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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EK AGO BY DONGHAK IN 모든 특집보기, 특집 TAGGED: 개벽, 개벽신문, 개벽신문57호, 동학, 보은취회, 특집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거라고. 그런 희망이야 말로 꿈같은 것이라고.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꿈꿨던 민초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이 꿈꾼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우리는 계속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 걸까요?
착한 백성들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던 동학의 꿈은 123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먼 걸음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123보은취회 거꾸로 가는 동학 1·2·3”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올해 보은취회 행사는 앞으로만 달려가는 걸음을 가다듬는 의미로 ‘거꾸로’ 가기로 했다. 필자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해마다 보은취회를 준비하는 마음들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왜 보은에 오는지, 지금 이 시절 보은취회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6월 3일부터 5일까지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일대에서 열린 “123보은취회 거꾸로 가는 동학 1·2·3”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어떻게 한마음을 이룰 수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보여 주었다.
오늘 모임을 연결해 준 키워드는 ‘동학’입니다. 동학의 의미를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 올해는 동학서당의 훈장으로 여기 왔습니다. 행사가 이루어지는 내내 틈나는 대로 동학서당을 진행했습니다. 우리 역사가 뒤틀린 지점이 어디부터였는가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뿌리가 처참히 무너졌던 동학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보은취회의 동학서당에서는 이론적인 이야기보다도 실천적인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폭발 직전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경쟁이 치열한 나라, 힘없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나라, 돈이면 다 되는 나라…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큰 것이 걱정입니다.
이 나라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장애인, 노인, 여성 등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요? 우리들의 생각이 달라져야겠죠. 여전히 동학이 꿈꿨던 꿈은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그 꿈을 이번 보은취회에서 동학서당을 통해 함께 나누고, 격려하고 연대하는 만남의 장이 되고 염원을 기도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 오니까 참 좋아요. 북실 진달래는 유난히 붉어요. 살아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삶 자체가 기적 아닙니까. 그렇게 죽고도 살아나지 않습니까. 북실 붉은 혼이 결국 기미만세운동 때도 붉게 살았고, 그게 또 해방공간, 6·25, 4·19, 5·18, … 아주 별 일이 많지 않소. 참 기적입니다. 아무리 분통이 터지지만 살아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냥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만 살아도 삶은 기적이고 신나는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할 것도 없어요. 그냥 살아요. 신나게요. 살아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전기도 음향도 연결이 안 되는 척박한 동학공원에서 행사를 진행하려니 답답하고 막막했습니다. 2004년부터 보은취회에 참여하기 시작해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매년 올 때마다 재미있고 즐겁고 신이 납니다. 늘 새로운 동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뭔가 반복되는 것보다 없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보은취회가 가진 ‘새로움’이 좋습니다. 보은취회에서 저는 머슴 중에 ‘상머슴’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해마다 여기 모이는 접주들은 에너지가 넘쳐요. 제가 참여했던 10여 년간의 보은취회를 돌이켜보면, 어느 해인가 홍보가 잘 안 되어서 많은 사람이 오지 못했던 해가 있어요.
음향도, 조명도 없었죠. 작은 모닥불을 피워두고 한 행사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접주 두 사람이 춤을 췄어요. 정말 멋있더라고요. 거기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을 여기 오시는 분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 같아요. 지금은 여기 사람들이 와 주는 것을 보면서 참 기쁩니다.
해마다 음향 장비와 조명들을 트럭에 싣고 와서 내가 뭔가를 여기서 함께 해내고 있다는 것이 늘 즐겁습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참여하는 접주들이 소박하게 꾸려가는 이 마당이 참 좋습니다. 123년 전에 여기 모인 백성들의 모습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지점에서 많은 분들이 여기 오신다면 오늘의 동학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23보은취회 ‘거꾸로 가는 동학 123’ 사무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삼년 전부터 비상근 사무장을 뒀는데 홍보, 각 마당 조율, 관공서와 업무협조, 예·결산까지 누군가 전담해서 고민해 주지 않고는 불가능한 덩치의 <보은취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담으로 일을 해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이 보였어요.
역시 일은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아니더군요. 중심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1월부터 오늘까지 백 가지도 넘는 가지가지 일감이 머리와 가슴과 몸을 통과했어요. 물론 ‘추진접주’로 실무를 함께해 준 23명의 동지들이 협동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심란하고 걱정도 많았지만, 대체로 즐거웠고 <보은취회>가 재현되는 2박 3일 동안은 최고의 동지였어요. 나는 보은취회에서 큰 걸 바라지 않아요. 지금처럼 고통스럽게, 평화롭게, 그리고 지난 뒤 돌아보면 미소가 떠오르면 됩니다. 보은취회는 중앙도 없고, 서열도 없고, 공시적이고 통합된 이데올로기도 없고, 공식 지도부도 없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자발적 활동과 집단의 독립성은 운동 내에서 진정으로 인도주의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역동성과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원칙’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인용) 내년에 새로운 사무장이 생겨 백한 가지 고통을 통과하면서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보은취회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4년째 보은취회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눈자라기’라는 동학을 주제로 한 탈극도 제작한 바 있고요. 해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맞이굿을 만들고 있습니다. 보은이라고 하는 곳이 상처가 많은 땅이잖아요.
