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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濟(거제) 南原(남원)梁氏(양씨) 兵部公派(병부공파)중 郡守公派(군수공파)의 處海(처해) 祖上任(조상임)의 先代(선대)와 後孫(후손)들의 生日(생일:태어나신 날)과 忌日(기일:돌아가신 날)를 참고로 밝혀둔다.
후손들이여 ! 이날만은 잊지 말고 추모 합시다.
이것만은 알고 넘어 갑시다. 음력 10월이 되면 時祭를 지냄니다. 5대조 이상의 선조님들을 함께 기억하며 墓所나 祠堂에서 追慕하는 마음으로 祭祀를 지냄니다. 이때 벌초도하고 무너진 곳도 손질합니다. 먼 친족과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정담도 나누고, 우의도 다짐니다. 직계든 방계든 누구나 참석 할수 있는 우리의 전통이자 동양의 美風良俗인 즉 아름답고 좋은 의젓한 풍속입니다.
2011년 11월 1일 2일 연미사를 봉헌하는 자리에 차린 미국 성토마스 성당의 茶禮床(차례상)
時祭(시제)란 ?
조상의 墳墓에 지내는 제사 또는 時祀(시사)라고도 한다. 선조 遠代(원대)의 분묘에 모여 행하게 되어 있는데, 상중에 있는 사람이나 부녀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름높은 원대의 선조묘에는 수많은 그 자손들이 모여들어 성대한 祭(제)가 행하여 진다. 이 제사의 비용은 대개 분묘 근방에 있는 土地[토지:祭田(제전)] 또는 位土(위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충당하며, 또 이토지는 그 일문 일족이 공유하여 宗契(종계) 또는 門契(문계)에서 이것을 관리한다.
양반 쌍놈의 구별이 엄격하였던 유교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의 慣行(관행)은 喪中(상중)에 있는 사람이나 부녀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는 규범을 내세우고 따랐지만, 근래에 와서는 이런 規範(규범)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조상숭배를 미신으로 취급하는 아주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일가도 있어 우리와 조상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곧 남의 조상이 됩니다. 그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며 현실입니다.
基督敎의 十誡命중에서도 다섯째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다. 우리의 육신은 전 세대가 낳아준 것이며, 우리는 전 세대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즉 유전자(DNA)부터, 우리가 오늘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전 세대의 덕택이다. 그리고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해 그 생활력을 키워주며, 생활영역을 마련해 주고, 건전한 정신적 유산을 물려줄 책임도 있다. 따라서 각 세대간의 상호 연대성은 강제적이고, 오해 하기 쉬운 순종한다는 말 보다 공경한다는 말로 표현되고 뒷 받침뒤어야 한다. 이 말은 부모와 조상의 중요한 지위와 위신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런데 서양에서 전래된 카톨릭에서 16세기에 갈라져 나온 기독교에서는 조상을 단순히 우상 숭배로 看做(간주)하지만 카톨릭 문화에서는 동양의 미풍양속 못지 않는 “위령의 날”은 “서양의 時祭”입니다. 한달 동안 돌아가신 모든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달이 있는데, 매년 그 달이 바로 11월달로 이 한달은 위령의 달로 정하고, 한달 내내 그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혹시라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천국을 가지 못한 조상님들의 영혼들을 위해서 자손된 도리로 기도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간 영혼들을 기억하며, 위령미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더 많은 영혼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라는 의무로 정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그대로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라는 가르침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때가 되면 누구나 하늘 나라로 갑니다. 그들과의 이별이 아쉬운 것은 애정 때문입니다. 그분들 역시 모두를 잊어버린 상태에서 천국에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의 가족들을 기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간다면 자식이나 후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식을 못되게 저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로 부모님을 우리가 어떻게 무관심하게 생각 할수가 있겠습니까? 무관심은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다.
