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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혜로운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경이로움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설교 모음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첫날
1. 죄를 용서받고 그 죄가 씻겨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2. 주께서 그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 마음에 거짓이 없는 사람은 복되고 복됩니다.
1.마음열기
-어떤 부인이 초대 받은 만찬장에서 유명한 미술가 존 러스킨에게 값비싼 손수건을 내보이며 투정 부리듯 말했습니다.
"이 손수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것인데 누군가가 여기에 잉크를 쏟아 버렸어요. 이 비싼 손수건이 얼룩져 쓸모 없게 되어 버렸어요."
그러자 러스킨이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그 손수건을 며칠만 제게 빌려 주십시오."
러스킨은 손수건의 잉크 자국을 이용해 아름다운 나무와 숲과 새의 모양을 그려 넣은 뒤 그 부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손수건은 오히려 그 이전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는 손수건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여러분과 저에게 많은 상처와 얼룩이 있습니다.
그것은 돌이키지 못하고 지우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을 통해 그 얼룩들 때문에 아름다운 인생이 되도록 만지시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2.복중의 복은 죄사함의 복입니다.
다윗이 '사죄의 복'을 말하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죄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입니다. 죄 없는 인간이란 결단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죄 없는 자'의 복을 기원하지 않고 다만 '죄사함 받은 자'의 복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3.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는 “확증”입니다.
-은혜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 하나님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 이며 그럼에도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이 은혜를 받았음을 증거해주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신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그때 그때 판단합니다.
잘되고 좋으면 “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 잘 안되면 “하나님이 왜 날 힘들게 하시나”하며 그분의 사랑을 의심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한참 혼나고 난후 느끼는 감정이 “엄마는 분명 친 엄마가 아닐꺼야”하고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 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매 순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증된 사실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이미 사랑하기로 결정하셨다는 말입니다.
4.과거의 죄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보혈로 완전한 용서를 받은 자입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알게 되는것중 의 하나는 죄가 가려지고 깨끗해진 것이 가장 큰 복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가 사함이 없으면 영원한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는 혼자입니다. 혼자 주님 앞에 서는 것 입니다. 그때 주님이 보고 천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 죄가 사함을 얻지 못해 영원한 지옥으로 가느냐의 순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체면도 없고, 자존심도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저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생가운데 죄가 가리워지고 용서 받은자가 가장 큰 복을 받은것이라고 한것입니다.
5.속죄함의 확신은 곧 이땅에서 누리게 되는 복의 확신이 되는 것 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좌 사함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복의 확신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감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할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미 운명이 바뀐 사람입니다.
감사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열등감, 좌절감, 낙심에 빠지는 것은 여건과 형편이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니 좌사함의 은혜를 진정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거기서 내 죄가 씻음 받았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나의 죗값을 치루어 주신 곳 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 너무 감사하여 우리는 오늘도 예배하고 충성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워져 가기를 기도하는 것 입니다.
묵상하기
-이제까지 나를 억누르던 죄가 무엇인지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했다 하면서도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감정의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죄가 사해졌음을 확신하게 하소서
-반복되는 죄억에서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 지게 하옵소서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둘째
“여전히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의 살길”
요한복음 13장 1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1.마음열기
-알프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13일간 방황하다가 구출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일 12시간씩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을 잃은 장소를 중심으로 불과 6km 안에서만 왔다 갔다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합니다. 20m를 걸으면 약 4m 정도 간격이 생기며 100m를 가게 되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윤형방황(輸形彷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눈을 가리고 똑바로 걸으려면 약 30보 걸어간 후 잠깐 멈추었다가 새 출발하는 기분으로 또 30보를 걸어야 한다고 합니다.
-2011년 1/3의 시점인 4월에 주님은 잠깐 가던 걸음을 멈추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새롭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 특벽새벽에 여러분과 저를 불러 주신 줄 믿습니다.
-나폴리의 오스나총독이 어느 날 바르셀로나의 죄수 선을 순시할 때, 죄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경위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한 사람만이 죽을죄를 범했노라고, 처자식을 굶기지 않기 위해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도적질을 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습니다. 그 때 오스나 총독이 지팡이를 들어 그 사람의 잔등을 내리치면서 “이 못된 놈아! 이곳은 의인들만 있는 곳인데도 너 같은 죄인이 들어와 있다니 당장 나가라!” 고 호통을 치며 그 곳에서 내보냈다고 합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회개하지 못하여 죽는 것입니다.
