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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개요
1:1-17 서론과 주제
1:18-3:20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 구원을 필요로 함
3:21-4:25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
5:1-8:39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9:1-11:36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이스라엘
12:1-15:13 기독교인의 윤리
15:14-16:27 앞으로의 계획과 인사
바울 서신 가운데 가장 긴 「로마서」는 신약 안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서신 가운데 으뜸을 차지한다. 즉 순서 상으로도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오랜 세기를 거쳐 기독교의 사상에 영향을 준 측면에서도 으뜸을 차지한다. 오거스틴, 마르틴 루터, 죤 칼빈 그리고 죤 웨슬리와 같은 탁월한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그 외에 덜 알려진 수백만의 기독교인들도 이 서신에 의해 사상과 기독교적 삶의 측면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 서신을 썼을 때, 바울은 아직 로마를 방문하지 못했다. 물론 그는 로마의 기독교 교회 구성원 가운데 많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16:1-15). 그가 어떤 상황에서 이 서신을 썼는가에 대한 단서가 1:15와 15:22-29에 기록되어 있다.
「로마서」는 바울 신학의 완전한 전개를 위해 쓰여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는 여기서 부활이나 주의 만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서신, 특별히 1-11장을 지나쳐 갈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독교 신앙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바울의 권면을, 특별히 12-15장에 있는 권면을 들어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는 흔히 「로마서」의 중심 주제로 여겨져 왔다. 아마도 좀더 중심적인 주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하여 그 약속(3-4장)을 충실히 지켰다는 사실일 것이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우리의 신실함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3:1-4)과 “어떠한 것도 그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내지 못 한다는 것(8:38)”을 확실히 말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질문과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쓰여진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로마서」는 바울 신학의 중요한 부분을 좀더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로마서」가 로마에 있는 마음의 문제점이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로마서」는 믿음의 신학과 공로의 신학에 대한 바울의 위대한 진술로 읽혀져 왔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유대교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사는 학자들은 「로마서」를 바울의 다른 서신과 같이 1세기 기독교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제 「로마서」가 시간을 초월하는 신학적 문서로 쓰여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로마서」는 이방인을 향한 바울의 선교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율법의 목적(7장)에 대해 질문이 제기되고, 특별히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들(3:1-9; 9:1-11:36)과의 언약을 지키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그의 의로우심에 대한 질문이 가장 날카롭게 제기된다.
기독교인들이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곧바로 「로마서」를 보려고 하는 반면, 바울은 「로마서」 전체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믿음에 근거해서만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에 중점적으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비록 이방인이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에 속하지 않더라도(창 17:9-16) 이방인을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되었는지(9:6), 또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는지(11:1)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을 통해 복음은 만민을 위한 기쁜 소식임을 확언하였다. 바울이 자신의 가르침을 전개시켜 나갔던 사회적 상황은, 교회의 중심이 이방 세계로 옮겨짐에 따라, 교회의 역사에서 망각되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는 개인적인 신앙 체험과 구원에 국한되었다. 「로마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연구해 보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에 들어 있는 사회적 차원이 쉽게 무시되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차별이 없느니라”(3:22; 10:12)라는 문장에는 사회적 상황과 맥락이 깔려 있는 것이다.
로마서의 메시지
바울은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그들을 위한 자신의 기도에 대해 말한 후 「로마서」의 주제를 진술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그런 후에 바울은 이 주제를 발전시켜간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아우르는 전 인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류 전체가 죄의 힘 아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바울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서 비롯되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새로운 삶을 서술한다. 신앙인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에 의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5-8장에서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율법이 지닌 목적과 신자들의 삶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논한다. 그후 사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떻게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의 틀에 들어가는지의 문제와 씨름한다. 그는 예수를 유대인이 거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으로 전 인류를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이 언제나 예수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기독교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쓰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국가에 대한 기독교인의 의무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 및 양심의 문제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그는 개인적인 메시지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글로 편지를 맺는다.
