
106)
『법온족론』 제10권(대정장26,p.498중하; 한글대장경115,p.615). 이는 즉 5취 이외 따로 중유를 설한 사실로 볼 때, 중유는 5취와는 별도의 존재임을 알 수 있다는 논거이다.
107)
생유와 사유 중간에 존재하는 본유(本有)도 의미상으로는 중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태어나자마자 죽는 자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중유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뜻. 이 논설은 ‘중유는 중유(두 취 중간의 존재)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취가 아니다’라는 세친의 주장에 대한 반론의 하나이다. 차주(次註) 참조.
108)
세친은 『구사론』 (제8권, 고려장27,p.512하; 대정장29,p.42중; 권오민 역,p.376)에서 “중유는 두 가지 ‘취’ 중간(어떤 취의 死有와 어떤 취의 生有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중유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며, 그래서 ‘취’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는데, 동일한 취에서도 사유와 생유의 중간에 존재하는 것을 중유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그럴 경우 중유는 동일한 ‘취’에 포섭된다. 즉 인취의 사유와 인취의 생유 중간에 존재하는 것은 결국 인취의 중유이다), ‘중유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두 가지 취 중간에 존재하기 때문에’라는 논거는 불확정적인 논거[不成因]로서, 그것으로는 ‘중유는 취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뜻.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21권을 참조할 것.
109)
설일체유부에 있어 의식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 근거[所依]를 가져야 한다. 이에 따라 완성된 유부의 세계관에서 볼 때 3계 5취의 제 유정의 의식이 안주(安住)하는 형태에는 일곱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7식주(識住,vijñānasthiti)라고 한다. 즉 전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욕계의 인간과 천(天), 그리고 색계의 아래 세 정려와 무색계의 아래 세 처가 바로 의식의 7생처(生處)이며, 악취(지옥ㆍ축생ㆍ아귀)와 제4정려, 비상비비상처는 의식이 안주하는 처소가 아니기 때문에 식주가 아니다.
110)
『중아함경』 제24권 제97경 『대인경(大因經)』(대정장1,p.581중); 『증일아함경』 제42권 제46품 제7경; 『장아함경』 제8권 제9경 『중집경(衆集經)』(동p.50상) 등을 참조할 것.
111)
여기서 겁초(劫初)란 성겁(成劫) 시를 말하는 것으로, 이때 유정은 신체가 다르지만 생각이 동일한 제2 식주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112)
이는 브라만교의 세계관을 불교적으로 해석한 설로서, 태초에 단지 대범왕만이 있었는데, 후에 그를 시위(侍衛)해 줄 이를 원하여 발원하였다. 이에 제2 정려의 극광정천이 연민하여 스스로 초정려로 내려와 범중천이 되었는데, 대범왕은 이들을 보고 자신이 변화하여 나타난 이라고 생각하고, 범중천도 역시 대범천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온갖 천이 동일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범왕의 위덕은 중대(重大)하여 범중천과는 다르기 때문에 ‘신체가 다르다’고 일컫게 되었다.
113)
숙주통이란 숙주수념지증통(宿住隨念智證通)의 줄인 말로서, 숙명통을 말한다. 본론 제37권 ‘6통’ 참조.
114)
‘신체가 동일하다’는 것은 동일한 천(예컨대 극광정천)에 한정되는 말이지 제2정려의 다른 천(예컨대 소광천이나 무량광천)에 대해서도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뜻. 이는 존자 아노율타(阿奴律陀)가 계경 중에서 “극광정천 등에는 신체상의 고하(高下) 승열(勝劣)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곧 아노율타의 말은 다른 천에 근거하여 말한 것일 뿐 동일한 천 중에 신체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순정리론』 제22권)
115)
즉 소박한 음식을 싫어하여 기름진 음식을 취하고, 다시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여 소박한 음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제2정려에서는 근본지(根本地)의 희근(喜根)을 싫어하여 근분지(近分地)의 사근(捨根)을 현전시키고, 다시 근분지의 사근을 싫어하여 근본지의 희근을 현전시킨다는 뜻. “마치 부귀한 자가 욕락(欲樂)을 싫어하여 법락(法樂)을 향수하고, 법락을 싫어하여 다시 욕락을 향수하는 것과 같다.”(『구사론』 제8권, 고려장27,p.513하; 대정장29,p.43상; 권오민 역,p.380)
116)
제2식주. 초정려의 모든 천에서는 대범천을 능생자(能生者)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전술)
117)
제3식주.
118)
제4식주.
119)
“이를테면 무색의 유정으로서 일체의 색상(色想)을 모두 다 초월하였기 때문에, 온갖 유대상(有對想)이 모두 다 은몰(隱沒)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별도의 다른 생각[異想]에 대해 작의(作意:주의ㆍ경각)하지 않기 때문에 끝없는[無邊] 허공의 경지에 들어 공무변처(空無邊處)에 구족하여 머무는 이가 있는데, 이같이 공무변처의 천(天)을 따르는 이와 같은 이가 바로 제5식주이다. 무색의 유정으로서 일체의 공무변처를 모두 다 초월하였기 때문에 끝없는 의식의 경지에 들어 식무변처(識無邊處)에 구족하여 머무는 이가 있는데, 이같이 식무변처의 천을 따르는 이와 같은 이가 바로 제6식주이다. 무색의 유정으로서 일체의 식무변처를 모두 다 초월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경지에 들어 무소유처(無所有處)에 구족하여 머무는 이가 있는데, 이같이 무소유처의 천을 따르는 이와 같은 이가 바로 제7식주이다.”(『순정리론』 제22권)
120)
이상 7식주에 대한 분별을 마치고, 이하 식주의 체성(體性:본질)에 대해 분별한다.
121)
즉 식은 앞에서 설명한 7처(處)에 소속되는 온(욕ㆍ색계의 경우 5온, 무색계의 경우 4온)에 낙주(樂住)하여 집착하기 때문에 그러한 온을 ‘식주’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122)
색계 제4정려 8천 중 무운(無雲)ㆍ복생(福生)ㆍ광과(廣果) 등의 아래 3천은 범부(이생)와 성자가 동거하는 곳으로서, 범부는 여기서 무상천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성자는 정거(淨居,위의 5천) 즉 무욕천으로 나아가 성도에 의해 번뇌를 끊어버리려고 한다. 또한 정거천에 있는 이들은 열반에 들기만을 염원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9유정거’를 참조할 것.
123)
이상의 논설은 “만약 상대의 논사들로부터 계승되어 내려온 설과 같다고 한다면, 욕계의 인취(人趣)와 6천(天)에는 무루(즉 無斷)의 식이 없으니, 마땅히 식주가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능히 무루의 소의가 되기 때문에 식주에 포섭된다고 말한다면, 비상비비상처(즉 有頂天)도 마땅히 식주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는 이설자의 힐난(『순정리론』 제22권)에 대한 변명이다.
124)
9유정거(구역에서는 衆生居)란 말 그대로 유정이 머물기를 좋아하는 아홉 곳의 처소를 말하는 것으로, 7식주에 무상천(無想天)과 비상비비상처(즉 유정천)을 더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이에 반해 식주는 식이 즐거이 머무는 곳이다.
125)
앞의 7식주가 식(識)이 안주하는 곳이라면, 여기서의 식주는 ‘식’이 머물게 되는 근거 즉 소의(所依)로서의 식주이다. 즉 유부에 있어 마음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 근거를 가져야 하는데, ‘식’은 능히 색ㆍ수ㆍ상ㆍ행의 4온에 머물기 때문에 그것을 4식주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지[異地]에 존재할 경우 ‘식’의 소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자지(自地)의 4온만이 식주가 된다.
126)
『장아함경』 제8권 『중집경(衆集經)』(대정장1,p.51상); 『대집법문경(大集法門經)』 상권(대정장1,p.229상).
127)
이를테면 왕은 왕좌에 머무는 자[能住]이고 왕좌는 왕이 머물게 되는 곳[所住]이듯이, 색 등의 4온은 식이 즐거이 머물게 되는 곳[所住]이고 탐착하는 바[所著]이기 때문에 식주가 되는 것이다.(『구사론』 제8권, 고려장27,p.514중; 대정장29,p.43중; 권오민 역,p.385 참조)
128)
『잡아함경』 제15권 제378경(대정장2,p.103중하). 즉 식식(識食: 心識을 말함. 일체의 유정을 유지시키는 네 가지 에너지 즉 4食의 하나. 본론 제15권에서 상론) 중에 희(喜,nandī)와 염탐(染貪,rāga)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식의 희탐과 염탐은 식의 소의처이면서 식에 의해 제어[乘御]되는 것이다. 따라서 식온도 식주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난문.
129)
『중아함경』 제20권 「일차제경(一嗏帝經)」(대정장1,P.766하).
130)
이는 경주(經主) 세친이 『구사론』 (제8권, 고려장27,p.514중하; 대정장29,p.43하; 권오민 역,p.386)에서 논설한 주장으로, 식 또한 다른 식의 소의가 되고 탐착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22권 참조)
131)
여기서 ‘세존께서 설하신 식주’란 본권 주 55)의 본문. 즉 “식(識)은 색(色)에 따라 머물며……(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식은 행(行)에 따라 머문다”고 한 계경의 설을 말한다.
132)
색의 경우 소의(현재색)와 경계대상(과거ㆍ미래색)이 되며, 수 등의 경우 구유인(현재의 ‘수’ 등)과 경계대상(과거ㆍ미래의 ‘수’ 등)이 된다.(전술)
133)
주56) 본문 참조.
134)
소의신의 색이나 수 등은 다 같이 식의 대상이 될 수 있을뿐더러(과거ㆍ미래법의 경우) 식이 일어나는 근거(소의 혹은 구유인)가 되기 때문에(현재법의 경우) 식주로 설정할 수 있지만, 비유정수나 다른 이의 소의신 등은 오로지 대상(소연)이 될 뿐 ‘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조반의 공능을 충족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식주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뜻.
135)
원문은 ‘如人船裏’이나 『순정리론』 제22권에 따라 ‘如人船理’로 고쳐 번역하였다.
136)
『대비바사론』 제137권(대정장27,p.706하; 한글대장경123,p.260). 『구사론』 제8권(고려장27,p.514중; 대정장29,p.43중하; 권오민 역,p.385)에서 이는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설로 언급되고 있다.
137)
“비유정수는 항상 식에 대해 소원(疎遠)한 소연의 경계대상이 될 뿐 결정코 식의 직접[附近]적인 조반(助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식과 비유정수는 다 같이 식주가 되지 않는 것이다.”(『순정리론』 제22권)
138)
즉 어떤 법으로서 7식주에는 포섭되어도 4식주에는 포섭되지 않는 것이 있으며(제1구), 4식주에는 포섭되어도 7식주에는 포섭되지 않는 것이 있으며(제2구), 7식주와 4식주 모두에 포섭되는 것이 있으며(제3구), 7식주와 4식주 모두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 있다.(제4구)
139)
제1구는 7식주이면서 4식주가 아닌 것으로, 7식주 중의 식온이 이에 해당한다. 제2구는 4식주이면서 7식주가 아닌 것. 제3구는 7식주이면서 4식주인 것. 제4구는 7식주도 아니면서 4식주도 아닌 것.
140)
『순정리론』 제22권에 의하면, 이는 유부의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설이다.
141)
3계ㆍ5취의 모든 유정은 태어나는 형태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를 4생(生)이라고 한다. 여기서 ‘생’이란 생류의 뜻으로, 4생의 온갖 유정은 생류로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142)
중유는 5취(趣) 중에 포섭되지 않는다.(전술)
143)
옛날 남섬부주의 어떤 상인이 바다에서 온 아름다운 학 한 마리를 얻게 되었는데, 이 학은 그 후 두 개의 알을 낳았으며, 여기서 두 명의 동자가 태어났다. 그들은 용모단정하고 총명하였으며, 장성한 후 출가하여 함께 아라한과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 작은 동자를 오파세라(Upaśaila)라 이름하고, 큰 동자를 세라(Śaila)라고 이름하였다.(『대비바사론』 제120권, 한글대장경122,p.474))
144)
녹모는 비사가(毘舍佉,Vaiśākha, Visākā) 또는 녹자모(鹿子母)로 불린다. 앙가국 출신으로, 5백 명의 시녀와 함께 부처님을 영접하여 설법을 듣고 초과(初果) 즉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후에 사위성의 장자 녹자와 결혼하여 그를 불법으로 인도함에 따라 마치 그의 어머니와 같다하여 녹자모로 불림. 그녀가 서른두 개의 알을 낳았다고 하는 것은 『대비바사론』 제120권(앞의 책)에 나온다.
145)
기원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친 급고독장자의 여식으로, 『현우경(賢愚經)』 제13권에서는 소만녀(蘇鬘女)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특차시라(特叉尸羅)왕자에게 출가하여 열 개의 알을 낳았다.
146)
반차라왕(Pañcāla rāja)의 왕비가 5백 개의 알을 낳자 왕이 이를 부끄럽게 여겨 갠지스강 가에 버렸다. 이웃나라 왕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이를 수습하게 되었다. 여기서 아이들이 태어나 용맹한 전사가 되어 사방을 정복하고 마침내 반차라왕과 조우하게 되었는데, 왕이 두려움에 떨자 왕비는 ‘그들은 모두 우리의 아들이다. 어미를 보게 되면 악심을 멈출 것이다’하고 성 위로 올라가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동시에 젖을 먹였다고 한다.
147)
만타라(Māmdhātṛ,구역은 頂生王)는 포살타(布殺陀,Upoṣadha) 왕의 정수리에 생겨난 수포로부터 태어나, 장성한 후 금륜왕(金輪王)이 되었음. 차로(Cāru)와 오파차로(Upacāru)는 앞의 만타라왕의 양 볼기짝에 생겨난 수포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커서 전륜왕이 되었다고 함. 함만(Kapotamālinī)은 범수(梵授,Brahmadatta)라고 이름하는 왕의 겨드랑이 밑의 수포에서 생겨난 아들로서, 그가 태어날 때 마치 비둘기처럼 날아 나왔으며, 왕이 그를 꽃의 장식같이 중히 여겼으므로 합만(鴿鬘)이라 하였음. 암라위(Āmrapāli)는 불제자로서 비구니. 원래는 창부였는데, 암라나무의 습기, 혹은 가지로부터 태어났다고 전한다.
148)
묘시조(妙翅鳥). 『구사론』 (고려장27,p.515상; 대정장29,p.44상; 권오민 역,p.389)에서는 게로다(揭路茶,garuda). 이 새는 인도신화에서 비쉬누가 타고 다니는 새. 가루다라는 말은 언어의 날개들(wings of speech)이라는 뜻으로, 베다지식의 인격적 표현으로 상징된다. 구역에서는 금시조(金翅鳥), 혹은 식토비고성(食吐悲苦聲)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는 용을 잡아먹는다는 신비의 새로서, 머리는 새와 비슷하지만 몸은 사람을 닮았으며, 날개는 금빛, 머리에는 여의주가 박혀있고, 입으로 화염을 내뿜는다고 한다.
149)
아귀가 화생이라는 것은 알기 쉽지만, 태생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송을 논거로 인용한 것이다.
150)
최후신의 보살이란 깨닫기 전의 마지막 생의 보살을 말한다. 여기서는 3아승지 1백 겁의 수행을 닦은 후 마침내 가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나 정각을 성취하는 석가보살을 말한다.
151)
즉 “교화될 중생으로 하여금 ‘그(최후신의 보살)는 이미 인간임에도 능히 대의(大義)를 성취하셨다. 우리도 역시 그러하니 어찌 능히 정근(正勤)을 일으켜 정법을 닦지 않으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증상심을 낳게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화생이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 이는 바로 천신[天]일 것이라고 의심함에 따라 부처님의 전법륜(轉法輪)은 쓸모없게 되었을 것이다. 즉 ‘[법륜은] 천신에 의해 굴려진 것이라거나 천기(天機)를 입은 것으로, 오로지 천신만이 능히 알 수 있을 뿐 인간이 알 바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이에 따라 스스로를 업신여겨 정법륜(正法輪)에 대해 정근(正勤)과 용맹스러운 사택(思擇)을 일으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순정리론』 제22권)
152)
“만약 화생이었다고 한다면(다시 말해 태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보살의] 종족을 알기 어려워 아마도 ‘천신인가, 귀신인가?’ 하여 허깨비[幻化]로 의심하였을 것이니, 이를테면 외도의 논(論)에서 ‘백 겁이 지난 후 마땅히 위대한 환술사(幻術師)가 세간에 출현하여 세간을 집어삼키는 일이 있을 것이다’고 거짓된 비방의 말을 설한 것과 같다.”(같은 논)
153)
“이를테면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할 때 인간들은 화생하는 일이 없으며, 인간들이 화생할 때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지 않는 것이다.”(같은 논) 즉 인간으로서 화생인 자는 오로지 겁초의 인간들뿐이지만, 모든 부처님은 인간의 수명이 8만 세에서 점차 감소하여 1백 세에 이르게 되는 주겁(住劫)시에 출현한다.(본론 제17권 ‘부처와 독각이 출현하는 시기’ 참조)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3권
1)
중유(中有,antarā-bhāva)란, 사유(死有:죽는 순간의 존재) 이후 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의 존재) 이전의 5온, 즉 그 중간의 존재로서, 그 자체로서는 일어나고 몰(沒)하는 일이 있지만, 당래 태어나야 할 곳[生處], 즉 생유에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후술) 참고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존재를 본유(本有)라 하고, 이상을 4유(有)라고 한다.
2)
중유 또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그럴 경우 無因論에 떨어짐)이 아니라 업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계경에서 말한 대로 ‘업은 생인(生因)’이기 때문에 중유에 대해서도 역시 ‘생’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힐난.
3)
이 말은, 하나의 견인업(牽引業)에 의해 중동분이 현현하고, 다수의 업인 원만업(圓滿業)에 의해 구체적으로 ‘생’이 성취될 때를 ‘나아가게 된 것[所趣]’이라고 말한다는 뜻이다. 인업과 만업에 대해서는 본론 제23권을 참조할 것.
4)
생결은 생유를 낳는 번뇌를, 기결은 중유를 낳는 번뇌를 말한다. 이는 곧 생유와 중유가 다 같이 업을 원인으로 할지라도 각기 그것을 낳게 한 번뇌가 다르기 때문에 중유를 ‘생’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경증(經證)이다.
5)
참고로 ‘기(起,abhinirvṛtti)’는 중유의 다섯 이명(異名) 중의 하나이다. 본론 제15권 ‘유정이 4유(有)로서 머물게 되는 조건―4식(食)’ 참조.
