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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신명기 5:16
온 세상 만물들이 온 세상 꽃들이 싱싱하게 생동하는 5월은 가정을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5월 5일은 어린이 날이고, 5월 8일은 어버이 날입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님이 하늘 나라로 올라가신 추모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는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가족을 생각하는 기념일들이 있어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주일 5월 2일날에는 사랑하는 큰 딸이 하나님 은혜 가운데 University of Michigan 대학에서 4년을 무사히 공부하고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왜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듭니다. 졸업식을 하는 넓은 미시간 대학 운동장에 10만명이 들어가는 데 그 큰 운동장에 축하하기 위해서 인. 친척이 참석한 인원이 7만정도 그 중에 졸업생은 6800명이 졸업을 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딸이 이제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들었습니다.
오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저는 달력을 보다 문득 5월 5일 어린이날은 빨간 글씨인데, 5월 8일 어버이날은 왜 검정글씨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금방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는 아마도 집안에 있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동물원아니 후로이다에 있는 디즈니 월드, 아니면 Six Plug등으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휴가를 내서 온 가족가 함께 여행을 떠났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들도 부모님을 잘 섬기도록 권장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이웃에 있는 뉴져지 한 교회는 어버이주일날 뉴져지 살고 계시는 어른들을 모셔서 마음것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미국에서는 모든 교회가 어버이주일을 둘째 주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버이날을 법으로 정하고 공휴일로 전 세계가 지정하면 자녀들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선물 드리고, 모시고 나가서 점심이라도 대접할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달리 행동할 것입니다. 올해를 보면 5월 3일이 어린이 주일이고 5월 10일이 어버이 주일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오늘 예배가 끝나면 부모님을 모시고 레스토란에 가서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십시요. 이제는 5월 8일이 돌아오면 저 자신은 더욱더 어머님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10계명 속에서 다섯 번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앞서 4개의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대한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모공경의 계명은 하나님 다음으로 부모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십계명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런 계명이 나온 것은 사회의 문제점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혜진이 예슬이 법이 국회에서 제정되고 있습니다. 이 법이 제정되게 된 사회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혜진이와 예슬이라는 천사 같은 어린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이처럼 제정 배경이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회적인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미래의 노동력이고, 나중에 의지할 기둥이니까 소중하게 여기지만, 노인들은 노동력도 없어서 도움이 안되는데 집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양식을 축내면서 집안일을 간섭하니까 옛날부터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법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못을 박았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분석입니다.
그런 사회적인 배경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명령이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권위가 높은 이의 명령일수록 더 세심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이 세상과 온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하는 일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실행에 옮겨야합니다. 부모 공경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바빠도, 가난해도, 사정이 허락되지 않아도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부모의 인격이 괴팍한 경우도 있습니다. 인격이 좀 특이하다고 해도 내 부모가 바뀔 수 없습니다. 까다로운 상사에게 직원이 순종해야 한다면 부모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부모 공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비유적 표현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왕과 신하, 주인과 종 등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나타내 줍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부자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자녀들인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를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섬기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육신의 부모는 눈에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섬기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실제적이고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부모부터 공경하는 법을 익혀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요일 4:20, 개정)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같은 원리가 적용이 됩니다. 매일 마주하고 사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권위에 순종하기를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혼란을 가져오고, 결국 그 결과는 우리들에게 해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권위에 복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롬 13:1-2, 개정)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부모는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권위입니다. 자녀들이 어릴수록 부모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자랄수록 법적으로는 부모의 권위가 약화되기 시작합니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온탕 속에 들어가서 “어 시원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안 뜨거워?” “그래 이리 들어 온나.” 이 어린 아들이 풍덩하고 온탕에 들어왔는데,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 때 이 아들 녀석 하는 말에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네.” 아버지가 아들 녀석 말버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해서 집에 와서 매를 들었습니다. 종아리를 때렸는데, 좀 아팠던 모양입니다. 그 때 이 아들녀석이 말했습니다. “아야, 때려. 더 때려. 그래. 네 아들 죽지 내 아들 죽냐?”
유머입니다. 아이가 철없음을 통해서 부모의 권위가 약화되었음을 풍자적으로 엿볼 수 있는 개그입니다.
