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고운 단풍 옷 입고, 억새 물결 일렁이는 의령 한우산 가을여행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산을 뒤덮고, 은빛 물결의 억새평원이 바람에 눕고 햇살에 반짝인다. 온몸으로 가을을 알리는 억새가 하늘과 맞닿은 웅장한 산세와 조화를 이룰 때면 가을 산을 오른 등산객들의 만면에는 은빛 미소가 가득 차오른다.
올가을 절정을 만끽하기 위해 의령 한우산에 올랐다.
글 백지혜 사진 김정민 영상 이솔희
8부 능선까지 차량으로 오를 수 있어
지난달 중순 의령군 궁류면 벽계리에 있는 한우산(寒雨山·836m)에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례면 농촌 들녘을 지나면서 완연한 가을을 실감했고, 서암저수지를 지나 한우산에 가까워지자 형제산인 자굴산을 뒤덮은 단풍에 또 한 번 걸음을 멈추었다. 험난한 인생길을 표현하듯 굽이굽이 난 임도를 30분 넘게 달려서야 생태주차장에 도착했다.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다보니 구불구불 거대한 구렁이가 한우산을 지키듯 감싸는 형상이다.
한우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기로 유명하다. 오뉴월 한더위에 맞는 비도 겨울비처럼 차갑다 해서 찰 ‘한(寒)’, 비 ‘우(雨)’ 자를 써 ‘찰비산’이라 불린다.
8부 능선까지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고, 정상까지 데크 로드가 비교적 쉽게 안내돼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곳으로 인기가 많다.
전설 녹여 만든 호랑이 쉼터·도깨비 숲 색다른 재미
생태주차장에서 데크 로드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호랑이 쉼터’가 보인다. 한우산에는 호불 에미 돌너덜, 호랑이 자식 사랑, 은혜 갚은 호랑이 등 호랑이에 관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까지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던 곳이다. 전설을 접하고 나니 호랑이를 형상화한 조형물에 한참 눈길이 머문다.
반대편 쇠목재에서 산을 오르다 보면 ‘도깨비 숲’도 볼 수 있다. 한우 도령과 응봉 낭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공원으로, 크고 우락부락하지만, 개성 있는 도깨비 쇠목이를 표현한 조형물들이 한편의 동화책을 읽는 듯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이야기를 따라 읽거나 사진 찍는 재미를 더하면 부모와 함께 아이들이 산책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숨길’ 한 바퀴, 가을엔 억새평원이 등산객 사로잡아
한우산은 자생수목원, 고사리원, 억새평원, 특화식물원, 철쭉 설화원, 홍의송원 등으로 생태숲을 이루고 있다. 마치 거대 식물원을 산정에 옮겨놓은 느낌이다. 이곳을 한 바퀴 돌아 순환하는 숲길을 ‘숨길’이라 이름 붙여 놓았는데, 한우산 허리를 휘~ 도는 멋진 산책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5월이면 한우정을 중심으로 철쭉이 산정을 뒤덮지만, 11월이면 억새평원이 은빛 깃털을 흩날린다. 높디높은 푸른 하늘과 억새들이 춤을 추니 이곳은 하늘이 내린 정원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사방이 탁 트인 가운데 멀리 보이는 경치가 나를 품는 기분이다. 멀리 시선을 두면 서쪽으로는 지리산과 덕유산, 동쪽으로는 화왕산, 그 옆으로 거창 감악산 풍력단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만끽하는 한우산의 가을은 쉬이 떠나보낼 수 없다.
한우산은 빛 공해가 적어 별 관측의 숨은 명소로도 입소문을 탔다. 지금은 생태주차장에 부지면적 4980㎡ 규모의 별 관측소와 자연학습 체험 시설 등을 갖춘 ‘한우산 별천지 마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쇠목재에서 한우산 생태주차장 구간은 통제되고 있으니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