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출한 산세와 산봉우리들을 자랑하는 도봉은 가을 맞이 채비로 분주하였다.
기실, 지난 여름은 무지막지한 폭염에 산을 찾기가 망설여졌던 터.
그간의 그리움과 갈증을 풀고자 가을 마중 원도봉 환종주에 나섰다.
들머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 된 망월사 초입에서,
포대능선에 올라, 원도봉계곡으로 떨어지는 환종주 코스다.
산문 초입, 산이 안부를 묻는다.
차분한 계곡엔 꽃며느리밥풀이 화사한 치장으로 행려의 객을 맞는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다.
중생교와 극락교를 지나자 "다리미 바위"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윽고 망월사(望月寺) 담장. 수목들도 부지런히 가을 채비 중이다.
경네는 속세 너머의 세상이 펼쳐진다. 이 망월사는 도봉의 암봉들에 싸여 있다. 토끼 형상의 암봉이 달을 본다(望月)하여, 절명이 유래한다.
경내엔 토종감으로 불리는 '속솔이 감'이 노랗게 익어 간다. 저 감을 처음 본 곳이 통영 사량도 지리산자락인데, 그 당도가 솔찮았다.
원도봉의 환종주는 시작부터 거칠고 울퉁불통한 산이 벌떡 일어난다. 산길이 만만찮음을 일러준다.
숨이 거칠어 지고 땀이 뚝뚝 떨어진다.
잠시 한 숨 돌리며 맞은편 수락산과 눈 인사를 건넨다. 의정부시가 도봉과 수락 사이 남북으로 긴 둥지를 틀고 있다.
다시 거친 숨 몰아 쉴 쯤 해골바위가 나타난다. 이 해골바위는 북한산국립공원 내 3기가 있다.
저만치 볕 좋은 망월사의 터(地)가 안온하다. 문 걸고 면벽 수행하기엔 그만인 것 같다.
포대능선 상단부는 가을 채색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곳 바위 틈 새 장대한 기골을 키우는 소나무가 범상치 않다.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다시 가파른 오름길, 저멀리 사패산과 사패능선에도 가을이 조곤조곤 내린다.
상단부 길목엔 적색 가을빛이 완연하다.
이윽고 포대능선에 이른다.
하늘 향해 우뚝 솟은 암봉들이 줄줄이 일어선다.
두 발로 힘들게 오르지 않았드라면 마주하지 못했을 수려한 풍광들이 거침없이 펼쳐지면서 아름답고 호쾌하게 다가 선다.
이곳 포대능선(砲隊稜線)의 유래는 예전에 군사시설인 대공포진지가 있어서 그 이름이 전해진다.
여기서 Y계곡으로 향하면 주봉에 이르고, 반대 방향은 사패능선과 사패산, 범골, 회룡역, 송추계곡으로 떨어진다.
포대능선을 따라 Y계곡 방향으로 내려선다.
가을 전령사 구절초가 해맑게 웃으며 행려의 옷깃을 당긴다. 어찌 그냥 지냐치랴. 아름다운 꽃의 양감에 취해 한참을 함께 한다.
그곳 측면 바위에 가경성인-달비성각(嘉慶成寅-達比星閣) 문구가 음각되어 있다. "즐겁고 경사로움이 성대하면......," 허나, 뒤 구절 뜻 풀이가 난해하다.
낮 12시 반을 지나는 시각, 출출했다. 너럭바위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그 자리에 누워 가을 하늘을 본다. 등으로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의 나른함과 편안함에 그만 이내 잠이 든 듯......,
얼마나 잤을까. 부스스 깨어 보니 몸과 마음이 갈바람처럼 가벼웠다.
하산 채비를 하자. 구절초가 아쉬워 한다. 가까이 다가가 '다시 오겠노라고.....,' 작별을 한다.
숨가뿐 도시의 지친 시간들이 쉬어가는 가을 산능에서, 모처럼 환한 웃음 한자락 남기며 하산길에 든다.
원도봉 환종주길에서. 2014.10월 어느 날, 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