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대교 주탑을 잘 올려다보면 "건설노조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라"는 플랜카드가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세명의 건설노조 간부가 올라가 있다는 것은 좀체 믿기지 않는다.
75m가 넘는 높이의 그 곳에는 분명 세 명의 건설노동자가 있지만, 마치 이 땅에 건설노조는 없고 건설노동자만 있는 것처럼, 마치 이 땅에 불법 다단계하도급은 없고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만 있는 것처럼, 그곳에 고공농성중인 건설노조원은 없고 뜻 모를 플랜카드만 휘날리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건설노동자가 말한다.
"참담하다. 서울의 야경이 이토록 아름다운가. 이 모든 것들에 건설노동자의 혼이 깃들여져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 것인가, 왜 우리는 외쳐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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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소속 3인이 올림픽대교 주탑 위 농성을 14일째 벌이고 있지만 이렇다할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민중의소리 |
고공농성 14일째, 감옥보다 못한 올림픽대교 주탑 농성장 건설노조연맹 소속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 허근영 남양주 지회장, 임차진 현장조직가.
이들에게는 매일 끼니 때에 맞춰 물 1.5리터 한병, 도시락 3인분, 물티슈 3장, 손으로 대충 감아 풀어 뭉친 화장지 세뭉치가 올라간다.
경찰이 "불법행위"로 단정지은 고공농성에 대해 일체의 "지원"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 경찰의 속내도 모른 채 도시락을 싸갔다가 경찰이 도시락을 검열해 일부분을 덜어내 올려보낸 뒤로 건설노조원들과 가족들은 상업용 도시락을 올려보내고 있다.
"한번은 옥수수를 보낸 적이 있어요. 고공농성 시작한 첫 번째 일요일이었을거에요. 그런데 안된다고 그러더라구요"
김미정 경기중부지역건설노조 사무국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불만을 털어냈다.
"경찰이 아니고 벼슬이에요. 벼슬. 신문 좀 올려보낼려고 했더니 주요 일간지는 빼고 섹션지나 광고지만 한 두 번 올려보낸 것 같더군요. 추울까봐 옷가지를 올려 보내려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그러고. 물티슈도 끼니 때 한장, 화장지도 한통은 안 돼고 일일이 풀어서 한 번 정도 쓸 분량만 보내야 돼요."
"어떤 사람은 순해서 말도 못하고, 어떤 사람은 그게 못마땅해서 실갱이를 벌이기도 하지만, 물과 밥 외에는 일체 올라가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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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도 한통은 안 돼고 일일이 풀어서 한 번 정도 쓸 분량만 보내야 한다. 구치소보다도 못한 환경이 올림픽대교 농성장의 현실이다. ⓒ민중의소리 |
"구치소에 갔다온 건설노동자 한 분이 차라리 구치소가 낫다고 그러더군요. 그말이 맞아요. 고공농성장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어제 방송국에서 왔다 가서 그 틈에 잠바 3벌과 팬티 3장을 올려보냈습니다만, 그게 전부입니다"
다리 위를 지키고 있는 경찰관계자들은 건설노조원의 건강상태나 농성의 진행에 관심이 없다는 듯 "저희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라며 되묻기도 한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내려올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들의 임무는 단지 "건설노조원들이나 가족, 혹은 지지자들을 차단하는 것" 외에는 없어 보였다.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 "건설노동자의 미래는 건설노조를 지켜내는 것에 있다"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과 핸드폰으로 통화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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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는 매일 끼니 때에 맞춰 물 1.5리터 한병, 도시락 3인분, 물티슈 3장, 손으로 대충 감아 풀어 뭉친 화장지 세뭉치가 올라간다. ⓒ민중의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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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7시 30분경에 저희 세 사람은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건설노조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고 구속된 건설노동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더욱이 지난 3월경 국제노동기구에서 한국 정부에 제시했던 공고안을 이행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호중 의장 외 2명의 농성 참가자는 매우 높은 곳인데다가 물 위라는 점, 그리고 공간이 협소해 넉넉치 못한 생활로 인해 체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밝혔다.
"몸이 전체적으로 뻣뻣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몸의 기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점차 아침에 일어나는 문제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처음과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 저희들도 느낍니다. 몸의 기능이 저하되고 점차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설노조 활동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이 투쟁을 잘해 나갈 마음의 준비가 돼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주탑에 올라와 있기는 하지만,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활동했던 건설노조 활동으로 단련되어 있는 만큼 꼭 좋은 결과를 얻어낼 것입니다"
이들은 좁은 계단을 통해 주탑에 오르는 과정에서 플랜카드를 챙겨가야 했기 때문에 생필품도 거의 가지고 올라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미정씨에 의하면 경찰들도 주탑에 올라가는 통로로 접촉을 시도해 봤는데 중간정도 가니 "비를 맞은 것마냥 땀이 흘러내렸다"고 밝혔다.
"여름 침낭을 챙겨 올라와서 추위에 잘 적응을 못했습니다. 또한 비타민 섭취가 부족했던지 그로 인한 증세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김호중 의장은 "영양섭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멋적은 웃음을 들려주기도 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매서운 강바람과 급격히 떨어지는 주변 온도에 추위를 탄다. 하지만 아직까지 감기에 걸리거나 현기증을 느낀 이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김호중 의장은 명동성당에서 289일 동안 건설노조 공안탄압 분쇄투쟁을 진행했던 장기투쟁의 경험이 있는 만큼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실 건설노조 운동은 앞이 보이지 않는 운동입니다. 건설노동자들이 일선에서 싸우니까 뭔가 전망이 있는 조직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활동가들 내에서도 건설노조에 대한 인식은 싸늘할 만큼 힘들다는 의견이 팽배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여러 조건들이 노조운동을 하기에 쉽지 않다는 것은 건설노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김호중 의장은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야기하다가 이 쯤에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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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교 남단에는 이들의 농성을 지지, 엄호하는 천막농성장이 있다. ⓒ민중의소리 |
"하지만 200만 건설노동자를 방치하고서는 한국사회 변혁운동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건설노조의 투쟁은 정말 이를 악물고 하는 기풍이 있습니다. 우리 동지들은 정말 인내심이 강한 분들입니다"
"포스코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건설 자본의 지배를 받는 언론이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을 감추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설노조를 죽이기 위해 건설노동자와 건설노조를 분리시키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진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설노조가 살아야만, 지금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고 건설노동자도 점차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물을 것이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 김호중 의장은 "현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간접고용이 증가하면서 원청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원청의 사회적 책임 또한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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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요구는 다름아닌 ILO 권고안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민중의소리 |
실제로 지난 3월, 한국정부에 제시한 ILO 공고안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개별 간부들에 대해 보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탄압받거나 일부 간부들이 구속된다고 해서 건설노동자의 운동이 중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건설현장은 폭발직전의 위기상황과 같습니다"
김호중 의장은 임금 감소, 고용불안, 이주노동자 증가, 현장에서 노동자간 경쟁을 심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들이 "모순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림픽대교 남단에 위치한 천막농성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후 3시경에 "고공농성 지지와 건설노조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