2.우리는 예수를 미음에도 여전히 죄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23. 그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우리조차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됨,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나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때에 죄에서 온전히 자유할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앞에 서기 전까지는 예수를 영접하고 죄 사함받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죄는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할 죄에 대한 이해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51편 5. 실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사람이 죄인이 된 것 입니까?
바로 창세2장~3장에 걸친 사람을 대표한 아담과 하나님과의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16~17, 3장1~6, 17~19 (참조) - 인류의 원죄사건 이 사건으로 인하여 사망의 저주를 받음으로 죄인이 되어 온갖 죄가 양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 번째의 회개는 구원을 이루기 위한 원죄를 씻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회개는 구원을 잃지 않고 더 성숙한 성도로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3.그리스도인의 죄는 어떻게 되는 것 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죄는 정죄(심판)이 아닌 징계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상태) 하지만 그 죄가 구원의 문제를 흔들어 놓을수 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신분)
-(신분의 변화와 상태의 변화 이해)
그리스도인은 본문 말씀처럼 불신자와는 달리 목욕한 자입니다.
4.정죄(죄를 판단하여 결정)와 징계 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정죄(죄를 판단하여 결정)-심판, 댓가 (죄인과 경찰)
징계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도록 나무람 - 교육적 (부모와 자녀)
-그리스도인이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이 정죄하여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가 이와같은 것입니다. 자식이 재산을 탕진하고 왔지만 아버지가 달려와 입맞추고 상속자의 상징인 반지를 끼워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인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징계를 통해 깨닫고 회개를 하게 하신는 것입니다.
-여러분만이 알고 있고 양심이 증거하는 죄가 있으십니까? 그 죄가 여러분의 기도를 막히게 하고 예배가 불편하게 하는 것 입니다.
-막혀 있습니까? 평안이 없으십니까? 공허 하십니까?
하나님이 회개를 촉구 하시는 징계의 사인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5.죄의 범위가 두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사람들도 인정하는 죄악들과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죄라 할수 없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서 오는 성도로서의 불법한 죄를 회개하는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하지 못함을 회개하고 예배에 온전하지 못함을 회개하고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는데 힘이 되지 못함에도 회개해야 하는것입니다.
6.죄보다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것입니다.
회개를 하기 위해선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한것에서 죄를 발견하고 죄를 깨달으며 인정하는 괴로운 고통의 몸부림이 있어야 회개가 이루어지는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들키지 않으면 다 괜찮다고 합리화하며 사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 입니까?
-묵상하기
-아직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습니까?
-가장 어려운 죄와의 싸움이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반복되는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기쁨을 이루게 하옵소서
-악한자 악한일을 만나지 않는 보호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교회의 부흥이 하나님나라의 확장임을 알고 전도할수 있는 만남과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넷째 날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마음열기
중동 지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다가 한국 교회에 담임 목사로 청빙받아 오신 목사님께서 교인 심방을 하다 보니 성도들의 입에서 시험들었다, 상처받았다는 말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고 합니다. 이슬람 중동에서 사역을 하다 한국에 와 보니 여기는 예수님 믿는 일에는 천국이더랍니다. 중동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어야 하고, 예수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버림받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현장에서 예수 믿는 회교권의 중동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한국 성도들은 시험들었다 상처받았다 하더랍니다.
그 목사님 말씀은 한국 교인들은 너무 편해서 시험들고 상처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성경은 우리의 자아가 너무 강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너무 강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도 아무런 역사도 행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우리안에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 삶이 실패하는 일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고백한 이유는 바울 자신이 얼마나 죄에 오염되어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과 죄는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아 그 자체가 죄 덩어리인 것 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의지, 감정, 지식을 포함한 모든 영역이 죄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선한의지로 무엇을 결심했을 때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결심한 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남의 허물은 30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우리는 죄 덩어리입니다.
3.교회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아픈 현실
어떤 교회에 여선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한쪽 여선교회 회원들이 교회를 안나오더랍니다. 결국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나서서 그 사정을 알아봤더니 참으로 어이없었다고 합니다.
그날 주일점심 식사가 발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배추김치를 담그자는 의견과 깍두기를 담그자는 의견이 나왔다는데 결국 깍두기 의견이 무시되고 김치파가 이기고 만것입니다.
