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산 계승사(金太山桂承寺)
- 경남 고성군 영현면 대법리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사찰.
1963년 중창 후 계승사로 개칭하였다 하는데 그 전의 사찰명은 알 수가 없는 것일까?
이 사찰은 전통사찰로 인지하였고 오늘 처음 와봤다.
마을에서 승용차로 오르기엔 길이 좁다. 입구엔 '차량진입금지'란 안내가 붙어있지만 주민들은 가능하다고 한다.
승용차로 매우 조심하게 운전하여야 빠지는 사고가 없을 것이다. 이 마을에 더 가면 조금 나은 길이 있는 모양이다.
백악기 퇴적 구조의 절벽 아래 계승사가 있는 주변 절경은 없어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절이다.
성벽같다. 입구의 전각이 보제루며 범종루 역할을 한다.
대웅보전
보타전에서 본 경치
산신각
약사전 앞에서 본 경치
약사전
보타전
보타전이 보이고 암벽 가운데 물이 흐른다.
지장전
문화재로 금동 불상입상 1점, 금동 불상좌상 1점, 원추형 토제점 3점, 백자 접시 2점 등등 있는 것으로 소개되었지만
확인하지 못 했다. 문화재에 대한 별도 설명(안내문)이 없다.
연화산 옥천사(蓮花山玉泉寺)
-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670년(문무왕 10)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1208년(희종 4)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수선사(修禪社/현재 순천 송광사)의 법석(法席)을 물려주려 하자 그 뜻을
뿌리치고 이곳으로 들어와서 자취를 감추었던 혜심(慧諶/진각국사)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 1639년(인조 17)에 학명(學明)과 의오(義悟)가 중창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 용성(龍城)이 중건하였다.
1919년에는 영호(暎湖)가 이 절의 강사로 있으면서 세진교(洗塵橋)를 놓은 것을 비롯하여 두 차례 중수하였다.
이 절은 청담이 처음 출가한 사찰이기도 하며, 고려 말의 요승 신돈(辛旽)이 노비로 살았던 절이기도 하다.
(다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약간 수정)
창녕군에 옥천사(지)가 있다. 이 옥천사에 신돈의 어머니가 여종으로 있었다 한다.
노비에게 태어난 자식도 노비임으로 신돈도 옥천사에서 노비로 살았을 것이다.
신돈이 권력에서 거세된 후 창녕군의 옥천사는 헐려서 폐허가 되었다. (절의 찾아서 - 관룡사 편 참조)
창년군의 옥천사와 고성군의 옥천사와 혼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옥천사 홈페이지 사적기엔 위 내용이 없다.
옥천사는 지금은 쌍계사 말사이지만 한때 사세가 큰 사찰이었다.
하동 쌍계사는 처음 옥천사라 하였으나 신라 헌강왕이 근처 옥천사가 있으니 쌍계사라 부르라 하고 사액하였다.
'근처 옥천사'가 고성 옥천사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사학계에서 그렇게 여기고 있다.
고성 문수암에 청담대종사의 사리탑이 있다. 승려 학명과 의오란 이름이 낯설지 않다.
이 사찰은 대여섯번 온 것 같다. 연화산 산행도 두 번했다.
천왕문
안에 비석이 있는데 이 비석에 대한 안내문이 없다. 하마비는 여기서부터는 걸어 들어오라는 의미이다.
손녀의 사진을 찍어주는 할머니, 모습이 정겹고 아름답다.
범종각
초서를 미처 공부하지 못 하였으니........ '템플수행관'
청담대종사의 사리탑과 비.
매화 향기 흩날리는 봄날이다.
아쉬움. 365일 등을 달기 위한 구조물이 절의 아름다움을 가린다. 이는 존재하기 위한 현실이므로 아쉬움을 떨쳐야한다.
대웅전 / 경남 유형문화재 제132호
명부전 / 경남 문화재자료 제146호
명부전 외벽의 그림
조사당
여러 분의 진영이 있지만 세 분만 사진을 올린다.
창건주 의상대사 진영
청담대종사 진영
백련상오선사 진영
독성각, 산령각
자방루(경남 유형문화재 제53호)는 복원 공사 중.
3년 전에 왔을 때가 공사 시점인 모양이다. 그 당시엔 천막만 처져 있었다.
지금은 거의 해체된 상태이다. 복원이 끝나려면 3~4년 더 걸리겠다.
나한전
옥천각, 이 샘물 때문에 사찰이 이름을 얻었다.
옥천사 청련암
다음 기회에 옥천사를 다시 와야겠다. 성보박물관도 들려보지 못 했다. 산내 암자인 백련암도 가야 하는데...... .
자방루 공사가 끝나면 다시 오고싶다.
거류산 장의사(巨流山藏義寺)
- 경남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신라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1년(632)에 창건했다고 알려졌다.
장의암의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 1891년 신묘년 작성 ‘고성부거류산장의암중창기문(固城府巨流山藏義庵重創記文)‘를 보면 당(중국) 태종 정관 6년인 632년에 창건했다고 나와 있으나 이후에 사적을 알 수 없다고 나와 있다.
이후 1885년 을유년의 커다란 수해로 인해 장의사는 거류산의 원래 사찰이 자리했던 위치에서 좀더 아래 쪽으로 휩쓸려 내려오게 됐는데, 1891년 성담 법운(聖潭法雲)대사가 지금의 자리에서 중창했다 한다.
1920년 호봉(虎峰)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장의사는 안정사의 말사 내지는 산내암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6.25사변의 병화를 입어 퇴락해 있던 것을 1969년 정관(靜觀)이 법당을 중수하고
1979년 성허(性虛)가 다시 가람을 중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음-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발췌, 수정)
장의사는 여러 차례 왔다. 오늘도 마음은 산으로 가 노루귀며 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거류산은 딸이 고성읍 중앙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장의사를 찾은 횟수보다 산행한 횟수가 많다. 작년에 꽃보러 왔었다. 재작년에도.
당동마을이 아름답게 보이는산이며 절이다.
일주문
절 마당에 탑이 없다.
대웅전
대웅전 외벽 포대화상, 재물의 운을 주는 승려가 아니다.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았던 자애로운 승려였다.
범종각
천불전
이 불상이 문화재일까? 안내문이 없다. 장의사의 문화재는 뭘까?
(석조 관음반가상(경남 유형문화재 제511호)이 검색하니 나온다. 사찰에 와서 보진 못 했다.)
사성전
약사여래(?), 산신, 독성, 용왕 등 4성이다.
첫댓글 사진으로 다시보니
더~감동적이내요
미처 둘러보지못한곳 까지
섬세하게~♡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눈으로담고
사진으로 다시보니
더 좋은거같아요
그렇지요. 오래 머물면서 보면 좋을 겁니다.
장의사는 못 가봤네...언제 한번,,
장의사에 주차하고 거류산 갔다오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