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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스스로 있는 분 나는 나다 라고 하실 정도로 하나님이 너무나 완벽하시고 너무나 완전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실수함이나
잘못됨이 없는 그러한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 믿고 계십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이 이 세상을 운행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인 것을
믿고 있으면서도 은연 중에 삶을 살아가면서 그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때로는 그분의 완전하심에
대해서 반기를 가지고 행동할 때가 많이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여러분들 이 지구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데 하나님께서 왜 에덴동산 이라는 일정한 거주지에 울타리를 치시고 그곳에 아담과
하와를 머물게 하고 살아 갈수 있도록 에덴 동산을 두셨을까요?
우리 생각에 전체를 다 에덴동산 으로 두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 에덴동산은 한계가 있고
경계가 있는 일정한 곳으로 이렇게 만들어 두셨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아담과 하와의 주인이 자신들의 주권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자신들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자신들을 지으시고 만드신 생명을 주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함입니다.
그렇게 특별한 곳을 제정해 놓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시고 선악과 라는 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더욱더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셨고 또 아담을 만들자마자
첫 번째로 복을 주신 것이 안식일을 지켜라
마지막 날 이 여섯째 날까지 창조하신 그분이 일곱째 날에 특별히 너희는 이날을 기억하여 안식일을 지키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두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할 일은 그들을 경계로 세워주신 이 땅 지구 가운데 있는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시고 거기에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완전하게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노동하지 않아도 수고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힘들여 그것을 가꾸지 않아도 다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그럼 그들이 무엇만 하면 됩니까?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쉼이요 그게 안식이요
그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요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라 왜냐하면 너무나 완벽하게 그 어떤것도 이상이 없이 하나라도 빠짐이 없이
하나라도 더함이 없이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여러분들은 믿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완전하게 만드신 에덴 동산에 정말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고 보기에 아름답고
손만 뻗으면 언제든지 배고픔을 해결할 수가 있고 의의 옷을 하나님께서 입혀주셔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눔에 있어서 대면함에 있어서 부끄러움 당하지 않고 두려움 당하지 않고 한몸을 이루어서 그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무언가 하나를 아~ 이건 좀 내 마음에 안 드는데 하고 떼어버린다면
제거시킨다면 없애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 창조물들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무언가를 없애버린다
예전에는 제가 정원을 아름답게 잘 꾸며놨습니다.
너무나 완벽하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아~ 저 나무는 내가 보기에 보기가 싫은데
아~ 저 바위는 너무 커가지고 나한테 걸리적 거릴 뿐이야 하고 그 바위를 치운다거나 나무를 베어버린다 라면
그것은 내가 완벽하게 조성한 정원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라는 겁니다.
반대로 여기에 이것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네 이 만든 주인이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내 생각에는
이것은 하나 더 여기다 집어넣어서 조성해 놓으면 더 보기에 좋고 아름다울 것 같고 우리가 더 편할 것 같애 하고
더 하는 일이 있다 라면 하나님이 완전하심을 무시하고 배도하는 일이 거기에서부터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심을 항상 믿고 살아야 됩니다.
그것이 그분의 쉼에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펼쳐놓으신 구속 사업에 구원 하시는 일에 무언가
자기의 의지나 노력이나 수고로 그런 일들을 덧붙이게 하고 어느 때는 빼려고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들을 위해서 축복을 내려주시려 하는 그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축복을 소유하지 못하는 일들이 종종 있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셔서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님의 말씀에 주님의 뜻에 주님의 명령에 주님의 법에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면서
살아나가는 것이 바로 인내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완전하심 속에 여러분이 들어가실 때 참평안과 참쉼이 여러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더 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고 그분이 요구하시는 대로 말씀하신 대로 명령하신 대로 사는
것이 순종하는 삶이요 그게 의로운 삶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더하시지도 않고 덜하지도 아니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명령과 법에 따라
사셨던 분이기에 그분 마음속에는 평온함이 항상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평온함을 가리켜 우리는 온유하신 분이다 라고 이렇게 그분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온유를 예수님의 겸손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너무 탐욕적이어서도 안 되고 너무 우리가 자신들을 생각하면서 사셔도 안 될 것입니다.
요즘에 제가 이 야곱의 얘기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려는 그 과정에서 잠시 이렇게
생각이 나서 이런 얘기를 하면서 시작하고 있는데 여러분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 예수님 믿는 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 소홀히 하고있는 부분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이 기름 부음 받은 구원자 라는 뜻입니다.
기름 부음 받았다 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성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은혜와 은총과 인도하심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 주님께서 생애를 사셨습니다.
똑같이 예수님께서 임재하시고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예수님께서 의존하시고 예수님께서 의지하셨던 그 성령님
똑같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님과 같은 생애를 사는 자들 예수님과 같은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들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성령님 안에서 살아야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어둠의 영인 어둠의 권세자인 불순종의 영인 사탄이 마치 그가 주권자인 것처럼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주권을 빼앗겨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자기가 그 주권 행사를 하고 실제적인 주인 행세를 하고
거짓과 기만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께 반드시 의지하고 그분이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다 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방법 중에 가장 첫 번째
가장 우리가 의존해야 되고 믿고 신뢰하며 함께 동행하며 살아야 될 바로 그 하나님이 성령님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천년전에 오셔서 과거에 그 아벨이라든지 에녹이라든지 믿음의 사람들 아브라함이라든지
야곱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의 믿음을 보면 미래에 나타날 아직 예수님이 자신들 눈앞에 보이지 않고 장차 오실
구원자로서 자신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의와 거룩의 길로 가게 할 그 메시아를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멀리 장차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믿음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온 자가 바로 아벨이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드릴 때 바로 그 멀리 그러나 눈앞에 계시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는 자신들의 삶을 죄 가운데서
구원시키실 그 메시야를 바라보며 그분을 바로 나와 함께 매일 매일 삶에서 보내는 하나님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멀리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이미 지나간 2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생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두 번째 이 세상에 천사장 나팔 소리와
그리고 천천만만의 그 호위하는 천사와 함께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오실 때
미래에 만나게 될 그 예수님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소홀하게 되고 간과하게 되고 문득 우리가 깨어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게 되면 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 과거의 사람들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 만을 생각하고 우리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고 과거에 십자가를
통한 그 보혈과 피 그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드리는 이유와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면 여러분들 죽으신 그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에 살아계시다 라는 겁니다.
