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דְּבָרִים 드바림" 샤밭예배
신3:15-22(To), 벧후3(신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느덧 인류를 거의 다 점령해버렸고, 실제적으로 반세기만에 우리 나라가 최악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고, 지금까지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 바이러스로 인한 타격이 피부로 느껴지는 때가 곧 다가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굉장히 불안함과 걱정, 근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샬롬하시기 바란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원래 주님만 사랑하며, 주님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늘 샬롬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란다.
하늘 아래 사모할 자 주 밖에 없다. 그저 주님과 살아가시기 바란다. 또 이럴 때일 수록, 더욱 더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 사시기 바란다. 이것을 쉐키나라고 한다.
שׁכנה 쉐키나 : 임재
드바림 토라포션은 쉐키나, 주님의 임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갈망, 타아봐라고 하는 것은 집이다.
תאוה 타아봐 : 욕구, 갈망 = 412 = בית 베이트 : 집
집이란 거하기 위한 것이다.
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나를 위해서 미쉬칸, 집을 지으라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갈망이 실현되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만드시고, 애굽에 보냈다가 끌어내시면서, 그들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군대, 자녀가 되게 하신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갈망을 이루신다. 니들은 내 아들들이라고 하신다. 브니, 내 아들이다.
בני 브니 : 내 아들, My son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드신 다음에, 결국 하나님의 갈망을 나타내시는데,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하신다.
미크다쉬 : 거룩한 장소
שָׁכַנְתִּי בְּתֹוכָם 샤칸티 베토캄 :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장소)
그들의 속 안에 거할 거룩한 곳을 만들어라.
תוך 토크 : 가운데, (동산) 중앙에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있었다. 이 생명나무란 주님이시다. 주님이 베토캄,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하신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동산이고,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란 주님이시다. 무엇이 생명나무인가? 샤칸티, 주님이 거하시는 것이 생명나무이다. 주님의 함께 거하심, 주님이 임마누엘 하시는 것이 생명나무이다
우리는 생명나무하면, 열매를 따먹고 내가 영생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 오면 생명나무의 비밀이 다 풀린다. 결국 우주를 창조하신 엘로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생명나무가 되신다.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생명나무가 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쉐키나이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와서 거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쉐키나라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이다.
여러분이 진짜 생명나무를 먹으면, 생명을 얻는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삶이다. 육신의 생명이 길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와서 함게 거하실 때 생겨난다. 우리가 어떤 삶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은, 진짜 생명이 같이 살아주면 삶이 얻어진다. 우리는 영생을 얻는 것을 마치 영접카드게 싸인하고, 하나님 나라에 가면, 영원히 내가 잘 사는 줄 안다. 하나님 나라에 가도 그냥 이렇게 살거면, 뭐하러 가는가? 나에게 먹을 것이 많고, 부자가 되면 내게 좋은 삶이 주어지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생명이 있는 사람과, 생명과 내가 같이 사는 것, 샤칸하는 것이 나에게 삶을 준다. 생명나무의 비밀은 쉐키나이다.
주님의 임재, 주님이 와서 나랑 같이 사셔야 한다. 우리는 그냥 나 혼자 산다. 그냥 내가 생명인 줄 알고 산다. 그런데, 사람의 삶은, 누구랑 같이 사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게 생명의 독특한 특징이다.
Family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너희가 구원을 받았느냐? 그것은 너희들이 누구랑 같이 살고 있느냐로 증거된다. 너희들이 진짜 성도이냐? 거룩하냐? 라고 한다는 것은, 너희들이 정말 영의 Family와 같이 살고 있느냐? 이것이 영의 생명이다. 아니면 너희들은 그냥 너가 사는데 바쁘냐?
드바림에 오면, 우리는 쉐키나의 영광을 받는다. 더 이상 내가 사는게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 베토캄, 이 땅에 오셔서 쉐키나의 인간과 함께 Dwelling, 거하시는 하나님이 되신 주님과 함께 산다. 여기서 우리는 또 육적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가 굉장히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육의 개념이다. 생명나무라고 하면, 나무를 떠올린다. 주님과 함께 산다고 하면, 벌써 주님이 옆에 있고, 같이 사는 것등으로, 육신의 개념을 떠올린다. 그런데, 함께 산다고 하는데, 육신의 몸을 생각하고, 같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육신의 개념으로 살아보니까, 이 육신의 개념이 깨지지 않는 한 안된다. 말도 안된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했는데, 검은 머리가 그대로인데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염색하는거 아닌가?
