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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차(8/3). 델리,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리가 첫날 묵었던 Sterling Inn. 빠하르간즈 뒷골목에 있다>
9시 정도에 일어났다. 간간이 들리던 개 소리가 아침에는 본격적으로 들린다. 호텔 주변을 돌아보니 골목길 곳곳에 누워 있는 개가 무척 많다. 무척 순해서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도 그냥 누워있기만 한다. 근데 큰 놈 옆을 지나갈 때는 좀 무섭다. 이 개들만 한국으로 수출해도 한몫 단단히 잡을 것 같다.
<아침의 우리 아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공부 빼고는 잘한다>
아침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환전하는 것이다. 당장 동전이라도 몇 개 있어야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 둘이 환전할 곳을 찾다가 한국인 여행객 둘을 만나서 함께 환전소에 들어갔다. 열심히 흥정한 결과 1달러당 54.75루피로 낙찰. 300달러를 바꾸었다. 16,350루피이다. 두툼한 지폐의 무게가 느껴진다. 가방에 잘 갈무리한 뒤에 식당을 찾았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쉼터’로 갔다. 죄다 한국 음식이다. 하지만 나와 버렸다. 한국을 떠난 지 하루만에 한국 음식을 사먹는 것도 별로 바람직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한국 음식 맛을 보기보다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북에 보니까 인도 곳곳에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빠하르간즈의 입구에 있는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오늘 선택한 아침 메뉴는 인도식 빵 뿌리. 빵을 기름에 튀긴 것인데, 이것을 카레를 찍어먹는다. 난전에서 인도인들과 함께. 비로소 인도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나에 5루피 짜리를 3개씩 먹었다. 카레는 무한 리필이다. 맛은 한국과 다르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빵도 별다는 냄새가 크게 나지 않기에 먹는 데 별 지장이 없다. 아침 한 끼를 둘이서 600원 정도에 해결한 셈이다.
<인도에서의 첫 아침 식사>
<빠하르간즈 입구에 시장 골목이 있고, 음식점이 많이 몰려 있다>
다음 할 일은 핸드폰 유심 갈아넣는 것. 거리 곳곳에 있는 이동통신 대리점 중의 한 군데에 들어갔다. 안되는 영어로 더듬더듬, 서로 대충 알아듣고, 여권 복사하고 한참을 만지작거렸지만 결국 유심 인식이 안된다. 컨트리락이 걸려 있으면 안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만약 그렇다면 인도에서 휴대폰을 쓸 수가 없는데... 할 수 없이 다른 가게로 이동을 했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가다는 ‘허니카페’로 갔다. 2기가짜리는 없고 3기가짜리밖에 없다는데, 그래도 인터넷을 쓰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통화를 하려면 일정 금액을 충전해야 하는 방식이다. 한국으로 전화거는 데 1분에 10루피 정도가 든다고 한다. 데이터 이용 400루피, 통화 350루피가 들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까 전화가 된다. 내 번호는 8800581862. 인도 현지 휴대전화가 생긴 셈이다. *123#으로 잔여 통화를 확인할 수도 있고, *123*10#으로 잔여 데이터도 확인할 수 있다. 돈은 좀 더 들었지만 어차피 확실한 게 최고다. 적어도 우리 집 밖에서는...
사실 한 달 전에 인도 여행을 위해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낯선 곳에서 전화나 인터넷이라도 사용할 수 있어야지 아무런 수단이 없으면 그 또한 낭패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름 준비를 많이 한 셈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니 이제 많은 환전소가 문을 열었다. 반듯해 보이는 한 곳은 밖에서 환율을 볼 수 있게 게시해 놓았다. 유리문도 있고,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몇 앉아 있다. 환율은 1달러당 55.4루피. 아까 환전한 것보다 더 유리한 조건이다. 아예 나머지 200불도 바꿔 버렸다. 이번에는 10,080루피. 거부가 되었다. 좀전에 환전한 것을 포함해서 1달러당 55루피 정도에 바꾼 셈이다. 돈이 좀 무겁기는 하지만 앞으로 환전한다고 왔다갔다할 일이 없어졌으니 그것도 괜찮을 듯.