이처럼 웃지못할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교회 안에 시험이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느끼는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어느 교회든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그 교회의 가장 충성스러운 교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대개 여러 해 동안 교회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바쳤던 성도들입니다. 사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든든한 기둥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들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믿었기에 기둥같은 성도로 교회에 다닌것입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불미스런 일에는 항상 그런 분들이 중심에 서 있는것일까요?
이는 교회의 모든 일이 자신의 생각이나 역할 아래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역할이 무시되거나 자기 생각대로 일이 잘 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껴 풍파를 일으키게 되는것입니다.
왜 열심 있는 교인이 시험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곧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제가 생기고 시험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4.“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어느 날 성 마카리우스에게 제자가 물었습니다.
“세상에 대해여는 죽는다고 말을 하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성자는 이 질문에 실질적으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 오늘 밤에 저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 이 나쁜 놈들아. 이 위선자들아, 이 부자 놈들아’ 하고 욕이란 욕은 있는대로 다 하고 돌아오너라”
제자는 성자가 시키는대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성자가 물었습니다.
“어찌하더냐?” “아무 반응이 없던데요?‘ “그렇더냐? 그러면 내일 아침 다시 가서 이번에는 ‘아 훌륭하고 위대한 분들이여’ 하고 칭찬하고 돌아오너라”하고 시켰습니다.
제자는 아침이 되자 다시 묘지로 가서 성자가 시키는 대로 무덤들을 향해 잔뜩 소리를 늘어놓고 돌아왔다“이번에는 어떠하더냐?” “역시 아무 반응이 없던데요?”
성자는 비로소 말했다. “그게 바로 죽었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욕을 해도, 꼬집어도, 송곳으로 찔러도 모르는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믿음으로 살 때 불쾌할 필요가 없고, 실망할 것도, 억울해 할 것도 없다. 칭찬을 듣는다고 교만할 것도 없고, 비방을 듣는다고 실망하거나 불쾌할 것도 없는것입니다.
많은 성도가 상처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은 상처받기 쉬운 자아를 붙잡고 살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또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것 역시 자신의 힘에 의지해서 살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자기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자기 자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5.성질을 바치는 것이 자아를 죽이는 것 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은 (개역성경)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말하자면 자기 의지나 성질을 바치는 것이 곧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질을 바친 자여야 합니다.
이 성질이 바로 자아(自我)입니다. 많은 성도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시험에 들거나 실패하고 맙니다. 문제의 근원은 내 안에 있는 성질입니다.
-자아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그들이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삿21:25) 산 것이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준은 다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1)묵상하기
-죽지 못한 나의 자아는 무엇입니까?(자신, 자녀, 가난, 부요함, 학력,,,)
-내가 오히려 상처받고 시험들었건만 문제의 근원이 된 적은 없습니까?
2)오늘의 기도
-내 자아가 죽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즐거워 하게 하옵소서
-교회에 힘들게 하는 성도가 아니라 힘이 되는 성도 되게 하옵소서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셋째 날
“어떻게해야 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됩니까? ”
요한복음 15장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마음열기
-어느교회에 특별 새벽 기도회 중에 한 부인이 목사님에게 기도 받으시러 나오셨기에 무슨 기도 제목이 있으신가 물었습니다. 그 부인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저도 한번 행복한 삶을 살아 볼 수 있을까요?” 하시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 마음에 ‘영원히 지금처럼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것입니다.
두려움과 근심, 좌절과 메마름은 우리 자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지고 재산이 많아도 두려움과 근심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라고 하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인가? “나는 예수 믿습니다.” 하는 말만 가지고는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삶의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
(마 12:33) 하셨습니다.
2. 먼저 어떻게해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말씀입니다.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는데 말씀으로 거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으십시오. 말씀을 듣고 읽지 않으면 세상의 생각과 욕심이 대신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맙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은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만 사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직접 거하시는 길은 다른 무엇보다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3.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열매는 우리 노력으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친히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예수님이 친히 그 열매를 맺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실을 오직 믿는 것 뿐입니다.
(롬 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도 예수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도 이미 하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4.“믿으라” 하는데 믿는자체가 힘들다고 합니다.
-믿으려고 애를 쓰는데도 안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이 안된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고 합니다. 믿음은 믿으려고 몸부림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라는 말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고 소리쳐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행하셨다는 일을 알았다면 그저 “주님이 그리하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주여, 저는 오직 찬송하겠습니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믿어지는 은혜를 주실것입니다.
