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화 정책이란 '일본이 조선과 일본은 하나다' 라는 뜻을 심어주기 위해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정책을 말합니다.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작가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는가를
살펴봅니다.
두만강 건너 간도를 중심으로 만주의 망명문단이 있습니다.
강경애, 현경준, 박영준 소설가와
모윤숙, 유치환 ,김달진, 윤동주,등 시인 등이
신경의 만몽일보와 용정의 간도일보를 통합한 '만선일보'를 구심점으로
창작활동을 벌렸습니다.
모윤숙이 포함된 북향회가 조직되어 《북향 》이 4호까지 나왔습니다.
1943년 안수길의 《북원 》에는 염상섭의 서문과 함께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변영로 오상순 홍사용 등은 낙향하여 친일의 붓과 멀리했습니다.
김동리는 경상도에서 독서로 소일하고
황순원은 평안도에서 독짓는 늙은이 등 뛰어난 단편들을 써 모으고 있었습니다.
김광섭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 8개월 옥살이를 하고
김영랑은 고향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이병기 이희승등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습니다.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은 청록집에 실릴 시창작에만 전념했습니다.
첫댓글 암륵기 시대 우리 문인들은 참 암담했겠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창작에 몰두하여 명작을 지었겠지요...
그 분들의 참담한 심정을 헤아리니 가슴이 아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