그 살아계신 예수님이 오늘 나와 매일 매일의 삶에서 경험되어지지 않으면 그 멀리
동떨어진 과거에 있었던 예수님이 지금 과거를 지나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이 죽은 신앙이 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현재의 내가 만나고 있는지 그 예수님이 현재 우리의 주님이 되고 있는지
죄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우리와 만나주시고 우리와 지금 오늘 함께 해주고 계시는
그 예수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여러분이 아시고 사셔야 된다는 게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바로 그 주님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살고 죽는 일에 결정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가르게 되는 일이 오늘의 삶 속에서
나타 난다 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속하여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함께 있음으로 우리도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이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 바로 이 말씀을 깨닫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9절 28 절 한번 말씀을 읽어볼까요.
14:19 조금 있으면 세상(世上)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4:21 나의 계명(誡命)을 가지고 지키는 자(者)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者)니 나를 사랑하는 자(者)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主)여 어찌하여 자기(自己)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世上)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14:23 예수께서 대답(對答)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居處)를 저와 함께 하리라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者)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6 보혜사(保惠師)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聖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7 평안(平安)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平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世上)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14:29 이제 일이 이루기 전(前)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4:30 이 후(後)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世上)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關係)할 것이 없으니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命)하신대로 행(行)하는것을 세상(世上)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 모든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도 두번 만나 주시고 승천하기 전에 바로 또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비롯한 6명의 제자 합해서 7명의 제자와 만나주신 이야기를 우리는 교제를
통해서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 승천 이후에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와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예수님이 금요일날 돌아가시고 일곱째 날 무덤에서 안식하시고 일요일 날 첫째 날에
예수님께서 첫째 날에부터 부활해서 활동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늘로 곧장 올라가시고 일정한 때가 돼서 자신이 다 이루신 일을 하나님과 천사와 우주 거민들에게
알린 다음에는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죠.
그리고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고 또 엠마오 도상에서도 예수님께서
두 제자와 만나서 자신이 왜 십자가를 져야 했는지 구약에서 얘기한 바로 그 구원자가
자신임을 성경 말씀들을 통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한 번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떻게 일을 행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지금 일을 하고 계시는데
그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위로자 격려자 바로 대언자라는 그러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은 예수님께서 친히 관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여러분들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어디서 만났어요?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습니다.
빛 가운데서 영광의 광채 왜냐하면 죄인은 그 예수님의 영광의 광채를 지니신 아름다운 신의 성품을 가진
예수님을 친히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울이라는 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빚 가운데 임하실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을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빛이 강했는지 그 사울의 눈이 잠시 멀었던 것입니다.
육의 눈 죄의 눈을 가지고서는 예수님을 친히 대면하여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다른 선지자 다른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안수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눈에 덮여져 있던 비늘 육의 비늘을
다 벗겨내시고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의 사람으로서이렇게 변화시켜줌으로 말미암아 그제부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요한복음 14장 19절 20절에 말씀 처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다 돌아가시기 때문이죠.
여러분 이게 얼마나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감명을 주고 진리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다 돌아가시니까 너희는 그런데 나를 보리니
너희는 나를 보리라 영이신 예수님 내 말은 영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영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과 뜻과 생각과 계획과 마음의 동기가 하나가 되면 그분 안에서 우리가 연합되는 과정을
통해서 일치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생각을 통해서 마음을 통해서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우리가 육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가 되면 내 마음과 마음이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소유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다 라는 얘기입니다.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 날에는 예수님께서 현재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바로 그날에는 이 그날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이 땅에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통해서 그래서 여러분들의 육에 감겨져 있던 그 눈이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진리의 빛을
비췸 받음으로 말미암아 영의 사람으로 화해질 때 예수님화 될 때 완전히 거듭나고 바꾸어질때
여러분들은 임마누엘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매일매일 살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십자가를 통해서 내 죄를 해방시키고, 정죄하고, 깨끗하게, 정결하게 하신 그 예수님이 이제는 하늘 성소에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중보하시는 그 놀라우신 주님의 그 중보의 기도의 은혜를 통해서 내가 죄가 아무리 크고 아무리 힘이 강하다
할지라도 그 파워가 나를 화산처럼 장애물을 놓고 나를 이렇게 건너가지 못하게 올라가지 못하게 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뭐라 그러셨죠. 바로 이 산을 저 바다에 던져라 하면 던져질 것이요 영의 사람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면
바로 야곱과 같은 그런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라는 겁니다.
이 뽕나무가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던져질 것이다. 왜 뽕나무 얘기를 했을까요?
제가 이것이 예전에 유치장 선교할 때 아주 많이 했던 이야기들인데 이 세상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 중에서 접할 수 있는 나무들 중에서 가장 이 땅 아래 흙 속에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의 삶 속에 가장 밑으로 밑으로 그 뿌리가 가장 길게 뻗어서 가장 많은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 나무가
뽕나무 뿌리입니다. 뽕나무는 인간의 힘으로는 뽑아낼 수 없다 라는 얘기예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있습니까?
