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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국에 가는길 (요14:1-7)오늘 저는 예수 믿어 천국의 영역에서 살지만 천국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좋은 안내가 되리라 믿습니다.오늘 저는 그 자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우리가 천국에 들어 가는 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내 공로로서는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벧전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가 천국 문 앞에 서니 한 천사가 암호를 대라고 했습니다. 헌금 많이 했다는사람,도덕적으로 깨끗했다,나는 존경 받았다, 인기있었다,나는 성직자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역시 “당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느 할머니 한 분이 그 문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는 내 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지만 손을 높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공로 없도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러자 즉시 천국의 진주문이 열리고 그 영혼은 천국의 합창단 노래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그러므로 내 공로로는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옆에 함께 달린 십자가의 강도도 자기 공로로는 천국 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구주이신 줄 알고 그에게 자신을 부탁했을 때 그 날로 천국 낙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자가 들어갑니다. 마16:16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했습니다. 그러시면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다 했는데 학자들은 천국 열쇠란 이 참된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천국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행14:22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하였습니다.이 말씀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지상에서 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하는데 이 시험을 다 이겨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믿음을 방해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승리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렇지 않고 주님을 배반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지상에서 환란을 겪도록 놔두실까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서 내 의지를 꺾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좀 이런다고 하나님 버리고 좀 저런다고 신앙 버리지 마시고 끝까지 시험을 다 이기고 천국문에 이르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4. 천국에 들어가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마7:13-1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좁은 길이란 어디 일까요? 신앙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반대로 넓은 길은 세상길이요 쾌락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세상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합니다. 우리가 예수 공로로 천국 가지만 죄악된 모습으로 들여보내지는 않습니다. 깨끗이 씻어서 들여보냅니다.(계22:14)깨끗함,겸손(마18:3)큰 곳만 찾 지말고 작은곳에도 힘쓰는 자가 됩시다
5.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갑니다. 요3:3-5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거듭남은 예수님을 믿을 때 되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도마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대답하셨습니다.즉 예수님만 믿으면 그 다음 일은 예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거기서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집을 지어놓으시고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현세와 내세의 천국에 모두 들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아멘으로 감사 고후1:15-20 (10.11.21)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쓰는 단어는 4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은혜와 감사와 아멘입니다. 이 4가지는 언제든지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중에서도 아멘은 모든 성도들이 합창하듯이 하는 말입니다. 모든 기도의 끝에는 언제나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말씀에 은혜가 있을 때에도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목사는 설교 중에 성도들이 아멘이라는 화답이 나오면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화답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목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는 아멘만 잘해도 충분히 힘을 줄수 있습니다. 아멘을 할 때는 웃은 얼굴로 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얼굴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멘이 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생활 속에서 아멘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말이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라는 말은 내가 받아들이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말씀에 아멘 할 때마다 그 아멘 한 말씀은 여러분의 소유가 됩니다. 여러분의 것이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아멘을 많이 하면 그만큼 여러분의 영이 말씀으로 풍부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멘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은 여러분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아멘으로 여러분의 삶이 주님의 은혜와 은총으로 가득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어느글에 보니
(청주시 청석교회에 조동식 집사님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조동식 집사님은 대학 교수입니다. 자기 집안은 14대째 외아들만 태어났답니다. 14대 외 아들인 형님이 일찍 결혼을 하여 형수님이 시집을 왔는데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형수님을 모시고 교회에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 우리 집에는 자손이 귀하니 시집온 우리 며느리가 아들을 많이 낳도록 안수 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새 며느리에게 아들이 많이 생산되도록 안수 기도를 하고 “아멘”하라고 했는데 이 젊은 색시가 부끄러워하면서 “아유 몰라유”그러면서 ‘아멘’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답답해서 “아멘”하라고 재촉해도 또 “몰라유 창피해유” 그럽니다. 목사님이 또 간절히 기도한 후 ‘아멘’하라고 해도 또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안달이 나서 “아멘, 아멘”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아멘”을 한 시어머니가 임신을 하여 10달 후에 애기를 낳았는데 그게 바로 조동식집사 자기랍니다.)
