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순으로 접어들자 꽃들이 경쟁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어요. 출근하여 눈길이 멎은 사무실 앞 화단엔 목련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꽃봉오리만 쭉 빼올려 터질 듯 말 듯 하더니 그 절정의 순간을 참지 못했는지 하룻밤 새 활짝 꽃잎을 열었습니다. 이에 질세라 벚꽃도 튀밥 같은 꽃들을 매달았고 연분홍 꽃봉오리를 잔뜩 부풀어 올린 영산홍도 새색시처럼 다가오는 봄을 다소곳이 맞고 있었어요. 그러니 목련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이겠어요. 화단의 꽃들은 마치 목련과 경쟁이라도 벌이려는 기세였지요. 난 목련의 환한 미소에 숨이 막혀 그 나무 아래서 한참을 서서 실바람에 너울거리는 꽃잎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양희은이 부르는 ‘하얀 목련’이 문득 생각났지요.
하얀 목련이 필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사랑이어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얘기를 잊을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목련이 만개하는 4월만 돌아오면 웬만한 봄꽃은 다 피어나질 않겠어요. 터질대로 터진 봄볕 속으로 며칠 전 꽃샘추위가 몰려온 이유가 있을 법도 합니다. 아마 활짝 핀 목련이 너무 순결하고 청초해서 시샘을 부린 것이 아닐까요. 그럴수록 더 당당하게 피는 것이 목련의 속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따스한 햇살이 한 줌 꽃잎위에 차곡차곡 쌓이면 목련의 빛깔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부시답니다.
목련을 보면 자꾸만 연꽃이 연상됩니다. 불가에서는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고 해서 목련이라고 했답니다. 주걱 같은 꽃잎이 겹겹이 쌓여 활짝 피어 있는 모양을 보면 꼭 백련을 보는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일까요, 목련을 보면 절에서 느끼는 장엄한 기분이 듭니다. 꽃들이 술렁거릴 때는 괴롭거나 아픈 내 마음의 상처들이 확 씻어 내려가는 충동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꽃을 보는 기분은 다 똑같지 않나봅니다. 걔중에는 목련을 싫어하는 분도 있었으니까요. 4년 전 그 때, 내가 살던 옛집의 마당가 화단엔 목련나무 한 그루가 당당하게 서있었지요. 내 키 두 배가 될 정도로 키가 쭉 뻗은 놈이었는데 봄만 되면 나뭇가지를 뒤덮어 술렁이는 꽃잎들이 숨을 막히게 했지요. 목련이 피면 금세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낡고 오래된 한옥이 눈부신 목련의 하얀 미소 때문에 금세 환해졌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꽃잎을 피워 물던 목련도 일주일을 넘기지는 못했답니다. 질 때는 처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때 한점 묻지 않았던 순결함은 어디로 날아가고 꽃잎은 가장자리부터 노랗게 말라 들어가 볼품이 없었지요. 하기야 지는 꽃을 아름답다고 하는 이가 있을까요. 일주일도 못 버티며 처절하게 지는 모습에 비애를 느끼기엔 아주 좋았지요.
어느 날 우리집에 놀러 오셨던 장인어른이 목련나무를 보자 밑동을 잘라내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아무 쓸모없다는 것입니다. 눈만 잔뜩 흐려놓고 일주일도 못 버티고 꽃을 떨어낼 바에야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니까요, 꽃망울 터뜨릴 때의 그 산고에 비한다면 속절없이 지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장인어른의 그 말이 씨가 된 것일까요.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목련나무만 보면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베어버리자고요. 그 당시 어머니는 화단에 과일나무를 심는 것을 낙으로 삼고 계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고 꽃만 피우는 나무는 안중에도 없었으니까요. 어머니는 며칠을 두고 내 마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생각한 김에 바로 목련나무를 베어버리기로 했지요.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셈치고 눈물을 머금고 결국엔 밑동을 바싹 베어버렸습니다. 그 때의 심정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톱날이 서걱이면서 뱉어내는 톱밥을 볼 때마다 내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아픔을 느꼈지요. 그날 이후로는 아예 화단에 목련나무를 심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낡은 한옥을 뒤덮을 정도로 술렁거리던 목련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도 심지 않았습니다. 또 어느 정도 크면 그때의 아픔이 재현될까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지요.
목련나무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꽃들이 한결같이 북쪽을 향해 있네요. 그래서 북향화라고 했나봐요. 이 꽃 이름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있지요. 그것은 바로 중국에 내려오는 전설 때문입니다. 공주가 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하였으나 아내가 있는 것을 알고 죽음을 택한다는 슬픈 전설말이지요.
한결같이 북쪽 바다의 신만을 사랑하는 공주가 있었습니다. 물어물어 그 신을 찾아갔지만 이미 한 여인과 혼인한 것을 안 공주는 목숨을 끓고 말았지요. 이것을 알게 된 신은 공주가 죽은 이유가 자신의 혼인 때문이라며 아무 죄도 없는 아내까지 극약을 먹여 죽인 후에는 두 여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나게 했어요. 공주의 무덤에서는 생전에 공주의 모습과 같이 희고 고운 백목련이 피어났고 북쪽 바다의 신의 아내가 묻힌 무덤에서는 자목련이 피어났답니다.
저렇게 술렁이던 목련도 아마 일주일만 버티면 속절없이 지겠지요. 때 한 점 묻지 않는 목련꽃잎을 보니 밤늦게 퇴근해 환하게 웃어주던 딸의 얼굴이 생각나네요. 젖냄새 물씬 거리던 딸이 언제 저렇게 성숙했을까. 목련이 하얗게 술렁거리는 그늘에 앉아 박목월이 지은 “4월의 노래” 라는 시를 딸에게 소곤소곤 보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