많은 나무들이 있는데 모든 나무들이 뿌리가 있고 뽑아내기는 힘들지만 커다란 태풍이나
커다란 강풍이 불면은 어떤 나무들은 뽑혀지는 그런 일들은 종종 볼 수 있게 되지만
뽕나무 뿌리는 휠지언정 절대 뽑아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뿌리가 그 나무의 크기만큼 뿌리가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뽕나무 더러 뽑혀져서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던져질 것이요
똑같은 말씀이죠. 이 산더러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던져질 것이요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집니까 야곱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세요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제가 항상 얘기하죠
이사야 45장 23절 내가 나를 두고 맹세(盟誓)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義)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 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盟約) 하리라 하였노라
그분의 말씀은 진리요 영이요 생명이고 창조의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의로운 말이 생명의 말씀이 나가면
다시 되돌이킬 수 없어요. 반드시 이 세상 우주에나 만물에나 또는 사람 마음 가운데 그 말씀이 박히면 그 말씀하신
목적 말씀하신 뜻대로 이루어지기까지는 절대 사라져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말씀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하신 분이에요. 얼마나 놀라운 분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그 소식에 깜짝 놀랐을 거 아닙니까 어! 내가 예전에
형님한테 잘못하고 거짓말하고 간교하게 그 장자권을 내가 팥죽을 통해 몰래 빼앗고 그의 어려움을 통하여
물물 교환해서 장자권을 다시 자기가 갖고 팥죽을 에서에게 먹임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그 것이 간교한 방법으로 얻은 그 일 내가 그 형님에게 잘못한 일 때문에
이런 일이 이러한 문제가 나에게 다가왔구나 순식간에 그는 알았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통하여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죽이려 하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자기는 자기 죄가
벌 써 생각이 나고 기억이 났던 겁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이 어제도 제가 얘기했죠.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고 또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이스라엘에 속한 자 갈라디아서 3장 29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기업을 물려받을 자 그러면 그리스도인에 속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이스라엘이 돼야
되는데 영적인 이스라엘이 된다 라는 것은 야곱이 변하여 옛 사람 옛 성품 죄의 사람 간교한 그 마귀의 속성과 성품을
가진 그가 변하여 하늘의 사람 하늘에 속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을 때 비로소 하늘 나라의 유업을 우리가 받을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문제가 해결됐어요
여러분 애서가 죽이려고 왔는데 그 문제 해결을 하나님과 대면하여 그 문제를 해결받으니까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창세기 33장 1절부터 12절까지 천천히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여러분 33장 1절에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여러분 생각납니까
눈을 들어보니 제가 한 20일 전에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한번 했던 기억이 있는데
노아는 여호와께 완전한 자요 의인이더라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더라
여러분 눈을 들어보니 지난번 노아에 대한 얘기 기억나십니까
어떤 사람이 물건을 사러 갔는데 너무나 마음에 든 물건이 있어서 가만히 그것만을 쳐다보니까
물건을 파는 사람이 손님 이것이 마음에 드는가 보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습니다 라고 그것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는고 막 좋게 여기는
너무나 가지고 싶어 하는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땠어요.
조금 전이 아니죠. 한 불과 한 여섯 일곱 시간 전만 해도 어떤 일이 있었죠.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자기를 죽이러 오는 죽음의사자 저승사자 그 흑암의 권세를 가지고 오는 마귀의
군대를 그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갑작스럽게 바꾸어졌죠.
12절에 보면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여기에 도둑들도 많고 산적들도 있고 너의 그 재물을 너희의 생명들을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이 종종 간혹가다 있기 때문에 내가 데리고 온 이 400명의 군대를
내가 너를 위해서 호위하고 앞잡이가 돼서 동행할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바뀌어졌죠.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인간적인 세상적인 삶을 살면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 질 수 있나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죽이려고 왔으면 뭔가 칼이라도 뽑는 시늉이라도 해야 되는 것이 인간 세상에 바로 그러한 유형들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 어떻게 태산과 같은 이런 장애물 아! 큰일 났다 이제 죽는구나 라고 했을 때
야곱은 이 자리에서 자기에게 약속했던 약속의 하나님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아니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함께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라고 얘기했는데
아까 요한복음 14장 19절 20절 말씀했죠. 그런데 내 눈에는 지금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실제적인 문제는 에서가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라는 얘기입니다.
400명의 군대 마귀의 군대를 상징하고 있어요.
자기의 죄를 가지고 참소하며 고소하며 너 이러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로 내가 너를 죽여도
이건 하늘나라의 법에 위배되지 않을 거야 라는 그러한 마음을 지닌 채 야곱에게 덤벼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어떻게 해요. 죽음의 사자가 눈앞에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리고 꼼짝없이 자기가 죽게 되었어요.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까요. 이것이 신앙생활의 길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만나야 돼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 에서가 쳐들어오고 공격하고 죽이러 오는 문제는 자기 과거에 죄의 흔적을 가지고
지금 그 흔적을 가지고 구실을 만들어서 죽이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죄의 흔적을 없애면 될 거 아닙니까
근데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기 죄를 없앨 수 있나요 이것이 우리에게 큰 문제입니다.
인간은 그 죄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없어요.