5.우리가 믿는 것을 예수님은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한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계신데 힘드십니까? 앉아있으려고 몸부림치시나요? 그냥 편안하게 앉아있는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 안에 계시지요?”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지금 주님 안에 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바로 그 말입니다.
1)묵상하기
-말씀과 기도생활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산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고 다짐하기 원합니다.
2)오늘의 기도
-새벽제단을 통해 진정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만남의 복을 허락 하옵소서
-교회에 필요한 준비된 일꾼을 보내시고 세워주옵소서 (속장, 교사, 찬양, 전도, 기도, 섬김)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1일~5일
-새벽산책에 예수님이 들려 주시는 이야기-
-시편 32편(쉬운성경)
1. 죄를 용서받고 그 죄가 씻겨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2. 주께서 그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 마음에 거짓이 없는 사람은 복되고 복됩니다.
-요한복음 13장 1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한복음15장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행전 5장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1.어떤 부인이 초대 받은 만찬장에서 유명한 미술가 존 러스킨에게 값비싼 손수건을 내보이며 투정 부리듯 말했습니다.
"이 손수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것인데 누군가가 여기에 잉크를 쏟아 버렸어요. 이 비싼 손수건이 얼룩져 쓸모 없게 되어 버렸어요." 그러자 러스킨이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그 손수건을 며칠만 제게 빌려 주십시오." 러스킨은 손수건의 잉크 자국을 이용해 아름다운 나무와 숲과 새의 모양을 그려 넣은 뒤 그 부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손수건은 오히려 그 이전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는 손수건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여러분과 저에게 많은 상처와 얼룩이 있습니다.
그것은 돌이키지 못하고 지우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특별 새벽예배 주제인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을 통해 그 얼룩들 때문에 아름다운 인생이 되도록 만지시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2.복중의 복은 죄사함의 복입니다. (첫날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보혈로 완전한 용서를 받은 자입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알게 되는것중 의 하나는 죄가 가려지고 깨끗해진 것이 가장 큰 복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혼자입니다. 혼자 주님 앞에 서는 것 입니다. 그때 주님이 보고 천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그 죄가 사함을 얻지 못해 영원한 지옥으로 가느냐의 순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체면도 없고, 자존심도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3.우리는 예수를 믿음에도 여전히 죄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몸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때나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때에 죄에서 온전히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앞에 서기 전까지는 예수를 영접하고 죄 사함받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죄는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5. 실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인이 될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얻은 그 사실을 믿는것입니다. 그 믿음의 첫 단계가 바로 “회개”입니다.
-첫 번째의 회개는 구원을 이루기 위한 원죄를 씻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회개는 구원을 잃지 않고 더 성숙한 성도로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4.그리스도인의 죄는 어떻게 되는 것 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죄는 정죄(심판)이 아닌 징계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상태) 하지만 그 죄가 구원의 문제를 흔들어 놓을수 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신분)
그리스도인은 둘째 날 말씀처럼 불신자와는 달리 목욕한 자입니다.
5.정죄(죄를 판단하여 결정)와 징계 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정죄(죄를 판단하여 결정)-심판, 댓가 (죄인과 경찰)
징계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도록 나무람 - 교육적 (부모와 자녀)
-죄의 범위가 두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사람들도 인정하는 죄악들과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죄라 할수 없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서 오는 성도로서의 불법한 죄를 회개하는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하지 못함을 회개하고 예배에 온전하지 못함을 회개하고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는데 힘이 되지 못함에도 회개해야 하는 것 입니다.
6.죄보다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것입니다.
회개를 하기 위해선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한것에서 죄를 발견하고 죄를 깨달으며 인정하는 괴로운 고통의 몸부림이 있어야 회개가 이루어지는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들키지 않으면 다 괜찮다고 합리화하며 사는 것 입니다.
7.누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인가?
“나는 예수 믿습니다.” 하는 말만 가지고는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삶의 열매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 12:33) 하셨습니다.
-어떻게해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답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는데 말씀으로 거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가득할때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으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기도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열매는 우리 노력으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친히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예수님이 친히 그 열매를 맺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실을 오직 믿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예수님은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한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계신데 힘드십니까? 앉아있으려고 몸부림치시나요? 그냥 편안하게 앉아있는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 안에 계시지요?”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8.예수님이 우리안에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지만 현실을 보면 우리 삶이 실패하는 일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자신과 죄는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아 그 자체가 죄 덩어리인 것 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의지, 감정, 지식을 포함한 모든 영역이 죄에 오염되어 있습니다.(원전사고의 근원지로 인해 땅과 바다와 하늘이 오염됨, 너로 인하여 온땅이 저주를 받았느니라..)
