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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밥따로 물따로 원문보기 글쓴이: 아리랑고갯길
매일 만이천배 25년간 수행하신 월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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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님 그림
절ㆍ염불 삼매로 업장 소멸하면 화두 타파 쉬워 |
산문 밖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도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월성스님(성관사 대각선원장)은 한국 염불선을 중흥시킨 청화스님의 맏상좌이다. 40여년을 장좌불와(長坐不臥: 밤에도 눕지 않고 앉아서 참선하는 수행)하며 용맹정진한 스승에 못지 않게 엄청난 고행으로 염불삼매를 성취한 후 다시 ??이뭣고?? 화두를 타파한 선지식으로 알려져 있다. 청화스님이 오로지 ??나무 아미타불?? 자성염불(自性念佛)만을 강조한 반면, 월성 스님은 염불과 화두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데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계행을 철저히 지키고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철저히 수행해야 함을 역설한 것은 두 선지식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월성 스님의 구도의 역정과 그 수행의 성과는 어떤 것일까.
월성 스님은 21세부터 25년간, 초인과도 같은 원력으로 매일 1만 2천배 기도를 성취했다. 염불삼매를 체험한 뒤 49세에 본격적으로 참선을 시작해 통도사 극락암 경봉 스님 회상에서 한 달 하루 만에 ??이뭣고??? 화두를 타파했다고 한다.
월성스님이 계행을 철저히 하며 절과 염불수행에 매진하게 된 기연은 이렇다. 스님이 21세 때 해인사에 놀러 갔을 적 이야기다. 그 곳 원주 스님이 자꾸만 계를 받으라고 하는 바람에 60여 신도와 함께 얼떨결에 계를 받았는데 ??계를 지키겠느냐??? ??예!??하는 문답이 그 뒤로도 귓가에 쟁쟁했고, 그 때 절하는 것을 배운 후로 계속 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18세에 입대해서는 93일간 졸음을 참는 심한 극기훈련을 받은 덕분에 그 후로는 잠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1만 2천배 기도를 할 때에는 하루에 보릿가루 1컵만을 물에 타서 마시면서 『천수경』 121편, 『반야심경』 221편, 자신을 위한 참회의 절 3천 배, 신도를 위한 4천 배기도 등을 하셨는데 24시간 중 1분도 남는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31세에 전강 선사로부터 ??이뭣고?? 화두를 받았지만 본격적인 화두참구는 36세에 성륜사 조실 청화 스님을 은사로 모신 뒤 염불삼매를 얻어 득력한 후에 비로소 본격화되었다. 그동안 잠도 안 자고 용맹정진한 덕분에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힘도 들이지 않고 화두가 24시간 여여하게 들렸다. 한소식 ??쿵??하고 열리기를 세 번 경험하고 그 많은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가 한 생각에 열리고 나니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망상 피우는 인간의 삶이 너무나 가식적이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삼천대천(三千大天) 세계가 하나라는 자체도 없이 다 공함을 체득해 더불어 사는 세계가 열리게 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그 맛도 못 보고 서로 막행막식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는 것이다.
월성스님은 보릿가루 한 컵만으로 24시간 염불 및 절수행을 할 때는 불ㆍ보살과 조사ㆍ신장들의 가피력으로 한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며 겸손해 하신다. 그리고 스님이 만약 막행막식(莫行莫食) 했더라면 그 분들이 외호(外護)해 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견성 전이나 깨달은 뒤의 보임(保任)과정에서도 청정한 계행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월성 스님은 젊을 때는 몸을 조복받고 업장을 소멸하며 중생제도에 나설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편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망상과 분별심이 쉬어진 후에 마지막으로 화두를 들면 금방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화두를 타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인 때는 경을 부지런히 보고 여러 수행을 열심히 하더라도 참선에 들어갈 때에는 티끌도 남기지 말고 모두 버려야 한다고 법문한다. 배울 때는 열심히 하되 비울 때는 비울 줄만 알면 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다음은 월성 스님과 산길을 포행하며 나눈 일문일답이다.
- 참선하기 전에 보조수행으로 절ㆍ염불 수행을 하면 어떤 점이 유익한지요.