우리가 육신의 개념으로 살았는데, 육신의 개념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영의 토라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야만 육신의 개념을 부수는 일을 주님이 하실 수 있다. 육신의 개념을 부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 땅에서 육신의 개념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다. 뭔가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다. 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신의 개념은 다 부숴져야 한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이유도 육신의 개념을 부수기 위해서이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것이 무엇인가? 육신의 개념은, 어떤 몸이 와서 나랑 같이 사는 것으로밖에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와서 거하신다는 것은, 샤칸이다.
שׁכן 샤칸 : 거하다
שׁ 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불이다. 형상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불이다. 육신의 개념에서도, 형상을 주조하려면 불이 있어야 한다.
אשׁ 에쉬 : 불
샤칸을 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불이다. 이 불에서 이쉬, 이샤가 나온다. 신랑과 신부가 같이 함께 샤칸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면 신랑과 신부가 함께 사는 방법이 바로 불로 사는 것이다. 신의 형상을 끊임없이 말해내는 것이다.
불은 인간의 목에 있다. 가론이라고 하는데, 이 불이 인간의 목에 있다고 한다. 인간의 목에 불이 없으면 굉장히 곤란하다. 목마른 이유가, 불이 있어서이다. 감기 바이러스라고 하는 것은, 목의 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목의 화력이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면, 카르, 목이 추워진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오늘 말씀은 코로나 시국 대해부, 이런 것이다. 어떻게하면 코로나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감기 바이러스에 인류가 온 삶을 포기하고, 질질 끌려가지 않고, 이 가운데서 아무런 동요함없이 샬롬으로 가던 길을 계속 가고, 비전의 길을 계속 가고, 주님의 길을 계속 가느냐이다. 여기서 알곡과 쭉정이가 쫙 나눠지게 된다. 그것을 잘 배우셔야 한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속 안에 있게 된다. 사람이 생명이 있게되는 곳을 자궁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궁이 있는 곳을 가장 비밀스러운 곳, 쏘드라고 한다. 이 쏘드에 생명이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생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 자궁에 물이 없으면 생명이 탄생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다 쏘드에서 나왔다. 자궁 출신이다. 서울에서 나왔는가? 산부인과가 있었던 장소일 뿐이지, 여러분들의 진정한 고향은 자궁, 물이다. 물 속에서 나왔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원래 물고기이다. 물 속에서 자유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여러분들의 실제 생명도 물이 있어야 산다. 여러분 속에서 물을 다 제거하면, 여러분들은 바로 죽는다. 사람이 자꾸 퍽퍽해지고, 이런 것들은 물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꼰대다, 이런 것들이 다 그런 것이다. 사람이 촉촉하고, 어딜 가도 물기가 있는 곳은 연못이 있고, 호수가 있고, 나무가 있고, 정말 살만한데, 물기가 없으면 메마르고, 황폐하고, 인심이 각박하고 그렇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물고기라는 것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란다.
자기가 물에서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떤 다른 악한 세력에 의해서 해함받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원리이다. 자기가 물고기라는 것을 인식하게되면, 악한 자들의 시선과, 악한 자들의 감시로부터 자유해진다. 악한 자들이 해할 수가 없다.
여러분들이 엄마 뱃속에서는 가장 안전했다. 임산부는 모든 공동체가, 전 우주가 보호한다. 만약에 임산부 속에 있는 아기에게 악한 짓을 했다면, 정말 천인공노할 짓이다. 물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보호받는다. 지하철을 탔는데, 임산부가 탔는데, 안 일어난적 있는 사람 손 들어보라. 예수를 안 믿어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호가 된다.
물은 진리이다. 그래서 인간은 원래 물 속에서 계속 산다. 물로 계속 산다. 피로 계속 산다. 그런데 문제가, 이 물이 따뜻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나오질 않는다. 피가 끌어야지 생명력이 나온다. 거기서 Passion이 나온다.
시39: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이 어떻게 쉐키나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지를 알려준다.
1) חַם־לִבִּי בְּקִרְבִּי 함 리비 베키르비
חַם 함 : 뜨거움, 생명의 사역
사람은 열정이 있어야 생명의 사역을 한다. 사랑을 해도 뜨겁게 하라고 한다. 주님을 사랑해도 뜨겁게 사랑해야하지 않는가? 교회를 다녀도 뜨겁게 해야지, 대충 와서 내가 먹을 것만 띡띡 먹으면, 차가운 사람이다. 그 물이 차가운 것이다. 그러다보면, 물이 언다. 그러면 그 사람은 차가운 사람이 되어서 교제를 할 수가 없다함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가장 기본이다. 사람이 죽으면 몸이 차가워진다. 아이들은 생명력이 충만한데, 뜨겁다. 아이들은 언제나 따끈따끈하다.