상처를 치유하는 의미를 공연에 담아내고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무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마고할미탈을 새롭게 등장시키면서 생명의 순환, 해원상생의 의미를 담아 동학정신에 함께했는데 동화적 상상력을 더하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해마다 보은취회를 함께하면서 동학을 알아가는 의미도 큽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즐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은취회에 세 번째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동학에 대해 모르고 참여했다가 해마다 학생들과 같이 오니까 동학에 대해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이번에는 아이들과 동학에 대한 영화를 보고 왔어요.
동학을 이해하긴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훈장님이 서당에서 동학을 알려주는 자리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동학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재작년에 동학 순례길을 걸었어요. 그 의미 있는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사람이 하늘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전달되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캠핑을 함께하면서 123년 전의 들살이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역사를 이해하는 동기부여의 차원에서나, 함께 공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명의 가치를 부여하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의 의미가 중요하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춘천 MBC에서 동학 라디오 다큐멘터리 드라마 14부작을 준비 중인데, 전주 MBC와 공동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료를 바탕으로 라디오 다큐를 제작 준비 중입니다. 아마도 보은취회 편이 첫 방송이 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별로 동학의 발자취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동학은 전라도 지역의 역사만 알려져 있는 경향이 있는데, 강원도에서 동경대전이 발간되고 사상적인 기반이 다져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역사적 사실들을 알리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3년 전에 잡지 『개벽』을 발간했던 춘천 출신의 차상찬 선생 다큐를 제작하다가 그 계기로 개인적으로 동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인문학 특강』이라는 프로그램과 책 발간을 통해 동학을 접한 경험도 있고요. 보은취회에 처음 와 보았는데 고요한 농촌 지역에서 동학의 역사가 구석구석 깃들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요즘 지자체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스토리텔링이 맞닿아 있는데 장소 스토리텔링으로 동학을 풀어낸다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일본에서 왔습니다. 관동대지진 학살 관련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재일동포 2세입니다. 일본이 저지른 조선인 학살의 뿌리가 동학에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흔적을 찾으러 왔습니다. 일본군에 의한 민중대학살이 어떻게 멈추지 않고 관동대지진까지 확장되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박맹수 교수님을 통해 동학을 알게 되고 마침 이런 행사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슬픈 역사를 이렇게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보여주고 있어서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의미 있는 행사를 하고 있다니 감동적입니다. 이곳에 와 보니 참 좋습니다. 내년에도 또 오겠습니다.
120주년 때는 큰 행사를 여러 가지의 형태로 진행했는데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죠. 올해는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123년 전의 동학 정신을 찾으려는 자리로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행사가 확장되기보다는 되돌아보고 반성도 하고 과거보다도 현재가 중요하니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고민하고 새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은취회에 와서는 마음이 동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지내다 가셨으면 좋겠고 나 혼자 하기 아까운 판을 가지고 와서 함께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보은취회에 4년째 오고 있는데 해마다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행사입니다. 올 때마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성숙해지더군요. 동학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참석하는 재미, 행사를 소소하게 준비해 가는 과정도 큰 교육의 과정이기도 하고요.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도 큰 것 같아요. 아이들은 여기서 만들어진 추억들을 두고두고 이야기합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을 만들어주셔서 고마운 행사입니다. 보은취회 행사가 6월에 진행되니까 시기적으로 지루해진 학사일정에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저희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상주 동학교당이 있는데, 그쪽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서 산교육을 실천하려고 했어요. ‘보국안민’, ‘대동세상’과 같은 문구를 적어서 직접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해마다 행사가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세상을 새롭게 보려고 하는 시선들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보은취회는 동학과 아이들의 괴리감을 좁힐 수 있는 행사인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대안학교 친구들이 더 많이 오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보은취회를 통해 생명에 대해,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그런 존재인 것을 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주 커다란 힘이 되지 않을까요?
저희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은 우포늪, 창녕읍에서 온 친구들인데 아이들이 친구나 자연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생명’이라는 커다란 의미까지 확장시켜서 생각하고 갔으면 합니다.
사실 평소에 부르는 천지밥상이라는 노래에 동학의 의미가 다 들어있는데 그런 것들을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있어요. 처음에 오면서 동학이 뭔지 설명을 해 주고 이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까지 연결시켜 보았는데 이야기를 해 주다가 아이들에게 ‘우리가 부르는 노래 속에 동학이 다 있지 않을까?’ 하고 다시 한 번 노래를 불러 보았어요.