9.교회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아픈 현실
어떤 교회에 여선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한쪽 여선교회 회원들이 교회를 안나오더랍니다. 결국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나서서 그 사정을 알아봤더니 참으로 어이없었다고 합니다.
그날 주일점심 식사가 발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배추김치를 담그자는 의견과 깍두기를 담그자는 의견이 나왔다는데 결국 깍두기 의견이 무시되고 김치파가 이기고 만것입니다.
이처럼 웃지못할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교회 안에 시험이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되고 말았습니다.
-왜 열심 있는 교인이 시험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곧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제가 생기고 시험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믿음으로 살 때 불쾌할 필요가 없고, 실망할 것도, 억울해 할 것도 없다. 칭찬을 듣는다고 교만할 것도 없고, 비방을 듣는다고 실망하거나 불쾌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산 것 같으나 죽은자이기 때문입니다.
10.성질을 바치는 것이 자아를 죽이는 것 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은 (개역성경)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말하자면 자기 의지나 성질을 바치는 것이 곧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질을 바친 자여야 합니다.
이 성질이 바로 자아(自我)입니다. 많은 성도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시험에 들거나 실패하고 맙니다. 문제의 근원은 내 안에 있는 성질입니다.
11.자아가 죽은자에게 나타는 첫 증거는 “순종”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언제 일어 납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우리가 매일 특별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듣고 깨닫는 은혜를 순종으로 옮겨 갈 때 성령께서 순종할 수 있는 힘과 환경까지도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순종 해야 합니까?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명령하신 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각오하고 염려와 걱정을 다 주께 맡기고 말씀대로 살면 100배의 복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약속해주셨습니다.
12.1997년 부산 제일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작은교회였던 교회에 청년 찬양 예배를 위한 프로젝트를 구입하려고 청년부가 돈을 모으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여건상 재정 지원없이 청년회원들만의 헌금으로 해야하는 어려움 속에서 약 300만원 정도의 프로젝터 구입비를 모았다고 합니다.
그때 담임목사님께 거제도의 한 미자립 교회에서 태풍으로 부서진 교회를 수리하는데 300만원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도움요청이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서로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지만 교회 청년리더들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모은 300만원을 그 교회에 보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리더들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국 그 돈을 거제도 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난후 지역 큰 교회 장로 회장님이 교회에 잠시 들르셨다가 왔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1400 만원 짜리 프로젝트를 구입해오셔서 교회에 봉헌하셨다고 합니다.
순종의 순간은 고통이지만 그 결과는 영원한 복이 됩니다.
-새벽에 기도할 때 받는자도 복되지만 주는 자가 더 복된 인생임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도움받는 인생에서 도움을 주는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다섯 째 날
“순종을 결심할 때 일어나는 일”
사도행전 5장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1.마음열기
-유기성 목사님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에 나오는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한 여학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고모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고모는 조카들을 키우느라 시집도 못가고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여학생은 고모가 자기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알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고모의 잔소리에 반항심이 생겼습니다. 특히 고모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자, 이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에만 오면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고 계속해서 고모와 싸우게 되는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면 언제나 고모와 싸운 것 때문에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회개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학생은 “우리가 죽어야 우리 대신에 예수님이 역사하신다”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순간 “나 대신 예수님이 우리 고모를 만나주시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학생은 현관의 문고리를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고모를 만나 안 싸울 자신이 없습니다. 저 대신 주님이 우리 고모를 만나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문을 여는 순간 잔뜩 미간을 찌푸린 고모가 영락없이 잔소리를 퍼 붇기 시작했습니다. “너 교회 갔다 오는 길이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고모 말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냐?”
이전 같으면 대들면서 반항했을 텐데, 그날은 잔소리를 퍼 붇는 고모의 얼굴에서 주름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삶의 기쁨도 없이 조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십수년을 시집도 못가고 살아온 한 여인의 초라하고 지친 얼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순간 자기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고모를 끌어안았습니다. 여학생은 깜짝 놀라는 고모에게 말했다.
