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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지>
(1) 희년법의 시장원리를 모르면(따르지 않으면), 25년 10.15대책을 비롯한 부동산 문제의 해결은 "백약이 무효"라는 내용입니다.
(2) 단적인 해법 : 서울과 수도권에서 지금의 집값 잡기는 이자율을 시장이자율(5% 이상으로)로 올리면 가능합니다. 이자율을 시장이자율로 올리면 서울 집값은 20%까지 내려갈 수 있으며, 10여년 간 장기 보합세를 유지할 것입니다.
(3) 부동산 문제의 근본 해법은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쳐주신 포도원 시장임대제도, 토지임대부 주택, 또는 소유와 사용을 완전 분리한 필지별 토지주식제도입니다. 다른 방법은 어떤 것도 희년법 시장원리에 반하기 때문에 근본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4) 세상은 성경 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원 경제법대로 하지 않고, 주인이 있는 포도원을 사람의 소유물과 거래물처럼 값을 매겨서 팔고 사고 있습니다. 이것은 희년법을 버리고, Baal 법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금의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며, 계시록 18장이 말하는 제국의 몰락과 시장의 붕괴(토지를 비롯한 각종 금융시장의 붕괴)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입니다.
10.15 부동산 대책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2025.10.15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ㄱ. 수도권과 규제지역 내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대폭 축소, ㄴ. 갭투자 및 전세대출을 통한 투자를 차단, ㄷ. 토지거래 허가 규제지역 확대로 서울 전역, 경기 12곳 포함, ㄹ. 부동산 자금 대출 조건에 스트레스 이자율(미래의 부채 상환 능력) 3%까지 상향 조정한 것 등입니다. (이하 존칭 생략)
이런 정책은 모두 시장에서의 대출 규제, 거래 규제 등을 통하여 수요를 억제하는 시장 개입 수단이다.
그래서 야당은 이런 정책이 시장 거래를 동결시켜서 주택 구입을 더 어렵게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대책은 규제가 아니라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어놓은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론)과 정책, 곧 진보는 수요 억제책을, 보수는 공급 확대책을 내게 된다. 이것은 한국에서 부동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197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55년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부동산 정책의 반복과 이 정책이 가져올 시행착오를 필자는 "부동산 정책의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식"이라고 하고 있다.
부동산 문제, 병은 한 가지에 약은 천 가지
"병은 한 가지인데 약은 천 가지"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병이 났는데 그 원인을 모를 때 이런 약, 저런 처방을 쓰면서 나오게 되는 말이다. 부동산 문제와 해법도 이와 같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55년간 똑 같은 정책 실수의 반복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내는 처방전은 규제와 세금으로 수요를 줄이거나 집을 많이 지어서 공급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내어놓은 정책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집값이 오를 조짐이 보이니 서둘러 내어놓은 정책이다. 이것은 병이 나긴 했는데 원인을 모르므로 해열제를 약이라고 쓰는 것과 같다. 질병은 고치지 못하더라도 열은 내려야 하니 지금의 정책이 처방전이기는 하다. 그러나 원인을 모르므로 이런 처방은 임시 처방책이다. 물론 구태의연한 공급 확대책을 들고 나오는 보수층의 처방전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은 25회의 부동산 정책을 써도 집값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시절은 별다른 정책을 내지 않아도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내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윤설열 정부 때는 주택 공급이 늘어났는가? 그렇지 않다. 지금 부동산 전문가든, 정책가든, 집을 사려는 사람이든, 누구나 이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왜 문재인 정부 때는 집값이 오르기만 하였고, 윤석열 정부 때는 주택 공급이 늘지 않았어도 집값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내렸는지, 그 원인부터 알아야 한다.
땅은 연수를 따라서 팔고 사야 한다.