그렇게 간교하고 그렇게 술수에 능하고 아주 지혜와 지식이 총명한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임기웅변에 능한
그 야곱도 이 문제만큼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의 천사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야곱은 밤에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온 에서의 손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두려움이 있으면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이것이 하나님의 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창27:22)
하는 것처럼 우리는 두려움 가운데 죄 가운에 빠져 있으면 하나님의 손이 에서의 손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요
에서의 손이 하나님의 손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오해하게 되는 삶을 살 때가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오랜 시간을 두고 씨름하셨습니다.
이 얍복강에서 일어난 일을 성경으로 쓰자면 성경 한권이 될수도있지만 축소하고 축소하고 줄이고 줄이고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이 한절 한절 생명의 말씀이에요.
오랜 시간을 두고 씨름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에서가 아니라 죽음의 손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 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해 되시겠습니까 거기에 성경을 가만히 보면 언제까지 이렇게 씨름하는 것이 있나요.
24절에 보면 홀로 남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합니다.
그런데 이제 천사로 나타나신 예수님이 아 ! 이거 갈 때가 됐는데
26절에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날이 새도록 밤이 새도록 야곱과 시름 하여 주셨어요.
아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1분 아니라 10초면 끝낼 수 있는 일 아닌가요
그런데 왜 야곱과 그렇게 오랫동안 씨름을 하셨을까요.
밀고 당기는 밀당 밀당이라고 그러죠 밀어주고 당겨주고 그러한 일을 통해서
왜 그렇게 오랜동안 이제 씨름할 정도로 야곱이 힘을 가진 자가 되었어요.
장년이 되었어요 장년을 넘어서 노년 사이에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의 힘으로 싸울 수 있는
벧엘에서 집을 나갈 때는 장년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닥다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아까 읽었던
요한복음 14장 19절 20절 말씀을 알려주기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사닥다리를 타고 천사의 모습으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시면서 위기에 처한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오기도 하시고 또 그 문제가 끝나면 또 올라가셨다가 우리가 또 위기에 처하면
또 올 때도 있고 내려오는 데도 또 시간이 걸리겠죠. 바로 안 나타나게 되니까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안 계신가 나를 떠나셨는가 나와 이제 관계가 없는가
별별 생각을 다 하죠. 그런데 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내려 오셔서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고 또 때로는 내려오셔서 너무 힘들다 싶으면 구운 떡을 주시기도 하셔서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고 물을 마시게 해서 소생해 주시고 로뎀나무 아래서 죽을 작정을 하고 하나님 차라리 죽여달라고
그럴 때 아무 말 없이 더 이상 하나님이 할 말이 없으신 겁니다.
그냥 얼굴만 쓰다듬고 함께 부여잡고 울며 고통 당하고 함께 그 야곱의 마음이 되어서
엘리야의 그 마음이 되어서 그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로 작정한 그 이스마엘 어미인 하갈의 마음이 되어서
베드로의 마음이 되어서 그렇게 해서 이렇게 곁에 함께 해주는 임마누엘 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열왕기상:19:2 이세벨이 사자(使者)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來日) 이맘때에는 정녕(丁寧) 네 생명(生命)으로 저
사람들 중(中) 한 사람의 생명(生命)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神)들이 내게 벌(罰) 위에 벌(罰)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19:3 저가 이 형편(形便)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生命)을 위(爲)하여 도망(逃亡)하여 유다에 속(屬)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自己)의 사환(使喚)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19:4 스스로 광야(曠野)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行)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求)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生命)을 취(取)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列祖)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19: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天使)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甁)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19:7 여호와의 사자(使者)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食物)의 힘을 의지(依支)하여 사십(四十) 주(晝) 사십(四十) 야(夜)를 행(行)하여 하나님의 산(山) 호렙에 이르니라
창세기:21:17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民族)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負袋)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집을 나갈 때 주님께서 그렇게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의 말은 뭘까요.
다름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거 아닙니까
그리고 네가 지금 떠나는 이 고향 땅 하나님은 물론 영원한 것을 얘기하고 계시지만
야곱에게는 실제적인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땅을 내가 너에게 줄 것이다.
그 얘기는 뭐에요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리라 그런데 여러분들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해주셨어요.
내가 놀라운 얘기를 지금 해드릴 것입니다.
누구에게 했습니까 ? 우리에게 했습니다. 우리에게 했다 라는 말씀을 어떻게 알수 있어요
야곱이 벧엘에서 절망과 낙심 가운데 빠졌을 때 그때 그 옛날에 우리가 거기 있었어요.
그런데 야곱 한 사람에게만 얘기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갈라디아서 3장 29절 말씀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내가 너에게 줄 유업을 너희가 물려받을 것이다 라고 하신
그 말씀이 성경에 기록돼 있는 것이 있어요. 놀라운 말씀입니다.
아니 야곱에게 한 그 약속이 우리들 에게 해주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의 대표자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기도할 때 가족들을 먼저 보내주고 누가 얍복강가에서 기도하고 있어요?
야곱이 누구랑 같이 기도했나요 혼자 기도했나요? 여러 사람과 같이 기도했나요?
“창세기 32: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는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24 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왜?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자기들을 죽이려 하는 문제가
자기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죄의 책임이 자기 가족들에게 닥친 이 죄의 결과가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러하다 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책임지기 위해서 홀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거예요.
아담하고 똑같아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그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책임자가 됐기 때문에 기도한 거예요.
히브리서 5장 7절에 보면 한번 읽어볼까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여러분 지금 제가 얘기하는 것을 잘 들으시고 묵상하시고 되새김질 하시고 반드시
깨달아야 되고 알아야만 될 그런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이 그렇게 심한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를 했죠.
죄의 문제 인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책임자였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책임자 대표해서 호세아12장3~5절 한번 읽어 보세요 똑같은 말씀이에요.
