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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입니다. 지금 세상이 변하는 속도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까요?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이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속에서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리며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래학자 하인호 박사가 쓴 '미래를 읽는 9가지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현상을 어떻게 통합하고, 어떤 방법을 통하여 분석하고, 규칙을 만들고, 예측할 수 있는 미래 현상을 돌출해 내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위에 맴도는 미래를 잡으라'는 표현은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을 보면서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미래를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는 맴도는 미래를 먼저 포착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이미 20년 전, 30년 전 영화속에서 예견했던 미래와 너무나 비슷하게 전개된 예를 이 책에서는 보여주며, 과거에 단순하게 ‘공상과학영화’의 허구성이라고 비웃었던 사람들보다 더 미래를 준비한 영화 감독을 추켜세웁니다.
이 책에서 하인호박사는 '신조어가 몰고 오는 미래', '자연의 순리 속에 있는 미래', '허무맹랑한 광고 속에 있는 미래' 등 다양한 형태의 미래 모습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친절하게 집어주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제·사회·문화적인 현실 속에서 책은 앞일을 미리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유용한 책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저는 또 다른 측면에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바로 왜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좋아하는 것일까? 특별히 최근의 시대에 와서 왜 ‘미래학’이라는 학문과 미래에 대한 예언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한계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바로 앞의 일도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한계의 존재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아울러 불가능한 미래예견을 어떤 지식인이나 학문에 의존하여 풀어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욕망속에서 이런 종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의 아들들은 바로 앞의 일에 대해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이었기에 겪게 되는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야곱의 아들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를 묵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지혜로 인생을 헤쳐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의 아들들이 보여주는 인생의 교훈, 첫 번째는 일이 착착 잘 풀리는 때를 만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겠습니다.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3절을 또 읽겠습니다.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결국 야곱의 아들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의리의리한 애굽총리의 저택에서의 만찬을 즐기지 못하고 공포감을 느낀 채로 지낼 뻔 했습니다. 하지만 청지기의 말과 총리 요셉의 호의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저택의 황홀한 광경을 즐기며 멋진 만찬을 즐기며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환대를 받고 멋진 만찬을 경험하지 못했을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이 이 곳에 온 목적대로 곡식을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게 됩니다.
그날 저녁 만찬이후에 애굽총리로부터 곡식을 제공받고 가져온 돈도 다시 돌려받게 됩니다. 곡식도 가지고 돈도 가지고 멋진 식사도 제공받고 하룻밤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나귀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나 일이 착착 잘 풀릴 때가 있습니다. 이 때를 인생의 호황기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저도 인생이 가장 잘 나갈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시기라고 볼 수 있겠지만... 고3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공부도 그렇고 간혹 힘든 순간이 종종 있었습니다. ‘인생 살아가기 힘들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3때에는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지더니 대학교를 가는 것을 남들과 다르게 너무나 쉽게 갔습니다. 물론 일류대학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4년제 대학을 재수하지 않고 간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불렸을 만큼 입시지옥이었던 시대였기에 그것은 저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었습니다. 왜냐면 대학등록금을 주시기도 힘든 가정형편이었기 때문에 재수는 더욱 불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에 대학을 붙었으니 저에겐 행운이었죠... 그런 제가 대학원도 한 번에 붙었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교회사역을 시작했는데 이력서를 내고 교회에 들어갈 때마다 단번에 교회에서 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 들어가는 것도 쉬운 경쟁률이 아니었고 사역지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교회를 사임하고 그 다음 사역지를 구하면서 몇 달을 쉬는 것이 보통인데 저는 쉰 일이 없습니다. 금방 다른 교회에서 오라고 했으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부교역자사역을 마감하고 교회개척할 때까지 일사천리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이사야서 63장 13절과 14절을 찾아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인생을 순탄한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일이 착착 맞아 떨어지고 생각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된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만 계속되면 우리는 마음이 너무 즐겁고 기쁜 맘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384쪽을 보면 “나의 갈길 다가도록”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가의 1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 하리라 /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 하리라
우리가 바라는 만사형통의 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에 스스로 자만하거나 우리의 능력을 높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일이 잘 되고 순간순간 그 일들이 잘 진행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찬송가에서 말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나의 갈길 예수님 인도하시니 내가 위로를 받고 예수님이 인도하시니 어떤 일들이라도 만사형통의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인생에서 잘되는 일들이 많은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획한 일들이 그대로 진행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가능합니다. 내 의지, 내 노력이 나의 일을 잘되게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일은 힘이 들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주안에서 잘되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의 아들들이 보여주는 인생의 교훈, 두 번째는 억울한 상황을 맞을 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7절과 8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야곱의 아들들은 계획했던 일도 잘 끝나고 형제들도 다 모여서 곡식과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고향에 도착만 하면 이제 모든 임무는 끝이 납니다.