그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서 살 것이요 그도 소출을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레 25:15,16)
성경 레위기 25:15,16은 땅을 팔고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연수가 많으면 값을 많게 하고 연수가 적으면 값을 적게 하라고 한다. 성경은 왜 이렇게 땅을 팔고 사는데 연수를 따라서 팔고 사라고 하고,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팔고 사라고 할까? 성경에서 이 법이 제정된 지 지금까지 약 3,500년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레위기 25:15,16의 거래법에 대한 경제적 해석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연수를 따라서 팔고 사야할 거래와 가격에 대하여 과학적 인식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성경이 말하는 창조질서와 물질계의 물리적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논리의 비약 같겠지만, 지금 2025년 10월 15일 낸 부동산 대책도 이러한 물질계의 기본 성질을 모르고 내는 대책이다. 그래서 이 대책은 근본 해법이 될 수가 없다. 이런 부동산 대책은 질병에 비교하면 대증 요법이고, 임시적 처방에 불과하다. 이런 수요 억제책은 보수층의 지적처럼 시장 거래를 동결시켜서 부작용만 커진다. 그래서 오래가지 못한다.
레위기 25:15,16의 거래물은 가격만 있고, 열매가 없다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본문 말씀을 따라서 값을 매겨서 땅을 팔고 사기는 했지만, 이 거래로 땅을 구입한 자에게 돌아온 것은 열매가 아니다. 땅의 경작권만 돌아온 것이다. 거래는 있었으나 지금 사용할 가치물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도 구입한 땅에서 열매가 없으므로 지금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구입한 땅은 농사를 지어서 열매(생산물)가 나와야 비로소 먹을(사용할) 것이 있다.
1억원의 채굴비를 들여서 금광을 발견한 자의 금광 채굴권 가격이 11억원이라고 하자. 여기서 채굴비 1억원을 제외한 순수 금광 채굴권 가격 10억원에는 금이 들어있지 않다. 미래에 나올(캐 낼) 금 채굴권만 있을 뿐이다. 레 25:15,16의 거래물 가격도 이와 똑 같다.
지금 이 글은 접하는 독자들은 부동산 전문가든, 경제학자이든, 누구라도 이 진술이 맞다고 인정해야 한다. 기독인들은 아멘으로, 비기독인들은 yes로 답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동산 시장 이해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단계에서 자기 정서나 자존심, 권위를 앞세워서 이 진술을 부정하면, 부동산시장의 이해는 더 이상 진도를 낼 수가 없다. 지금 필자는 희년법과 부동산, 그리고 금융시장에 대한 바른 이해는 집단이 가진 자기 정서와 고집부터 버려야 비로소 눈이 뜨여서 보이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땅값은 연수가 50년이면 50년 뒤에 본전(원리금 회수), 연수가 100년이면 100년 뒤에 본전을 하게 된다.
레위기 25:15,16의 말씀인 연수를 따라서 50년 가격을 매기면 어떻게 될까? 연수를 따라서 팔고 사야 하므로 시간의 가치 계산에는 이자율이 필요하다. 50년 가격이면 50년 뒤에 생산될 실물 가격을 미리 사는 것이므로 그 시간 만큼 가격의 크기를 낮추어 사야 한다. 이것이 할인률이다. 그러나 이자율(할인률) 복리 계산은 어려우므로 이자를 무시하고, 정액법으로 생각해 보자.
가격을 지불하고 1년이 지나면 정액법으로 1/50의 생산물이 나온다. 이자를 감안하면 1/50 + 1년 이자의 크기만큼 열매가 나올 것이다. 10년이면 10/50이 나오고, 만기인 50년이면, 50/50으로 원금과 이자가 모두 나온다. 이것이 투자에서는 원금과 이자(이자 = 시간 가치)를 포함한 원리금 합계다. 투자에서 이것이 본전(원리금 합계)이다.
레위기 25:15,16의 말씀을 따라서 100년 연수를 따라서 팔고 사면, 이를 구입한 자는 100년 되어야 본전을 할 수가 있다. 1천년 가격이면, 1천년이 지나야 본전을 할 수 있다. 연수가 1억년이면, 1억년이 지나야 한다. 땅값의 거래 연수가 무기한이면, 무기한의 끝에서 본전이 나온다. 토지 거래에서 거래 연수가 없다면, 땅은 무기한 존재하면서 생산물을 내는 특수 자본이므로 무기한이 되어야 겨우 본전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땅값의 영구 투자가 영원히 본전을 할 수 없어서 적자를 지속한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땅 한 단위를 1원 주고 구입했거나 강남 아파트처럼 땅 한 단위를 4억원 주고 구입했거나 원리는 같다. 이론상으로 1원의 땅값도 그 값을 100% 실현하려면 무한대 기간이 필요하다. 아니 무한대가 되어도 땅값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 값은 수학적 소멸을 가정하고 있을 뿐이다.
