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예배합시다.』
레위기 10:1-2. 270∙269장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성경을 보면 문제와 적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에 성공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적들을 물리쳤으며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는 자 세상에서 성공하며 예배에 승리하는 자 인생에서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3년 반 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았을 때 갈멜산에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수를 부어드렸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야 모든 제물과 물을 태웠습니다. 그때 주의 종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일곱 번 기도했을 때 마차 바퀴가 빠질 정도로 큰비가 내린 줄 믿습니다.
페르시아 모든 신하들이 다니엘을 질투하여 페르시아 모든 영토에서 그 어떤 신에게도 예배하지 못하게 했을 때 다니엘은 자신이 정해놓은 시간에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여호와를 예배합니다. 다니엘이 이처럼 예배에 성공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보호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예배에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예배에 실패하거나 예배를 소홀히 여기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레위기 10장 1-2절 말씀을 보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려고 할 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이들을 삼켰다고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드리려고 했던 다른 불 히브리어로 ‘에쉬 자라’에는 크게 세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가연성 물질을 태워서 나는 뜨거운 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빛 자체이시기 때문에 지성소 안에는 그 어떤 불도 밝히지 말며 밖에서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개 가죽을 덮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하나님이 아닌 인위적인 것이 첨가되거나 주인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며 주님 말씀대로 제사하고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가 반영되면 안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의지나 감정, 의지가 반영되면 어떻게 될까요? 내 의지나 생각이 반영되지 않으면 서운합니다. 반대로 내 의지나 생각이 반영되면 교만해집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며 우리의 생각대로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불을 뜻하는 히브리어 ‘에쉬’는 여호와가 아닌 태양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할 때 태양 빛을 뜻하는 ‘에쉬’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특히 태양은 그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 신으로 섬기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에쉬’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뜻합니다.
리비딤에서 물을 달라고 하는 히브리 때문에 화가 난 모세는 그 화를 담아서 르비딤 반석을 두 번 칩니다. 이 일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가지고 나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답과 아비후가 가지고 온 ‘다른 불’에는 이런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한 예배는 무엇일까요? 우리 입장에서 잘 드려진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성공한 예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예배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 : 예배의 승패는 무엇일까요?
마무리기도
예배에 성공하게 하소서. 참된 예배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