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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8
살면서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프로야구처럼 바늘구멍을 통과한 선수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무대에서는 그리 흔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 즉 동명이인 선수들은 언제나 관심을 모은다. 물론 당사자들은 불편할 때도 많다. 자신에 대한 기사를 한꺼번에 검색하려 해도, 동명이인 선수의 기사가 군데군데 섞여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상대 선수의 프로필이 자신의 것보다 더 먼저, 더 크게 표출되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길도 없다.
게다가 두 선수가 같은 팀에 몸담고 있으면 주변인들도 번거로워진다. 한 명의 이름을 불렀는데 두 명이 돌아보고, 훈련 스케줄 하나를 짜더라도 별도의 표기를 해줘야 한다. 한때 “같은 이름을 쓰는 선수는 한 팀에서 뛰지 못하도록 규약을 바꿔야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지어준 소중한 이름을 이유 없이 바꾸라고 주문할 수도 없는 일. 올해 KBO에 등록된 629명의 보류선수 가운데 총 28명의 선수들이 이렇게 동명이인의 운명을 함께하고 있다.
# 큰 근식&작은 근식, 라뱅&작뱅
올 시즌 동명이인으로 이름을 올린 선수들은 KIA 투수 윤석민과 넥센 내야수 윤석민, 롯데 투수 정대현과 kt 투수 정대현, 한화 외야수 김태완과 삼성 내야수 김태완, 한화 투수 이태양과 NC 투수 이태양, 삼성 투수 이영욱과 같은 팀 외야수 이영욱, 롯데 내야수 박종윤과 넥센 투수 박종윤, 롯데 투수 허준혁과 두산 투수 허준혁 등이 대표적이다.
▲ 넥센의 타자 윤석민(왼쪽)과 KIA의 투수 윤석민.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선수층이 얇아 선수들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화젯거리였다. 동명이인의 원조는 1982년 OB 유니폼을 함께 입었던 두 명의 이근식(李根植)이었는데, 이들의 이름은 한자까지 똑같았다. 그래서 나이순으로 ‘큰’과 ‘작은’을 붙여 구분했다. 동명이인 선수가 한 팀에서 같이 뛸 때 주로 쓰는 분류법이다. 공주고 출신의 큰 근식은 첫해 20경기에 출장해 27타수 5안타(타율 0.185)의 성적을 남긴 뒤 은퇴했고, 한양대 출신의 작은 근식은 1986년까지 1군 무대에서 뛰었다.
▲ 롯데 정대현, kt 정대현
현재 가장 유명한 동일 팀 동명이인 듀오는 단연 LG의 ‘이병규들’이다. 둘은 같은 왼손타자에 포지션도 외야수다. 등번호가 9번인 1974년생 이병규가 ‘큰 병규’, 등번호 7번의 1983년생 이병규가 ‘작은 병규’로 불리는 이유다. 큰 병규가 일본 주니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작은 이병규가 본격적으로 1군에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좀 더 확실한 구분법도 필요해졌다. LG는 두 선수가 동시에 선발 출장하는 날에는 전광판에 적힌 이들의 이름 앞에 9와 7을 따로 표기해 등번호로 구분하는 방법을 택했다.
# 김정수와 김재현, 동명이인 ‘신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1군에서 한 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들을 기준으로 삼으면, ‘김정수’라는 이름이 여덟 명으로 가장 많았다. 역대 1호 김정수는 1982년 롯데 원년 멤버로 출발해 1986년 청보에서 은퇴한 왼손타자다. 또 국가대표를 거쳤지만 1985년 교통사고로 작고한 MBC 투수 김정수, 해태 우승 신화의 주역이었던 ‘까치’ 투수 김정수, 삼성 류중일 감독과 1986년 입단 동기인 삼성 김정수 운영팀 파트장이 1980년대의 ‘김정수들’이다. 쌍방울에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뛴 김정수, KIA에서 2007년 1군 3경기에 나선 뒤 방출됐던 왼손타자 김정수 등도 이 안에 포함됐다.
‘김재현’ 역시 김정수만큼 프로야구에 자주 ‘출몰’한 이름이다. 김정수가 과거에 유독 자주 보였던 이름이라면, 김재현은 현재까지 위용이 여전하다. 역대 가장 유명한 김재현은 LG와 SK를 거치면서 ‘캐넌히터’로 이름을 떨친 뒤 현재 한화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전광석화 같은 배트 스피드로 유명했던 그였지만, 현역 시절 같은 이름을 가진 왼손 투수에게는 유독 약했다. 바로 그 투수, 김재현은 1998년 한화에 입단한 뒤 2005년 LG로 트레이드됐다가 다섯 시즌 만에 방출됐고, 2010년 다시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니폼을 벗었다.