子-曰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쫓는 사람은 살고, 거스리는 사람은 망한다]고, 說破했듯이 공자도 하늘의 存在를 시인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받아 주십니다. 우리가 조상의 이름 석자 모를 정도로 무관심한다면 선조님들께서도 우리들에게 무관심 할것이며, 그 얼마나 슬퍼 하시겠습니까? 혹자는 먹고 살기도 힘든데 조상의 이름 석자 알아 무슨 도움이 된다고 쓸 때 없는짓 하느냐고 비방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라고 특별히 재산모아 잘 산다고 생각 합니까? 부자나 가난뱅이나 똑 같이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은 꼭 같고, 누구든 죽음 앞에서는 肅然(숙연)해 지며, 空手來空手去입니다. 已往(이왕)에 참석한 조상님들의 英靈(영령)을 모신 時祭에 참석했으면, 至誠이면 感天이라는 속담데로 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습니다. 성인반열에 오르신 분 만이 통교의 대상은 아닙니다. 연옥 영혼들과 친교를 나눌수 있는 “위령의 날”이 있습니다. 11월 2일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앞서 간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도 기도해 주십니다. 각박한 현실에서 “행복과 기쁨”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돌아가신 선조님들의 生卒을 밝히면서 한분 한분 정성을 다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역사를 밝히는 이유는 이름 석자라도 알고 기도를 하든 제사를 지내던 간에 알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하는 일과 알고 하는 일은 다름니다. 가령 감옥에 조상이 계시다면 이름 석자도 모르고 私食을 보낸다면, 그 私食을 과연 누가 받아 먹겠습니까? 제사를 지낼 때 선조님들의 이름 석자도 모르고, 뜻도 모르고, 의미도 모른체 漠然(막연)하게 가 있다가 차린 음식만 축내고 올수는 없다고 생각 합니다.
참고 : 위령의 날 (라틴어: Commemoratio omnium Fidelium Defunctorum 콤메모라티오 옴니움 피델리움 데푼크토룸, 영어:All soul's day)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축일 중의 하나로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이기에 신앙인들만을 국한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관계없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억하는 날이 바로 위령의 날이다.11월 2일
이 기념일은 일 년에 한 번씩 위령의 날을 지키도록 명한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의 영향으로 998년부터 보편화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들은 이날 3번의 미사를 드릴 수 있으며, 이러한 특권은 위령의 날과 성탄절에만 허락되어있다.
따지자면 고조부님 세대가 9분, 증조부님 세대가 20분, 할아버님 세대가 56분이시고, 아버님 세대가 160분, 우리 세대가 231명이나 되지만, 우리 윗대는 그렇다치고라도 우리 세대 인물이 231명이나 되지만. 이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형제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에 무혈의 순교정신으로 이 역사를 밝힙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하느님 !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 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땅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 하며, 저희 죄를 용서 하시고, 악에서 구하시고, 돌아가신 모든 선조님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빕니다.
결론 : 어떤 사람이 자식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 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구약의 모세가 기록해 놓았다며 예수님께 질문(루카복음 20/27-40)하자. 죽은후 하늘나라는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이없다. 모든이가 천사처럼 사는, 사랑이 온전히 충만한 나라이기 때문이다고, 말씀 하셨다.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있다. 베를린 하늘을 지키는 다미엘과 카시엘의 두 천사 이야기다. 하느님의 전령으로 인간의 삶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도움을 주며 베를린 하늘을 지키던 천사들 중에 특별히 다미엘 천사는 인간의 사랑이 해보고 싶어졌다. 천사가 인간이 된 순간부터 천사는 영원성을 잃어 버리게 되고, 인간이 겪어야 할 유한성과 삶의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하지만, 다미엘 천사는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결국 다미엘은 천사로서 죽음을 선택하고, 한 인간으로 깨어 난다. 그는 천사의 영원성을 잃었지만 “인간의 사랑의 이름”으로 영원성을 되 찾게 된다. 이 영화가 던져주는 의미는 인간의 사랑은 그 자체로 천사와 같은 불멸의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은 지상에 살면서도 이미 천상의 천사의 삶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단 한 사람에게도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아가페” 사랑을 할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성을 사는 천사의 삶이다. 세상에서도 천사들처럼 하늘 나라처럼 사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내부모, 내형제, 내자식, 내조상님들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아가페”사랑은 왜 ? 못할까?
November 20th (wh) Our Lord Jesus Christ the King(Solemnity)
Orientation Today is the end of the church year. We hear about the second coming of the Lord Jesus. As the shepherd gathers his flock, Jesus gathers his covenanted people. His flock recognizes its ruler, and he chooses those who have been faithful, He leads his flock through the valley of death to share God's own life.
11월 20일 주일(백)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주간)
오늘전례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며, 그 분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백성이 되어 그분을 따릅니다.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을 섬기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 뵙도록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고 청하며 미사를 봉헌 합시다.
오늘(11/20/주일) 교회는 전례력이 끝나는 마지막 날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 이심을 선언한다. 예수님은 스스로 한번도 자신을 왕이라고 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한해의 마지막 날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 우리 “인생의 왕”이심을 고백 한다.
