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BTI 외계인
너에 대해 물으면
우주만큼 먼 너는
E 아니면 I라고 답한다.
청춘이라 아프고
낯선 세상에서 외롭고
내일의 시간으로 가득 찬 너는
알파벳만큼의 곁만 내어준다.
남들과 다르다고
온 우주에 하나뿐이라고
생각도 말투도 거침없는 너는
하나같이 F 아니면 T라고 말한다.
뜻 모를 암호같은 네가
외계의 언어보다 어렵다.
2.
어제의 세계
단단한 바위 같던 아버지가
네발 산책을 나가시던 날
하늘과 땅은 자리를 바꿨다.
무너진 산비탈처럼 흘러내린 등과
검게 구멍 난 눈빛을 뒤로하고
어제의 세계는 영영 떠나버렸다.
이제는 울타리가 뒤바뀐 집에서
그리운 어제와 서러운 오늘이
함께 밥을 먹는다.
3.
매미가 응원하는 여름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을에는
고운 소리로 우는 시인 매미가 살고
밭일하는 부지런한 할머니 마을에는
때맞춰 시간을 알리는 일꾼 매미가 산다.
낡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우리동네 매미는
온종일 죽을 힘을 다해 요란한 박수만 친다.
듣는 귀가 없는 건지
재주가 그 뿐인지 알 수 없지만
집으로 향하는 걸음에 날개가 돋는다.
4.
새벽에 전화가 울리면
새벽을 깨우는 벨 소리에는 검은 그림자가 숨어있다.
꿈 속을 헤매던 마음은 지옥 문턱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며칠밤 뒤척이던 작은 고민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장난 전화이길
잘못 걸려온 전화이길
제발 아무일 아니기를
불행은 혼자 오지 않으니
새벽 전화 한 통에 잊었던 기도가 절로 나온다.
5.
영원한 나의 봄날
첫눈처럼 하얗고 투명한 얼굴
잘 익은 사과 같은 볼과 입술을 가진 너를
첫눈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조그맣게 꽉 쥔 주먹을 펼치면
손가락 마디마다 숨어있는 뽀얀 먼지에
마음 속 얼음이 녹아 내렸다.
놀러 온 날은
꼬마전구를 단 분홍색 깃털이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가버리고 나면
온 동네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훌쩍 커버린 너를 만나면
아직도 가슴 저 아래에서
분홍색 솜사탕이 피어오른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너는 영원한 나의 봄날!