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24.
지난 겨울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나이가 지긋한 이 분은 수십 년째 영구동력장치를 만들고 있었는데, 타워크레인에 버금가는 엄청난 크기였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임에도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완성된다”며 낮 내내 수십 미터 높이의 작업장에 머물렀다.
실은 취미 삼아 거대한 조형물을 만드는 것일 뿐이라면 좋겠지만(그러기에도 너무 고생스럽고 위험하지만) 진정 영구동력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인생 후반기를 쏟아부은 것이라면 이제라도 열역학 교재를 보고 뜻을 접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립된 계에서 총 내부에너지는 일정하다’는 그 유명한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영구동력장치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력장치가 일을 한다는 건 에너지가 빠져나간다는 말이고 따라서 최소한 그만큼의 에너지가 들어와야 계속 작동할 수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투입된 에너지의 60%는 폐열로 흩어져
실제 동력장치를 보면 100% 효율도 불가능한 얘기다. 투입된 에너지의 일부만이 일로 바뀌고 나머지는 주위로 흩어진다(주로 폐열의 형태로). 이 역시 열역학 이론으로 설명이 되는데, 가장 유명한 예가 ‘카르노 사이클(Carnot cycle)’ 아닐까.
프랑스의 공학자 사디 카르노는 불과 28세인 1824년 이상적인 열기관을 만드는 연구를 한 결과 카르노 사이클 이론을 내놓았다. 이 과정은 다소 복잡한데(이공계 몇몇 학과에서 자세히 배운다) 결론을 말하면 열기관이 작동하는 온도 범위에 따라 효율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저온이 절대온도 0도가 돼야 열효율이 100%가 되므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카르노 사이클 이론을 자동차 엔진에 적용해보자. 실린더 내부로 주입된 연료가 폭발하면서 나오는 열에너지가 피스톤을 밀어 운동에너지로 전환되고 왕복운동으로 피스톤이 원상태로 돌아온 뒤 같은 과정이 반복되며 차가 움직인다. 이때 고온이 727도, 저온이 427도라면 열효율은 30%다. 참고로 가솔린 엔진의 열효율은 25% 수준이다.
따라서 엔진의 효율을 높이려면 고열원의 온도를 더 높이거나 저열원의 온도를 더 낮춰야 한다. 이는 엔진의 구조와 연료의 조성, 냉각 시스템에 따라 결정되므로 한계가 있다. 아무튼 엔진의 저온은 주위 온도에 비해 훨씬 높아 열이 주위로 흩어진다. 막 주차한 차의 보넷을 만지면 뜨거운 이유다. 우리는 이를 ‘폐열’이라고 부른다.
폐열은 자동차 엔진뿐 아니라 발전소 터빈, 공장 설비, 가전제품 등 사실상 모든 장치가 작동할 때 발생한다. 실제 우리가 소모하는 에너지의 61%가 폐열로 흩어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따라서 폐열의 일부라도 재활용할 수 있다면 에너지 효율을 높여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폐열 재활용의 한 예로 열전발전기를 들 수 있다. 열전발전기란 폐열을 내는 고온물체와 저온물체 사이에 반도체를 배치해 전압을 유도하는 장치다. 이는 열전효과의 한 측면으로, 다른 하나는 전류를 흘릴 때 온도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으로 고체 냉각장치를 만들 수 있다.
열광전지는 나와 있지만
▲ 코로나19 사태로 곳곳에 설치된 열화상카메라는 얼굴에서 나오는 흑체복사의 적외선 스펙트럼 패턴을 분석해 체온을 영상의 색으로 표현하는 장치다. / 연합뉴스 제공
열은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로 흐르고 따라서 어떤 물체를 진공에 띄워놓으면 열이 갇혀 온도가 유지될 것 같다. 그러나 온도가 낮은 물체(공기 입자 포함)와 접촉하지 않더라도 열이 빛의 형태로 빠져나가며 고온의 물체가 식는다. 빛(파동의 측면에서는 전자기파, 입자의 측면에서는 광자(빛알갱이)라고 부른다)은 파장에 반비례하는 에너지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복사냉각이라고 부른다.