오늘 복음(마태오 25장46절)은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겠다면, 배부른이가 아니라 굶주리는 이를, 건강한 이가 아니라 병들고 약한 이를, 힘있고, 능력있는 이가 아니라 헐벗고, 목마른 이를 찾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왕이신 주님께서는 저 아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 되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을 섬기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이들를 위해 기도하며, 이들안에서 주님을 만나 뵙도록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고 청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가 섬기고, 따를 인생의 주인이 될수있는지? 돈과 재물,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 건강이나 세상의 명예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될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며, 주인이라는 뜻이다. 우리 왕이신 주님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죽음에서 되살아 나지 못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죽은이들 가운데서 되살아 나셨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되살아 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때는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이 모일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양들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세워 오른편의 양들에게는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이들아 ~ 와서 세상 창조때 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된 나라를 차지 하여라 ~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 받은 자들아 나에게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 할 것이다.
그 때는 ”한편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미리 생각하고 현재는 죽어 아무런 힘없는 조상님들을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은 가장 가까운 자손들 뿐이라는 현실을 잊지말고, 참여 합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는 죽으면 해명이나 변론의 기회가 없습니다. 살아 생전에 미리 준비 합시다.
世順
(세순) |
銜字(함자) |
태어
나신날. |
돌아 가신날. |
배위 본관. |
태어 나신날. |
돌아가신날忌日기일 |
시 조 |
良乙那(량을나) |
國祖乙那王 元年에 나라를 세우시고 王位에 오르시니, 당뇨(唐堯) 25년 이였다. 40년에 太子를 보내 처음으로 古朝鮮의 檀君祖와 國交를 通하였다. |
乙那王(을나왕) 國祖(국조)께서 제위 百年(백년)만에 돌아가시니 二世乙那王 즉위하였다. |
碧浪公主東海王女 벽랑공주동해왕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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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 |
宕 (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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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량을 梁양으로 |
改良개량하신 |
始祖시조 |
후손 |
友諒(우양) |
752년임진년 신라 경덕왕 |
16년 功(공)이 있어 |
南原府伯으로封봉해져 本貫본관을 삼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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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조 ? ? |
能讓(능양) |
996년 고려 |
성종때 활약 |
開城王氏宗室左僕射 개성왕씨종실좌복사 |
琳女孝隱太子 垣孫麗 림여효은태자 원손려 |
太祖曾孫 태조증손 |
2세조 능양 |
得謙(득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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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이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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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조 득겸 |
得璜(득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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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薛氏 경주설씨 |
書吏儒令縉女 서이유령진여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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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조 득황 |
卓英(탁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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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陰奉氏 하음봉씨 |
監門尉佑女 감문위우여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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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조 탁영 |
堅 (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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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川徐氏 리천서씨 |
掌治署令偉女 장치서령위여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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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조 堅견 |
利升(리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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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原貢氏 수원공씨 |
護軍有全女 호군유전여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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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조 리승 |
忠立(충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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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沙兪氏 장사유씨 |
長沙兪氏萬里女 장사유씨만리여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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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조 충립 |
唐就(당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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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東權氏 안동권씨 鄭氏 정씨 |
散員育女 산원육여 左右衛保勝別將瑞春女 좌우위보승별장서춘녀 |
瑞春서춘 의 따님 |
9세조 당취 |
俊 (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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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原尹氏 남원윤씨 |
將仕郎仲恭女 장사낭중공여의 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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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조 俊준 |
동필(東弼) 1남 |
判事(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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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조 |
동수(東秀) 2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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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조 |
祐 (우) 3남 |
1306忠烈32
병오년 |
1396太祖5
병자년
5월 5일
李朝를 배척
고려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에 드심 |
朔寧郡夫人梁氏
삭녕군부인양씨
淸州李氏長沙朝宗監
청주이씨장사조종감
務子虛女무자허녀 |
典議正光粹女
전의정광수여.전의정양광수의 따님
청주이씨장사조종감무 자허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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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조 |
서 (瑞) 4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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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조 |
윤유(允儒) 5남 |
執義(집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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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조 祐우 |
우룡(友龍) 1남 |
1323忠肅10
계해년 |
1406忠烈32
병술년 |
嘉德李氏
가덕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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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조 |
천룡(天龍) 2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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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조 |
인룡(仁龍) 3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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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조 |
득용(得龍) 4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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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조 |
석륭(碩隆) 5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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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조 |
지석(之碩) 6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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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조 |
