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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 19 장
행 19:1,2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
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
도 듣지 못하였노라. - "윗지방"이란 갈라디아 지방에서 서쪽 에베소로가는 높은 지대
의 길을 말한다. 이것은 루카 골짜기, 메안데르 골짜기를 경유하는 낮은 지대의 길과
다른 것이다.
"어떤 제자들"은 기독 신자들이면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자들을 가리킨
다. 그들은 아마 아볼로에게 배운 사람들로서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은
정도의 신자들이었다. 18:25 해석 참조.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이 말은 성령의 은사(* =gifts)들이 신약적으로 특수하게 임하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인이니 성령을 전연 몰랐을 리는 없다(
Calvin). 간혹 교회에는 이런 불완전한 신자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은
어떤 신자들이 진리 지식에 빈약한가 살펴서 그들을 가르치려고 힘써야 된다. 바울이
여기서 에베소 사람들에게 질문한 목적은 그들을 가르치려는 데 있었다.
행 19:3,4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
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
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 바울은 진리 지식에 빈약한 신자들을 문답식
으로 가르쳤다. 여기서 바울이 "세례"를 문제로 하여 그들에게 접촉한 이유는 그들을
성령의 세례로 인도하려는 까닭이다. 1:5 참조. 이 때에 그들의 대답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들을 예수님께 접촉시키려고 세례 요한
도 예수님을 증거하였다고 가르쳐 주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한 중요한 한 마
디는, "내 뒤에 오시는 그 이"를 믿으라는 것이었다(요 1:27). 바울은 이 사실을 지적
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였다.
행 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 "안수"에 대하여는 6:6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
라. 인간의 안수가 기계적으로 영적 은사(靈的恩賜)를 전해 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
러나 이 때에 안수함과 동시에 성령이 임하신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뜻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심에 있어서 인간의 사역을 요구하신다는 것
이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신자들이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은 오순절에 예루살렘
에서 있었고(2:4), 그 뒤에는 가이사랴에서(10:45-46), 이번에는 에베소에서 그런 일
이 있었다. 오늘날 어느 교파에서 이 사실에 근거하여 오순절에만 아니라 후대의 신자
들도 방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자마다 방언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
데 바울은 말하기를,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라고 하였다(고전 12:30). 이 말이
의미한 바가 무엇이겠는가? 산다스(D.L.Sanders)는 말하기를, 바울의 이 말은 공적
사역(公的使役)에 사용될 방언의 은사는 신자마다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는 또 말하기를, 신자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받을 수 있는 방
언의 은사를 바울이 여기서 부인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산다스의 이와 같은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라고 한 바울의 말씀은 방언 문제
로 과오를 범하는 일반 교중(敎衆) 상대로 한 것이다. 바울의 이 말씀은 사람마다 방
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필요하다면 어떤
사람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실 수 있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 중에서 고전
14장의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서 방언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교정되어야 한다. 고전
14장의 규례는 방언하는 자는 자기 홀로 사적(私的)으로 하라는 것이다(고전 14:2).
"예언"이란 것은 그 때에 어떤 신자들이 장래 일을 예고함을 가리키지만, 성경을
바로 깨닫고 교회를 가르쳐 유익하게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행 11:28, 21:9-11;
고전 14:3).
행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
되. - 여기 이른 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함인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써 신자들을 다스리심을 가리킨다(Lenski).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천국 운동은 시작되어 그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칼빈(Calvin)에 의하면 이 운동은,
(1)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사죄운동이고, (2) 우리를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답게 만드시는 성화(聖化) 운동이다. 이 두 가지가 천국 운동의 핵심이다. 천국
운동은 또한 일반 은총 방면에도 뻗쳐 나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의 은총이 문화 건설
에 끼쳐주는 영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천국 운동의 핵심은 아니다.
바울이 천국에 대하여 담대히 말하게 된 원인은 그가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으로
천국 운동이 시작됨을 확신한 까닭이다. 이 확신은 성경에서 얻으며 성령으로 말미암
아 약동한다.
행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 복음이 전파
되는 곳에는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도 반드시 있는 법이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는
어디든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는 반면에 불택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
라 택한 백성 중 어떤 자들은 늦게 진리를 깨닫기 때문에 한 동안 복음을 반대하는 일
도 있다.
사상이 같지 아니한 무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교회 생활을 할 수 없다. 사상이
달라서 서로 자주 충돌하며 암투하는 동안 은혜가 없을 뿐더러 그런 교회는 점점 쇠퇴
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쳤다.