6)
이와 같이 중유의 실재성을 부정한 부파는 『대비바사론』 제69권(한글대장경120,p.430)에 의하면 분별론자이지만,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하면 대중부ㆍ화지부ㆍ일설부ㆍ설출세부ㆍ계윤부이다. 『순정리론』 제23권에서는 다른 부파의 중유 무체설(無體說)의 논거로서 여섯 가지 이증(理證)과 네 가지 교증(敎證)을 언급하고 그 하나하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7)
본송은 『구사론』 (제8권, 고려장27,p.515하; 대정장29,p.44중;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p.394)의 송문을 부분적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 즉 유정은 곡식이 씨앗에 의해 상속하듯이 중간에 단절됨이 없어야 다른 처소에 속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유와 생유의 중간존재로서 중유(中有)를 설정한데 대해 대중부 등 중유 부정론자들은 본체[本質]와 거울 사이가 단절되어 있을지라도 영상[像色]이 생겨날 수 있는 것처럼 사유와 생유 사이가 단절되어 있더라도 속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세친은 영상은 실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예(例)는 비유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유부의 경우 영상 즉 상색(像色:광명을 장애하여 중간에 나타나는 다른 색)은 열두 가지 현색(顯色) 중의 하나로서 그 실재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중현은 먼저 세친의 상색무체설을 비판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할지라도 영상과 중유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동유(同喩)가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예컨대 본체와 거울 사이는 본체에 의해 낳아진 대종이 두루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이가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후설)
8)
이와 같은 반론은 중유 무체론자인 대중부 계통의 주장이다. 즉 이들은 거울의 영상[像,pratibimba]이 피사체[質, 또는 本質,bimba.:자신의 상을 능히 투사하는 본체를 말함. 이하 상색(像色) 가실(假實)의 논쟁에서의 본체라는 말은 ‘質’ 혹은 ‘本質’의 역어임]와 서로 떨어져서 맺히는 것처럼, 유정의 사유와 생유가 서로 단절되어 있어도 다시 말해 중유를 설정하지 않고서도 속생(續生)할 수 있다는 것이다.
9)
이는, 영상이 본체와 단절됨이 없이 생겨나는 것임을 알게 된 이유가 아니라 영상의 비유(譬喩)를 중유무체론의 예증(例證)으로 설정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이다.
10)
즉 대중부 등에서는 ‘본체는 거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다시 말해 단절되어) 영상을 낳는 것처럼, 사유와 생유도 그 사이가 단절되어 있는 것이지 중유로서 연속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상은 본체에 따르는 것으로, 본체가 사라지면 영상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사유가 멸하면 생유 역시 멸한다고 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단멸론에 떨어지고 만다. 곧 중현(衆賢)은 영상이 실유가 아니기 때문에 중유의 비유(譬喩)로 인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동유(同喩)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인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
『구사론』 제8권(고려장27,p.515하; 대정장29,p.44중하; 권오민 역,p.395). “실로 [거울에 맺힌] 온갖 영상이 실재한다고 하는 이치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비유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즉 [본체와는] 다른 별도의 색이 낳아진 것을 설하여 ‘영상’이라고 이름하지만 그 자체 실유라는 이치는 이루어질 수 없다.”
12)
거울에 어떤 영상[像色]이 생겨났을 경우 반드시 그것의 근거[依]가 된 거울과 조건[緣]이 된 본체[本質]가 존재해야 하며, 그것이 실유(實有)라는 것은 상식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울의 영상은 다시 본체가 되어 또 다른 거울에 영상을 낳기도 하기 때문에, 거울의 영상은 본체와 마찬가지로 실유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
13)
유부에 따르면, 식유필경(識有必境) 인식에는 반드시 경계대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경계대상이 되어 인식[覺]을 낳는 것이 참된 유(有)의 상(相)이다.”(본론 제26권 ‘삼세실유론’ 참조)
14)
만약 영상이 실유의 존재가 아니라 다만 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느 때 나타나고 어느 때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마땅히 항상 나타나지 않아 인식할 수 없든지 혹은 항상 나타나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
15)
즉 영상이 본체와 화합할 때만 인식될 수 있는 것[可得]이라면, 그 밖의 다른 유위법도 연(緣)과 화합할 때(다시 말해 현재 상태)에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
16)
거울에 어떤 영상이 생겨날 경우, 거기에 또 다른 영상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이 역시 색법의 특성인 공간적 점유성[礙性]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뜻.
17)
『구사론』 제8권(고려장27,p.515하; 대정장29,p.44하; 권오민 역,p.395).
18)
즉 우물의 수면과 거기에 비친 달의 영상(혹은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그림자)에는 가깝고 먼 거리상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양자는 동일한 처소에 함께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
19)
『구사론』 제8권(고려장27,p.515하~p.516상; 대정장29,p.44하; 권오민 역,p.395~396). 이상은 세친의 상색무체론(像色無體論)의 논거로서, 네 가지의 예증을 언급하였다. 첫 번째 거울과 거기에 비친 영상, 두 번째 폭이 좁은 강물에 비친 양안(兩岸)의 영상, 세 번째 그림자(그늘) 속에 있는 거울에 비친 빛의 영상과 그림자 등 이상의 각기 두 가지가 동일한 처소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영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네 번째 거울의 면과 거기에 비친 영상에는 원근이 있으니, 동시 동처에 생겨난 실유의 존재라면 어찌 원근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20)
중현은, 거울과 영상이 다 같이 실유라면 동일한 처소에 함께 존재할 수 없다는 세친의 논증에 대해 동일한 처소를 절대적 동일처가 아닌 지극히 인접한 무간의 상태를 ‘동일한 처소’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극미의 접촉[觸]을 직접적인 접촉이 아니라 절대적 근접[無間]으로 정의하는 것과 유사하다.
21)
즉 경주 세친은 앞서 “폭이 좁은 강물 위에 비친 양쪽 언덕의 형태[色形]는 동일한 처소에 두 가지 상이 동시에 함께 나타난 것으로, 양쪽 언덕에 있는 자는 서로를 분명히 보지만, 일찍이 어떠한 처소에서도 동시에 [병존하는] 두 가지의 색을 함께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두 가지 색이 함께 생겨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이는 ‘각각의 영상은 어떠한 인연에 따라 그렇게 보이게 된 것인가?’에 대한 검토 없이 논증한 것이라는 뜻. “이(동일한 강물에 비친 두 영상)는 인연의 화합이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보게 되는 것이다.”(『순정리론』 제23권)
22)
즉 경주 세친은 ‘동일한 강물에 양쪽 언덕의 형상이 함께 비치지만 각각의 언덕에서 서로의 영상을 보기 때문에 영상[像色]은 실유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지만, 하나의 색은 두 사람에게 동시에 보이는 경우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논거는 미확정의 오류[不成失]라는 것이다.
23)
이는 곧 “거울의 면과 영상은 가깝게 보이고 멀리 보이는 등의 차별이 있으니, 마치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만약 [동일한 처소에] 함께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다르게 보이겠는가? 그러므로 온갖 영상은 이치상 실로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경주 세친의 네 번째 논거.
24)
본론 제3권 ‘6계 중의 공계와 식계에 대하여’ 참조.
25)
만월의 영상이 만월로 보이듯이 달이 멀리 있기 때문에 그 영상도 공계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뜻.
26)
달의 영상이 어떤 물에는 비치고 어떤 물에는 비치지 않는데, 그것의 결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인가?
27)
달의 영상은 강물 전체에 비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28)
『순정리론』 제23권에서는 대덕희혜(喜慧)의 상색무체론(像色無體論)의 논거로서 이 밖에도 ‘그림자와 빛은 서로 상위(相違)하기 때문에, 분위(分位)의 차별에 따라 다수의 영상을 취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영상과 소의처(예컨대 거울)에 원근의 차별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라는 주장을 전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는 경주 세친의 논거와 동일하기 때문에 본론에서는 앞의 두 가지 논거만을 서술하여 비판하고 있다.
29)
이는 영상에 대한 희혜(喜慧)의 입장을 앞서 그가 비판하였던 형식으로 다시 비판한 것이다.
30)
거울에 비친 영상 자체는 운동을 갖지 않지만, 대개 본체(피사체)가 움직임에 따라, 혹은 소의(즉 거울)을 든 자가 움직임에 따라, 혹은 그것을 보는 자가 움직임에 따라 영상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여긴다.
31)
“그러니 이것이 어찌 실유의 조색(造色)과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고 하겠는가?”(『순정리론』 제23권)
32)
“즉 거울 등에 비친 산이나 숲 등의 영상은 그 크기가 본체보다 작으며, 칼등은 세워 놓거나 눕혀 놓는데 따라 그 영상은 본체의 형태와는 다르며, 기름 따위의 영상은 본체와 색깔이 다르다. 그런데 만약 보이는 영상이 바로 본체라고 한다면, 형태나 색깔이 본체와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색깔과 형태가 다른 것을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세간의 상식적인 사실이다.”(『순정리론』 제23권)
33)
이상 대덕 희혜(喜慧)의 상색 무체설과 그에 대한 비판을 마치고, 다시 계속하여 경주 세친의 주장을 인용 비판한다.
34)
『구사론』 제8권(고려장27,p.516상; 대정장29,p.44하; 권오민 역,p.396).
35)
이는 즉 영상이 만약 실유의 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것이 ‘온갖 인연이 화합한 세력’에 의해 낳아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힐난.
36)
즉 대중부 등에서는 ‘거울에 맺힌 영상은 본체와의 사이가 단절되어 생겨나는 것처럼 생유의 경우도 사유와의 사이가 단절되어 있는 것이지 중유로서 연속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상의 경우 본체에 따르는 것으로, 본체가 사라지면 영상도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유가 멸하면 생유 역시 멸한다고 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단멸론에 떨어지고 만다. 곧 중현(衆賢)은 영상이 실유가 아니기 때문에 중유의 비유(譬喩)로 인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동유(同喩)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인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37)
본론 제4권 ‘근(根)과 경(境)의 접촉ㆍ불접촉의 문제’ 참조.
38)
이는 대론자가 “색을 떠나서도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바로 볼 수 있으니, 이를테면 여기에 있으면서 달을 신속하게 취하기도 하고, 박갈국(縛喝國)의 도성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파탈리자(波吒釐子,Pātaliputra: 마가다국의 수도 華氏城) 도읍을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세존께서도 역시 ‘나는 어떠한 법도 마음처럼 빠르게 회전(廻轉)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설하였으며, 또한 계경에서도 ‘마음은 멀리 가고[遠行] 홀로 가며[獨行], 몸이 없으면 굴속에서 잠을 잔다’고 설하고 있다. 즉 이와 같은 등등의 사실로 볼 때 그 중간에 별도의 존재를 획득(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어 태어나는 사이에 중유가 비록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이 세간으로부터 저 세상에 이을 수 있다”고 한데 대한 반론이다.(『순정리론』 제23권 참조) 즉 마음은 직접 접촉하지 않은 대상[非至境]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소]의 등에서 신속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계경에서 “마음은 멀리가고--”라고 설하였지만, 소의(6근)에 근거하지 않은 식(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색을 떠나 오로지 식만으로 유전 상속한다’는 주장의 경증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
39)
이하 거울과 본체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없어도 영상이 맺히는 것처럼 소리와 저편 골짜기 사이의 간격이 있을지라도 메아리가 생겨나기 때문에, 사유와 생유 사이가 단절되어 있을지라도(다시 말해 그 사이의 간격을 이어주는 중유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제온은 상속될 수 있다는 중유 무체론자의 비판에 대해 해명한다.
40)
유부에서는 안근과 이근과 의근은 직접 접촉하지 않은 대상[不至境]을 취한다. 즉 이근이 만약 직접 접촉한 대상만을 취한다면 비근(鼻根)처럼 멀고 가까운 소리의 차별을 이해할 수 없어야 하며, 명료함과 불명료함의 차이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본론 제7권 ‘근과 경의 접촉ㆍ불접촉의 문제’ 참조) 여기서 외도는 지경설(至境說)을 주장하는 승론(勝論,Vaiśeṣika)을 말한다. 즉 그들은, 안근은 화(火)를 본질로 하여 멀리 빛을 펼쳐 대상에 이르고, 이근의 경우 소리가 공중을 날아와 귀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41)
“……이와 마찬가지로 역시 마땅히 사유(死有)가 멸하면 중간에 연속됨이 없이 그의 생유(生有)가 일어난다고 해야 하는 것으로, 인용한 곡식의 비유는 [중유를] 논증하는데 어떠한 공능도 없다.”(『순정리론』 제24권)
42)
즉 유여사는 무색계에서 몰하여 욕계ㆍ색계에 태어날 때 단절된 색법이 생겨나듯이 사유와 생유 사이가 단절되어 있더라도 역시 생유는 생겨날 수 있다고 하였지만, 무색계에서 욕ㆍ색계에 태어날 때에는 무색계에 태어나기 전에 지은 순후수업(그 과보가 다음 생 이후에 나타나는 업)에 따라 이숙의 색온이 생겨나기 때문에 결코 무색계 상에서 색법이 단절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43)
『대비바사론』 제69권(대정장27,p.358상; 한글대장경120,p.437)에 따르면, 이러한 자벌레의 비유는 분별론자의 해석이다. “사유로부터 생유에 이를 때 요컨대 생유를 획득하고서 비로소 사유를 버리는 것이니, 이는 마치 절로가(折路迦,거미의 일종)가 풀이나 나무 등에 올라갈 때 먼저 앞발을 딛고 나서 비로소 뒷발을 옮기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유와 생유 중간이 단절되어 있다는 허물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응리론자(應理論者:곧 毘婆沙師)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커다란 과실이 있을 것이니, 이를테면 인취 중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자는 마땅히 먼저 지옥의 제온을 획득한 이후 비로소 인취 중의 제온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취(趣)[의 분별]이 허물어지게 될 것이고, 소의신[의 분별]도 허물어지게 될 것이며, 하나의 소의신 중의 두 마음이 동시에 생겨나야 할 것이다”라고 힐난하고 있다.
44)
무색계에서 몰하여 유색계에 태어날 때의 색은 무색계에 태어나기 전에 지은 순후수업의 이숙과로서(주42 참조), 무색계에는 색법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색계의 색은 전생의 색과 시간적으로는 무간이 아니지만, 처소상으로는 무간이라 할 수 있다는 뜻.
45)
즉 유부의 종의에 의하는 한, 무색계에는 처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욕ㆍ색계로부터 무색계에 태어날 때 색신이 멸하였던 처소가 바로 지금 그곳으로부터 몰하여 하계에 태어난 곳으로, 지금 생의 처소가 그곳과 무간으로 인접한 곳이 아니라는 뜻.
46)
『장아함경』 제10권 『법보경(法報經)』(대정장1,p.236하) 참조.
47)
『중아함경』 제54권 『차제경(嗏帝經)』(대정장1,p.769상); 같은 경 제37권 『아섭지경(阿攝知經)』(동p.666,상). 건달박(健達縛,Gandharva:食香身)은 중유의 다른 이름. 원래는 『리그 베다』에서 소마(Soma) 주(酒)와 관계하는 잡신의 일종으로, 불교일반에서는 8부중의 하나로 제석천에서 음악(악기)을 담당하는 신이지만 여기서는 남녀의 침실과 관계하는 어떤 신비적 존재로서 중유의 5온을 말한다. 한편 중유는 다음 생처(生處)의 향을 찾아가기 때문에 심향(尋香)이라고도 하며, 혹은 오로지 향만을 먹기 때문에 식향(食香)이라고도 함. 이에 대해서는 본 권에서 후술하며, 그 이명(異名)에 대해서는 본론 제15권에서 다시 논설한다.
48)
『잡아함경』 제27권 제736경 제740경(대정장2,p.196~197); 『장아함경』 제8권의 『중집경(衆集經)』). 사문과(沙門果)의 세 번째 계위인 불환이란 말 그대로 몰후(歿後) 다시는 욕계에 환생하지 않는 성자로서, 반열반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일곱 가지로 분류되는데, 색계에서의 반열반은 다섯 가지이다. 즉 (1) 중(中)반열반은 욕계에서 몰하여 색계에 이르는 중유의 상태에서 반열반. (2) 생(生)반열반은 색계에 태어난 직후 반열반. (3) 유행(有行)반열반은 색계에 태어난 후 오랫동안 가행을 닦은 후의 반열반. (4) 무행(無行)반열반은 오랜 시간의 가행 없이 반열반. (5)상류(上流)반열반은 범중천과 범보천 등 다시 상지로 전생하여 획득하는 반열반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론 제31권 참조.
49)
즉 중반이란 중유에서의 반열반이 아니라 욕ㆍ색계의 중간의 하늘[中天]에 머물면서 반열반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러한 사실은『대비바사론』 제69권(한글대장경120,p.434)에서 분별론자의 설로 주장되고 있다.
50)
『중아함경』 제2권 『선인왕경(善人往經)』(대정장1,p.427). 본론 제31권 ‘7선사취’ 참조.
51)
아직 욕계를 벗어나지 않고 반열반에 들 경우, 그것은 욕계 몰(歿) 후 중유에서의 반열반인 중반열반과 처소와 시간이 다같이 가까우며(제1 善士), 욕ㆍ색계의 중간에 이르거나 혹은 색계에 이르러 반열반에 들 경우, 처소와 시간이 다 같이 중간이거나 혹은 멀다(제2, 제3선사). 이를 속반(速般:중유에서의 신속한 반열반), 비속반(非速般:얼마동안 머문 후의 반열반), 경구반(經久般: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반열반)이라 한다. 이 같은 중반의 3종 불환은 9종 불환의 한 종류로 해석되고 있다. 본론 제31권 ‘9종 불환’ 참조.
52)
“중유를 부정하는 것은 바로 인과의 연속에 미혹하여 일으킨 사견(邪見)으로, 여러 경에서 화생(化生)의 유정(중유는 화생에 포섭됨)을 비방하는 것을 바로 사견이라고 설하였기 때문이다.”(『순정리론』 제24권)
53)
이 두 업에 대해서는 본론 제23권 ‘인업(引業)과 만업(滿業)’에서 상론함.
54)
즉 보살(불타의 깨닫기 전의 명칭)의 중유가 마야부인에 입태할 때 흰 코끼리의 모습으로 우협(右脇)을 통해 들어왔다. 참고로 중현은 『순정리론』 제24권에서 보살이 흰 코끼리의 모습을 한 것은 중유와는 관계없고 다만 그 지역에서 그것이 길상스러운 조짐[相]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55)
선백 비구니(구역에서는 叔柯羅,Sukrā)는 승가에 가사(袈裟)를 보시하고 수승한 원을 일으켰기 때문에 의복과 함께 태어난다는 것으로, 이 인연설화는 『현우인연경(賢愚因緣經)』 제4권(대정장4,p.373)에 나온다.