“고모... 고모 ...많이 늙었어. 우리 때문에 너무 많이 늙었어 고모 정말 고맙고 미안해”
고모는 예상치 못한 조카의 행동과 말 때문에 당황했지만 가슴에서 오랫동안 응어리져 있던 것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날 고모와 조카는 서로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고모는 조카를 따라서 교회에 나왔고 지금은 교회의 충성스러운 집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2. 순종과 성령의 역사와의 상관관계
-그 여학생이 자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청함으로써 일어난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보고 배워야 할 것 이 있습니다.
이 일이 있기전 에도 이 여학생은 고모에게 대들고 나서 말씀을 듣고 괴로워하며 회개하는 일을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드디어 이 반복되는 쇠사슬을 끊을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는 깨닫고 괴로워하는 일에만 머물렀다면 그날은 말씀을 듣고 고모와 화해하기 위한 다짐을 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때 성령님이 여학생과 고모 사이에 있던 아픔과 상처를 만져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 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언제 일어 납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우리가 매일 특별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듣고 깨닫는 은혜를 순종으로 옮겨 갈 때 성령께서 순종할 수 있는 힘과 환경까지도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무엇을 순종 해야 합니까?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명령하신 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각오하고 염려와 걱정을 다 주께 맡기고 말씀대로 살면 100배의 복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약속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알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두려움과 갈등이 우리를 억누르게 됩니다.
-우리 본성이 가진 약함이 있습니다.
한동대 총장 사모님의 간증속에서 광명에서 어둠으로의 부르심 앞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때는 순종이 힘든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 되는 역사를 맛보게 됩니다.
4.1997년 부산 제일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작은교회였던 교회에 청년 찬양 예배를 위한 프로젝트를 구입하려고 청년부가 돈을 모으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여건상 재정 지원없이 청년회원들만의 헌금으로 해야하는 어려움 속에서 약 300만원 정도의 프로젝터 구입비를 모았다고 합니다.
그때 담임목사님께 거제도의 한 미자립 교회에서 태풍으로 부서진 교회를 수리하는데 300만원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도움요청이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서로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지만 교회 청년리더들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모은 300만원을 그 교회에 보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리더들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국 그 돈을 거제도 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난후 지역 큰 교회 장로 회장님이 교회에 잠시 들르셨다가 왔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1400 만원 짜리 프로젝트를 구입해오셔서 교회에 봉헌하셨다고 합니다.
순종의 순간은 고통이지만 그 결과는 영원한 복이 됩니다.
1)묵상하기
-근래에 거룩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리로 들려지십니까?
-지난날 순종함으로 얻었던 작은 기적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2)오늘의 기도
-순종을 이룰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하옵소서
-오늘 금요 기도회에 에비하신 영혼들에게 성령의 역사함심과 임재를 체험하게게 하옵소서
사순절 특별 새벽 기도회 일곱 째 날
“기도로 사는 그리스도인”
히브리서 4장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교회와 성도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않는것처럼 보이는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것일까요?
그것은 이 땅에서 사탄이 강력하게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성경은 이처럼 사탄을 “공중권세 잡은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계획아래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것입니다.
이 세상은 인류의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이 죄가 가득한곳에서 사탄이 득세하는 것은 당오직 기도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 사탄이 세상에 득세하여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시는 것 일까요?
베드로후서 3장7절~9절(쉬운성경)
7. 그러나 현재의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에 의해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될 것입니다.
8.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께는 하루가 1000년 같고 1000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약속하신 주께서는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때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가고 그 구성 물질들은 불에 타 해체되며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의 심판을 미루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끝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의 기회를 주는 시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방해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룰수 있는것입니까?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마귀가 꺽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능력이 실제로 증명되는 사건입니다.
-기도는 철도 레일과 같은 것 입니다.
기관차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레일이 깔린곳에서만 달릴수 있는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성도의 기도가 있는곳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는모든 일은 기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가 충분한 일은 열매가 많고 기도가 충분하지 못한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3.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원한다면 기도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할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8절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구하지 않아도 미리 아시고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냥 주시지 않고 우리가 구할때까지 기다리실까요?
-야고보서 4장3절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2절의 “너희가 얻지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은 잘 이해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 필요를 채워줄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상대방이 자존심을 생각해서 구하지 않아도 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는데 “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으신다는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도해야만 주시는 이유
-우리에게 그냥 주시지 않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기도를 통한 응답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수 있게 하시기 위함인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의 해결뿐만아니라 우리와 교제하는 데 더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자꾸 부르시는 것입니다.
1)묵상하기
1)우리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습니까? 문제해결에 있습니까?