아이들이 ‘정말 다 있었네요.’ 하더라고요. 아이들과 이런 노래를 같이 부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 외에 교육이라는 게 필요할까요?
올해 보은취회가 한 고비를 넘었다고 판단됩니다. 자력에 의해, 다수의 주체들에 의해 보은취회가 이루어지는 길로 접어드는 데 이번이 기점이 된 것 같습니다. 작년 행사가 ‘내가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올해는 ‘내가 주인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서 그분들이 더 주인 됨으로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아요. 나부터도 그렇고요.
개인적으로는 제 의도와 관계없이 이제 보은취회를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보다 했어요.
보은취회에 모인 사람들은 동학이 이 시대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이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진리에 따른 삶의 질서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 동학이라고 생각합니다. 123년 전에 동학을 하시던 분들, 그리고 목숨을 잃은 분들은 지금 우리들을 위해 당신들이 거름이 된 겁니다. 실패한 혁명의 역사가 아니고요.
그렇게 끝났으면 실패했겠죠. 하지만 123년이 흘러도 이어지고 있잖아요. 꽃이 피려면 거름이 필요한 거죠. 지금의 보은취회가 동학의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과거 123년 전 동학혁명에서 보은취회가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해월 선생이 지도했던 보은취회의 패기, 절도, 인적, 물적 역량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취약합니다.
저는 올해 보은취회를 보면서 희망을 봤어요. 생존의 근거를 마련했다고 봅니다. 옛날에 우리 민족이 해마다 한 번씩 큰 집회를 했어요. 나라가 크건 작건 우리 민족이 고구려를, 신라를 구성하기도 했잖아요.
1년에 한 번 정도 각 나라의 모든 문화적, 정신적, 물질적 역량이 총 집결된 행사가 천제였어요. 보은취회가 그런 천제가 되길 바랍니다. 천제라면 그 뜻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서 결의를 하고 자신들이 생산한 물자를 나누고 한바탕 대동놀이를 하죠. 당대에 그런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 가장 가까이 다가간 모습이 보은취회가 아닐까요? 그 길로 갔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 바람입니다.
안 될 것 같아도 되는 것이 이 보은취회가 아닌가 싶어요.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땅의 모습을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려면 그 싹이 여기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생각하고요. 그런 꿈을 꾸는 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사람이 아닌 어떤 존재라도 함께 이루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중심임을 깨달은 사람이 칸입니다. 그것이 개인이든 한 부족의 리더든, 한 나라의 리더든, 칸이라고 했어요.
“나도 칸, 너도 칸, 우리 모두 칸, 칸, 칸.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
이 말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보은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이 고향이기도 하고요. 동학을 안 지는 꽤 됐는데 행사에 참여는 작년부터 했어요. 동학혁명 영령들을 위한 위령제를 담당했습니다. 저와 위령제를 같이 준비하신 분들은 그래도 동학을 조금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요.
위령제를 지내는 것에 거창한 뜻은 없었고, 동학에서는 향아설위(向我設位; 나를 향해 위를 베푼다)를 이야기하지만 혼령을 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성을 다해서 위령제를 지내고 싶었습니다. 보은취회의 특성답게 위령제를 맡은 저희가 재물도 마련하고 스스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영령 위주의 위령제를 지내고 싶습니다. 제사의 방식은 같아도 조금 더 진중하고 엄숙하게 진행했으면 합니다. 보은에 살면서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이 안타깝기는 합니다.
동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올해와 작년의 행사를 보면서 뭔가 막연하게나마 이 많은 분들이 왜 해마다 여기에 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정말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년에는 보은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서로가 협조했으면 합니다.
대구에서 왔습니다. 3년 전부터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행사를 하기 위해 1년간 회의만 10회 가까이 합니다. 저는 올해 들살이부터 마지막 정리하는 날까지 참여했습니다.
보은취회에 참여할 때마다 123년 전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번에도 보은취회 현장까지 모여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대만 다르지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모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열정을 가지고 모이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동학이구나’ 도보로 순례를 하는 학생들과 짐꾸러미 보면서 ‘아, 그때도 그랬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보은취회를 흔히 민주주의의 출발이라고 말하지만 그 암울했던 시대에 돌파구를 찾고 기다렸던 민초들이 모였을 텐데 시장터처럼 시끌벅적한 느낌이었을까 성스러운 느낌이었을까도 생각했고요, 동학의 정신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이 시기에 올해 취회는 어떨까 걱정했는데 희망을 보았습니다.