쌀값과 땅값은 물과 기름보다 더 다르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 25:23)
우리가 레위기 25:23의 시장 거래법을 어기고 영구 거래를 하면 어떻게 될까? 앞에서 설명한 레위기 25:15,16의 거래를 무기한 계속하는 것과 같다. 50년 금 채굴권 가격이나 토지 사용권가격에는 50년이 다할 때까지 그 자본가격에 해당하는 값은 실물(생산물)이 없다. 사용권이 무기한 가격이면 본전도 무기한이다. 곧 영원히 그 가격에 해당하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가격 안에는 사람이 사용할 실물은 영원히 1원도 없다.
예를 들어서 강남 아파트 44억원 짜리에서 건물 건축비가 4억원이라면, 4억원을 제외한 40억원에는 아무런 가치물(현재 주거가치, 주거 효용)이 들어 있지 않다. 이 40억원 가격은 40년 후에도 그대로 있다. 오히려 40억원보다 더 커져 있다. 그래서 40억원의 가격은 1원도 주거가치로 사용하지 못한다. 400년이 지나도, 4천년이 지나도 강남 아파트 40억원은 주거가치로 1원도 사용하지를 못한다.
쌀값은 그 가치를 먹을 수 있으나 땅값은 영원히 그 가치를 1원도 먹을 수가 없다. 자동차 값은 10년 타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땅값은 10년을 사용해도 원금은 1원도 본전을 뽑을 수가 없다. 쌀과 자동차는 같은 실물 가격이지만, 땅은 실물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물리적 현상이 발생한다.
물과 기름은 함께 쓰지는 못하지만, 가진 가치는 따로 따로 쓸 수가 있다. 다 같은 가치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땅값은 쌀값과 함께 같은 그릇에 담지를 못하며, 땅값과 쌀값은 따로 분리를 해서라도 쓰지를 못한다. 땅값은 영원히 쓰지 못하는 무용지물이다. 땅은 직접 쓰지 못하고(소비하지 못하고), 땅이 내는 2차적 가치물만 쓸 수가 있다는 뜻이다.
땅값은 수요 공급론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고, 미래의 성장률과 현재의 이자율이 매겨놓은 값이다.
쌀값과 자동차 값은 미래의 성장률이나 지금의 이자율이 변한다고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변해도 아주 무디게 변한다). 땅값은 미래의 성장률이나 이자율이 변하면 값이 바로 변하는 성질을 가진다. 쌀값은 수요 공급의 원리를 따라 가격이 변하지만, 땅값은 미래 성장률이나 현재의 이자율에 의하여 값이 결정되거나 변하기 때문이다. 땅은 현재가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가치를 따라서 연수를 따라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레 25:15,16).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가치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문재인 정부 때는 25회의 대책을 세우고도 집값을 잡지 못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어도 집값이 보합세이거나 내려갔을까? 하는 물음에 답변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은 이자율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이자율이 시장 이자율보다 턱없이 낮았다. 윤석열 정부 때는 이자율이 높았다. 그때는 미국의 이자율이 높아졌고, 우리도 이를 따라서 이자율을 올리거나 시장 이자율에 접근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정부 때는 백방으로 애를 써도 집값이 오르기만 하였고, 윤정부 때는 저절로 집값이 해결되어버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이자율이 미국을 따라서 자꾸 내려갈 조짐을 보인다. 지난 6월 강남 3구에 내린 긴급 대책도 이자율을 기준 금리 4% 대에서 3% 대로 내리면서 발생한 가격 급등 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동산 자본가격은 이렇게 결정된다. 이것이 수요 공급의 시장원리보다 먼저 작동하는 이론 가격의 시장원리다.