복음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자신과 화해시키는가”에 대해서 밝혀 준다(1:17).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로마서 전체의 주제로 여긴다.
저자
16장은 본래 다른 도시(아마도 에베소일 것이다)에 있는 기독교인에게 쓴 별개의 편지이며, 후에 롬 1-15장에 추가된 것으로 여길 만한 증거가 있다고는 하나, 16장 모두가 이방인의 사도(11:13; 15:16-18)인 바울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기록 시기
「로마서」는 주후 56-57년 경, 바울의 선교여행 끝 무렵에 쓰여졌다. 그의 선교여행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15:19) 두루 다닌 것이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을 전진 기지로 삼아 복음을 서쪽으로 서바나(스페인)를 향해 들고 가려 했으나 번번히 막혔다(1:13-15; 15:22-24). 그는 우선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해 이방 교회에서 모은 연보(15:25-33; 갈 2:10; 고전 16:1-4; 고후 8-9장)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연보는, 유대 기독교와 이방 기독교가 점차 별개의 집단으로 되어가던 때에,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일치(롬 15:27)를 상징했다. 바울은 자신의 독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자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일치의 중요성을 이처럼 부각시킨 사실이 없다. 즉 바울은 유대 기독교인을 위해 모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마와 서바나로의 전도여행을 연기하기까지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로마서」가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록 장소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16:23의 가이오는 아마도 고전 1:14에 언급된 가이오일 것이다.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16:1 설명)를 섬긴 뵈뵈(16:1)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였을 것이다.
수신자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여러 가정 교회에서 모임을 가졌다(16:5 설명). 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었다. 때로 바울은 이방인 기독교인들에 대해 말한다(1:13; 11:13). 어떤 때는 그가 자신의 주장을 유대인 기독교도들의 관심사로 돌리고 있는 듯하다(2:17; 3:9).
문화
초기 교회는 이방인과 경건한 유대인들이 한 분이신 주님을 예배하게 됨에 따라 문화 충돌을 경험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14:5), 어떤 음식은 제의적으로 정결하지 못하다고 여기는(14:2,14) 사람들이, 모든 날을 같게 여기고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믿음이 강한 자”(15:1)는 “믿음이 약한 자”(14:1)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바울은 이 두 집단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고 촉구하였다. 바울은 이방인 기독교도들에게 유대인들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단순히 가지이며,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기 때문이다(11:18). 신학적인 측면에서 이런 충돌과 긴장은,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면, 왜 하나님이 율법을 유대인에게 주셨는가를 바울이 설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다(7장). 그는 또한 왜 하나님의 선민(9:1-5)인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고 이방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지(9-11장) 설명을 해야 했다.
출처: 굿 뉴스 스터디바이블
로마 시는 로마 제국의 중심지요 수도였다. 사도 바울 시대에 그 인구는 짐작컨대 백만을 넘었다. 주민 가운데 유대인이 약 5만 명 있었는데 이들은 로마 시의 경제적 가능성에 이끌려 와서 그 곳에 점차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집회 장소는 유대교 회당인데 로마 시에는 여남은 개의 회당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거대한 인구 층에 속했다. 주후 1세기의 40년대에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이주해 옴으로써 이 도시에 그리스도교가 또한 발을 붙이게 된 것 같다. 아마 이렇게 하여 유대인 사회에서 유대교인과 그리스도교인 사이에 종교적 소요가 잇달아 일어났는데 이 때문에 주후 49년 글라디우스 황제 치하 때에 유대인들은 로마 시에서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추방을 당한 사람들 가운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행18:2)라고 하는 부부도 끼어 있었다. 네로 황제가 등극할 때에(54년) 이 추방령은 해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추방당한 자들이 곧 대량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비유대인들 가운데서도 또한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50년대 중반부터는 로마 시의 그리스도 교회의 인적 구성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로마서>의 마지막 장에 따라 결론을 짓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정 교회에서 회집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집필 동기, 장소 및 시점에 관해서 15:22-29에 정확하게 고지되어 있다. 그 당시에 바울은 곤궁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끝마칠 참이었다. 그는 마게도냐와 아가야(고린도)에서 거둔 모금의 열매를 몸소 예루살렘으로 가져다주고 이어서 로마로 가고자 한다. 그는 로마를 거점으로 하여 스페인에 전도 활동을 하고 싶어한다. 왜냐 하면 그는 동부 지역에서는 그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기의 로마 방문을 알리는 것이 이 편지 집필의 외적 동기이다. 집필 시점은 아마 주후 56년 초이며 집필 장소는 고린도이다(또한 행20:1-6 참조).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장차 협력관계를 맺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기의 선포의 기본적인 것을 상세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갈라디아에서 실시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방 선교를 둘러싼 논쟁의 신학적 결실과 또한 고린도에서 벌어진 갈등의 신학적 결실이 <로마서>의 진술 속에 유입되어 있다. 그래서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에서 그의 전도 활동을 끝마친 후에 매기는 하나의 총괄적인 중간 대차대조표가 되는 셈이다(15:15-24 참조).
