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덧칠을 한 캔버스 위에
반짝거리는 비 개인 숲
연초록 화음으로 쏟아지는
한 곡조 노래
하늘빛은
숲이 끝나는 저 언덕에서
다른 그리움 만나고
물안개로 찾아와 맴도는
못다 이룬 꿈
푸른 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욕심도, 근심도
내 것은 아니라고
못다 이룬 한 조각 꿈
나무꾼과 살던 선녀의 하얀 치맛자락
슾속을 맴돌아 눈물로 흐르네
물안개 보이는 창가에서
캘거리로 이민와서 이사를 세 번이나 하였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여기서 창 밖을 보면서 글을 쓰면 아주 잘 써지겠다. 하며 잘 쓰지도 못하는 나를 격려해주었다.
사실 두 번째 이사를 할 때만하여도 창가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것이 축복의 기도가 되었는 지, 마침내 세 번째 이사온 동네 디스커버리에서는 꿈처럼 창가에 앉아 글쓰는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우리 집 이 층에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면 캘거리 시내로 흘러들어가는 앨보강이 보이고 강가에 있는 저택 사이로 연못이 펑퍼짐한 엉덩이를 깔고 둥그렇게 앉아있어 오리들이 쉬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날 언덕 아래 건너편, 인디언 보호구역을 감싸는 숲에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한 폭의 동양화였다.
조선시대 정선이 다시 살아나와 화폭에 그림을 담는 것일까.
창가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못 다 이룬 나의 꿈들이 한 조각 구름으로 물안개와 함께 떠다니고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떠나온 조국,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그와 나의 모습이 나뭇군과 선녀 이야기에 나오는 이룰 수 없는 꿈을 바라는 현실 밖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안개 사라지듯 우리의 꿈은 그냥 꿈일 때 더욱 아름다운 것일까.
교민신문에 물안개 시가 발표되었다.
외출하였던 아들아이가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신문에 엄마가 쓴 시가 나왔네요. 그 시 정말로 좋아요. 엄마의 마음 속에 있는 꿈이 보여요.
아들에게 한 번도 엄마의 꿈은 이런거라고, 말로 한 적 없지만 아들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같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캘거리 문인협회 문학의 밤 행사에서 우리는 시화전을 하였다.
물안개 시도 그림과 곁들여 시화로 만들어 전시하였다.
시화전이 끝난 후, 아들아이는 어느 새 물안개 시를 가져다가 자기 방에 걸어놓았다.
글을 쓰고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미처 말로는 아이들에게 전해주지 못하는 마음 속의 유산을 전해줄 수 있는 좋은 길을 찾은 것 같아 마음 푸근해진다.
오늘 아침도 숲에는 물안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