여러분, 부모는 권위입니다.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하나님의 섭리인데,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회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일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권위부정의 태도는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온 것입니다.
나중에 그런 아이들은 자라서 어디 가서도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권위를 타도해야할 것쯤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은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꾸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술 마시고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경찰서에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고, 데모하면서 각목을 휘두르는 이도 있습니다. 학부모가 학교 가서 아이들 보는데서 선생님을 폭행하는 일도 있고, 중고등학생들이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서명운동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권위를 부정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은 부모 공경이야말로 모든 권위를 인정하는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먼저는 부모와의 대화입니다.
나이든 부모는 자식들과 이야기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너무 바쁘게 살고, 부모의 이야기가 시대에 뒤졌다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사소통이 단절된 시대 속에서 삽니다. 특히 나이 드신 부모님과 젊은 자녀들 사이는 더 그렇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시대가 변했어요.’ 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백발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해서 어른들의 지혜를 배운다는 심정으로 부모님과 자주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면 어떻습니까? 여러분, 친구들과 대화할 때 매번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십니까? 아니면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삽니까? 부부가 이야기할 때 매번 매우 중차대한 이야기를 합니까? 아니면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까? 부모님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고, 이해해 주십시오. 부모님은 여러분과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저희 장모님이 저를 참 좋아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제가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이야기란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다섯 번도 더 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매번 새롭게 하시는 것처럼 하십니다. 그래도 들어드렸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사는 며느리들은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시장 갔다가 왔는데, 시어머니가 시금치는 얼마 줬냐? 이것은 뭐하는데 쓰는 거냐? 고 물으면 간섭한다고 속으로 화를 냅니다. 간섭하는 게 아니고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하니까 어머니는 가만히 계세요.” 그러면 죽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고, 그래서 자녀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 중 하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면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모님의 경제적 형편을 살펴드리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부모님들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줄로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이 우리를 기르기 위해서 절약하고 애쓰실 때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그분들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좋은 옷도 입고 싶은 우리와 똑 같은 분들입니다. 부모들의 경제적 형편을 잘 살펴서 어렵지 않게 해드려야 합니다. ‘집에만 계신 분이 무슨 용돈이 필요하냐?’ 생각하지 마시고, 용돈을 드리십시오. 손자들에게 용돈 쥐어주면서 사랑도 표시해야 하지 않습니까? 부모님의 경제적 형편을 잘 살펴드리는 것이 부모 공경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본문의 계명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부모는 우리가 예하고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어느 모임에서 퀴즈를 냈습니다. “에덴동산이 낙원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러자 한 여자 성도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에덴동산이 낙원인 이유는 거기에 시어머니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버리십시오. 여러분도 나중에 시어머니가 됩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뒷방에 물러앉게 됩니다. 그 때 생각해서라도 부모님께 부드럽게 대하고, 순종하십시오.
여러분,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여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부모공경에 상을 걸었습니다.
그러면 부모를 공경함으로 받는 상은 무엇입니까?
먼저 이 땅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건강하게 오래 사시려면 부모님을 잘 공경하십시오.
둘째는 잘되는 복이 있습니다.
범사가 잘되려면 부모님을 잘 공경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잘 안되는 일이 많거든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라도 잘못됨이 없는지 살피십시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 복 받아 잘되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을 잘 공경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 상 받는 비결입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님이 한 고을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들 엎드려 절하는데, 한 사람이 노모를 등에 업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사연을 물은즉, 어머니가 임금님 용안을 뵙고 싶다고 해서 모시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금 100냥과 쌀 한 섬을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삽시간에 전국에 퍼졌습니다. 임금이 어느 날 다른 마을에 행차를 했는데, 또 똑같은 광경이 일어났습니다. 사연을 들은즉 예전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금100냥과 쌀 한 섬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임금님께 청원을 했습니다. “저 자는 불효자인데, 효자가 상 받은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상 받아보려고 저렇게 한 것입니다. 저자에게는 벌을 내려야지 상을 줄 자가 아닙니다.” 그 때 임금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일이다.”
여러분, 우리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심청이 같은 효자효녀나, 룻과 같은 며느리는 못된다고 하더라도 흉내라도 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상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