그런데, 애굽 총리의 집에서 출발해서 얼마가지 않아 요셉의 청지기가 그들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총리가 집에서 쓰는 은잔이 없어졌는데 그 소행이 바로 야곱의 아들들의 소행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억울했습니다. 지난 번 염탐꾼의 오해를 받은 것도 억울한데 이번에는 절도범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절대 결백한데 이렇게 오해를 받게 되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들고 어떻게 해야 이 오명을 벗을 수 있을 지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만 잘 하면 절대 이런 오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우리 모두 생각하지만 예기치도 않은 상황속에서 우리는 간혹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채선당 임신녀’와 ‘국물녀’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채선당 임신녀’가 뭐냐면요... 어느 임산부가 2월 17일 오후 1시 50분쯤 ‘천안시 서북구 소재 프랜차이즈 식당 ‘채선당’에 식사하러 갔다가 음식주문 문제로 종업원과 시비가 붙었는데 종업원이 식당 밖으로 나가는 임산부를 뒤쫓아가 등을 밀어 넘어뜨리고 배를 발로 걷어찼다’고 임산부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서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천안의 그 식당은 문을 닫고 프랜차이즈 식당 ‘채선당’본사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이미지 실추로 인해 큰 영업손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뒤에도 이 사건에 대해 합의로 사건 종료가 되는 종류가 아니고 워낙 관심이 크게 일어난 사건이기에 정확한 사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붉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천안서북경찰서는 임산부 유모씨와 여종업원 홍모씨를 불러 조사한 결과, 종업원의 발에 임신한 배를 채였다는 유씨의 당초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채선당 식당 내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를 하였는데 임산부인 유씨가 계산을 하지 못하겠다’며 식당을 나가자 종업원이 유씨를 따라가 식당 문 앞에서 유씨의 등을 밀어 넘어뜨렸고, 이어 서로 머리채를 잡고 20여 초간 몸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두 사람이 몸싸움을 했지만, 종업원이 임신부의 배를 발로 차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고, 임신부 유씨도 이를 시인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몸싸움 과정에서 오히려 임산부 유씨가 종업원 홍씨의 배를 발로 1차례 때린 것으로 확인됐고 점주가 나와 싸움을 말렸다고 경찰은 발표했습니다. 임신부 유씨가 사건 당일 저녁 인터넷 카페에 “식당 종업원이 발로 배를 찼다”고 올린 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진 중상모략의 글로 인해 천안의 식당은 문을 닫고 종업원은 일자리를 잃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식당만 손해본 것이 아니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모든 식당의 영업손실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럼‘국물녀’가 뭔지 아십니까?
지난 2월 20일 서울의 한 대형서점 안 식당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가 물을 가지러 갔다가 뜨거운 국물을 들고 오던 여성과 부딪쳐 얼굴에 국물을 뒤집어 쓰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남자 아이의 어머니는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국물녀'가 쏟은 국물로 인해 아이가 화상을 입게 됐는데도 그 여성을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며 그 여성을 찾아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게시판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광분하며 온갖 게시판에 그 글을 옮기기 시작했고 해당 여성을 찾기 위해 온 네티즌들이 광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쁜 여성의 별명을 ‘국물녀’로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이 있은 지 일주일정도 지나서 '국물녀'로 불리며 비난을 받았던 중년여성 이모씨는 경찰에 자진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린 아이의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혀놓고 도망친 나쁜 사람으로 불리며 마음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화면을 보면 이 여성은 몰염치하게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이씨는 식당에서 된장국을 받고 돌아서는 순간 뒤에서 달려오던 아이가 먼저 이 이씨와 충돌했고, 그녀가 들고 오던 뜨거운 된장국이 아이의 얼굴에 쏟아졌지만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머니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자신의 손에도 뜨거운 된장국이 쏟아졌기에 화상을 입은 이씨는 당황한 채 당황하여 머뭇거리며 뛰어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식당종업원에게 찾아가서 냉수와 얼음물을 찾아 자신의 손에 얼음물을 뿌리는 등 응급조치를 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고 합니다.