날이 무척 더워서 11시쯤에 다시 호텔에 들어갔다. 짐을 맡기고 델리에서 돌아볼 여정을 짜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숙소 앞에 있는 레몬 쥬스를 한 잔 사먹었다. 직접 레몬 껍질을 벗기고 갈아서 주는 것이다. 전혀 위생관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길거리 음식이다. 레몬 껍질을 손으로 벗기고, 그 손으로 돈을 받고, 물에 한번 간단히 헹군 유리컵에 쥬스를 따라준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내 뱃속도 만만치 않다. 20루피.
<호텔 근처의 쥬스 파는 아저씨. 위생은 엉망이지만 맛은 괜찮다.>
이곳 델리에만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세 군데 있다. 먼저 1993년에 지정된 무굴제국 제2대 황제인 후마윤의 무덤이 있다. 후마윤이 죽자 둘째 부인이 이란 전통에 따른 무덤 건설을 시작하여 타지마할보다 90년 앞서 7년만에 완성한 곳이다. 그 다음은 역시 1993년에 지정된 72.5m의 붉은 사암 석탑인 꾸뜹 미나르이다. 꾸뜹 아이백이 세운 기념탑으로 이슬람교에서 힌두교도들의 나라 인도를 정복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승전탑이다. 세 번째는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 짜한이 지은 ‘붉은성’으로 2007년에 지정된 곳이다. 아그라에서 델리로 수도를 이전한 뒤 왕궁과 방어를 겸한 성채로 둘레 2.5km, 높이 16~33m의 붉은 색 사암 건축물이다.
마지막 날 델리 일정이 하루 더 있기 때문에 원래 오늘은 올드델리, 다음엔 뉴델리 쪽을 볼 계획이었으나 날이 덥고 힘들어서, 그리고 첫날인지라 가볍게 돌아볼 곳을 고르기로 했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하자면 세계문화유산 기행이 적당하겠지만 아들 녀석이 별 관심도 없고, 나로서도 열심히 보러 다니는 것은 그리 땡기지 않는다.
그래서 정한 곳이 신시가지인 코넛 플레이스. 델리에서 1931년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시가지로 첨단 쇼핑몰이 있고, 갖가지 상점들과 기념품, 음식들이 있는 거리이다. 빠하르간즈에서 사이클릭샤로 10분 정도 걸린다.
<싸이클릭샤를 타고 빠하르간즈를 빠져 나오는 중.>
코넛 플레이스에서는 주로 걸어서 몇 군데를 돌아보았다. 가운데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지하철 역도 있다. 그리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패스트푸드점도 많이 있다. 어디를 가든 현지인들이 따라붙는다. 어디에서 왔냐? 어디로 갈 거냐? 예약은 했느냐? 좋은 여행사 소개해 줄까? 등등. 삐끼들이다. 기념품을 팔기 위해 집요하게 달라붙는 사람들도 있다. 다 무시하고 왔다갔다 구경만 하다가 N 블록에 있는 세련되어 보이는 까페에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우아하게(?) 나는 카푸치노, 아들은 슬러시와 샌드위치. 확실히 돈이 좋다.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 맛이다.
