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돌
김지은
파란시선 0109
2022년 10월 10일 발간
정가 10,000원
B6(128×208)
137쪽
ISBN 979-11-91897-34-0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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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소개
오늘은 변명이 어울리는 날씨야 당신이 사랑했던
[페이퍼돌]은 김지은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퍼즐」, 「코튼 캔디」, 「페이퍼돌」 등 58편의 시가 실려 있다. 김지은 시인은 2015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페이퍼돌]을 썼다.
“신이 왜 우리를 사랑해야 해? 라는 의문으로/이 글은 시작한다”는 전언처럼(「프로아나」), 김지은의 시에는 대답 받지 못할 의문들이 산재해 있다. 가령 “죽은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 묻고(「베이킹파우더」), “신도 배가 고플까” 궁금해하지만(「농람」), 명확한 답을 받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화자를 향해 의문을 던지는 이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는 누군가의 의문을 마주했을 때, “사람이니까 사람을 죽이고 싶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말은 통증을 이해해 본 적 없는 인간이나 할 수 있는 말”이라며 반박하기도 하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나는 단 한 번도 개나 고양이를 발로 찬 적이 없”다며 자신의 사람됨을 변명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답변하는 화자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함을 보여 준다(「밀웜」). 흩어지는 질문들은 비록 답은 들을 수 없지만, 세계를 한 겹 한 겹 벗겨 내며 동시에 존재하는 무수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는 세상을 파악할 때,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개중 어떤 것은 답하기 쉽고, 어떤 것은 왜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엉뚱하고, 어떤 것은 그저 답하기 어려워 질문을 얼버무리게 된다. 끝없이 질문하는 태도는 세계를 이루는 층위 중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 이해될 수 있는 것과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행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일은 결국 분명하게 누군가를 잘못 진단하는 일과 같다. 무자비하게 내려진 답들은 낱장의 세상들을 한데 뭉쳐 재단하고 이름을 붙이고 정의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옳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이상한 것이라고. 아이는 자라면서 물었던 것을 또 묻고, 들었던 답변을 또 듣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을 쉽게 체득하고, 그다지 알아 둘 필요가 없는 것을 쉽게 잊는다. “들숨과 날숨의 순서”처럼 자연스럽게 세상을 정의한다(「가스라이팅」). 하지만 그렇게 체득한 세계는 아이의 세계가 아니라, 부모의 세계다. 나만 볼 수 있는 나의 시야를 온전히 찾기 위해서는 알고 있었던 답변에 의심을 품어야 하고,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잃어야 한다(“들숨과 날숨의 순서를 잊었다 분명 나는 문제가 있어 조금씩 미쳐 가고 있거나 닳고 있는지도 몰라”, 「가스라이팅」).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푼 불안 속에서 사는 일은 위태로운 것이다. (이상 김정빈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이 시집을 읽으며 나는 우리가 헤쳐 나가야 했던 가시덤불을 떠올린다. 온갖 덫과 방해를 넘어 여기까지 온 자랑스러운 발걸음들을. 녹지 않는 자두맛 캔디를 입안에서 굴리며 책 속을 걷다 보면 이렇게 다정한 슬픔이라니, 기꺼이 품을 내주는 문장이라니.
말라 가는 소녀들과 그들을 다스리려는 모략과 기형을 전시하는 폭력이 범람하는 시대에, 아픈 이들을 홀로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연대의 마음을 읽는다. 이 시집이 가진 사랑스러움은 연약한 종이 인형에 조심스럽게 색색의 옷을 갈아입히는 마음에서 스며 나오고, “언젠가의 진심을 찾아내 오래,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는 기도에서 흘러넘친다(「공중정원」).
김지은의 시들은 가장 첨예한 현재의 지점들을 가리키면서도 공감과 “최대한의 위로”를 놓지 않는다(「타로」). 이 시집은 ‘있었다’와 ‘잊었다’ 사이에서 꽃잎처럼 아문 상처를 들여다보고, 정의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도 서로의 따듯한 바람 소리를 듣는 시간을 선사한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문득 구분되지 않을 때까지.
사랑했던 자리에서 무성한 마음들이 범람하는 지금, 우리는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처음이, 계속 오고 있다고” 속삭이는 이 시인을(「퍼즐」).