현역 선수 가운데에도 무려 세 명의 김재현이 있다. SK 외야수, 삼성 내야수, 넥센 포수다. 셋 다 아직 주전은 아니지만 팀의 미래를 이끌어갈 중요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박건우라는 이름도 세 명이었지만, 그 가운데 두 명이 지난해 말 방출돼 올해는 두산 외야수 박건우만 남았다.
# 동명이인이 잘 나가면 설움도
야구선수에게 자신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다. 그런데 이름이 같은 선수가 자신보다 더 좋은 커리어를 쌓고 있다면, 게다가 상대가 스타급 선수라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진다. 때로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생기기 마련이다. 넥센 내야수 윤석민은 두산에서 뛰던 2007년 상무 입대를 추진했다가 좌절을 경험했다. KBO가 상무에 두산 윤석민이 아닌 KIA 투수 윤석민의 서류를 제출한 탓이다. 둘은 이름뿐만 아니라 경기도 구리 출신에 구리초등학교·인창중학교 동문이라는 공통점까지 가졌다. 착오를 일으킨 KBO가 뒤늦게 서류를 정정해서 보냈지만 이미 입대 기한이 지난 뒤. 윤석민은 결국 아쉬움을 곱씹으며 이듬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해야 했다.
▲ 한화 김태균과 삼성 김태균 코치.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삼성 김태균 수비코치는 한화 간판타자 김태균보다 열한 살이 더 많지만, ‘원조 김태균’이라는 이름표는 후배에게 양보해야 했다. 김 코치는 “현역 시절 코치들과 선배들이 오히려 나를 ‘짝퉁 김태균’으로 불렀다”며 울상을 지은 적도 있다. 삼성 투수 김기태 역시 웬만큼 날고 기지 않는 이상 왕년의 명타자였던 KIA 김기태 감독의 명성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kt 정대현은 인터뷰만 했다 하면 이름이 같은 롯데 정대현과 관련된 질문을 단골로 받아야 했다.
삼성 이승엽이 일본 요미우리에서 뛰던 2006년 두산에 이승엽이라는 이름의 외야수가 입단해 눈길을 모은 적이 있다. 그 이승엽은 대학 시절 소개팅에서 “야구선수이고, 이름은 이승엽이다”라고 소개했다가 상대 여성이 “당신이 이승엽이면 나는 김희선이다”라고 받아친 해프닝도 겪었다. 결국 주민등록증을 내보인 뒤에야 진짜 이승엽이라는 이름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 동명이인 기록 구분은 어떻게
그렇다면 ‘기록의 스포츠’인 야구에서 동명이인 선수들의 성적은 어떻게 분류될까. KBO 기록원들은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공식 기록지에 여전히 한글이 아닌 한자로 이름을 적어 넣고 있다. 같은 팀, 같은 포지션, 같은 이름의 선수가 한자까지 같으면 이름 뒤에 등번호를 써서 다시 구분한다.
다행히 LG의 두 이병규는 한자가 다르다. 롯데 우완투수 허준혁(許埈赫)과 두산 좌완투수 허준혁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었는데, 당시 둘 다 한자까지 똑같아 등번호를 뒤에 꼭 붙였다.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그들을 ‘큰 준혁’과 ‘작은 준혁’ 대신 ‘우준혁’과 ‘좌준혁’으로 불렀다. 공교롭게도 후배인 좌완 허준혁의 키가 더 컸던 게 그 이유였다. 수작업이 아닌 전산으로 기록을 입력할 때는 오히려 작업이 간단하다. 선수 이름별로 코드를 넣어 통계를 내기 때문이다.
배영은 /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요신문 제1211호]
개명 선수 열전
롯데 ‘작명소 문지방 닳겠네’
▲ 롯데 손아섭의 개명 전 이름은 ‘손광민’이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롯데 손아섭은 지난 2007년 ‘손광민’이라는 이름으로 입단했다. ‘아섭’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살게 된 건 2009시즌을 앞둔 시점부터. 어머니가 “야구 인생이 더 잘 풀렸으면 좋겠다”며 개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개명 첫 해인 2009년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당시 손아섭은 “작명소에서 이름을 바꾼 첫 해에는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두 번째 해부터 잘 될 것이라고 해서 내년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듬해인 2010년 손아섭은 거짓말처럼 풀타임을 뛰고 타율 3할을 넘기면서 롯데의 간판타자로 새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롯데에는 개명 바람이 일었다. 한때 ‘개명 자이언츠’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롯데 관계자가 “올해 시범경기 때는 선발 라인업 아홉 명 가운데 여섯 명이 개명 선수였던 적도 있다”고 귀띔했을 정도다. 그동안 KBO에 개명 신청을 한 선수는 총 34명인데, 이 가운데 9명이 롯데 시절 이름을 바꿨거나 현재 롯데 소속이다. 박준서(개명 전 박남섭), 박종윤(박승종), 문규현(문재화), 이우민(이승화)처럼 쟁쟁한 선수들이 손아섭이 찾았던 작명소에서 새 이름을 얻었다. 황성용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외야수 황동채는 2013년 7월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를 방문했다가 그 자리에서 마음이 동해 자신의 이름까지 한꺼번에 바꾼 케이스다.