모든 물체는 표면 온도에 따라 파장의 분포와 강도가 정해진 빛을 내놓는다. 표면 온도가 높을수록 광자의 에너지가 큰 짧은 파장의 빛이 더 많이 나온다. ‘흑체복사’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의 열적 교란으로 빛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은 표면 온도가 6000도인 흑체로, 복사 스펙트럼을 보면 수백㎚(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 파장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우리 눈은 400~700㎚인 전자기파를 볼 수 있게 진화했기 때문에 이 영역을 빛 또는 가시광선이라고 부른다.
우리 몸도 표면 온도가 30도를 약간 상회하는 흑체로, 주로 적외선을 내놓는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곳곳에 열화상카메라가 설치돼 있는데, 얼굴의 흑체복사 스펙트럼을 분석해 체온을 측정하는 장치다. 열이 없는 사람의 이마 온도는 34도 내외인데, 열이 있어 이보다 높으면 적외선 스펙트럼 패턴이 달라(그래프가 짧은 파장 범위에서 살짝 올라간다) 모니터에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설비나 기계에서 나오는 폐열은 대부분 100~400도 범위로 흑체복사 스펙트럼의 피크 범위가 파장 4~8㎛(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 분의 1m)인 적외선이다(인체 복사의 경우 피크 파장은 9㎛).
엄밀히 말하면 태양광발전도 복사에너지 형태로 흩어지는 폐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다만 태양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표면의 열기(6000도)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태양이라는 흑체가 내보내는 가시광선 영역의 광자가 전지의 p형 반도체에 흡수되면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로 들떠 인접한 n형 반도체로 이동하고 그 결과 전압이 생기는 원리로, 이를 ‘열광전지’라고 부른다.
원리적으로는 우리 몸에서 내보내는 적외선 영역의 광자로도 열광전지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광자의 에너지가 작고 밀도도 낮아 얻는 전력이 미미하겠지만. 폐열의 범위인 100~400도의 흑체복사를 이용한 열광전지는 이보다 낫겠지만 역시 태양광발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적외선 광자가 반도체 전자 이동시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달 20일 미국 샌디아국립연구소의 과학자들이 기발한 장치를 고안해 폐열의 적외선 복사로 전기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어려운 물리이론이라 이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원리는 이렇다.
결정실리콘태양전지(열광전지)와는 달리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가 맞닿아있지 않고 그사이에 금속(알루미늄) 게이트가 존재하는데 역시 절연체(이산화규소)로 분리돼 있다. 250~400도인 열원에서 폐열 복사가 나오면 적외선 광자가 금속과 반도체 사이 공간(두께 3~4㎚인 이산화규소)에 모인다.
집적된 광자는 '포논공명'라는 현상을 통해 인접 p형 반도체의 전자를 들뜨게 해 금속으로 이동시키고 금속의 전자가 다시 n형 반도체로 이동해 전압을 발생시킨다. 여러 조합으로 실험한 결과 350도 열원에서 나온 적외선으로 제곱센티미터 당 61마이크로와트의 최대 전력 밀도를 얻는 데 성공했다. 에너지변환 효율은 0.4%에 불과하지만 기존 열광전지 장치로 얻을 수 있는 값의 수십 배에 해당한다.
▲ 최근 미국의 과학자들은 250~400℃ 폐열에서 나오는 적외선으로 전기를 만드는 새로운 열광발전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열원(heat source)에서 나오는 적외선(IR)이 1㎝ 떨어진 절연체(silicon dioxide)에 도달한다. 오른쪽 클로즈업은 적외선 광자가 금속 게이트(aluminum)와 p형 반도체(p+ Si), n형 반도체 사이 틈에 모여 인접 p형 반도체의 전자를 들뜨게 해 금속 게이트로 이동시키고 다시 n형 반도체로 이동시켜 전압을 발생시키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 C. Bickel/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번에 개발한 열광발전 시스템이 기존 반도체 소재와 기술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폐열을 이용한 열전발전기와 결합한 시스템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