땅값 P = R/(i-g) 또는 P = R의 n년 연금현가 합계 + P(1+g)^n/(1+i)^n
=> P: 땅값, R: 임대료, 주거가치, i: 이자율, g: 성장률
전세가격 J = R/i
독자들은 이 공식을 따라서 집값이나 전세가격을 계산하여 보기 바란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수요 공급의 원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집값은 이자율(i)이나 미래의 성장률(g)이 일으키는 것이다. 이 비율은 모두 원인 변수의 변화에 체증적(기하급수적)인 성질을 가진다. 3% 대 이자율 사회에서 이자율은 낮아지고, 성장률은 높아지면 집값 또는 땅값이 어떻게 변하는지 실제로 수치를 넣어서 계산하여 보기 바란다. 땅값과 집값은 이자율과 성장률 변화에 비례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체증적(기하급수적)으로 변하는 성질을 가진다.
전세가격도 수식에서 분자인 이자율을 4% 이하, 곧 3%나 2%를 넣어서 가격(J 값)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산하여 보기 바란다. 그래야 실감이 날 것이다. 최근 몇년 간에 발생한 전세가격으로 발생한 각종 사회문제는 모두 이렇게 턱없이 낮아진 이자율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수요 공급론을 전혀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학자나 정책가들이 생각하는 수요 공급론보다 훨씬 더 먼저 미치고, 크게 미치는 이자율과 성장률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금 지방 아파트는 g가 0에 가까워서 이자율이 내려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 수도권은 이자율이 내려갈 조짐만 보여도 지금의 P값은 크게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은 이자율을 직접 다스리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수요 억제정책이나 공급 확대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생산물이 커진 값은 플러스 게임, 땅값이 커진 것은 제로섬 게임
생산물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재화나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러나 땅값이나 주식가격은 그것이 아무리 커져도 그 안에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실물이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실물은 투자한 자본에서 이자 비용도 보상받지 못하여 적자가 나고 있다. 그렇게 적자가 나도 땅이 내는 생산물은 국민소득이 커지는 GDP 구성요소다. 그러나 땅값 성장액이나 매매차익은 투자한 자본의 비용(이자)보다 더 큰 값을 얻었더라도 그 값은 GDP가 구성요소가 아니다. 땅값 성장액이나 매매차익에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재화나 서비스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을 팔아서 얻은 이익은 그냥 숫자이지 부(富, wealth)가 아니다. 내가 벌어서 저축한 저축물은 경제에 기여한 부의 축적물이다. 그러나 땅값 차익은 그것이 아무리 커져도 그것은 부가 아니다. 타인이 생산한 부를 나에게 수평으로 이전시킨 것에 불과하다. 땅값 매매차익은 경제에 기여한 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부동산시장이나 주식과 같은 투기성 금융시장은 팔고 사는 거래물에 수익 창출이 없다. 그래서 팔고 사는 가격은 제로섬 게임만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토지 거래와 주식 거래는 부의 생산과 소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가치의 이전 행위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 코인 거래에서 이러한 제로섬 게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경제에서 부의 축적인 플러스 게임과 부의 이전 행위인 제로섬 게임을 식별하지 못한다. 이러한 무지는 심지어 전문가나 학자들마저 그러하다.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모자랄 비극이다.
이것이 보여야 부동산 문제와 금융 문제를 근본에서 풀어낼 수가 있다.
"똘돌한 집 한채" 주택 문화를 만든 '1세대 1주택 우대제'와 "양도소득세'를 폐지해야 한다.
최근에 주택시장에서 "얼죽신"이라는 말과 "똑똑한 집 한채"라는 새로운 유행어가 탄생했다. 주택시장 최근 10년사에서 새로 생긴 신조어다. "얼죽신"은 MZ 세대들이 '얼어 죽어도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말이고, "똑똑한 집 한채"는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들이 이왕이면 고가 아파트 한채를 가지고 싶다'는 희망을 말한다. 이러한 시대적 풍조를 따라서 서울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올랐다.