망상 덩어리를 없애는 데는 절만큼 좋은 게 없어요. 한창 1만 2천 배 정진을 할 때는 절하는 도중에 용광로 같은 불덩이가 세 번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어요. 엄청난 불덩이에 내 몸이 온데 간데 없이 다 타버리겠다고 한 생각 일으킨 사이에 어느새 그것이 지나가 버리고 나니, 몸뚱이만 사람이지 용심(用心)도 끊어지고 진심(嗔心)ㆍ음심(淫心)ㆍ사심(邪心)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심해져서 늘 있는 그 자리, 생활 자체가 바로 공부가 되더군요. 절 하기와 염불을 통해 스스로 망상을 정리한 후 화두를 잡으면 7일이면 화두가 타파된다고 확신합니다. 만약 스스로 준비 되어 있지 않다면 세월만 낭비할 뿐 화두 타파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절 하기와 염불 정진을 잡초, 즉 번뇌와 업장을 녹이는 김 매기에 비유할 수 있겠군요.
배추 씨앗을 밭에 뿌려 놓되 김을 매주지 않으면 잡초만이 무성하고 배추가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반면, 배추 밭에 잡초가 없다면 배추는 잘 자라게 됩니다. 이 때 배추 씨앗은 자성불(自性佛)에 해당됩니다. 다생의 윤회를 통해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용맹정진을 해도 어렵습니다. 수많은 전생의 수행을 통해 득력(得力)한 상태가 아니라면, 몸과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득력해야 합니다. 득력이 되면 자성불은 저절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 때 화두는 자연스럽게 타파됩니다. 참선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 지치고, 가르침도 받기 힘듭니다.
-절ㆍ염불ㆍ참선과 같은 구체적인 공부에 앞서 계행(戒行)을 비롯한 올바른 행을 중요시 한 까닭이 무엇인지요.
젊을 때는 인간 몸뚱이가 소중하다고 여기지만 행을 하면서 공부를 해 보니 우리 몸뚱이가 결코 소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을 갖고 있어서 탐욕, 성냄, 어리석은 마음을 내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것이지 한 생각에 삼독심(三毒心)을 버리기만 하면 불ㆍ보살도 곁에서 옹호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 불ㆍ보살의 외호 역시 살불살조(殺佛殺祖) 하는 선 공부의 입장에서는 장애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도 서너 번 보살님들이 주는 약과 감로수와 법공양도 받았지만 거기에 계속 집착하여 당연하게 받아먹으면 외도로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적당히 절제할 줄 알아야 해요. 어느 땐가 한 번은 내가 먹고 두 번은 옆의 스님을 주라고 동자에게 말했더니 ??그 스님은 평소에 행을 안하면서 밥도 많이 먹고 수마(水魔)에 빠져 있는지라 못 먹습니다.?? 하는 거예요. ??불성(佛性)이 없는 사람이 없는데 왜 못 먹느냐??고 주라고 하니 관세음보살님이 동자를 인솔하여 그 스님한테 갖다 주었지요. 그런데 그 스님은 그게 있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법에 눈을 못 뜨니까 밥을 가져 왔는지 공양을 가져 왔는지 전혀 모르는거죠. 그래서 호흡할 때 들어가도록 입에다 갖다 대주라고 했는데 입에 대자마자 재채기를 해서 밥을 다 흩어 버리고 두서너 알만 들어가는 게 보이더군요. 그러고 나니 그 수좌가 공부를 그렇게 잘할 수가 없었는데, 해제할 무렵 산에 올라가 비린 것을 먹고 나더니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더군요. 그 때 알게 되었지요. 행이 올바르지 않으면 공부가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요즘 수좌들은 법문해 줘도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취해서 자기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방일(放逸)하게 살아가는 이가 적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 계행 가운데서도 음식을 가리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행이 없으면 법이 없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 없어요. 누린 것, 비린 것, 계란 등의 음식물이 들어가면 그것이 망상으로 변하거든요. 서로 싸우고 원한 맺으며 죽은 짐승들의 고기가 우리 몸에 와서 칼로리로 변해서 영양분은 될지 몰라도, 그 수행자가 어찌 인욕바라밀을 행하며 평등한 삶을 살겠어요. 상추나 오이, 쌀이 성내는 것을 보셨어요? 그런 음식을 먹으면 성질도 안 나고 자연적으로 육바라밀이 행해져요. 청정한 공양이 저절로 되니까 싫은 사람도 없고 좋은 사람도 없고 늘 너그러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상대방을 대하게 돼요. 세상이 살기 좋고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공부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요. 편하게 살려고만 하면 공부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수좌들에게 오신채는 물론 초콜릿, 우유, 빵 같은 음식들을 절대 못 먹게 하는 거죠. 이렇게 3년만 음식을 절제하면 많은 악습이 떨어지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몸과 마음을 조복받아 업장을 소멸하면,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아집과 소유욕도 동시에 소멸되는 것입니까.
