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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
삶은 온전한 존재로 만나야 합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진정으로 나를 만나주는 어른이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립고, 부처님이 그리웠습니다.
그 분들이라면 많은 무리 중에서 순간적인 눈빛 만으로도 나의 온전한 존재를 만나 주었겠지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배우고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체험은 만남입니다.
하지만 만남을 가르쳐주는 어른은 별로 없습니다. 그들 역시 진정한 만남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만남을 회복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사람이든, 음악이든, 풍경이든 만나야 내면의 문이 열리고, 자기가 나옵니다.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갇혀있게 됩니다. 만난다는 것은 울림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만나도 내면이 울리지 않으면 힘이 듭니다. 어떤 때는 상대방이 내게 피해를 줘서가 아니라, 울림으로 만나지 않아서 힘이 드는 것입니다.
존재의 내면을 만나 울림이 일어나면 그 즉시 나도 알고 상대도 압니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울림이 일어나면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개 됩니다.
어쩌면 살면서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열쇠는 만남일지도 모릅니다. 만나면 힘든 것도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만나면 풍요로워집니다. 만남을 회복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삶이 건강해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쇼핑하듯이 인생을 쇼핑합니다. 만남이 없이 그저 필요에 의해서만 살아갑니다. 그렇게 만남을 잊어서는 끝없이 외로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적당히 만납니다. 대문 창문을 잠가 놓고 만납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만남은 없습니다.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만남이 이뤄지지 않고 평화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만남을 잊었습니다. 만나지 않았으면서도 만난 것처럼 착각합니다. 항상 문재 속에만 고개를 파묻고 오로지 문제만 봅니다. 그러면서 꿈을 잊어버리고 외부를 잊어버리고 결국 상대를 바라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상대가 없으면 자기 자신도 없습니다. 만난 것과 만나지 못한 것은 있음과 없음 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존재로 만나 준 적이 있나요?
가치의 프레임이 아니라 그냥 온전한 가슴으로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존재적인 삶의 구조 대신 가치의 구조만 있습니다. 우리는 존재의 삶을 전혀 살아본 적이 없고 배워본 적도 없습니다.
단지 가치만 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 춤 잘 추고 피아노 잘 치는 아이라는 가치의 수식어로 우리는 늘 규정되어 왔습니다. 이제 존재의 삶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남이 일어납니다.
가치로서는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존재로서 만나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진짜로 아이를 만나 준다면 그런 만남을 20년만 만날 수 있다면 우라들 대부분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에서 그런 만남을 못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어린 아이처럼 외로워하고, 그래서 집단을 만들고 우상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요? 상대를 만나야 비로소 나도 존재하게 됩니다.
밖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안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없어집니다. 수많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딱 한 사람, 한 존재가 없어서 우리는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3시간 걸리는 경춘선 기차 안에서 꼭 잡은 손을 한 번도 놓지 않는 사과장수 남편과 아내처럼 우리는 그렇게 만나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그런 만남을 꿈꿉니다. 분만실에서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맹세했습니다. 훌륭한 아빠가 될 자신은 없지만 너를 온전한 존재로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 만큼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께, 100%는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단 1%라도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떠나게 될 그 아름다운 여행을 위하여...
<마음으로 지은 집>
허허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가 한 눈에 다 보입니다. 그 이치를 깨달아야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허허롭고 자유로운 눈, 허무안을 얻으셔야 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찌해야 그 허무안을 얻을 수 있느냐? 허무안은 얻고자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비우고 비워야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찾아오는 갓입니다. - 호중지천 중에서 ~
언젠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인생을 이렇게 나누어 봤습니다. 스무 살 때까지는 지구의 삶을 배우는 시기, 마흔 살까지는 배운 것으로 살아보는 시기, 마흔 이후로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시기, 그러다 마흔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생명의 빛, 신성의 빛이 있구나! 그 빛이 조금만, 아니 1%만 더 밝아져도 세상이 아주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시에서의 한의원 구조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래의 질서로 돌아가는 도시에서는 만남이 쉽지 않았지요. 그때부터 내 인생을 살 수있는 터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풍수지리 전문가도 아니고 또 그런 지식의 눈으로 땅을 볼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지요. 누구도 욕심내지 않는 그러나 영혼이 좋아하는 땅, 따져보면 이보다 더 완벽한 땅도 없더군요.
그런 터를 찾아 몇 년 동안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다녀봤습니다. 그러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이곳, 한가롭고 허허로운 땅 사포리입니다.
하지만 사포리의 터를 마련한 뒤에도 한의원 건물을 세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어떻게 지을 것인가 부터 혼자 생각하고 결단해야 하는 일이었지요.
사람이 직접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을의 컨테이너 조립식 주택마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남의 집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지요.
저 사람들은 어떻개 지었을까, 그저 신기하고 부러웠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없고, 막막했습니다.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들을 때마다 마치 제 심장을 노래하는 것만 같았지요.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집 짓는 거 도와줄 거기 누구 없소, 바로 그 무렵 혜성과 같이 등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보다 더 귀한 영웅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홍목수 입니다.
홍목수의 부친은 대목이었습니다. 건물도 여러 채 짓고 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어른은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는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진학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학창시절은 중학교에서 멈춰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이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머리도 좋고 재능도 뛰어난 소년에게 그 사건은 아주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되었지요.
아들은 삐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학교 다니는 또래들이 미웠습니다. 가끔씩 아이들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 싸움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는 거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물려받은 피가 있어 그 역시 20대 때 목수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무수히 많은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솜씨도 솜씨려니와 어디 한군데 머물지 못하는 마음을 집짓기에 쏟아 붓느라 쉴틈이 없었지요.