편지 형식상의 도입 다음에 바울은 1:16-17에서 이 편지의 주제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안에 그의 의를 나타내시며 이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1:18-3:20은 이 명제의 부정적 배경을 서술한다. 이방 사람도 유대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없다. 3:21-4:25 적극적인 내용을 전개한다. 예수의 속죄의 죽음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표명하셨으며 모든 사람의 죄를 도말하셨다. 믿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하신 약속이 성취된다. 5:1-11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의 진상을 서술한다. 그것은 화해하심을 입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삶이다. 5:12-21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함으로써 온 인류에 미치는 은혜의 의미를 명시한다. 6장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새로워진 삶의 기초가 놓여지며 어떻게 그 삶이 다시는 죄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게 되는지를 제시한다. 7장은 회고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삶이 죄와 율법 사이에서 일으키는 교호 작용을 서술한다. 8장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규정된 삶을 묘사하는데 이러한 삶은 비록 시련 가운데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어린이 같은 신뢰 안에서 흔들림이 없다.
9-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신실하심이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길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12장에서부터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미치는 결과들을 열거한다. 그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12:3-8),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을 대면하여 일상적 삶에서 취할 처신(12:9-21), 국가 제도의 존중((13:1-7), 사랑 계명의 의미(13:8-14), 그리스도교적 삶의 양태에 대한 상이한 견해 때문에 야기된 교회내적인 긴장 관계의 극복(14:1-15:13).
15:14-33에는 바울의 여행 계획에 대한 정보가 나오며 16장에는 인사말이 길게 이어진다. 바울이 로마에 아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며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오히려 에베소에서 찾아야 될 것이기 때문에(3,5절 참조) 주석가들 가운데는 다음과 같이 추정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있다. 16장은 원래 뵈뵈를 에베소 교회에 추천하는 추천장으로서 에베소에 보낸 편지인데 나중에 <로마서>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16장에 관련된 이러한 사정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 로마에서 추방당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이에 많이 로마로 다시 되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로마서>는 바울의 칭의론, 즉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죄인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가르침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며 가장 명석한 진술이다. 그래서 <로마서>는 교회사에서 언제나 거듭해서 복음을 더 잘 그리고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루터가 그의 <로마서 주석> 서문에 쓴 말은 여전히 타당하다. "이 서신은 신약성경의 진정한 핵심이며 가장 순수한 복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내용을 낱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외우도록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일용할 양식으로서 나날이 그것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귀중하며 가치가 있다."
편지 서두와 편지 주제 1:1-17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1:18-4:25
죄와 율법의 극복과 성령 안에서의 삶 5-8장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9-11장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침 12:1-15:13
편지 결미와 인사말 15:14-16:27
출처: 해설 관주 독일어성서공회 책별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