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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
성경본문: 잠언 25: 8-12
8.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10.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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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민 목사
들어가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위나라의 문후가 하루는 신하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경들은 나를 어떤 임금이라고 생각하는가?" 신하들은 입을 모아 "우리 임금님은 어진 임금이십니다"라고 판에 박은 듯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책황이라는 신하가 대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태연하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어진 임금은 아니십니다. 언젠가 중산국을 토벌하신 후, 거기에는 당연히 제군을 봉하실 자리였는데 황태자를 영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셔서는 어진 임금이라는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문후는 이 말을 듣자 노발대발하면서 "물러가라, 너같은 것은 꼴 보기 싫으니 물러가 있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다음은 임좌라는 사람이 대답할 차례였습니다. 신하들은 임좌가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흥미를 갖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임좌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임금님은 어진 임금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문후는 그 말을 듣자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까닭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임좌는 "어진 임금이라야 직언할 수 있는 신하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책황의 말은 확실히 직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직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임금이 어질다는 증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후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즉시 노를 풀고 책황을 다시 불러 들였다고 합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성도의 언어생활에 필요한 황금 같은 가르침입니다. 누구에게나 말은 중요한 것이지만 성도의 신앙생활과 언어는 아주 중요한 관계입니다.
Day라는 사람은 말하기 전에 먼저 세 가지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1)그것은 사실인가?
(2)그것은 꼭 필요한 것인가?
(3)그것은 친절한 말인가?
그리고 나서 사실이고 꼭 필요한 것이고 친절한 말이라면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성도의 언어생활에 덕이 되는 몇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고 합니다. 또 다툴 때에라도 변론만 하고 비밀은 누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해서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시는 가운데 큰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음력 정월은 덕담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인사하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렇게 정월에 가장 아름다운 말로 인사하며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덕담을 주고받는 일을 일년 내내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늘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복을 축복하는 말로, 서로를 존경하는 인사로 일년 내내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말로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첫째,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8절을 봉독하겠습니다.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이 말씀에서 중히 다루고 있는 것은 급한 마음의 문제점과 다툼의 문제점입니다.
급한 마음은 성도의 언어생활에 큰 실수를 일으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실수를 많이 합니다. 무슨 말 한마디만 들어도 참지를 못합니다. 사람의 성격을 대개 다혈질, 우울질, 담즘질 그리고 점액질로 구분하는데, 주로 다혈질이 성격이 급합니다. 다혈질의 사람은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급하게 강력하게 반응하지만 그 반응이 오래가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뒤끝이 없노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급하게 혈기를 부렸으니 뒤끝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쳐서 풀어버렸는데도 무엇인가가 남아있다면 그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다혈질이던지 점액질이던지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이 급하게 반응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나는 원래 그렇다고 하는데 이것은 훈련받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자신을 훈련하여 급한 마음을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급한 마음은 다툼을 일으킵니다.
조금만 신중하면 피할 수 있는 다툼이 많습니다. 앞뒤를 조금만 더 생각하면 많은 다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만 더 이해하려고 한다면 다투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툼이 능사가 아닙니다. 다툼이 모든 문제의 해결일 수 없습니다. 큰소리치면 이기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다툼의 언어를 피하십시오.
다툼의 언어로는 평화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다툼의 언어는 서로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툼의 언어는 서로를 지게 만듭니다. 다툼에서는 이기는 것 같으나 지는 것입니다. 당장은 승리한 것 같으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나중에 생각하면 얼마나 창피한 줄 모릅니다. 더군다나 다툼에서 진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인간관계가 회복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습니까? 다툼의 언어는 서로가 지는 방법입니다. 다툼의 언어는 서로가 상처받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성도 여러분이여 다툼의 언어를 피하여 평화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변론은 하되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2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변론은 다툼의 언어가 아닙니다. 조리있게 자신의 입장이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다툼의 언어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토론은 하되 남의 비밀은 누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이 토론문화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납니다. 본문에서 변론만 하라는 말이 곧 토론문화를 발전시키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설명하되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말만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것입니다. 변론과정에서 알게 되었든 다른 일로 알게 되었든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서도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의 제목으로 비밀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비밀은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나를 믿고 한 말은 여기저기 말한다면 신실한 사역자가 아닙니다. 비밀을 지켜줄 때 계속 믿고 다른 문제도 상담하고 기도를 부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비밀이야기를 들으면 이야기하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비밀을 털어놓지 않으면 입이 근질근질하여 괴로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안 이발사가 그것을 발설하자니 죽임을 당할 수 있고 그냥 있자니 미칠 것 같아서 산에 올라가 구멍에다 대고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를 수없이 외치고 내려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속에 묻어두어야 옳은 일입니다.