천기(天褀) 7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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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조 우룡 |
사귀(思貴) 1남 |
1375禑王1년
을묘년
恭愍王 다음
禑王이 등극 |
大司諫
대사간
金海府使
김해부사 |
晋陽姜氏開城尹壽明
진양강씨개성윤수명
진양강씨개성윤수명 |
女晉川府院君元正公松
녀진천부원군원정공송
의 따님이시다. |
軒河楫外孫헌하즙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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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조 |
사도(思道) 2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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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조 |
원기(原奇) 3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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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조 사귀 |
결 (결) 1남 |
高麗末고려말1392년壬申 太祖元年 |
昌原府使居求禮桂折창원부사거구례계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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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조 |
민 (岷) 2남 |
1395乙亥,太祖(태조4년) |
旌義縣監
정의현감 |
柳氏
유씨 |
工曺參議伯達女
공조참의백달여 |
공조참의伯達백달의 따님 |
13세조 |
역 (嶧) 3남 |
1398戊寅年,太祖(태조7) |
延日縣監
연일현감 3월16일 |
晉陽河氏
진양하씨 |
安州牧使純女
안주목사순녀 안주목사순의따님 |
안주목사純순의 따님 |
13세조 |
기 (岐) 4남 |
1401년辛巳 3대太宗3년 |
萬戶
만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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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조 |
교 (嶠) 5남 |
1404년 甲申太宗(태종4) |
丹城居縣監
단성거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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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조 |
준 (峻) 6남 |
1407丁亥년太宗7년??? |
靈光郡守
영광군수 |
尙山金氏
상산김씨 |
金連宗女
김연종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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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양사귀 선조님은 문과에 올라 조선초기에 사간원 대사간의 요직을 지냈는데 사간원은 사헌부와 더불어 양사(兩司)라고 불리는 언론기관으로 문과출신의 명망이 들어난 인물이 임명되었고 대사간은 사간원의 장관으로 언론과 규찰을 주도하였고 많은 특권이 보장되었으며 승진도 관행적으로 보장되는 문관 최고의 요직인데 양사귀 선조님은 대사간의 자리를 마다하시고 외직을 자청하여 김해부사로 내려갔습니다. 양사귀 선조님은 중앙정계에서 최고의 위상을 들어냈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으셨고 김해부사로 내려가신 후 얼마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단성지역에서 평생 은거하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3세조 양준 선조님의 행적을 살펴 보면 씨족원류가 일반적으로 객관적인 자료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종3품 부정(副正)을 지내신 것을 신뢰할 수 있고, 종3품 부정을 지냈으면 정3품 정(正)을 지냈다는 진주강씨의 계시 자료도 일방적인 주장은 아닐 것이다. 남원양씨 문양공 후손중에 봉사공 후손이신 경주 감포 문중에서도 양 준 선조님은 종4품 군수를 지내셨다고 전하고 있다. 제마다 기록한 족보에 등재된 자료가 일치하지 않아서, 조선왕조실록 중에 태종~세조 시대에 활동하신 양준 선조님의 행적을 살펴보았더니, 아래와 같다.
1427년 세종09년 02월 10일 진보 현감(眞寶縣監)---- 종6품
1434년 세종16년 10월 30일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정6품
1435년 세종17년 02월 10일 전주판관(全州判官)----- 종5품
1444년 세종26년 01월 12일 사헌지평(司憲持平)----- 정5품
1455년 세조01년 12월 27일 정랑(正郞), 원종공신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14세조 峻준 |
보 (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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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7일 |
龍城梁氏
용성양씨 |
兵使敬老女
병사경노의따님 |
2월14일 |
14세조 |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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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린(崔 璘) |
海州人해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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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조 |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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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문(金孝文) |
만호(萬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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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조 普보 |
龜壽구수
麒壽기수 |
1남.1525을유년.進士考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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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1일 |
慶州金氏縣監璣女
경주김씨현감기녀 |
縣監璣女
현감기의 따님 |
4월10일 |
15세조 |
鳳壽
봉수 차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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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일 |
錦山余氏繼禎女
금산여씨계정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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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
15세조 |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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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견(李命堅) |
전주인全州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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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조 |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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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손(金駿孫) |
김해인金海人 |
직제학일손의형 |
15세조 |
삼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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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팽종(柳彭宗) |
郡守(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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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조 |
사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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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극충(愼克忠) |
縣監(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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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조 |
오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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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韓 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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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조 구수 |
弘濟
홍제 장남 |
1531년 中宗 26 辛卯年생 |
10월27일 |
咸陽朴氏收心齊薰女
함양박씨수심제훈녀 |
收心齊薰女
수심제훈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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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조 |
弘澤
홍택 2남 |
贈工曺參議 |
1571선조4
신미 3/17 |
瑞山柳氏希淸女
서산유씨희청여 |
유희청의 따님 |
11월29일 |
16세조 |
弘漑
홍개 3남 |
서자(庶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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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조 홍제 |
주
澍 장남 |
1550 명종5
경술3/16 |
1597선조30
정유 11/13 |
해주오씨
海州吳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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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조 |
발
潑 차남 |
1553명종8
계축년 |
11월14일 |
延安金氏
연안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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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조 |
호
浩 삼남 |
1557명종12
정사년 |
1627인조5
정묘10/23 |
長水黃氏迪女
장수황씨적의 딸 |
翼成公喜6世孫 익성공희6세손 |
武愍公進姪女
무민공진질녀 |
18세조 浩호 |
사준
士俊 장남 |
1575을해년
折衝將軍行
절충장군행
晉州兵使
진주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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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
인조6년
무진년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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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陽陳氏翼臣女
여양진씨익신따님
驪陽陳氏重恢女
여양진씨중회따님
義昌丁氏?????
