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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학 학위수여식 축사
올해는 유난히도 2월의 추위가 한겨울 추위만큼이나 추웠던 한 해였습니다만,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려서, 어려움 걸음을 해주신 여러 학부모님, 친지님 그리고 졸업생 여러분을 축하해주는 날씨인듯이 보입니다. 지난 4, 5년 길게는 6-7년 동안 여러분이 꿈을 키우고, 학문의 길을 걸어보고, 친구들과 토론하고 생각했던 나날들은 이제 오늘로 일단은 마감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졸업생 여러분들과 여러분을 오늘까지 물심양면으로 서포트해주신 부모님 친지 여러분 모두에게 매우 뜻깊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오늘은, 여러분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국민의 기본 교육 12년을 마치고, 수많은 어려움과 경쟁을 뚫고, 최고의 고등교육 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삶을 마무리하는 뜻깊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오늘 이 자리에 서기 위해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거의 대부분, 다시 말해 20여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의 대부분을 이 자리에 서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난생 처음으로 받게 되는 인문학사 학위, 영어로 Bachelor of Arts, BA라고 하는 학위는 일종의 학위기 즉, 깃발 Flag이자, Pennant입니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여러분의 노력과 성취를 증명하는 일종의 훈장이면서, 동시에 여러분의 앞으로의 인생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듭입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깃발과 훈장은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어떤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여러분을 평생 따라다닐 겁니다. 여러분의 학위기를 제가 구지 "훈장"이요 깃발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누구보다 여러분의 부모님, 형제 자매, 그리고 많은 선배들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이 값진 훈장과 깃발의 제일 공로자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대학의 학위기를 얻기까지의 노력과 좌절, 싶해의 쓰라림과 짜릿한 성취의 만족감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그간의 노고를 취하하는 꽃바구니의 장식이자 트로피의 리본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표현하는 영어의 일상어에 아주 짧고 좋은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You guys earned it!".
여러분의 깃발, 여러분의 학위기는 여러분의 자부심, 여러분의 프라이드의 상징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의 깃발은 이제까지 20여년간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또 사랑으로 키워주신 여러분 부모님의 인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하나의 매듭입니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듯, 여러분은 이제 " 다 컸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21세기 한국 사회, 나아가 글로벌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제 여러분은 "최고의 학부를 나온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서, 배운 사람답게, 또 배운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담이지만, 여러분이 오늘 졸업장을 받아들고, 학위기를 받는 순간, 여러분은 여러분이 태어난 순간부터 여러분을 부양해온 부모남의 부양가족이 더 이상 아닙니다. 보다 알기 쉽게 말하면, 예컨데 지난 20여년간 4인의 부양가족을 물심양면으로 서포트해오신, 아버님은 오늘부터, 4인이 아니라 3인의 부양가족을 거느린 가장이 됩니다.
물론 매년 년말에 하는 연말 정산에서도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카운트되지 않는 독립된 존재가 되는 날입니다. 제 자신, 우리집 큰 딸애가 바로 작년에 졸업을 하고 나서야 이것을 알았습니다.)
외대를 다닌, 그것도 모든 학문의 꽃인 인문학을 배운 여러분은, 서양에서는 졸업을 "시작"과 "출발"을 의미하는 "commencement"라고 부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한국인, 즉 한국의 성인으로서의 인생의 출발점에서, 이제까지 수년간 교단에서 여러분을 가르친 사람으로서 한 가지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가지 이 자리에서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짧으면 짧다고 할 지난 4년간, 우리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가슴으로 느껴보았습니까? 정확히 33년전 여러분처럼 졸업장을 받아들었던 제 자신이,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그 고생고생해서 들어왔던 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솔직히 그 순간을 돌이켜보니, 도대체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도 졸업식은 꽤 쌀쌀한 2월 말경이었고, 그 해 3월에 저는 연기했던 군복무를 하러 입대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보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인생의 선배로서, 제가 가졌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첫째,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33년전의 제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지난 33년을 돌이켜보면, 대학을 다니며 품었던 많은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심지어 그 당시에는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이것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생각조차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씁니다. 인간은 실수하는 동물이고, 인간이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는 것을 "학습, 또는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짧은 4년의 대학 생활에서 무엇을 배웠는가?"하는 의문의 답은 "거의 모든 것"이라는 것이 정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이랍시고 생각해서, 이것 저것 관심을 기울였던 학문과 과학의 분야들 나아가 지금도 제가 연구하고 있는 철학이라는 학문분야조차도, 그때는 열심이 듣지도 않고, 결석을 밥먹듯 하면서 귀동냥했던 대학시절의 경험한 학문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씁니다.
나아가 대학을 다니면서 좋아했던 음악, 가수들, 밴드들, 좋아했던 문학 소설과 영화 그리고 작가들, 심지어 좋아하는 혹은 지극히 싫어하는 술의 종류까지도, 지난 33년 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 그저 좋아서 만나서 쓸데없는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삽니다. 대학 떄 열심히 뒤쫓아다니던 아가씨와 운좋게 결혼해서, 예쁜 딸들을 둘이나 나아서 살고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학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것, 대학 때 관심과 흥미가 생겼던 것 그리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했는가 하는 것들이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대부분의 중요한 형식과 취향을 결정합니다. 실은 여러분은 대학에서 짧은 인생에서 그 궁극의 맛을 음미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배운 겁니다.
물론 출발선에선 여러분은 저의 이런 말이 실감이 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외대에서 지난 24년간 1년에도 수백명, 합치면, 수천 수만명의 여러분의 선배들을 가르쳐본 저는 여러분께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가르친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대학의 교육과 대학의 삶 자체의 가치를 의심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학에서 배우고 느낀 모든 것을 사회에 나가서 응용하고, 개선하고, 또 필요하면 창조해내는 일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물론 여러분 앞에 달콤한 꽃길만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가깝게는 여러분의 부모님이,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인문대가 배출한 이젠 벌써 천 명이 넘어가는 여러분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세상에는 무를 수 없는 관계가 적어도 세 가지 있습니다.
부부는 혹 이혼할 수 있지만, 부모 자식은 무를 수 없습니다. 또한 사제 관계도 무를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영원한 부모이듯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입니다.
끝으로 선후배 관계도 무를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의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선배들은 여러분 인생의 운명적인 아군이란 말이 됩니다. 저도 단지 여러분을 가르쳤다는 그 인연으로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든 여려분의 안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해 줄 사람이 있어서 인생은 따뜻해지고, 또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보다 넓게는 지구 모퉁이 어딜 가나 10만 외대 동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 은사, 여러분의 선배 후배, 여러분의 동문은 여러분의 영원한 아군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 짧은 부탁으로 이 축사를 마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멋지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길 바랍니다. 절대, Never ever, 여러분의 깃발에 대한 자부심과 프라이드를 잊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2012년 2월 24일 인문대 학장 임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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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때 부학장으로 철학과장으로 학위 수여식에 참석해 들었는데, 임일환 학장님의 감동적인 축사였고, 기록할 가치가 있다 생각해 올립니다. 여러 동문들이나 우리 카페를 방문한 여러분들도 읽어보시고, 학위수여식 때의 감동과 추억을 떠올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