"두란노"는 고장 이름인지, 혹은 어떤 학파의 지도자 이름인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행 19:10-12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
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
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 바울의 성역에는 큰 열매가 나타났다. (1)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
이 주의 말씀을 들음. 사람들의 강퍅한 마음이 깨어지고 그들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은 이적 중의 이적이다. 육체의 병은 의사가 고칠 수 있으되 죽은 영혼(엡 2:1)은
하나님께서만 살리신다. 이 때에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듣도록 바울이 주의 말
씀을 힘있게 외친 것이 벌써 이적이고, 또 그 수다한 사람들의 심령이 열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역시 이적이다. (2) 병을 고치며 악귀를 내쫓음. 바울의 손수건
이나 앞치마 그 자체가 어떤 능력을 전달한 것이 아니다. 그럴 리가 만무하다.이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야 한다. 곧,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영권(靈權)을 높이기 위
하여 그런 방식으로까지 병자들을 낫도록 도와주신 것이었다. 바울이 저렇게 높임이
되어야 할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복음을 유력하게 전하시기 위함이었다.
행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
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
노라 하더라. - 근동 지방에서 발견된 조각문들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마술의 주문
(呪文)들이 있다. 예를 들면,"내가 히브리인의 신(神) 예수...를 힘입어 명하노라. 피
조물을 둘러싸고 날아다니는 귀신을 잡아지이다."고 한 문구 등이다(抄譯)(Deissmann
, Light from the Ancient East, p.260). 유대인들이 솔로몬의 이름을 불러 귀신을
쫓아내는 일도 있었다(lenski).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할 때에는 그들이 예수
님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귀신 내쫓는 일에 일정한 체계가
없었다. 그들이 귀신을 내쫓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
의 사욕을 위하여 하나님이나 솔로몬이나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한 것 뿐이다.
행 19: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 여기 "제사장"으로
번역된 헬라어(* )는 실상 "대제사장"이라고 개역되어야한다. 이것
은, 에베소에 거주하였던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되는 자를 가리킨 듯하다(Alford). "일
곱 아들"이란 말은 일곱 제자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으나(Baur) 확실하지 않다.
행 19:15,16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
며 귀신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 악귀 들린 사람의 입을 통하여 그 악귀의 말이 나
왔다. 이것이 악귀의 말인 고로 저자 누가는 그것을 가리켜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라고 기록했다. "예수도 내가 알고." 악귀가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저놈이 예수님
을 사랑하거나 신뢰하는 의미에서 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놈은 언제나 예수님을 대
적한다. 그러나 저놈이 영적 실존이니만큼 현세에서는 영적 사리들을 사람보다 잘 안
다. 저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실을 잘 알고 있다(막 1:24. 그러나 예수
님께서는 저놈들을 그 증인으로 쓰시기를 원치 않으신다(막 1:25. 그러므로 우리도 저
놈들을 증인으로 신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놈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심에 대하여 발할
경우에는 우리로서 그것을 연구해 볼 점은 있다. 그 이유는 저놈들이 발설한 바가 현
세에서는 어떤 영적 사리들에 있어서 사람보다 밝히 아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악귀의 이 말은 예수님을 진실히 믿지 않
는 자들에게 큰 위협이다. 진실히 믿지 않는 자가 누구인지 악귀는 잘 안다. 그리고
저놈이 참 신자가 누구인지도 잘 안다. 그러므로 악귀의 조롱거리, 또는 침략거리가
안 되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 진실해야 한다.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두 사람"이란 말(* )이 공인성경(Textus Receptus)에는 없고 그저
"저들"(* )이라고 되어 잇다. 그러나 알포드(Alford)는 "두 사람"이라고 한
사귀(寫句)를 원본으로 여긴다. 이것이 옳은 경우에 그 두사람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
중 두 사람을 의미한다.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예
수님을 참으로 믿지 않으면서 그의 권위를 이용하려는 자들은 악귀에게서도 조롱과 수
욕을 당한다.
행 19: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
을 높이고. - "이 일"이란 것은 14-16절에 기록된 사건을 이름이다. 여기 세가지 사실
이 주목된다. 곧, 사람들이 그 사실(14-16)을 알게 됨, 두려워함, 주님의 이름을 높임
이다. 사람들이 복음의 진상을 알기만 하면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행 19: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 죄를 "자복함"은 심령이
죄악의 통치에서 놓인 증표이다. 죄를 자복하는 일은 그 시작이 힘들다. 그러나 일단
자복하기 시작한 뒤에는 그것이 전면적으로 쉽게 된다(Bengel).
행 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불사
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 마술사들의 회개 행사는 몇 가지
방면으로 유력하게 나타났다. (1)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행해진 고백이요, (
2) "책을 불사름"으로 과거의 악행을 원통히 여겨 청산함이고, (3) "은 오만이나 되
는" 막대한 희생을 지불하면서 회개의 열매를 맺었다. "은 오만"은 8,500달라 가량 되
는 금액이라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재산밗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책을 태워버렸
다. 그 이유는 그 책들이 남들의 손에 들어가면 남들로 하여금 또 범죄케 할 것을 그
들이 알기 때문이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 "세력을 얻음"은
모든 반대 세력을 이기는 것을 가리킨다.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다"(*
)는 두 동사(動詞)가 과거 미완 시상인 만큼 계속적으로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중에 있다는 뜻이다.
