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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 도사' 여름철새들…호반새, 청호반새, 물총새
고단백 먹이 먹은 호반새 새끼, 다른 새보다 열흘 일찍 자라
■ '빈 손'은 없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여름철새 중 영어 명칭으로 ‘어부’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그냥 어부가 아니라 ‘어부 왕(kingfisher)'입니다.
호반새(불그레한 어부 왕, ruddy kingfisher), 청호반새(머리가 검은 어부 왕, black-capped kingfisher), 물총새(보통 어부 왕, common kingfisher)가 그 주인공이며, 모두 물총새과에 속합니다.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친구들은 그야말로 물고기를 잡는 선수들입니다. 물 밖에서 목표물을 노려보고 있다가 일단 물속으로 뛰어들면 빈 부리로 물을 나서는 법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셋 중에서 왕 중 왕을 가리라면 물총새가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물고기만 잘 잡는 것은 아닙니다. 물과 인연이 깊은 대부분의 생명체들을 먹잇감으로 삼으며, 육상곤충도 잘 잡습니다.
대개 5월 초순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이 친구들은 우선 여름철새답게 색이 화려합니다. 그 중에서도 호반새의 붉은 색에 가까운 주황색은 압권입니다. 또한 이들은 같은 과에 속하기 때문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길고 날카로운 부리는 그 무엇이라도 잘 잡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먹잇감을 잡으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뭇가지나 돌에 호되게 메쳐 기절시킨 뒤 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번식 방법에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물총새와 청호반새는 그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깎아지른 수직 흙벽에 구멍을 뚫고 수평 방향의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 번식을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호반새는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릅니다. 호반새 역시 수평 방향의 공간을 만들기는 하지만 수직 흙벽이 아니라 썩은 아름드리 나무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땅한 나무를 만나지 못하면 딱따구리의 묵은 둥지를 사용하여 번식 일정을 치러내기도 합니다. 오늘은 호반새 중심으로 이들의 번식 일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호반새가 숲에 들어온 것은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꾜르르르, 꾜르르르, 꾜르르르” 소리를 연속으로 내는데 옥쟁반에 구슬 구르듯 무척 아름답습니다. 호반새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둥지 물색입니다. 둥지를 짓기에 마땅한 썩은 아름드리 나무를 선정하면 수평으로 내부를 긁어내며 공간을 넓힙니다. 둥지를 짓는 일은 암수가 서로 교대로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숲에 호반새가 둥지를 틀 만한 아름드리 나무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첫 시도는 굵은 나무를 대상으로 수평형 둥지를 마련하려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수직형 딱따구리의 묵은 둥지를 그대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 암컷 마음 사려면 쥐나 뱀 정도는 선물해야
짝짓기는 둥지를 짓는 시기에 이루어집니다. 짝짓기는 암컷의 허락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암컷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수컷의 선물입니다.
수컷은 열심히 암컷에서 선물공세를 펼칩니다. 선물은 바로 먹이이며, 어떠한 먹이를 잡아오느냐를 통해 암컷은 수컷의 능력을 가늠합니다. 곤충 같은 하찮은 먹이로는 암컷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며 제 짝으로 맞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개구리, 나아가 뱀이나 쥐 수준의 묵직한 먹이 정도는 되어야 암컷이 짝짓기에 응하며 짝으로 맞이합니다. 호반새 암수는 외형이 동일하지만 수컷의 체색이 조금 진합니다.
둥지가 완성되면 알을 낳아 품습니다. 알을 품는 기간은 2주이며, 암수가 하루 4번의 교대를 하는데 특이하게도 둥지의 밤은 암컷이 지킵니다. 이 시기는 아무 은밀하게 진행됩니다.
하루 4번의 교대 중 첫 번째는 아직 날이 밝기 전의 새벽, 네 번째는 약간 어두워진 밤에 이루어지며, 두 번은 낮에 이루어집니다. 교대를 하러 온 쪽이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면 둥지 안에 있던 쪽이 주위를 철저히 살핀 뒤 둥지를 나섭니다. 그리고 누군가 둥지 근처에서 얼씬 거린다면 교대는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엿봅니다. 무척 조심성이 많은 새입니다.
■ 맹금류 비슷한 먹이
2주 동안의 은밀한 알 품기가 끝나면 부화가 일어나고 먹이를 나르기 시작하는데, 이 때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 펼쳐집니다. 갓 부화한 어린 새들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먹이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맹금류가 새끼를 키우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부화 초기, 먹이는 수컷이 나르며 암컷은 둥지 안에 있다가 수컷이 나르는 먹이를 받아 어린 새에게 찢어서 줍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암컷도 둥지를 나서 수컷과 함께 먹이를 나르는 일정에 동참합니다. 암컷이 둥지를 나선 뒤에는 어린 새 각자가 먹이를 받아먹으므로 먹이의 크기는 눈에 띄게 작아지며, 이후로 날마다 조금씩 커집니다.
호반새가 어린 새를 위해 마련하는 식단은 번식지의 환경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화려한 보양식입니다. 따라서 호반새 어린 새의 성장속도 또한 무척 빠른 편입니다. 대체로 숲새들이 새끼를 기르는 기간이 한 달 남짓일 때, 호반새는 적어도 10일 정도는 이보다 빠릅니다.
다음은 호반새가 어린 새를 위해 마련하는 식단입니다. 무엇을 먹고 크느냐에 따라 그 생명체의 성향이 정해집니다. 호반새는 맹금류가 아니면서도 맹금류처럼 무척 사나운 새입니다. 먹이가 벌써 말해줍니다.
호반새가 어린 새에게 무엇을 먹여 기르는지 다음 사진으로 알아봅니다.
글·사진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