그렇지요. 나는 아집과 교만을 부리다 비구니로 아홉 생, 비구로 아홉 생, 모두 18생을 출가자로 태어났습니다. 아홉 번 비구 몸을 받았을 때 의상 대사로 태어난 적도 있지만, 교만한 마음이 있어 퇴보한 것입니다. 3생을 출가자로 태어나기가 어렵지만 비구니로 아홉 생을 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못난 사람, 못 배운 사람, 키 작은 사람을 무시하다가 그런 과보를 받은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아상(我相), 내가 잘 났다는 교만, 즉 한 생각이 이런 결과를 불러오곤 합니다. 아상과 아집이 강한 사람은 심지어 바위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돌부리 하나도 인연 없이 생긴 것이 없어요. 이런 일을 안다면 교만을 부릴 사람이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는 일없이 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 염불수행과 참선은 가장 중요한 양대 수행법인데, 이 두 방편의 장ㆍ단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절과 염불로 삼매를 얻어 무아의 경지를 체득하고 망상을 조복 받으면 화두는 저절로 타파되지요. 절삼매로는 무아(無我)의 세계를, 염불삼매로는 『화엄경』과 『법화경』에 나오는 불ㆍ보살의 세계와 33대천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두가 타파되고 나면 필설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우주와 하나 되는 절대세계를 경험하게 되지요. 염불삼매의 경지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탐ㆍ진ㆍ치가 멸한 화두삼매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지요.
- 염불과 참선의 차이점을 공부 경험담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염불삼매로 가피를 입고 업장소멸을 이룬다면 화두참선은 단박에 공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물론 염불삼매로 몸을 조복받아 중생제도의 길을 열 수도 있어요. 염불삼매에 들면 온 세상이 부처로 꽉 차게 되며, 세상 일을 다 알게 됩니다. 염불은 반야용선에 해당되는데, 극락에 들어가면 거기서 끝까지 공부하며 회향해야 합니다. 수천만 번을 점검받으며 공부하는 곳이 극락입니다.
내가 염불삼매를 체험한 뒤 선방에 앉아서 화두를 들기 시작하니 곁에서 외호해 주던 조사ㆍ국사ㆍ신장님들이 자연스럽게 물러나며 도와주던 수천만의 금강역사들이 떠나더군요.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타력(他力)은 떠나고 자력(自力)만으로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염불 및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간화선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요.
100일 동안 염불삼매에 들어 있었다 해도 깨달음은 아닙니다. 고요적적하고 법열이 있기에, 그 상태가 최고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역대의 선사들이 일념에 든 상태에서 화두를 든 까닭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모두 바보가 아니지요. 자나 깨나 화두가 한결같이 들리는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된 상태에서 화두를 챙기면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의정에 들어 주ㆍ객이 멸한 오매일여가 되면 1주일이면 깨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화두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안 참구가 불교 공부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 당시도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이뭣고?? 화두였습니다. 1700공안이 모두 ??이뭣고??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연기실상의 근원을 참구하여 견명성(見明星) 오도(悟道)하게 된 것은 조사선의 관점과 다를 바 없습니다.
- 견성 이후의 보임공부 과정에서는 어떻게 지어가야 합니까.
견성 후에도 업장소멸이 안 되면 보임을 잘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조복하지 못하면 경계를 대함에 여여부동(如如不動)하지 못해서 음심을 일으켜 음행을 하기도 합니다. 도인들은 보임을 하면서 경계에 끄달리는 지의 여부를 막행막식을 통해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업장소멸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 식(識)이 혼탁해져 퇴전(退轉)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공부할 때나 대상에 작용할 때나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는데, 끄달리고 마는 것이죠. 계행을 철저히 하지 않는 것은 마치 비단 천에 똥칠, 먹칠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견성 이후에도 계행을 철저히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도 하나의 본보기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후학들이 대도인과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서 막행막식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요. 마음과 행이 경계에 끄달린 모습은 아무리 숨겨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로는 안 되는 거죠. 그릇이 안 되면 거기에 무엇을 담을 수 없는 이치지요. 부처님께서 500생 동안 보살로 거듭 나고 죽으며 보살행을 닦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성문ㆍ연각 역시 전생의 공부가 바탕이 되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한번 열면(견성하면) 깨지는 일은 없습니다. 우주가 깨질 때는 너도 나도 없습니다. 깨침의 상태에서는 먼지 하나도 없습니다. 말을 갖다 붙일 곳이 없지요.