주택시장에서 왜 이런 신조어나 신문화가 생겨났을까? MZ 세대들은 주거 형태에 대한 기호가 바뀌고, 기성세대들은 소득 수준이 높아져서 고가 아파트를 선호해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고가 아파트 한채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양도소득세 때문이다. 지금의 부동산 세제는 다주택자에게는 벌금에 가까운 고율의 양도소득세를 매긴다. 부동산 다주택 소유에 대한 징벌적 세금 부과는 최근 10년, 20년 사이 현저하게 강화되었다. 그리고 다주택자를 사회는 부동산 투기꾼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고위 공직자가가 부동산을 많이 가지면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다. 이런 사회에서 아파트를 가지면 매매차익이 크게 나는데, 다주택 소유에는 고율의 세금을 물어야 하므로 고가 아파트 한채로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그러나 1주택 소유자는 양도세를 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3억원 짜리 지방 아파트 5채를 소유하여 징벌적 양도소득세를 두들겨맞기보다 15억원 짜리 아파트 한채만 가지면, 세금을 물지 않고도 5채에서 누릴 양도차익을 모두 향유할 수가 있다. 그래서 10억원 넘어가는 서울 수도권 아파트, "똘똘한 집 한채"로 수요가 몰리게 된다. 서울 집을 사기 위하여 세대주를 따로하는 가구 분할도 늘었다. 2대가 함께 살아도 되는 넉넉한 규모의 집을 두고도, 가구를 분할하여 부모와 자식이 따로 따로 새 아파트를 구입한다. 심지어 부부가 집을 따로 따로 소유하기 위하여 위장 이혼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주택자에게 매기는 고율의 양도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물론 집 한채도 12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양도세를 물게 되어 있지만, 장기로 보유하면 세금 공제 혜택이 있다. 또 양도세를 물어도 1주택 소유자의 세금은 다주택자에 가해지는 징벌적 세금 폭탄을 피할 수가 있다.
다주택 소유자는 양도세를 피하려면 임대사업자로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임대사업자가 되려면 집을 세 채 이상 가져야 하고, 여기에 매년 신고와 세금 납부 등으로 사무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임대료 책정 하나에도 규정과 절차가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고민을 해야 하고, 자칫하면 세입자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은 다주택 소유와 임대로 골머리를 앓기보다는 내집 한채로 사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사회는 고가주택 하나, "똘똘한 집 한채" 를 가지는 것이 주택시장의 신문화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양도소득세는 자본에 매긴 세금으로 자본(재산)의 몰수 행위다.
새 자동차를 팔고 사서 발생하는 이익에 세금을 매기면, 자동차 주인은 세금을 내고도 다시 새차를 구입할 수가 있다. 세금이 이익에서 부과되어 세금을 내고도 원금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과 집을 팔아서 발생한 이익에 대하여 양도세를 내고나면 어떻게 될까? 다시 같은 가치를 가진 집이나 땅을 되살 수가 없다. 이것은 부동산 매매차익이 자동차 매매차익과는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
주택 양도차익은 그 차익의 크기만큼 사회적으로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앞에서 설명한 '제로섬 게임'을 알아야 이해를 하게 된다. 숫자는 커졌으나 생산한 수익물이 커져서 숫자가 커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양도소득세는 생산한 수익물이 없는데 정부가 세금을 매겨서 거두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산 양도소득세는 소득에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재산) 원금에 세금을 매겨 원금을 거두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양도소득세는 소득과세가 아니고 자본과세이며, 자본과세는 자본의 몰수 행위에 속한다. 이것은 시장원리가 아니다.
흔히 부동산에는 보유세를 높게 매겨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부동산 문제 해법에서 주로 진보층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들고 나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선진국들이 보유세를 높게 매긴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보유세는 세금을 소득에 매기지 않고, 재산이라는 원금에 매기는 것이므로 세금을 계산하는 방법부터 잘못되어 있다. A주택과 B 주택에서 임대료 수익은 같은데 A 주택은 소유가격이 높으면 세금을 더 많이 내어야 한다. 아니면 소유가격이 같으면, B 주택은 임대료수익이 적어도 내는 세금은 같아야 한다. 이것이 보유세가 가장 큰 취약점이다.
그리고 보유세는 세금 전가의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보유세가 높은 선진국에서는 그 세율의 비율 만큼 임대료가 높다. 그러나 보유세 주창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간과한다. 아니면 알아도 숨긴다.
전세가격에 대한 인간의 오해
전세제도는 한국만 있는 제도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한국 부동산시장의 고유한 제도다. 땅값이 커지는 사회에서 전세의 이론가격은 주택의 소유가격보다 항상 낮다. 전세가격의 이런 성질로 인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거비는 OECD 세계 선진국 중에 아주 낮은 국가에 속하였다. 전세가격은 시장가격임에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 수준이었다는 말이다(단, 시장가격 아닌 공공 저가임대는 제외).