56)
아직 색계의 이탐을 획득하지 못하였을 경우(무색계에는 중유가 존재하지 않음), 사유와 무간에 중유가 낳아질 것이고, 이에 따라 생유ㆍ본유ㆍ사유가 생겨나게 되므로 본유는 중유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중유는 본유와 유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의 힐난.
57)
본유는 이전에 지은 업에 의해 나아가게 될 처소, 예컨대 지옥취나 천취에 근거한 말이지만, 생유 등의 세 유는 다만 탄생이나 죽음, 혹은 죽음과 탄생의 중간에 근거한 말이기 때문에 그것을 본유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
58)
본 단에서는 중유의 아홉 가지의 특징적인 면, 이를테면 안견(眼見,)ㆍ행질(行疾)ㆍ구근(具根)ㆍ무대(無對)ㆍ불가전(不可轉)ㆍ소식(所食)ㆍ주시(住時)ㆍ결생(結生)ㆍ행상(行狀)에 대해 분별하고 있다. (1) 중유는 지극히 미세하기 때문에 동류의 눈과 청정한 천안에게만 보인다. (2) 중유는 업의 세력이 가장 강성하기 때문에 가장 빠른 업의 신통[業通]을 구족하고 있어 세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취로 가는 것을 능히 막을 수 없다. (3) 일체의 중유는 본유의 형상과 같을뿐더러 가장 승묘(勝妙)한 최초의 이숙이기 때문에 모두 5근을 갖추고 있다. (4) 중유의 작용은 금강석 따위도 능히 차단 장애할 수 없기 때문에 무대(無對)이다. (5) 중유는 생유와 동일한 업에 의해 인기되기 때문에 일단 나아갈 계(界)ㆍ취(趣)가 결정되면 바꿀 수가 없다. 그러나 『대비바사론』 제69권(한글대장경120,p.444)에 의하면, 비유자(譬喩者)는 중유가전론(中有可轉論)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6) 중유는 미세한 단식(段食)인 향을 먹고 살아간다. 즉 중유는 향(gandha)을 먹기(arva) 때문에, 혹은 향을 찾아가기 때문에 건달박(健達縛,gandharva:食香,혹은 尋香)이라고도 이름하는 것이다. (7) 중유는 생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오래 머무는 일이 없이 바로 결생하며, 만약 바로 생유의 연과 화합하지 못할 경우 유사한 다른 종류 중에 기생(寄生)하기도 한다. (8) 태생과 난생의 중유는 애욕이나 진에(瞋恚)를 일으켜 결생(結生)하며, 습생의 경우는 태어날 곳의 향내를 맡고 애염(愛染)하여, 화생의 경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생처를 관지(觀知) 애염(愛染)하여 그곳으로 가 생을 받는다. (9) 중유가 어떻게 5취로 나아가는가 하면, 천의 중유는 머리를 바로 세워 위로 나아가며, 인간ㆍ방생ㆍ아귀의 중유는 본유의 그것처럼 횡(앞뒤좌우)으로 나아가며, 지옥의 중유는 발을 위로하고 머리를 아래로 하여 거기로 떨어진다.
59)
이를테면 천취 중유의 안(眼)은 능히 5취의 중유를 모두 볼 수 있으며, 인간의 중유는 천취를 제외한 자신과 앞의 세 가지 중유를 볼 수 있다는 뜻.
60)
색계의 중유가 욕계의 유정으로 태어날 수 없듯이, 인취의 중유가 방생 등 그 밖의 다른 취 가운데 태어날 수 없다는 뜻.
61)
건달박의 온전한 말은 건달알박(健達頞縛,gandha-arva, gandhārva)이지만, 연음(連音)의 a를 생략하여 단모음으로 발음한 것으로, 설건도(śakandhu)나 갈건도(karkandhu,대추나무)가 원래 śakāndhu, karkāndhu이지만 단모음으로 발음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즉 arva의 어근 √arv는 ‘간다’는 뜻과 ‘먹는다’는 두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건달박은 건달(gandha) 즉 향을 ‘찾아가는 것[尋香]’과 향을 ‘먹는 것[食香]’이라는 뜻이 되며, 따라서 중유는 단식(段食)을 섭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62)
『구사론』 제9권(고려장27,p.518하; 대정장29,p.46중; 권오민 역,p.412)에서 논설되고 있는 대덕의 설은 다음과 같다. “이것의 지속기간에는 정해진 한도가 없다. 즉 생(生)의 연(緣)과 아직 화합하지 않았다면 중유는 항상 존재할 것이니, 이것의 명근은 별도의 다른 업에 의해 인기된 것이 아니며, [또한 장차] 나아가게 될 취(趣)의 인간 등의 중동분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와 다르다고 한다면 중유의 명근이 최후로 소멸할 때에 마땅히 사유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중유의 명근은 본유의 명근과 동일한 업에 의해 인기되었기 때문에 본유로서 태어나기 전까지 항상 지속해야 한다는 뜻. 만약 본유의 명근과 동일한 업에 의해 인기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중유의 사유 혹은 생유를 별도로 설정해야 하는 모순이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비바사론』 제70권(앞의 책,p.452)에는 중유의 지속기간에 대해 이같이 정해진 기한이 없다는 대덕의 설 이외에도 세 가지 학설이 소개되고 있다. 설마달다(設摩達多)는 7ㆍ7일 즉 49일, 세우(世友)는 7일인데, 바사(婆沙)의 정설은 지극히 짧은 시간 지속하고서 결생(結生)한다는 것이다.
63)
만약 아버지가 될 이가 가습미라에 있고, 어머니가 될 이는 지나(至那:중국)에 있을 경우, 생의 연이 화합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중유는 신속하게 결생(結生)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에 대한 해명. 『대비바사론』 제70권(대정장27,p.361상)참조.
64)
이는 『구사론』 (제9권, 고려장27,p.518하; 대정장29,p.46중하; 권오민 역,p.413) 상에서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설로 언급된 것이다. 거기서는 다음과 같이 논설하고 있다. “이러한 중유의 몸은 짧은 시간 머문다. 즉 중유 중에서는 생유를 즐거이 희구하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않고 신속하게 가서 생과 결합하는 것이다. 즉 그것이 생의 연과 아직 화합하지 않았을 경우, 결정코 이러한 처소에서 이러한 종류의 유정으로 마땅히 태어나야 한다면, 업의 힘이 바로 이러한 생연(즉 부모)으로 하여금 화합하게 한다. 그러나 만약 결정코 이러한 화합연에 탁생(託生)할 수 없는 경우라고 한다면, 그 밖의 다른 처소의 다른 종류의 유정에 기생(寄生)하기도 한다.” 『대비바사론』 (제70권, 대정장27,p.361; 한글대장경120,p.450) 참조.
65)
예컨대 욕계에서 색계, 혹은 인취에서 천취 등으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면.
66)
이상은 ‘유부종의에 의하는 한 어떤 한 중유는 생유와 동일한 업에 의해 인기되기 때문에 생유의 중동분과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함에도 어찌 서로 유사한 것으로 옮겨가 태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경주 세친의 평파(評破, 『구사론』 제9권, 고려장27,p.519상; 대정장29,p.46하; 권오민 역,p.413~414)에 대한 해명이다.
67)
『구사론』 (제9권, 고려장27,p.519상; 대정장29,p.46하; 권오민 역,p.414)이나 『순정리론』 제24권에서는 ‘미워해야 할[所憎] 부정(不淨)’으로 되어 있다. ‘내보내는 곳의 부정’이든 ‘미워해야 할 부정’이든 그것은 남성의 정액을 말한다.
68)
이는 화생의 경우 태어날 처소에 염착함으로 말미암아 그곳에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 지옥의 처소에 대해 애염을 낳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난문에 대한 해명이다.
69)
이는 『구사론』 제9권(고려장27,p.519중; 대정장29,p.47상; 권오민 역,p.416)에 의하면, 선구제사(先舊諸師)의 설이다.
70)
이는 “만약 목숨을 마치는 처소에서 바로 생을 받는 자라면 중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좌(上座) 스리라타(Śrīlāta)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24권을 참조할 것.
71)
즉 멸진정은 이염득(離染得)이 아니라 가행득(加行得)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증은 불환과로서 멸진정(滅盡定)을 획득한 성자, 구분해탈(혹은 俱解脫)은 번뇌의 장애를 끊었을 뿐만 아니라 멸진정을 획득하여 해탈의 장애(불염오무지)마저 끊은 아라한을 말한다.
72)
『장아함경』 제12권 『자환희경(自歡喜經)』(대정장1,p.77상).
73)
즉 계경에서는 열등한 것에서 뛰어난 것의 순서로 네 가지 입태를 설하고 있기 때문에 일체의 상태에 대해 무지한 입태가 첫 번째이지만(다른 세 가지의 순서는 게송과 동일함), 게송에서는 송문의 구성상 그것을 네 번째 입태로 설하였다는 뜻.
74)
난생은 먼저 입태한 후 미래세 알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태생이지만 미래의 사실에 근거하여 난생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는 마치 ‘팔찌를 만든다’ ‘옷을 짓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여기서 팔찌나 옷은 미래 사실에 근거하여 말한 것으로, 지금 만들고 있거나 짓고 있는 것은 아직 팔찌 등이 아니다.
75)
즉 전륜왕이나 독각ㆍ무상각(불세존)이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중유로서의 명칭이 아니라 당래 본유의 상태에 근거하여 일컬은 명칭이라는 뜻.
76)
입태와 주태와 출태를 바로 아는 입태는 마침내 성불하는 최후신(最後身)의 보살의 단계에서라는 뜻.
77)
불세존은 성도하기 전에 3아승지겁 100겁 동안 보살로서 정진 수행하였는데,(본론 제17권 ‘겁의 본질’ 참조) 각각의 겁이 세 종류의 입태에 해당한다는 뜻. 이는 달리 말하면 다른 전륜왕이나 독각은 입태 내지 출태를 바로 알지 못하는 네 번째 입태라는 뜻이다.
78)
“이는 마치 세간에서 ‘흰콩 무더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순정리론』 제24권) 대부분 흰콩이고 검정콩은 얼마 되지 않을 경우, 그것을 ‘흰콩 무더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살의 생이 상속하는 상태 중에서는 대부분 선심이고 염심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다수에 따라 정지라고 말하였다는 뜻.
79)
불교의 경우처럼 무아(無我)를 주장한다면, 이 세간으로부터 저 세간으로 가 입태ㆍ주태ㆍ출태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즉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내적으로 작용하는 자아(ātman) 내지 사부(士夫,puruṣa)가 존재하여 그것이 전지(轉至) 상속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유정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아를 주장하는 유아론이 되어야 한다.”(『구사론』 제9권, 고려장27,p.520상; 대정장29,p.47중; 권오민 역,p.420) 이하 바로 이 같은 무아와 중유의 윤회상속에 대해 논설한다.
80)
색 등의 감각적 대상은 지각[現量]에 의해 구체적으로 알려지며, 안 등의 감관은 작용을 통해 그 존재가 추리[比量]되지만, 푸루샤와 같은 내적인 자아는 지식획득의 직접적인 수단[量]인 지각과 추리에 의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비유(非有)이다.
81)
『잡아함경』 제13권 제355경『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대정장2,p.92하), 有業報而無作者. 此陰滅已 異陰相續, 除俗數法.
82)
여기서 네 종류의 자아란 첫째 온을 본질로 하는 자아, 둘째 온과 다른 것이지만 온 중에 머무는 자아, 셋째 온과는 다른 것이면서 온과는 다른 법 중에 머무는 자아, 넷째 온과 다른 것이면서 어디에도 머무는 곳이 없는 자아.
83)
이상은 ‘[제온은] 업이 인기(引起)한 순서대로 증장(增長)하여 상속하고, 다시 번뇌와 업에 의해 다른 세간으로 나아간다’는 본송의 해석으로, 번뇌와 업을 인연으로 하여 생이 낳아지고, 그러한 생에서 다시 번뇌와 업이 낳아져 또 다른 생을 인기한다는 3세유전을 밝힌 것이다.
84)
즉 갈라람은(kalalam,凝滑)은 잉태 후 첫 7일간의 응혈의 상태, 알부담(arbuda:胞]은 그것이 엉키기 시작하는 두 번째 7일간의 상태. 유정은 계속하여 피와 살이 엉키게 되는 세 번째 7일간의 상태인 폐시(閉尸,peśi:血肉), 살이 굳어지는 네 번째 7일간의 상태인 건남(鍵南,ghana:堅肉), 사지의 마디가 형성되는 다섯 번째 7일부터 38번째 7일까지의 상태인 발라사거(鉢羅奢佉,praśākha:支節)(이상 胎內 5位)를 거쳐 출생 후에는 6세까지의 어린이[嬰孩]의 단계, 15세까지의 청소년[童子], 30세까지의 젊은이[少年], 40세까지의 중년[盛年], 그리고 41세 이후의 늙은 이[老年]라는 다섯 단계로 상속 증장하는데(이상 胎外 5位), 이 같은 생의 과정을 통해 산출한 번뇌와 업에 따라 또 다른 생이 낳아지고, 그 생에서 다시 번뇌와 업을 일으키며 끝없는 생사를 윤회하게 된다. 따라서 번뇌와 업을 소멸하지 않는 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85)
만약 무인생(無因生)이라고 한다면 특정의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생겨나야 하며, 그것을 제약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무인생이라 할 수 없다.
86)
본론 제11권 ‘외도의 일인(一因,이를테면 자재천) 생론(生論) 비판’ 참조.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4권
1)
여기서 본론(本論)은 『품류족론』 제6권(대정장26,p.715하; 한글대장경117,p.132), ‘緣起法云何? 謂有爲法.’
2)
『잡아함경』 제13권 제355경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대정장2,p.92하), ―俗數法者 謂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如無明緣行 行緣識 廣說乃至 純大苦聚集起.
3)
식(識)으로부터 시작하는 10지(支) 연기는 이를테면 『잡아함경』 제12권 제287경(대정장2,p.80하)등에서 설해진다. 참고로 『중아함경』 제1권의 동명(同名)의 『성유경』에서는 연기에 대해 설하고 있지 않다.
4)
여기서 『대연기경』은 『중아함경』권제24의 『대인경(大因經)』(대정장1,p.578)일 것이다. 여기서는 노사ㆍ생ㆍ유ㆍ수(受,取의 구역)ㆍ애(愛)ㆍ각(覺,受의 구역)ㆍ갱락(更樂)ㆍ명색ㆍ식의 9지 연기를 설하고 있다. 참고로 『대연기경』과 유사한 이름의 경으로는 『장아함경』 제10권의 『대연방편경(大緣方便經)』이 있지만, 여기서는 12지 연기를 설하고 있다.
5)
『잡아함경』 제14권 제352경(대정장2,p.9상). ‘若諸沙門婆羅門, 於法不如實知. 法集ㆍ法滅ㆍ法滅道跡不如實知.’ 여기서는 사문과 바라문이 참답게 알지 못하는 법으로서 노사ㆍ생ㆍ유(有)ㆍ취(取)ㆍ애(愛)ㆍ수(受)ㆍ촉(觸)ㆍ6입처(入處)의 8지(支) 연기의 법과 그 집(集)과 멸(滅)과 멸도적(滅道跡)에 대해 설하고 있다.
6)
여기서 염오란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있고 내지 노사가 있다’는 유전문(流轉門)의 연기를, 청정이란 ‘무명이 멸하였으므로 행이 멸하고 내지 노사가 멸한다’는 환멸문(還滅門)의 연기를 말한다.
7)
이는 바로 12지를 3세(世) 양중(兩重)의 인과관계로 해명한 것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명-행(과거세 2因)-식-명색-6처-촉-수(현재세 5果)-애-취-유(현재세 3因)-생-노사(미래세 2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주33)의 도표 참조. 그렇다고 과거 2인과 미래 2과가 무인(無因)ㆍ무과(無果)의 원인과 결과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는 ‘혹(惑)ㆍ업(業)ㆍ사(事)의 상생관계’에서 해명한다.
8)
여기서 ‘모든 단계[位]’라 함은 태내 5위와 태외 5위를 말한다. 본론 제13권 주84) 참조.
9)
『중아함경』 제24권 『대인경(大因經)』(대정장1,p.579하).
10)
이를테면 성자(聖者)의 경우 현재 생에서 향수한 식ㆍ명색ㆍ6처ㆍ촉ㆍ수의 5지(支)가 과거 생의 무명과 행의 결과는 아니며, 아직 애탐이 생겨나지 않은 어린 아이일 적에 요절한 이가 미래생에서 향수하는 ‘생’과 노사 역시 현재 생의 애ㆍ취ㆍ유의 결과는 아니다. 다시 말해 3제(際)에 걸친 12지(支)의 인과상속은 다만 일반적인 욕계 유정에 근거한 것일 뿐 일체의 유정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경에서는 이 같은 예외적인 사실에 대해서까지 분별하고 있지 않다는 뜻.
11)
이는 12지를 2세(世) 양중(兩重)의 인과로 설한 것으로, 무명ㆍ행ㆍ식ㆍ명색ㆍ6처ㆍ촉ㆍ수의 7지를 전제로, 애ㆍ취ㆍ유ㆍ생ㆍ노사의 5지를 후제로 이해하여, 이 중 전제의 앞의 2지(무명ㆍ행)와 후제의 앞의 3지(애ㆍ취ㆍ유)를 과거ㆍ현재의 원인으로 삼고, 그 밖의 전제의 5지와 후제의 2지를 현재ㆍ미래의 결과로 삼은 것이다. 이는 사실상 3세 양중의 인과(주33의 도표참조)와 동일한 것이다.
12)
번뇌[惑]와 업을 원인으로 하여 후유(後有: 事)의 결과가 생겨나는 것으로, 앞서 12연기는 3세에 걸친 양중의 인과라고 하였는데, 이는 바로 이 같은 혹ㆍ업ㆍ사의 인과구조이다. 즉 과거세의 무명[惑]과 행[業]을 원인으로 하여 현재생의 식ㆍ명ㆍ색ㆍ6처ㆍ촉ㆍ수[事]가 있으며, 현재세의 애ㆍ취[惑]와 유[業]를 원인으로 하여 미래세의 생ㆍ노사[事]가 초래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는 ‘혹ㆍ업ㆍ사의 분별’을 참조할 것.