월간 선문화 6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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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따져보니 벌써 12년 전 입니다.
한참 도 딱아 본다고 이리저리 헤맬때 성관사 월성스님을 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북 고한 정암사 갔다가 전라도 쪽으로 내려가 성관사를 찾는데 벌써 밤이 깊어 버스가 끊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성관사입구까지 가는데 한밤중에 웬 노승이 포행을 하면서 택시 불빛에 고개를 돌리는 것입니다.
순간 노스님이 큰스님 같다! 짐작 했습니다, '노스님이 잠도 안주무시나?' 했었습니다.
언릉 내려서 자는 스님 깨워 큰스님 친견하로 왔는데 밤이 깊으니 잠잘 방이나 하나 달라고 당당히 말하고
객실을 배정 받았습니다.
근데 새로 지은 건물이고 아직 공사도 덜 끝나고 도배 장판도 금방 한 곳이라
도배 장판에 사용한 화학 접착제 냄새가 방안에 진동을 했습니다.
흐 발암물질인데!!! 피곤해서 그냥 이불 깔고 잤습니다.
2시간 정도 잤나 싶었는데 도량석 도는 소리가 났습니다.
며칠을 여기저기 밥도 제대로 안먹고 산천구경 다니다가 피곤했었는데,
몸과 마음과 정신이 마치 없어진듯, 너무나 가벼웠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가뿐하게 잠에서 깬 적이 그때가 첨이였습니다.
너무나도 잘 잤던 것입니다.
새벽예불 참가하고 절에서 밥하는 보살님들과 함께 아침을 얻어 먹고는
시자스님의 안내를 받아 월성스님을 만나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월성스님이 뭐 하는 스님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아는 분이 한번 찿아 뵈면 뭔가 얻어 들을기 있다는 말에 무작정 찾은 것입니다.
지금 기억으로 생각해 보면 그때 나무덩굴같은 것으로 만든 의자에 웬 좀 까무잡잡한 노스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3배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제 밤늦게 왔는데, 어째? 잠은 잘 잤어요?" 하고 월성스님이 먼저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대번 알아 들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잠을 잘 자고 가볍게 일어난 적은 처음입니다."
하면서 저는 큰스님 가피력에 감사함을 은근히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월성스님이 허허허 하고 받아 웃어 주셨습니다.
수행에 대해서여쭙자
"화두도 중요하지만 일단 하심下心을 해야 합니다. 하심을 하지 못하고 어찌 삼매에라도 들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셨습니다.
'어! 뭔가 틀리다.!' 하는 생각이 퍼득 들었습니다.
그냥 얼핏 보기에 초라한 노스님인줄 알았는데,
정곡을 찌르는 뼈 있는 소리였습니다.
순간 고개를 들어서 저는 노스님 얼굴을 쳐다 봤습니다. (제가 궁금한게 많아서 어떤 스님인지 자세히 볼려고.)
근데 새까만 눈빛이 무섭게 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무서운 눈빛!
언능 고개를 떨구고 다른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를 한참 하다 보니 그냥 친근하게 느껴지고 부담이 없었는데,
처음 고개를 들어서 본 그 빛이 뚝뚝 떨어지는눈빛은 좀 섬짓 했었습니다.
간곡하게~
간곡하게~
저를 보고 이렇고 저런 길을 가야한다고?
걱정스런 목소리로 제 앞길에 충고를 해 주셨는데,
지금은 그때 월성스님 말씀관 다른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그 스님 말을 들었으면 좋을 것을 하는 생각도 가끔 했지만,
또한 생각해 보면 다 똑같습니다. 그 길이나 이 길이나, 분별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후 독한 마음을 먹고 100일간 숨어서
참선수행을 했었습니다. 거의 1년 이상을 아무게도 연락 안하고 살았던 시절이였습니다.
