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물 가득 부어 끼니…의사는 내 어깨 보고 “참혹” [박근혜 회고록 39]
처음 서울구치소에 들어갔을 때는 구치소 담당 여성 계장이 쓰던 사무실을 비우고 그곳에 병원 간이침대를 놓고 이틀간 있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될지 안 될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렇다고 나를 일반 수감자들과 함께 둘 수 없으니 구치소 측에서 임시로 마련한 장소였다. 그 방에는 CCTV가 설치돼 있었고, 며칠 후 옮긴 독방에도 CCTV가 있었다. 나로서는 식사부터 수면까지 24시간 내내 감시받는다는 것이 너무나 정신적으로 힘들어 이것을 치워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규정상 CCTV를 설치하는 것은 흉악 범죄 등을 저지른 수감자들에게 적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나에게 적용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영하 변호사가 구치소 측에 강하게 항의해 CCTV는 가리는 것으로 결정됐다. 처음 며칠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낯선 환경 탓도 있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도무지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잠을 자지 못하니 조금은 멍한 상태로 매일 접견을 오는 유 변호사를 만나 재판 진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구치소에 적응해 가려고 노력했다.
구치소서 “음식 짜지 않게 해달라” 설문 적기도
2017년 8월 30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음식을 싱겁게 먹었다. 그런 내게 구치소 음식은 상당히 자극적이었으며 짜다고 느껴졌다. 처음 며칠간은 거의 반찬을 먹지 않고 맨밥만 조금 먹었고, 반찬을 물에 씻어 조금씩 먹었다. 구치소는 수용자들의 평균적인 입맛에 맞춰 음식을 준비할 수밖에 없고, 또한 남자 수용자가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바깥 음식보다는 간이 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치소에서 가끔 수감자들에게 음식에 대한 불편 사항을 묻는 설문지를 돌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음식을 좀 짜지 않게 해달라고 적어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 몸 상태가 좋을 때였다면 짠 음식도 어떻게든 잘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도 나이인 데다 구치소에서 몸 이곳저곳이 나빠지다 보니 식사를 하고 나면 소화가 영 시원찮았다. 평소 위가 좋지 않아 알약도 잘 먹지 못하던 나였기에 짠 음식은 위에 많은 부담을 주었다. 결국 끼니 때마다 나오는 식사를 다 먹지도 못하고 3분의 1 정도만 먹고 잔반 통에 버리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입맛을 잃었고 소화 기능도 저하됐다.
컵라면에 물 많이 부어 끼니 때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의 옥중조사를 받은 2017년 12월 26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입구. 중앙포토
밥 대신 미숫가루를 타 먹거나, 컵라면을 구매해 물을 많이 부어 최대한 싱겁게 먹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구치소에 들어오기 전 나는 평소에 라면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구치소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고, 그나마 싱거운 라면만이 먹을 만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다른 병이 생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