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의 재발견, 운봉산에 올랐다. 시월의 둘째 주라서 이제 막 갈잎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가을단풍 구경을 위해 운봉산을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운봉산 남쪽 학야리 길로만 수없이 오갔다. 대학에서 현역부사관 직장인반 운영으로 사단본부를 자주 왕복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산을 찾지는 못했다. 가까운 산이니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미루어온 것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운봉산은 두 마을에 걸쳐있으면서 토성면과 죽왕면의 경계이기도 하다.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서에서 남동으로 왼쪽은 토성면 학야리, 오른쪽은 죽왕면 운봉리에 속한다. 서로 차지하는 면적도 얼핏 엇비슷하게 보이는데 운봉리가 조금 많아 보인다. 그래서 이름을 운봉산이라 했는가? 운봉산은 작지만 지역민은 물론 외지인들도 기억하는 산이다. 설악산에서 북동쪽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사방에서 바라보이고, 생김새가 고깔모양으로 빼어나기 때문이다.
운봉산은 높이가 285미터로 낮다. 산중턱 급경사만 유의하면 누구나 오름직하다. 북서쪽과 남동쪽에 각각 2개씩 전부 4개의 산행길이 있다. 산행중간의 거북바위, 병풍바위, 산정상의 거센 양간지풍에도 끄떡없는 강철태극기가 볼거리이지만, 운봉산의 으뜸은 ‘돌이 흐르는 강’ 주상절리가 흔치 않은 비경이다. 운봉산의 옛 이름은 솥뚜껑을 닮아서 정산(鼎山)이라 불렀다.
반듯한 원뿔모양은 성층화산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실제로 운봉산은 화산이다. 지금은 휴화산이지만 옛날 화산활동이 활발하던 때에 주기적이고 폭발적인 화산분출로 용암이 굳어지고 화산재가 퇴적하여 형성되었다. 성층화산은 산중턱이 급경사로 가파르고 산기슭은 완만한데 운봉산이 그러하다. 성층화산에는 보통 분화구가 있다.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운봉산 꼭대기에도 3미터 깊이의 분화구가 있었는데 군부대에서 헬기장을 조성하면서 메워졌다고 한다.
운봉산의 주상절리, 현무암 돌강이 분화의 흔적이다. 750만 년 전 신생대 화산활동 이후 빙하기를 거치면서 거듭된 냉각과 수축으로 육각형 기둥구조의 현무암 테일러스 너덜지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히 장관! 돌이 흐르는 강이 형성되었다. 그러니까 운봉산에 오른다는 것은 태고의 신비, 태초의 역사로 떠나는 여정이다. 운봉산의 돌강은 큰 것만 10개, 20미터 작은 것까지 포함하면 15개나 있다. 가장 큰 것은 길이 330미터, 너비 105미터에 이른다. 주민들은 이 돌을 ‘서둑돌’이라고 부른다. 크기는 보통 지름이 30센티, 길이가 1미터 넘는 것도 있다. 운봉산은 환경부가 지정한 국가지질공원이다. 강원도 고성군에는 진부령, 화진포, 송지호 서낭바위, 문암 능파대가 국가지질공원이다. 서둑돌에는 장석과 희토류 성분이 들어있다.
그래서 국가지질공원 운봉산이 아프다. 지난 1월 운봉산 현무암 훼손사건이 발생했다. 광업권을 소유한 사설연구소가 서쪽능선에 산길을 내고 현무암 25톤 트럭 15대 분량을 전라남도 영광으로 반출해갔다. <설악신문>도 ‘국가지질공원 고성 운봉산 훼손 논란’의 기사(2021.2.1.일자)를 냈다. 제323회 고성군의회 본회의 회의록에도 의원들이 집행부에 운봉산 훼손 질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가 지난달 21일 직접현장을 방문하여 보니 훼손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현장에 이르는 산길 절개지도 문제지만, 끌어낸 서둑돌 무더기도 상당했다.
사용한 반출로 입구에는 ‘허가자 : 고성군수, 수허가자 : 서울 중구 마른내..., 허가면적 : 4219㎡, 허가기간 : 2014.4.10.~2019.3.31.’라고 적혀있는 찢어진 표지판만 있었다. 추정컨대 이전업체의 개발행위 허가표지판 같았다. 그래서 부동산 실거래조회로 검색해보니 2015년 8월에 대규모 운봉산 토지거래가 있었고, 정부24에서 토지(임야)대장 열람결과 서울 장충동의 (주)○○신소재연구소에서 운봉산을 광범위하게 거의 전체를 사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운봉산의 주상절리는 수백만 년 전에 조성된 것인데 오랜 세월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안타까운 사실은 운봉산이 2014년 4월 11일에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자마자 불과 몇 개월 후인 2015년 8월에 아무런 제한 없이 대규모 부동산거래가 있었다는 점이다. 환경부에서 보존가치가 있어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면 지자체는 서둘러서 상응하는 후속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하다. 자연은 한번 훼손되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우리지역의 나머지 국가지질공원은 괜찮은가?
최철재
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