13)
즉 앞서 언급한 본송 제1구 ‘숙생에서의 번뇌의 상태[惑位]가 무명이다’에서, 상태[位]라고 하는 말은 12지 전체에 적용된다는 뜻. 여기서 ‘상태[位]’란 분위(分位)를 말하는 것으로, 5온 중 번뇌가 두드러진 숙생의 상태를 ‘무명’이라 하였듯이, 5온 중 ‘행’이 두드러진 숙생의 상태를 ‘행’이라 한다.(이에 대해서는 후술하는 ‘분위(分位) 연기설’ 참조) 즉 숙생에 번뇌에 의해 선ㆍ불선 등의 업을 발동하여 현생에 결과를 초래할 때까지의 상태를 총칭하여 ‘행’이라고 한다.
14)
본론 제21권 ‘복(福)ㆍ비복(非福)ㆍ부동(不動)의 3업’ 등 참조.
15)
미래세의 ‘생’을 낳을 현생의 업은 ‘유(有)’라고 한다. 즉 현생의 업에 의해 미래존재[當有]를 초래하기 때문에 ‘유’라는 명칭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유(有)’ 참조.
16)
결생하는 찰나 중에서는 5온 중에 ‘식’이 가장 수승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시 ‘식지(識支)’라고 이름한 것으로, 이러한 결생의 찰나에는 아직 전5식을 낳게 하는 연(이를테면 안근 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때의 식은 오로지 의식(意識)이다.
17)
『잡아함경』 제15권 제372경.
18)
여기서 『승의공경』은 『잡아함경』 제13권 제335경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대정장2,p.92하). “업도 존재하고 이숙도 존재하지만, 작자는 획득(인식)될 수 없다. 말하자면 능히 이 온을 버리고서 능히 그 밖의 다른 온을 상속하는 것으로, 오로지 법가(法假) 만은 제외된다.” 여기서 법가(dharma saṃketa,혹은 俗數法)는 제법 즉 5온의 상속상에 일시 설정된 자아를 말한다.
19)
즉 결생 이후 갈랄람ㆍ알부담ㆍ폐시ㆍ건남과, 발라사거의 일부(신근과 의근이 생겨난 상태)인 태내 5위의 상태를 말한다.
20)
즉 식과 명색의 단계에도 신처와 의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작용이 미열(微劣)하여 원만하지 않다. 그래서 명색을 4처가 아니라 6처가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21)
본론 제15권(‘觸에 대하여’)에서 상론한다.
22)
본론 제15권(‘受에 대하여’)에서 상론한다.
23)
‘애’는 3계의 탐(貪)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9결(結) 중의 하나. 본론 제27권에서 상론한다.
24)
유부의 번뇌 수면론에서 ‘견(見)’은 유신견(有身見,혹은 薩迦耶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ㆍ계금취(戒禁取)ㆍ견취(見取)로 나누어지는데, 5온에 대한 애탐의 결과인 5취온(取蘊)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유신견과, 5취온의 단멸과 상주[斷常]에 집착하는 변집견과, 단멸의 입장에서 업도, 업의 이숙도, 해탈도, 해탈도(道)도 없다고 하는 사견은 바로 저열한 지식을 뛰어난 지식이라 집착하는 견취(見取)로 간주된다. 그리고 계금취란 영속[常]의 입장에서 고행 등의 금계를 청정도라고 집착하는 것으로, 이를 별도의 ‘취’로 간주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후술함.
25)
색ㆍ무색계의 번뇌는 외계대상에 의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하는 언어적 관념(내면적 사유)으로부터 비롯된 번뇌이기 때문에 아어취(ātmavāda upādāna, attavādūpādāna)라고 한 것인데, 여기에는 각기 16가지의 견혹(5견을 제외한 貪ㆍ慢ㆍ疑ㆍ無明의 4部)과 세 가지 수혹(탐ㆍ만ㆍ무명) 등 38가지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27권 ‘번뇌의 이명(異名)’ 참조.
26)
취(取)는 수면(隨眠)ㆍ누(漏)ㆍ폭류(瀑流)ㆍ액(軛) 등과 함께 번뇌의 이명(異名)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27권에서 논설한다.
27)
다시 말해 ‘알지 못하는 것[不了相]을 무명이라 하기 때문에.’(次註참조) 즉 잘 알지 못하면 어떤 대상에 대해 능히 집착하지 못한다.
28)
즉 무명을 ‘취’의 하나로 설정하지 않은 것은, 4제(諦)에 대한 무지를 의미하는 무명은 그 성질이 날카롭지 않아 3유(有)를 능히 집착하여 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으로, 그것은 다만 다른 번뇌와 관계(상응)할 때 비로소 ‘취’가 될 수 있다.(본론 제27권 ‘번뇌의 이명’ 참조)
29)
즉 5견 중 계금취만을 별도의 ‘취’로 설정한 것은, 그것이 프라크리트(원질)와 푸루샤(자아)의 식별지를 참된 해탈도라고 여기는 등의 성도(聖道)에 적대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혹은 단식이나 목욕 등을 하늘에 태어나는 도로 간주하고 고행을 청정한 해탈도라고 간주하는 등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를 속이는 지식이기 때문이다.(본론 제27권 ‘번뇌의 이명’ 참조)
30)
견(dṛṣṭi)이란 의식의 모든 순간에 나타나는 보편적 작용(즉 大地法) 중 혜(慧,mati)로 분류되는 판단작용을 말하지만, 여기서의 ‘견’은 물론 그릇된 견해 즉 염오혜(染汚慧)를 말한다. 즉 그릇된 견해 역시 확인 판단된 것이기 때문이다.
31)
아어취란 제법의 취집(聚集)에 ‘나’라고 하는 언어적 관념[我語]이 존재한다고 능히 집취(執取)하는 것으로, 유부의 경우 이러한 아견에 근거한 색ㆍ무색계의 번뇌를 아어취라고 하였지만, 상좌(上座) 스리라타는 다만 자아관념에 대한 집착으로 이해하였는데, 『순정리론』 제26권에서는 이에 대해 해명 비판하고 있다.
32)
즉 ‘유(bhāva)’에는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3유(異熟有)가 있지만, 이러한 이숙유의 직접적인 원인은 업이며, ‘취’ 즉 번뇌를 반연하는 것도 업이기 때문에 12연기에서의 유지(有支)는 업유를 의미한다는 뜻.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27권을 참고할 것.
33)
이상에서 논설한 12지(支)의 관계를 다시 요약하면, 무명과 ‘행’은 과거 생에서 지은 현재 생의 원인이고, ‘식’에서 ‘수’에 이르는 5지는 그 결과이며(이상 과거ㆍ현재의 인과), ‘애’와 ‘취’와 ‘유’는 현재생에서 짓는 미래생의 원인이고, ‘생’과 노사는 그 결과이다(이상 현재ㆍ미래의 인과). 그리고 3세에 걸친 인과적 관계를 떠나 실제적인 작용관계로 본다면 ‘애’와 ‘취’는 번뇌이기 때문에 무명에 해당하고, ‘유’는 업이기 때문에 ‘행’에 해당하며, 미래생의 첫 찰나 5온인 ‘생’은 ‘식’에, 노사는 명색에서 ‘수’에 이르는 4지(支)에 해당하기 때문에 비록 12지만을 설하였지만 그것으로 끝없는 생사의 윤환적(輪環的) 과정은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34)
『순정리론』 제27권에서는 당래 명색ㆍ6처ㆍ촉ㆍ수의 4지를 ‘노사’로 설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35)
상온과 행온과 색온. 이 경우 상온은 전부이지만, 색온은 표ㆍ무표업과 5처를 제외한 성ㆍ향ㆍ미ㆍ촉의 4경(境), 행온은 무명ㆍ사(思, 이는 행)ㆍ촉ㆍ탐과 무참ㆍ무괴ㆍ혼침ㆍ도거 등(이는 纏으로, 바로 ‘취’임)과 생ㆍ이(異, 이는 老)ㆍ멸(死)을 제외한 작의 등의 일부이다.
36)
전(纏,paryavasthāna)이란 근본번뇌로부터 파생된 수번뇌(隨煩惱,upakleśa)로서, 무참ㆍ무괴ㆍ악작ㆍ수면(睡眠)ㆍ도거ㆍ혼침ㆍ분(忿)ㆍ부(覆)ㆍ질(嫉)ㆍ간(慳) 등 열 가지. 본론 제27권 참조.
37)
이는 『구사론』 제9권(고려장27,p.521하; 대정장29,p.48하;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 p.430~431)상에서의 찰나연기에 관한 정설로, 다만 거기서는 “명색이 머무는 근을 설하여 ‘6처’라 하며, 6처가 그 밖의 다른 것(즉 경ㆍ식)에 대해 화합하는 것을 ‘촉’이라 하며, 촉을 영납(領納)하는 것을 ‘수’라고 이름한다”고 논설하고 있다.
38)
『순정리론』 제27권에서는 이 같은 유여사의 찰나연기설에 대한 상좌(上座) 스리라타의 비판과 중현의 해명이 상론되고 있다.
39)
원속연기란 다음 생 이후에 과보를 받거나 과보를 받는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업과 번뇌로 말미암아 여러 생에 걸쳐 12지가 상속한다는 연기설로서, 아득히 먼 과거의 무명과 ‘행’에 의해 현생의 ‘식’ 등의 결과가 초래되며, 현생의 ‘유’에 의해 아득히 먼 미래세의 생과 노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연박(連縛) 연기란 12찰나에 걸친 동류와 이류의 인과로서 무간에 상속하는 것을 말한다.
40)
이는 ‘전설에 따르면, 분위에 근거하여 설한 것으로 인정되니(傳許約位說)’라고 한 『구사론본송』(제9권, 고려장27,p.522상; 대정장29,p.48하; 권오민 역,p.431)을 개작한 것이다. 즉 12연기의 각 지(支)가 5온을 본질로 하는 것이라면 5온에서 5온으로 변이하는 것이 되어 인과의 차별은 허물어지고 말기 때문에 세친은 불신(不信)의 뜻을 나타내어 예의 ‘전설’로 논설하였던 것이다. “대법(對法)의 모든 논사들은 다같이 ‘부처님께서는 분위에 근거하여 온갖 연기를 설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경주(經主)는 이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본송에서] ‘전설에 따르면……(이하 생략)……인정된다[傳許]’라는 말을 설하였던 것이다.”(『순정리론』 제27권)
41)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대정장2,p.85상). 云何無明? 若不知前際, 不知後際, 不知前後際, 不知於內. 不知於外, 不知於內外, 不知業, 不知報, 不知業報……(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是名無明.
42)
『구사론』 제9권(고려장27,p.523하; 대정장29,p.50상; 권오민 역,p.442). 즉 무명을 무지(無知)라고 말한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백한 사실(요의설)을 나타낸 것인데, 여기에 경에서는 설하지 않은 또 다른 말(즉 5온)을 보충하여 그 뜻을 취하는 것은 요의경을 불요의경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는 뜻의 힐난.
43)
원문은 ‘此無所違, 如標釋故.’ 『순정리론』 제27권에서는 ‘……다만 나타낸 것에 대해서만 해석하였기 때문이다(但如標擧而解釋故)’ 즉 상좌(上座) 스리라타에 의하면, 요의경이란 “성교(聖敎)에서 설하고 있는 온갖 사실로서 부처님 스스로 나타내고서[標] 스스로 해석한 것[釋]”인데, 인용한 계경에서는 5온 중 두드러진 무명만을 나타내고서 이를 해석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분위연기설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뜻.
44)
3제에 걸친 12연기가 오로지 유정에게만 적용되는 까닭은 그들만이 3제를 차별하기 때문이다.(『구사론』 제9권, 고려장27,p.522상; 대정장29,p.49상; 권오민 역,p.433)
45)
첫 번째는 자아의 존재에 관한 의심이고, 두 번째는 자아가 존재한다면 자아는 바로 온[卽蘊]인가, 온과는 별도의 다른 존재[離蘊]인가, 온이면 색인가, 내지 식인가 하는 자아의 자성에 관한 의심이며, 세 번째는 존재양태에 관한 의심이다. 이하 미래ㆍ현재 생의 경우도 동일하다. 즉 3세에 걸친 이러한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 3세에 걸친 유정의 연기로서 12지를 설하였다는 것이다.
46)
『잡아함경』 제12권 제296경(대정장2,p.84중하). 인용문 중에서 연기(pratītyasamutpāda)가 원인이 되는 능생(能生)의 법이라면 연이생(pratītyasamupānna)은 결과가 되는 소생(所生)의 법이다. 이 두 개념에 대해서는 후술.
47)
여기서 사(事,vastu,vatthu)란 혹(惑), 즉 번뇌와 업의 이숙과로서 드러나는 현행과 미래의 괴로움을 말함. 즉 그러한 괴로움은 바로 다시 제 번뇌와 업의 소의처(所依處)가 되기 때문에 실체로서의 의미인 ‘사’로 일컫게 된 것이다.
48)
중제(즉 현재)의 8지 중 식ㆍ명색ㆍ6처ㆍ촉ㆍ수는 전제(과거)의 결과로서 ‘사(事)’이며, 수ㆍ취와 유는 후제(미래)의 원인으로 혹과 업이다. 그러나 전제의 무명ㆍ행은 중제의 원인으로 혹과 업일 뿐이고, 후제의 생ㆍ노사는 중제의 결과로서 ‘사’일 따름이다.
49)
즉 과거세(前際)의 혹인 무명은 현재세의 혹(애ㆍ취)과 동일하므로 그 이전에도 식ㆍ명색 등의 5지의 결과가 있음을 현재의 8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미래세(後際)의 ‘사’인 생ㆍ노사는 현재세의 사(식ㆍ명색ㆍ6처ㆍ촉ㆍ수)와 동일하여 5지에 애ㆍ취ㆍ유의 원인이 있는 것처럼 생ㆍ노사에도 역시 이에 상응하는 무명ㆍ행의 원인이 일어난다. 이처럼 현재세의 혹ㆍ업ㆍ사의 관계를 통해 혹(무명)ㆍ업(행)의 과거세와 사(생ㆍ노사)의 미래세에도 각기 그 원인과 결과를 추리해 볼 수 있기 때문에, 12지연기에서 과거세에서는 원인만을 설하고 미래세에서는 결과만을 설한 것이다.
50)
이는 초 찰나의 애탐을 ‘애’라고 하였다면, 결생(結生)의 찰나인 식(識)과 생(生) 뿐만 아니라 ‘애’도 찰나성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어떠한 까닭에서 12지(支) 가운데 ‘식’과 ‘생’만을 찰나성이라고 말한 것인가? 하는 힐난에 대한 답이다. 즉 ‘애’는 하나의 대상에 대한 초 찰나(初念)의 애탐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대상에 대한 애탐을 말하며, 그것이 화합한 것이 ‘취’이기 때문에 ‘식(識)’ 등과 같은 찰나성이 아니라는 뜻.(『순정리론』 제28권참조)
51)
즉 노사(미래세 事)는 바로 현재세의 ‘사’인 명색ㆍ6처ㆍ촉ㆍ수의 4지와 동일하며, 아울러 무명(과거세 惑)은 바로 현재세의 혹인 애ㆍ취의 경우와 동일하기 때문에, 노사는 무명의 원인이 되며, 무명은 노사의 결과이다.
52)
즉 『아함경』에서는 일반적으로 12연기를 순역(順逆)으로 설한 다음 반드시 순대고취(純大苦聚)의 집멸(集滅)을 설하고 있는데, 만약 ‘사(事)’인 노사는 ‘사’와 ‘혹’의 원인이 되고, ‘혹(惑)’인 무명은 ‘혹’과 ‘사’의 결과가 되어 12연기가 유정의 끊임없는 전전유전의 존재형식으로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면, 단지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는 생을 연하여 노사가 있다’고만 설하고 ‘……내지 순대고취의 집이 있다’고는 설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앞에서의 힐난처럼 유시유종(有始有終)이 되는 과실을 범하게 된다.
53)
『잡아함경』 제12권 제296경(대정장2,p.84중), ‘我今當說因緣法及緣生法’ 이 경에 따르면, 인연법(연기법)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식의 원인을 말하며, 연생법(연이생법)이란 이와 같은 인연(원인)에 따라 일어난 무명ㆍ행 등의 결과를 말한다.
54)
이를테면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다’고 할 때 ‘무명’은 원인으로서의 상태[因分]이고, ‘행’은 결과로서의 상태[果分]이지만, ‘행을 연하여 식이 있다’고 할 때에는 ‘행’이 원인으로서의 상태이며, ‘식’이 결과로서의 상태이다.
55)
『승의공경』은 『잡아함경』 제13권 제335경(일명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 ‘此陰滅已, 異陰相續, 除俗數法.--俗數法者, 謂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如無明緣行, 行緣識, 廣說乃至 純大苦聚集’ 여기서 법가(法假,dharma saṃketa,『제일의공경』에서는 俗數法)란 바로 연기를 말하는 것으로, 인과상속 중에 일시 연기를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법가’라고 하였다는 뜻.
56)
열반(택멸무위)은 유위법이 아니기 때문에 원인이 되지 않지만, 결과(즉 離繫果)는 되기 때문에 연이생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열반은 도에 의해 생겨난 결과[所生果]가 아니라 증득된 결과[所證果]이다. 다시 말해 이때 도의 작용은 다만 택멸의 ‘득’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계과는 무루도에 의해 생겨난 결과가 아니라 증득된 결과라고 한 것이다.(본론 제9권 ‘5과론’ 참조)
57)
열반은 원인으로서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연기’가 아니라는 뜻.
58)
이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들을 함께 성취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구사론』 제9권, 고려장27,p.523중하; 대정장29,p.50상; 권오민 역,p.441)는 힐난의 답이다. 즉 12지 각각의 원인적 상태를 ‘연기’라 하고, 결과적 상태를 ‘연이생’이라고 한다면, 원인이 될 때에는 결과가 되지 않으며, 결과가 될 때에는 원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뜻이 함께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59)
어떤 이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들로 불리지만, 아들에 대해서는 아버지로 불리는 것으로, 두 가지 뜻이 동시에 성취되는 일은 없다.
60)
무명이 ‘명이 아닌 것[非明]’이라고 한다면, 명은 바로 75법 가운데 혜(慧)이기 때문에 ‘혜’를 제외한 안 등의 74법은 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두를 무명이라 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무명을 ‘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 즉 명의 비존재[無]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고 해야 할뿐더러 책상의 비존재와 명의 비존재는 비존재라는 점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기 때문에 책상의 비존재도 무명이라고 해야 한다.
61)
즉 친구(mitra)에 반대되는 원적을 ‘친구 아닌 이(amitra)’라고 할 때, 그러한 이는 친구 이외의 모든 이를 말하는 것도, 친구로서의 성상(性相)이 부재하는 어떤 이를 말하는 것도 아니듯이, 무명(avidyā) 또한 명(vidyā)이 아닌 것도, ‘명’의 성상이 결여된 것도 아닌, ‘명’에 반대되는 실유의 개념이라는 뜻.