왕상1: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다윗 왕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하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이 다해간다는 것은, 이 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내 안의 물이 추워지는 것이다. 저도 제작년부터 50줄에 드니까, 카페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공부할 때면 주로 일어서서 하는데, 엉덩이가 왜 이렇게 시린지 모르겠는 것이다. 평생 그런적이 없는데 말이다. 겨울에 내복도 안 입고 다니던 사람인데, 이제 막 시리다. 함이라는 것이, 생명의 가장 기본이다.
לִבִּי 리비 : 내 마음
- 내 마음이 뜨거운 것이다.
בְּקִרְבִּי 베키르비 : 내 속 안에 있다
뜨거운 마음이라는 것은, 내 속 안에 있다. 내 속이 어디냐면, 쏘드의 영역이다. 이 구절은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지금까지 한 파트이다
2) בַּהֲגִיגִי תִבְעַר־אֵשׁ 베하기기 티브아르-에쉬 = 불 (목)
베하기기 : 내가 묵상하는 중에, 읊조리는 중에
- 묵상하고 읊조릴 때는 목을 사용한다. 이것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을 사용한다. 이것은 목의 파트를 사용한다
티브아르 : 불타다
에쉬 : 불로 (불타다)
목의 파트는 불이다. 목에는 불이 있다. 막 불타는 것이다.
들숨 -> ( 목 : 에쉬 = 불 ) -> Speak
( 자궁 : 쏘드 )
3) דִּבַּ֗רְתִּי בִּלְשֹונִי 디바르티 베라쇼니 : 내 혀로 말한다
이게 세 번째 파트이다. 혀는 Speak이다.
내 속의 생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내 속의 진리가 따뜻해지는 것이다. 내 속에 따뜻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이다. 주님이 내 안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 들숨이다. 내가 숨을 들이마쉬면, 목을 통과해서 이 숨이 쏘드까지 내려간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물이 따뜻한 물이 된다. 불을 통과해서 내려가면서, 이 불이 밑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뜨거운 마음이 생긴다.
이 물이 따뜻해지면 다시 올라온다. 이 불을 통과하면서, 그게 말이 된다. 사람이 물이 섞이지 않은 불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 다 사망이 된다. 사람이 자기의 물을 따뜻하게 하지 않은채, 계속 불을 뿜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온 세상을 태워버린다. 자기 부위부터 태우고, 자기도 태우고 만다.
다바르라고 하는 것은, Speak라고 하는 것은 목에서 바로 나오면 안된다. 이 불에서 바로 나오면 안된다. 그러면 다 타죽는다. 반드시 이 불이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한다. 생명에게까지 갔다와야 한다. 따뜻한 마음에 갔다 와야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을 하기 위한 불을 받는데, 이 목을 통해서 발음하는 א 알렢, ח 헤트, ה 헤이, ע 아인, 이런 글자들이 있고, 목에서 나오는 후음 문자라고 한다. 이 숫자값을 다 더하면 84이다. 이것은 다 פ 페와 ד 달렛이다. פדה 파다라고 하면 구속과 연관이 있다. 사람이 구속된다는 것은, 다 불을 직접 뿜지 않고, 생명의 물과 불이 합쳐진 따뜻함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다바르는 생명을 살리는 다바르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따뜻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자녀들을 축복할 때, 축복하는 가장 큰 핵심 축복이 be warm, 따뜻한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말 밖에 없다. 남은건 말씀밖에 없다. 무슨 병원이라도 차려놓고 가셨는가? 그분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 따뜻한 말씀이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으로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난다. 인간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숨을 절대 밑에까지 안 내린다. 목에서 껄떡거린다. 그래서 목숨이 끊어진다고 한다. 목에서 계속 불을 낸다. 그 속에 따뜻함이 없다.
그런데 주님의 다바르라고 하는 것은,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다 따뜻한 말이다. 알렢, 헤트, 헤이, 아인, 신성과 생명과, 생명주는 호흡과 비전이라고 하는 것이 다 따뜻한 말이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사신다고 하는 것은, 생명주는 따뜻한 말이 주님이시다. 이게 쉐키나이다. 물과 함께 섞인 불이다. 따뜻함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אש 에쉬의 숫자값을 보면, 301이다. 여기에 84를 더하면 385이다. 드디어 내게 있는 불에서 나오는 소리가 따뜻한 소리가 되는 것이다.
