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칠십 이레 이스라엘 형벌의 역사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1장 19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9월 22일 주일 오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우리는 매주 <요한 계시록>을 공부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1장 19절 말씀입니다.
19절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칠십 이레 <이스라엘> 형벌의 역사
6. <이스라엘> 형벌의 역사
1) 무화과나무의 비유
<마태복음> 21장 19절 말씀에
19절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가복음> 11장 13절-14절. 20절-21절 말씀에
13절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절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20절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절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본문은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하루를 주무신 예수님께서
다음날 새벽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다가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잎만 무성함을 보고 나무를 향하여 저주하시니 그 나무가
곧 말라죽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기록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님에도 열매를 요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왜 사람도 아닌 식물에게 저주를 내리셨을까?
식물을 향하여 저주하신 예수의 사역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사역과 너무나 판이하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은 모형 적이요 비유적임을 알아야 한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는 없이 잎만 무성함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이 신앙의 겉모습만 풍성할 뿐 신앙의 열매가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이다.
(1)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2) 길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의 사명을 의미한다.
(3) 잎사귀는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는 조건을 상징한다.
(4) 무성함은 율법의 형식만 무성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5) 열매 없는 나무는 무성한 형식으로 채워진
텅 빈 믿음의 그림자를 상징한다.
(6) 뿌리째 마름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한 완전한 멸망을 상징한다.
(7) 영원토록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영혼 구원의 사명이 이방인에게 주어지고 박탈당함을 상징한다.
2) 완전한 멸망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미 주전 600여 년 전 <다니엘>을 통하여
예언되었으며 주후 70년 <로마>에 의하여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으나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전례를 남겼다.
거듭하는 실수를 계속하자 예수의 음성에 기우리지 않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이 또 다시 처참한 멸망을 당하였다.
<마태복음> 23장 37절-38절 말씀에
37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절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3)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다.
<누가복음> 19장 41절-44절 말씀에
41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절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절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절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디도>장군은 야간도주하는 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 밖에서 성의 높이만큼 토성을 쌓았다. 성에 들어간 <로마>병사들은
<이스라엘> 자녀들을 잡히는 대로 백성이 보는 앞에서 성 꼭대기에서
밖으로 던져 죽였다.
금붙이를 삼켜 탈출하려던 이천 여명의 <유대인>들을 붙잡아 배를 갈라
꺼냈을 뿐 아니라 땅 속에 숨겨놓은 금을 찾기 위해 건물의 성터를
파헤쳤으며. 화재로 금이 녹아 돌 사이로 스며들자 그것을 캐내기 위해
완전히 파헤쳐져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았다.
4) 이방인에게 짓밟힘
<누가복음> 21장 24절 말씀에
24절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방인에게 짓밟힌 <예루살렘>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주전 63 - 주후 395 : <로마>제국
(2) 주후 395 –주후 638 : <동. 로마>제국
(3) 주후 614 –주후 635 : <페르시아>제국
(4) 주후 635 –주후 1.072 : <아랍>국가
(5) 주후 1.072-1.099 : <터키>국가
(6) 주후 1.099 –1.221 : <십자군>
(7) 주후 1.221 – 1.517 : <이집트>
(8) 주후 1.517 – 1.917 : <오트만> <터키>
(9) 주후 1.917 – 1.948 : <영국>
(10) 주후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독립
5) 노예로 팔림
<신명기> 28장 68절 말씀에
68절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전에 네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이스라엘>에게는 <출애굽>이 민족의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면
<애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민족의 죽음을 의미한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징계의 회초리가 내린다.
<열왕기 하> 17장 3절-6절 말씀에
3절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4절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5절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6절 <호세아> 제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열왕기 하> 25장 1절-26절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의 멸망. 성전 붕괴. <유다>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광산으로 보내졌으며.
건장한 장정들은 <로마>의 투기장으로 17세 이하는 노예로 팔려간
숫자가 9만 7천이나 되었다.
70년 <로마>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망한 자는
110만 명이었다.(요세푸스 제 2권. 유대전쟁사 Ⅱ)
6) 피를 흘릴 것이 예언되었다.
<마태복음> 23장 35절 말씀에 보면
35절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태복음> 27장 24절-25절 말씀에 보면
24절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절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유월절> 행사를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을
<디도> 장군은 하루에 5백 명씩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죽였다.
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6백만 명을 독가스 실의 연기로
사라지도록 하였다.
7) 네 자녀를 위해 울라.
<누가복음> 23장 28절-30절 말씀에 보면
28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절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절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본문은 두 가지 의미로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죄 많고 저주 받은 인간이 동정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둘째.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왜냐하면 전대미문의 불행한 사건이
<유대인>들의 앞날에 전개되기 때문이다.
푸른 나무가 불에 탄다는 것이 이상하듯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순리적으로 역행함이요
하나님 아버지께 죄를 범하여 진노의 심판에 던져질
마른나무 같은 너희들이 어떻겠느냐?
따라서 본문은 주님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 여인들에게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우는 것이 훨씬 위급한 상황임을 깨우쳐주는
권고의 말씀이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군대의 포위로 말미암아 기근이 심했다.
어머니들이 품안의 자녀들이 여위어 가는데도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한 조각의 빵조차 자식의 입 속에서 빼앗아 먹는 것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요단강> 건너편에 살았던 <마리아>라는 여인은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려 왔다가 포위되었다. 기근이 극심 하자
자기의 아들을 향하여 ‘오 불쌍한 아가야 전쟁과 기근과 내란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너를 보호하겠니? 그러나 노예 신분과 배고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강도들 이란다.
자 아가야. 이리 와서 내 음식이 되어다오.
그래서 강도들에게는 복수의 분노를 보여주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의 재난이 얼마나 극심하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 꺼리가 되어다오.’라며 아들을 죽여
몸을 구운 다음 반은 먹고 반은 싸서 감추어 놓았다.
음식 냄새를 맡고 침입한 강도들로부터 협박을 받고 뜯어먹다 남긴
아들의 시체를 넘겨주니 강도들이 너무나도 끔직한 광경을 보고
공포로 몸을 떨면서 떠나가 버렸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6권 3장 p 269-271)
8) 세계의 포로가 된다.
<누가복음> 21장 24절 말씀에 보면
24절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신명기> 28장 64절-68절 말씀에 보면
64절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65절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네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리니
66절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67절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이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68절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전에 네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