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빌립보 부흥 역사 Date 2015. 8. 9
Text Acts 16.29-34
(29)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 많이 더우시지요? 이렇게 더운 때에 휴가 다녀오시거나 다니시느라고 또 얼마나 힘드십니까? 힘들어서,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휴가는 집에서 푹 쉬는 게 제일이라고요? 그건 상당부분 틀린 말입니다. 힘든 만큼 재미도 있고 필요성도 있는 것이 휴가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잘 준비한 휴가는 준비된 통일만큼이나 대박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 중에 국민들 모두에게서 가장 지지를 얻은 말은 아마도 ‘통일은 대박이다.’일 것입니다. 전에는 주로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수보다는 진보성향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도 꼭 보수와 진보 양측 지지도와 비슷했었는데 박대통령의 한 마디 말로 박대통령 지지층 쪽에서도 통일을 좋게 보는 쪽으로 기울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의 통일이든 막대한 통일비용이 들 수밖에 없고, 통일에 대한 이익을 피부로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 통일비용을 위해 세수를 높이겠다고 하면, 반발이 매우 클 것입니다.
그런데,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해(2014년) 펴 낸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효과'라는 보고서에서 남북의 점진적 통일이 이뤄지면 2016년부터 2060년까지 사회보장, 교육, 행정, 사회간접자본(SOC), 기타 재량지출 분야 등에서 모두 4657조원의 통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모두 1경8243조원의 실질 GDP(국내총생산)가 추가적으로 발생하고 남한 지역의 파급효과 868조원이 더해져 통일의 경제적 편익은 1경91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에 따라 편익에서 비용을 제외한 순편익은 1경4451조원으로 비용 대비 3.1배의 경제적 이득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중국은 한국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정학적 위치 탓에 다른 국가들이 밀고 당기고 있지만, 한국인 스스로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북통일을 경제적인 이유로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돈보다 사랑을 더 우선하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북한동포를 사랑하는 것은 성도된 이들의 의무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우리의 기도가 ‘준비된 통일’을 이루는 거름이 되도록, 오늘뿐만 아니라 늘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2.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부흥이야기는 빌립보교회 혹은 빌립보지역의 부흥이야기입니다. 빌립보는 16,12에 보면 마게도니아 지역의 첫 성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어떻게 이 성으로 가게 되었는지를 앞의 6-10절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 열심히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중에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니케아)로 가려고 하는데 성령께서 헉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까지 갑니다. 그런데 그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보이기를 마게도니아 사람 하나가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하였습니다. ‘아~ 비두니아 길을 막으신 주님 뜻이 마게도냐로 가라시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즉시 마게도냐로 갈려고 알아보고서는 출항 이틀만에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후세에 역사가들은 말하기를 이 때 바울 사도께서 드로아에서 빌립보로 건너간 것은 오늘날의 유럽문명을 가져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사적으로나 기독교적으로나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일이었습니다.
빌립보에 들어간 첫 안식일 날. 기도할 곳을 찾다가 강가에서 거기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루디아라는 여성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온 식구들이 함께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또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16,15)
루디아가 마련해준 거처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전도를 하는데 한 귀신들린 여자가 자꾸 바울 일행을 귀찮게 합니다. 졸졸 따라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소리를 질러대니, 나중에 바울이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18절)하였더니 그 여종에게서 귀신이 그냥 나왔고 이 여종은 정신이 온전하여졌습니다. 확실한 신자가 또 한 명 탄생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이 귀신들린 여종으로 점을 치게 해서 돈을 벌던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돈밖에 모르고 돈만 믿고 돈을 최고의 인생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지요. 얼마나 화가 났던지 바울과 실라에게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죄목으로 고발하여 흠씬 두들겨 팬 후에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또 한 명의 유력한 인사를 전도하여 확실한 신자로 만듭니다. 바울과 실라가 갇힌 상태에서 한 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는 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면서 옥문이 덜컹덜컹 다 열리고 바울과 실라의 손발에 채워져 있던 수갑과 족쇄가 다 풀려버립니다. 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간수가 보니 등불이 꺼져 캄캄한데 옥문은 열렸지...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는데 이건 또 웬 일입니까?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28절) 기겁을 한 간수가 불을 켜게하고 상황을 보니 죄수들도 한 명도 달아나지 않고 모두 그냥 있는데 그 중에 차꼬까지 다 풀린 사도 앞에 간수는 무릎을 꿇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그의 말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래서 또 한 명의 확실하고도 유력한 신자 하나와 그의 가족 모두가 세례 받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게 빌립보 교회의 탄생과 부흥 이야기입니다. 아멘.
여러분, 여러 가지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고 부흥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교인 수 늘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내 집 근처에도 전도할 곳 천지인데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선교라는 것은 경제논리로 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무조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첫 번째, 믿는 자라면 누구나 들어야 하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 울 밖의 한 영혼도 울안에 있는 아흔아홉 영혼만큼 귀합니다.(눅15,3ff) 둘째, 믿는 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기본자세가 사랑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영혼들은 구원 받아야 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 구원을 위해서는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합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고후12,15) 셋째, 무능과 무지는 기도와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곳을 찾다가 루디아를 만났고 깊은 밤에 기도하다가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고, 열렸음에도 죄수들이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넷째, 우리가 아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상식을 초월한 기적 같은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기대해야 합니다.(마15,28 눅7,9) 다섯째, 주와 및 복음을 위해, 또한 이웃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결코 그냥 죽지 않으니 너도 살고 나도 같이 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요12,24)
여러분, 인간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생각하고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그리스도인은 상식과 지식 이상의 믿음만큼 생각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가능한 한 더 큰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아멘.
3. 빌립보 부흥 이야기는 오늘에도 교회부흥, 신앙부흥을 꿈꾸는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주일로 지킵니다. 오늘날의 여러 객관적 정황으로 볼 때, 통일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기도 어렵지만, 막상 한다고 해도 또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새로 발생할 문제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은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할 일입니다. 왜입니까? 빌립보 부흥 이야기가 주는 교훈과 꼭 같은 이유로 그렇습니다.
합해놓으면 너도 못살고 나도 못살게 되기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적어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런 생각은 불신앙적 생각입니다. 우리를 끝없이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고 하는 것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반하는 것입니다. 상식이 중요하긴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믿음과 기도를 가져야 하고 소망과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는 기도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잘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해야 합니다. 마치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사도께서 기도하듯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옥터를 움직여 남북통일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족쇄들이 풀려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때만 기다린다면 통일의 때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 세대에게 분단으로 인한 더 큰 고난이 닥쳐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장 불편하다고 통일을 미룬다면 우리 민족을 향한 열강의 위협은 더 증가할 것이고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4. 여러분, 여러분 개인과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 교회를 위해서도, 평화 통일을 위해서도 사랑과 믿음과 기도와 소망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이 사랑과 믿음과 기도와 순종과 소망의 부흥을 이루고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애쓰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