쉐키나 = 385
그러면 이게 내 소리인가, 주님의 소리인가? 주님의 소리이다. 그런데 나한테서 나오는 소리이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살리기 위한, 나를 케어하기 위한, 나를 지키기 위한 말들이 아니라, 여기서 나오는 말은 불의 말인데, 동시에 또 물이기도 하고, 불과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여러분들에겐 물만 있어도 안된다. 불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온도를 잰다. 여러분들 속에는 불도 있고, 물도 있는 것이다. 불과 물이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그것이 합쳐진 말이 나오면, 그게 사람들의 생명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살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드바림에 와서 내가 말을 하고 사는데, 그것이 주님의 말이 되고, 그것이 온 인류를 살리는 말이 되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다.
사람이 들숨을 쉰다는 것은,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지혜롭다고 하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 주님의 지혜이다. 누가 나를 열받게 하는 일이 있다. 목의 불로 사는 사람들은, 누가 열받게하면, 이미 판단 순식간에 되고, 확 쏴버린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 뭔가 다른 뜻이 있을거야. 주님의 통치, 지혜가 있을거야. 여기서 내가 뭘 깨달어야 하지? 그러면서 한 템포 쉬어간다. 들숨을 쉬는 것이다. 심호흡을 크게 해봐라. 먼저 들숨을 쉬라는 것이다. 그 상황에 대해서 네 판단과 정죄를 다 내려놓고, 눈을 감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잠시 그 상황을 떠나보라는 것이다. 심호흡을 크게 해보라고 하는데, 훅훅대는 사람은 없다. 날숨을 갑자기 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이 뭔가 뜻이 있을거야 하면서, 깊게 들숨을 쉬는데, 이게 불을 지나서 쏘드까지 내려간다. 그냥 목구멍의 불로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못 내린다. 열 받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숨을 좀 크게 쉬어봐, 좀 큰 사람이 되어봐, 조금 대의를 품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봐, 그 상황을 떠나보라고 해도, 이게 되냐고 하면서, 네가 내 상황이 되보라고 한다. 나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난리를 친다.
들숨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목에서만 깔딱깔닥하면서 내 불을 내기 위한 숨이 아니다. 왜 그렇게 숨을 빨리 쉬냐면, 이 목에 있는 불꽃을 막 일으켜서, 끄슬려버릴려고 하는 것이다. 다 그 작용이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이 불을 밑으로 쑥 내린다. 우리 장모님이 어제 또 부부싸움을 하시려고 했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바로 불이 나왔을텐데, 식탁에 가만히 앉아서, 가만있어봐, 그래, 내가 잘못한거잖아, 생각하니까, 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가만있어봐, 이게 뭔가? 내 생각이 아니라, 뭔가 주님의 통치, 주님이 정해놓으신 것이 있는 것이다. 이게 다바르이다. 이게 쉐키나와 같이 사는 것이다. 가만있어봐 하는 순간, 주님이 내려오시는 것이다. 주님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주님은 사실 불이시다. 주님이 이쉬이다. 내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내 마음을 뜨거운 마음으로 만드신다. 가만있어봐 하는 순간, 주님이 내 속으로 쑥 들어오셔서, 거기서 내 삶이 되신다. 그리고 그 주님이 나오시면서 따뜻한 말이 된다
이순희 권사님 말이 얼마나 쎄신지 아는가? 자녀들한테는 따뜻하신데, 남편한테는 다르다. 그런데, 주님이 내 안에서 뜨거운 마음을 내신다면, 그 뜨거움이 올라오면서 불을 만났는데, 전혀 그게 꼬실리는 불이 아니라, 따뜻한 불, 생명을 살리는 불이 되어서, 나오니까, 여보 내가 잘못했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는 것이다. 따뜻하게 되어서, 그곳에 물기도 가득하고, 촉촉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피부가 산소같은 여인이 되고, 화장품을 살 필요도 없어진다. 촉촉해진다. 남편의 피부도 촉촉하다. 새들이 놀고, 생명이 풍성해지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쉐키나의 영광으로 늘 함께하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 속에 있다고 한다. 너희들 안에 거한다고 한다. 주님이 쉐키나의 영광으로 온다는 것은, 내가 필요한거 다 해주고, 그런게 아니다. 주님은 그런 사탄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내 삶과 같이 섞이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건데, 그게 주님이 말하는 것이 샤칸이다. 분리로 사는 것이 샤칸이 아니다. 부부가 하나되었다는 것이 뭔지 아는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게 하나된 삶의 가장 큰 기쁨이다.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는 생명나무라고 했는데, 이 생명나무는 너무너무 신비해서 알 길이 없다. 스토리텔링도 하고, 공부한 것 같지만, 신비에 싸여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드바림에 와서야 그 생명나무의 신비를 가지고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된다. 어떻게 알게되냐면, 이웃에게 따뜻한 말을 하고, 이웃을 살린다. 그게 생명나무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거 먹고 내가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이 생명나무가 아니다. 