의창정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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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정씨1673계축년 8/17 |
18세조 |
사의
士儀 2남 |
1581선조14
신사년 |
1628인조6
무진 |
蓮城金氏
연성김씨 |
濂
렴의 따님 |
牧使璫孫女
목사당의손녀 |
18세조 |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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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극탁(韓克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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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조 |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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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유번(郭維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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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조 사준 | 훈 (勛) 1남 | 1615光海7년 | 1685肅宗11년 | 全州崔氏 전주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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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조 사준 | 적 (勣) 2남 | 1618戊午 광해10 | 1690경오 3/29 | 興德張氏通政䁢女 흥덕장씨통정선녀 | 흥덕장씨 통정대부 선의 따님 | 1696병자1/10 |
19세조 사준 | 발 (勃) 3남 | 1634甲戌인조12 | 庚戌(경술)년 | 咸安趙氏(함안조씨) | 宇(우)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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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조 사준 |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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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우(吳尙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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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조 사준 |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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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정신(蘇廷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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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조 사준 | 삼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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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연(李鼎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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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조 사준 | 사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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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영(李漢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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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조 사준 | 오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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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명익(房明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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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조 勣적 | 세원 世元 1남 | 1645乙酉 仁祖23 | 1717丁酉 肅宗43년 | 慶州金氏琇女 경주김씨수의 따님 | 琇(수)의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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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조 勣적 | 세항 世亢 2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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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려산송씨(礪山宋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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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조 勣적 | 세장 世章 3남 | 1662임인년
| 1742임술 5/16 |
全州崔氏秉節校尉 전주최씨병절교위
| 璇女-병절교위 선녀-선의따님 | 1727,정미 2/15 |
20세조 勣적 |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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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振玉(김진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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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조 勣적 |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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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崔世熹(최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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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조 세장 | 응규 應奎 1남 | 1702임오 8/13 | 1770경인 3/30 | 興德張氏奉事漢伯女 흥덕장씨봉사한백녀 | 1705년 을유년 | 1754갑술 9/29 |
21세조 세장 |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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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柳益三 유익삼 | 文化人 문화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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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조 세장 |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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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창일 邢昌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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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조 응규 | 處海 처해 초휘 處赫 처혁 1남 | 1733계축 11/13 | 87세,以上壽 1819년호적에 생존기록보존 | 順興安氏野女文成公 순흥안씨야녀문성공
后配金海金氏 후배김해김씨 | 裕後안야의따님 유후문성공유의 후손이시다.
