兮(혜)/乎(호)/介(개)/示(시)/市(시)
[이재황의 한자 이야기]<111>
兮(혜)라는 글자는 어조사로 쓰이는 것이어서 사실상 지금 남아 있는 의미가 없는 셈이다. 의미가 없으면 글자 분석은 미궁에 빠진다. <그림 1>이 그 모습이다.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일단 보이는 대로 나누어 보자면 八(팔)과 丂(고)를 합친 글자다. 발음은 丂와 가까워 그 발음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乎(호)는 <그림 3> 같은 모습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조금 거슬러 올라가 <그림 2>를 보면 兮와는 점 하나 차이였음을 알 수 있다. 옛 글자에서 획 하나 들고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乎는 兮의 이체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발음은 오히려 丂와 더 가까워졌다. <그림 3>은 <그림 2> 같은 모습에 가로획이 하나 추가됐거나, 아니면 <그림 1>에 丂가 하나 더 들어간 모습이다. 장식적인 의미의 추가일 수 있다.
介(개)는 <그림 5> 같은 옛 소전체를 보면 人(인)과 八을 합친 형태로 돼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의 갑골문은 人자 주변에 점이 서너 개 찍힌 모습이다(<그림 4>). 이 그림에서 사람이 갑옷 입은 모습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좌우의 점들이 이어 붙인 미늘을 상징했다는 것이다. 介에 '갑옷' '껍질'의 뜻이 있기 때문에 나온 얘기다.
이런 상형은 가능성이 없다. 그 대신 人자에 주목해보면, 이는 丂의 변형일 수 있다. 그렇다면 介는 兮와 같은 글자다. <그림 1>의 兮에서는 점이 두 개, <그림 2>의 乎에서는 세 개, <그림 4>의 介에서는 네 개다. 물론 介의 다른 모습을 보면 2~4개로 다양하다. 점의 개수는 의미가 없고, 이들 모두는 같은 글자의 변형으로 보이는 것이다.
발음인 丂를 제외한 부분이 점들이니 의미 파악이 어렵다. 다만 介에 '떼어놓다'의 뜻이 있어 이 점들은 '나누다'인 八의 변형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것이 의미 요소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示(시)는 신주 또는 제단을 그린 상형자라는 설명이 많다. 示가 들어간 글자들이 제사와 관련된 글자들이기 때문에 나온 얘기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많다. <그림 6> 같은 모습이고, 점이 아예 없이 T자거나 점이 조금 적은 모습도 있고, 지금 글자꼴처럼 T자 위-왼쪽-오른쪽에 하나씩 골고루 박혀 있는 모습도 있다.
지금 글자꼴을 기준으로 위에 올려진 것은 제물이고, 양쪽 옆의 것은 신이 내리는 은혜의 상징 또는 희생 짐승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그 T자는 바로 丂와 구분이 되지 않는 글자다. 이렇게 보면 示 역시 丂의 주변에 몇 개의 점이 찍혀 있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兮·乎·介와 같은 모습이다. 이들과 같은 글자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