“3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4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찌니라“
여러분들 야곱이 집을 나갈 때는 장년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 다시 본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땅에 대한 언약과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이죠.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반드시 함께하고 도와줄 것이라는 언약을 그 벧엘에서 야곱에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이제 금의환향 하여 모든 것을 이루고 난 다음에 바로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바깥 부분입니다.
가나안 땅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 부분에서 우리가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야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거에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자는 절대 찬송가는 부를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의
나라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 명심하셔야 됩니다.
금의환향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또 한 번 예수님이 만나주십니다.
이 천사는 예수님이라고 성경에 나타나고 있어 얘기하고 있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신앙생활 과정을 통해서 두 번의 이런 만남이 필요해요
집을 나설 때 벧엘 에서 돌아올 때 얍복강가 에서 기도하고 브니엘 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이 두 번의 만남이 생애 가운데 반드시 여러분들 삶 가운데 이루어져야 되는 문제예요.
하나는 약속을 받아야 돼요 집을 나갈 때 언약이 있어야 됩니다.
어떻게? 말씀으로 진리로 성경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그 성경 말씀이 확실히 나에게 확정이 되고,
인정이 되었다 라는 말씀 마치 야곱의 그 환란의 기도에서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여 내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었다 라는 그 사실을 확정 받는, 인증받는 사건이 있어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생기고
그리고 자기를 죽이려 했던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누가17: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11:23)
아니! 여러분 태산과 같은 장애물 커다란 문제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야곱처럼 이렇게
커다란 문제에 봉착해 본 적 있습니까? 마주해본 적 있어요? 죽음의 칼을 들고 오는 400명의 군대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그 야곱이 경험한 것보다는 다 적어요
그것보다 조금 못하거나그와 비슷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태산 같은 장애물을 내 힘으로는 도무지 옮길 수 없는 이 산을 옮겨야만 내가 저 곳을 바라볼 수 있고
저곳에 갈 수 있는데 어떻게 이 산을 저 바다에 던져서 옮겨놓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야곱의 경험을 여러분이 경험하면 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이거는 우리에게 하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
호세아서 12장 4절 제가 한번 읽습니다.
천사와 겨루고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습니다.
이건 창세기의 모세 선지자가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누가 기록했어요. 모세죠 그러면 지금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불며
천사에게 예수님에게 간구하였으며 이건 누가 기록한 것이에요 호세아 선지자 에요 다른 사람입니다.
이 뒤에도 히브리서에도 있고 야곱에 대한 얘기가 많이 있어요.
얼마나 중요한 문제이면 이렇게 성경에 많이 다루고 있겟어요. 호세아 선지자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우리 창세기32:24절에 보면 뭐라고 쓰여 있어요.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홀로 남아서 천사 곧 예수님과 씨름합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변론합니다. 쟁론합니다.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러분 홀로 남았다는 거 그가 이기고 울며 예수님에게 간구하며 매달린 것은
왜? 지금 그 야곱이 4명의 아내를 통해서 몇 명의 아들들이 생겼습니까?12명이죠
12명의 아들들이 지금 예수님께 속한 우리 영적인 헤아릴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주님의 만만 천사와 함께 찬송을 부르고 영광을 돌리는 그 말할 수 없는 주님에 속한 자들이
되어야 되는 문제가 야곱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게 책임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매달리고 매달리고 기도하고 간구하였으며
이것은 누구예요. 예수님의 모습 아닙니까? 아까 읽었잖아요.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가 심한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똑같은 얘기잖아요.
그렇죠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왜 ?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 지셨죠 인류를 대표하는 책임자이기 때문에
또 그러한 문제가 또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들 책임자가 된다 라는 거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 이라는
그 이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요 그러한 책임을 친히 느끼시고 가지셨기 때문에 그러한
기도를 인류를 위해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왕이라는 그 십자가의 패에 히브리어, 헬라어,
그리고 아람어로 이는 유대인의 왕 이스라엘의 왕이다 라고 써져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왕 같은 제사장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늘에 속한 책임을 여러분들도 분량을 나눠 받아야 돼요
의무의 이행이 없이 책임 없이 권한 없는 영광을 구하려 하지 마세요.
영광은 장미빛 꽃길만이 아니라 반드시 그 고난과 함께 따라오는 것이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그 믿음의 사람들을 보세요. 구원 얻은 자들을 보세요. 하늘나라에 속한 자들을 보세요.
얼마나 고난과 시험과 문제가 있었는지 여러분 기억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욥과 같은 고난 모세와 같은 그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의 삶
사도 바울의 아라바 광야에서의 삶 침례 요한의 광야에서 삶 예수님의 40일동안의 금식과 세번의 시험
이런 여러 가지 또 야곱의 이러한 하란땅 삼촌집에서 지낸 삶 그 삶의 경험들, 과정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주님에게 속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원하여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알림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스스로 알게 하고자 그 책임을 가지고 홀로
기도하고 있는 그에게 순식간에 천사로 나타난 예수님께서 금방 그와 접촉하시고 가신다면 도대체 자기와
지금 씨름했던 자가 누구인지를 야곱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날이 저물 때까지 빨리 가야 되는데 이 야곱이 놓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울며 불며 눈물과 통곡으로 예수님께 천사에게 간구했느냐 이 말입니다.
오랜 시간을 밀당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하는 그런 가운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 바로
야곱이 지금 접하고 씨름하고 있는 그 대상이 상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
벧엘에서 만난 예수님 이란것을 알았던 거예요. 아까 사닥다리 얘기했잖아요.
나에게 어려울 때에 문제를 해결해주고 도와주고 또 내가 기도할 때마다 나타나시는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가 눈물로 간구 했을때 큰일났다! 이제 어떡하지!
