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북서부, 태백산맥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철원군은 군의 중앙을 거치며 흐르는 한탄강 덕분에 래프팅의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또한 북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DMZ 평화공원, 철원 노동당사, 철원 승일교 등 북한과 연관되어 있는 관광지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철원을 그저 관광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울 용산역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철원역을 거쳐 원산까지 이르는 경원선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철원과 금강산의 내금강 역을 잇는 금강산 선도 운행되어 교통의 요지로 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의 아픔으로 철도는 단절되었다. 2000년 대에 들어서야 경원선 복원 사업이 추진되었고, 2012년 11월에 다시 개통되며 화제를 모았다. 현재 경원선은 서울 용산역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동두천시, 연천군을 지나 철원읍의 백마고지역을 종착역으로 한다.
철원이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아 개발이 덜 되었고, 그래서 다른 곳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어 있어 자연을 즐기러 떠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철원에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 지정되어 있다. 철원 9경에는 유명한 고석정을 비롯하여 삼부연 폭포, 직탕폭포, 매월대폭포, 순담, 소이산 재송평, 용양늪, 송대소 주상절리, 학저수지 여명이 있다.
최근 철원을 들른 우리 부부는 9경 중에서 사람들이 발길이 가장 많이 닿는 고석정, 삼부연폭포, 그리고 송대소 주상절리를 구경할 수 있는 은하수교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두 기대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독특한 풍경이 있어 눈이 즐거웠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철원에서 즐길거리는 그저 래프팅뿐이라고 여겼던 우리의 고정관념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철원의 아름다움을 소개한다.
한탄강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은하수교
철원을 가로지르며 철원을 대표하는 강인 한탄강은 '큰 여울의 강'이라는 뜻으로 계곡이 깊고 여울(하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작은 급경사를 이루어 물살의 세기가 빠른 부분)이 크다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한탄강의 '한'은 '크다, 맑다'를 뜻하는 동시에 '은하수'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탄강 위에 있는 다리의 이름 또한 '은하수교'가 되었다.
한탄강은 발원지에서 임진강의 합류점까지, 현무암으로 된 용암지대를 관류한다. 수십만 년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이 강은 곳곳에 수직 절벽과 협곡이 있어 수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슬픈 전설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런 슬픔과 아름다움이 서려있는 한탄강은 최근 유네스코 (UNESCO)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은하수교는 현무암 협곡의 청정 자연생태지역인 송대소에 자리한 한여울 길을 따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1코스인 동송읍 장흥리에서부터 2코스인 갈말읍 상사리를 잇는 이 다리는 철원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인 두루미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져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최대 통행 가능 인원이 약 2,311명까지 가능하도록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진 다리이지만, 다리 아래로 거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한탄강의 소리와 다리 중간에 설치된 투명 유리, 그리고 걷는 동안 수시로 흔들거리는 다리의 움직임 때문에 저절로 발길을 재촉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걸을수록 오금이 저리고 자꾸 다리 아래를 바라보게 된다. 아슬아슬한 느낌을 견디며 겨우 다리를 건너면, 그제서야 다리와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두루미를 연상케하는 다리의 디자인과 더불어 광활하게 펼쳐진 철원 평야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언덕배기에는 이곳의 전망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스카이 전망대가 2022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상부전망데크에는 익스트림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꾸며질 예정이고, 그 아래에는 아름다운 전망과 쉼터가 마련될 것이라 한다. 주변의 자연을 그대로 투과할 수 있는 케이블로 구성된 비정형 구조가 이곳을 더욱 독특한 공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완공이 더더욱 기다려졌다.
은하수교 관광의 마지막은 주차장 주변에서 열리는 '철원 DMZ 마켓'으로 마무리되었다.
주말마다 열리는 이 플리마켓에서는 철원군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더불어 이를 활용한 과자, 막걸리, 두부 등의 먹거리들, 그리고 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아트상품, 제품 등이 관광객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마켓을 둘러보며 지역의 특산품을 구경하는 즐거움, 특산물로 만들어진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다채롭게 누렸다. 은하수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역의 현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일석이조의 관광지가 아닌가 싶다.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고석정
'철원에서 가볼 만한 곳'이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뜨는 곳이 바로 '고석정'이다. 한탄강 협곡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화강암 바위와 일대의 정자를 일컫는 곳으로 다양한 사극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서부터 정자까지 이어지는 계단에는 이곳을 배경으로 삼아 촬영한 드라마들의 소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영화 전우치, 드라마 선덕여왕 등 내로라하는 문화 콘텐츠의 배경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싶어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정자에 도착했을 때,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진 곳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아니,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이렇게 아름답게 꾸밀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려한 아름다움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고석정을 이루는 기반암은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용암에 의해 형성된 이 암석들은 약 54만 년에서 12만 년 전 사이에 분출된 현무암질 용암류에 의해 완전히 파묻히게 된다. 이후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다시 지표에 모습을 드러내며 지금과 같은 독특한 모습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주목받는 이곳은 용암대지 형성 이전의 원지형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지형 및 지질 유산으로도 꼽힌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자를 처음 세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신라 진평왕(제위 579년-632년)과 고려 충숙왕 (제위 1313년-1330년, 1332년-1339년)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그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조선 명종 (제위 1545년-1567년) 때 의적 임꺽정의 근거지로도 유명하다. 그 때문에 고석정 주변에 있는 광장에는 두루미 동상과 더불어 임꺽정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오랜 세월을 버텼던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소실되었으나, 1971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새로 지어져 역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고석정의 뛰어난 아름다움은 세 번 느낄 수 있다. 가장 먼저 정자에서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두 번째로는 모래밭까지 내려가서 계곡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일출 30분 후부터 일몰 30분 전까지 고석정에서 시작하여 양합수지까지 왕복 운행되는 고석정 통통배를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인지, 고석정에는 시간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과거 조상들이 느꼈을 풍류를 상상하며, 한적하고 그윽한 풍경을 한없이 눈에 담았다.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삼부연 폭포
철원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여행은 삼부연 폭포로 정점을 찍었다. 명성산 중턱의 화강암 지대에 위치한 이 폭포는 약 20m 높이의 3단 폭포이며 독특한 모습으로 물이 흐르는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유수의 침식작용에 의해 2개 이상의 폭호 (폭포의 기저부에서 물이 떨어지는 힘에 의해 우묵하게 침식된 구멍)가 있는 이 폭포는 예전부터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예술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폭포의 이름을 지은 이는 조선 초중기의 성리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삼연 김창흡 학자이다. 그는 폭포가 세 번 꺾이며 흘러가며 하부가 가마솥처럼 움푹 패어있는 것에 착안하여 가마 '부(釜)' 자를 써 '삼부연 폭포'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어 조선시대의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은 폭포의 뛰어난 풍경을 화폭에 남겼다. 예부터 사랑을 받은 폭포는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철원의 명소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푸른 하늘, 초록빛 숲속에서 시원하게 흘러가는 폭포를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 저절로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길을 만들어 흘러내리는 물길은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어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동굴 또한 폭포만큼이나 독특하고 시원한 바람을 선사한다. 폭포뿐만 아니라 폭포 주변까지 멋진 곳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