오늘은 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을 우리 인간들에게 주셔서 우리가 살아 갈수 있도록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 사실에 아멘 할 수 있다면 그 아멘의 감사의 아멘이 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나에게 주셨다는 것의 신앙고백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의 또 다른 의미는 감사에 있는 것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여러분의 삶의 모습 속에 아멘으로 감사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시 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도바울의 자신에 대한 변론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방문하는 일들을 약속했었는데, 그때마다 바울에게 사정이 생겨서 그 방문계획을 4번씩이나 번벅하지 않은면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놓고 고린도교회안에서 바울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울의 신실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 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지금 마케도니아교회 성도들이 준비한 헌금을 가지고 각 교회 대표단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을 고린도교회에 전달한 것입니다. 즉 고린도 교회도 이 헌금에 동참을 하면 바울이 그것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헌금문제와 관련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보여준 행동은 신실하지 못하고 언행이 일치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이런 거액의 헌금을 맡길 수 있느냐? 는 의문은 제기 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자기 자산의 모습을 변론하면서 오늘 본문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의 변론에 대해서는 그는 철저하게 자신은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계획이 몇 번이 번복이 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예” 가 되겠다는 것과, 더불어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는 사실로 자신을 변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긍정적인 믿음에 대해서 아멘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합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이 대답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스맨”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스코틀랜드 출신의 희극 작가인 ‘대니 월리스’의 자전적인 소설인 “예스 맨(2005)”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NO”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살며, 바깥출입을 잘 하지 않고 혼자서 집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매사에 부정적인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항상 “안 된다”, “싫다”, “귀찮다”를 입에 달고 살았지요. 그런 그가 친구의 권유로 “긍정적인 사고” 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가입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모든 일에 “YES”라고 대답하는 것이 그 프로그램의 규칙이었는데요. 이 규칙에 따라 그는 “오케이”, “할 수 있다”, “기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사람은 여러 가지 혼란과 소동도 경험하지만, 그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기회를 접하고, 또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 갑니다. 주인공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예스라고 말하고 그렇게 행동했더니 나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기회들이 더 많이 생기더라.” 그러면서 “YES라고 했다면 찾아왔을 수많은 기회를 그 동안 NO라고 하는 바람에 내 쫓겨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해병특수수색대 특수부대 출신이라 교육을 모두 통과해야 특수 요원이 됩니다 기본교육 수색교육도 받고 7일동안 밥도 물도 안주고 스스로 해결하게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낙하산을 짊어지고 뛰여 내려야 합니다 바다속 잠수 훈련도 해야 합니다 산속에 들어가 레펠 훈련도 하고 삼군의 특수 교육을 다 받아야 합니다 모든 교육에 YES 즉 아멘 해야 하고 교육을 다 받아야 특수 요원이 됩니다
만약에 NO 하고 안받으면 즉시 퇴고 당해서 일반 해병으로 되돌아 갑니다 그래서 해병대 들어가서 기본교육과 특수교육 다 포함해서 1년정도 특수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작고 부족하지만 성경에서 배운 아멘의 신앙이 있어서 특수 요원이 되어 대한민국 1%가 된 사람입니다
연약하고 약하니 훈련 하셔서 특수 요원 되게하시고 또 해외 여러 나라에 보내셔서외국에서 7년을 훈련 하신후에 새벽에 기도할때에 4년째 “야 네인생이 무엇이냐?
음성을 듣고 3년동안 성경을 읽어 깨닫고 인생은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영광 영혼 구원 이라는 말씀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학을 열심히 배워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 말씀이면 바울의 아멘의 정신과 군대정신 YES맨으로 "예 "아멘" 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 합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YES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 눈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보여도 그것 마져도 우리가 “YES” (예) 라고 하면 우리의 삶은 긍정적으로 뒤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예스맨이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바울은 지금 고린도로 가려던 계획이 4번씩이나 바뀌게 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고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바울을 줏대없는 사람, 으로 몰아가지만 바울을 분명하게 고백하기를 나는 사람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예, 아니오! 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예” 라고만 말하는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 즉 “예” 라는 대답을 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 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았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의 신앙을 얼마나 욕을 했을까요! 어떻게 자기 아들을 칼로 잡아서 짐승처럼,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릴 수 있을까! 이 얼마나 잔인한 하나님이고, 그리고 잘못된 신앙에 빠져있는 아브람인가! 하면서 얼마나 비난을 살 수 있는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라고 대답하기 위해서는 따라야할 믿음이 많이 있습니다. “예”라고 대답하기 위해서 치러야할 희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희생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을 주신다는 믿음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되게 하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때가 되면 주님이 그때 왜 우리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시고, 그 앞에 예라고 하게 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무조건 “예”라고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선한 것으로, 좋은 것으로, 결국에는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이 주셨던 그 은혜, 그 좋은 것에 감사하는 것처럼, 결국에는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예” “아멘”했던 것들이 여러분에게 축복으로 닿아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감사의 믿음에 대해서 아멘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19절에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니오 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예”라고만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금식후에 예수님께서 꼭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야만 하셨겠습니까!
아니! 예수님이 금식을 해야할 필요가 있으셨을까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금식을 하셨고,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의 고민은 정말로 심각했었습니다. 정말로 NO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것을 “예”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래야만 인류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명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모든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라고 하는 따뜻하고, 안전한 집을 지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면 밤에도 춥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는데, 우리는 교회라는 곳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교회가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내가 놀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도 못하게 느낍니다. 교회가 있어서 왠지 불편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같습니다. 나를 죄인 취급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준비해주신 정말로 좋은 곳이라는 사실, 정말로 따뜻한 곳이라는 사실, 정말로 안정한 곳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앞에 십자가라는 것을 놓았습니다. 얼마나 불편합니까!, 얼마나 싫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예”라고 대답하시고 순종을 걸음을 걸아 가셨습니다.