행 19:21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에 쉴 새가 없었고, 멀리 "로마"에
도 갈 경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이 소원을 인간적 방법으로 이루려 하
지 않고 주님의 인도에 따라서 성취하려고 한 것이다. 롬 1:13 참조.
행 19:22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 바울은 그의 전도로 세워진 교
회들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파송해서 그 교회를 심방하여 붙들어 주도록 부단히 노력
했다. 또 다른 실례들을 들면, 그가 고린도교회에 디도를 보낸 일(고후 8:23), 빌립보
교회에는 에바브로 디도(고린도 교회에 파송된 디도와 다른 사람)를 보낸일(빌 2:25),
골로새 교회에는 마가를 보낸 일(골 4:10),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디모데를 보낸 일(살
전 3:2)과 같은 것이다.
23-41. 이 부분에는 데메드리오의 소동이 진술되었다. 이 소동에서 관계 인물들은
각기 그 본색을 드러냈다. (1) 아데미 신(神)의 은감실을 만드는 자 데메드리오는 자
기와 그 동업자들의 영리 사업이 실패할 것을 염려하여, 또는 아데미신의 위엄이 떨
어질까 하여 이 소동을 일으켰다(23-28). (2) 바울은 위태로운 자리에 빠진 그의 동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의 수난에 동참하려고 연극장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신자들이 그
를 만류하였다(29-31). 이 점에 있어서 바울은 복음 전선에서 동지를 위한 의리(義理)
를 충실히 지켰다. (3) 군중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고 있었다(28, 32, 34). (4) 로
마의 관리(官吏)는 민중의 종교를 소중히 여기는 아첨을 표시하는 동시에(35-36)
로마식 준법 정신을 그대로 나타냈다(37-41).
행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 여기 "이 도"란말(*
은 복음을 의미한다.
행 19: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도 적지 않
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 "아데미"는 쓰스(Zeus) 신(神)의 딸이라고 하는데 월신(月
神)이라고 하며, 자연계에 생명을 준다고 전한다(Grosheide). "은감실"이란 것은 은
으로 만든 모조 신전(模造神殿)이다. 그 때에 헬라인 여행자들이 흔히 그것을 몸에 지
니고 다녔다고 한다. 에베소의 "아데미" 신은 로마의 디아나(Diana)와 유사한 것이다.
다만 디아나는 활과 화살을 가진 여자의 신상(神像)이었으나, 아데미는 많은 유방을
가진 여자의 신상이다. 이 두 신상이 다 농사의 풍성한 생산을 위하여 섬김이 된 점
은 서로 공통된다.
행 19: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 데메드리오는 영업상 이권(利權)때문에 복음운동
을 방해하는 소동을 일으켰다. 그는 자기의 영리 때문에 에베소 전시(全市)를 요란케
한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육체적 이익을 위하여는 죽을지 살지 모르고 덤빈다.
행 19:26
이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
라. - 데메드리오의 이 말을 보아도 바울의 복음 운동은 어디까지든지 다른 종교를
반대한 것이다. 바울이 그의 시대에 유행하던 타협주의(종교들이 서로 혼합하는 경향)
와 반대로 복음을 파수한 것이 명백하다. 다른 종교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의
특징이다. 실상 기독교 복음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모든 다른 종교들을 폭파하는 폭
탄인 것이다. 다른 종교들이 신(神)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
들이다.
행 19: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
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실 때에 그 귀신들을 돼
지 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으므로 돼지들이 바다에 빠져 몰사하니, 그 주인들이 와
서 예수님을 그곳에서 떠나시도록 권한 것(마 8:28-34)과 같은 심리로 한 말이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사람의 영혼 구원보다 영업을 더 사랑하며, 영혼보다도 돼지를
더 귀히 여긴다. 그들은 자기를 지어주신 창조주보다 그들 자신이 만든 우상을 더 좋
아하여 섬긴다.
행 19: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
니. - 우상 교도들은 그들의 종교에 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종교적 본능에
의해 그 종교를 보호하려는 데 단합한다.
행 19: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다. - "가이오"는 더베사람이고(20:4), "아
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서(20:4, 27:2), 바울의 동행자이다(골 4:10). 에베
소의 "연극장"은 고대의 연극장으로는 가장 컸다고 한다.
