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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열왕기상 17:1–7 (참조: 신명기 11:13–17, 야고보서 5:17–18, 누가복음 4:25–26)
핵심 명제: 국가와 교회가 물질적 번영과 풍요의 우상(바알) 앞에 무릎 꿇는 영적 흑암기일수록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 존전에 단독자로 서는 코람데오(아마르티 레-파나이브)의 야성을 회복해야 하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인간적 공급망이 철저히 차단되는 그릿 시냇가(나할 크리트)의 마름을 통과하는 절대적 의탁의 훈련을 피할 수 없다.
1. 서론: 암흑의 시대, 벼락처럼 나타난 무명의 선지자
열왕기상 16장 후반부는 북이스라엘 왕조 역사상 가장 칠흑 같은 영적 파선의 극치를 고발합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Ahab)’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성경 기자는 그를 향해 차가운 평가를 내립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와야아스 아합... 하-라 베-에네이 야훼 미-콜 아쉐르 레-파나이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와예레크 와야아보드 에트-하-바알 와이쉬타후 로)" (왕상 16:30–31)
아합은 단순히 우상을 섬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페니키아 시돈의 공주이자 바알과 아세라의 열렬한 광신도였던 ‘이세벨(Jezebel)’과 정략결혼을 맺었습니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제단을 헐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도륙하며,
사마리아 수도 한복판에 거대한 바알 신당과 아세라 목상을 세워
가나안의 음란하고 세속적인 풍요 종교를 북이스라엘의 국가 공인 종교로 둔갑시켰습니다.
바알(Baal)이 누구입니까?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바알은 구름을 타고 다니며 천둥과 번개를 치고 하늘에서 단비를 내려 농경의 풍작과 다산을 주관하는 '비와 폭풍의 신'이었습니다.
온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내팽개치고,
"먹고살게 해주고, 농사를 풍년 들게 해주는 신이 진짜 신이다"라며 바알의 제단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 영적 암흑의 한복판에,
아무런 가문이나 족보의 설명도 없이,
어두운 하늘을 가르는 번갯불처럼 한 거친 인물이 아합의 왕궁 문을 박차고 들어섭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와요메르 엘리야후 하-티쉬비... 엘-아합)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임-이헤예 하-샤님 하-엘레 탈 우-마타르 키 임-레-피 데바리) 하니라" (왕상 17:1)
제1강은 배도의 심장을 찌른 이름의 선언(엘리야후), 왕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코람데오의 영성(아마르티 레-파나이브), 바알의 숨통을 끊어버린 가뭄의 영적 신학, 그리고 왕궁의 선포 직후 선지자를 숨기신 단절의 골짜기 '그릿 시냇가(나할 크리트)'와 까마귀의 공급, 마침내 시냇물이 말라버리는 결핍의 훈련이 지닌 구속사적 의미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엘리야의 정체성과 거룩한 도전(1) 디셉 사람(하-티쉬비)의 무명성 (왕상 17:1a)
성경은 엘리야의 부모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가문 출신인지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길르앗 (גִּלְעָד):
요단강 동편의 거칠고 험준한 산악 목축 지대입니다.
디셉 (תִּשְׁבֶּה):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변방의 산골 오지 마을입니다.
엘리야는 화려한 왕궁의 귀족 출신도 아니었고,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엘리트 제사장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거친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채(왕하 1:8), 오직 야생의 들판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단둘이 대면하던 '거친 광야의 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를 뒤흔드실 때 문벌 좋은 자를 쓰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하나님 한 분만으로 담금질된 무명의 무기를 꺼내 드십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엘리야후(אֵלִיָּהוּ) — 이름에 새겨진 전투적 신앙고백
성경 기자가 소개하는 선지자의 이름 자체가, 이미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 왕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리는 거대한 신학적 폭탄이었습니다.
{אֵלִיָּ֣הוּ}
{“엘리(אֵלִי, 나의 하나님은) + 야후(יָהוּ, 여호와이시다)”}
{“나의 하나님은 오직 스스로 계신 ‘여호와(Yahweh)’뿐이시다!”}
당대 온 이스라엘의 대세는 '엘리-바알(나의 하나님은 풍요의 바알이다)'이었습니다.
모든 정치인과 지식인, 농민들이 바알을 신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거친 선지자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시대를 거슬렀습니다:
"너희의 신은 바알이 아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참된 하나님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한 분뿐이시다!"
엘리야는 이름 그대로, 배도의 시대를 온몸으로 찢어발기는 살아있는 신앙고백 그 자체였습니다.