―이혜미(시인)
•― 시인의 말
오늘은 팔을 찾으러 다녀왔어
우리가 저녁마다 운동을 하던 공원
배드민턴을 치는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셔틀콕
떨어지기 위해 거기 있는 것
어디선가 모두 하고 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네가 하는 것을
보고 싶다
•― 저자 소개
김지은
1985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2015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페이퍼돌]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일인칭 종말
가스라이팅 – 11
후유증 – 12
파라노이아 – 14
토끼코크 – 16
침엽수림 – 18
밀웜 – 19
모방범 – 20
프릭쇼 – 22
공중정원 – 24
농람 – 26
베이킹파우더 – 28
부표 – 30
흰 밤 – 32
클로젯 – 34
퍼즐 – 36
타로 – 38
포비아 – 40
일인칭 종말 – 42
프로아나 – 44
제2부 다족류
낮은기분증후군 – 47
무인칭 – 48
손차양 – 50
퍼플 스모크 브람스 – 52
기문(氣門) – 54
드라이아이스 – 56
리틀 라이프 – 58
연인 – 60
캠핑 – 62
종이 빨대 – 64
서울, 서울 – 66
스타티스 – 68
로코코 양식으로 깎은 밤 – 70
이석증 – 72
야간 개장 – 74
네크로필리아 – 76
프릭쇼 – 78
간절기 – 80
제3부 무인 모텔
크렘 브륄레 – 83
압화 – 84
허밍 – 86
파과 – 88
아메링고 – 90
오마주 – 92
인공 – 94
스노우볼 – 96
역자 서문 – 98
코튼 캔디 – 100
키오스크 – 102
실버타운 – 104
올드타운 – 106
분실 – 108
페이퍼돌 – 109
개와 늑대의 시간 – 112
애드벌룬 – 114
나팔소라 – 116
사순절 – 118
코인라커 – 120
보트피플 – 122
해설 김정빈 유치와 안녕으로 당도한 해변 – 123
•― 시집 속의 시 세 편
퍼즐
처음을 영원히 기억하는 병을 줄게
나의 조각을 주우며 당신은 말했다
사 차선이 두 개면 많이 위험할까요
횡단을 기다리며 느리게 감기는 눈
그림자의 흔들림에 혈관은 좁아 들고
비가 오기 전의 냄새가 났다
나는 먼지를 읽을 수 있고
너의 굴곡과 닮은 나의 손금 위에서
잃어버린다
언젠가 완성되거나 흩어져 버릴
알약을 씹으면 경쾌한 소리가 나지만
머릿속은 무겁습니다
아무도 진단하지 못했던 너와 나의 상태에
유일한 진실은
서로가 서로의 증상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신다면
처음이, 계속 오고 있다고 ■
코튼 캔디
묻는 순간 선명해지는 대답이거나
입 밖에서 휘발되는 무게이기를 그러니
당신이 사랑했던 것은 이제 여기 없다
얼룩말은 거짓말
하면서 웃지라는 말과
파란색의 사슴, 도도새의 운명 같은 것들
가독성 없는 편지와
소나기가 지나간 숲의 길
삼 일쯤 앓고 난 뒤에 피우는
첫 담배의 향
고양이의 앞발, 새벽의 밀크티로는 부족했던
멸망의 기록은 어른의 몫으로 남겨 두고
나는 악몽에 젖어 깨어나는 밤
이마를 쓸어 주는 차가운 손이 될 것이다
후회하는 건 아닌데 후회 같은 기분으로
안녕,
오늘은 변명이 어울리는 날씨야
당신이 사랑했던 ■
페이퍼돌
주머니는 흔들리기 좋지
깊고 까만 구멍이구나
함부로 집어넣을 수 있는 깊이로구나
당신은 통조림과 생수로
까망의 무게가 늘어난다고 자신한다
나는 칠월의 자두면 충분하다고 변명한다
조금 더 끈적거리는 상상을 해 볼까
이웃집 여자가 지게차에 깔려 죽었어
머리통이 박살 났다는데
시속 사십 킬로로 부서진
그런 아홉 시를 손꼽아 기다리는 동안
저녁은 식었고 아무도 전화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주머니를 보고 있고
무엇을 넣을지 고르는 중이다
어떤 소식이 사람들에게 발음될까
말라붙은 혀를 펼치면 뉴스가 후드득 떨어진다
성장을 그만둔 과일은 낙하하고 으깨진다
살점들 흥건하고 붉게 끈적거린다
몇 그루의 나무를 잊어야 저렇게 거대해질까
자두로 가득한 주머니는 울룩불룩 자라난다
발로 걷어차고 싶다는 충동이
주머니 밖의 세계를 흔들고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기다려야지 가장 밑에 있는 자두부터 썩어 들어갈 수 있게
자두 하나 자두 둘 발끝이 짓이긴 자두가 흘리는
코가 얼얼하게 달고 단 냄새
당신 혹시 무언가 삼키지 않았어?
붉은 주머니 안으로 우리가 집어던진 것
그래. 오직 침뿐인 거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