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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병 완치자를 위한 제물의 준비(21-23)
신앙의 실천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념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랑과 배려, 나눔의 실천이 신앙을 구체화하는 방법입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고, 그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믿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21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죄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22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23여덟째 날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21-23)
복귀 의례를 위해 요구되는 제물들은 가난한 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나병 완치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대폭 완화된 규정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속건제로 어린 숫양 한마리, 소제물로 기름을 섞은 밀가루 10분의 1에바, 기름한 록, 그리고 속죄제와 번제용으로 산비둘기이든 집비둘기 새끼이든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앞서 정규적인 준비물에서는 밀가루 10분의 3에바에 속죄제와 번제용 짐승으로 각각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어린 암양 한 마리였는데,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는 밀가루 10분의 1에바와 비둘기 두 마리로 대폭 완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건제를 위한 짐승은 무슨 상황에서 속건제를 드리든 양보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숫양입니다.
앞서 정규적인 나병 완치자 복귀 의례에서 지면상 설명이 빠졌지만, 속건제 숫양은 어린 숫양으로 반 속건제 의식(레 5-6장)에서 요구된 숫양과 히브리어가 다릅니다. 속건제를 위한 숫양은 통상적으로 아일(ram)인 반면, 현재의 나병 완치자의 경우 ‘케베스’입니다. 다수의 주석학자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으나, 케베스는 일반적인 양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어린 숫양(lamb)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보통 일년생입니다. 만일 후자의 의미라면 양자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10절을 보면, 나병 완치자를 위한 번제를 위한 암양은 ‘카브스’로 속건제 숫양인 케베스와 암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번제의 암양이 일년생이므로 아마 그것과 대조되는 숫양도 어린 일년생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더불어 12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속건제 숫양은 한 록의 기름과 더불어 요제로 들어 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숫양을 손에 들어 올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후대 유대의 관행에서는 숫양 전체를 손으로 들어 올린 것이 아니라, 제사자가 숫양의 굽이 갈라진 발바닥을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는 의례를 행했다고 전해집니다.
가난한 완치자를 위해 목욕을 하는 정결례는 생략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도 동일하게 그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도 살아있는 정결한 새 두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 그리고 우슬초를 준비해서 자신의 몸을 깨끗케 하는 정결례를 준수해야 합니다. 두 번째 목욕을 마친 후, 그는 진영 내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는 제8일에 제물을 준비하여 제사장을 찾아 성소에 올라갑니다.
가난한 나병 완치자를 위한 제사들(24-32)
하나님은 각 사람의 상황에 맞추어 정결한 제물의 양을 정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필요한 만큼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할 때, 하나님은 그에 맞는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회복을 돕습니다.
24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25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26제사장은 그 기름을 자기 왼쪽 손바닥에 따르고 27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조금 찍어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28그 손의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를 바른 곳에 바를 것이며 29또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발라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며 30그는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한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드리되 31곧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한 마리는 속죄제로, 한 마리는 소제와 함께 번제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할지니 32나병 환자로서 그 정결예식에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한 자의 규례가 그러하니라(24-32)
본문에서는 문둥병에서 회복된 자가 제사장에게 가서 정결한 제물을 드리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제사장은 그를 위해 희생 제물을 바치고, 그의 정결함을 확인합니다. 이 과정은 그가 공동체에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의식입니다.
(1) 특수한 속건제 절차(24-29)
일반 나병 완치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숫양의 속건제물을 가지고 진행되는 절차는 매우 특수합니다. 아마 그 완치자가 숫양을 안수한 후 도살을 합니다. 제사장은 그 피를 취하여 그 사람의 오른쪽 신체 말단 부위들, 곧 오른쪽 귓부리,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이어서 제사장은 가져온 한 록의 기름을 왼쪽 손바닥에 따른 뒤 오른쪽 손가락으로 기름을 찍어 제단 앞에서 지성소를 향해(여호와 앞에) 뿌립니다. 그리고 다시 그 기름을 오른쪽 손가락으로 찍어 이미 숫양의 피가 묻어 있는 그 나병 완치자의 동일한 신체 말단 부위에 바릅니다. 이어서 제사장은 손바닥에 남은 기름을 그 사람의 머리에 바릅니다. 이로써 그 환자는 여호와 앞에서 속죄를 얻습니다.
