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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만 있는 줄 알았지 '감정노동'도 있다는 것을 나는 2010년에 처음 알았다. 출판사 이매진에서 펴낸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저자는 책에서 '감정노동'을 이렇게 정의한다.
"항공기 승무원은 기내 복도 사이로 무거운 기내식 카트를 끄는 동안에는 '육체노동(physical labor)'을 하고, 비상착륙이나 비상 탈출에 대비하거나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정신노동(mental labor)'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승무원들은 또 하나의 노동을 수행한다. 나는 이것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고 부른다. 감정노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게 한다."
책을 읽으며 또 한번 놀란 것은 이 책이 미국에서 첫 출간된 것이 1983년으로, 그러니까 무려 30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동안 우리 사회에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인지? 이 분야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학계에서 아직 감정노동을 정신노동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이후 우리 언론에도 가끔씩 감정노동 문제가 다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 2013년에는 국민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른바 '라면상무', '빵회장'으로 불리는 사건 때문이었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한 대기업 상무가 온갖 트집을 잡으며 여승무원을 괴롭히다 잡지로 얼굴을 때리고, 어느 베이커리 회장이 이동 주차를 요구하는 호텔 지배인을 장지갑으로 후려치는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공분을 산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출간된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의 《감정노동의 진실》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오로지 돈과 성공, 그리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 성과와 돈을 위해서는 인격마저도 마구 짓밟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며, 그런 차원에서 감정노동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혹실드가 정의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고객만족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감정을 자본에 예속시키는 행위'라고 말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저자는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감정노동의 고통이 간단히 '힐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심각한 감정노동의 현장을 고발하고, 진화심리학과 뇌과학, 문화인류학, 경제학과 미래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감정노동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또한 저자는 무조건적인 고객만족을 강요하는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며, '고객은 왕'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정노동자를 존중할 때에만 '왕'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대안을 제시한다.
"감정노동자를 무시하고 인격적 침해를 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블랙컨슈머, 진상 고객의 설 자리도 없애야 한다. 그들에게 무한 친절을 베푸는 것은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악용하게 만들어 금전적 손실은 물론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인격적 권리인 '감정노동 방어권'을 허락해야 한다. 악성 고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회사에는 더 큰 이익이 돌아가고, 위험사회를 안전사회로 만드는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자본주의 4.0 시대의 문을 여는 길이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의 계산원과 판매원, 호텔이나 음식점의 종업원 등 감정노동자들이 보여주는 미소 뒤에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통이 숨어 있다. 제품에 하자가 있다며 화를 내며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거나 보상을 바라는 고객은 부지기수고, 제품 구입 후 마음이 바뀌자 수 차례 배송과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심지어 모욕적인 언사에 성희롱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고통조차 가슴에 묻고 미소로 고객을 맞아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슬픈 운명. 대체 어떡하면 좋을까?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니 그 정도의 모욕이나 모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고객은 왕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그 당사자가 여러분의 형제자매인데도, 여러분의 자식인데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1차적으로는 '고객은 왕이니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고 부르짖는 기업이 이러한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응분의 대우와 배려를 해줘야 하겠지만, 고객들 또한 '나는 고객이니 왕처럼 대우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보다 그들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배려하는 것이 참된 고객의 자세가 아닐런지….
자료에 따르면 이렇듯 감정노동에 노출된 대한민국의 서비스업 종사자의 수가 1,000만명이라고 한다. 이는 곧 감정노동의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감정노동의 진실과 해법'을 다룬 이 책은 온 국민이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한다. [출처] 인간의 감정마저 자본에 예속시키는 감정노동의 진실|작성자 솔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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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곽숙철 대표님 강의때 뵈었었는데..서평을 쓰셨군요^^
나날이 진면목을 보이십니다.
늘 응원합니다. 아자아자화이팅!!!
감사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