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단 4호
심영희
강원문인협회(회장 남진원)에서 발행하는 강원문단 4호가 오늘 도착했습니다. 늘 수고 하는 남진원 회장님 이연희 사무처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강원문단 4호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횡성 호수 길을 걸으며
심영희
늦가을 춘천에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외출할 생각을 안하고 있는데 딸이 전
화를 했다. 오빠가 단풍 구경을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서리가 와서 단풍잎이 모두 고개를 떨구고 빨간 색은 갈색으로 변했는데 무슨 단풍 구경이냐고 하면서도 일요일은 주로 아이들과 시간을 맞추다 보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출발 시간이다.
딸도 휴일이라 이것 저것 할 일이 많아 그 일을 해놓고 12시 30분에 출발을 하자고 한다. 횡성은 춘천에서 가까운 곳이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딸과 손녀를 태우고 아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원주휴게소로 갔다. 잠시 후 아들 차로 옮겨 타고 아들이 가는 대로 가다 보니 횡성댐 쪽으로 가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당연히 고속도로로 가는 줄 알았는데
곧바로 횡성 요금소를 빠져나가서 댐 쪽으로 가니 한편 반갑기도 했다. 같은 강원도 땅이라도 처음 가는 곳이다. 늘 궁금증을 안고 가 보려고 했으니 지금까지 가지 못했던 횡성댐으로 가고 있으니 기대가 된다. 횡성댐은 어떻게 생겼을까 가족 모두 처음 가는 곳에 호기심을 가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문제는 입구부터 차량들이 꽉 차서 주차할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앞차를 따라
되돌아 나와서 남의 집 담 밑에 빈자리가 있어 차를 세웠다. 뒤따르던 차도 우리 차 바로 뒤에다 세운다. 표를 사가지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다. 홍보가 부족했다. 주차장이란 글씨에 화살표 하나만 그려 놓았어도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쉽게 주차장을 찾을 수 있는데 안내하는 사람도 되돌아 나가라고만 하지 돌아서 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넓은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고 입구에는 주차를 못해 차들이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표를 내고 호수 길로 입장하는 입구에서는 입장권을 받고 횡성 지역 상품권을 도로 내주니 무료 입장인 것이다. 호수 길에 접어 들으니 춘천에서 보던 소양강댐, 의암댐, 춘천댐과는 전혀 다른 호수가 펼쳐진다. 그냥 길과 호수가 맞닿아 있어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금방 호수로 빠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호수 길을 걸으며 아들 딸에게 춘천에 있는 댐과 많이 다르다는 것과 소양댐 이야기를 들려줬다. 매년 한번씩 용너미 길을 오르는 얘기며, 올해는 소양댐이 생긴 지 50년이 되는 해라 지난 10월 21일에는 용너미 길에 등을 달았다는 뉴스도 들었고 수몰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망향 비도 세웠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는 말도 잊지 않고 전했다. 지방 신문에서 본 내용을 자세히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 아들 딸이 다섯 살, 세 살 때부터 소양댐을 구경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참 많이도 다녔다.
어떤 수몰민은 소양댐에서 고향 쪽을 바라보고 엉엉 울었다는 기사도 읽었다. 고향이란 누구에게나 편안한 안식처다. 그 고향과 고향집을 다시는 가볼 수 없다는 허탈감은 고향이 댐 물에 잠긴 마을 사람들이나 도로에 고향집을 빼앗긴 사람이나 고향집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춘천에 살면서도 소양댐 용너미 길을 한번도 걸어 보지는 못했다. 올라가는 길이라 미리 겁먹고 아예 도전을 안하는 것이다. 그러니 횡성 호수 길을 처음 와본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횡성 호수 길은 평지여서 걷기가 좋았다. 호수를 끝까지 돌면 시간이 많이 걸려 다른 곳에 못 간다고 아들이 오던 길로 되돌아 가자고 한다.
아들 차는 이번에는 고속도로로 들어서더니 제천으로 간다고 한다. 춘천과 달리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제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의림지" 다. 여고 2학년 때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경유했던 추억의 장소다.
그런데 아들의 차는 "베론성지" 주차장에서 멈추었다. 이곳도 와 보기는 처음이지만 길을 달리며 베론성지 안내판을 보면서 여기가 "지영이" 있는 곳이라고 일러주곤 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영이를 만날 수 있을까. 지영이는 바로 아래 여동생 딸인데 일찍 이승을 떠나 원주 교구인 이곳 베론성지에 잠들어 있다. 우리 딸과 동갑인데 반년 일찍 태어나 우리 딸에게 언니가 된 지영이다.
성당에 다니지 않는 나는 좀 생소하기도 했고 "베론성지 관광안내"라는 글자를 보면서 더욱 의아했는데 휴일이라 가족단위나 연인, 친구들과 많은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고 한다. 안내문을 보아도 답골당 표시는 없다. 많은 건물을 두루 살펴보아도 알 수 없다.
이곳에는 춘천과는 달리 빨간 단풍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가는 가을을 향해 마지막 발악을 하듯 저녁 햇살에 더욱 붉고 아름답게 보인다. 오늘 단풍 구경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내년이 되어야 붉은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시간은 5시가 다되어 가는데 누구에게 물어보고 납골당을 찾을 사이도 없이 아쉬운 발길을 돌려 아들은 한 곳을 더 가야 한다고 서두른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그 추억의 장소 "의림지" 였다. 의림지 옆에 차를 세우자 마자 환영이라도 하듯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모두 우산 펴기 싫다고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내다보며 "아 멋있다"를 연발하며 차에서 나올 생각이 없단다. 차에서 내린 나는 우산도 안쓰고 소나무 밑에서 비를 하나도 안 맞는다고 하며 추억을 찾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둘러 보았지만 워낙 오래된 세월이라 그때 사진을 찍었던 비슷한 나무도 찾아내지 못했다. 오래 전에 문학회 행사로 두어 번 더 다녀오기는 했는데 그래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학창시절 수학여행 추억이 제일이다.
늦은 시간이라 주위 관광지는 더 구경 못하고 다음에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차를 돌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원주로 출발하는데 일기예보대로 비가 쏟아진다. 아들이 원주휴게소까지 데려다 주어서 그곳에서 다시 내 승용차로 갈아타고 춘천에 왔는데 아련한 추억 때문인지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피곤 하지도 않다. 이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는가 보다.
약 력(심영희)
● 1995년 「수필과 비평」 지로 수필 등단
●제20회 동포문학상
●수필집 「아직은 마흔아홉」
●한국수필가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