<코넛 플레이스 입구에서 릭샤왈리와 함께.>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코넛플레이스에서 열공 중.>
역시 먹고 쉬어야 충전이 된다. 하지만 까페에서 나온 이후 기분을 망치는 한 사건이 일어났다. 돌아다니고 있던 중 현지인 하나가 뒤따라오는 아들 녀석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오른쪽 발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른쪽 신발 위에는 질척한 똥이 얹혀 있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 신발을 닦아준다. 어깨에 보니 구두닦이 통을 메고 있다. 순간적으로 찜찜하긴 했지만 이미 닦기 시작한 것. 결국은 양쪽 신발을 모두 내어주었다. 그리고 말하는 청구 금액은 500루피. 보통 신발 하나 닦는 데 10루피라는데... 인상 쓰고 따졌더니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이런 경우는 할 수 없다. 그냥 300루피 정도 주고 끝내라 하면서 중재 아닌 중재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인간도 한패인 것 같다. 나쁜 놈들. 대개 이런 경우에 경찰을 부르겠다고 큰소리를 내면 된다고 하는데, 돌아보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결국 기분은 나빴지만 300루피를 다 주고 말았다.
<구두닦이 사기꾼. 이 얼굴 잘 기억하세요.>
여행 초반이라 돈도 많은데 액땜했다고 생각했다. 항상 인도에서는 돈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처음에 똥을 닦을 때 얼마냐고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 아들 녀석으로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에서 잠깐 아들을 구박한 후 밀크티가 맛있다는 케벤터스에 갔다. 먹어야 힘이 나고 기력이 생기는 법. 길거리에 서서 바닐라맛, 딸기맛 밀크쉐이크를 한 병씩 마시고 또다시 동네 구경을 했다.
<뒤의 기둥에 가려진 곳이 밀크쉐이크로 유명한 케벤터스이다.>
<늘 몇 명이 줄을 서있고, 안에서 끊임없이 음식이 만들어진다.>
엽서에 잠깐 관심을 보였다가 하도 장사꾼이 따라와서 뺑 돌아서 길을 찾기도 했고, 아무튼 무척 덥기는 했지만 즐거운 구경이었다. 2시 30분에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이것저것을 느껴보고 경험해보고자 하는 목적에 충실하기 위하여.
델리의 지하철역은 검문검색이 심하다. 모든 입구마다 총을 든 군인이 지키고 있고, 엑스레이 기계로 짐 검사를 하고 하나하나 몸 수색도 한다. 사진도 전혀 찍을 수가 없다. 간간이 테러도 일어나는 곳이라 그런지 약간을 살벌하다. 그래도 여행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가만 있는 여행자를 쏘지는 않을 테니까...
지하철로 찬드니촉 역에서 R.K.아쉬람 역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3시. 숙소에서 짐을 다시 풀었다가 쌌다. 처음 타보는 야간열차에 묶을 배낭도 추리고 조그만 가방에 별도의 물건을 정리해서 넣었다. 워낙 열차를 탈 때 분실 사고도 발생하고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터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이살메르행 열차를 타는 올드델리역까지 오토릭샤로 이동.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라 무척 시끄럽고 매연이 코를 찌른다. 좌석에 좁게 앉아있으려니 더운 열기에 땀은 저절로 흐르고. 그래도 하나라도 자세히 보고 더 보려고 눈을 부릅뜨고 좌우 거리 풍경을 즐겼다.
여기의 운전기사들은 참 운전을 잘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 더럽게 한다. 틈만 나면 끼어들고 경적 위에는 늘 손이 올려져 있다. 양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 자체가 인도의 한 단면이겠지. 이런 것으로 우리의 우위를 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색다른 문화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사고 없이 무사히 이런 공포의 운송수단을 탔다는 것에 위안을 느낀다.
5시에 올드델리역에 도착했다. 무척 크다. 서울역보다 더 크다. 철도망의 길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곳이 인도이고, 델리는 인도에서도 가장 큰 도시라 그 규모는 엄청나다. 에어컨이 나오는 역 구내 맥도널드에 잠깐 앉아 있다가 장시간 여행 준비를 위해 먹을 거리, 음료 등을 샀다.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청량음료도 당연히 샀다. 에어컨 없는 기차를 타고 비록 밤이지만 17시간을 자면서 가야 한다는 마음에 긴장감이 더 든다.