4. 핵심 원어 강해: 아마르티 레-파나이브(עָמַ֤דְתִּי לְפָנָיו֙) — 코람데오(Coram Deo)의 척추
아합 왕 앞에 홀로 선 엘리야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첫 문장은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이 가슴에 새겨야 할 영적 자존감의 극치입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하이-야훼 엘로헤이 이스라엘 아쉐르 아마르티 레-파나이브)" (왕상 17:1b)
{חַי־יְהוָ֞ה\ אֱלֹהֵ֤י\ יִשְׂרָאֵל֙\ אֲשֶׁ֣ר\ עָמַ֣דְתִּי\ לְפָנָ֔יו}
{"하이-야훼 엘로헤이 이스라엘, 아쉐르 아마르티 레-파나이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바로 내가 지금 그분의 얼굴 면전(레-파나이브)에 꼿꼿이 서 있음(아마르티)을 두고 맹세하노라!"}
(1) 하이-야훼 (חַי־יְהוָה): 살아계신 여호와
바알 신화에 따르면 바알은 겨울 우기에는 비를 주며 살아있다가, 여름 건기가 되면 지하 세계(모트)로 내려가 '죽는 신'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선언합니다:
"바알은 죽은 우상에 불과하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시퍼렇게 살아 계신 유일한 참 신(Living God)이시다!"
(2) 아마르티 레-파나이브 (עָמַדְתִּי לְפָנָיו): 하나님 면전의 서 있음
아마드 (עָמַד): 종이 주인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긴장된 자세로 '대기하며 서 있다(Stand before)'.
시각적으로 볼 때 엘리야는 사마리아 궁전의 번쩍이는 금빛 보좌에 앉아 있는 절대 권력자 아합 왕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당장 목이 잘릴 수도 있는 살얼음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영적 안목은 아합 따위를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온 우주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보좌 면전(코람데오)'에 자신이 꼿꼿이 서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의 그 어떤 왕 앞에서도 떨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시퍼렇게 대면하는 자에게, 눈에 보이는 폭군은 한 줌의 지푸라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5. 하늘 문을 닫는 선고: 바알의 급소를 타격하다
엘리야는 아합의 면전에 충격적인 심판의 칙령을 내던집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임-이헤예 하-샤님 하-엘레 탈 우-마타르 키 임-레-피 데바리)" (왕상 17:1c)
비(마타르, מָטָר)와 이슬(탈, טַל):
팔레스타인 기후에서 이슬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여름철) 동안 농작물이 말라 죽지 않게 하는 유일한 생명수였습니다.
엘리야는 비뿐만 아니라, 풀잎 끝에 맺히는 단 한 방울의 '이슬'조차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1) 왜 하필 '가뭄'의 심판인가?
신명기 언약적 저주의 집행 (신 11:16–17):"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출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멸망할까 하노라"
엘리야의 선포는 개인의 즉흥적인 혈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언약적 저주(Covenantal Curse)'를 역사 속에 합법적으로 집행하는 영적 검사의 기소였습니다.
바알의 무능력에 대한 사형 선고:
"너희가 비와 폭풍의 신 바알을 섬기느냐? 좋다! 이제부터 하늘의 수전(수도꼭지)을 잠가버리겠다. 너희가 그토록 숭배하는 바알이 과연 하늘에서 비 한 방울, 이슬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릴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아라!"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들이 가장 목숨을 거는 바로 그 물질적 영역(비와 풍요)을 정면으로 치심으로써, 바알이 사기극에 불과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6. 야고보서의 영적 주해: 엘리야의 기도의 실체
열왕기상 17장 1절만 보면 엘리야가 아합에게 일방적으로 선포만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천 년 뒤 신약성경의 야고보 사도는 이 선포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엘리야의 피눈물 나는 기도의 골방을 열어젖힙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호모이오파테스, ὁμοιοπαθής)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프로슈케 프로세욱사토, προσευχῇ προσηύξατο)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야고보서 5:17–18)
호모이오파테스:
'동일한 본성과 연약함을 지닌(With a nature like ours)'.
엘리야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초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처럼 두려워하고, 배고파하고, 상처받는 연약한 질그릇이었습니다.
프로슈케 프로세욱사토:
"기도로 기도했다(He prayed with prayer)!" 히브리적 강조 용법으로, "온 심장과 진액을 다 쏟아부어 간절히 매달려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엘리야가 왕궁으로 달려가기 전,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신 11장)을 부여잡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이 백성이 바알에게 무릎 꿇었습니다! 하늘 문을 닫아서라도 이 백성의 우상을 깨뜨려 주옵소서! 고통이 올지라도 저들의 영혼을 살려 주옵소서!"