(2) 비둘기의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소제(30-32)
특수한 방식의 속건제 의식을 마친 뒤, 제사장은 남은 제사들을 진행합니다. 정규적인 제물은 속죄제의 숫양과 번제의 암양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나병 완치자를 위해 비둘기 두 마리로 제물을 완화해주십니다. 그는 집비둘기를 가져오거나, 집에서 비둘기를 키울 형편마저 되지 않는다면, 들판에 나가 산비둘기 둘을 잡아오면 되었습니다. 한 마리를 속죄제로 바치고, 다른 한 마리를 준비한 밀가루의 소제물을 곁들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특히 자신이 더럽힌 성소를 속죄제로 씻어내는 일은 가장 중요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신체적으로 나병완치 판정을 받은 후, 성소를 더럽힌 제의적 책임을 완수하여 속죄를 받았고 이로써 제의적 정결 상태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제 비로소 그가 공동체로 완전하게 재허입되어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참고. 죄와 부정결의 등급
레위기의 속죄제는 죄와 부정결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것들은 가벼운 것부터 심각한 것에 이르는 몇 단계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1) 죄의 등급
a. 비고의적인 죄(비쉐가가 그릇, 무심코): 이것은 여호와께서 금지하신 명령을 무의식중에 어긴죄다(레 4장). 속죄제로 해결되는 죄입니다.
b. 고의적인 죄(deliberate): 가벼운 고의성을 지닌 죄입니다. 몇 가지 사례가 레위기 5:1-4에 나오는데, 역시 자백과 더불어 속죄제로 용서 가능한 죄들입니다.
c. 속죄 가능한 악행죄(페샤): 페샤는 반역죄(악행)로 ‘높은 손으로’(베야드 라마) 하나님께 대항하는 죄입니다. 이것은 속죄 가능한 것과 불가한 것으로 나뉩니다. 원칙상 악행죄는 용서불가였습니다. 그러나 악행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재량에 달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밀그롬이 말한 대로 악행 죄라도 회개를 통해 죄의 등급이 경감되어 속죄제를 바칠 수 있었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악행이 속죄 가능했다는 것은 레위기 16장의 속죄일 규례에서도 확인됩니다.
d. 속죄 불가한 악행: 원칙적으로 악행은 즉각적인 징벌을 받아 죽음을 당하든지, 아니면 저주를 받아 나병에 걸려 추방당합니다. 즉, 반역죄는 사실 즉각 심관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예, 고라 일당의 반역죄(민 16장), 미리암의 모세 비방 죄(출 15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드린 제사(레 10장), 웃시야의 제의권 침해(대하 26장) 등. 그러나 어떤 악행은 심판을 유예하고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컨대, 왕조 시대의 사례이긴 하지만, 다윗의 악독한 범죄는 즉각 징벌을 받아야 했으나, 그에게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 부정결의 등급
a. 경미한(mild) 부정결: 이것은 이차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부정을 타는 경우입니다. 통상적으로 저녁까지 부정하며 그 후 목욕을 하면 정결케 되어 속죄제가 불필요했습니다. 예컨대, 부정결한 사람이 앉은 자리나 그 사람의 몸에 접촉을 하여 부정을 탄 경우(레 15:5-11). 또한 몽정을 한 뒤나 성관계 후에는 저녁까지 부정했습니다(레 15:16-18).
b. 중대한(심각) 부정결: 정결 기간이 7일 이상인 부정결들로 속죄제가 요구되었고, 더불어 다른 회생 짐승이 바쳐졌습니다(레 12, 14-15장). 다시 말해, 7일 이상의 중대한 부정결은 성전을 원거리에서 더럽혔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c. 속죄 불가한 부정결: 속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아주 심각한 부정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병, (아마도 만성) 유출병, 사체 접촉과 같은 부정결들은 일단 즉각 추방되었습니다(민 5:2).
d. 죄로 전락한 부정결: 정결 과정을 무시할 때는 그것이 죄의 문제로 악화되면서 ‘끊어짐’과 같은 무서운 징벌이 가해집니다. 이런 부정결들은 반드시 평일에 처리되어야 하며, 만일 여러 가지 이유로 처리되지 못하면 그것은 ‘중범죄’로 승격되는 것입니다. 그 절차를 거부하면 그것이 죄 문제로 바뀝니다(예, 레 17:15-16; 민 19:20). 이것이 고의적인 이유는 신체에 발생한 부정결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몰랐다면, 부정결의 방치는 최소한 '부지중의 죄'로 악화될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정결함과 회복을 중요시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서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겪으며, 서로를 돌보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단순한 규례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방법입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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