2)당신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간절히 구하되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길수 있겠습니까?
2)오늘의 기도
1) 기도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2)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부활절 새벽 설교 -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부활의 현장
고린도전서 15장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어떤 젊은 화가가 원로 화가에게 푸념을 했습니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림이 팔리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는 데 3일밖에 안 걸리는데, 이 그림 한 장 파는 데는 3년이나 걸려요.” 이 말을 듣던 원로 화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생각을 바꿔보게, 자네가 3년 동안 진지하게 그림을 그린다면, 그 그림은 3일 안에 팔리게 될 걸세.”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존재 입니다. 그러므로 사고의 폭도,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의 자세도 넓어야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2.부활이란 일반적으로 죽음에서 소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활의 사건이 실제로 인간사에서 일어난 날이 오늘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난 금요일 오전 6시에 재판을 받으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3시에 돌아가시고 오늘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이렇게 그가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성도들에게도 “죽음”을 물리치신 그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3.오늘 본문은 아담의 한사람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죽음의 댓가를 치루게 되었는데 이와같이 한 사람 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죄의 댓가가 치루어지고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에게 부활의 역사가 일어날 것 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 가운데 있는것 처럼 우리 성도들에게도 주님이 오시는 날에 예수님처럼 새 육신을 입고 부활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부활의 사건이 죽음이후의 의미도 있지만 죽음과 같은 삶의 자리에도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남을 알기를 원합니다.
4.강원래의 아내 김송집사의 간증
-작년 봄 “저 ‘천사 아내’ 아니에요. 가면 속에서 한없이 완악했던 지난 날을 고백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국민일보에 나온적이 있었습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가수 강원래(41)씨와 2003년 결혼한 김송(38)씨는 ‘날개 없는 천사’로, ‘두려움 없는 사랑’의 주인공으로 불렸습니다.
때때로 연예 프로에 공개되는 아내로서의 헌신적인 모습도 감동을 줬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밖에다 대고는 ‘저희 잘 살고 있다’고 웃었지만 안은 매일 전쟁이었어요.”
남편의 간병을 감당하기는 했지만 입으로는 심한 욕설, 심지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는 바람피워 천벌 받았지만 나는 왜 네 똥 치우며 살아야 해!”라는 말은 하루일과였고, 저녁이면 화장하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나 클럽 가”라며 나가 밤새 춤추다가 온적도 있엇다고 합니다. 새벽에 돌아와 남편의 대소변도 못 가린채 자는 모습을 보면 미칠 듯한 마음에 통곡을 하며 지옥같은 현실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천사 이미지는 세간의 이목이 두려워 이혼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위에 궤양이 18개나 생겼고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져 남편을 방치한채 살아왔다고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놀라기도 하고 역시 연예인들은 그런 존재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계속 말하기를 “중학교 3학년 때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모습에 반한 순간부터 남편은 내 우상이었어요. 속을 썩여도 늘 설레고 우러러 보이는 ‘내 남자’였죠.”
남편이 장애를 입었을 때도 주변에서 다 말렸지만 그는 자신의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며칠이 10년처럼 길었고 “육신의 사랑이 끝나고 내가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가는 남편의 존재를 깨닫자 우상이 무참히 깨진 거죠.”
-그러던 그녀에게 4년 전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호주에서 재혼해 사시던 어머니를 만나러 김씨를 비롯한 4남매가 여행을 간 그 날 어머니가 병원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가족들이 망연자실해 있는 사이 호주인인 새아버지가 수소문해 한인 목사를 불렀습니다. 그를 본 어머니는 처음에는 “누가 부르라고 했어!”라고 악을 쓰며 거부했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엎드려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본래 독실한 크리스천이셨어요. 구역장에 전도왕이셨죠.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성경 읽고 찬송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던 어머니 생각이 날 정도였어요.” 그런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결혼 생활이 결국 실패로 끝나자 “남을 위해 해준 기도는 모두 응답받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며 타종교로 개종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전도하는 사람에게 소금을 뿌릴 정도로 교회를 증오했던 본인도 어머니의 회심에 충격을 받았고 어머니는 결국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매일 눈물을 흘리며 감사 기도를 드린 모습을 보면서 신앙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놀라웠던건 어머니께서 자신을 버리신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시댁 식구들 고모들과 결코 화해하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거짓말처럼 관계가 회복됨을 보면서 저절로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구나’ 하는 말이 나왔어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되면서 김송씨가 성장기에 입었던 상처들도 치유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죄인인 줄 몰랐어요.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디 있어’ 했죠. 죄를 깨닫고 보니 남편과의 모든 싸움의 원인이 저였어요. 그 후 집안에 전쟁이 그쳤죠. 내 불행의 원흉이었던 남편이 이제는 한없이 고마워요. 나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 수고해 준 사람이니까요.”