엘리야의 선포는 그의 골방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7. 핵심 원어 강해: 나할 크리트(נַחַל כְּרִית) — 사명자를 숨기시는 단절의 골짜기
선포를 마치자마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영광스러운 대중 집회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철저한 고립 속으로 숨겨버리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레크 미-제... 웨-니스타르타 베-나할 크리트)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에트-하-오르빔 치위티 레-칼켈카 샴)" (왕상 17:2–4)
{וְנִ֨סְתַּרְתָּ֔\ בְּנַ֥חַל\ כְּרִ֖ית}
{"웨-니스타르타 베-나할 크리트"}
{"그리고 너는 그릿 시내(나할 크리트)에 네 몸을 깊숙이 은닉하라(사타르)!"}
(1) 사타르 (סָתַר 니스타르타): 철저한 숨김
하나님은 때로 당신의 종을 역사의 무대에 세우시기 전, 혹은 큰 사역을 마친 직후에 '침묵의 골방에 완전히 감추어버리시는(Hide)' 방법을 쓰십니다.
아합의 살기 어린 수색대로부터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함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박수갈채나 분주함에 영혼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나님과의 절대적 독대'로 밀어 넣으신 것입니다.
(2) 크리트 (כְּרִית): 베어내다, 단절하다
어원적 의미: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쪼개듯, '자르다, 베어내다(카라트, כָּרַת)'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적 신학:
그릿 시냇가는 세상의 모든 인간적 연줄, 안락함, 친구, 명예와의 관계를 단칼에 베어내는 '단절(Cut off)의 골짜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자를 쓰시기 전에 먼저 그릿 시냇가로 보내사, 그가 의지하던 모든 세상의 끈을 가차 없이 끊어내십니다.
8. 까마귀의 식탁과 시냇물의 마름 (왕상 17:5–7)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고 즉각 순종하여 요단 동편 그릿 시냇가로 들어갔습니다(5절).
그 험준한 바위 협곡에서 기상천외한 하나님의 식탁이 펼쳐집니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웨하-오르빔 메비임 로 레헴 우-바사르 바-보케르 웨-레헴 우-바사르 바-에레브) 그가 시냇물을 마셨더니" (왕상 17:6)
부정한 짐승 까마귀 (레 11:15):
율법상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는 가증하고 탐욕스러운 새였습니다. 제 새끼의 먹이도 가로채는 본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탐욕스럽고 부정한 짐승을 굴복시키사,
아침저녁으로 다윗의 백향목 궁전도 부러워할 '따뜻한 떡과 기름진 고기(레헴 우-바사르)'를 하나님의 종에게 정확하게 배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면 맹수도, 부정한 까마귀도 사명자의 거룩한 밥상이 됩니다.
시냇물이 마르니라 (왕상 17:7)
그러나 낭만적인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와예히 미-케츠 야밈 와이바쉬 하-나할)" (왕상 17:7)
{וַיִּיבַ֥שׁ\ הַנָּ֑חַל\ כִּ֛י\ לֹֽא־הָיָ֥ה\ גֶ֥שֶׁם\ בָּאָֽרֶץ׃}
{"와이바쉬 하-나할, 키 로-하야 게쉠 바-아레츠"}
{"그리고 마침내 그 시냇물이 바짝 말라버렸으니(야베쉬), 땅에 비가 없었기 때문이더라!"}
엘리야가 마시던 시냇물이 쫄쫄거리며 줄어들더니,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며 쩍쩍 갈라졌습니다.
엘리야는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이곳에 왔는데, 까마귀는 고기를 물어오는데 왜 생명수인 물을 말려버리십니까?"
시냇물이 마르는 이유:
피조물에 안주하지 못하게 하심: 시냇물이 계속 콸콸 흘렀다면, 엘리야는 하나님의 얼굴 대신 '시냇물'을 의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의지하는 피조물의 시냇물을 말려버리심으로써, 오직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드십니다.
새로운 사명으로의 이동: 그릿의 시냇물이 말랐다는 것은, 이제 그릿에서의 훈련이 끝났으며 '다음 사명의 장소(사르밧)'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호탄이었습니다.
