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오직예수훈련원<교회/기도원/은사/능력/집회/기적/종말/환난/> 원문보기 글쓴이: 오직예수
두 독수리와 한 포도나무 비유
에스겔 17장 1-24절
2012년 5월 20일 주일설교
설교자 : 곽노아 목사
하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실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였고 둘째는 하나님의 비밀을 온전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3:10-13)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나님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번이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비유는 15장에서 무익한 포도나무 비유였고, 둘째는 16장에서 음란한 여자의 비유였습니다. 본문 17장에서는 두 마리 독수리 비유와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비유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쳐주었지만 백성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두 마리 독수리 비유와 포도나무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입니까? 듣고도 깨닫지 못한 저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지 마시고 비유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을 깊이 깨닫고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두 독수리와 한 포도나무 비유
(겔17:1-10)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수수께끼와 비유를 이스라엘 족속에게 베풀어 (3)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채색이 구비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되 (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5)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발하고 가지가 퍼졌도다 (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9)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로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10) 볼지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두 마리의 독수리의 비우가 나오는데 첫 번째 독수리는 3-6절까지 나오고 있고 두 번째 독수리는 7-9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독수리의 모습은 채색이 구비된 다양한 색깔을 가진 모습이었습니다.
12절에 이 독수리를 바벨론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처럼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였습니다.
또한 큰 날개와 털이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바벨론의 군사력은 강했고 넓은 통치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4-6절에 보면 독수리의 행동이 언급되고 있는데 4절에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고의 성읍에 두고" 라고 하였는데 바벨론은 2번에 걸챠 남유다를 침략하여 여호야긴 왕과 1만 명의 유력한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아 갔는데 그 사실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에스겔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5절의 말씀도 보면 "또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여호야긴 왕 대신에 숙부인 시드기야를 왕위에 세워 남유다를 통치하도록 하여 번성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세요. 남유다를 비유한 그 포도나무는 자라서 그럴듯한 포도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 포도나무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유다의 안정과 번영은 스스로 독립해서 왕성한 포도나무가 된 것이 아니라 독수리 즉 바벨론의 지배와 보호 아래서 번영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활동하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하나님 말씀을 외쳤습니까?
(렘27:8)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바벨론에게 복종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당시에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나라가 안정되고 번영되자 바벨론에게 반역을 하도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었는데 그 나라를 바로 다른 큰 독수리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7-10절까지 다른 큰 독수리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처럼 당시에 두 마리의 큰 독수리가 있었다는 것은 곧 강력한 두 나라의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벨론과 세력을 견주는 나라가 어떤 나라였습니까? 애굽이였습니다. 당시에 애굽 왕은 호브라라는 자였는데 시드기야 왕은 처음의 독수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두 번째 독수리에게 향했습니다.
7절에 보면 이 독수리 또한 크고 털이 많은 독수리였습니다.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긴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발하고 가지가 퍼졌도다"
남유다왕 시드기야가 친애굽 정책을 하면서 바벨론을 대항하여 싸우고자 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마리의 큰 독수리가 아니라 포도나무에 주목해야 합니다. 8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남유다를 심판하시기로 계획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 속에 처음 큰 독수리였던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바벨론을 통해서 포도나무를 포도나무답게 풍성하고 아름답게 이루시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는 조금 사정이 나아지자 큰 독수리를 떠나 다른 큰 독수리 애굽과 동맹을 맺어 바벨론을 대적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도전해서 자신들의 힘으로 이겨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9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바벨론을 의미하는 독수리입니다. 즉 바벨론의 강력한 세력이 뿌리를 뽑고 실과를 따고 나무를 시들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0절에도 말라버린 가지처럼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토록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을 흘리며 목이 터져라고 외쳤건만 왕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 참 선지자의 말은 무시해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의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거룩해지려고 살아가기는커녕 거룩에 대한 깊은 관심도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는 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거룩함은 모양만 가지고 거룩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남유다처럼 어려운 환경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남유다의 죄악으로 본다면 당장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악함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참으시면서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하도록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그들이 알았다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날마다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우리들이 회개하도록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려운 고난 주신 것 하나님이 깊으신 뜻이 숨겨져 있다는 비밀을 깨달으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생각대로 내 수단과 방법대로 살지 마시고 상령님의 온전하신 인도와 다스리심을 받으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비유에 대한 해석
(겔17:11-2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고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가고 (13) 그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로 맹세케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14)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어늘 (15) 그가 사자를 애굽에 보내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1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의 거하는 곳 바벨론 중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17) 대적이 토성을 쌓으며 운제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18)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20) 내 그물을 그 위에 베풀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지며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앞에서 말한 비유에 대해서 하나님이 자세히 해석하여 주십니다. 이렇게 해석하여 주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마치 영적 치매 걸린 사람과 같은 모습입니다.
12를 보세요.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깨닫지 못한 그들에게 자세히 가르쳐주십니다.
즉 처음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인데 그 왕이 너희를 바벨론으로 끌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남유다 왕이 된 자는 왕족 중에 하나를 택하여 왕으로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에스겔 선지자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시대에 사람들보다 더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 그들은 바벨론 땅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지금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분명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아니할 뿐더라 깨닫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우리는 곧 해방 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 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었습니다.
14절도 주목해 보세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바벨론의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어서 스스로 서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도록 하여 서도록 하고자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자신들의 수단과 방법대로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들이 방법이 15절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이라는 나라를 의지해서 이 어려운 난관을 해결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2가지로 언급하십니다.