이뿐만 아니다. 롯데 심수창도 숨겨진 ‘개명 선수’다. 2013시즌이 끝난 뒤 한글은 그대로 놔두고 ‘창’의 한자만 ‘밝을 창(昶)’에서 ‘창성할 창(昌)’으로 바꿨다. 오랜 침체를 털고 올해 1군에서 자리를 잡은 심수창에게 동료들은 ‘수’의 한자도 마저 바꾸라는 농담을 하고 있다.
프로야구 역대 첫 개명 선수도 롯데와 인연이 있다. 현재 롯데 전력분석원으로 있는 김바위다. 경찰야구단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롯데 외야수 전준우의 장인이기도 한 그의 원래 이름은 김용윤. 1982년 MBC 청룡 시절 같은 팀 주전 포수 김용운의 이름과 너무 비슷해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혼란을 사곤 했다. 결국 이듬해 팀을 위해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고, 기왕이면 ‘단단하게 오랫동안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바위’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김바위 이후 21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다른 개명 선수는 좀처럼 다시 나오지 않았다. 당시의 개명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2005년 대법원에서 “이름을 바꿀 권리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에야 선수들의 개명이 비교적 쉬워졌다. 그 사이 개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안병원 전 넥센 코치는 LG에서 현역으로 뛰던 시절 유독 부상에 많이 시달렸다. 뜻은 전혀 다른 이름이긴 하지만, 자꾸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게 마음에 걸렸다. 1999년 ‘성용’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시도했다. 제아무리 과격한 액션 연기에도 절대 다치지 않는 영화배우 ‘성룡’처럼 되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법원이 “개명 사유가 불충분하다”며 허가하지 않았다. 안 코치는 만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부상 후유증으로 은퇴했다.
물론 개명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손아섭이나 박종윤, SK 전유수(개명 전 전승윤) 같은 성공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 직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선수들도 몇몇 있다. kt 왼손투수 김주원은 2011년 SK에 ‘김민식’이라는 이름으로 입단했지만 “운동선수로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지인의 충고에 2013년 11월 15일 개명했다.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일주일이 지난 11월 22일에 kt가 김주원에게 2차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사용했다.
두산 외야수 장민석은 넥센 시절 장기영이라는 이름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빠른 발을 앞세워 늘 팀의 주요 전력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점점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2013년 스프링캠프에서는 얼굴에 공을 맞고 중도 귀국하는 불운도 겪었다. 그는 그해 말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 후 내야수 윤석민과 트레이드돼 두산으로 떠났다. 당시 ‘장민석’이라는 낯선 이름의 선수가 윤석민과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는 소식에 잠시 야구계가 술렁이기도 했다.
KIA 투수 김태영은 두산 시절이던 2012년 7월 ‘크게 영화로워진다’는 의미의 이름으로 개명 절차를 마쳤지만, 이듬해까지는 KBO 등록명인 ‘김상현’을 계속 사용했다. 그런데 KBO 등록명 변경 신청을 준비하던 2013년 말, KIA가 2차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새 팀에서 새 이름으로 새 출발하게 됐다.
/ 장시환, 에릭 해커
kt 장시환은 넥센 시절 늘 ‘공만 빠른 만년 유망주’로 유명한 투수였다. 그러나 2014시즌을 앞두고 남몰래 개명을 했고, 신생팀 kt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면서 팀의 핵심 투수로 성장했다. 이제 야구팬들은 장효훈보다 장시환이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가장 성공적인 개명 사례로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올해는 용병 투수들에게까지 개명 바람이 불었다. NC 에릭 해커는 지난해까지 2년간 ‘에릭’이라는 이름을 유니폼 뒤에 달았지만, 올해는 스스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싶다”며 구단에 자신의 성인 ‘해커’로 재등록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과는 대성공. NC의 완벽한 용병 에이스로 거듭났다. kt 용병타자 댄 블랙은 관례대로 자신의 성인 ‘블랙’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름이 너무 ‘어둡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구단이 KBO에 수정을 요청했다. 지금은 아예 성과 이름을 합친 ‘댄블랙’으로 등록돼 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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