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첫 번째 로셀리니 영화. 실제 스트롬볼리 섬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으며 버그만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섬의 주민들 가운데서 캐스팅된 아마추어들이었다. 로셀리니가 버그만과 함께 작업한 삼부작ㅡ<스트롬볼리>, <유로파 ’51>, <이탈리아 여행>ㅡ 가운데 처음 만들어진 영화로 버그만은 여기서 어부의 아내 카린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발표 당시 다큐멘터리 자료 화면을 활용한 것으로 오인되기도 했을 만큼 생생하게 포착된 다랑어잡이 장면은 널리 회자되는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전쟁이 끝난 후 리투아리아인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카린은 수용소를 나가기 위해 스트롬볼리의 젊은 어부인 안토니오니와의 결혼에 동의한다. 카린은 남편과 함께 스트롬몰리에 가지만 그곳의 험한 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게 된다. 황폐한 환경과 주민들의 적개심은 그녀가 이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의 포로가 되었음을 느끼게 하고 이 섬을 탈출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신의 도움을 청하면서 화면은 종결된다.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로셀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의 출발을 알린 <무방비도시>(1945)와 <전화의 저편>(1946)을 만든 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로 건너가 <독일영년>(1948)을 만들었다. 그는 영화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선구자일 뿐 아니라 고전영화의 범주를 벗어나는 ‘모던시네마’를 창안했으며,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고 영화와 TV라는 매체를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사유하고, 자신의 성찰을 이미지와 소리에 담아냈다.
또한 그는 할리우드의 스타인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로 인해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할리우드 자본으로 이탈리아의 아주 작은 섬에서 찍은 <스트롬볼리>는 이질적인 두 가지 세계의 충돌이 내러티브를 관통한다. 외부인과 내부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 할리우드는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스타와 현실과 대면해야 하는 모던시네마의 배우를 통해 버그만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스타의 이미지와 로셀리니로 대표되는 실재가 만나게 된다. 삶과 앎, 영화의 현실을 관통하는 화산 폭발 장면은 넘실거리는 용암만큼이나 무수한 질문을 제기한다.
로셀리니가 ‘믿음의 재발견에 대한 영화’라 언급했듯이 신과 피조물, 환경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대해 묻고 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실제 스트롬볼리 섬에서 촬영했고, 버그만을 제외하고는 섬 주민들을 출연시켰다. 로셀리니의 작품을 본 버그만이 같이 일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낸 후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만든 작품이며, 두 사람의 교제와 결혼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