어 ! 저 에서 형이 나를 죽이려고 내 가족 모두를 못살 시키려고 하는데 내 꿈이 이제사라져버리는 건가?
벧엘 에서 예수님이 그때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시기를 땅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할 것이고
땅도 주고 그리고 도와준다 라고 내가 위급할 때 위기에 처했을 때 나와 영원히 함께 있겠다 라고 약속했는데
그분이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또 오랜 시간을 씨름한 가운데 그분이 벧엘 에서 만났던 하나님 언약을 주셨던 약속하셨던
그 하나님을 알게 함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매달릴 수 있게 된거예요.
그가 장년이 되었잖아요. 그가 자기의 힘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여러분들 바로 우리 앞에 태산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 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말씀 한마디로 되는 창조의 능력과 창조의 역사에는 말씀 안에 다 해결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말씀 안에 진리 안에 거하기만 하면 이 문제는 언뜻 보세요.
아니! 자기를 죽이려고 왔는데 창세기33장 1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까 아!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누구를 봤어요.
400인을 거느리고 앞에 대장으로 우두머리로 다가오고 있는 에서를 봤어요
어떤 마음으로 눈을 들어보니 사방 팔방을 보니 오곡백과가 우거진 것을 보니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사방을 보니 라고 좋게 여기셨다는 얘기예요.
야곱이 그 전에는 두렵고 무서웠어요.
이제 나 죽었다 피하고 싶어 도망갈 수만 있다면 그냥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멀찌감치
도망가고 싶은 그거 이제 바라보니 너무나 좋은 존재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러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몇 시간 만에 그렇게 바뀔 수가 있죠. 사람의 마음의 문제가 해결이 됐다라는 거 아닙니까
미워하는 내가 싫어하는 내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그 태산 같은 그 장애물, 문제, 커다란 말할 수 없는 짐이죠.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대신 짐을 지시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대신 그 문제를 처리하면 되는 겁니다.
12년 동안 혈루병 걸린 여인을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시험받은 그 부인에게 하신 말씀이 누가 나를 만졌느냐
내 능력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 주님 안에 거하게 되는 순간에 주님의 그 말씀의 능력이 나와서 순식간에 혈류의
근원이 사라진 것을 여인도 알게 된 것입니다. 서로가 알아요. 하나가 되면 압니다.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고 두 눈에 불을 켜고 죽일 자로 다가오는 그 에서가
어떻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눈을 들어보니 이렇게 은혜를 입은 자로 볼 수 있을까요?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이려고 왔던 자가 어떻게 12절에 내가 너의 호위 군사가 되어 앞잡이가 되리라
동행하리라 아니 어떻게 이런 것이 갑작스럽게 이렇게 바뀌어질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 이러한 삶의 경험들을 기적을 체험하고 계십니까?
매일매일 아까 요한복음 14장 19절 20절 말씀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야곱과 같은 경험을 반드시 해야만 됩니다.
여러분들도 조금씩 변화가 되고 있는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간헐적으로 있으면 안 돼요
매일매일 삶 속에서 경험이 돼야 돼요 어느 때는 있다가 어느 때는 없다가 그게 아닙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도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 안에서 죄를 이기고 죄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태산보다 더 큰 것이 죄입니다. 죄의 그 능력 힘에서 내가 벗어나는 것은 둘째 치고 그냥 이겨버려요
내가 아! 죄를 이렇게 가볍게 이기는 것을 왜 예전에는 그 죄의 짐을 지고 내가 헐떡거리며 내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그러나 이제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바로 이 야곱이 그걸 알았던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 되는 이 역사가 이 창조의 능력이 주님 안에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주님께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야곱아 내가 너의 이름을 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알죠 전능하신 그분이 자기와 씨름하고 있는 그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 자체가 무슨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다 알죠 어떤 뜻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다짜고자로 야곱에게
27절에 이름을 묻습니다.
그 사람이,그 천사가 곧 그 예수님이 그에게 내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을 물어봅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이 전지하신 하나님이 이름을 몰라서 물었을까요?
왜 오랫동안 씨름했어요.
왜 여러분들에게 오랫동안 그 문제를
가지고 있게 하셨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어준다
라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그와 부딪치고 마주하며 씨름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문제를 금방 해결해 주면 어떻게 돼요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이 세가지고 해결했지
내가 그래서 전쟁을 이겼지 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오랫동안 그와 마주했어요.
왜냐하면 그 야곱은 오랫동안 그 예수님을 붙잡고 그 천사를 붙잡고 늘어진 것이 뭐냐면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이 문제를 자기는 해결할 수 없다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달리게 해주신 거에요
쉽게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면 하나님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로 우리 인간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확정 시켜 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그 일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그 언약을 하셨던
예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시고 성취하시고 다 이루었다 라고 선포하시는 말씀이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오랜 동안을 그와 마주하였고 아! 이제 하나님이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분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을 때 환도뼈를 쳐서 환도뼈는 인간의 생식기의 근원입니다.
자손을 번성케 하는 힘의 중심지가 환도뼈 거기서부터 나옵니다.
그것을 쳤다는 얘기는 뭐예요. 인간의 살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네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환도뼈를 침으로 말미암아 평생 불구자가 됐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했겠죠. 아니 야곱이여 이스라엘이여 당신은 언제부터 어렸을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불구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과 마주하면서 이렇게 씨름하다가 내 문제를 응답받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때리셔서 이렇게 절게 됐죠 불구자가 되었죠.