그를 아는 사람은 우리나라 집짓기의 역사를 논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 건설회사를 차리기도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습니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아내에게 바쳤습니다. 자기 인생에도 이제 행복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가버리면서 그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50대 접어들자 그는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습니다. 그때 부터 그는 자신의 봉고차애 아끼던 개 두마리를 싣고 정처없이 떠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머문 곳은 주로 저수지 낚시터였습니다. 밤 늦도록 낚싯대 드리워 놓고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새벽이 되곤 했습니다. 낚시는 하지 않고 그저 3,4일 저수지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 낚시터에서 몇 개월 머무르다 자리를 옮겨 다른 낚시터에서 또 몇 개월씩 시간을 보냈습니다. 삶의 희망도 내면의 빛도 모두 꺼진 암흑의 상태가 계속되던 어느날 그는 이제 여기서 그만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무렵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거기 논산 어딘가에 별난 한의사가 사는데 혼자서 집을 짓느라 아주 고생이래~, 처음엔 두 사람이 왔습니다. 둘 중 한 명이 홍목수였지만 아직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턱이 없었지요.
다만 둘이서 기초를 끝낼 무렵 제가 혼잣말로 황토방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쩌나 하고 중얼거리자 그가 대뜸 이렇개 말했습니다. 내가 구들은 많이 놔보긴 했는데 어떻게? 해볼까요?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었지요. 그날 홍목수는 묵고 있던 숙소에서 아예 짐을 싸들고 왔습니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과 한 방을 써야 한다는 게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둘이서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 저는 홍목수라는 인물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집을 지을 생각이오? 기능은 한의원이지만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와서 그냥 쉴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면 더 바랄 게 없죠.
나네! 예? 나 같은 사람이 와서 쉬라는 얘기 아니오? 그렇게 해서 홍목수의 지난 이야기들을 듣게 된 것입니다. 특이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험한 공사장에서 만만치 않은 인부들을 일일이 통제하려면 웬만한 기운으로는 어림도 없을텐데 정작 본인은 술 대신 녹차를 즐기는 조용한 성품이었습니다.
어쩌다 외출해서 밤 11시쯤 도착했을 때는 잠든 사람을 깨울까봐 그냥 차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그 조용하고 배려깊은 성품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왜곡된 인생을 모질게 버텨온 것입니다.
나이 56,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꿈이 아니었나 싶네~, 저는 그를 좀 더 잘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홍목수님 어떻게 여행 갈까요? 여행? 집 짓는 건 어떻게 하고? 집도 좀 쉬라고 하죠 뭐~,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헝목수라는 사람과의 인연이었습니다. 둘이서 함께 낯선 풍경을 접하며 좀 더 내면과 내면이 가까워지고 존재와 존재가 진정으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홍목수는 너무도 행복해 했습니다. 하기야 개 두마리씩 싣고 다니기 보다는 말 벗이 될 수 있는 사람과의 여행이 아무래도 좀 더 낫겠지요.
둘이서 한바탕 신나게 여행하고 돌아오면 홍목수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망치질을 했습니다. 제가 어디서 뭘 하든 그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려가며 못을 박고 톱질을 했습니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홍목수 뿐만 아니라 일하는 분들에게 손수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싶었습니다.
식당 밥은 아무리 뜨거워도 따뜻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설픈 저로서는 끼니마다 밥을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포리에 집 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마운 지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일별로 식사 답번을 짜서 밥을 해주고 멀리 대전에서 닭고기며 돼지고기며 푸짐하게 싸들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그들 눈에 홍목수는 정말 대단한 장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홍목수님 같은 분이 꼭 계셔야 해요. 우리가 집 없으면 어떻게 살아요?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목수만큼 가치있는 직업도 없어요. 맞아요, 예수님도 목수였다고 하잖아요.
처음엔 인사 치레려니 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자주 듣게 되면서 홍목수는 잊고 있던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능력이 선한 가치를 위해 쓰인다는 사실 만큼 보람된 일도 없지요.
그는 점점 행복해 지고 있었습니다. 덩달아 저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개 집을 많이 지어 봤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일세~, 어떤 느낌인데요? 글쎄 마음으로 집을 짓는 느낌이랄까~,
그는 정말 마음으로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처마 작업을 시작할 즈음 그는 비계를 설치하지 않고 그냥 사다리 위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지요.
하지만 홍목수는 아침 6시부터 저녁까지 사다리에 올라가 이틀 만에 그 일을 끝마쳤습니다. 석양을 받으며 혼자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그의 실루엣에서 놀라움을 넘어 뭔가 숭고한 분위기까지 흘렀습니다.
일을 모두 마친 뒤 저는 홍목수와 나란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동안 둘이 입을 열지 않은 채 고요한 침묵만 흘렀습니다.
여기에 터를 마련하고 3년 동안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제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무슨 생각?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온전히 나 스스로 선택한 일이 하나도 없더군요. 주어진 삶, 주어진 공간, 주어진 타이틀에 적응하면서 살았지, 한 번도 내 영혼에서 뭔가를 선택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다 집을 짓는 것부터 선택해 보기로 했죠. 바로 이 공간에서부터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기로 한 거예요. 홍목수님이 하신 일은 단순히 집을 지어주는 차원이 아닙니다.
제가 앞으로 선택하고 살아가게 인생의 원점을 만들어 주신 거예요. 홍목수는 말이 없었습니다. 해가 지고 캄캄해질 때까지 우리는 바위에 나란히 걸터 앉아 마음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지금 홍목수는 지방을 다니며 열심히 집을 짓고 있습니다. 어디서 어떤 집을 짓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손으로 지은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를 것만 같습니다.
☞ 책 :「<어설픔> 이기웅(한의사) 저, 조화로운 삶 출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