중보기도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의 단점을 가십거리로 만들지 말고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라"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비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비밀을 가십거리고 만들지 말고 오히려 중보기도의 제목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라.
11절을 읽겠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때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은 지혜로운 말입니다.
옛날 어느 작은 시골 천주교회의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보좌하던 한 소년이 실수하여 성찬에 사용할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즉시 소년의 뺨을 때리고 소리쳤습니다. "어서 물러가고 다시는 제단 앞에 나오지 마라" 그랬는데 이 소년이 장성하여 공산주의의 대지도자인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천주교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일 미사를 돕고 있던 소년이 실수로 성찬에 쓸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곧 이해와 동정이 어린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네가 앞으로 신부가 되겠구나" 그랬는데 이 소년은 성장해서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쉰(Fullton Sheen)이 되었습니다. 티토 대통령은 신부의 말대로 제단에서 물러가 하나님을 비웃는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쉰 소년은 그 신부의 말대로 귀한 하나님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많은 실수와 잘못이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 잘해서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마디 잘못해서 평생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리 말을 잘해도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말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저택의 주인에게 심부름을 갔습니다. 그 주인은 심술궂고 구두쇠인데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심부름꾼은 그 괴짜의 기분을 좋게 해서 심부름의 목적을 달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응접실로 안내된 심부름꾼은 주인이 나오자마자 넙죽 엎드려 큰절부터 했습니다.
"내게 이럴 필요 없네. 어서 일어나 용건이나 말하게. 나는 바쁘니까 말이야."
"그럼 급한 일 다보고 나오십시오. 저는 기다리면 됩니다."
주인은 겸손한 심부름꾼의 태도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릴 수 있나."
"선생님이 일을 다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자네 마음대로? 자네를 심부름 보낸 사람이 기다릴텐데..." "몇 시까지 돌아오라는 분부는 없었습니다. 저는 다만 선생님의 도장을 받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
주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흔쾌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네 내 밑에 와서 일할 생각 없나?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내가 좀 고약한 데가 있어서 아무도 오래 붙어 있지를 못해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고맙기 그지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답변을 드리기 전에 저는 현재 심부름을 왔으므로 이 일부터 처리해 주십시오. 그 다음에 현재의 주인하고 의논하여 허락을 받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럼 그렇게 하게. 내게 오면 비서가 아니라 양자로 삼겠네. 나도 사람 보는 눈은 있네." 그 뒤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말은 양약과 같아서 분노를 씻어내고 불안을 밀어내며 구두쇠의 마음도 녹이고 안되는 일도 되게 만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혀를 통제하여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합니다. 절제된 언어는 인격과 품위를 고양시키고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합니다. 인생은 말이라는 실로 짜여지는 옷감과 같습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뱉어서는 옳은 옷감을 짤 수 없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다툼의 말을 하지 맙시다. 남의 비밀을 누설하지 맙시다. 그리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합시다.
어느 과학자가 말하기를 "뇌 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에는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이 뇌세포에 전달되면 뇌는 척수신경을 지배해서 행동으로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8장 20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인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괘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언어생활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합시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습니다. 불평의 말 대신에 감사의 말을 하고 삽시다. 그러면 감사가 더욱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주의 말 대신에 축복의 말을 하고 삽시다. 자신에게도 복이 될 것입니다. 비판의 말 대신에 칭찬의 말을 하고 삽시다. 그러면 칭찬이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의심의 말 대신에 믿음의 말을 합시다. 부정의 말 대신에 긍정적인 말을 하고 삽시다.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