특히 장승을 세울 때,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이 ‘나무할아버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눈물겨운 장면이었습니다. 저에게 큰 감동으로 와 닿았습니다. 밤새도록 타던 장승다비식을 마치고 나무할아버지 노래를 들으며 새 장승을 세우던 그 장면은 아마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장승이 늘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장승을 새로 세워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장승을 새로 깎는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있었지만 준비 단계에서는 크게 다가오진 않았어요. 그러다가 들살이 시작하고 박무열 씨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시작했죠. 들살이와 함께 장승을 만들었어요. 저희는 둘 다 목수입니다. 전문적으로 장승을 깎는 분들께 맡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장승을 깎았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어요. 두 목수가 모여서 장승을 만들어 보자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었죠.
저희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크게 준비한 것도 없이 동학의 의미를 담은 장승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무를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청주, 충주, 미원, 보은 등 나무를 가지고 있을만한 제재소, 목재소에 전화를 다 했죠. 그러다 보은 마로면에 큰 제재소가 있어서 가 보니 그때 마침 나무가 한 차 들어왔어요. 사실 장승으로 쓸 만한 나무들은 아니었는데 둘레나 크기가 딱 우리에게 맞는 나무였어요.
모양은 좋았는데, 장승은 원래 거꾸로 세우잖아요. 뿌리가 위로 가도록.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가분수처럼 생긴 나무였어요.
그런데 이번 취회의 주제가 ‘거꾸로 가는 동학’ 이잖아요. 거꾸로 가는 동학이니 뿌리가 꼭 위로 갈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그렇다면 뿌리가 아래로 가도록 해보자. 장승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고민을 했죠. 그리고 그날그날 작업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어요.
글씨는 대전에 계신 바우솔 김진호 선생께 부탁을 해서 새겼고요. 정답이 없는 장승이었어요. 장승의 표정도 ‘침묵’으로 정했어요.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난제였어요. 그때 저희가 내린 결론은 ‘학생들에게 맡기자.’였어요.
들살이 내내 그렇게 고민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하루하루 장승을 깎고… 그렇게 장승을 완성해 갔어요. 마침내 장승이 완성되고 장승을 세우던 날 개똥이어린이예술단 어린이들이 물감을 가지고 손으로 점을 찍어서 얼굴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종이배를 거꾸로 그리고요. 노란 리본을 그리기도 했고요.
몇몇 아이들은 흰색과 파란색을 섞어서 바다와 파도를 그리기도 했더군요. 우리가 생각했던 침묵의 의도를 아이들이 만들어낸 거죠. 그렇게 우리가 완성하지 못했던 장승을 아이들의 손으로 완성해 가더라고요.
모든 것이 처음이었어요. 장승을 깎은 것도, 아이들이 장승을 함께 만든 것도, 장승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도, 그런 장승을 세우는 것도.
어린아이부터 나이든 어른들까지 이렇게 보은으로 모여든다는 것, 너나없이 같은 마음으로 하나 되는 자리였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대동의 세상을 이루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보은에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보은에서 살게 된 지는 20년쯤 되었는데 보은에 살면서도 보은취회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좋아서 어울리다 보니 보은취회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이 행사에 조그맣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은에 살고 있다 보니 이런저런 도움을 줄 기회가 많은 편인데, 보람도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제가 더 고마움을 느낍니다. 보은취회 행사를 추진하는 접주들과 어느새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데 동생들이 생겨서 참 좋습니다. 작년에 향로를 만들었는데 올해 위령제 때 쓰였습니다.
그렇게 뭔가를 만들어내고 준비하는 일들,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119돌 때부터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어요. 120돌을 준비하면서 추진접주를 형성해냈고요. 정말 많은 접주들이 보은취회를 각자 스스로의 마당으로 꾸려나갔어요. 보은취회의 가장 핵심 키워드는 ‘생명살림’입니다. 여기서 어떤 마음들을 나누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 시공간의 해방구에 대한 그리움, 순수한 마음들에 대한 공감, 이런 것들을 통해 1년 동안 각자의 삶을 살면서 힘든 것을 풀어내고 현재의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 보은취회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일시적으로 행사를 크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여기 보은취회의 그 정신은 마음을 두는 사람들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모여드는 것, 현실이 살아있는 취회 판이 되는 것이 중요하죠. 해마다 행사를 치르면서 점점 거품이 많이 빠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자연스럽게 그 판이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동학을 말로 알리고 싶은 생각도 크지 않아요. 그걸 알리려고 한다면 보은취회는 오래 이어져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거든요.
보은취회는 만남의 마당이며 나를 만나며 성찰과 씻김, 너를 만나면서 소통하는 것, 우리를 만나면서 공심을 갖는 의미가 있어요. 내가 무엇을,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들 속에 선한 마음, 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꿈이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그렇게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이 너무 절박해서 차마 꿈이라 부를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보은에 모인 사람들은 12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허나, 거기 모인 크고 작은 꿈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어쩌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도 하였으므로 우리는 아직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그런 세상이 곧 올 거라고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