집에선 가출신고를 해 놨고, 주민등록 말소까정 해 놨더군요.
예비군 훈련을 1년 이상 안받으니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때 수행적으로도 많은 체험을 했었습니다.
월성스님 말씀처럼 하심하지 않고선 삼매에 들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고
화두수행도 그냥 마음공부가 아니라 한생각에 기운이 붙어서 지속되어 흐르는 기틀이 잡히는 것을,,,
힘을 빼면 뺄수혹 더 힘이 붙던 것을,,,
몽땅 힘을 뺀 자리가 전부 채워지는 자리라는 것을
득력이라는 것을,
또한 업장덩어리론 앉아서만 참선이 아니란 것을
업장, 즉 마음의 집착이 다 풀린 사람은 3일, 7일, 21일 이면
몰록 내려놓고 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선정에 들고 생각과 마음이 멎으면
내 몸속의 병든 부분도 스스로 정화가 되고 기운이 매달려 운기가 되고
병도 고쳐지고 하는 경험을
살짝 체험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오늘까지 막행막식도 하면서 지내 오고 있네요.
역시 수행이란 계율이 가장 큰 밑천이란 것도 체험하게 됩니다.
계율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식사에 대한 법도란 것을...
그리고 일상 생활 모든 것이 다 수행의 토대라는 것을
매사 현실에서 부딪히는 그 순간에 마음 하나 내려 놓는 것이
결국 나중에 정좌수행시 마음하나 내려 놓아 견성함에 핵심적인 밑천이 된다는 것을
견성한 자나 견성못한 중생이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삼독심을 내려 놓고
자유로와져야 한다는 것을...견성한자나 못한자나 습기를 닦아 감은 똑 같은것.
그 중에 가장 어려운 욕망이 식욕, 색욕, 수면욕(게으름) 이란 것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행이 있다면, 바로 밥따로 물따로 먹고 소식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량을 일정하게 섭생하는 것!
윗글에 보면 월성스님이 보리가루 한컵만 먹고 하루젱일 1만2천배 절을 했다니...
과학, 영양학으론 도져히 설명 불가능할 것 입니다. 히
......그때 월성스님 잠깐 만나뵙고 나오는데 모시는 시자와 이야기를 했는데,
월성스님의 능력에 대해서 막 자랑을 하시더군요,
그 시자 스님이 동국대 출신스님이라 하셨고, 금강경 봉독을 하면서 염불선 한다더군요.
그러면서 월성스님께서 하루 3천배씩 20여년을 절수행 하신 분이라 하시더군요...
그때 그 시자스님 얼굴이 굉장히 맑았었습니다. 사람은 사람덕을 분명 봅니다.
크고 휼륭한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 알게 모르게 가피력, 감화를 입고 결국 못도 자석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 느낀 제 생각은 월성스님이 너무 초능력적인 것들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보니 인터넷에 월성스님에 대한 기사가 있기에 12년 전 일이 생각나서 끄적거려 봅니다.
........................
들리는 소문엔 한때 인천 용화사 전강스님 법회때 전강스님이 부르시더랍니다.
가까이 가자 전강스님께서 여기 스님과 신도들 2천명 모였는데 수행할 사람은 자네 밖에 없네! 하시며
이뭣꼬 화두를 주시더랍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로 월성스님께서 확철대오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제가 견성을 안해봤으니 점검할 길은 없네요. ㅎ
분명한 것은,
수행중 생긴 초능력은 깨달음을 방해하는 쥐약과도 같습니다.
거기 매여 버리면 사이비 교주나 될 뿐입니다.
아무튼 월성스님, 배울점도 있고 좀 받아 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수행을 해야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일상생활 다가오는 모든 경계를 피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 들여 녹여 나가는 그 정성스런 삶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간절한 1배의 절이 1만배의 절보다 더 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그런데 마지막
[그리고 초인적인 수행을 해야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일상생활 다가오는 모든 경계를 피하지 않고순순히 받아 들여 녹여 나가는 그 정성스런 삶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간절한 1배의 절이 1만배의 절보다 더 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은 안적으신 것이 좋을 듯 했어요.
예 그렇군요 저도 스크랩이라서요....관세음보살..()..
감사히 너무 잘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정말 잘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