주택시장의 50년 역사에서 한국, 일본, 홍콩 등은 주택가격이 아주 높은 나라이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한국의 전세가격은 세계 선진국들 중에서도 가장 낮다고 할만큼 착한 가격이었다. 한국은 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선진국 중에 PIR(소득 대비 집값 비율)는 높고, RIR(소득 대비 주거비용)은 아주 낮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한국의 전세가격이 그동안 아주 저렴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최근 5년간은 전세시장에서 온갖 문제(갭투자, 전세사기, 깡통전세, 역전세 등)가 생겼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초저금리 이자율 정책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최근에 전세시장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는 전세제도가 생긴 역사 이래 처음 있었던 희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전세제도가 문제가 아니고, 시장이자율보다 너무 낮추어버린 정부의 저금리 이자율 정책이 빚어낸 사고들이다. 그 다음은 전세가격이나 주택 임대에도 매기는 임대소득세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세시장의 특성을 우리가 잘 모르고 살고 있다. 전세는 후진국형 부동산 제도이므로 선진국처럼 월세로 전환해애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부동산시장과 전세가격에 대한 인간의 무지함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말이다.
땅값은 실물(상품) 가격이 아니다.
부동산 땅값은 현재에 존재하는 실물가치가 아니다. 땅값은 미래의 주거나 사용가치가 현재에 미친 가격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땅이 구체적인 유형물로 보인다. 그래서 땅은 실물 중의 실물로 보인다. 내가 가진 물질 중에 땅은 재산목록 1호다. 그래서 땅은 팔고 사는 상품 중에 가장 필수적인 실물이고, 거래물로 보인다. 착각 현상이다. 그런데 인간의 눈에 이런 착각 현상이 사라져야 세상에서 물질계의 질서가 가진 부동산시장과 문제를 제대로 볼 수가 있다.
땅값이 0이 되어야 희년이 온다.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레 25:24)
토지는 연수를 따라서 팔고 사도 이 가격은 실물 거래가 아니다. 그래서 거래 당사자 간에는 채권 채무만 발생시킨 금융거래다. 이런 가격물 거래는 금융거래이기 때문에 부채의 상환과 채권의 소멸이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것을 성경 희년법은 토지 무르기라고 한다(레 25:24). 그러나 사람이 이 빚을 갚지 못하면 땅이 생산물을 내어서 값을 대신 지불하여 준다(레 25:28). 이때가 희년이다.
이렇게 값을 대신 치루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토지 무르기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 없으면, 땅값이 0이 되어 부채가소멸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희년이 올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되어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희년법과 토지 무르기의 시장원리를 따른 것이다.
오늘날의 부동산시장에서 발생한 땅값은 영구 소유권 거래이므로 거래의 연수가 필요 없다. 그래서 토지 무르기를 영구적으로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토지 무르기를 정한 희년법을 정면으로 어기며 살고 있다. 희년 세상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면서 살고 있다. 과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도 될까?
부동산 문제는 희년법대로 하든지, 포도원 경제법대로 해야 한다.
지금의 부동산 문제는 토지의 물리적 성질을 무시, 배반하고, 영구재인 토지를 무르기도 하지 못하는 영구 거래로 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문제는 지금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어놓은 대출 규제, 소유 규제, 거래 규제, 그리고 세금 같은 정책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에 상반된 정책이 될 공급의 확대 정책도 근본 해법이 될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 문제는 성경 희년법이 제시한 무르기가 있어야 비로소 그 해결이 가능하다.