<올드델리 역 앞>
예약한 좌석이 있긴 하지만 객차 출입문 옆에 그 좌석에 탈 사람들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가 붙어 있다. 그것을 보고 확인한 뒤에 자리로 가면 된다. Sleeper라고 써져있는 객차.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침대 두 개, 왼쪽은 마주보는 침대가 세 개씩 여섯 개가 있다. 낮에는 맨 아래 좌석에 세 명씩 앉아 있다가 밤 9시가 넘으면 각각의 3층 침대에 한 명씩 자리를 잡고 자는 구조로 되어 있다. 위에는 고정식의 작은 선풍기 몇 대. 땀을 후줄근하게 흘려서 몸은 끈끈하고, 열차 내도 무척 덥다. 하기야 더운 여름에 인도를 왔으면 여기의 날씨까지도 받아들이고 즐겨야 하겠지.
<야간열차의 SL칸. 한쪽은 2층, 한쪽은 3층이다.>
<자이살메르까지 동행한 인도 아저씨. 무척 영어를 잘한다. 말도 안되는 영어 듣느라 고생했어요. ㅋ>
5시 30분 정시에 출발했다. 출발역인데도 사람이 무척 많다. 우리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정리(?)해서 내쫓고, 배낭을 구석에 자물쇠로 묶어놓았다. 현지인들도 다들 체인으로 가방을 묶어놓은 것을 보면 분실 사고가 종종 발생하긴 하나보다. 온통 인도인들이다. 까무잡잡한 얼굴, 유독 반짝이는 눈망울, 다소 왜소한 체격... 정차역이 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금세 만원이다. 통로까지 꽉 차버렸다. 이방인들을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끼며, 창밖 풍경도 구경하고 사막으로 가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꼈다.
<우리 앞자리에 탄 인도인 부부. 영어는 한마디도 못한다.>
<현지인들이 북적이는 모습이 또다른 볼거리이다.>
앞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꼬마 아이 둘과 함께 여행하는 부부, 자이살메르 고향에 다니러 가는 현직 경찰. 처음엔 낯설어하다가도 금세 친해진다. 부부는 전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동작과 표정으로만 대화를 한다. 사진도 찍어주고, 아이의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예쁘다’, ‘귀엽다’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다. 하지만 느낌으로 통하기 때문에 서로 웃어준다. 공기의 흐름 속에 정이 통하는가 보다. 호기심을 갖고 쳐다보는 눈길에서 사람 사는 동네에 와 있음을 느낀다.
<아침에 30분 정도 정차한 포카란 역. 어디를 가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말을 잘 통하지 않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들 녀석은 자리에 30분을 못 앉아 있는다. 구경하러 간다고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고 그러다가 현지인들과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 어린 아이에 대한 배려심은 여기 사람들도 갖고 있다. 잠깐 보니 배려심 있게 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거려준다. 그 점에서는 나보다도 훨씬 낫다. 아빠는 적당히 들어주는 척하다가 피해버리는데 오히려 낯선 사람들이 더 이해의 폭이 넓다. 이건 반성할 일이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에게는 관대하다. 나도 득을 본 것 같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리에 있다가 잠깐 바람을 쐬러 화장실을 가도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에서 왔냐? 이름이 뭐냐? 언제 왔고 어디로 가나? 등등. 무선 인터넷도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스마트폰을 끄니 자연스레 옆과 앞의 사람으로 눈길이 가고 관심이 쏠린다. 델리에서 집까지 매일 2시간 반을 기차로 출퇴근한다는 엔지니어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아직 총각이고 가족 중에 교사가 많고, 페이스북 가입을 권유받았다. 이메일 주소도 주고받고 연락 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무척 많이 밀려들어온다. 그리고 빈 틈만 있으면 앉고 눕는다. 일상적인 삶인 듯.
9시 반쯤 되니 모두 잠잘 준비를 한다. 벽에 붙어있는 좌석을 올려서 2층 침상을 만들고 자기 자리가 아닌 사람은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새로운 공간에서 자기만의 둥지를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