행 19:30,31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바울의 친구된 어
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 바울은 그의 동행자
들과 같이 고난을 겪으려고 연극장으로 들어가려 하였지만 만류 당하게 되었다. 그는
고난에서 면제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복음과 함께, 또 그의
사랑하는 동지들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 하였다. 그의 이 행동원리는 모든 전도자들의
모본이다. 즈안(Zahn)은 이와 좀 다르게 해석한다. 곧,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었
고, 또한 고위층의 관리들과 접촉하였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자기 동역자들을 건져
낼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무리들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했다는 것이다(Da er auf grund
seiner Stellung als rvmi scher Burger und seiner ermutigenden Erfahrungen im
verkehr mit hohen Stadt-und Reichsveamten, cf 13:7ff; 16:35ff; 18:12ff, hoffen,
durfte, mit besserem Erfolg als Cajus und Aristarch selbst deren Freilassung
herbeizufuhren.-Apostelgeschichte II, 1927, s.694).
행 19: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 캄벨 몰간(Campbell Morgan)은 이 귀절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강해하였다. 곧, "군중이 진리는 지니지 못하고 저렇게 떠들기만 하는
혼란 때문에 에베소 교회는 두려워할 것 없다. 그와 같은 종류의 반대는 하나님의 교
회의 전진을 막지 못한다. 그런 것은 교회에 위험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서기장이
그 소동을 만류시킨 것(35-41)이 위기(危機)의 시작이다."고 하였다(The Acts of
the Apostles, p.465).
행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
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 여기 "알렉산더"는 구리 장색 알렉산더로서(딤후 4:14)
기독교로 돌아왔다가 배교한 자와 동일시 된다(Zahn). 딤전 1:20 참조. 어떤 학설에
의하면, 여기 나온 알렉산더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아니고 그 때에 불신 유대인들
중 하나였다고 하며, 또 그 때에 유대인들이 그를 "앞으로 밀어낸" 목적은 저희(유대
인들)는 바울의 복음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대변시켜 발뺌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고 한다. 그러나 이 학설은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행 19:34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
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 그 때에 군중이 그 유대인(알렉산더)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우상 숭배를 반대하는 만큼 아데미 신
에 대한 반대 사상도 가졌을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군중은 아데미
신을 위해야 할 진리의 근거는 없이, 그저 아데미가 "크다"고하는 군중의 데모를 두시
간 동안이나 할 뿐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폭도의 위협에 의하여 그 우상 종교를 보존
시켜 보려는 허세에 불과한 것이다. 우상 종교는 언제나 참된 진리의 체계는 소유하지
못한 것인 만큼 진리와 공익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신봉자들의 편
견으로 인한 맹목적 옹호에 의하여 유지된다.
행 19:35,36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 에
베소 사람들의 미신 사상은, 아데미 신이 하늘에 있는 쓰스 신에게서 내려왔다고 전하
고 있었다. 플리니(Pliny)의 말에 의하면, 옛날 에베소에 디아나(Diana=아데미의 별
명)목조 신상이 있었는데, 그 신전(神殿)은 일곱 번이나 수리했어도 그 신상(神像)
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만큼 사람들이 그것에 신화(神話)를 붙여서
말하기를,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J.A.Alexander,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1956,p.677).
이 때에 에베소의 "서기장"이란 관리는 이러한 미신을 인정하여 주는 듯이 군중에
게 아첨하였다. 그리고 그가 그 폭동을 "안돈시킨"것은, 바울의 복음 운동과는 상관
없이 다만 에베소의 안녕 질서를 위해 그러한 것이었다. 그의 이 처사로 복음에 대한
박해가 멈추어진 것이 얼른 보면 교회에 유익한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교회가 핍박
을 당하는 동안 순결해지고 유력해진다. 정치의 보호를 받는 교회는 위태하고 종종 마
비 상태에 빠진다(Morgan).
행 19:37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
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 - 이 말을 보니 바울의 전도 행위가 어떠하였음을 알 수 있
다. 그는 친히, 혹은 사람들을 시켜서라도 우상의 전각을 폭력으로 파괴한 일은 없었
다. 그는 원수의 기관이나 설비 같은 것들을 직접 전복시키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
다. 그는 다만 새 생활의 진리, 곧 복음을 사람들의 마음에 전하고 그것을 배양할
뿐이었다. 새 잎이 돋아나면 낡은 잎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미국에는 특이한 도토리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새 잎
이 나오면서 옛잎이 떨어진다. 이같이 새 생명이 움트면 묵은 것은 탈락되는 법이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복음 운동이 그런 방식으로 움직였다. 거기서는 우상 종교에 대한
데모 행위도 없었고, 다만 하나님과 참되이 교제하는 새 생명 운동이 있었을 뿐이며
바울의 복음은 승리하였다.
행 19:38-41
이 부분에는 에베소 시의 서기장이 군중 심리로 덤비는 무지한 민중에게 법 절차
를 잘 가르쳐 주어 질서를 잡음으로써 법치 정신을 발휘한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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