-그녀의 신앙간증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옥 같았던 그녀의 삶의 자리에 죽었던 사랑이 살아나고 죽었던 웃음이 살아나고 죽었던 예배가 살아는 부활의 역사를 우리는 보고 있지 않습니까?
5.부활은 새롭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새로운 몸을 입고 살아는 것입니다.
-고전15장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 약속된 말씀처럼 여러분과 저의 삶의 자리에 죽었던 것이 살아고 썩어질것이 새로운 몸을 입는 부활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새벽예배 - 눈물 있는자
사도신경- 찬송가 308장 - 대표기도:한미이권사-성경-설교-봉헌 및 축도-마태복음 26장 69절-75절
69절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 다 하거늘
70절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절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을 나사렛 예 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절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절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절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 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도입 1. 스물네 살의 베로니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원하는 것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어 아쉬운 게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이런 삶이 앞으로도 달라질 것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정신병자로 진단받아 ‘빌레트’라는 정신병원에 이송됩니다.
그러던 그녀가 아고르 박사로부터 실제 ‘죽음’이 코앞에 닥친 시한부 인생이란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죽고 싶었건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용솟음치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가만히 죽을수 없어 삶의 열정을 가지고 사랑을 찾아 그곳을 빠져나온다는 내용의 책이 있습니다. 바로 ‘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아고르 박사 처방은 적중했습니다. 베로니카가 사는 길은 ‘죽음’ 밖에 없었기에 의사는 그 처방전을 썼던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은 죽음을 갈망한 사람에게도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두려워하게 되고 살고자하는 열정을 일으키는 묘한 힘이있습니다.
죽음의 순간, 죽음과 같은 공포앞에서 우리 인간은 의지와는 다르게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 인간의 한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포이며 한계인 것입니다.
2.우리에게는 드러나진 않지만 저마다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체력의 한계가 있으며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성도들도 신앙의 한계가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그 한계를 잘 모르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자신의 한계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장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며 살았던 예수님의 수제자 불리기를 원했던 베드로의 인간적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26장 33절에 “다 주를 버릴 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까지 다짐하던 뜨거운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는 제자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 자신의 한계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 합니다.
우리는 살고자 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창피해서 순간순간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모습을 숨길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3.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가 이대로 예수님을 저주한자로 끝난 존재 였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서 순교한 위대한 제자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반전이 있을수 있었습니까? 죽음을 피해서 그의 스승도 버리던 베드로가 스승되신 예수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향해 갈수 있게 된것입니까?
그는 비겁한 자였으나 눈물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눈물의 마음을 가진자 였기에 그래도 베드로는 주님이 잡히셔서 심문 받는 대제사장 집 바깥뜰에라도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의 두려움을 모면하고 그는 54절에 기록되기를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 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다라는 구절을 보면 베드로는 그래도 예수님이 걱정 되었던 것입니다. 차마 용기가 미치지 못해 예수님 옆에 없었지만 그는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늘 넘어지나 그래도 예수님 가까이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4.우린 믿음에 실패 할수 있습니다. 유혹에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포기 하지 마십시오. 변화의 시작은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 처럼 주님이 계시는 바깥뜰에라도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변화는 통곡하며 울수 있는 마음 밭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눈물이 메마른자가 되지 마십시오,, 눈물이 없는자가 강한자가 아닙니다. 눈물이 있는자가 용기 있는자입니다.
그 눈물이 도망자 베드로에서 순교자 베드로를 만들어 내는 힘이 됩니다.
-오래전 영화 ‘챔프’의 광고카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끝난 후 5분간 불을 켜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여러분이 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만드신 소중한 작품입니다.
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영혼의 창이 맑아지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영혼의 창이 맑아지면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조지 고든 바이런은 “우리는 망원경보다 눈물을 통해서 더 잘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5월은 어떻게 보면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는 마지막 길목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5월에 눈물의 은총을 입는 달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 가슴이 더 뜨거워질수 있게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수 있게,,,눈물의 은총을 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