1730년,경술년 金岳伊김악이 |
안씨조모님은 1월7일 선종
冠浦讚瑀宅 관포찬우댁에서 출가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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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조 응규 | 處福 처복 2남 | 1736병진 3/25 | 1793계축 4/15 | 晋陽蘇氏遠瞻女 진양소씨원첨녀 慶州鄭氏世德女 경주정씨세덕녀 | 갑인
??? | 병술 8/8
??? |
22세조 응규 | 處晋 처진 3남 | 1738무오 1/10 | 1792임자 3/10 | 昌原丁氏遇赫女 창원정씨우혁녀 海州府院君健後 해주부원군건후 | 1737년 정사년 | 1788무신 2/11 |
22세조 응규 | 處明 처명 4남 | 1740경신 4/17 | 1825을유 2/16 | 順興安氏命集女 순흥안씨명집녀 | 命集女 명집의 따님 | 系子낙구洛龜 |
22세조 응규 | 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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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은눌(韓恩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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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조 처해 | 聖龜 성구 1남 | 1754년,갑술 | 처해의 1자 | 慶州鄭氏震行女 경주정씨진행녀 | 1795년,을묘년 영조35년 | 鄭日連 정일연 |
23세조 처해 | 瑞龜 서구 2남 | 1757년,정축 | 처해의 2자 | 也州卞氏成鎭女 야주변씨성진녀 | 1763년, 계미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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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조 처해 | 震龜 진구 3남 | 1765년,을유 | 처해의 3자 | 興德張氏天一女 흥덕장씨천일녀 | 1772년, 임진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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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조 처해 | 장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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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즙(李命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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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조 처해 |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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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진번(郭鎭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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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조 처해 | 孝龜 효구 초휘 孝乭 효돌 4남 |
| 처해의 4자 | 金海金氏 김해김씨 | 관포 김해김씨 | 金命枝 김명지의따님 |
24세조 성구 | 인손(仁遜)1남 | 1771년.신묘, 영조47년 | 처해의손자 | 晋州河氏河粉順 진주하씨하분순 | 1773계사년 영조49년 | 德三 덕삼의 따님 |
24세조 서구 | 준일 俊一 | 1786년,병오 | 處海 선조의 | 둘째 아들이신 | 瑞龜 서구의 아드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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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조 효구 | 금춘 今春 1남 | 1795년,을묘 | 효구의 1자 | 密陽朴氏 밀양박씨 | 1804갑자년 | 1859을미년 |
24세조 효구 | 己正 기정 2남 | 1805년,기축 | 생으로,26살때 | 1831신묘년,성포앞 | 가조도로 진소 | 모군으로,이주 |
25세조 인손 | 장녀소사召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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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조 인손 | 차녀소사召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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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조 인손 | 삼녀소사召史 | 1801辛酉신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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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조 인손 | 수경(守京)1남 | 1804년10/10 | 1890경인1/9 | 漆源尹氏尹興順今愛 칠원윤씨윤흥순금애 호적:흥순.가첩:금애 | 1807정묘12/8 | 1884갑신9/2일 |
25세조 인손 | 龍伊 용이 2남 | 1807정묘6/20 | 1854갑인1/15 | 安東金氏順岳 안동김씨순악 | 1810경오 1/ 5 | 1880경진 1/10 |
25세조 인손 | 4녀소사(召史) | 1814甲戌(갑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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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조 금춘 | 日祿 일록 1남 | 1823년계미년 3번 결혼 | 금춘의 1자 1897년정유년 | 안정아安頂牙 기계유씨杞溪兪氏 청송심씨靑松沈氏 | 1827년정해 1822년.임오 1838년.무술 | 1851신해 5/24 1856년,병진 1863년,계해 |
25세조 금춘 | 日業 일업 2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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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조 수경 | 有寬 유관 1남 | 1823계미6/8 | 1876년8/19일 | 宜寧余氏余奉連 의령여씨여봉연 | 1821년8/9일 | 1871년4/10일 |
26세조 수경 | 再寬 재관 2남 | 1827정해 6/5 | 1903계묘1/14 | 金海裵氏裵妙兒 김해배씨배묘아 | 1827정해 11/1 | 1899기해 5/ 5 |
26세조 수경 | 寬哲 관철 3남 | 1835을미 9/8 | 1908무신1/16 | 漆源諸氏칠원제씨 草溪鄭氏초계정씨 | 1836병신5/23 1840경자3/18 | 1886병술 6/17 1910경술 6/24 |
26세조 수경 | 寬烈 관열 4남 | 1838무술8/ 1 | 1920경신12/3 | 海州吳氏吳律今 해주오씨오율금 | 1837정유 7/ 2 | 1918무오 6/21 |
26세조 수경 | 寬業 관업 5남 | 1843계묘2/13 | 1918무오10/16 | 草溪鄭氏鄭件兒 초계정씨정건아 | 1847정미 3/ 7 | 1921신유 3/ 8 |
26세조 용이 | 奉岳 봉악 | 1844갑진4/8 | 1919기미壽75 | 冠浦里徐聖讚母親 관포리서성찬모친 | 徐琪局氏祖母 서기국씨조모 | 龍伊용이의외동따님 ~ |
남원양씨 거제문중 병부공파 30세손 양 방수 자료 제공
남원양씨 거제문중 병부공파 30세손 양 방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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