오히려 저 십자가로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예수님은 감사로 받아들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도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예만 되셨던 것처럼,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섭리의 믿음에 대해서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예” 했다면 그것은 또 나의 것으로 “아멘” 하라는 것입니다. “아멘”한 것은 감사입니다. “아멘”한 것은 찬송입니다. “아멘”한 것은 영광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는 “예”라고 말하기가 힘이든것도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밖에서는 그런것들이 충분히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예수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 즉 예수 안에서 처다보게 되면 무엇이든지 “예”가 될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안에 있을 때에 모든 것이 "예“가 되지, 예수 안 믿으면, 세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예수 안에 있어서는“예” 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있는 섭리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나보고 “예”라고 대답하라고 요구 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통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예”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곳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예수님처럼 “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계획을 수없이 바꾸는 일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일이 되었다 하다라도,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하나님 말씀 앞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삶이되기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아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리고, 그것이 지금 내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주신 것들이라고 한다면, 비록, 땀을 흘리고 일을 했지만, 열매가 없고, 결실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감사로 받을 수 있어야 “아멘”의 신앙이 되어 집니다.
한해의 결실이 매년 풍부할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때로는 실패를 할수도 있고, 때로는 빈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 마져도 하나님앞에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고, 오늘의 상처와 아픔을 주신 주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내일의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환경을 “예”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멘”으로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은 더욱 성숙해지고, 풍성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부정적 인 것도 긍정적인 것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큰 복으로 찾아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의 수준인 하박국선지자의 감사
“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이런 놀라운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께 영광 영혼구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린도 전서 10:31~33)
‘위하여’ ‘나만을 위하여’ ‘너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셋 중에서 ‘나를 위하여’ ‘오직 나만을 위하여’를 고집하는 사람을 ‘개인주의자(個人主義者’) 아니면 ‘이기주의자(利己主義者)’ 라 부릅니다.
그러나 ‘너를 위하여’,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하여’ 사는 사람을 ‘이타주의자(利他主義者)’ 라고 부릅니다. 세상은 자기만 아는 개인 주의자를 존경하거나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거나 섬기고 봉사하며 사는 이를 존경하고 칭찬 합니다.
‘교육’을 의미하는 말 중에 ‘히누크’라는 히브리어가 있습니다.
‘히누크’의 의미는 섬기는 것, 봉사하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의 중심은 ‘히누크’(hinuk)여야 합니다. 배워서 하나님께 영광 영혼 구원을 위하여 이웃과 국가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배운 그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는
이기주의자, 개인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배운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영혼 구원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이타주의자입니다.
그러므로 배워서 남 주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배워서 남 주는 훈련을 해야 그가 존경받는 리더가 됩니다.
‘배워서 남 주자!’ ‘벌어서 남을 위해 쓰자!’ 오늘 본문에
1)먹는것 마시는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하나님의 교회에나 세상에 거치는자가 되지말고
3)나와 같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4)나의 유익만 구치 아니하고
5)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영혼구원 하라 고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이웃 영혼 구원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그 사람이 존경받는 사람, 축복받은 사람, 역사에 기리 남을 위대한 사람입니다.
어느글을 보니 혹자는 일본인을 진흙에, 한국 사람을 모래에 비유 합니다.
한 알갱이 한 알갱이는 별 볼일 없지만 뭉치면 단단한 진흙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들 같은데 협동과 단결로 큰 힘을 발휘하는 일본인들, 한 알갱이 한 알갱이는 단단하지만 둘 이상 모이면 흩어지는 모래처럼 둘 이상만 모였다하면 서로 나뉘어 싸움질하는 한국인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산다’고 절규하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외침은 사탄의 날뛰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아서 해방을 받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교훈의 말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뭉쳐야 삽니다. 예수님 앞에서 가족이 뭉치고, 교회가 뭉치고, 나라 백성이 뭉쳐야 삽니다 이 세상은 말없이 흘러 갑니다 누구나 끝날 날이 옵니다 어느 글에 보니.......
“단지 15분 ”
서양 연극 중에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가 주인공인 '단지 15분' 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 부터 총명했다.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심사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이제 학위를 받을 날짜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고 그의 앞날은 장밋빛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정밀 검사 결과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그는 망연자실했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갔다. 이제 남아있는 인생은 10분이었다. 이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억만장자였던 당신의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십시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운명의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 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다.
'당신의 박사 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왔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 전보도 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15분이 다 지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에는 시간은 불과 15분처럼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글에 보니 루시우스 세네카 라는 사람은 -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세월은 너무나 빨리 지나 갑니다
그러니 생명이 있는한 즉 우리 성도들은 살아 숨쉬는 동안 먹든지 마시든지 교회나 세상에 거치는자 되지말고 자기유익 구하지 말고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하나님께 영광 영혼구원 하다가 주님 앞에 가서 면류관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