9. 구속사적 절정: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참된 엘리야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아더 핑크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릿 시냇가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훈련받았던 엘리야의 모습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 40일 동안 주리시며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완전한 그림자로 해설합니다.
|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 (왕상 17장) | 광야의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 |
| 배도의 시대에 홀로 아합의 궁전에 맞섬 | 흑암의 세상에 오사 사탄의 공중 권세에 맞서심 |
| 말씀에 순종하여 그릿 시내에 숨음(사타르) |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들어가 40일을 금식하심 (마 4:1) |
|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받음 | 사탄의 떡의 유혹을 물리치시매 천사들이 수종 듦 (마 4:11) |
| 마침내 시냇물이 말라버리는 결핍을 겪음 |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딥소)" 타는 갈증을 겪으심 (요 19:28) |
| 육신의 생명수를 마심 | 성령의 생수를 주사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되심 (요 4:14) |
말라기 4장 5절은 메시야가 오시기 전,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먼저 보내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바로 그 오리라 한 엘리야임을 밝히셨습니다(마 11:14).
그러나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되고 영원한 엘리야의 완성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물질적 떡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엘리야가 겪었던 그릿의 마름보다 비교할 수 없이 참혹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과
지옥의 타는 목마름을 온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시고 목마름을 당하셨기에,
오늘 우리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물을 값없이 거저 마시게 된 것입니다!
10.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배도의 시대에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엘리야후)'를 외치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과 현대 사회는 아합과 이세벨의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바알 신상은 사라졌을지 모르나, '돈, 물질적 성공, 아파트 평수, 외모 지상주의, 세속적 쾌락'이라는 현대판 바알과 맘몬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교회마저 번영신학에 물들어 "예수 믿고 부자 되자"는 바알적 기복주의에 타협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심령 속에 엘리야의 척추를 세우십시오!
세상이 다 물질의 바알 앞에 무릎 꿇을지라도,
당신의 삶의 자리에서 온몸으로 선포하십시오: "엘리야후! 돈이 내 하나님이 아니다! 세상의 권력이 내 주인이 아니다! 오직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유일한 주님이시다!"
타협을 거부하고 거룩한 구별됨을 지키는 단 한 사람의 사명자를 통해 하나님은 시대를 흔드실 것입니다.
(2)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 존전(코람데오)'에 서라
우리는 왜 세상 앞에서 비겁해지고, 직장에서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며, 사람의 시선 앞에 벌벌 떱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앞에 있는 권력자(아합)를 더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자세를 배우십시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분 앞에 서 있노라(아마르티 레-파나이브)!"
당신의 영적 주소를 확인하십시오.
당신은 사람의 평가 앞에 서 있습니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 앞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 존전에 서 있는 자는 세상의 그 어떤 폭군이나 위협 앞에서도 사자처럼 당당하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3) 인생의 시냇물이 마를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인'을 읽으라
당신이 의지하던 사업의 자금줄이 마르고, 건강의 시냇물이 줄어들며, 믿었던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이 끊어지는 결핍을 겪고 계십니까?
"하나님, 내가 주를 위해 헌신했는데 왜 내 시냇물을 말리십니까?" 원망하지 마십시오.
시냇물이 마르는 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거룩한 신호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야, 이제 그 말라버린 흙탕물을 쳐다보지 말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반석이신 나 여호와를 바라보라! 이제 그릿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가 예비한 더 큰 은혜의 땅으로 나아가라!"
피조물의 시냇물이 마를 때,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의 기적의 강물이 시작됩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11. 결론: 말라버린 시내를 떠나 사르밧으로
열왕기상 17장 7절의 막이 내리며,
그릿 시냇가는 한 방울의 물도 남지 않고 흙먼지만 날리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엘리야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벼랑 끝에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결코 굶겨 죽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라버린 시냇가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던 엘리야를 향해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이동 명령을 내리십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왕상 17:9)
그곳은 어디였습니까?
바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도륙하던 악녀 이세벨의 고향이자,
바알 우상 숭배의 심장부였던 ‘시돈 땅 사르밧(Zarephath)’!
풍요로운 이스라엘의 부자들의 집이 아니라,
가뭄으로 굶어 죽기 직전,
남은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몇 방울로 마지막 빵을 구워 먹고
어린 아들과 함께 자살하려던 ‘이방인 사르밧 과부의 초라한 오두막’!
가장 비참한 결핍의 밑바닥에서 피어난
순종의 빵 한 덩이,
그리고 3년 반 동안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던 가루 통과 기름병의 기적: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더 나아가 숨이 끊어져 차디차게 식어버린 과부의 어린 아들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며 부르짖었던 부활 생명의 불길!
제2강: 사르밧 과부의 마지막 밀가루 — 결핍 속에서 피어난 부활의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