여러분 이것이 승리자의 흔적입니다. 표시입니다. 인침 이에요. 그걸 여러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야곱아~ 그렇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그때 야곱은 주님이
그 자기가 마주하고 씨름하며 그 문제 이 태산 같은 문제의 짐을 해결하고자 간구하였던
그 상대자가 언약을 주셨던 벧엘 에서의 전능하신 약속의 언약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제서야 자기의 존재 자기의 실체를 그대로 적나라하게 내놓습니다.
뭐라고요? 저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여기에 해답이 있어요
나는 내 이름으로 살려고 했던 자입니다.
여러분 지렁이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나요. 이사야 41장 이 말씀이 야곱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로 이 상황을 두고 얘기하신 거예요. 41장 8절부터 10절까지 읽어볼까요.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는 다 벌레 같은 존재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예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는 그것을 여러분이 인식하고 깨닫는 순간에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일을 대신 짊어지고 이를 이루십니다. 반드시
여러분들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한 말씀이죠.
예수님이 먼저는 야곱에게 한 건데 어떻게 우리에게 얘기했을까요?
그것이 바로 호세아서 12장 4절 말씀 여러분들이 그냥 읽고 지나갔기 때문에 제가 한 번 더 짚고 넘어갑니다.
이제 제가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해 드리도록겠습니다.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다 아! 나는 세상에 속하여서 이러이러이러하게 살았던 자입니다 라고
자신의 죄의 문제 자신의 죄를 친히 직접적으로 야곱 입술을 통해서 고백하게 한것입니다.
고백을 해야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그 일을 이루시죠 그게 고백이에요. 야곱입니다.
형의 뒷 발꿈치를 붙잡고 나오려 하는 세상을 이기고자 하는 그런 먼저 되고자 했어요. 탐욕적인 사람이에요.
전부 다 자기가 이기려고 세상을 이기려고 근데 이기는 자는 누구예요. 예수님이 이기잖아요.
그때서야 야곱은 아 ! 내가 세상을 이기려고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내 마음대로 내 지식으로
지혜로 간교한 자로 속이는 자로 거짓말하는 자로 살아왔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잖아요.
에서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잖아요.
그때 아! 나는 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을 한 거예요.
예수님 천사여 예수님은 할 수 있는 분입니다.
나에게 언약을 하신 그분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가 홀로 앉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셨을 때 우리가 그곳에 있었을까요? 없었죠
그다음에 4절 끝을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하나님은 벧엘에서 누구와 만나셨어요.
야곱과 만났잖아요. 근데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기도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말 연약한 벌레 같은 존재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밟으면 밟는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벧엘 에서 이 야곱을 만나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기고만장했죠.
그러니까 하란 삼촌집에서도 그렇게 여러 가지 술수와 여러 가지 기만과 거짓을 통해서
네명의 부인과 그리고 수많은 짐승때와 수많은 종들을 끌고 왔죠 왜 그것은 거짓말의 소산이에요.
세상적으로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온 결과물이에요. 그것을 가지고는 못 들어간다 라는 겁니다.
그걸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가나안 땅은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이나 자기의 방법이나
자기의 노력이나 애씀 자기의 간교함 술수 이런 것을 가지고는 못 들어간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아야 들어간다 라는 얘기를 하고 계신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그걸 주저앉히고 있는 거예요. 그걸 빼앗아버리는 거예요. 그것을 내려 놓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셨고 그리고 거기에서 누구에게 말씀했어요.
우리에게 내가 이거를 얘기하려고 여러분들 지금 성경을 읽을 때 이걸 빼놓고 읽었어요
우리에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요것만 여러분이 기억하면 어! 야곱에게 얘기하신
그것이 이 박찬덕이 에게 얘기한 거네 우리에게 얘기 한것이네 그것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더니
그러니까 야곱에게 행한 약속은 우리에게 행한 약속인 거고 그리고 승리자가 되게 하신
것도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할렐루야!
이게 왜냐하면 너희가 그리스도에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곧 이스라엘의 사람이니
하나님 곧 예수님께 받을 그 유업을 이어받을 자니라
가나안 땅에 그가 그 문제를 해결하고 들어갔죠. 야곱이 세상 방법으로 얻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니 이제 하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브니엘 원래 이 브니엘이란 말이 킹제임스 성경에는 Penie (프니엘)이라고 써 있더라고요
프니엘이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인데 이전에는 희미한 장소 어둠의 장소 사람을 식별할수 없는
깜깜한 세상에서 내가 세상을 이기려고 했던 그 삶에서 내가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하고 승리자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브니엘 그분의 얼굴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1절에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무슨 일이 생겼죠?해가 돋았잖아요
빛이 났어요 동쪽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는 얘기입니다.
31절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이 말씀은 내 마음이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마음으로 새로운 그 주님의 품성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몸은 어땠어요 절뚝발이가 되었어요
그 환도뼈를 다침으로 말미암아 몸은 다치고 곤고하고 이제 광야에서의 삶을 보여주는것
주님과 함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광야의 고난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돈 것처럼
그 야곱은 지금 쩔뚝거리면서 그 동쪽에서 환히 비치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씩씩하게 당당하게 담대하게 기쁨과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주시고자 약속했던
그 가나안 땅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지금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브니엘의 경험을 하셔야 됩니다.
집을 나갈 때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자가 돼야 됩니다.