그런데 집값이 오르면 집을 많이 지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주식가격이 오르면 주식회사를 많이 세워서 주식의 가격을 내리게 해야 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토지와 주식은 가격이 변할 때 우리 눈에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가격을 변하게 하는 것으로만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 가격이 미래의 성장률 기대치와 지금의 이자율이 수요와 공급 현상까지 교란시키면서 값을 변하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주식가격의 오르내림 현상은 주식의 공급 물량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와 같이 지금 서울 수도권의 집값 오르내림도 주택의 공급 물량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동산은 희년법대로 시한부 거래를 하든지(레 25:15,16),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적 방식으로 제시한 포도원 임대제도를 실시해야 한다(마 21:33~43). 토지는 토지거래소를 만들어 시장임대제도나 필지별 토지주식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주택은 토지거래소를 통하여 토지의 시장 임대부주택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회는 땅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40억원 짜리 강남 아파트 한채도 4억원~10억원 미만이면 내집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사회는 세금도 거의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날 수가 있다. 이것이 희년법 토지 무르기이며, 시장 문제의 근본 해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처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이나 궤변처럼 여긴다. 그러면서 희년법이 거래를 금지한 금융물만 골라내어서 이를 적극적으로 가격을 키우면서 팔고 사고 있다. 채권은 만기가 돌아오면 원금만 남아있으므로 큰 관심이 없다. 만기가 없는 금융물, 그래서 사두고 기다리면 저절로 원금이 커지는 땅값과 주식, 코인이 우리의 관심사다. 그래서 땅과 주식, 그리고 가상화폐와 같이 영원히 아무것도 없는 것을 팔고 사면서 그 가격 안에는 값진 보물이 들어있는 것처럼 여긴다. 이것이 가치의 완전한 착각 현상이다.
하나님은 생산 없이 소득이 발생하는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생산활동이나 현상이 없이 소득이 발생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산활동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 내었다. 그래서 인간은 생산 없이 돈을 버는데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자들이 되어있다. 인간은 토지 거래에서 실물이 없는 데도 매매차익이 발생하는 공짜의 단맛을 일찍부터 보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토지보다 실물 없는 매매차익을 더 쉽게 얻을 수있는 방법을 다시 고안해 내었다. 이것이 거래의 절반 가격은 실물 자체가 없는 주식 거래다.
그리고 최근에는 100% 실물 없는, 영구로 수익 한푼도 내지 못하는 영구 불능성 불임자산 코인(가상화폐)까지 세상에 나왔다. 생산도 없는데 팔고 사기만 하면 이익이 난다. 참으로 기이한 시장이고, 희한한 거래다. 이것이 다시 변형하여 선물이 등장하였다. 농산물 선물은 생산되지 않은 옥수수(옥수수 가격)를 지금 팔고 사서 이익을 남기는 거래다.
이처럼 실물 없고, 수익도 없는 가짜 가격물에 대한 투자와 이익 수취는 그것이 다단계 판매에서 분배 받은 이익금과 유사하다. 조희팔 사기나 폰지 사기는 다단계 판매 방식으로 행한 것이다. 수익물이 없기 때문에 투자한 원금이 이익을 배당하는 행위다. 먼저 투자한 자에 대한 이익이나 배당은 뒤에 투자한 자의 원금에서 취하는 것이다. 이익이 실물이나 가치의 생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거래 숫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이런 현상은 신이라도 할 수가 없다. 아니 참 신은 그런 허구 거래를 하지 않는다.
아무런 가치 생산활동이나 경제활동 자체가 없이 숫자만 키워서 그 숫자를 서로 나누고 있다. 영구적 허수에 불과한 투자 행위를 말하고 있다. 최첨단 과학시대에 최첨단 야만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발생한 부동산 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금융문제는 사람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계시록 18장이 말하는 바벨론 제국의 붕괴와 마지막 시장 몰락을 당할 때까지 이 거래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의 붕괴와 시장 몰락에 따른 피해는 우리 각자가 가진 신앙과는 관련 없이 모두 함께 당하는 인류 공동의 대재앙이 될 것이다. 지구 생명체의 1/3이 멸하는 대재앙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성경이 말하는 각종 재앙들은 성경 말씀을 무시하거나 거역한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가 함께 당하는 사회 공동의 재앙들이었다.
성경 희년법을 따르면 세금까지 필요가 없는 자유 세상이 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세상이 희년법을 거부하면 받게될 인류 공동의 재앙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이런 재앙들은 금융시장의 붕괴를 경험하였고, 지금도 주기적 붕괴 조짐을 반복하고 있으며, 여기에 기상 이변의 속출 현상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 때가 우리에게 가깝에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우리가 둔감하여서 이를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 이 글은 토지 거래자나 주식과 가상화폐 거래자를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필자도 땅을 팔고 사고 있으며, 주식 거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토지시장 해법으로 주식제도를 제창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지적한 것은 희년법과 상반되는 Baal 토지제도와 금융제도가 일으킨 피해에 대하여 사회가 공동으로 지게될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