62)
이를테면 어두움을 ‘밝음이 아닌 것’ 혹은 ‘밝음이 결여된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밝지 않은 모든 존재, 혹은 밝음이 존재하지 않는 모든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 밝음 이외 모든 존재나 상태를 어두움이라고 해야 한다. 어두움이란 밝음에 반대되는 별도의 존재라는 뜻. 비백(非白)은 불선, 비애(非愛)는 좋아하지 않는 것.
63)
이하 무명의 개별적 실재성을 밝힌다. 이에 대해 경량부에서는 무명을 악혜(惡慧) 즉 염오혜로 이해하여 그것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였다. 다시 말해 무명을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명의 부재’, 비리작의에서 비롯된 ‘선혜(善慧)의 결여’로 이해하였는데, 앞서 유부가 ‘무명은 명의 비존재가 아니다’라고 한 것도 여기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64)
이는 모두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결(結,saṃyojana)은 유정을 결박시키는 의식작용으로, 애(愛)ㆍ에(恚)ㆍ만(慢)ㆍ무명ㆍ견(見)ㆍ취(取)ㆍ의(疑)ㆍ질결(嫉結) 등 아홉 가지. 박(縛,bandhana)은 속박의 뜻으로, 애탐ㆍ진에ㆍ무명박 등 세 가지. 수면(anuśaya)은 심신의 상속과 함께 증장하며 그것을 항상 계박하는 번뇌로서, 욕탐ㆍ진ㆍ견ㆍ의ㆍ만ㆍ유탐ㆍ무명ㆍ수면 등 일곱 가지. 누(漏,āsrava)는 6근으로부터 누출되어 유정을 3계에 오래 머물게 하고 해탈로 나아가는 것을 장애하는 의식작용으로, 욕(欲)ㆍ유(有)ㆍ무명루 등 세 가지. 폭류(ogha)는 홍수가 모든 것을 씻어내듯이 유정의 뛰어난 일을 표탈(漂奪)시키는 의식작용으로, 욕ㆍ유ㆍ견ㆍ무명폭류 등 네 가지. 액(軛,yoga)은 유정을 6취나 9지(地) 등의 존재로 속박시키는 의식작용으로 내용은 폭류와 같다. 이상의 번뇌론에 대해서는 본론 「수면품」 제27권에서 상론함.
65)
명(明)을 제외한 안(眼) 등의 일체법 역시 무명(정확히는 非明)이라고 이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일체법이나 자아 등의 비존재는 ‘결’ 등의 번뇌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경에서 설한 무명은 그와는 다른 별도의 실체라는 뜻.
66)
온갖 악혜(염오혜) 중에는 다섯 가지(즉 5見: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ㆍ계금취ㆍ견취)가 있는데, 이는 판단작용[推度]으로 정의되는 ‘견(見)’을 본질로 한다. 즉 염오혜 역시 확인 판단된 것이기 때문이다.(‘먼저 審慮하고 決度하는 것을 일컬어 견이라 한다.’ 본론 제4권 ‘견ㆍ비견 분별’ 참조) 그러나 무명(즉 癡)은 무지(無智) 무현(無顯)으로서(본론 제6권 ‘대번뇌지법’ 참조) 몽매성(蒙昧性)의 작용이기 때문에 판단작용의 ‘견’과는 다르며, 따라서 악혜와 무명은 다르다는 것이다.
67)
즉 무명이 악혜라고 한다면, 혜를 본질로 하는 ‘견’과 상응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견’과 상응한다고 할 경우, 심ㆍ심소는 각기 일 찰나에 일법(一法)만이 생겨난다는 사평등(事平等)에 위배되는 것이다.
68)
『잡아함경』 제26권 제710경(대정장2,p.190중) 참조.
69)
『구사론』 제10권(고려장27,p.526중; 대정장29,p.51하~p.52상; 권오민역,p.459). 보광(普光)과 법보(法寶)에 의하면, 이는 경부(經部)의 구석(求釋)이다. 즉 경량부에서는 마음의 오염을 잠재(종자)적 형태로든 현행의 형태로든 무명이 뒤섞인 상태[間雜]로 이해함으로써 무명과 혜는 일 대 일로 대응하는 실체가 아니며, 따라서 무명을 악혜 즉 염오혜로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70)
원문은 ‘熏習理無 當何所滅’. 그러나 『순정리론』 제28권에는 ‘熏習本無 更所何滅(훈습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다시금 무엇을 멸해야 할 것인가?)’로 되어 있다. 훈습은 종자(種子) 혹은 수계(隨界)의 이명(異名).
71)
무명의 자성은 ‘알지 못하는 것[不了知]’이지만,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는 일체법을 다 아시는 세존께서만이 헤아릴 수 있다는 뜻.
72)
『잡아함경』 제26권 제710경(대정장2,p.190중), ‘比丘, 離貪欲者心解脫, 離無明者慧解脫.’
73)
원문은 ‘又此如明說爲因故’로 되어 있지만, 다른 판본이나 문맥에 따라 ‘又此無明……’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74)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마쳤다[所作已辦]’는 말은 흔히 무학의 아라한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는데, 그의 자각내용을 나타낸다.
75)
부처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갖추었기 때문에 염오무지 뿐만 아니라 불염오무지도 끊었지만, 성문(아라한)과 독각은 염오무지는 끊었지만 불염오무지는 끊지 못하여 현행한다.
76)
여기서 금강도단이란 유정지(有頂地,비상비비상처) 제9품의 수혹(修惑)을 끊는 무간도. 이후 이를 작증(作證)하는 진지(盡智,즉 해탈도)가 생겨나 아라한과를 증득한다.
77)
불공법이란 오로지 일체의 지혜(즉 十智)를 구족한 불타만이 갖는 공덕으로, 10력(力)ㆍ4무외(無畏)ㆍ3념주(念住)ㆍ대비(大悲)의 18가지. 여기서 염주란 어떠한 경우에서도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즉 불타는 모든 제자들이 한결같이 공경하고 능히 받들어 행하더라도 그에 대해 기뻐하지 않으며[제1 염주], 공경하지도 않고 받들어 행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근심하지 않으며[제2 염주], 어떤 이는 공경하고 능히 받들어 행하며 또 어떤 이는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기뻐하거나 근심함이 없이 머문다[제3 염주].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75권 ‘18불공법’을 참조 바람.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5권
1)
본론 제2권 ‘색온’ 이하 참조.
2)
즉 색법은 변애(變礙) 즉 시간적 변이성과 공간적 점유성을 갖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과거와 미래의 색 등은 비록 변애하는 일이 없을지라도 색과 비색(非色,무색)의 차이가 변애에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색’이라고 이름할 수 있듯이, 비록 불상응행법은 소연을 갖지 않을지라도 그 밖의 무색의 4온은 색과는 달리 소연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명’이라 이름할 수 있다는 뜻. 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29권을 참조할 것.
3)
즉 색법은 거친 것[麤]이기 때문에 ‘명’에 의하지 않고 드러나지만, 무색의 4온은 미세하기 때문에 ‘명’에 의하지 않고서는 드러날 수 없다. 즉 무색의 4온은 불상응행법의 하나인 명(名)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에 ‘명’이라 이름하였다는 뜻.
4)
예컨대 무색계에서 추구하는 것은 색이 아니라 ‘명’이기 때문에 색을 3계 5취에서 두루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5)
『순정리론』 제29권에서는 무색의 4온이 바로 ‘名’이라는 상좌(上座) 스리라타의 설을 비판하면서(유부의 정설은 무색의 4온은 불상응법인 ‘명’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임) 식(識)과 명색 사이의 상호연기 관계 등에 대해 분별하고 있다.
6)
여섯 번째의 세 가지란 의근ㆍ법경ㆍ의식으로, 이 경우 의근은 과거의 존재이며, 법경은 과거ㆍ현재ㆍ미래 모두와 통하며, 의식은 현재의 존재이다. 즉 이 세 가지는 비록 시간을 달리하여 존재하지만, 근과 경이 원인이 되어 식의 결과를 낳는 인과관계로 규정되기 때문에, 혹은 삼자는 ‘촉’이라는 동일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화합’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7)
이는 뭔가 착오로 생각된다. 본론 제5권에서 ‘촉’을 비롯한 열 가지 대지법(大地法)에 대해 논설하고 있지만, ‘촉’의 실유 논증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순정리론』 제10권의 경우 ‘삼사화합이 바로 촉’이라는 상좌(上座) 설을 비판하면서 이에 대해 상세히 논의하고 있다.
8)
이를테면 『중아함경』 제58권 「대구치라경」(대정장1p.791중), ‘覺(受의 구역)ㆍ想ㆍ思此三法合, 不別. 此三法不可別施設.’
9)
증어촉(adhivacana-saṃśparsa)은 구역에서는 의언촉(依言觸)이라고 하는데, 언어적 개념[名,nāma]을 소연으로 삼는 촉이다. 즉 ‘증어’란 ‘명’의 다른 명칭으로, 『광기』에 의하면, 반드시 자신의 의미를 드러내는 ‘명’이 말[語]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말을 뛰어난 방편으로 삼아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에, 명의 세력에 의해 말이 뛰어나게 되기 때문에 ‘증어’라고 이름하였다.
10)
증어촉의 소연인 ‘명’은 전5촉 즉 유대촉의 그것(유대색)에 비해 탁월하고도 수승한 특장(特長)의 경계이기 때문에 장경(長境,adhikamālambana)이다.
11)
원문은 ‘眼識但能了靑, 不了是靑. 意識了靑, 亦了是靑’ 말하자면 전자가 감성적 인식이라면, 후자는 오성적 인식이다.
12)
각기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사수(捨受)와 상응하는 촉이다.
13)
안(眼) 등의 6촉과 유대촉과 증어촉, 명(明) 등의 3촉, 애촉과 에촉, 그리고 순락수촉 등의 3촉이 그것이다.
14)
6수 중 제6 의촉소생수(意觸所生受)를 심수(心受)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시 희(喜)ㆍ우(憂)ㆍ사(捨)의 자성에 따라 세 가지 의근행(意近行)으로 나누어지며, 이 같은 세 가지의 영납은 오로지 의식과 상응할 뿐이지만 각기 여섯 경계[境]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가 된다. 즉 이러한 희 등의 3법이 직접적인 연[近緣]이 되어 마음[意]으로 하여금 경계로 자주 유행(遊行)하게 하기 때문에 의근행(manopavicāra)이라고 하였다.(후술)
15)
심수의 자성은 희ㆍ우ㆍ사 세 가지로서, 의식과 상응하며, 각기 6경을 소연으로 하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가 되는 것이라는 뜻.
16)
『구사론』 제10권(고려장27,p.528하; 대정장29,p.53하;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 p.474)에서는 이를 ‘비바사사(毘婆沙師)에 따르면’ 이라는 뜻의 ‘전설(傳說,kila)’로 설하여 유부 정설로 나타내고 있다.
17)
즉 신수는 오로지 의식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고 3세법도, 자상과 공상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지(意地)의 직접적인 연[近緣]이 되지 않으며, 역시 그것을 경계대상으로 자주 유행하게 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의근행’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뜻.
18)
“신수는 오로지 의식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近)’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며, 무분별이기 때문에 역시 ‘행(行)’이라고도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구사론』, 고려장27,p.529상; 대정장29,p.53하; 권오민 역,p.475)
19)
즉 욕계에는 의식과 상응하는 낙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계에도 역시 설정하지 않는다는 뜻. 유부에서는 상계에 설정되는 법은 원칙적으로 욕계에도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20)
제3정려에는 낙근에 상대가 되는 고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없는 낙근을 의근행으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뜻.
21)
제3정려의 사근(行捨)은 사수(捨受,즉 不苦不樂受)의 ‘사’가 아니라 행온에 포섭되는 ‘사’ 심소이기 때문에 낙근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22)
즉 색계에는 단식(段食)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기 때문에 단식성인 향ㆍ미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으며(본론 제3권 ‘[18계의] 3계의 계속관계 분별’ 참조), 따라서 희(喜)ㆍ우(憂)ㆍ사(捨)에 걸친 여섯 가지 근행이 없는 것이다.
23)
무색계에는 색법(색경 내지 촉경)이 존재하지 않고 법경(法境)에 대한 희ㆍ우ㆍ사 3수(受)에 따른 세 가지 의근행만이 존재한다.
24)
희수와 사수의 두 가지가 욕계의 6경을 소연으로 하기 때문에 열두 가지이다.
25)
색계에는 우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거기서 무색계의 경계를 소연으로 삼을 경우, 거기에는 앞의 5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법을 경계로 하는 희ㆍ사의 의근행만이 있을 뿐이다.
26)
공무변처의 근분이란 제4정려의 염오함을 원리(遠離)한 상태로서, 여기서는 제4선의 색 등을 관하여 추(麤)ㆍ고(苦)ㆍ장(障) 등으로 관하는데, 다만 사수만이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인 색ㆍ성ㆍ촉ㆍ법에 대한 네 가지 근행을 일으킬 뿐이다
27)
『대비바사론』 제139권(한글대장경123,p.312)에서는 이러한 근분지의 계속과 그 소연 관계에 대해 두 가지 설을 전하고 있는데, 첫째는 색계를 소연으로 하는 경우에 네 가지 근행(색ㆍ성ㆍ촉ㆍ법)이 있으며, 자계를 소연으로 하는 경우에는 오로지 사(捨)의 법근행 한 가지뿐이다. 둘째는 색ㆍ성ㆍ촉ㆍ법을 각기 별도로 구별하지 않고 총괄하여 잡다한 하나의 소연[雜緣]으로 삼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법근행만이 있으며, 자계를 소연으로 하는 경우에는 ‘사’의 법근행 한 가지이다. 여기서 ‘이것’이란 제1설을 가리킨다.
28)
이는 초정려의 근분지(近分地), 즉 미지정에 든 자를 말함.
29)
색계천이 성취하는 욕계 의근행은 통과심과 구기(俱起)하는 ‘사’ 한가지뿐인데, 이 역시 색 등의 6경을 총합한 일법의 경계를 소연으로 삼기 때문에 법의 사근행이라고 한 것이다.
30)
여섯 가지 우(憂)근행을 제외한 희ㆍ사의 열두 가지 근행.
31)
탐기의 소의가 되는 열여덟 가지(6경 각각의 喜ㆍ憂ㆍ捨耽嗜依)는 근행하여 대치되는 것이며, 출리의 소의가 되는 열여덟 가지(6경 각각의 喜ㆍ憂ㆍ捨出離依)는 근행을 능히 대치하는 것이다.
32)
즉 향ㆍ미의 희(喜)ㆍ우(憂)ㆍ사(捨)의 세 탐기의(耽嗜依)와 향ㆍ미의 희ㆍ우ㆍ사의 세 출리의(出離依).
33)
즉 본론 제14권(‘무명의 名義’) 중에서 “행ㆍ유와 애ㆍ취에 대해서는 「변업품(辯業品)」과 「변혹품(辯惑品)」에서 마땅히 널리 해석할 것이며, 식과 6처에 대해서는 「변본사품」에서 이미 널리 해석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논설하였다.
34)
본론 제14권 ‘혹ㆍ업ㆍ사의 분별’ 참조
35)
이하 본론 제14권에서 논설한 ‘혹(惑,kleśa)ㆍ업(karma)ㆍ사(事,vastu)의 상호 상생관계’ 즉 ‘혹으로부터 혹과 업이 생겨나고, 업으로부터 사가 생겨나며, 사로부터 사와 혹이 생겨난다’를 상기하기 바람
36)
즉 결생위에서는 자지의 일체 번뇌에 의해 더럽혀진다고 하였지만, 결생의 순간에는 심신의 상태가 어둡고 저열하여 사택력이 없기 때문에 사택력에 의해 일어나는 간(慳)ㆍ질(嫉)ㆍ분(忿)ㆍ부(覆)ㆍ회(悔) 등의 10전(纏)과 뇌(惱)ㆍ해(害)ㆍ한(恨)ㆍ첨(諂)ㆍ광(誑)ㆍ교(憍)의 6구(垢)는 일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생유는 그것에 의해서는 더럽혀지지 않는다. 생유는 다만 열 가지 근본번뇌(貪ㆍ瞋ㆍ慢ㆍ無明ㆍ疑ㆍ有身見ㆍ邊執見ㆍ邪見ㆍ戒禁取ㆍ見取)와 그것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무참ㆍ무괴ㆍ혼침ㆍ도거 등의 힘에 의해 오염될 뿐이다. 10근본번뇌에 대해서는 본론 제25권에서, 10전과 6번뇌구에 대해서는 본론 제27권에서 상론함.
37)
즉 무색계에는 방처(方處)의 차별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중유가 존재하지 않는데, 『순정리론』 제24권에서 상좌 등의 논란을 비판하며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38)
『잡아함경』 제17권 제489경(대정장2,p.124하), “……謂一切衆生由食而存.”
39)
겁초의 유정은 지미(地味,단식의 시초)ㆍ지피병(地皮餠)ㆍ임등(林藤)을 먹어 배설의 더러움이 없었으나 그 후 그것이 고갈되어 벼를 먹음으로써 두 배설기관이 생겨나게 되었다.(본론 제17권 ‘겁초의 유정과 국왕의 옹립’ 참조) 원문에는 ‘변질의 더러움[變穢]’로 되어 있으나 이에 따라 ‘배설의 더러움’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40)
색계에는 비록 가장 미묘하고 능히 섭취 증익할 만한 색ㆍ성ㆍ촉의 경계가 있을지라도 필경 분단(分段)하여 씹어 삼키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단식이 아니다.
41)
단식의 본질이 촉처라면, 촉처에 포섭되는 태양의 빛, 나무의 그림자, 불의 뜨거움, 바람의 시원함과 같은 것을 어찌 식(食)이라 할 수 있는가? 하면 추울 때에는 따뜻함이, 더울 때는 시원한 바람이나 나무 그림자가 몸을 증익시키기 때문에 그것을 ‘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단식을 ‘조각으로 나누어[段別] 삼켜 먹는 것[呑噉]’이라고 함은, 대개 유정들은 먹을거리를 씹어서(分段하여) 삼켜서 먹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에 따른 것이라는 뜻. 이러한 해명은 『구사론』 제10권(고려장27,p.530하; 대정장29,p.55상; 권오민 역,p.488) 상에서 ‘전설(傳說)’로 전해지고 있다.
