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오백년 도읍지를 / 길재
五百年 都邑地匹를 匹馬로 도라드니
山川은 依舊ㅎ되 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도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해설 및 감상]
작자인 야은 길재 는 고려 말 삼은의 한사람으로 고려에 끝까지 절의를 지킨 인물이다. 초장에서는 필마로 옛 도읍지를 돌아보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미 망해 버린 나라의 도읍지를 십정은 중장에 나타난다.
산천, 즉 자연은 변한 것이 없지만, 그 곳을 가꾸어 가던 사람들은 간 곳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세상이 변해도, 실상 그 모습이 변해도, 공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과 같이 변화가 빠른 것도 아니고, 고려가 멸망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그 시점에, 500년 옛 도읍지 개성의 모습은 그리 많이 변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 그 사람들이 없다면, 그 곳은 예전에 그곳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게성의 옛 고려왕궁이 퇴락했지만, 그대로 남아 있고, 개성의 산천이 변한 데가 없다 하더라도, 고려의 옛 신하들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곳은 이제 더 이상 한 나라의 수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적 화자는 태평연월을 회고한다. 정말 고려 말이 태평연월 이었을까? 야은 은 진정 고려의 충신이었기에, 그 혼란했던 고려 말의 시기조차 안정된 조선 초보다 더욱 아름다웠던 시기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혼란스러웠던 시절을 태평연월이라 노래할 수 있는 절의, 어찌보면 시류에 맞지 않는 참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저런 절의가 남아 있기에 이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한국 시조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