그때는 연약해서 그 약속이 그 언약이 이루어질지 몰랐지만 여러분의 삶의 과정들을
통해서 시련들의 여러 가지 단계들을 통해서 믿음이 어느 정도 견고하게 되면 주님께서
브니엘 영광의 주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만나 주시는 그런 언약을 이루어주기 위하여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얍복강가에서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내려놓고 승리자가 되어야 됩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주님께서 다 하신다 라는
그러한 얘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사야서 41장 14절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왜 지렁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제가 그저께 이틀 전에 산에 올라왔는데 지렁이 한 마리가 커다랗게 꿈툴 거리면서
저 숲속 가운데로 나무의 그늘을 이렇게 본능적으로 알아가지고 그곳으로 꿈틀 거리면서 가는데
이건 내 생각에 한 2시간 걸려도 못 갈 것 같아요. 그냥 작열하는 태양에 의해서 말라 비틀어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뭇가지로 이렇게 해서 옮겨서 숲속으로 던져준 기억이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 지렁이는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사람이 지나가다가요 모르고 밟으면 그냥 죽는 거예요.
알고 아! 징그러워 하면서 피해요 우리는 세상 앞에서 어둠과 세상의 주관자인 마귀가 다스리는 이 나라에서
혐오감이 될 수 있고 미워함이 될수 있고 핍박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빛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리를 소유했기 때문에 세상은 어두움은 우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어떻게던지 짓밟고 죽이려 하고 핍박하고 들이 덤비죠 공격하고 있죠
그 공격당하고 있는 것만큼 여러분이 진리의 사람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기뻐해야 됩니다.
핍박이라는 것은 지난번에 말씀 드린바 있는데. 그 원수 마귀가 해도! 해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지막으로 가해지는 그 공격이 핍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말씀에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과 핍박을 당하면 기뻐하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왜?마귀가 여러분들을 어찌할 수 없다 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핍박입니다.
마귀가 아이고~ 내가 졌다 하면서 그래도 그냥 물러날 수는 없기 때문에 목 이라도 쳐서
십자가에 라도 못 박아서 내가 핍박이라도 해서 옥에라도 가두어서 10년 20년 내가 복수해야지 라는
복수심을 갖고 들이 덤비는 것이 핍박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핍박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해 주는
증거의 표입니다. 인침받는 사건입니다 . 그것이 할렐루야! 기뻐하세요 핍박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에요.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그 핍박이 옵니까 아니에요. 주님의 뜻대로만 사는 자 하나님의 계명 대로만 사는 자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자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오는 가족들에게, 남편들에게, 자식들에게, 지인들에게,
친척들에게 가까이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오는 것이 핍박이에요.
앞으로 여러분들 믿는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죽일 것입니다.
핍박의 때가 오면은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가장 가까운 가롯 유다를 통해서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잖아요.
믿고 있지만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 안에 속하지 않은자들 진리를 안다고 하지만
진리대로 살지 않은 자들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오해을 받고 고소함을 당할 것입니다.
그때가 올 때 여러분들은 이 야곱의 경험을 반드시 경험해야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야곱이 마지막에 깨달은 것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이 말씀을 깨달았어요. 아 지령이 같은 너 야곱아 아무것도 아니 그전에는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뜻대로
해서 이룬 것이 많았습니다.
장자권도 팥죽 한 그릇으로 거짓말로 얻었습니다.
염소털로 가장을 해서 음성도 아버지 나 에서 입니다
거짓말로 아버지의 축복 기도 하늘의 기도도 받아냈습니다.
옳지 않는 방법으로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데 그 일을 반드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데 그런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또 삼촌 집에서도 그 치던 양과 짐승 때도 그렇게 아주 신풍나무와 살구나무, 버드나무를 앞에 가까이 물을 마실 때
알록달록한 것을 보이게 하고 그 힘세고 좋고 아주 그런 것은 하얀 것과 검은 것을 교미시킴으로 말미암아 알록달록
점백이가 나오도록 했어요 그래서 수많은 재물을 얻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했었던 자기의 그 술수들이 간교함들이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걸 기억하셔야 돼요
여러분이 잘하고 있는 재능들 그리고 세상으로 아 !이건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재능들이야 라고 하는
그것이 어쩌면은 마귀에게 당하는 걸림돌이 될수 있어요 조심해야 됩니다.
어떤 것은 유익하게 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자기가 과거에 지은 조그마한 죄의 부분이 아킬레스건이 되어서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마귀의 속성이잖아요
그 문제를 반드시 뿌리째 뽑아야 돼요 아까 뽕나무 얘기 했죠
옮겨질 거 얘기했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너 이름이 무엇이냐
예 제 이름은 간교한자 술수쟁이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 앞에 그 자기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죄의 문제를 다 내 놓아야 돼요
그리고 주님께서 그것을 도말해서 제거해 주셔야만 됩니다.
그러할 때 아! 주님 내가 이 죽음을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라고 벌레 같은 지렁이 같은 자가 되어서
주님께 자신을 내어보일 때 주님께서 그 지렁이 같은 자를 옮겨서 어떻게 말씀을 하시죠?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되었지 그전에 네가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거짓과 술수를 써서
세상을 네 마음대로 주물렀지 근데 지금 네가 나에게 다 고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나에게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되었지 그것도 괜찮아 전능한 내가 너를 도울 것이기 때문에 나 여호가 말하는데 내가 이제부터 너를 도울 것이야 이 얘기는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이제 도울 것이다.
내가 이제 너희를 도울 것리라고 얘기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세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얘기하신 분은 바로 야곱에게 말씀 하셨던 예수님이세요.
내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것만 여러분이 알면 됩니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무능하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름발이 불구자
이제는 정말 볼품도 없고 그냥 때리면 때리는 대로 빼앗으면 빼앗기는 대로 욕하면 욕하는 대로 그 당하시는
예수님 그러나 그분은 승리자의 진정한 왕이세요. 그렇게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라면서 오늘의 교제의 말씀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