42)
색처는 안근의 대상으로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非至境임) 보이는 것이지 향ㆍ미ㆍ촉처처럼 직접적으로 접촉하여 섭취되는 것이 아니다.(본론 제4권 ‘근과 경의 접촉ㆍ불접촉의 문제’ 참조) 즉 만약 색이 먹혔다면 그것은 설(舌)ㆍ신(身)의 경계(즉 미처ㆍ촉처)일 뿐, 안(眼) 등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안 등의 근과 그 대종을 이익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43)
천수 즉 데바닷타는 부처님을 시해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미래세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하여 현재의 그를 나락가 즉 지옥이라 할 수 없듯이, 현재는 다만 안근의 대상일 뿐인 그릇 속의 색처(色處,음식물)를 미래에 입으로 들어갈 것이라 하여 단식(段食)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뜻.
44)
여기서 안선나(añjana)는 안약을 말하며, 산가지는 안약을 묻힌 작은 나무 조각을 말한다. 요컨대 안근의 작용은 보는 것만으로는 눈을 증익 감손시키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것은 눈에 닿을 때 비로소 눈을 증익 감손시키지만, 그때의 눈은 능히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때 증익 감손되는 것은 신근(身根)이다.
45)
즉 ‘공경하여 [단식을] 시여한 것’에 대해 찬탄하였을 경우, ‘공경’이 바로 단식은 아니며, 다만 시여의 보조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에 아울러 함께 찬탄하였듯이, 색은 단식이 아니지만 단식의 보조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에 계경에서 아울러 함께 찬탄하였다는 뜻.
46)
아직 이욕하지 못한 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보고 희락을 낳았을 경우, 그것도 신체를 증익함이 있기 때문에 색처 또한 ‘식’이 아니냐? 하는 난문의 답이다. 즉 이러한 희락은 색을 소연으로 하는 순락수촉(順樂受觸)이기 때문에 다음에 논설하는 촉식(觸食)에 포섭된다.
47)
촉식(혹은 樂食,śparsāharā)은 삼사화합의 촉을 본질로 하는 희락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의 섭취에 의해 신체가 장양되기도 한다.
48)
사식(혹은 念食, saṃcetanāhāra)은 제6의식이 희구하는 대상에 대해 낳은 희망의 작용으로, 사(思)를 본질로 한다. 이 또한 온갖 근을 자조(資助)하는 에너지이다.
49)
식식(vijñānāhāra)이란 능히 유정의 신명(身命)을 존속시키는 심식 그 자체를 말한다.
50)
단식의 열세 가지(향ㆍ미ㆍ11촉)에 촉ㆍ사ㆍ식을 더한 열여섯 가지를 말한다.
51)
예컨대 욕계의 식(食)은 색계의 유정을 성장시키는 자량은 될지라도 그것을 견인하지는 않기 때문에 색계의 ‘식’이 되지 않는다는 뜻.
52)
즉 향 등의 단식은 촉식 등의 원인이 되는 근(根) 등을 자조(資助)하여 당래 내법(內法)의 향(이를테면 몸에서 나는 향) 등을 취할뿐더러 촉식 등으로 하여금 능히 후유(後有)를 낳게 하므로 역시 ‘후유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식’의 두 가지 조건(근과 대종을 자조하고 ‘유’를 견인하는 것)을 충족한다는 뜻.
53)
이는 식(食)이 무루가 아닌 이유에 대한 경증(經證)이다. 즉 무루는 부다(部多) 등을 안주하게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4)
부다(部多,bhūta)란 이루어진 것,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이미 지나가 버린, 획득 등 다수의 뜻을 갖지만(보광에 의하면, 너무나 뜻이 많아 음역하였다) 여기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을 구하는 자(求生, 즉 중유)’에 대해 ‘이미 태어난 이(즉 生有)’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역에서는 ‘이생(已生)’으로 번역되고 있다.
55)
중유는 생유와는 달리 부모의 정혈(精血)에 근거하여 소의신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전생의 업에 의해 견인된 결과이기 때문에 의식으로부터 생겨난 것(그러나 대개는 ‘일어난 것[起]이라 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 중유에 대해서는 본론 제13권에서 상론하였다.
56)
앞의 두 가지 식 중 단식(段食)은 현재신의 소의인 유근신(有根身)을 증익하고, 촉식(觸食)은 그것의 능의인 심과 심소를 자익(滋益)하며, 이에 따라 사식(思食)은 인업(引業)이 되어 미래 생유[當有]를 인기하고 식식(識食)은 종자가 되어 그것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각기 이미 생겨난 유정을 도와 이익 되게 하고, 또한 후유를 이끌어내어 일어나게 하는 공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이 네 가지만을 ‘식’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57)
본론 제13권(‘중유의 형상과 4유’), “첫 번째는 중유(中有)로서, 그 뜻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두 번째는 생유(生有)로서, 이를테면 온갖 취(趣)에서 결생(結生)하는 찰나를 말한다. 세 번째는 본유(本有)로서, 태어나는 찰나를 제외하고서 그 이후부터 죽기 이전의 단계이다. 네 번째는 사유(死有)로서, 이를테면 [현세의] 최후찰나를 말한다.”
58)
아래 세 정려에는 사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제3정려의 행사(行捨)는 사수의 ‘사’가 아니라 행온에 포섭되는 ‘사(捨)’ 심소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결코 죽는 일이 없다. 이러한 이유가 아니라 할지라도 선정에서는 결코 사유(死有)가 존재하지 않는다.
59)
즉 예컨대 몸은 욕계에 있으면서 상계의 선정에 들 경우 정심은 소의신과 계지(界地)가 다르기 때문에 죽거나 태어나는 일이 없다는 뜻.
60)
무상정이나 멸진정과 같은 무심정(無心定)은 말 그대로 심ㆍ심소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출정심은 입정심(入定心)을 등무간연으로 하여 일어난다. 즉 입정심은 반드시 출정심을 인기하는 연으로서의 공능을 갖기 때문에 이 사이에 명종하는 일이 없다. 참고로 경주 세친은 입정심의 등무간연을 부정하고 색심호훈설을 주장하였다.
61)
이상 생유와 사유는 산심(散心)의 상태에서 일어날 뿐 선정심이나 무심의 상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분별하였다.
62)
즉 열반에 들 때는 번뇌가 없기 때문에 염심이 없으며, 선심과 공교(工巧)ㆍ통과(通果)의 무기심은 강성하여 마음의 멸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선심에는 반드시 이숙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열반은 오로지 위의로(威儀路)와 이숙생(異熟生)의 두 가지 무기심에서만 가능하다.
63)
“목숨을 마치는 단계에서 의식은 어떠한 신체부위에서 최후로 소멸하는 것인가?”(『구사론』 제10권, 고려장27,p.532하; 대정장29,p.56중; 권오민 역,p.498) 여기서 의식이 최후로 소멸하는 곳이란 최후까지 온기가 있어 활동하는 부위를 말한다.
64)
말마(末摩,marma, 또는 死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급소로서, 지극히 작은 부위이나 몸 가운데 백여 곳이 있다고 한다.
65)
차주(次註) 참조.
66)
의방명(醫方明) 즉 고대인도의 의학에서는 심장 위의 담분(痰分), 심장 아래로부터 배꼽 이상의 열분(熱分), 배꼽 아래의 풍분(風分) 등 신체에는 세 부분이 있으며, 그것이 병드는 것을 내적 삼재(三災)라고 하였다. 즉 네 번째 재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계(地界)는 말마를 끊지 않는다는 것이다.
67)
화ㆍ수ㆍ풍의 세 가지 재앙[大三災]은 외계 물질적 세계를 파괴하지만 지계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적인 신체상의 재앙도 이에 따른다는 뜻. 기세간의 3재에 대해서는 본론 제17권에서 상론함.
68)
“‘정(定)’이란 이를테면 성자를 말한다. 성자란 이미 무루의 도가 생겨난 이로서, 온갖 악법을 멀리하였기 때문에 성자라고 이름한 것이다. 곧 물러남이 없는 필경(畢竟)의 이계(離繫)의 득(得)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결정코 번뇌를 다하였기 때문에 ‘정정(正定)’이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구사론』 제10권, 고려장27,p.533상; 대정장29,p.56하; 권오민 역,p.501) 따라서 순해탈분(順解脫分)을 획득한 현자는 사정취(邪定聚)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또한 열반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성정취가 아니다.
69)
“이를테면 온갖 지옥과 아귀와 방생, 이것을 일컬어 ‘사성’이라 한다. 그리고 ‘정(定)’이란 이를테면 5무간업(無間業)을 말하니, 무간업을 지은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에 ‘사정(邪定)’이라고 이름한 것이다.”(『구사론』, 앞의 책) 여기서 5무간업이란, 어미ㆍ아비ㆍ아라한을 해치는 것, 화합된 승가를 파괴하는 것, 악심으로써 불신(佛身)에서 피가 나게 하는 것.(본론 제23권 ‘업ㆍ번뇌ㆍ이숙의 3障’을 참조할 것) 다섯 가지 부정견이란 유신견ㆍ변집견ㆍ계금취견ㆍ사견ㆍ견취의 5견을 말함.(본론 제25권에서 상론함)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6권
1)
여기서 ‘낙차’(lakṣa)란 원래 10의 5승, 즉 십만을 의미하나 이하 ‘억’이라는 수와 교차되어 쓰이고 있다. 본론 제17권 주32) 참조.
2)
『구사론』 제11권(고려장27,p.533하; 대정장29,p.57상;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 p.503)에서는 ‘100구지(俱胝,koṭi)의 4대주(大洲)의 세계’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즉 일체의 기세간으로 언급하고 있다. ‘구지’는 10의 7승, 낙차의 백 배로서 100억.(본론 제17권 주32 참조)
3)
유정들이 사는 기세간(器世間)은 각각 20중겁의 괴겁(壞劫)과 공겁(空劫)을 거친 다음 온갖 유정들의 공업(共業)에 의해 다시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세간의 괴멸과 생성, 그리고 화(火)ㆍ수(水)ㆍ풍재(風災)의 세 가지 재앙에 대해서는 본론 제17권 ‘성ㆍ주ㆍ괴ㆍ공의 4겁’과 ‘대삼재(大三災)’에서 상론한다.
4)
대낙건나(mahā-nagna,구역에서는 大諾那力人)는 큰 힘을 가진 인취(人趣) 중의 한 신.
5)
유선나(yojana,구역에서는 由旬)는 거리의 단위.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설이 있으나 보통은 유행자(혹은 제왕)가 하루에 가는 거리정도로서, 마을에서 유행자들이 머무는 숲까지의 거리인 1구로사(俱盧舍)의 8배. ‘길이(色)의 단위’에 대해서는 본론 제17권을 참조할 것.
6)
물은 응당 사방으로 퍼져 흩어지는데, 수륜은 어찌하여 옆으로 흘러 흩어지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답.
7)
숙장(pakvaśaya)이란 소화기의 상부인 生藏(amāśaya)의 반대로서, 하복부 즉 장(腸)을 말한다.
8)
9산(山)의 원어와 본론 장행에서 서로 교차되면서 쓰이고 있는 음역 혹은 의역어는 다음과 같다. ① 소미로(蘇迷盧, Sumeru, 妙高山). ② 유건달라(踰健達羅, Yugaṁdhara, 持雙山). ③ 이사타라(伊沙馱羅, ĪṢādhara, 持軸山). ④ 걸지낙가(朅地洛迦, Khadiraka, 檐木山). ⑤ 소달려사나(蘇達黎舍那, Sudarśana, 善見山). ⑥ 알습박갈나(頞濕縛羯拏, Aśvakarna, 馬耳山). ⑦ 비나달가(毘那怛迦, Vinataka, 象耳 또는 有障礙山). ⑧ 니민달라(尼民達羅, Nimindhara, 持山 또는 魚名山). ⑨ 철륜위(鐵輪圍, Cakravāḍa).
9)
묘고산 즉 소미로(蘇迷盧,혹은 須彌山Sumeru)은 산 중에 가장 큰 것이기 때문에 산 중의 왕 즉 산왕이다.
10)
따라서 묘고산왕은 밑의 금륜으로부터 위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총 16만 유선나가 된다.
11)
두 번째 내산인 지축산이 물위로 나와 있는 부분은 2만유선나이고, 첨목산은 1만, 선견산은 5천, 마이산은 2천5백, 상이산은 천2백5십, 그리고 지산은 6백25유선나이다.
12)
『구사론본송』(고려장27,p.534중; 대정장29,p.57하; 권오민 역,p.508)과 『순정리론』 제31권에는 ‘[3낙차(억) 2만] 2천 유선나이다(二千踰繕那)’로 되어 있다. 제8해를 둘러싸고 있는 안쪽의 니민다라산은 정방형이고, 바깥쪽의 철륜위산은 원형이기 때문에 가장 길고 가장 짧은 곳의 폭의 양이 일정하지 않은데, 본론 장행에서는 3억 2만 3천2백87유선나 반으로 논의하고 있다.
13)
즉 묘고산의 너비 8만에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첫 번째 바다의 양쪽 너비 각 8만이 더해진 것으로, 이는 바로 첫 번째 바다와 접하고 있는 지쌍산의 안쪽 길이에 해당한다.
14)
둘레는 너비의 네 배로서, 이를테면 제1해의 경우 묘고산과 접한 안쪽은 8만×4유선나이며, 지쌍산과 접한 바깥쪽은 (8만+8만+8만)×4유선나이다. 제2해의 경우 지쌍산과 접한 안쪽은 (24만+4만+4만)×4 유선나(여기서 4는 지쌍산의 너비)이며, 지축산과 접한 바깥쪽은 (32만+4만+4만)×4 유선나(여기서 4는 제2해의 너비)이다. 제3해의 경우 지축산과 접한 안쪽은 (40만+2만+2만)×4 유선나이며, 첨목산과 접한 바깥쪽은 (42만+2만+2만)×4 유선나로서, 계속하여 산과 바다의 너비가 반감된다.
15)
『구사론본송』(고려장27,p.534하; 대정장29,p.57하; 권오민 역,p.510)과 『순정리론』 제31권에는 ‘그 상은 둥글어 이지러짐이 없고[其相圓無缺]’로 되어 있다. 즉 ‘둥글다’는 말은 바로 ‘이지러짐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개작하게 된 것이다.
16)
『구사론본송』(같은 책)과 『순정리론』에는 ‘북쪽 구로주(俱盧洲)는 주사위와 같아(北俱盧畟方)’로 되어 있다. 즉 ‘주사위와 같다’는 말과 ‘4면이 동등하다’는 말은 동일한 의미이기 때문에 개작하게 된 것이다.(『순정리론』 제31권 참조)
17)
금강유정(vajropama-samadhi)은 금강에 비유되는 선정으로, 보살은 여기서 34찰나[念]에 걸쳐 견도의 번뇌와 무색계 유정지(有頂地) 제9품(하하품)의 번뇌를 끊고 불과(佛果)를 획득한다.
18)
이 네 강은 각기 동ㆍ남ㆍ북ㆍ서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구역에서는 긍하(恆河)ㆍ신두(辛頭)ㆍ사다(私多)ㆍ박수(薄搜)로 번역하고 있다.
19)
이는 『구사론』 (고려장27,p.535중; 대정장29,p.58중; 권오민 역,p.514)의 정설이다. “여기에서는 괴로움을 받는 것이 쉴 사이[間]가 없으니, 항상 괴로움을 받는 것은 아닌 다른 일곱 곳의 대나락가와 같지 않기 때문에 ‘무간’이라 이름한 것이다.”
20)
여기서 증(增,utsada,구역에서는 ‘園’)이라 함은, 본래의 날락가에서 받는 괴로움 이외 별도의 괴로움을 더 받는 곳을 말한다. 혹은 괴로움을 주는 도구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혹은 본래의 지옥에서 이미 그에 상응하는 괴로움을 받았으면서 다시 거듭하여 이 같은 괴로움을 당하기 때문에 ‘증’이라고 이름하였다.(후술) 말하자면 그곳은 해당 지옥에 딸린 정원과도 같은 곳으로, 각 날락가의 4면에는 각기 네 종류의 ‘증’이 딸려 있다. 그럴 경우 모두 128증이 있다고 해야 하겠지만 이것들은 모두 각기 다른 이름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지옥의 그것만을 일컬어 16증이라 하였다.
21)
『잡아함경』 제47권 제1244경(대정장2,p.341상); 『증일아함경』 제36권(동p.747하) 참조.
22)
낭구타(혹은 攘鳩多,nyatkuṭa). 날카로운 입을 가진 벌레로서, 침구충(針口蟲)이라고도 함.
23)
알부타(頞部陀, Arbuda, 皰로 번역됨)는 몸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지옥. 니랄부타(尼刺部陀, Nirarbuda, 皰裂로 번역됨)는 물집이 터질 정도로 추운 지옥. 알찰타(頞哳陀, Aṭaṭa, 구역은 阿吒吒)ㆍ확확바(臛臛婆, Hahava, 구역은 阿波波)ㆍ호호바(呼呼婆, Huhuva, 구역은 漚睺睺)의 세 지옥은 추위의 고통을 참기 어려울 때 내는 소리에서 유래한 명칭임. 올발라(嗢鉢羅,Utpala, 靑蓮華로 번역됨)는 혹독한 추위로 인해 몸이 퍼렇게 어혈지고 살이 얼어 터져 마치 푸른 연꽃과 같이 되는 지옥. 발특마(鉢特摩, Padma, 紅蓮華로 번역됨)는 살이 벌겋게 된 채 부르터 마치 붉은 연꽃과 같이 되는 지옥. 마하발특마(摩訶鉢特摩, Mahāpadma, 大紅蓮華로 번역됨)는 추위로 살이 터지는 것이 대홍련화처럼 되는 지옥.
24)
즉 알부타와 니랄부타는 추위에 의한 몸의 상태에 따른 명칭이고, 알찰타ㆍ확확바ㆍ호호바는 추위에 떠는 소리에 근거한 명칭이며, 올발라ㆍ발특마ㆍ마하발특마는 부스럼에 근거한 명칭이다.(후술) 참고로 『구사론』 (고려장27,p.536중; 대정장29,p.59상; 권오민 역, p.520)에서는 몸과 소리의 상태에 따른 명칭으로만 분별하고 있다.
25)
이는 8열지옥과 8한지옥이 남섬부주 아래 존재한다면 이 주(洲)의 너비는 얼마 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아래 모든 지옥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명이다.
26)
고(孤,prādeśika)지옥(『바사』에서는 獨지옥). 16대지옥은 남섬부주 아래에만 있고 다른 3주에는 없는데, 그것은 오로지 이 주의 사람들만이 선업과 악업을 맹리(猛利)하게 짓기 때문에다. 그러나 고지옥은 4대주에 어디에도 존재한다.(『대비바사론』 제172권, 한글대장경124,p.504)
27)
무간 등의 지옥은 그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기 때문에 굳이 옥졸이 지킬 필요가 없다.