‘국물녀’로 불렸던 이씨는“얼음물로 화상을 입은 손을 적시면서 식당에서 아이가 뛰어다니도록 방치하여 손에 화상을 입은 것에 대해 사과를 받으려 했지만 아이도 많이 다친 것 같아서 참았다고 합니다. 정작 자신이 아이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데 억울하다”는 말도 전했다고 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결국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입장에 서는 위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내가 누명을 쓰고 내가 피해를 당하고 내가 억울한 대접을 받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이 살려고 노력했음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줄 뿐 아니라 오히려 손가락질 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 우리의 그런 심정을 너무나 잘 아시고 우리를 위해 공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59절,60절을 펴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보시고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원통함을 풀어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당한 말과 행동이 우리가 바르게 하고 정직하게 했던 것에 대한 중상모략이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아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십니까? 내가 바르게 했는데도 그 어려움이 왜 생겼는지 모르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앞에 우리의 마음을 토로하고 우리의 울분을 내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바르게 살아도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거나 중상모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 모두 하나님앞에 나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의 아들들이 보여주는 인생의 교훈, 세 번째는 자신감과 확신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44장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총리의 청지기가 자신들을 찾아와서 총리의 은잔이 사라진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에 자신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조심에 조심을 하며 혹여나 애굽 사람들의 관심이 대상이 될까봐 조심했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철저히 관리하면서 애굽에 남게될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은잔 절도범이 자신들중에 있을 수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개개인의 짐보따리를 풀어본 끝에 베냐민의 주머니에서 은잔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베냐민이 넣은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애굽에 붙잡아두기 위한 요셉의 계략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가족들을 모두 모으기 위해 이런 작전을 썼던 것입니다. 특별히 가나안땅을 떠나지 않을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오기 위해서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애굽에 붙잡아두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미게 된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은 결백하다고 끝까지 주장했지만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오면서 야곱 아들들의 확신은 틀린 확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상식적인 확신이 간혹 틀리게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작년에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면서 방사능이 한국으로 유입되지 않을까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저명한 과학자들과 정치가들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편서풍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항상 모든 공기는 동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일본에서 유출된 방사능이 한국에 올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뒤 미세하지만 이전보다 많은 방사능 양이 한국에서 검출되었습니다. 인체에 유해한 정도는 아니지만 평소의 양보다 많은 양이 측정되면서 환경단체, 원자력관련 시민단체가 핵발전 반대운동을 벌렸습니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장담했던 편서풍벽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우리에게 유용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우리를 방어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여론으로 형성되었고 많은 국민이 잠시동안 큰 우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우리속에 있는 기본적인 상식과 우리가 체험했던 경험들을 우리의 확신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조금은 조심을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우리의 확고한 신념대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선택하며 상황을 헤쳐나갑니다. 하지만, 그런 신념속에서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부자 청년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돈쓰라는 것인데 예수님은 제물을 팔아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신 것을 말하며 예수님은 목회를 잘 모르시는 분 같다”고 그 목사님은 전제했습니다. “교회 교인들은 직접적으로 말하면 다 떨어져 나가니까 돌려서 이야기해야되는 것이 목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성공하신 이유는 말씀이 확실하고 강한 리더쉽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전제하면서 자신도 예수님처럼“완벽한 목회자, 능력의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글을 적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제가 그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뭐라고 달았냐면...
“저는 요즘 덜 된 목사가 되고 싶어 기도중입니다. 나는 부족하고 나는 떨어지고... 학력이 부족하고 재력이 부족하고 영리하지 못하고 손해만 보는 것 같이 사람들이 봐주는 목사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봐줄 때 우리 주님이 나의 학력부족, 재력부족, 영리하지 못한 것... 손해만 보는 것을 채워주시면 좋겠어요”
그런 글을 올렸더니... 사람들이 공감을 하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인해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그 목사님도 그것이 바른 생각이라는 의사를 글로 표현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완벽하려고 우리가 뛰어난 능력을 가져보려고 하지만 결국, 우리의 완벽,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자신감 또한 결국 우리의 얽어매는 굴레가 될 때가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이 남긴 말중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함부로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우리들의 삶은 늘 분망합니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핸드폰과 메일로 수시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약속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약속을 하게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이런 약속의 위반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매우 신중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을 계속 유지하는 방법이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하지만 결국 약속의 전제가 바로 우리의 확신에서 오는 것 아닙니까? 나는 그거 할 수 있어... 나는 분명 그것을 너에게 줄거야... 하지만, 그 확신이 얼마 되지 않아 흐뜨러지고 이루어줄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때도 많은 것을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확신이 인생에서 얼마나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였습니까? 내가 잘 될 것을 생각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지냈지만 결국 어려운 일을 경험할 때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저와 여러분속에 있는 확신으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믿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인생에 대해 이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오래 전에 장로님들과 함께 선교지역에 가는데 그 선교지역은 그 당시에 빈곤한 지역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빈곤한 지역이라 먹을 거부터 시작해서 온갖 필요물품을 준비해서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 비행기는 예약을 했지만 일반석이 만석이라며 일등석으로 타고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값내고 어떤 사람은 일반석타는데 그 목사님의 일행은 일등석을 타고 가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지역에 도착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직원이 짐이 너무 많아서 통관을 시켜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출국을 해보면 아시지만 짐이 무거우면 규정된 무게이상에 대해 요금을 내던지 아니면 그 무게만큼만 실어보내고 나머지는 놓고 가야합니다. 그러니 출국할 때 무게에 문제가 없었으면 도착할 때 무게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선교지에서는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내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마중나온 선교사님 일행의 도움으로 별문제없이 지나가게 되었지만 한동안 큰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하루에 비행기 일등석에서 최상의 대접을 받고 지내다가 공항에서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진리는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의 아들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속에서 항상 좋은 것만 받으려고 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인생이 항상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가 가지는 인생관의 오류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힘든 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속에서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매여서 우리 하나님의 선한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다고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합니다. 우리가 준비했지만 예기치도 않은 불행한 사고와 힘든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합니다.
그런데, 그 진리보다 더 빨리 깨달야할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속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주권자가 되어 복된 길로 인도하시며 선한 결과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미약한 인간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령한 존재를 붙들고 우리의 미래를 밝히 알고 계신 분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들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신령한 존재와 우리의 미래를 알고 있는 분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 분이심을 깨달아 그 분으로 말미암아 복된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