“형통 하겠느냐?” “과연 피할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해서 결코 형통하지 못할 것이며,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아주 강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16절 19절에서 두 번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결단코 그들이 형통하거나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16절에 보면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에 끌려 와서 죽을 것이고 17절에서도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을 때에도 애굽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언약” 과 “맹세” 라는 말씀이 7번 언급되고 있는데 16절 18절의 언약과 맹세는 남유다가 바벨론과의 언약을 배반하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언약을 하나님은 19절에서 “내 맹세” “내 언약”을 배반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벨론과의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전하신 언약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70년 생활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쟁의 주관자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선지자들은 깨닫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들은 끝까지 믿지 아니했습니다.
20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그물을” “내 올무에”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바벨론의 세력이 하나님의 그물이었고 올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아니한 그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까서 국문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배반한 죄 값을 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21절에도 보면 그들의 모든 계획과 수단은 수포로 돌아가 모두 다 철저하게 멸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1절 끝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예루살렘이 멸망하고서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미리 깨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닫지 못하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로만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귀로도 듣고,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책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정확하게 기록해서 보여주는데도 과연 믿고 있습니까?
5월 5일 날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제1회 이웃종교화합주간” 개막식을 7대 종단 대표들과 박원순 시장이 참석하는 가운데 가졌습니다.
이들은 이제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공개적으로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여기에 동참하는 기독교인들 목사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까?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있는 영적 소경들이고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그들이 깨닫게 되는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에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점일획의 변함도 없이 하나님은 모든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앞에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믿고 행함을 보이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약속
(겔17:22-24)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23)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24)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의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은 참으로 놀라운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신으로만 믿고 있는 무지함을 깨우쳐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이제 새롭게 계획하고 계신 하나님의 뜻도 깨달으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22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라고 전제하시면서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백향목은 레베논 산지에서 자라는 뛰어나고 곧은 목재입니다. 그 뛰어난 나무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한다는 것은 곧 다윗 왕의 혈통을 통하여 출생할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앞에서 말한 그 높은 가지에서도 새 가지, 새 가지에서도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은 산에 심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연한 새 가지”는 곧 겸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면 높은 가지인 하나님의 역사로 출생하는 메시야는 새 가지처럼 그 출생이 미미하고 겸손한 자로 출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23절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새 가지지만 하나님은 이 가지는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어서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어 각종 새가 깃들고 그 가지 그늘에 거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약 2500년 후에 있을 일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금 곧 일어날 약속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먼 훗날에 일어날 약속을 선포케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가요?
그 이유는 23-24절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먼 훗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민족들이 구원의 언약을 믿고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씀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에 “들의 모든 나무” 도 모든 세상의 나라들을 의미합니다. 메시야가 오시는 그 날에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말리우고 마른 나무는 무성케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고 교만한 자는 낮추일 것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겸손한 자는 높여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을 의지하여 푸르름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말라버리게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마른 나무 같은 자들은 무성하게 하여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당시에 주어진 약속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먼 훗날에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 또한 이루어진 것을 본 자들입니다. 24절 끝에서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나님 말씀이 분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십니까?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의 신앙이 변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자들의 신앙을 어떻게 보십니까?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보십니까?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보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6시간 매달리면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지금도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참된 쉼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성도 여러분! 그 어디에도 참된 쉼을 얻을 곳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만이 참된 쉼을 얻을 곳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놀라운 약속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저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악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으며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지라도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조금 살기 편해 졌다고 예수를 떠나 불의와 타협하는 자도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시드기야 왕이 조금 사정이 나아지니깐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애굽과 손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자들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다가 응답받으면 그 은혜 다 잊어버리고 세상과 짝하며 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도들뿐만 아니라 교회도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교회들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천 년 교회사를 돌아볼 때 모두 다 그러했습니다. 영국이 미국이 프랑스와 독일과 스위스, 스웨덴 모든 기독교 국가들이 그러했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가 왜 푸른 나무인지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푸르름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바짝 마르게 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푸르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속 푸르름을 유지하고 싶다면 더 깊이 오직 예수 안에 들어와야 할 것입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의 삶이 말라버린 나무 같은 자들이 계십니까? 솔직히 제가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저는 제가 진실로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과실을 많이 맺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도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풍성한 과실을 맺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절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죄라고 하였습니다.(요16:9)
하나님이 언약을 믿지 못하고 불신앙을 가지고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자에게 분명하게 세상 속에서 머리가 되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언약의 말씀을 굳게 믿고 의지하고 순종해서 오직 예수 안에서 무성한 가지가 되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비유를 풀어서 쉽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조금만 하나님 말씀에 관심을 보였어도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었지만 그들은 그런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신들에게 평안과 복을 빌어주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세상의 복 받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얼마나 더 복을 받아야 만족할 것인지 암담한 시대입니다.
얼마 전 CTS 방송에서 우리들 교회 김양재 목사가 하는 말을 듣고 너무 놀랬습니다. 베리칩을 666이라고 외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말을 하는데 참으로 몰라도 너무 모로는 무지한 자의 소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양재 목사는 또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666표를 받지 않는다고 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구원입니까? 우리의 구원은 현재진행형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마24:24-25)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거짓의 세력들이 누구를 미혹한다고 했습니까? 택함받은 자들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한다고 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도 여러분! 진실로 누가 거짓된 소리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무섭게 타락되어 가는 오늘날 영적인 세계를 분별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오직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