28)
염마왕(Yamarāja,즉 염라대왕)은 원래 『리그베다』에서 사자(死者)가 가는 저승의 주(主)였지만 점차 그 지위가 변하여 본론에 이르러서는 아귀세계의 주가 되었다. 아귀에 대해서는 후술함.
29)
지옥의 옥졸은 유정인가, 무정물(괴로움을 낳게 하는 도구)인가? 유정이라면 그는 어떻게 지옥의 옥졸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불은 어떤 까닭에서 그를 태우지는 않는 것이며, 그들이 지옥에서 지은 악업의 이숙과는 어디서 받을 것인가? 또한 무정물이라면 어떻게 저절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설이 있다. 소승 제파 중 대중부와 정량부는 지옥의 옥졸을 유정이라 설하지만, 유부에서는 다만 악업에 의해 초래된 증상의 대종일 뿐이라고 하였다.(『유식이십론술기』상, 대정장43,p.986상) 그리고 그것은 마치 성겁(成劫) 시의 바람처럼 유정의 업력에 의해 움직인다. 즉 염마왕에 의해 유정을 지옥에 던지는 나찰사(邏刹娑, rākṣasa, 염마의 옥졸)은 유정이지만, 지옥 중에서 실제 유정을 해코지하는 것은 무정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구사론』 제11권(권오민 역,p.518~519)을 참조할 것.
30)
불타는 입의 아귀[炬口鬼]는 항상 입에서 불을 토하는 아귀로, 지극히 인색한 자의 과보이다. 바늘 입의 아귀[針口鬼]는 배는 산의 계곡만 하지만 입이 바늘구멍 만하다. 냄새나는 입의 아귀[臭口鬼]는 항상 입에서 악취가 나 음식을 보더라도 먹을 수 없다.
31)
침으로 된 털의 아귀[針毛鬼]는 날카로운 침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남을 찔러 항상 광란하여 달리며, 냄새나는 털의 아귀[臭毛鬼]는 지독한 냄새로 몸을 후려치고 털을 쥐어뜯어 피부가 상하고 째지는 등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목에 혹이 난 아귀[癭鬼]는 악업의 힘에 의해 목구멍에 큰 혹이 나있어 고통에 시달리는데, 이 세 가지 아귀는 때로 부정한 것(이를테면 자신과 타인에게서 나오는 농혈)을 만나 기갈을 면한다.
32)
희사의 아귀는 항시 제사에 가 제물을 향수하며, 희기의 아귀는 남이 버리거나 토한 것을 먹으며, 대세의 아귀는 약차(藥叉)나 나찰(羅刹)과 같은 것으로, 그의 부귀는 마치 천(天)과도 같다. 이상의 아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순정리론』 제31권을 참고할 것.
33)
『구사론』 (고려장27,p.536하; 대정장29,p.59상; 권오민 역,p.523)에서는 1구로사. 구로사(krośa)는 길이의 단위로서 500길. 또는 8분의 1유선나. 본론 제17권에서 상론한다.
34)
이때 남섬부주는 일출(日出)이자 월몰(月沒)이고, 북구로주는 일몰이자 월출임.
35)
인도에서는 1년을 더운 계절[熱際, grīṣma]ㆍ비오는 계절[雨際, varṣa]ㆍ추운 계절[寒際, hemanta 혹은 śiśira]로 나누고, 각 계절을 다시 네 달로 나누어 12달로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국토가 넓고 기후상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세 계절에 12달을 배치하는 방법에는 이설이 많은데, 『구사론기』 제11권에서 진제(眞諦)가 전하였다고 일컬어지는 설과 『서역기』 제2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안의 오른쪽의 명칭은 『대비바사론』 (제136권, 한글대장경123,p.235~236)의 역어임.
36)
납박(臘縛,lava)은 시간의 단위로서, 1모호율다(牟呼栗多)의 30분의 1. 30모호율다가 하루 낮 밤임. 즉 오늘의 시간으로 1.6분 정도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17권 ‘시간의 단위’를 참조 바람.
37)
구역에서는 『분별세경(分別世經)』으로 전한다.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 제10권(대정장1,p.416중) 참조.
38)
사대천왕에게 소속된[所部] 천중이란 다문천(多聞天)ㆍ지국천(持國天)ㆍ증장천(增長天)ㆍ광목천(廣目天) 등의 천중을 말함.
39)
여기서 공중에 사는 천[空居天]이란 욕계의 야마ㆍ도솔ㆍ낙변화ㆍ타화자재 등의 4천과 색계 16천을 말하며, 땅에 사는 천[地居天]이란 욕계 6천 중의 사대천왕과 삼십삼천을 말한다.(후설)
40)
견수 등의 3천은 모두 약차신(藥叉神,yakāa)으로서 사대천왕의 권속들이다. 그리고 사대천왕과 그 권속인 이상의 온갖 천들을 합하여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이라고 한다.
41)
후술하듯이 삼십삼천(trāyastriṃśā devāḥ, 혹은 忉利天)은 수미산 정상에 위치하는 천으로, 중앙에 제석천이 있고, 정상 사방에 각기 8천이 있어 도합 33천이 된 것이다.
42)
『구사론』 제11권(고려장27,p.537중; 대정장29,p.59하; 권오민 역,p.528)에서는 반대로 이 유여사(有餘師)의 설을 정설로, 앞의 논설을 유여사의 설로 전하고 있다.
43)
『대비바사론』 제133권(한글대장경123,p.186)에 의하면, 반월(半月)의 8일과 14일과 15일.
44)
묘고산의 네 층급과 꼭대기에 사는 사대왕중천과 삼십삼천(이는 地居天임)을 제외한 욕계의 야마ㆍ도사다ㆍ낙변화ㆍ타화자재천과 색계 16천은 허공에 의지하는 궁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공거천(空居天)이다. 색계 16천에 대해서는 본론 제12 권 ‘색계’에서 상론하였다.
45)
즉 앞서 언급한 여러 다른 형태의 섹스는 『시설론』에서 설한 내용으로, 이는 다만 그것이 성취되는 시간을 나타내는 것일 뿐 욕계 6천은 인간과 다름없이 신체상으로 교합하여 음애를 성취한다는 뜻. 『구사론』 (제11권, 고려장27,p.538상; 대정장29,p.60중; 권오민 역,p.533)에 의하면, 이는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정설로서, 여기서 『시설론』은 『세시설론(世施設論)』.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비바사론』 제113권(한글대장경122,p.292~293)을 참조할 것.
46)
원문은 ‘貪心轉重(탐심이 일어나는 것이 무거우며)’이나 『구사론』 (제11권, 고려장27,p.538중)에 따라 ‘중(重)’을 ‘첩(捷)’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47)
앞서 지옥ㆍ아귀ㆍ방생도 겁초에는 성언과 동일한 말을 사용하였지만, 그 후 처소에 따라 여러 가지 말로 어긋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48)
욕생이란 묘욕(妙欲)의 경계를 수용하는데 자재한 욕계 인(人) 천(天)을 말하며, 낙생이란 즐거움의 이숙(異熟)만 존재할 뿐 괴로움의 이숙이 없는 색계의 아래 세 정려천을 말한다.
49)
여기서 ‘생겨난 것’이란 숙업력에 의해 태어나면서부터 생겨난 욕계의 경계, 즉 과거업의 이숙과인 현재의 욕계의 경계를 말한다.
50)
즉 첫 번째는 초정려천인 범중ㆍ범보ㆍ대범천의 이생(離生) 희락이고, 두 번째는 제2정려 천인 소광ㆍ무량광ㆍ극광정천의 정생(定生) 희락이며, 세 번째는 제3정려 천인 소정ㆍ무량정ㆍ변정천의 이희(離喜) 묘락이다. 참고로 유부에 의하면 대범천은 독립된 천처가 아니지만(본론 제12권 참조), 희락이 현행하는 일이 있어 낙생천(樂生天)이라 말해도 무방하다.(『순정리론』 제31권 참조)
51)
제2정려 이하는 화재(火災), 제3정려 이하는 수재(水災), 제4정려 이하는 풍재(風災)가 미치는데, 그것은 각 정려의 내적 재앙인 심(尋)ㆍ사(伺), 희수(喜受), 동식(動息)과 동등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17권 ‘대삼재’를 참조할 것.
52)
초정려의 3천은 신체는 서로 다르지만(대범천의 신체와 범중천의 신체는 大小勝劣의 차이가 있음) 생각이 동일하며(양자 모두 범중은 대범천의 화생으로 생각함), 제2정려의 3천은 신체는 동일하지만 생각이 서로 다르며, 제3정려의 3천은 신체와 생각이 동일하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12권 ‘7식주’를 참조할 것.
53)
욕계 제1천인 사대왕중천에서 대해까지의 거리는 4만 유선나이고, 그것으로부터 삼십삼천까지의 거리 역시 4만 유선나이기 때문에, 삼십삼천에서 대해까지의 거리는 8만 유선나이고, 그것으로부터 야마천까지의 거리 역시 8만 유선나이다. 또한 야마천에서 대해까지는 16만 유선나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도사다천까지의 거리 역시 16만 유선나이다. 그렇다고 할 때 색계 제16천인 선견천에서 대해와 색구경천까지의 거리는 각기 838억 8천 6백 8만 유선나이며, 색구경천에서 대해까지의 거리는 1,677억 7천2백16만 유선나이다. 그리고 이 위로는 더 이상 [유색의 천중이] 머무는 곳이 없으며, 이곳이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에 ‘색구경(色究竟Akaniṣṭha)’이라 이름한 것이다.
54)
장애[礙]란 색의 공간적 점유성을 말하는 것으로, 색계 최고천인 색구경천은 그러한 장애성을 다하였기[究竟] 때문에, 또한 어떠한 장애도 갖지 않아야만 그곳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애구경천(礙究竟天,Aghaniṣṭha)’이라고도 한다.(『구사론』 제11권, 고려장27,p.538하; 대정장29,p.60하; 권오민 역,p.536 참조)
55)
하천(下天)의 상승에는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스스로 신통력을 얻어 가는 것이며, 둘째는 신통력을 얻은 이에 인도되어 가는 것이며, 셋째는 상천(上天)에 인도되어 가는 것이다.
아비달마장현종론 제17권
1)
주(肘)란 팔목의 길이 정도인 1척(尺) 6촌(寸, 오늘날의 길이로서 48.48cm정도). 따라서 3주 반은 5.6척이며, 170cm정도임. 길이의 단위에 대해서는 후술함.
2)
구로사(俱盧舍, krośa)는 8분의 1유선나로서, 8자 혹은 10자인 1궁(弓)의 5백 배. 또는 마을에서 유행자들이 머무는 숲까지의 거리. 혹은 일설에 의하면 소 우는 소리나 북소리가 들리는 최대한의 거리로, 5리 정도.
3)
색계 제2정려의 소광천부터 두 배씩 증가하여, 무량광천은 4, 극광정천은 8, 소정천은 16, 무량정천은 32, 변정천은 64, 이렇게 증가하여 무운천의 신장은 128유선나가 되지만, 실제로는 여기서 3을 뺀 125유선나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은데, 혹자는 무운천은 변이지(變異地)인 제3정려를 떠나 부동지(不動地)에 생겨난 첫 상태로서, 그 수업(修業)의 노고 때문에 3유선나가 감소되었다고 하며, 혹은 색구경천의 신장을 1만 6천 유선나로 맞추기 위해 무운천에 3유선나를 감소시켰다고 하며(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계산이 복잡해져 색구경천의 신장은 16,384유선나가 됨), 혹은 법이(法爾) 즉 본래 그러한 것이라고 하였다.
4)
겁초(劫初, 한 세계가 시작하는 성겁 시) 이후에는 증감이 있어 어떤 경우 많아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 적어지기도 하는데, 최소 10세로부터 8만 세에 이르기까지 18번의 증감이 있다.(본 권 ‘住劫’참조)
5)
30일이 한 달이고, 12달이 일 년이므로 그들의 일 년은 인간세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만 8천 년이 되고, 그들의 수명은 9백만 년이 된다.
6)
이를 인간세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삼십삼천은 3천 6백만 년, 야마천은 1억 4천 4백만 년, 도사다천은 5억 7천 6백만 년, 낙변화천은 11억 5천 2백만 년, 타화자재천은 92억 천6백만 년이 된다.
7)
겁(劫,kalpa)에는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의 4겁이 있다. 세계가 일단 성립하게 되면 그 최초(즉 住의 劫初)의 유정의 수명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나 점차 감소하여 8만 세에 이르게 되는데, 이 사이를 1중겁이라고 한다. 그리고 8만 세에서 10세에 이르는 증감을 19번 거친 다음 괴겁으로 들어간다. 즉 주겁은 20중겁이며, 성(成)ㆍ괴ㆍ공의 세 겁도 역시 그러한데, 이러한 4겁(총 80중겁)을 합하여 1대겁이라고 한다.(후술)
8)
범보천과 대범천의 신장이 1유선나와 1유선나의 반이기 때문에 그들의 수명은 1겁과 1겁 반이다. 그런데 욕계천이나 범세 즉 색계 제1정려천은 괴겁 시 극광정천에 태어나기 때문에 공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수명이 1겁과 1.5겁이라고 할 때, 그것은 대겁의 반인 40겁을 겁의 단위로 삼았다는 뜻이다.
9)
참고로 사대왕중천의 하루 밤낮은 인간세계의 50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흑승ㆍ중합ㆍ호규ㆍ대규 지옥은 각기 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사다천ㆍ낙변화천의 수명인 천ㆍ2천ㆍ4천ㆍ8천 년을 하루 밤낮으로 삼으며, 그러한 하루로 계산된 천ㆍ2천ㆍ4천ㆍ8천 년의 수명을 갖는다.
10)
8대용왕(nāga-rāja)이란 불법을 옹호하는 선신(善神)으로서, 난타(難陀,Nanda)ㆍ발난타(跋難陀,Upananda)ㆍ사가라(娑伽羅,Sāgara)ㆍ화수길(和修吉,Vāsuki)ㆍ덕차가(德叉迦,Takṣaka)ㆍ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Anvataptā)ㆍ마나사(摩那斯,Manasvīn)ㆍ우발라(優盋羅,Utpalaka). 이는 보광(普光)이 『법화경』에 나온 것을 인용한 것이고, 칭우(稱友)는 이와는 약간 다르게 전한다. NandaㆍUpanandaㆍAśvataraㆍMucilindaㆍManasvinㆍDhṛta-rāṣṭraㆍMahākālaㆍElapattra.
11)
『잡아함경』 제48권, 제1278경(대정장2,p.351하). 가려(佉黎,khāri)와 마바하(麻婆訶,tila vaha)는 모두 용량의 단위로서, 위의 경에 따르면, 코살라국의 4두(斗)가 1아라(阿羅)이며, 4아라가 1독롱나(獨籠那)이며, 16독롱나가 1사마나(闍摩那)이며, 16사마나가 1마니(摩尼)이며, 20마니가 1가리(佉梨)이며, 20가리가 1창(蒼)이다. 따라서 용어상으로만 볼 때 마바하는 ‘창’으로, 1가려가 5만 천9백 20두이기 때문에, 그것은 백3만 8천4백 두가 된다.
12)
이를테면 최후유(最後有,즉 최후신의 보살)와, 부처의 수기를 받은 자와, 부처의 사자와,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과, 보살과 전륜왕의 어머니로서 그들을 잉태하고 있을 때, 이러한 유정들은 해야 할 일을 아직 다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요절하는 일이 없으며, 아울러 무상ㆍ멸진정이나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선정에 든 자도 중간에 요절하지 않는다.(『순정리론』 제31권)
13)
극미(極微,parmāṇu)는 더 이상 쪼갤 수가 없는 물질[色,rūpa]의 최소단위이고, 자(字,akṣara)는 말[名,nāma]의 최소단위로서 음소[文]의 자성(이에 대해서는 본론 제8권 ‘名ㆍ句ㆍ文 3身’에서 이미 논설하였다)이며, 찰나(刹那,kṣaṇa)는 시간[世路,adhvan]의 최소 단위이다.
14)
“비바사사(毘婆沙師)에 의하면 찰나의 양은 가히 비유로써만 나타낼 수 있다. ― 이를테면 장사가 손가락을 한번 튕길 때 미세하게 65찰나가 경과하는 것과 같다.”(『순정리론』 제32권) 혹은 『대비바사론』 (제136권, 대정장27,p.701중하)에서는, 두 명의 장부가 카시 산(産) 비단의 올을 잡아당겨 끊어지는 순간, 혹은 백 번이나 단련된 중국(支那) 산 칼로 비단의 올을 끊는 순간 64찰나가 소요된다는 설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후술하는 ‘시간의 단위’에 의할 것 같으면, 일 찰나는 0.01333초 정도이다.
15)
7극미(paramāṅu)가 1미(aṅu). 7미가 1금진(loha-rajas). 7금진이 1수진(ab-rajas). 7수진이 1토모진(śaśa-rajas). 7토모진이 1양모진(avi-rajas). 7양모진이 1우모진(go-rajas). 7우모진이 1극유진(chidra-rajas). 7극유진이 1기(likṣā). 7기가 1슬(yūka). 7슬이 1광맥(yava). 7광맥이 1지절(aṅguli-parvan). 3지절이 1지(aṅgula). 참고로 극유진을 구역에서는 극광중진(隙光中塵)이라 하는데, 문틈으로 비친 광선에 흩날리는 먼지만 한 크기를 말한다.
16)
심(尋,vyāma)이란 여덟 자 혹은 열 자의 한 길을 의미하는 단위로서, 부처님의 32상 중의 15번째인 ‘몸에서는 항상 광명이 한 길이나 솟고 있다’(常光一尋,vyāma-prabha)에서의 ‘한 길(尋)’이다.
17)
24지는 1주(肘,hasta). 4주는 1궁(弓,dhanus). 5백 궁은 1구로사(俱盧舍,krośa). 8구로사는 1유선나(yojana).
