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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경기도 파주 소재, 675M) 번개산행공지
감악산은
옛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하여
감악(紺岳),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렸다.
파주시 적성면에서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순해 보이지만
일단 정상(675m)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암봉과 낭떠러지가 도처에 널리 있다.
그래서
가평 화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
경기 5악"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고 한다.
감악산은
서울과 개성의 중간지점에 솟아 있으며
맑은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서울의 북한산, 동두천의 소요산이 보인다.
정상에는
향토유적 8호로 지정된 삼국시대 고비(古碑,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산 25번지,높이 170cm)가 서 있는데,
일명 '빗돌대왕비 또는 설인귀비'라고도 한다.
이 비석의 글자는 마멸되어 있는데,
그 생김새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하여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도 있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설인귀비라는 설도 있다.
정상 서쪽아래 산자락에는 범륜사 사찰과 운계폭포가 자리잡고 있으며,
장군봉 바로 아래에는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 굴도 있다.
6.25 때 치열한 격전지로서, 설마계곡 입구에 영국군 참전기념비가 서 있을 정도로
역사적로으로 전쟁의 아픔이 서린곳으로서 80년대 초까지도 등반이 금지되었었다.
'영산' 이라고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여들기도 하며,
봄 시산제를 지내기 위해 전국의 산악회에서 몰려들기도 한다.
▣ 산 행 지 : 경기도 파주 감악산(675m)
▣ 산행일시 : 2012년 08월 26일(일요일)
▣ 모임시간 : 06시 30분
▣ 모임장소 : 안양1동 청솔부동산 앞
▣ 참석인원 : 선착순(몇명에서 짤릴지 모름)
▣ 산행시간 : 3시간 30분(아주 여유롭게 점심시간 미포함)
▣ 교 통 편 : 자가용
▣ 특 징 : 산세가 험준한 산, 멀리 북한이 보인다. 한국100대명산
백두대간이 금강산을 향해 달리다가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것이 한북정맥이며
한북정맥 양주에서 갈라져 적성 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감악산이다.
감악산은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군 남면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675m 산으로
삼국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감박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고려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감악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 도성을 중심으로 북악, 송악, 관악, 심악 등과 함께
경기 오악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 산행코스 : 거북바위휴게소-병풍암-개구리바위-460봉-540안부-640봉-
임꺽정봉(676.3m)-장군봉(670m)-어름곱재-감악산 정상(675m)-까치봉(560m)-
460봉-440봉 쌍소나무-큰고개-묵은밭-숯가마터-법륜사-거북바위휴게소
(3시간 30분 소요,점심시간 미포함)
◆ 승용차로 갈때
서울외곽순환로→의정부IC→녹양사거리 3번 국도→양주시청사거리 98번 지방도→39번 지방도→
56번 지방도→371번 지방도→범륜사
들머리 주소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47-3
▲ 감악산신라고비 [ 紺岳山新羅古碑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비.
속칭 ‘빗돌대왕비’·‘설인귀사적비(薛仁貴事蹟碑)’라고도 한다.
경기도 양주시과 파주시 적성면, 연천군 금곡면의 세 군 행정구역에 걸쳐 있는
높이 675m의 감악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170㎝, 두께 15∼19㎝, 너비 77∼79㎝이며 허리부분의 너비는 70㎝이다.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잘라 표면을 곱게 다듬어 각자(刻字)한 것 같다.
지금의 개석(蓋石)은 후대의 것이지만,
개석을 부착할 수 있도록 비신 윗부분에 凸모양의 축을 이루고 있어,
본래부터 개석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현재 비문은 오랜 세월 동안 글자가 없어져 고증할 수 없는 이른바 몰자비(沒字碑)이다.
이 비를 신라고비로 추단하는 근거는,
① 비의 양식이 서울 북한산 정상에 세워져 있던 진흥왕순수비와 흡사하고,
② 『삼국사기』에 신라시대부터 고성(高城)의 상악(霜岳)·설악(雪岳), 북한산주(北漢山州)의
부아악(負兒岳)과 더불어 감악산이 매년 국가에서 소사(小祀)를 지냈던 명산으로 적혀 있는데,
여기에 세워진 비이기 때문이다.
③ 비가 세워진 일대에서 삼국시대의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있는 것도 방증이 된다.
감악산 고비로부터 북동으로 약 4.5㎞ 지점에 있는 칠중성(七重城)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삼국간의 혈투장이었고,
그 뒤 거란침입과 6·25남침 때 고랑포(高浪浦)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칠중성의 안산(案山 : 집터나 묘자리 맞은 편에 있는 산)인 감악산에
고려시대부터 여러 신을 모신 사당이 세워진 것은 군사적 요지이기 때문이며,
이 비를 당나라의 명장 설인귀의 사적에 부회(附會)시킨 속설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감악산이 차지하는 전략적인 위치와 이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역사상의 여러 사건,
비의 양식이나 크기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와 거의 같다 하여,
일부에서는 이 비를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문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아직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임꺽정굴
▲ 임꺽정봉(매봉재)
감악산에 위치한 봉우리로 부도골 북쪽에 있으며 생긴 모양이 매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얼굴바위
▲ 장군봉에서 바라본 임꺽정봉
▲ 숯가마터
이곳에 보이는 시설물(흔적)의 이름은 숯가마터이다.
감악산에는 이와 같은 숯가마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숯을 굽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흔적들이 감악산 곳곳에 남아 있다.
▲ 약수터, 까치봉 갈라지는 삼거리
▲ 묵은밭
▲ 범륜사 부도
부도: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
.
▲ 범륜사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積城面) 감악산에 있는 절.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감악산에는
원래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절은 1970년에 옛 운계사터에 다시 세운 것이다.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이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1799년(정조 23)에 편찬한 《범우고》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있는 건물은
대웅전과 강원, 요사채 등이고 요사채 옆에는 조선 후기의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조선시대의 탑재들을 조립하여 근래에 조성한 삼층석탑이 있다.
▲ 백옥석 관음상
▲ 십이지상
방위나 시간을 나타내며
십간과 조합해서 세시(歲時)나 인생사의 변화운용에 해당하는 십이지에 배당된 동물.
즉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인데..
서아시아의 점성술로서 발달한 십이궁(황도 12궁)이 인도에서 불교 등을 통해서
중국으로 전래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후한의 왕충이 쓴 『논형』에서는 오행상극설에 따라서 십이지상을 설명하고 있으며
후에는 사람의 생년을 동물명으로 말하게 되었다.
당대 이후에는 시각적인 표현이 시도되어서,
묘지명판의 사주에 조각하거나 묘에 넣은 도제의 용기에 십이지상이 표현되고 있다.
이 경우 손에 홀을 쥔 문관의 복장을 입은 인신(人身)에
두부만을 십이의 동물로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전파되었으며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이나 귀족의 분구에 세워진 호석에 십이지상이 부조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갑옷을 걸치고 칼을 손에 쥔 무인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이 점이 당과 다르다.
일본에서는 원명천황릉에 있는 수수인신(獸首人身)의 석각을 십이지상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 풀때기는 원숭이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