내가 예수 믿고 영원히 살았다는 것이 생명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를 아는 것도, 믿는 것도 아니다. 내가 천국 가는데, 니들은 못가지? 이게 예수 믿는게 아니다. 생명나무를 경험도 못하는 것이다. 진짜 생명나무는 여러분들이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생명나무를 따먹을 수도 없다. 이게 너무 신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 아무리 읽어도, 머리 속에는 고라 죽일 놈이고, 이런 것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거기서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는 생명나무라고 하고,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드바림이 왜 필요하냐면, 드바림은 그 생명나무를 우리 안으로 가져오시는 주님이시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캡슐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아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같지 않으면, 도저히 드바림의 경지에 들어오지 못한다. 어린 아이 같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못 간다. 이게 드바림에서 하는 일이다. 어린 아이의 찬송을 온전케한다. 주님이랑 같이 산다는 것이, 들숨, 날숨? 그런데 어딨는가? 그러실 수도 있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그냥 받아들이고, 영접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모르게끔 주님이 해놨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어른들은 기본적으로 차갑다. 차가워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차가워야 자기 것을 챙긴다. 일단 차가워야 내 시간이 확보된다. 따뜻하면, 저거 돌봐야하고, 차가워야 나 혼자 먹는다. 내 주머니에 있는데, 마음이 따뜻해봐라, 지나가다가 그거 줘야한다. 제가 가출할 때 벙어리 흉내내고 다녔는데, 어느 할머니가 농사 일 끝내고 무겁게 들고가고 있다. 쫓아가서 할머니 들어드리고, 할머니가 말을 붙이는데, 벙어리 흉내를 냈는데, 할머니가 막 우시는 것이다. 마음이 따뜻하다. 그리고 막 들어오라고 한다. 밥 먹고 가라고 한다. 내가 고파서 들어가서 마루에 앉아있는데, 방 안에서 아들이 이놈의 노인네가 또 그지새끼 데리고 들어왔네 하면서 소리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벙어리라 못 듣는 줄 알고 말이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그냥 슬쩍 나왔다.
우리는 차가워지려고 그렇게 노력을 한다. 그래야 내 공간이 생기고, 내 말을 하고, 내 주장을 한다. 그렇게해서는 주님을 절대 못 만난다. 주님은 그냥 내 안에 들어오시는 분이다. 내게 있는 불을 금방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내리시는 분이다. 내가 홧병걸려서 죽을 것 같지만, 더 내려가고 내려가면, 그게 나의 생명이 된다. 따뜻함이 된다. 내 피가 따뜻하게 되고, 뜨거운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들은 뜨겁게 사랑하라고 한다. 이게 쉐키나의 영광으로 사는 길이다.
드바림에 오면 우리는 바로 이것을 배운다. 그래서 드바림을 미쉬네 토라, 두 번째 토라라고 한다.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주님을 살려고 하는 따뜻한 말을 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나 살려고 하지 않고, 따뜻한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게 말씀 사역이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고, 그게 온 인류를 구속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하시는 사역이다.
* 기도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갈 수록, 따뜻함을 버리려고 한다. 우리는 점점 영악해지고, 차가운 것을 택하면서, 나의 Boundary를 치고, 그 속에서 주님을 초청하는데, 나에게 오셔서 나를 좀 행복하게 해달라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한다. 주님은 절대로 그곳에 오실 수가 없다. 차가운 그곳은 사탄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탄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과 사탄은 결국 함께 거할 수 없다. 함께 샤칸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시간 드바림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뜨겁게 사랑하겠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겠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불을 뿜지 않고, 그 불을 내가 삼키겠습니다. 그게 내가 죽을 것 같은 한이 있더라도, 한번 삼켜보겠습니다. 그래서 그 생명의 물이 있는 곳까지 그 불이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생명이 잉태되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따뜻한 불이, 생수의 강이 터져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 샤칸하기 위해서 우리 속에 내려오시기로 결정하신 주님, 우리의 예쏘드의 그 영역까지 내려오십시요. 주님을 초청합니다. 내가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억울함, 모든 것들, 다 삼켜버리겠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그 예쏘드의 물까지 내려가겠습니다. 그때 내 마음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차가워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차가워지지 않고, 사탄과 같이 살지 않고, 내 마음이 뜨거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