18)
이를테면 『잡아함경』 제2권 제55경(대정장1,p.96중하), “若所有諸色, 若過去, 若未來, 若現在, 若內, 若外, 若麤, 若細, 若好, 若醜, 若遠, 若近, 彼一切總說色陰”
19)
이미 관념[覺慧]에 의해 가설적인 것으로 판단된 극소의 극미는, 이미 최극소의 시간으로 설정된 찰나처럼 더 이상 분할 불가능한 관념적 소산[覺慧所知]이기 때문에 또 다른 관념으로 분석될 수 없다. “유대색(有對色)을 최후까지 세분하여 더 이상 쪼갤 수가 없는 것을 일컬어 극미(極微)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러한 극미는 더 이상 또 다른 색이라는 관념[覺慧,buddhi]으로써 분석되어 다수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이를 설하여 색의 극소(極小)라고 한다. 즉 더 이상 부분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극소’라는 명칭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시간의 극소로 일컬어지는 일 찰나를 더 이상 반(1/2) 찰나로 나눌 수 없는 것과 같다.”(본론 제5권 ‘색법의 구생관계’)
20)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본론 제16권(‘밤과 낮의 길이의 변화’)을 참조 바람.
21)
보통의 한 달은 30일이지만(이를 大月이라 함), 일 년 중의 6개월은 하루 밤[낮]을 뺀 29일(이를 小月이라고 함)로 한 달을 삼고, 5년에 한 번 윤달을 설정하여 계절과 년시를 조절한다는 뜻. 이유는 뒤에 설하지만 자세하지 않다. 『구사론기』 제12권에 의하면, 이에 대해 상세히 설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이러한 역수(曆數)에 탐닉하여 사명(邪命)에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22)
괴겁(壞劫,saṃvarta-kalpa)이란 세계가 허물어지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먼저 유정세간이 허물어지고 난 다음 기세간이 허물어진다. 그리고 유정세간의 괴멸은 먼저 하계(下界) 하처(下處)로부터 시작하여 상계 상처에 이르기 때문에, 최하처인 지옥의 유정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 때를 괴겁의 시작이라고 한 것이다.(후술)
23)
이때는 바로 주겁(住劫)의 제20중겁으로, 후술함.
24)
즉 세간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의 지옥이 파괴될 경우, 더 이상 허물어지는 지옥에는 태어나지 않고 아직 파괴되지 않은 다른 세계의 지옥에 태어난다는 뜻.
25)
유정세간 중에서 지옥이 먼저 괴멸하고 아귀ㆍ방생 또한 인간에 앞서 괴멸한다고 할 경우, 인간과 함께 사는 벌레나 소도 역시 그렇다고 해야 한다. 이는 곧,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소(牛)없이 어떻게 경작하고 우유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난문에 대한 해명이다. 즉 인간과는 떨어져 자신만의 본처를 갖는 방생이 먼저 괴멸하고, 인간과 함께 사는 것(혹은 인간에게 이익 되는 것)은 인간과 함께 괴멸한다는 뜻으로,『구사론』 (제12권, 고려장27,p.541중; 대정장29,p.62하; 권오민 역,p.555)에서의 정설이다.
26)
여기서 ‘이때’는 괴겁의 20중겁 가운데 앞의 19겁 동안 일체의 유정이 허물어지고 난 때를 말한다.
27)
유정세간과 기세간의 성립은 괴멸할 때의 역순으로 이루어진다. 즉 유정이 먼저 괴멸하고 나서 기세간이 괴멸하였으므로 성립은 기세간이 먼저 성립한 후 유정세간이 성립하며, 기세간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멸한 제1정려의 범궁에서 시작하여 공거천의 첫째인 야마천이 생겨난 후에 지거천 내지 3륜이 생겨나는 것이다. 즉 죄업과 복업에 따라 괴겁 시에 유정은 아래서 위로 모이게 되지만, 성겁 시에 유정은 위에서 아래로 흩어진다.(후술)
28)
『광기』에 의하면, 수명이 점차 감해지는 때를 주겁(住劫)이라 하고, 아직 감해지지 않는 때를 성겁(成劫)이라고 한다. 즉 주겁의 기간 동안 기세간에는 변동이 없지만 인간의 수명에는 증감이 있어 최초 무량이었던 것이 도병(刀兵,7일간)ㆍ질병(7개월 7일간)ㆍ기근(7년 7개월 7일간) 등으로 점차 줄어들어 10세에 이르고, 그 후 다시 증가하여 8만세에 이르고 10세로 감소하는데, 이렇듯 한 번 감소하고 한 번 증가하는 것을 1중겁이라 한다. 다만 주겁의 제1중겁은 무량에서 10세로의 감소만이 있고, 제20 중겁은 10세에서 8만 세로의 증가만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9중겁이다.(후술)
29)
앞에서 범중천의 신장은 0.5유선나, 수명은 이와 동일한 0.5겁, 그리고 이때 겁은 대겁의 반(40중겁)을 단위로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소광천 이상은 대겁을 단위로 하기 때문에 극광정천의 수명은 8대겁이다. 본 권 주8) 참조.
30)
유부에 의하는 한 시간은 그 자체 독립적인 실유의 법이 아니며, 다만 생멸 변천하는 유위제법에 근거하여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시간이란 유위의 다른 이름(世路,adhvan,세간의 시간≺世≻은 유위를 근거≺路≻로 하기 때문에 ‘세로’임)이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은 바로 5온성이다. 즉 5온을 떠나 시간 자체는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론 제1권 ‘유위법과 그 이명(異名)’ 참조.
31)
『증일아함경』 제16권(대정장2,p.630상), ‘如我於三阿僧祗劫所行勤苦, 成無上道.’ 즉 보살은 발심으로부터 3아승기야 대겁(혹은 阿僧祗劫,asaṁkhyeya-kalpa) 동안 무수한 부처에게 공양하며 지혜의 자량인 6바라밀(선정과 지혜는 최후신에서 이루어지므로 여기서는 대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바라밀)을 닦은 후 다시 100겁 동안 32상 80종호를 초래할 만한 복덕행을 닦은 후 비로소 최후신의 보살로서 왕궁에 하생하였다.
32)
여기서 ‘어떤 경’[有經]이란 『구사론』 (제12권, 고려장27,p.542중; 대정장29,p.63중; 권오민 역,p.559)에서는 『해탈경(解脫經)』. 참고로 『해탈경』의 원어는 Muktaka로, 이는 해탈이라는 의미 이외 ‘독립된’, ‘별도의’라는 뜻을 갖는다. 『구사석론』 (제9권)에서는 ‘여경(餘經)’이라 번역하고 있으며, 『바사』(제177권, 한글대장경125,p.47)에서는 다만 ‘계경’이라고만 하였다. 칭우에 따르면 이 말은 『해탈경』이란 말이 아니라 ‘4아함에 포함되지 않은 경’이라는 뜻이다. 즉 거기서 1아승기야는 10의 60승이다. 『구사론』에서는 망실된 여덟 가지의 명칭을 제외한 52가지의 십진급수를 전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일ㆍ십ㆍ백ㆍ천ㆍ만ㆍ낙차(洛叉,lakṣa)ㆍ도낙차(度洛叉,atilakṣa)ㆍ구지(俱脂,koṭi)ㆍ말타(末陀,madhya)ㆍ아유다(阿庾多,ayuta)ㆍ대(大,mahā)아유다ㆍ나유다(那庾多,nayuta)ㆍ대나유다ㆍ발라유다(鉢羅庾多,prayuta)ㆍ대발라유다ㆍ긍갈라(矜羯羅,kaṁkara)ㆍ대긍갈라ㆍ빈발라(頻跋羅,bimbara)ㆍ대빈발라ㆍ아추바(阿芻婆,akṣobhya)ㆍ대아추바ㆍ비바하(毘婆訶,vivāha)ㆍ대비바하ㆍ올층가(嗢蹭伽,utsaṅga)ㆍ대올층가ㆍ바할나(婆喝那,vāhana)ㆍ대바할나ㆍ지치바(地致婆,tiṭibha)ㆍ대지치바ㆍ혜도(醯都,hetu)ㆍ대혜도ㆍ갈랍바(羯臘婆,karabha)ㆍ대갈랍바ㆍ인달라(印達羅,indra)ㆍ대인달라ㆍ삼마발탐(三磨鉢耽,samāpta)ㆍ대삼마발탐ㆍ게저(揭底,gati)ㆍ대게저ㆍ염벌라사(拈筏羅闍,nimbarajas)ㆍ대염발라사ㆍ모달라(姥達羅,mudrā)ㆍ대모달라ㆍ발람(跋藍,bala)ㆍ대발람ㆍ산야(珊若,samjñā)ㆍ대산야ㆍ비보다(毘步多,vibhūta)ㆍ대비보다ㆍ발라참(跋羅攙,balakṣa)ㆍ대발라참ㆍ아승기야.
33)
예컨대 과거7불 중 비바시불(毘婆尸佛)은 인간의 수명이 8만 4천 세 때, 시기불(尸棄佛)과 비사부불(毘舍浮佛)은 7만 세 때, 구루손불(拘屢孫佛)은 6만 세 때,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은 4만 세 때, 가섭불(迦葉佛)은 2만 세 때 출현하였고, 당래 석가불은 백 세 때 출현하였다.
34)
『구사론』 제12권(고려장27,p.543중하; 대정장29,p.64상; 권오민 역,p.564). 즉 유정의 수명의 양이 감소하여 점차 종말(즉 괴겁)을 맞이하려고 할 때에는 대개 모든 방면에서 세간이 더럽고 부패하여 교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명이 지극히 짧아지고(壽濁), 도병(刀兵)ㆍ질역(疾疫)ㆍ기근(饑饉)의 3재가 일어나 시대가 흐려지고(劫濁), 번뇌와 사견이 치성하며(煩惱濁ㆍ見濁), 유정 또한 신체가 왜소하고 무기력해진다(有情濁).
35)
독각(獨覺,pratyeka buddha, 緣覺 또는 辟支佛)이란 다른 이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은 이를 말하는데, 다른 이의 가르침을 떠나 홀로 뛰어난 과보를 증득하였기 때문에 ‘독승’이라고도 함. 부행(部行,Vargacārī)이라 함은 성문으로서 제3과(불환과)까지를 얻고 그 후 스스로 뛰어난 제4과의 과보를 증득한 이를 말한다. 즉 여러 사람이 한곳에서 공동적으로 수행[衆類相共]하였기에 ‘부행’이라고 이름하였다. 이에 대해 인각유(麟角喩)란 기린의 뿔이 오직 하나인 것처럼 홀로 머물며 깨달음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인각유’라고 이름하였다.
36)
부행독각이란 이생으로서 일찍이 성문도를 닦다가 스스로 보리(菩提)를 증득한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보살로서 스스로 보살도(6바라밀)을 닦아 보리를 증득한 부처와는 구별된다는 뜻.
37)
원문은 ‘독출(獨出)’이지만, 『구사론』 (제12권, 고려장27,p.543하; 권오민 역,p.565)과 『순정리론』 제32권에 따라 ‘독거(獨居)’로 고쳐 번역하였다.
38)
그러나 부행독각은 시간의 정해진 한도가 없기 때문에 백 대겁보다 적은 시간동안 보리의 자량도를 닦을지라도 독각을 성취할 수 있다.
39)
철륜왕은 남섬부주만을 다스리는 왕이고, 동륜왕은 남섬부주와 동승신주를, 은륜왕은 여기에 서우화주를, 금륜왕은 4대주 전부를 다스리는 왕이다.
40)
『장아함경』 제18권 「전륜왕품」(대정장1,p.119하);『중아함경』 제15권 「전륜왕경」(동,p.521중); 『잡아함경』 제27권 제722경(동2,p.194상) 등에 전륜왕에 관한 기사가 전하고 있다.
41)
『중아함경』 제47권 『다계경(多界經)』(대정장1,p.723하~274상). 그러나 『다계경』에서는 반대로 설해지고 있다. “아난이여, 만약 세간에 두 명의 전륜왕이 존재하여 함께 다스린다면, 그러한 곳은 끝내 없을 것이지만, 만약 세간에 한 명의 전륜왕이 존재하여 다스린다면, 그러한 곳은 필시 있을 것이니, 아난이여, 만약 세간에 두 분의 여래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곳은 끝내 없을 것이지만, 만약 세간에 한 분의 여래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곳은 필시 있을 것이다.”
42)
이 논설은 다음에 논설되는 유여사 즉 대중부(혹은 경량부)의 다계다불설(多界多佛說)을 비판한 것으로, 유부에서는 두 부처가 출현할 경우 부처의 덕이 양분되어 원만하지 않게 되며, 시방의 세계를 모두 교화할 수 없기 때문에 시방(十方)의 삼천 대천에는 오로지 일시에 한분의 부처만이 출현한다[十方界一佛說]을 주장한다. 그러나 경량부에 따르면, 부처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무수한 세계의 중생은 때와 장소, 근기에 한량없는 차별이 있어 이들을 동시에 구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수의 세계에 다수의 부처가 출현한다. 참고로 본론 제16권(‘3계의 근본인 3륜’)에서 “시방세계에는 백 구지(俱胝,억)의 4대주의 세계가 있다”고 논설하였다.
43)
여기서 『범왕경』은 『중아함경』 제19권 『범천제불경(梵天諸佛經)』. 이는 바로 부처님께서는 오로지 이러한 삼천대천세계만을 교화할 수 있으며, 다른 삼천대천세계는 교화할 수 없음을 설한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는 한계[礙]가 있지 않느냐, 하는 힐난의 경증이다.
44)
『중아함경』 제11권 『칠보경』(대정장1,p.493상); 『증일아함경』 제33권(동2,p.731중); 『잡아함경』 제27권 제721경(동p.194상) 등을 참조. 여기서 7보는 바퀴 보배[輪寶]ㆍ코끼리 보배[象寶]ㆍ말 보배[馬寶]ㆍ구슬 보배[珠寶]ㆍ여인 보배[女寶]ㆍ주장신(主藏臣)의 보배ㆍ주병신(主兵臣)의 보배이다.(『구사론』 제12권, 권오민 역,p.572) 칭우에 의하면 주장신(主藏臣, grihapati,일반적으로 居士로 번역)은 창고(kośa)를 감독하는 자이며, 주병신(主兵臣,pariṇāyaka)은 군대(bala)를 감독하는 자이다.
45)
대사의 32상에 대해서는 『대비바사론』 제177권(한글대장경125,p.33~37)을 참조 바람.
46)
『장아함경』 제22권 『세본연경(世本緣經)』(대정장1,p.145상) 참조.
47)
지미(pṛthivīrasa)는, 보광(『구사론기』 제12권)에 의하면 땅속에서 생겨난 융석(融錫)과 같은 것.
48)
전주(田主, 守田者 즉 밭을 지키는 이. 구역에서는 差多羅莎未,kṣetra svāmin)의 원어 kṣetrapa가 찰제리의 원어 kṣatriyas와 동일한 어원 √kṣi(‘머물다’‘지배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간주하여 이같이 말한 것이다.
49)
대삼말다왕(大三末多王, Mahā saṃmata-rāja, 구역에서는 摩訶先摩多)의 삼말다(saṃmata)는 ‘존경하다’, ‘협동하여 세우다’는 뜻으로, ‘다 같이 존경하는 대왕’이라는 뜻.
50)
이상의 이유에서 여러 사람들이 협정하여 국왕을 세웠다는 국가기원의 설명방식은 홉즈(T.Hobbes)의 리바이어탄(Leviathan), 즉 개인의 자연권에 기초한 절대군주제 국가이론을 연상시킨다.
51)
여기서 ‘비법의 탐욕’이란 욕(欲) 사행(邪行)의 탐욕[邪婬欲]을 말하고, ‘불평등한 애착’이란 사기나 폭력에 의해 남의 물건을 취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는 것[偸盜欲]을 말하며, ‘삿된 법[邪法]이 얽히고설켰다’고 함은 어미도 없고 아비도 없다고 생각하는 등의 전도된 생각을 품는 것[顚倒想]을 말한다.
52)
이는 바로 근주율의(近住律儀). 즉 재가의 남녀가 하루 밤낮동안 불살생 등의 8재계를 지키는 것. 본론 제19권에서 상론함.
53)
이상의 지교(至敎)의 설로서, 『대비바사론』 제135권(한글대장경123,p.193)에서도 인용됨.
54)
여기서 ‘미세한 부분[細分]’이란, 『구사론』 (제12권, 고려장27,p.546하; 대정장29,p.66중; 권오민 역,p.580) 상에서는 극미(極微)로 언급되고 있는데, 거기서 이 물음은 극미상주론(極微常住論)을 주장하는 어떤 외도(즉 勝論,Vaiśeṣika)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즉 그들에 의하면 세계가 괴멸하더라도 극미는 남아있어야만 그것이 종자가 되어 다음 세계에 구체적인 물질[麤色]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55)
즉 성겁 시 온갖 물질적 현상들은 세간의 생성과 소멸에 관계없이 상주하는 극미를 종자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계의 괴겁 시의 바람을 연으로 하여 생겨난 하지의 바람을 종자로 삼는다는 뜻. 여기서 ‘꼭대기의 바람’이란 초ㆍ제2ㆍ제3정려에 각기 화재ㆍ수재ㆍ풍재가 일어날 때의 바람으로, 이때 꼭대기는 순서대로 제2ㆍ제3ㆍ제4정려이다.(후술)
56)
『구사론』 (고려장27,p.546하; 대정장29,p.66중; 권오민 역,p.580)상에서는 이것이 정설(正說)이고, 앞의 설이 별설(別說)이다.
57)
『장아함경』 제22권 「세본연품(世本緣品)」(대정장1,p.147하), “무슨 인연이 있어 세간에 다섯 종자가 있는 것인가? 대난풍(大亂風)이 불패(不敗)의 세계로부터 종자를 불어와 이 나라에서 나게 하였으니, 첫 번째는 뿌리종자[根子]이며, 두 번째는 줄기종자[莖子]이며, 세 번째는 마디종자[節子]이며, 네 번째는 허공종자[虛中子]이며, 다섯 번째는 종자의 종자[子子]이다.……”
58)
“화재는 제2정려를 꼭대기로 삼으니, 이 밑으로는 불에 태워지기 때문이다. 수재는 제3정려를 꼭대기로 삼으니, 이 밑으로는 물에 잠겨버리기 때문이다. 풍재는 제4정려를 꼭대기로 삼으니, 이 밑으로는 바람에 날려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재앙의 상지(上地)를 여기서 ‘꼭대기’라고 일컬은 것이다.”(『구사론』 제12권, 고려장27,p.547중; 대정장29,p.66하; 권오민 역,p.586)
59)
즉 화재(火災)는 극광정천 이하만을 모두 태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함.
60)
다시 말해 제4정려는 내적인 온갖 재앙, 이를테면 심(尋)ㆍ사(伺)ㆍ우(憂)ㆍ고(苦)ㆍ희(喜)ㆍ낙(樂)ㆍ출식(出息)ㆍ입식(入息)이라는 이른바 8동법(動法,혹은 災患)을 모두 떠났기 때문이다.
61)
이에 대해서는 본 권 초두의 ‘제 유정의 신장과 수명’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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